정성 소금강 길

 

정선의 민둥산(1,118.8)은 10월 중순이면 정상 부근 20여 만 평의 평원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억새천국으로, 억새밭에 들어서면 사람 키보다 큰 억새에 파묻혀서 한줄기 등산로 외에는 주변 경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산악인들로부터 전국 제일이란 말을 듣기도 한다.

 

전망도 뛰어나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며, 완만한 곡선을 그린 능선이 이어진 억새동산은 마치 거대한 목장과 같은 느낌을 주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 산행에도 알맞다. 민둥산이 이렇게 억새가 많고 나무가 없는 것은 산나물이 많이 나라고 예전에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러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자료 발췌)

 

지난 10월 억새구경을 하러 민둥산에 올랐다, 화엄약수터로 하산하는 도중, 정상에서 약 1.5Km 떨어진 능선 옆, 임도에 승용차가 정차해 있을 보고, 또 능선갈림길에 제동길 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두 가지로 미루어 볼 때, 윗제동마을에서 3Km 떨어진 이곳까지 승용차가 올라올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

림길 이정표-정상에서 약 40분 거리

능선에서 본 제동길 임도

 

만약 이곳까지 승용차가 올라 올 수 있다면 정상까지 340분 정도면 오를 수 있겠으니, 집사람이나 동생부부도 큰 무리 없이 민둥산 억새를 즐길 수 있겠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 정선 8경 중 몇 곳을 여유 있게 둘러 볼 수가 있겠다고 생각되어, 이야기를 꺼내보니, 모두들 대찬성이다.

차타고 오른 길

 

2010년 11월 17일(수)

동생네 승용차로 7시 30분 경 집에서 출발하여, 여주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감곡IC에서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증산초등학교 앞에서 421번 국도로 들어서서, 윗제동마을에 이르고,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 능선 아래에 차를 세운다.

능선아래 임도에 차를 세우고

 

능선을 따라 민등산으로 오르던 등산객들이 이런 우리들을 보더니,

 

“여기까지 차를 타고 오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라고 입을 비쭉대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여기까지 차가 오르는 것을 알았으면 우리도 타고 올 걸....”이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날의 나들이 사진을 정리한다.

민둥산 오르다 뒤돌아 본 지나온 길

갈림길-오른쪽은 민둥산, 왼쪽은 능전 하산길

민둥산 오름길의 억새

민둥산 오름길의 표지기

가까이 보이는 민둥산 정상

민둥산 오르는 길

지나온 길

정상-차에서 내려 약 40분 걸림

정상에서 본 서쪽 조망

잣나무 숲

낙엽송 숲길

 

약 1시간 40분 정도 민둥산을 둘러보고, 몰운대로 나와 주위를 둘러본 후, 정선 소금강 길을 달려 화암약수 관광지로 향한다. 3시가 다 되어 관광지에 도착, 고향식당에서 만드레 막걸리를 반주로 곤드레 비빕밥으로 늦은 점심을 한 후, 약수터를 둘러보고, 화암동굴로 향한다.

몰운대

광대곡 입구, 죄가 있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광대곡이다.

소금강길 1

소금강길 2

소금강길 3

소금강길 4

 

정선 바위솔

화암약수 안내문

화암약수 찬비

 

화암동굴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으로 연간 순금 22,904g을 생산하는 국내 5위의 금광이었던 곳이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 33호로 지정(1980년 2월 26일) 되어 있고, 금광굴진 중 발견된 천연 종유동굴과 금광갱도를 이용 하여 <금과 대자연의 만남> 이라는 주제로 개발한 국내 유일의 테마 형 동굴이다.

 

전체 관람구간은 5개의 장, 41개 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역사의 장, 금맥 따라 365, 동화의 나라, 금의 세계, 대자연의 신비 등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하면서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이상 관련자료 발췌)

 

오래 전에 정선 8경을 둘러 볼 때는 화암동굴이라는 소리를 못 들었던 터라, 아마도 새로 생긴 관광지인 모양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4시가 다 된 시각에 도착하여 잠시 둘러본 후, 마침 오늘 열리고 있는 정선 5일장을 구경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동굴탐사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장 구경은 못하고 귀경한다.

화암동굴 건너편에 있는 정선향토박물관 앞의 조형물

화암동굴

모노레일 출발시간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며 본 화암동굴 입구

매표소-약 7분 동안 모노레일을 차고 올라, 매표소에 이른다. 경로는 입장료 무료, 모노레일 탑승비 2,000원만 내면된다.

동굴 입구

관람안내도- 총길이 1,803m, 소요시간 1시간 30분~2시간이다.

역사의 장

바위속에 밖힌 금을 볼 수 있다.

노다지 궁전

채광흔적 안내

채광흔적

가파른 층계길-나선형의 가파른 증계가 길게 이어진다. 하여 노약자의 출입을 입구에서 금한다.

남근과 옥문

동화의 나라

황금의 기둥

종유석 동굴

박쥐 모형-박쥐가 서식하니 정숙

가까이 본 종유석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쌍봉 위로 달이 떠오른다.


 

(2010.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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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의 억새, 신불산 쪽

 

2010년 10월 13일(수)
쾌적한 실내온도, 은은하게 풍기는 나무냄새 속에서 숙면을 하고 아침 6시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다. 밖으로 나오니, 공기냄새부터가 다르고, 하늘에는 아침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조개구름이 곱다,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방으로 돌아와 어제 남겨온 감자전에, 사과와 서울에서 가져온 간식거리를 더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7시 30분 경, 표충사로 향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본 하늘

 

재약산 아래 너른 터에 자리를 잡은 표충사는 큰 가람이다. 마침 사명대사 400주기 추모대제가 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어 더욱 뜻이 깊다. 약 1시간 동안 절 경내를 두루두루 참배한다.

일주문

재약산 표충사 안내문

표충사 안 뜰, 뒤로 재약산이 우람하다.

석등과 3층 석탑, 오른쪽으로 천황산 사자봉이 우뚝하다.

안내문

팔상전과 대광전

대광전 안의 불상

목 백일홍의 예쁜 자태

가을의 꽃 국화

서산대사 영정

우리나라 각 사찰에 봉안 된 서산대사 영정전시

안내문

 

아침산책 겸 표충사를 둘러보고 얼음골로 향한다. 식당가를 지나며 문을 연 집을 찾으나 허사다. 9시가 조금 넘어, 얼음골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안내도를 카메라에 담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매점을 지나 철 계간을 오른다. 뒤로 하늘금을 긋고 있는 천황산 줄기가 장엄하다. 길가의 낙엽을 쓸고 있던 매표소의 아저씨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모두 경노냐고 묻는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침이라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된다.

얼음골 입구의 등산안내도

철 계단 뒤로 보이는 천황산

 

길가에 보이는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고, 공사 중인 아이스벨리리조트를 지난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려고 서울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더니, 대규모 내외장공사가 한창이다. 11월 말 경에나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얼음골 결빙지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밀양사람들은 그 이유가 아이스벨리리조트 같은 대규모의 시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의 철거를 주장한다고 한다.

얼음골 안내판

공사 중인 아이스밸리리조트

 

천황사로 다가간다. 천황사는 보물 제1213호인 석불좌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에 왔을 때는 대광명전의 문이 굳게 닫혀 구경하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천황사를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 결빙소로 향한다. 완연히 냉기가 느껴진다. 처음 온 동생과 집사람이 무척 신기해한다. 잠시 길에서 벗어나 천황산에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인 너덜을 가까이보고, 철책d 둘러쳐진 결빙지에 이른다. 역시 얼음은 보이지 않는다.

천황사와 일행

밀양 천황사 석불좌상

안내문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리

가까이 본 너덜

결빙지


안내문

 

돌길을 오르느라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결빙지를 둘러보고 나더니, 네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긴 통나무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쉬고 있다. 2.9Km 떨어진 천황산은 못 오르더라도, 240m거리의 가마불 협곡을 보지 않고,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일행을 구슬려 가마불 협곡으로 향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천황산에서 흘러내리는 너덜지대가 장관이다. 힘들어 하던 일행도 이 광경을 보더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일행

불가마 협곡으로 향하다 뒤돌아본 천황산 너덜

 

불가마 협곡으로 이어지는 암릉에 전에 없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다행이다. 우뚝 솟은 암봉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어둠침침한 깊은 협곡에 걸린 폭포에는 물이 말라, 강아지 오줌발만한 물줄기가 흐를 뿐이다.

 

불가마 협곡을 대충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매점이 문을 열었다.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생수 두 어병과 컵 두 개를 산 후 값을 지불하려하자 컵 값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어 신불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을 물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떠나려하자, 택배용으로 상자에 담던 사과 다섯 개를 건네주며 가면서 맛을 보라고 한다. 각박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 좋다. 인심은 곳간에서부터 나는 법, 똘레랑스(관용)을 자랑하던 프랑스에서 매일 과격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라!

암봉과 단풍

물 마른 폭포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간월재로 향한다. 이윽고 1077번 도로로 진입하여 호박소 터널을 지나, 69번 지방도로로 들어선다. 24번국도로 돌아서 접근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른 길이다. 간월재로 이어지는 임도는 동쪽의 등억리와 서쪽의 신불산 자연휴양림 양쪽에 있지만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의 서쪽의 신불산 자연휴양림 쪽에서만 가능하다. 사전에 얻은 정보대로 신불산 자연휴양림 하단 쪽으로 들어가 보니, 휴양림 관리인은 잘못 들어왔다며, 휴양림 상단 쪽에서만 간월재로 이어지는 임도로 진입할 수 있다며, 69번 지방도로로 다시 나가서 3Km 정도 떨어진 휴양림 상단으로 가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69번 지방도로로 나와 휴양림 상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잘못을 범한다. 지도는 가지고 있지만 나침반을 가져오지 않아 방향을 착각하고 그만 반대방향으로 진행하여 대형 알바를 한 것이다. 3Km를 넘게 달렸는데도 그럴듯한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묻고,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달려, 겨우 신불산 자연휴양림 상단으로 진입한다. 돌 많은 비포장임도를 조심스럽게 오른다. 차를 많이 아끼는 매제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12시 5분,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 일방통행로를 따라 간월재로 향한다. (집에 돌아 와 실수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 녀석이 내비게이션에 나침반 기능이 있는데 그걸 몰랐냐고 웃는다.)

간월재와 휴양림 갈림길

 

간월재가 가까워지자 비포장도로가 시멘트포장도로로 바뀌며 길이 넓어지고, 도로변에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12시 24분 경, 차량들이 가득 찬 신불재에 도착하여, 빈 공간에 겨우 차를 세우고, 억새구경에 나선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 억새도 아직 제대로 피지 않았는데, 간월재는 시장바닥처럼 인파로 붐빈다. 모처럼 찾아왔지만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간월재로 통하는 임도

임도를 가득 메운 차량들

 

목책 길을 따라 잠시 억새 사이를 거닐다, 매제와 나는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고, 여자들 셋은 간월산 중턱까지 올랐다 차로 오기로 한다. 이윽고 여자들이 돌아오자, 간월재를 뒤로하고,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 불고기로 유명한 언양으로 향한다.

간월재 표지석

간월재의 억새, 간월산 쪽

 

이번에는 똑똑이(집사람은 네비게션을 똑똑이라고 부른다.)의 도움으로 큰 고생 없이 언양IC 부근에 있는 “원조 삼거리 불고기”를 찾아 든다. 정육점을 겸하여 암소 한우의 특A 부위를 사용한다는 이 식당에서 삼거리 특미(160g, 22,000원) 3인분, 불고기(200g, 15,000원) 2인분에 백세주(6,000원)와 공기 밥(2,000원)을 주문하여 식사를 한다. 소문대로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한 시간이 넘게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식대 총액 112,000원) 3시가 넘어,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원조 삼거리 불고기

 

일본에 소노 아야꼬라는 소설가가 있다. 1931년 도꾜에서 태어난 그녀는 40세 되는 해부터 나이가 들어 추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할 사항들을 메모하기 시작하고, 그 이듬해에 계노록(戒老錄)을 출판한다.(우리나라에서는 오정순 씨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로 번역) 그 책에는 ‘자주 씻어라’,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을 써라’,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가라‘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 문득 그녀가 계노록에서 지적한, ‘새로운 기계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이란 항목이 크게 와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모든 것을 맡기고 멍청하게 따라가는 것이 바보스럽다고 느껴, 평소 내비게이션에 관심이 없다가, 이번에 여러 차례 실수를 범하고 나니, 새로운 기계사용에 대한 거부감은 심리적 노화와 비례한다는 그녀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구입하여 차에 장착해야겠다.

 

언양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차례로 달려, 이천휴게소에서 우동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8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한다. 계획보다 약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번에 늙은이 다섯 사람의 총 여행비용은 차의 기름 값을 포함하여 700,000원 정도가 들었으니, 꽤나 알뜰한 여행을 한 셈이다.

 

(201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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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옆의 침류각

 

동갑내기인 매제가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한다.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도산공원에서 매일10Km 걷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가 하면, 주말이면 친구들과 열심히 산에도 다녔는데, 근육을 키우겠다고 무리하게 역기를 든 것이 탈이 난 모양이다. 3개월 전에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으나, 그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은 결과,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등산을 할 정도는 못 되는 터라 많이 답답한 모양이다.

 

전남 장흥 천관산의 억새를 소개한 신문보도를 보고 동생한테서 연락이 온다. 바람도 쏘일 겸, 1박 2일 일정으로 억새구경을 가자는 제안이다. 지리산(智異山), 월출산(月出山), 내장산(內藏山), 내변산(內邊山)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천관산은 억새도 좋지만 빼어난 암릉미와 시원한 조망으로 유명한 산이다.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정상 부근의 능선에 무성한 억새를 보러 가기에는 아직 완쾌하지 않은 매제의 건강상태로는 무리이겠다.

 

여러 가지 대안을 궁리하다. 문득 낙동정맥을 하면서 지났던 간월재에 승용차 1대가 정차해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간월재까지 승용차로 올라가서, 신불산이나 간월산을 오르며 억새 군락지를 산책 한다면 무리 없는 기분 전환이 가능하겠다.

 

2010년 10월 12일(화)
7시 40분 경 매제가 차를 몰고 집으로 온다. 일행은 동생네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누이, 모두 5명이다. 이들 다섯 사람의 나이를 합쳐보니 344살이나 된다. 가히 늙은이 부대의 나들이라 하겠다. 장거리 여행인데, 뒷좌석에 3사람이 앉기가 좁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모두가 날씬한 체격이라 4사람이라도 앉아서 갈 수 있겠다. 모처럼의 나들이가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뒷좌석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여주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네 사람은 소고기국밥, 나는 해물순두부다. 식후의 커피는 아메리카노 3잔을 사서, 휴게소 물 컵을 빌어, 다섯 잔으로 나눠 마신다. 그래도 양이 넉넉하다. 다음에는 2잔만 사기로 하고, 혹시 부족하다 싶으면 리필을 청하기로 한다. 식사 후에는 동생이 운전대를 잡는다. 나는 보험에 가입된 차가 아니라 운전을 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꽤나 고지식한 사람들이다.

 

차는 여주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들어선다. 내비게이션에 밀양IC를 목적지로 입력을 하고 똑똑이(집사람이 내비게이션에 붙여준 별명)가 유도하는 대로 달리다 보니, 길을 잃을 걱정도 없다. 하지만 평소에 운전도 많이 하지 않고, 차에 내비게이션도 없는 나는, 김천분기점에 이르러 그만 헛점을 드러내고 만다. 똑똑이는 우회전을 하여 부산-대전 방향으로 진입하라고 지시를 하는데, 대구에서 55번 고속도로로 바꾸어 타야한다는 생각에만 집착한 나는, 내비게이션을 어찌 믿겠냐며, 동생에게 직진하라고 지시를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교통 표지판이 이상하다. 대구는 보이지 않고, 성주, 창원만 보인다. 그제야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기야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계속 달려, 창녕에서 24번 국도로 갈아타고, 밀양으로 들어가서 안 될 것도 없겠지만, 이미 목적지를 밀양IC로 입력하라고 지시를 한 터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똑똑이 말을 잘 듣겠다고 엄숙하게 선서를 한 후, 똑똑이가 지시하는 대로 남김천에서 내려, 4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왜관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똑똑이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다 30분이나 헤맸다고 집사람이 핀잔을 준다. 고소한 모양이다. 4번 국도가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것을 감안하면, 손해 본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일 터인데도, 계속 30분이라고 우긴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것인가? 여동생이 내편을 들자, 비로소 집사람도 웃으며 승복한다.

 

밀양IC가 가까워지자, 어제 예약했던 교동의 한정식 집 ‘열두 대문’에 전화를 한다. 일성 손씨의 종갓집에서 운영하는 한정식 집이다. 식사는 25,000원에서 60,000원까지 다양하고, 예약을 해야 식사를 할 수 있는 전통 한정식집이다. 우리는 점심이라 25,000원짜리를 예약했더니, 상 차리는 시간을 감안하여 도착 20분 전 쯤에 연락을 달라고 한다. 똑똑이의 도움으로 12시 40분 경 열두 대문 집에 도착한다.

열두 대문

밀양 교동 손씨 고가 안내문

 

고색창연한 고가의 대문을 들어선다. 아주머니 한분이 뛰어나와 우리들을 夢孟軒 이란 현판이 걸린 사랑채로 안내를 한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은 우리들뿐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에 조촐한 상을 차려 놓았다. 화사한 자수평풍이 예사롭지 않고, 밥그릇, 수저, 술잔은 놋 제품이다. 이태리의 피자, 일본의 스시, 인도의 카레와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김치, 불고기, 심지어는 떡볶이까지 거론되지만, 아름다운 식기와 컬러풀한 음식, 향기로운 냄새가 담긴 밥상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지적한 한 외국인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상차림이다.

사랑채, 몽맹헌

상차림

 

백세주를 반주로, 식사를 한다. 음식이 정갈하고 간이 잘 맞는다. 음식 수발하는 아주머니가 여러 차례 더운 음식을 날라 온다. 마지막으로 추어탕이 국으로, 그리고 밥알이 동동 뜬 식혜가 나온다. 양도 적은 게 아니다. 오랜만에 포식을 한 기분이다. 아주머니에게 25,000원 짜리 상도 이렇게 훌륭한데, 60,000원짜리 상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 접대 손님으로 일본 사람들이 오는데 그들은 한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꺼려하여, 각상을 차려주고, 전복 등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추가하여 서브하고 60,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집 구경을 한다. 건너편 방의 자수병풍이 눈길을 끌고, 이집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이수성 총리의 사진이 보인다. 아주머니는 보통 하루에 4~5팀의 예약 손님을 받는다고 알려준다. 진짜 대문이 12개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다. 99칸 집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102칸에, 대문이 12개인데, 지금은 9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당당하고 기품이 있는 집이지만 많이 쇠락한 상태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61호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잘 보존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건넌방의 또 다른 자수병풍

안채로 통하는 문

안채 - 마나님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신다고 한다.

가묘(家廟) - 손씨 집안의 사당

 

열두 대문을 나와 그 뒤에 있는 밀양 향교를 잠시 둘러본다. 밀양향교는 경주, 진주향교와 함께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큰 향교로 건물배치가 다른 곳과 달리 특이한데, 정문인 풍화루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온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어 향교 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가까이에 있는 영남루로 향한다.

풍화루

안내문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 위에 위치한 영남루는 경관이 수려하고, 특이한 내부구조로 볼거리가 다양하여,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루로 일컬어진다. 내부에는 당대명필과 대 문장가들의 시문현판들이 즐비하다. 그중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영남루를 중수한 이인재부사의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인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의 솜씨라고 하니 놀랍다. (펌)

영남루에서 내려다 본 밀양강

영남루 1

영남루 2

영남루 현판

영남제일루 현판

 

영남루 인근에는 단군을 모신 천진궁, 아랑사당, 돌에 자연으로 꽃무늬가 새겨진 석화가 함께 있고, 부근에 박시춘의 옛집, 밀양시립박물관, 무봉사 등이 모여 있어 이 부근이 밀양의 최고 관광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시각이 3시에 가깝다. 박시춘의 옛집을 잠시 둘러보고, 조금 떨어져 있는 표충비와 사명대사생가의 방문도 생략한 채, 서둘러 만어사로 향한다.

만덕문과 천진궁

안내판

밀양 아리랑 노래비

박시춘의 옛집

안내문

 

만어사 가는 길은 이제 완전히 똑똑이에게 맡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도를 보면 만어사는 영남루 건너편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똑똑이는 고속도로에 오르더니 사리원을 지나 북상하여 만어사로 접근한다.  똑독하기는 커녕, 고속도로만 좋아하는 놈인가보다. 돌아갈 때는 똑똑이를 무시하고, 지도따라 가기로한다.

 

만어사에는 가락국시대 때 수로왕이 창건했다는 전설이 있다. 양산에 있는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성질이 사악한 독룡 한 마리와 다섯 나찰녀가 사귀면서 온갖 행패를 부리자, 가락국 수로왕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불법의 오계를 받게 하였는데, 이때 동해의 수많은 물고기와 용들이 불법의 감화를 받아 이 산중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만어사 기슭의 수많은 경석들은 당시 물고기 만 마리가 돌로 변한 것이라고 하고, 미륵전 안에 모셔진 어산불영경석은 용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펌)

만어사 어산불영경석

만어사 어산불영 안내

만어사에서 바라본 조망, 만어사 운해로 유명하다

보물 제466호인 삼층석탑과 대웅전

미륵전

미륵전 안에 모셔진 경석

운해와 경석 안내판

 

약 30분 동안 만어사를 둘러본 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사양하고, 왔던 길과는 반대편 산길을 택해 단장면 쪽으로 내려서서, 얼음골과 호박소로 향한다. 가파른 비포장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도로변의 잡목가지가 차창에 부딪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라 마주 올라오는 차라도 있으면 큰일이겠다. 이런 길을 한동안 달려 고도가 낮아지자, 이번에는 논 사이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시멘트도로를 만나게 된다. 어림짐작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두 어 차례 인근주민에게 길을 물어 겨우 24번국도로 들어서니, 어느덧 5시가 가까운 시각이다. 거리는 짧을지 모르지만 시간은 삼랑진으로 돌 때와 비슷하게 걸린 셈이다. 비로소 똑독이가 우회한 이유를 알겠다.

 

요즈음은 5시 반이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 시각에 얼음골과 호박소 두 곳을 모두 둘러보는 것은 무리다. 얼음골은 내일 아침, 간월재 가는 길에 둘러보기로 하고 호박소로 향한다. 5시가 조금 넘어 호박소 입구에 접근하니,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도로를 막아 놓았다. 할 수 없이, 도로 변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을 통과하여, 매점에서 물어보니, 5시에 주차장 입구를 닫는다는 이야기이다.

 

호박소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른다. 왼쪽 대나무 숲 쪽에 백운산, 가지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백련암을 지나, 이윽고 밀양 팔경중의 하나인 호박소에 이른다.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과 어우러진 풍광이 과연 절경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가까이 있는 구룡폭포와 오천평반석의 구경은 포기한 채, 차로 돌아온다.

호박소 입구

호박소

시례호박소 안내판

 

해질 무렵, 마음이 가장 고요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표충사 부근에 숙소를 정하기 위해 전화를 건다. 서울에서 오늘밤의 숙박지 후보로 두 곳을 정하고 내려왔다. 한 곳은 “물안개 피는 마을”이고 다른 한 곳은 “알프스 관광펜션”이다. 물안개 피는 마을은 침대방과 거실로 된 15평짜리 독채가 100,000원, 알프스 관광펜션은 20평짜리 온돌방이 3인 기준 110,000원에, 추가인원 1인당 10,000씩 추가하고 VAT가 별도라고 한다. 침대방과 거실이 구분 된 곳은 방에서 잘 사람과 거실에서 잘 사람을 나누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큰 온돌방 하나가 좋겠는데, 가격이 문제다.

 

앞프스 관광펜션에 먼저 전화를 걸어, 단도직입적으로 흥정을 한다. ‘5사람이 지금 밀양에 내려와 있다. 10만원에 20평짜리 온돌방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대답은 OK다. 이제 숙소도 정했으니 오늘 일정은 대강 끝난 셈이다. 서울에서 미리 조사를 해온 ‘행랑채’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를 찾아 들면 된다. 길가에서 얼음골 사과를 파는 곳이 여러 곳 보인다. 그 중 한 곳에서 차를 세우고 사과 맛을 본다. 시원한 것이 맛이 좋다. 만 원짜리 한 무더기를 사니, 커다란 사과가 9개나 된다. 이윽고 다시 24번국도로 들어서서, 밀양을 향해 달린다. 6시 경에, 표충사로 들어가는 1077번 도로 입구, 오른쪽에 있는 행랑채에 도착한다.

행랑채

 

행랑채는 찻집과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고 들었는데 와서 보니 펜션까지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솜씨를 보면 펜션도 남다른 특색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행랑채의 메뉴는 심플하다. 흑미 비빔밥과 수제비, 그리고 고추전과 감자전이 전부다. 옛 시골집을 연상케 하는 투박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수제비 5인분, 고추전과 맥주 2병을 주문한다. 고추전이 나온다. 납작한 도기 접시에 담긴 고추전이 연꽃처럼 예쁘다. 얇게 부친 고추전이 입안에서 바삭거리고, 맵싸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고추전 맛에 반해, 감자전은 어떤 맛일까? 감자전을 추가한다.

 

식사로 흑미밥과 수제비가 나온다. 흑미밥은 생각보다 보드랍고, 수제비는 시원하다. 식사 중에 추가로 주문한 감자전이 서브된다. 빈대떡처럼 도톰하게 부쳤다. 한입 베어 무니 입안에 감자향이 가득하다. 흑미밥과 수제비를 모두 비우니 만복이 된다. 감자전은 세 덩어리 중 한 개만 나누어 맛을 보고 나머지는 싸 달라고 부탁을 한다. 흑미 비빕밥 7,000원, 수제비 6,000원, 고추전, 감자전은 각각 10,000원이다. 특색 있는 음식으로 포식을 하고 우리가 지불한 식대는 맥주 값을 포함하여 모두 56,000원이다. 계산을 하면서 카운터에 있는 명함을 집어보니, 뒷면에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있다.

 

나의 명상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날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나는 오늘이 일생을 통해서 가장 좋은날이다.

 

누구의 말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행랑채 주인의 말인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똑똑이의 안내로 7시가 조금 넘어 숙소에 도착한다. 단장천 가에 새로 지은 펜션이다. 늦게 연락을 해서인지, 관리실의 아주머니가 안내한 숙소에 들어가 보니, 청소상태가 불량하고, 옷걸이 등 있어야할 비품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자, 아주머니는 옆채의 비품을 가져다주며, 학생들이 머물다 가면 남아 나는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

독특한 천장구조

알프스 관광펜션의 핀란드식 건물

우리가 묵은 핀란드 E 동

 

우리일행이 여자 셋에, 남자가 둘, 이렇게 다섯인데, 화장실이 한 개라 여러모로 불편하여, 아주머니의 배려로 남자들은 비어있는 옆채의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한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따듯한 온돌에 누워 한일축구중계방송을 본다. 등은 따듯한데, 원통형으로 생긴 높은 천장의 통풍구로 온기가 빠지는지, 실내공기는 덥지가 않고 쾌적하다. 연속방송극을 보느라고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소등을 한다.


 

(201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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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 근처에서 본 볼레오름과 지나온 길

 

2010년 9월 8일(수)

새벽 6시경 일어나 창문을 여니 바람이 시원하고,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조망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라산 등반에는 지장이 없는 날씨다. 한라산 등반 코스는 5개가 있다. 이중에 정상인 백록담에 오를 수 있는 코스는 성판악 코스(9.6Km)와 관음사 코스(8.7Km) 2곳뿐이고, 영실 코스(3.7Km)와 어리목 코스(4.7Km)는 윗세오름까지만 산행이 가능하다. 휴식년제가 끝나 최근 산행이 가능해진 돈네코 코스는 남벽분기점(7Km)을 거쳐 윗세오름(2.1Km)까지 오를 수가 있다.

 

이처럼 여러 코스가 있지만 집사람과 함께하는 산행이라 제일 짧은 영실코스를 택하여, 영실 휴게소(1,280m)에서 윗세오름(1,700m)까지 올랐다, 다시 영실휴게소로 내려오기로 한다. 영실코스는 거리는 짧지만 고도차가 400m 이상이라,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쉽지만은 않은 코스라 집사람이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어제 사온 빵과 음료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 경, 펜션을 떠나 영실휴게소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안개가 자욱한 1115번 도로를 서쪽으로 외롭게 달린다. 오가는 차량이 하나도 없다. 1139번 도로로 들어서서 북쪽으로 진로를 바꾸자 비로소 지나가는 차량들이 한두 대 보인다. 이윽고 영실탐방로 입구에 이르러 오른쪽의 국립공원 영실지소로 향한다.

 

안개에 싸인 아스팔트도로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굽어지며 차즘 고도를 높인다. 차창 밖의 분위기를 보고 집사람이 은근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엉뚱하게 동유럽을 여행할 때, 슬로베니아의 타트라(Tatry-2,663m)산맥 새벽 산책길이 생각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비슷하고, 그 때도 집사람이 잔뜩 얼어있던 생각이 난다.

 

영실지소에 도착하니 차단막이 내려져있고, 직원이 주차료 1,800원을 내라고 한다. 경로라고 하니, 그냥 가시라며, 차단막을 열어준다. 제주도에서 주차료를 받는 주차장은 이곳이 유일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는 어딜 가던 주차장의 무료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형차량은 이곳에서 주차를 하고, 승용차는 2.4Km 떨어진 영실휴게소까지 계속 오를 수가 있다.

 

이게 웬일인가? 휴게소로 오르는 도중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가시거리가 멀어진다. “천사가 나들이를 하면 햇님이 웃는다.” 더니 우리 집사람이 천사인 모양이다. 영실 휴게소에 도착하자 햇님이 웃는 얼굴을 보인다. 차를 그늘진 곳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배낭도 두고 물통과 스틱만 꺼낸다. 스틱을 집사람 키에 맞추어 길이를 조절한다.

영실휴게소 도착

 

등산로 입구에 오백장군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고, 오백장군의 전설이 담겨져 있다. 아들 500명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아들들이 사냥을 나간 동안,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오면 먹이려고 커다란 가마솥에 죽을 끓이느라 힘겹게 죽을 젓다가 그만 실수로 가마솥으로 빠진다. 사냥에서 돌아온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맛있게 죽을 먹고 나서 솥바닥에 있는 뼈를 보고 그제 서야 사실을 알고, 슬픔과 회한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렸다는 슬픈 전설이다. 고등학교 때 한라산에 오를 때에는 이곳 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정상에 올랐다 서귀포로 하산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백장군과 전설

 

8시 20분, 영실 돌 표지와 통제소를 지나 등산로로 들어서니 안내판이 보인다. “어서오세요, 영실 자연학습 탐방로입니다.” 한글과 영문이 병기된 안내판이다. 이제 한라산 영실코스는 등산이 아닌 자연학습장으로, 보다 많은 일반인들에게 친밀해진 모양이다. 이른 아침이라 탐방객들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계단 길을 산책하듯 천천히 오른다. 한동안 지난 후 집사람에게 스틱을 쥐는 법, 1m 정도 앞에 스틱을 꽂고 체중을 이동한 후 가볍게 밀며 소폭으로 두어 걸음 걷고, 다음에는 반대편 스틱을 같은 요령으로 사용하라고 시범을 보이며 가르친다. 하지만 스틱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스틱을 너무 꽉 쥐다보니 손아귀가 아프다고 불평이고, 지그재그로 스틱을 찍다보니, 발이 걸려 오히려 보행이 불편하다고 푸념이다. 할 수없이 한쪽만 사용해보라니까. 비로소 체중이동, 가볍게 미는 요령이 생기는 모양이다. 하여 오를 때는 줄곧 스틱 한 개만을 사용한다.

영실 돌표지

영실 자연학습 탐방로 안내판

잘 정비된 등산로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을 15분 정도 진행하여 첫 번째 등산 안내판을 만난다. 다른 국립공원의 등산안내판과는 달리 칼라로 일목요연하게 표기한 멋진 안내판이다. 탐방로가 점차 가팔라지며 오른쪽으로 오백장군과 병풍바위의 장대한 모습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광활한 한라산의 서쪽 사면이 숨 막히게 아름답게 펼쳐진다. 집사람이 연신 탄성을 발한다.

첫 번째 만난 안내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병풍바위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활한 초원

 

9시 11분, 영실기암과 비폭포를 설명한 안내판이 있는 전망대에 선다. 병풍바위가 더욱 가깝게 보이고, 영실기암의 아름다운 모습이 전모를 드러낸다. 한라산에서 이런 날씨를 만나다니, 과연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이다. 9시 13분, 해발 1,500m를 알리는 돌 표지를 지나고, 4분 후에는 ‘신선들이 사는 병풍바위’ 안내판 앞에서 그로테스크한 병풍바위를 가까이에서 본다.

영실기암과 비폭포 안내판

영실기암 (하산 시 순광으로 찍은 사진)

해발 1,500m 돌 표지

병풍바위 안내판

가까이 본 병풍바위

 

9시 21분, 영실 기점 1,5Km 지점을 거쳐, 9시 29분, ‘신비스런 볼레오름’ 안내판을 지나 전망대에서 볼레오름과 세오름, 그리고 지나온 길을 카메라에 담는다. 시간이 지나며 젊은 탐방객들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들을 제치고 앞서 나간다. 9시 34분, 해발 1,600m를 알리는 돌 표지를 지나고, 잘 정비된 계단 길을 오른다. 주능선이 코앞에 다가오자 왼쪽으로 고사목이 모습을 보이고, 오른쪽 골짜기에는 공룡모습의 기암이 눈길을 끈다.

볼레오름 안내판

병풍바위와 볼레오름 그리고 세오름(하산하며 찍은 사진)

주능선이 가까운 계단길

왼쪽의 고사목

오른쪽의 기암

 

한 무리의 탐방객들이 마주 내려온다. 나이 드신 노인들도 여럿 보인다. 새벽에 어리목을 출발하여 윗세오름에 오르고, 영실로 하산하는 길이라며, 우리들에게 오르막이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내라고 격려한다. 9시 43분, 영실기점 2.1km지점을 통과하고, 이어 주능선에 오르기 직전, 뒤돌아 초원처럼 부드러운 능선과 볼레오름 아래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본다. 가히 선경이다. 집사람이 골짜기를 가리키며 “저건, 까마 귀 같네.”라고 소리친다. 주위 분위기에 한껏 매료된 모양이다.

병풍바위 너머 초원처럼 부드러운 능선, 그리고 볼레오름과 구름

집사람이 까마귀바위라고 즉석에서 명명한 기암

 

10시 주능선으로 들어선다. 관목과 고사목 사이로 돌길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길이다. 길가에 마가목이 보인다. 저걸 따다가 술을 담그면 기가 막힐 터인데...욕심이 나지만 참는다. 산행을 할 때는 산에 버리는 것도 없어야하고 산에서 가져오는 것도 없어야한다. 10여분 쯤 걸어 관목지대를 벗어나자, 시야가 트이며, 구름에 싸인 한라산 정상부가 모습을 보이더니, 잠시 후에는 구름도 걷어 젖히고, 온몸을 드러낸 채, 우리부부를 환영한다. 오! 축복 받은 날이여!

주능선 진입

마가목

첫인사

한라산이 전신을 드러낸 채 우리부부를 환영한다.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편안한 마루길이다. 오른쪽에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반차용 모노레일이 줄곧 따라온다. 10시 24분, 노루샘에서 한라산 물로 목을 축이고, 10시 31분, 윗세오름에 오른다. 보통사람들이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을 우리들은 약 2시간 10분 만에 오른 것이다. 정상석과 고사목을 이용한 표지목이 보인다. 고도 1,700m! 집사람이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이정표를 보더니, 자신이 생겼는지, 어리목으로 하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묻는다. 나이 지긋한 관리인이 다가오더니, 참 좋은 날씨에 올라 오셨다고 인사를 한다.

정상목

정상석

등산 안내판

윗세오름 주변 풍광

 

이곳에서부터 정상인 백록담까지는 휴식년제로 출입제한구역이다. 윗세오름에 있는 백록담 안내판을 읽어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윗세오름의 명물인 사발라면을 사러 휴게소로 향한다. 휴게소 주변의 널마루에 까마귀 떼가 몰려있다. 탐방객들이 주는 먹이를 따라 몰린 까마귀 떼들이다. 까마귀들이 라면도 잘 먹는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까마귀를 처음 보는 집사람이 까마귀가 참 잘생겼다고 칭찬을 해준다. 윗오름세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휴게소에서 라면을 팔 때, 하얀 비닐봉지를 함께 나누어준다.

휴게소 건물

백록담 안내문

 

40분 가까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11시 8분, 온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집사람이 어리목으로 하산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지만 어제, 오늘 걷는 것을 보면 무리다. 올라 올 때야 멋진 풍광에 매료되어 쉬면서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오라왔지만, 등산 초보자에게는 내려갈 때가 더 힘든 법이다. 하산 길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오름이 아름답다. 푸른 초원에 야생화가 가득하다. 문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다.


하산 길에 본 아름다운 작은 오름

노루샘을 지나며 뒤돌아 한라산 정상을 바라본다. 옅은 구름에 가린 모습이 더욱 신비롭다. 오후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탐방객들이 점차 늘어난다. 간난 아기를 업은 엄마도 지나간다. 엄마는 힘들어 오르는데, 아기는 엄마 등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올라올 때와 내려 갈 때, 햇빛의 방향이 틀려, 같은 풍경에도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다.

덜지대를 지나는 집사람

초원같이 부드럽게 펼쳐진 서쪽 능선

 

내리막 경사가 가팔라지며 예상했던 대로 집사람이 힘들어한다. 스틱의 길이를 조금 길게 하고 쌍 스틱을 사용하게 하니, 내려갈 때는 한 개보다 두 개가 낫다고 하면서도, 스틱을 지그재그로 움직이지 못하고, 목발을 집듯 두 개를 동시에 집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더 이상 잔소리를 하면 싸움이 나겠기에, 편 하다는 대로 내버려둔다.

가까이 본 병풍바위(하산 시 찍은 사진, 올라갈 때 찍은 사진과 느낌이 다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외국인 부부가 힘들게 올라오고 있다. 남자는 60대 초반 (머리가 허옇다.), 여자는 50대 후반 쯤으로 보인다. 케리쿠퍼처럼 잘생긴 건장한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미국서 왔다며, 이 섬에서 사느냐고 되묻는다. 우리도 서울서 온 관광객이라고 하니, 웃으며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한라산에서 이처럼 좋은 날씨를 만난 당신들이 행운아라고 농담을 하자,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약 1,6Km정도 남았으니, 반은 더 왔고,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오르막도 끝이니, 힘든 고비는 지났다고 격려를 해주고 작별한다.

영실기암(순광)

 

내려 올 때는 두 어 차례 물 마실 때만 잠시 멈추고, 그 외는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 집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3~4m 거리를 두고, 앞서 걷는다. 가파른 길이 다 끝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며 영실휴게소가 가깝다. 12시 48분, 영실 통제소를 지나며 산행을 마감한다. 집사람이 스틱 덕에 넘어지지도 않고 잘 내려왔다며 스틱을 건네 준다.

스틱 두 개를 목발처럼 딛고 내려오는 집사람

영실 통제소

 

화장실에 들러 간단히 세수를 하고, 휴게소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돌솥 비빕밥과 산채 비빕밥 그리고 막걸리를 주문한다. 이윽고 식사가 나오는데, 막걸리가 한 되짜리 병에 가득하다. 반주로 마시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아주머니에게 미안하다며, 반 되만 마시면 안 되겠냐고 묻자, 그럼 3잔만 마시라고 선선히 들어준다. 거의 식사가 끝날 무렵, 아까 만났던 미국인 부부가 식당으로 들어서더니, 어쩔 줄 모르고 두리번거리기만 한다. 메뉴가 전부 한글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걸음이 무척 빠르다고 말을 거니, 그때야 알아보고 무척 반긴다. 1Km정도를 남기고, 더워서 포기했다며, 땀에 젖은 앞가슴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을 찾는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물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는다고 알려준 후, 간단히 메뉴를 설명해 주지만 선택이 난감한 모양이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간단히 허기나 달래고, 호텔로 돌아가 제대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감자전을 권한다. 여자가 감자전 맛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는다. 외국인들이 제법 올 터인데, 최소한 영어로 된 메뉴판 정도는 구비해 놓으면 좋겠다. 식당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다, 휴게소 뒤를 올려다본다. 아침과는 달리 오백장군의 당당한 모습이 뚜렷하다.

뚜렷이 모습을 보이는 오백장군

 

이제 남은 시간이 5시간 반 정도다. 전망이 좋다는 1100고지 휴게소를 둘러보고, 신비의 도로를 거쳐, 삼나무 가로수가 아름답다는 1112번 도로를 달려, 산굼부리와 비자림을 구경한 후, 6시 경, 제주시내로 들어가 제주도 돼지고기로 저녁식사를 한 후, 공항으로 가기로 한다.

1100고지 휴게소

1100고지 휴게소에서 본 한라산

신비의 도로 시작점

신비의 도로 안내판

 

신비의 도로 구경을 마치고 1112번 도로로 들어서자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이제까지 좋던 날씨는 어디로 가고, 비가 세차게 내린다. 지나가는 소나기 같지도 않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안개가 자욱하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삼나무 숲길을 천천히 달린다.

1112번, 삼나무도로

울창한 삼나무 숲

 

빗속을 달려 분화구를 구경할 수 있다는 산굼부리로 향한다. 조경이 아름다운 삼굼부리에 도착하니 빗발은 많이 가늘어 졌지만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비와 우산으로 중무장을 하고 매표소로 간다. 매표소 아가씨가 지금 들어가셔야 안개 때문에 분화구를 볼 수 없는데, 그래도 들어가시겠냐고 묻는다. 우리들은 경로라고 하니, 경로 할인요금은 1인당 1,500원이라고 한다. 아가씨가 분화구를 못 보셔도 환불은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 아름답게 잘 가꾸어 놓은 경내를 지나 분화구에 이르지만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대강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얄궂게도 비가 멎었다.

영봉문

매표소

산굼부리 안내판

돌표지

입구

 

4시가 넘어 비자림에 도착한다. 이곳은 경로대우를 받아 공짜다. 안내판의 설명을 보면, 구좌읍의 비자림지대는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448,165 평방미터의 넓이에, 300년에서 800년 된 비자나무 287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생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비자나무 숲이라고 한다.

비자림 입구

비지림

비자림 산책로 1

비자림 산책로 2

 

비자림을 나와 일로 제주시를 향해 달린다. 5시 45분 경, 제주공항 부근의 흑돼지 거리에, 인터넷에 많이 소개된 돔베돈에 도착한다. 삼겹살, 목살, 향정살을 섞어 1인분 200g에 12,000원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집 사람이 맛있게 먹을 정도로 서울에서 먹는 삼겹살이나 목살과는 다르다. 된장찌개도 나와 고기 2인분에 밥 한공기로 저녁식사가 충분하고, 식대는 모두 25,000원이다. 6시 30분경 돔베돈을 나와, 15분 후 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반납한다.

 

귀가하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사람은 입술이 부르트고, 3일 동안 계속 운전을 한 나는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하루 종일 잠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2010. 9. 14.)

 

hyendella at 07/26/2011 11:41 pm comment

많은 사진과 설명을 곁들어 여행후보자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at 10/22/2010 03:38 am comment

제주도 여행하셨네요 부럽습니다 학창시절에 한 번 가본적이 있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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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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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2)

국내여행 2012. 12. 17. 15:18

 

 

 

제지기 오름에서 본 섶섬과 보목포구

 

2010년 9월 7일(화)
태풍 말러의 중심세력이 어제 자정쯤 제주도를 지났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구름이 많은 날씨지만 비는 그치고 바람도 없다. 비가 그쳤으니 오늘은 올레 8코스를 답사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펜션을 나선다. 8코스는 가장 포퓰러한 코스중의 하나로 월평마을에서 시작하여 대평포구에서 끝나는 16.3km의 구간이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올레’는 제주도 말로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뜻한다. 2007년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현재 16개의 정규코스와 5개의 비정규코스가 만들어져, 그 총길이가 341.8Km에 이른다. 2009년 올레 길을 찾은 육지 사람들의 수는 약 2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올레는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걷는 것으로 시작해서 걷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제주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제주올레다. 올레 걷기의 핵심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제주의 초원을 꼬닥꼬닥(느릿느릿) 걷는 간세(조랑말)의 걸음걸이를 배워야한다. 걷는 동안 머릿속의 복잡함은 버려지고 오직 제주의 바다, 바람, 오름 등 자연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제주올레 코스(펌)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월평마을로 찍어 놓고, 1136번 도로를 서쪽으로 달리면서 연신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을 눈여겨 찾지만,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더니, 제주월드컵경기장 부근에 이르러, 다행히 24시간 영업을 하는 ‘푸주옥 서귀포점’을 발견한다. 설렁탕 전문집이다. 아침부터 백세주 두어 잔으로 반주를 하고 설렁탕으로 식사를 하면서 올레 안내서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다가, 올레코스에도 난이도에 따라 상, 중, 하의 구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8코스는 난이도가 ‘상’인데다, 거리도 16.3Km로 긴 편이라, 집사람이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8코스는 어려운 코스에 속한다고 운을 떼자, 집사람은 쉬운 코스로 가자며, 안내서를 들여다보더니, 6코스의 난이도가 ‘하’라고 외친다. 6코스는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총 15Km의 구간이다. 이렇게 코스를 바꾸고, 식사 후 쇠소깍을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린다.

 

‘쇠소깍’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쇠’는 마을이름에서, ‘소’는 연못, ‘깍’은 제주도말로 접미사, 이들이 합쳐져서 쇠소깍이라는 묘한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쇠소깍에서 유명한 것은 밧줄을 당겨 뗏목을 운행하는 ‘테우’다. 제주에서 가장 느린 교통수단인 이 ‘테우’를 타고 주변의 비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일품이라고 한다. 우리가 쇠소깍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8시 40분경인데. 테우의 운행은 9시부터라고 한다. 집사람은 엉성한 뗏목을 보더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어지러우니 그냥 걷기나 하자고 한다. 잠시 쇠소깍 주변을 둘러보고, 올레 걷기를 시작한다.

쇠소깍, 물빛이 유난히 푸르다

테우

안내판

 

태풍의 여파로 아직도 파고 높은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 길을 천천히 걷다, 첫 번째 올레 표지기를 만난다. 이 표지기는 순방향 표지기이고, 역방향은 주홍색이라고 한다. 쉬멍놀멍 걸으라고 곳곳에 쉼터도 보이고, 올레 주변의 무성한 야자수와 정겨운 돌담이 눈길을 끈다.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아름다운 해변 길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별유천지를 거니는 느낌이다.

바다, 태풍의 여파로 아직도 파고가 높다.

올레 표지기

야자수

돌담

쉼터

쉼터에 전시된 사진 중의 하나

바닷가 용암

올레길을 걷는 집사람, 왼쪽에 보이는 섬이 섶섬이다.

 

30여분 쯤 걷다보니 저 앞에 마을이 보이고, 길가에 Two Weeks라는 카페가 보인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멋진 카페다. 차와 와인, 맥주 등을 팔고 있다. 맥주는 버드와이저, 카프로, 하이네켄 등 모두 수입 브랜드뿐이다.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젯밤 바람이 심했다며 아름다운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주인아저씨도 멋쟁이다. 젊었을 때는 한가락 했을 것 같은 노부부가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카페 Two Weeks

멋진 정원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카페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올레 간세표지기가 보이는 제지기 오름 입구다. 해발 500m의 제지기 오름을 향해 잘 정비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을 꾸벅꾸벅 쉬지 않고 오르는 집사람이 대견하다. 제지기 오름을 오르며 보는 조망이 좋다. 섶섬과 보목포구, 서귀포 시가지를 굽어보고,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한라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본다. 오름을 흔히 새끼 분화구라고 한다는데 정상에서 분화구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제지기 오름 안내판

간세 표지기

서귀포 시가지

구름을 이고 있는 한라산

정상

 

제지기 오름을 내려서서 마을길을 걷다, 슈퍼에 들러 포카리스웨트와 생수를 산다. 마을길에는 인적이 없다. 뒤돌아 본 제지기 오름이 나지막하다. 마을길에서 한동안 올레 표지기가 보이질 않자 집사람이 불안해한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올레 길에서 크게 벗어날 리가 없다. 보목로를 지나 문필로로 들어선다. 길가에 올라와 앉은 작은 어선이 이채롭다.

뒤돌아 본 제지기 오름

문필로로 들어서고

길가의 어선

 

다시 아름다운 해안 길로 나오니 올레 표지기가 눈에 뜨이고, 서귀포 시가지가 가깝게 보인다. 표지기의 안내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지독한 잡목 넝쿨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밧줄이 걸려있는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자 저지대 수렁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숲길에서 만난 간세 표지기 등에 숫자가 보인다. 6코스 8구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잡목 넝쿨길

간세 표지기

 

저지대 수렁길을 벗어나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하나 둘 씩 올레꾼들이 모습을 보인다. 젊은 청년들이다. 배낭을 메고 빠르게 걷는 젊은이들의 드러난 어깨와 팔뚝이 구릿빛이다. 한 동안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올레길이 서귀포 보목 하수처리장을 지나고, ‘검은여 토종탉 도가니’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굽어지더니, 풍광이 좋은 KAL 호텔을 지나서, 1132번 도로로 나온다.

다시 해안 길, 서귀포가 가깝게 보인다.

보목하수처리장

KAL 호텔

 

이 지점이 쇠소깍에서 약 7Km 떨어진 지점이다. 반도 못 왔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멀쩡한데, 잡목 넝쿨을 지나며 독충에 물렸는지, 집사람의 양팔과 목, 얼굴이 붉게 부어올라, 가렵다고 야단이다. 할 수 없이 올레길 걷기를 여기서 중단하고, 택시로 쇠소깍 주차장으로 되돌아온다. 도중에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요즘은 올레 길을 제대로 걷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차로 경치 좋은 거점 거점만 둘러보고, 이렇게 차량 왕래가 많은 큰길가는 걷지 않는다며, 8코스를 차타고 둘러보는 요령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 외에 ‘허’자 번호판(렌터카)의 차를 타고 온 손님들은 모두 봉으로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라며, 해안도로변의 횟집들, 특히 용두해안도로의 횟집들은 바가지로 유명하다고 귀띔을 해 준다.

 

차를 타고 다시 1132번 도로를 달려 KAL 호텔 앞으로 온다. 아까 보았던 ‘감자바위’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올레 6코스 나머지를 차를 타고라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주차장까지 갖춘 도로변의 감자바위는 전형적인 대중식당이다. 내부가 역시 깨끗하다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없다. 우리가 들어서자 방으로 안내한 주인아저씨는 에어컨부터 켠다. 벽에 걸린 메뉴를 보니, 삼겹살 200Kg 12,000원, 고등어구이도 12,000원이다. 나는 삼겹살을 먹고 싶은데, 집사람은 고등어구이를 택한다. 눈치 빠른 주인아저씨가 고등어구이에 된장찌개면 두 분 점심으로 충분할 거라고 권한다.

 

주문을 하고 아침에 먹다 남긴 백세주 병을 꺼내며 잔을 빌려달라고 청한다. 주인 아저씨가 웃으며 잔을 가져온다. 여행 중이라 많이 마시지 않고, 반주정도를 하다 보니, 술병을 차고 다니는 꼴이 됐다고 변명을 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웃는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다. 특히 갓 구운 고등어 맛이 일품이다. 아까 들었던 택시기사 양반의 말씀에는 다분히 과장 끼가 있는 모양이다.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아직까지 바가지를 씌우려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 식당들이 모두 깨끗하고,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이 있는 외에, 손님에 대한 배려도 손색이 없다. 한 때 악명 높던 제주도의 바가지요금이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이를 시정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후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주인아저씨가 젊은 여행객 두 사람을 옆자리로 안내한다. 우리가 식사하는 것을 보더니 같은 것을 주문한다. 서울서 오늘 내려온 부부라고 한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와서, 10년 후, 다시 찾아오기로 서로 약속을 했는데, 작년에는 바빠 못 오고, 1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부부다. 오늘은 스쿠터, 내일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마지막 날에는 차를 빌려 해안도로를 일주하겠다고 한다.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안주인이 식사가 맛이 있었느냐고 인사를 한다. 집사람이 고등어가 연하고 간도 딱 알맞다고 칭찬을 하자, 안주인 입이 함지박 만해지며, 고등어가 노르웨이 산이라고 알려준다. 노르웨이 산이라면 비행기로 공수를 했더라도 생물이 아닌, 냉동이겠는데, 이처럼 싱싱하다는 것이 놀랍다.

 

식사 후 첫 방문지는 소정방폭포다. 정방폭포야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소정방폭포는 가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져 어디고 척척이다. 쉽게 소정방폭포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역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다. 규모가 정방폭포에 비해 작아서 소정방폭포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정방폭포와는 달리 3단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기가 좋다. 올레 길과는 달리, 외국인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보인다.

소정방폭포

폭포주변의 관광객들

 

다음은 내비게이션에 이중섭 미술관을 찍는다. 이중섭 거주지로 이어지는 돌길이 아름답다. 화가의 거주지가 번듯하다. 관리하는 노인에게 듣기와는 달리 이중섭 화가가 부자였던 모양이라고 하자, 노인은 펄쩍 뛰며, 이중섭 가족 4명이 산 곳은 1.4평짜리 쪽방이라며, 그런 곳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이중섭 거주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돌길

이중섭 거주지

1.4평짜리 쪽방

안내문

 

미술관으로 이동한다. 번듯한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 ‘소의 말’을 듣는 화가의 모습이 보인다. 만 40세(1916~1956)로 요절한 천재화가, 하늘이 탐을 내어 일찍 데려간 모양이다.

미술관 앞의 소의 말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 헤치다.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는 역시 공짜다. 전시된 작품들은 복사본이지만 화가의 천재성과 가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순수함과 가족애가 뭉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황소에서 느껴지는 그의 강렬한 힘과 열정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제 규모는 작지만 공원까지 만들어 천재를 기리며 자랑스러워하는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천재화가 이중섭은 영원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공원 안내도

이중섭 공원의 맨드라미

 

다음으로 찾은 곳은 6코스의 종착점 외돌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잘 정비된 공원을 지나, 바닷가 절벽 위에 선다. 좌우로 용암들이 보이지만 안내판이 없어 어느 것이 외돌개인지 알 수가 없다. 외돌개 앞 문섬의 모양이 특이하다. 외돌개를 나와 기사양반이 소개한 8코스의 논짓물로 가는 길에 별내린 전망대에 잠시 들러 유현한 천제연 계곡을 굽어본 후 민물과 바닷물로 번갈라 목욕을 할 수 있다는 논짓물을 둘러보고 주상절리대로 향한다.

멋진 외돌개 공원 1

외돌개 공원 2

왼쪽 용암

오른쪽 용암

문섬

별내린 전망대에서 본 천제연 계곡

논짓물

 

주상절리대 주차장은 차량으로 가득하고 관람코스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안내판의 해설을 읽고 그 생성과정이 대강 이해가 되지만, 눈앞에 용립한 기둥모양의 용암을 직접 보니 더욱 더 자연의 신비가 오묘하게 느껴진다. 궁금한 것은 무등산의 입석대와는 어떻게 다른 건 지 모르겠다. 주상절리를 잠시 둘러보고 내국인을 위한 면세점이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로 향한다. 면세점 안을 둘러보지만, 집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주상절리대 안내판 1

안내판 2

주상절리 1

 


주상절리 2

 

나오다 보니 3층에 양식당이 있다. 모처럼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3층 식당으로 들어선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전망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나는 안심 스테이크, 집사람은 은갈치조림을 주문한다. 백세주가 있느냐고 물으니, 종업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한라산 소주가 있다고 권한다. 한라산 소주 맛이 부드럽고 순하다. 커다란 식당을 전세 내어 우리부부만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한다.

 

하지만 음식은 별로다. 호주산 안심스테이크는 역시 한우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은갈치 조림도 조림이 아니라 국이라고 한다. 식대는 VAT포함 75,000원. 손님이 없이 썰렁한 이유를 알겠다. 내일 아침 일찍이 한라산에 오르려고, 아침식사 용으로 빵집에 들러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7시경 펜션으로 돌아온다.

 

(2010. 9. 12.)

 

김언자님 at 09/13/2010 05:34 pm comment

평온한 행복을 선사하시는 하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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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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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1)

국내여행 2012. 12. 17. 15:17

 

송악산 쪽에서 본 산방산

숙소에서 바라본 새벽 무렵의 서귀포

 

2010년 9월 6일(월)
제주항공의 김포공항 발 제주행 첫 비행기 B738-800의 좌석 190석이 만석이다. 휴가철도 지났고, 태풍 말로(Malou)가 제주도로 접근 중이라는 예보가 있는데도 이러니, 성수기 때는 제주도 가는 비행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리가 공연한 이야기가 아니로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한 달 중 22일이나 지겹게 비가 내린 8월 달을 보내면서 심신이 피곤하고 따분한 느낌이다. 기분 전환 겸,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고, 화젯거리인 올레 한 두 코스를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아침 밥상머리에서 이야기를 꺼내니, 아들 녀석이 엄마도 같이 가시라고 제 어미 등을 떠민다. 이 더위에 가긴 어딜 가느냐고 반대할 줄 알았던 집사람이 의외로 잠자코 있다.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스페인 성지트레킹에 관심이 많은 집사람이라 아마도 제주 올레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들어가, (주) 제주여행나라와 접속하여, 2박 3일 제주여행 계획을 짠다. 제주도 여행이니 제주항공을 이용하기로 하고, 서귀포에 20평형 펜션을 숙박지로 정한 후, 항공료와 숙박비 400,000원을 바로 송금한다.

 

모처럼 집사람이 따라 나선다기에 하도 반가워, 서둘러 예약부터 하고나서, 구체적으로 예행계획을 점검하다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비행기 출발시간 6시 55분이 문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출발 한 시간 전에 김포공항 제주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행사로부터 휴대폰으로 받은 예약번호를 제시하고, 탑승권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예삿일이 아니다. 제주항공에 확인을 해 본다. 출발시간 20분 전에 탑승수속을 종료하니, 늦어도 30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라는 이야기다. 6시 20분경에 김포공항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너무 일러, 지하철이나 공항리무진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아들 녀석에게 데려달라고 부탁을 하여, 겨우 이 문제를 해결한다.

 

다음은 제주도의 날씨다. 9월 1일의 일기예보는 6일과 7일, 제주도에 비가 내리고, 8일은 맑다고 한다. 하늘사정이 그렇다는데 어쩌랴? 8일 하루는 맑다고 하니, 한라산 등반이나 올레 한 코스의 트레킹은 제대로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3일(금요일) 저녁의 일기예보에는 태풍 말로가 접근 중이라 제주도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날씨, 음식, 숙박, 교통 등의 요소가 두루 잘 갖추어져야하는데, 모처럼의 집사람과의 나들이가 태풍을 맞으러 가는 꼴이 됐으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20%~30%의 수수료를 물고라도 해약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행사에서 보내온 안내문을 보니, 계약취소는 정상근무시간에만 가능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취소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겠다. 비가 오면 차가 필요하겠기에 일요일 오후, 렌터카를 예약한다. 여행사 담당 여직원도 딱하게 느꼈던지, 특별히 싼 가격으로 렌터카를 알선해 준다. 6일 오전 8시부터 8일 오후 7시까지, LPG가스용 소나타의 렌트 비용이 90,000원이니, 무척 싼 가격이다.

 

비행기가 제주도로 접근하고, 기장이 현재 제주도의 날씨를 알려준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심하고, 비가 내린다고 한다. 공항 짐 찾는 곳에서 짐 나오기를 기다린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 비행기가 제주항공 외에도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4편이나 더 있어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이 북적인다.

제주공항의 베기지 클레임

 

공항주차장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렌터카를 인수한다. 차 외부와 내부가 모두 깨끗하다. 10여 년 전의 냄새 나던 렌터카와는 딴판이다. 비수기라 내비게이션도 공짜다. 보험료 30,000원은 별도다. 보험료가 다소 비싼 느낌이라 보험은 생략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LPG충전소에서 가스를 가득 채우고 (50,000원) 아침식사 할 수 있는 곳을 물으니 근처의 ‘황가네 제주 뚝배기’ 집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황가네 제주뚝배기

 

대중음식점인데도 식당이 깨끗하고 음식 맛도 괜찮다. 집사람은 순두부, 나는 오분작 뚝배기(소)를 주문한다. 오분작은 전복새끼라고도 부르는데 자연산이라고 한다. 식사를 하면서 공항에서 얻은 대형광관지도를 들여다보며 우중에 가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식당에서 가까운 곳에 사라봉이 있다. 제주 시가지와 바다를 굽어 볼 수 있는 명소라고 한다. 지금은 비가 와서 조망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가까운 곳이니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에게 안내를 맡긴다.

황가네 제주뚝배기 메뉴

 

사라봉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바람도 자고, 비도 보슬비 수준이다. 잘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오른다. 도중에 화장실이 있어 둘러본다. 깨끗하다. 정상 가까이에는 완만한 널마루를 깔아 노약자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해 놓았다. 정상에 정상석과 팔각정이 보인다. 잠시 팔각정에 올라가 보지만 바람만 드세고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안개 속에 떠 있는 바다와 제주 시가지 일부를 굽어본다.

잘 정비된 한적한 계단 길을 집사람이 오른다.

정상부근의 아름다운 널마루길

정상석

안개 속 조망

 

공원을 둘러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아보지만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하여 멀지 않은 제주민속박물관으로 향한다.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대우를 받아 우리는 공짜로 입장한다. 박물관 본관 건물 앞 너른 뜰에 전시된 여러 형태의 용암들이 돌 많은 제주도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박물관 입구

수돗가

다양한 형태의 용암전시

새끼줄 용암

박물관 본관 건물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종유석 동굴 모형을 지나면 화산의 분출형태 등 제주도의 화산분출 과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한다. 이어 제주도의 숲과 그 속에서 사는 동식물들의 모형을 규모 있게 전시해 놓았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민속박물관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우중인데도 나이 드신 일본인 관광객들이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어 제주도 사람들의 옛 생활모습을 소개하는 민속관, 그리고 바다 생물관을 둘러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멋진 박물관이다.

지하동굴 모형길

바닥에장식한 화산분출 유형

풍어제

해녀

20여 미터나 되는 부라이드고래 뼈

대왕 쥐가오리

 

박물관을 나와 제주의 상징인 용두암으로 향한다. 용두암을 둘러보고 해안도로변의 횟집에서 점심식사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용두암 주변도 전에 비해 잘 정돈된 모습이다. 중국관광객들이 빗속을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용두암 1

용두암 2

용두암 안내판

 

용두암을 떠나 인터넷에 많이 알려진 ‘바닷풍경 횟집’을 찾아간다. 태풍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해안으로 몰려와 부서지는 포말이 하얗게 솟구친다. 이윽고 용두암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닷풍경 횟집에 도착한다. 주차장도 없고 식당에 손님도 없어 보이자, 집사람이 고개를 젓는다.

 

차를 돌려 다시 용두암 쪽으로 향하다, 주차장이 있는 ‘어부횟집’을 보고 주차장으로 들어서지만. 비바람이 하도 심해, 차에서 내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가 그만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식당 안주인이 커다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온다.

어부횟집

 

2층으로 올라가자 종업원이 수건을 들고 쫓아 나온다. 주인, 종업원, 모두가 재치 있어 좋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안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먹거리를 고른다. 안주인은 오늘아침 이른 비행기들은 도착했지만, 늦은 비행기들은 제주공항의 기상상태가 나빠 결행을 했다는 이야기, 태풍의 중심부가 오늘밤 제주도를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는 회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회를 맛보고 싶고, 오래 전에 우도에서 흑돔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고 하니까. 흑돔 1Kg을 주문하라고 권한다. 가격은 140,000원, 2~3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인데, 비도 오니. 천천히 많이 드시란다. 모처럼 집사람과 나온 길이다. 점심 회 스페셜이 1인당 25,000원이지만, 큰 맘 먹고 흑돔 1Kg과 백세주를 주문한다.

 

서비스 음식들이 나온다. 은갈치회, 돔껍질, 조개탕, 대하, 연어, 전복, 멍게 등 한 상이 그득하다. 메인인 흑돔 말고, 나온 것만 먹어도 충분하겠다. 안주인은 돔껍질이 손이 많이 가는 귀한 것이니 맛보라고 권하면서, 여러 가지를 맛보시라고 준비를 했다고 한다. 바깥주인은 김 위에 연어를 놓고, 그 위에 차가운 소스를 얹은 것을 녹기 전에 들어보시라고 권한다. 모두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맛이 있다. 이윽고 흑돔이 나온다. 생각보다 양이 많다. 여전히 고소하고 쫄깃쫄깃 한 흑돔을 둘이서 열심히 먹는데도 2/3정도 먹고 나니 끽이다.

 

흑돔에 이어 이번에는 우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내온다. 황금빛으로 노랗게 튀긴 우럭은 모양만으로도 작품이다. 맛을 보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집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배가 불러 매운탕은 사양한다. 횟집 음식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이집은 안주인의 성의와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마워서 블로그에 소개를 하겠다고 주인부부의 사진을 찍는다. 식대는 10% 할인해서 134,000원이다. 4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니 결코 비싼 것도 아니다.

어부횟집 주인부부

 

횟집을 나서자 바람도 자고, 빗발도 많이 가늘어졌다. 남은 시간에 방림원에 들러 야생화를 구경하고 송악산과 산방산을 둘러보기로 한다. 방림원도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우대로 공짜로 구경하고 차 대접까지 받는다. 이하 발림원은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림원이 있는 예술인 마을 입구의 조각

방림원 안내판

입구

목백일홍과 고목

빠삐용란

부추꽃

김구다로

만데넬라

백화동산

폭포와 연못

방림원에 개구리가 많은 이유

 

방림원을 나와 송악산으로 향한다.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산방산이 아름답다. 이윽고 송악산에 도착하지만, 정상은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몸살을 앓는 통에 출입을 금지시켰다, 분화구인 정상에서면 마라도까지 보인다는 송악산,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 여러 곳에 일본군들이 굴을 파 놓아 유명해진 송악산... 정상은 오르지 못하고주변의 산책로를 걸으며 멋진 풍광을 즐긴다. 이어 산방산을 지나 7시경, 예약한 서귀포 동흥동에 있는 모리화 펜션에 도착한다.

도로변에서 본 산방산

송악산 분화구 안내판과 경고문

정상출입이 금지된 송악산

송악산 주변의 전망대

바닷속의 기암


 

가까이 본 산방산

멀리 보이는 하멜 표류선

 

노부부가 운영하는 모리화 펜션 301호실, 3층 전망이 좋은 방이다. 호텔 못지않게 깔끔하게 꾸며놓은 펜션이다. 하루 객실료 80,000원. 샤워를 하고 중국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월요일 저녁인데도 방마다 모임 손님들이 가득하다. 인근에서는 제법 알려진 중국식당인 모양이다. 종업원이 아닌, 안주인이 테이블로 안내를 하더니 주문을 받는다. 점심을 늦게 먹어 간단히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고맙게도, 잡탕밥 1인분을 두 그릇으로 나눠주겠다고 한다. 하여 잡탕밥 1인분과 백세주를 주문한다. 헌데 안주인이 샘플용 백세주 한 병을 들고 와서 많이 드실 것 같지 않아 샘플용으로 서비스한다며, 나이 드신 두 분이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모리화 펜션과 중국식당

침실에서 내다본 서귀포시내 야경

 

내가 처음 제주도를 찾은 것은 1958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다. 같은 반 친구와 둘이서, 목포에서 500톤급 철선을 타고 해질녘에 출발하여 새벽에 제주항에 입항한다. 용두암, 삼성혈 등 제주시내 명소를 두루 구경하고, 영실을 거쳐 백록담에 오르려고, 버스로 협재로 이동한다. 비양도가 마주 보이는 해수욕장, 그때 바닷물색이 그렇게 다양하게 곱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떤 곳은 쪽빛, 어떤 곳은 연두 빛, 어떤 곳은 네이비 불루,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디맑은 바다. 그 뿐인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조개가 밟힌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청년이 정신없이 바다 속에서 놀고 있는 낮선 학생들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제주도 구경도 하고 한라산을 오르려고 왔다고 하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오늘 밤은 어디서 잘 거냐고 재차 묻는다. 조금 있다 마을로 들어가 민박할 곳을 찾겠다고 하니,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우리보다 5~6세 정도 많은 큰 형님 벌의 청년이다. 전형적인 제주도 민가인 그분 댁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돼지가 있는 화장실도 체험한다. 형님은 다음날 오백나한을 거쳐 백록담에 오르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점심 때 먹으라고 빵을 한보따리 싸준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하러 자주 제주도를 찾았고, 어떤 때는 가족들을 동반하고 내려와, 강의가 없는 오후에, 함께 렌터카로 제주도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던 곳, 하지만 은퇴 후 오랫동안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모처럼 태풍과 함께 방문하게 된 제주도다. 제주도 하면 항상 비양도 앞바다의 바닷물, 협재에서의 하룻밤 민박, 그리고 정 많던 형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아름다운 풍광과 따듯한 인심은 변함이 없고, 이제는 세계 속의 관광지로 성큼 자란 제주도의 새로운 모습을, 서귀포의 야경을 통해, 하염없이 바라본다.


 

(201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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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 수목원 수생식물원과 민병갈 기념관

신두사구

 

대학동기모임인 삼목회에서 일 년에 두 차례는 부부동반으로 모인다. 올해 첫 부부동반 모임은 김광현 사장 부인의 제안에 따라, 4월 22일에 천리포수목원을 찾기로 하고, 한 달 전에 전화로 참석여부를 확인하니 반응이 매우 좋다. 손자들을 돌봐 주어야하는 김석근 부부를 제외한 여섯 팀이 기꺼이 참석하겠고 한다. 바쁜 중에도 김광현 사장이 승합차를 예약하는 등 모처럼의 나들이 준비를 한다.

 

출발 2일 전에 정문모 회원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4월 21일, 22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이니 나들이 일자를 일주일 쯤 연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다. 그렇지 않아도, 참석하겠던 두 팀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겠다는 연락을 받은 터에, 날씨 때문에 일자를 변경하면, 모임 자체가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크겠다.

 

태안군 소원면의 시간별 기상예보를 검색한다. 당일 9시 이후에는 비가 갠다는 예보다. 혹시 모르니, 우산을 지참하라고 연락을 하고, 예정대로 강행키로 한다. 혹시 비가 오더라도 많은 비는 아닐 터이니, 오랜만에 부부끼리 한 우산을 받고 아름다운 숲 속을 걷는 것도 멋이 아니겠는가?

 

9시경, 분당선 정자역 3번 출구에서 김 사장이 몰고 올 승합차를 기다린다. 12인 승, 24시간 렌트 비용이 117,000원이라고 한다.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어 쌀쌀하다. 15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 주위를 둘러본다. 고층건물 사이의 공간을 아름답게 꾸며, 사무실을 드나드는 젊은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이윽고 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손명환 교수 부부와 만나기로 한 서산 휴게소로 향한다.

도심 속의 소공원

렌트한 12인승 승합차, 깨끗하고 8인이 탐승하니 널널하고 편하다.

 

김광현 사장은 은퇴 후 묘목을 조경수로 키워 파는 ‘나무를 키우는 사람’이다. 운전하기를 무척 좋아하고, 웬만해서는 80Km의 경제속도를 깨지 않는 원칙주의자 이기도 하다. 회원들의 모임을 위해 1종 면허를 취득하고, 혼자서 하루 종일 운전대를 놓지 않는다.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선다. 그렇지 않아도 차량이 붐비는 수원, 반월 구간에서 대형 노면청소차 3대가 차선 하나를 막고 있으니, 정체가 심하다. 오션파크 휴게소에 잠시 머문다. 휴게소 주변의 벚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휴게소에서 본 서해대교

 

손 교수와 만나기로 한 32번 국도변의 서산휴게소는 웨딩 홀로 바뀌었다. 손 교수 차를 도로변 공터에 주차하고, 일행 여덟 명을 태운 승합차는 점심식사를 하러 안흥항으로 향한다. 김 사장이 재직 시 회사 새우 양식장일로 자주 찾았던 곳이라 한다. 그 때 단골로 다니던 안흥 하우스를 찾아가니, 마침 관공버스를 타고 온 단체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안흥항

안흥 하우스

 

안흥 하우스를 지나 몇 집내려 서서 모범식당 간판이 붙은 천일회관으로 들어선다. 일대의 식당들은 가격협정이 되어 모두 같은 가격이다. 특별한 단골이 없으면, 그래도 모범식당 간판이 걸린 집을 찾는 것이 선택의 요령이라 하겠다. 꽃게찜 1Kg에 50,000원, 광어는 1Kg에 70,000원이다., 각각 2Kg씩을 시키고, 우럭 매운탕에 밥 4공기로 8사람이 1시간 40분 동안 포식을 한다.

천일회관

 

천리포 수목원으로 향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안흥성 누각을 카메라에 담는다. 수목원으로 향하는 603번 지방도로 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가로수인 벚나무에는 만개한 벚꽃이 화사하고, 주변의 야산은 온통 진달래로 불타는데, 주택가에는 개나리, 목련 등 봄꽃이 지천이다. 종전에는 시차를 두고 피 던 꽃들이 어찌된 일인지 이곳에서는 동시상연이다.

안흥성을 지나고

 

이윽고 수목원에 도착한다. 주차장은 대형관광버스, 승용차, 승합차들로 붐빈다. 햇빛이 간간이 비치는 날씨에 바람도 생각보다는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입장료는 대인 7,000원, 경로우대 5,000원이다. 8명 입장료 40,000원을 카드로 지불하고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들어선다. 미국인 Carl Ferris Miller씨(한국명 민병갈)가 조성한 수목원이다. 192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출생한 그는 1945년 미 해군 통역장교로 한국에 입국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된장찌개와 김치를 즐겼다는 그는 아마도 전생에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나 보다. 1962년 천리포 해안에 2ha의 토지를 매입하여 수목원을 조성한다.

설립자 민병갈

“나는 죽어서 개구리가 될거야.”

개구리 조각 앞에 선 김광현, 정문모씨 부인

수생식물원

 

“천리포 수목원은 귀화한 한국인 고 민병갈 님께서 40년 세월을 바쳐 일궈낸 ‘세계에서 아름다운 수목원’입니다. 저는 우리 천리포 수목원이 이처럼 국제수목학회에 의해 세계에서 12번째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수목원’ 으로 지정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이보다는 여러분들이 붙여주신 ‘서해안의 푸른 보석’이라는 평가에 더욱 큰 자긍심을 느낍니다.

 

우리 천리포 수목원은 현재 400여 품종 1,600여 그루에 달하는 목련류를 비롯해서 총 1만 3천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곳 천리포에 수목원 터를 처음 마련하던 1962년만 해도 이곳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모래언덕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곳에 한 개인의 힘만으로 불과 40년 만에 이렇게 훌륭한 수목원을 가꿔 낸 것입니다. (이상 홈 페이지에 실린 수목원 이사장의 인사말씀 중에서)“

목련, ‘불칸’(Magnola 'Bulcan')

목련, ‘아테나’

목련, ‘스위트 하트’

목련, ‘밀키웨이’

불칸

목련 1

목련 2

개울 목련

수양버들과 늘어진 목련

목련,‘노랑새’

노랑새 목련 안내판

 

우리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목련뿐이 아니다. 다양한 모양의 청순한 수선화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수선화 1

수선화 2

수선화 3

수선화 4

수선화 5

겹 수선화

 

수생식물원, 정원 같은 탐방로, 숲속의 산책길, 송림 숲을 걸으며 낮 익은 꽃, 낮선 나무들을 보고 그 다양함에 감탄한다.

수생식물원

정원 같은 탐방로

산책로

송림길

편백나무

Cupressuse arizonica/'Pyramidalis'/측백나무과

동백

흰 진달래

칠엽수

찰엽수 안내판

배롱나무

로즈 퀸 외

보랏빛 항연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보고, 해안전망대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꽃향기를 맡으며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초가집도 있고,

아름다운 해송집

소사나무집

낭새섬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약 1시간 30분 정도 수목원을 둘러보고, 태안 8경중의 하나인 신두사구로 향한다. 약 50분이 걸려 도착한 신두리 해수욕장는 몽산포 해수욕장 못지않게 넓고 길게 펼쳐 있고, 해수욕장 뒤가 사구다. 억새가 무성한 사구는 이곳에서 서식하는 특수한 동식물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예쁜 모양의 ‘하늘바다와 땅 사이의 리조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넓은 해수욕장에 환성을 지르던 일행은 사구모양에 실망하여 바로 차에 오른다.

신두리 해수욕장

신두사구

신두사구 입구의 안내판

태안해안 신두사구

모래사장의 경고판

 

일행은 개심사로 향한다. 하지만 서산이 가까워졌을 때의 시각이 6시 5분 전이다. 날씨가 흐려 곧 어둠이 깔릴 듯 한 기세다. 아쉽지만 개심사 방문을 포기하자는 의견에 따라, 손 교수 차를 주차했던 곳으로 직행하여, 집이 대전인 손 교수 부부와 작별을 하고 서울로 향한다.

 

 

(201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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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청 그림엽서)

쿰부히말 트레킹을 함께 했던 장영동 씨의 집이 문산이다. 과묵한 중년으로 다감(多感)한 애주가(愛酒家)다. 군사분계선 근처 계곡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어죽을 쑤면 맛이 기차다며, 문산을 방문하면 맛을 보이겠다고, 일행을 초대한다.

 

트레킹을 다녀와서 한 달이 후딱 지나고 해가 바뀐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히말라야에 가서도 밟아 보지 못했던 눈을 서울 근교의 산에서 함께 밟아보기로 한다. 어느 산엘 가야하나? 북한산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산은 어딘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노고산(495.7m)이다. 이런 연유로 지난 1월 12일, 노고산 산행을 할 때, 수지, 용인에는 연락을 하면서도 문산은 멀다고 느껴 생략을 한다. 산행 중에 우연히 김연수 씨가 장영동 씨에게 전화를 걸자, 장영동씨는자기를 뺐다고 무척 섭섭해 하며, 다 저녁에 뒤풀이 자리인 연신내로 솔방울 술병을 들고 찾아와서 따진다. “형님들! 수지, 용인이 멀어요? 문산이 멀어요?”

노고산에서 본 북한산

연신내 뒤풀이 자리의 장영동 씨

 

이러니 다음 모임의 장소는 어쩔 수 없이 문산이다. 장영동 씨는 골짜기들이 얼어붙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고, 따라서 어죽 대접은 못하지만, 첫날 반나절의 문산 관광과  다음날 감악산 산행 안내를 자청하며, 대원들을 소집하라고 강권한다.

문산역

 

알고 보니 문산까지는 지하철로 쉽게 갈 수가 있는 곳이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역에서 다섯 정거장을 더 가면 대곡역이다. 대곡역에서 내려, 문산 가는 지하철로 바꿔단다. 15분~20분 간격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면, 30분 이내에 종점인 문산역에 도착한다. 서울의 중심인 시청을 기점으로 볼 때, 과연 문산(약 32Km)이 수지나 용인보다 가깝다는 장영동 씨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오늘 모임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네 사람을 제외한 여덟 사람이 모인다. 멀리 광주에서 정성원 씨가 올라오고, 근무 중인 최맹규 씨는 퇴근하고, 저녁에 합류한다. 문산에 도착하여 출구로 나오지만, 안내를 하겠다던 장영동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곧 나갈 터이니 역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커다랗게 잘 지은 역사를 빠져 나오자, 저 앞에서 장영동 씨가 터덜터덜 마중을 나온다.

주는 정, 오는 정

막걸리/천상병

우표 한 장의 행복/오탁번

큰 따님

 

군인도시쯤으로 생각했던 문산이 크고 번화하다. 우선 우뚝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눈길을 끈다. 인구가 얼마쯤 되느냐고 묻는다. 상주인구가 약 5만이라고 한다. 역에서 3분 거리에 장영동 씨네 식당이 있다.(031-954-5652) 상호가 ‘주는 정 오는 정’이다. 정을 줄 터이니, 오라는 소리다. 식당에서 밥을 주는 게 아니라 정을 주겠단다. 재미있는 상호다. 그 뿐인가 ?

 

식당안으로 들어선다. 크지 않은 식당이다. 오른쪽 벽에 쿰부히말 트레킹 때 찍은 커다란 사진 5~6매가 걸려있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풍광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왼쪽 벽에는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와 오탁번 시인의 “우표 한 장의 행복”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가난한 시인들이 한 잔 술의 즐거움과 고마움을 노래한 시들이다. 잔잔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더 말하지 않아도 식당의 분위기가 짐작이 된다.

 

포천 막걸리에, 아침에 장영동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생 두부, 삶은 제육과 순두부탕 그리고 묵은지 등 소박한 식단이지만 맛은 일품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영동 씨 부인의 손맛이다. 한 시간이 넘게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장영동 씨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문산 관광에 나선다. 큰 따님이 집에를 가야겠다며 동승한다.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가다, 백 밀러에 비친 따님의 모습이 고와 슬쩍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흔들려 윤곽은 흐리지만 빼어난 미인이다.

통일의 관문

얼어붙은 임진강

도라산역 방향을 알리는 교통표지판

도라전망대 방향을 알리는 교통표지판

 

따님을 집 앞에 내려주고, 봉고차는 문산읍을 벗어나 개성, 평양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달린다. 저 앞 “통일의 관문”에서 군인들이 출입증을 확인하고 차량을 통과시킨다. 장영동 씨는 이 길을 자주 다니는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출입증을 슬쩍 보여주고는 멈추지도 않고 그냥 통과한다. 이어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다.

도라전망대 1

도라전망대 2

도라전망대 3

도라전망대 4

 

도라전망대에 도착한다. 평일에 추운 날씨라, 일반인들은 보이지 않는데, 마침 외국시찰단이 방문 중이다. 이들이 브리핑을 받는 모양이다.  내부출입이 통제된다. 전망대에서 군인의 설명을 들으며 북쪽을 바라본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군사분계선, 개성공단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심안(心眼)에 영상을 담아온다. 군사분계선 너머 인공기가 분계선 남쪽의 태극기보다 높게 걸려있다. 별 것에 다 신경을 쓰는 북한의 실상이 딱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사진, 바닥의 노란 선이 포토라인이다. 그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DMZ 전시관

한반도 통일을 상징하는 조형물

전시관 앞의 이글루

관광안내소

땅굴과 주변을 감시하는 모니터

 

전망대를 떠나 제 3땅굴로 향한다. 너른 광장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전시관, 오른쪽은 관광안내소이다. 전시관은 외관만 둘러보고 제 3땅굴이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한다. 카메라를 보관하고, 헬멧을 쓴 후, 땅굴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를 뚫어 만든 굴이다, 높이 2m, 폭 2m 라고 한다. 낮은 곳에서는 헬멧이 천장에 부딪친다. 약 25분 동안 땅굴을 둘러보고, 안내소 매점에서 북한산 소주, 맥주와 들쑥술을 구입한다.

제 3 땅굴의 구조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에 위치한 제 3땅굴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투한 땅굴로,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이며, 남방 한계선까지의 거리는 435m다. 1시간당 군인이동은 완전무장 시 1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하고, 비무장 시에는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문산까지의 거리는 12km다.

1978년 10월 17일 발견된 이 땅굴은 그 위치가 서울에서 불과 44km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제 2 땅굴과 비슷하지만, 서울로 침투하는 루트로는 제 1. 2 땅굴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Km, 통일촌 민가에서 3.5Km 떨어져 있고,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상 “펌”)

남북출입사무소

 

이어 남북출입사무소에 들러 개성공단 운영에 관한 브리핑을 듣는다. 장영동 씨와 함께 쿰부히말 트레킹을 한 사람들이라고 VIP대접을 한다.

도라산역

유라시아 횡단철도

VIP 통로에서 기념촬영

 

다음 코스는 도라산역이다. 장영동 씨의 친구 분인 부 역장님이 뛰어 나와 일행을 역장실로 안내한다. 차를 내오고, 사진을 보여주며, 문산까지의 지하철 연장, 도라산 역사의 신축 등의 경위와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이어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시베리아철도(TSR), 만주철도(TMR), 몽고철도(TMGR)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소련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북한에 부설한 철도에 관해 걱정을 한다. 시베리아 철도는 꼭 한 번 타보고 싶다. 한 달 정도의 여정으로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유럽에서 비행기로 귀국하면 좋겠다. 지금도 7박 8일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까지의 왕복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부 역장님은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다닌다는 지하통로를 통해 우리들을 플렛폼으로 안내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야로슬라블 역과 노보시비르스크 역

바이칼 호수와 울란바토르를 떠나는 몽골열차

 

철도청에서도 시베리아 철도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시베리아철도 주변의 사진들을 여러 매 걸어 놓았다.

플랫폼에서 본 도라산 역사

안내를 해 주신 부 역장님

광주가 고향인 정성원 씨와 DJ

평양 205Km / 서울 56Km(철도청 그림엽서)

열차시간표

 

역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역사를 빠져 나오며, 열차시간표를 카메라에 담는다. 문산역에서 도라산역 까지 하루에 6번 열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문산역에서의 출발 시간은 11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15분. 열차가 도착하면, 전망대, 땅굴 등을 순회하는 버스가 기다린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관광회사를 통하지 않고, 가족끼리, 친구끼리의 개별방문이 가능하다. 되도록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와서 보고, 분단의 현실의 직접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화석정

화석정의 유래

현판

화석정 시

기단의 해설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석정을 둘러본다.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 이이는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화석정에 기름칠을 하게하여, 북으로 쫓기던 선조가 임진강을 건널 때 불을 질러, 몽진의 길을 밝혀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화석정이다. 박정희 대통령 글씨의 현판, 율곡의 화석정 시가 눈길을 끈다.

맹 지점장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식당으로 돌아와 장뇌 산삼으로 담근 산삼 주를 마신다. 부드럽고 맛이 순하다. 부인 말로는 좀처럼 내 놓지 않는 술이라고 한다. 저녁때가 되어 도라산역 부 역장님이 북한산 소주를 들고 찾아오시고, 맹 지점장이 부인과 함께 모습을 나타낸다. 오늘은 마침 두 분의 23주년 결혼기념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퇴근하자마자 만사를 젖혀 놓고 달려왔다고 한다. 추장호 씨의 제안으로, 김연수 씨가 달려 나가 축하 케익을 사온다.


 

(2010. 2. 4.)

* 사진 찾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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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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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 건너에서 바라본 포항제철소


2006년 1월19일(목).

아침에 잠을 깨니, 심신이 상쾌하다. 어제는 내가 먼저 잠이 든 덕에 김 사장의 코 고는 소리에 시달리지 않고 숙면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축구는 졌지만, 김 사장도 잘 잤다고 한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두 사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의 어시장을 구경하러 나선다.


아침의 어시장에는 활기가 넘친다. 공판장 바닥에 문어가 벌겋게 널려 꿈틀거린다. 경매가 진행된다. 경매가 끝난 생선들은 낙찰자 이름을 붙여 상자에 담아 모아진다. 처음 보는 어시장 경매다. 박진감이 넘친다. 경매를 구경하고, 시장으로 나온다. 불을 환하게 밝힌 시장은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에서, 통째로 삶은 문어를 꺼내, 머리를 제거하고, 다리만 가지런히 보기 좋게 진열한다.

죽산 어시장 문어 경매

손님을 기다리는 삶은 문어 다리


얼추 시장을 둘러 본 후, 상인들에게 물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선객들 몇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다. 모두가 시장상인들이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메뉴는 단일 메뉴로, 3,000원 짜리 백반이다. 뜨거운 숭늉부터 내 준다. 서울에서는 먹기 어려운 뜨거운 숭늉을 훌훌 불어 가며 마신다. 옆 자리에 놓인 신문을 보니, 역시 조선일보다. 시장 상인들이 보는 신문이 이처럼 대부분이 조선일보라면 가히 민심의 향배를 짐작할 수 있겠다.


푸짐한 밥에, 된장찌개, 묵은 김치, 고등어조림 등 다양한 반찬으로 풍성한 아침식사를 즐긴다. 옆 자리에 우리 나이또래의 두툼하게 차려 입는 할머니가 혼자 자리를 잡고, 숭늉을 마시며 식사를 기다린다. 표정이 잔잔하고, 곱게 늙은 할머니다. 눈이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시장이 꽤 크네요." 라고 말을 건넨다. 할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멀리서 오셨수?" 라고 묻는다. "예, 서울에서 구경 왔어요. 아침에 문어를 경매하던데요? " 라고 아는 체를 하니, 협동조합이 두 군데가 있어, 경매가 두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알려준다.


자녀들은 장성하고, 틀림없이 손자, 손녀들도 있으련만, 아직도 새벽 장을 떠나지 못하고, 시장 통 식당에서 혼자 아침식사를 하는 할머니,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낸 세대이지만, 의외로 표정이 잔잔하고, 담담한 얼굴이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지만, 실례가 될 듯싶어 참는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우리들을 보고, "구경 잘 하고, 편히 돌아들 가시오." 라고 먼저 인사를 한다. 여유 있는 죽도시장의 할머니이다.


모텔로 돌아와 뒷마무리를 하고, 짐을 챙겨, 트럭에 오른다. 오늘 첫 일정은 2003년 7월에 개관한 포스코 역사관 견학이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지만,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를 우중충한 날씨다. 형상강을 건너, 포스코 본사 건물 옆에 자리 잡은 역사관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이라 역사관 건물로 들어서도 인적이 없다. 너무 빨리 왔나? 시계를 보니 9시 15분이다.

포스코 역사관

역사관 건립 취지문


사방을 둘러본다. 사무실 팻말이 붙은 방이 보여, 노크를 하고 들어서서, "박물관 견학 왔는데요." 라고 용건을 말하자, 사무직원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현관 옆 엘리베이터로 우리를 안내를 한다. 우리 둘은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직원은 2층이라며, 우리들을 향해 허리를 굽힌다.


2층에는 접수대가 있고, 여직원 2명이 대기하고 있다. 접수대 뒤에 있는 여직원이 예약 여부를 묻는다. 예약은 못 하고, 포항 방문 중에 잠시 들렸다고, 미안한 얼굴을 하자. 어디서 왔고, 이름은 무엇이냐고 다시 묻더니, 대답한 내용을 PC에 입력한다.


여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관을 둘러본다. 2층과 3층에 전시실이 배치돼 있다. 여직원은 조용한 목소리로 전시물을 하나씩, 하나씩 설명한다. 군더더기가 없고, 과장되지도 않은 차분한 설명이다. 질문을 하면,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간결하게 대답한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크지 않은 키에 날씬한 몸매다. 총명하고, 잘 훈련 받은 프로급 안내원이다. 왼쪽 가슴의 명찰을 본다. 최국향(崔菊香), 풍기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포철직원의 부인이라고 한다. 이하 최 안내원의 설명과 전시자료에서 본 것들을 종합하여 정리한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5차례에 걸쳐, 종합제철소를 건립하려고 시도하지만,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모두 실패한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시찰하고, 이 때 코포스(Coppers)의 포이 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제철소 건설지원을 약속한다. 이에 따라, 1966년12월,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의 8개 제철회사가 KISA (Korea International Steel Asociates - 대한국제제철차관단)를 결성하고, 1967년 10월, 정부는 KISA와 종합제철 건설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다.

 

KISA와 기본협정 체결


1967년 포항이 종합제철소 부지로 선정이 되고, 박 대통령은 당시 대한중석 사장인 박태준 씨를 불러, "임자, 임자가 제철소 일을 맡아 해보라고.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임자 밖에 없어."라며 박태준 씨에게 제철소 건설을 마낀다.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가 창립되고, 박태준 씨가 사장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세계은행(IBRD)은 한국경제 분석보고서에서 브라질, 멕시코, 터키, 베네수엘라 등이 모두 실패한 종합제철소 공장건립은 한국에도 힘에 부치는 사업이니 포기하라고 권고하고, 이어 1969년 4월, USAID (미국국제개발처)도 포항제철 건설계획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자, KISA의 반응이 냉담해진다.

이성지의 예언시

포항의 어제와 오늘


박태준 사장은 KISA를 설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귀로에 하와이에서 이른바, "하와이 구상"을 한다. 대일청구권자금을 포항제철 건립자금으로 전용하자는 구상이다. 1966년에 합의된 대일청구권자금은 농업과 경공업 개발자금으로 그 용도가 제한 된 자금이다. 이를 제철소 건립을 위한 자금으로 전용하기 위해서는 일본 제철업계의 협조가 필요했다.


귀국 후 박태준 회장은 일본을 방문, 제철업계 인사와 정계 인사들을 두루 설득하여, 1969년 12월 한일기본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로서 포항종합제철소 건립을 위한 자금과 기술이 확보되고, 1970년 4월 1일 오후 3시, 역사적인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을 갖는다.

기공식 모형 - 최 안내원과 김 사장


포항에 조성하는 제철단지는 약 300만 평에 이른다. 1968년 5월, 부지 조성 현장에 연 면적 약 60평의 건설 본부건물이 세워진다. 모래바람만 황량한 벌판에서, 건설을 지휘하는 이 본부건물이, 마치 사막의 야전사령부처럼 보인다 해서, 이 건설 본부를 롬멜 하우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역사관에 복원된 롬멜 하우스


1970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포항 현장을 방문한다. 롬멜 하우스 상황실에서 허허벌판인 제철소 부지를 바라보던 박 대통령은 "이거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가 되기는 되는 건가?" 라고 혼잣말로 걱정했다고 한다. 이 후 박 대통령은 13차례나 포항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포항제철과 관련된 일은 박태준 사장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소신껏 처리하라.”는 이른 바 "종이 마패"에 친필 서명을 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종이마패 - 박 대통령의 재량권 부여 문서, 왼쪽 위에 박 대통령 싸인


박태준 사장은 소장으로 예편한 육사 출신이다.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우향우 하여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 열연공장 공기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두 달 동안이나 하루 700m²를 타설한, "밤낮 없는 돌관 작업", 그리고 "빨간 헬멧의 특공대" 등 공사현장은 흡사 전장 터와 같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1973년 6월 9일, 아침 7시 30분, 용광로 출선구가 "뻥" 하고, 뚫리며 황금빛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감격적인 순간이다.

우향우 정신


 

 

붉은 헬멧



역사관에는 이 1기로를 1/10로 축소한 모형로가 있다. 안내원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가, 첫 출선 장면을 그린, 2분 10초짜리 영상물을 본다. 실로 감격적인 장면이다. 콧마루가 시큰하고, 눈물이 쏟아 질 것 같다. 안내원은 조용한 목소리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라며 고개를 돌린다.


로(爐)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돈이 얼마나 들까? 3기로를 완성하는데 소요된 건설비는 약6,300억 원 이였다고 한다. 그 해 우리나라 년 간 예산규모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한다. 1981년 2월, 4기로가 준공되어, 85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가 완성된다. 세계 11위의 대단위 제철소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협동의 상징, 세 손잡이 삽


이어서 포스코는 다시 광양에서 제2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포항제철소가 모래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광양제철소는 바다위에 세워진 제철소다. 바다를 매립하여 약 450만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300톤 규모의 "꿈의 제철소"를 건립한 것이다.

광양만의 어제와 오늘


1968년 포항에서 시작한 제철소 건설 사업은 1992년 10월, 광양 4기설비가 완성됨에 따라, 포스코의 조강생산 능력은 2,100톤에 달하여, 세계 3위의 철강기업으로 부상하는 기적을 이룬다.


3층의 창의관, 창암관, 세계 속의 포스코를 둘러보고, 2층 영상관으로 내려와 김해에서 왔다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사운드 오브 포스코"를 관람한다. 이로서 약 1시간 20분에 걸친, 감동적인 포스코 역사관 견학이 끝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역사관 - 짧은 기간에 세계 제일의 종합제철소를 만들기까지의 건설 역군들의 꿈과 땀과 힘을 느낄 수 있는 실로 감동적인 역사관이다. 안내원도 프로급이다. 포스코 역사관 홈 페이지 "http://museum.co.kr"을 당장 열어 보시고, 포항에 가게 되면, 열일 젖히고, 꼭 포스코 역사관을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역사관 문을 나서니 빗방울이 후둑거린다. 트럭을 타고, 조금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포스코 홍보관 앞에서, 흰 연기를 뿜어내는 제철공장을 바라본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여의도의 1.5배, 포항제철공장이 2.7배, 광양제철공장은 무려 4,5배에 이른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사명감을 갖고, 이런 단일 공장을 세운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한국경제의 기적을 만들어 낸 거인들이다.

홍보관에서 본 포항제철소


빗속의 형산강 변을 달린다. 빗발이 좀 잠잠해진다. 차에서 내려 강둑을 걸으며, 하얀 연기를 토해 내는 거대한 공장을 넘겨다본다. 역사관에서 받았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형산강, 연기에 쌓인 공장, 환경감시탑, 그리고 형산교 등을 망연히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트럭에 오른다. 트럭은 해안도로를 달려, 대게가 기다리고 있는 영덕을 향한다. 바람이 이나 보다 파도가 거칠어진다.

환경감시탑


삼사해상공원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이다. 영덕대게 타운이 있는 강구리 항으로 들어서서, 매스콤에서 좋은 집이라고 소개하는 봉성영덕대게 집을 찾아 들어선다. 1시가 가까운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 은 텅 비었다. 시즌도 아닌데다 비까지 내려 더욱 더 손님이 없는 모양이다.

영덕 대게 타운이 있는 강구리 항


주인이 다가오더니, 수족관에서 드실 게를 고르라고 한다. 김 사장은 서비스로 내 놓은 땅콩만 까먹으면서 꿈적도 않을 기세다. 할 수 없이, 주인을 따라 수족관으로 가서, 대게를 구경한다. 한 마리에 10,000원에서 180,000원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이렇게 선택 범위가 넓어지니, 고르기가 쉽지 않다. 김 사장에게 나와 보라고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알아서 골라 오라는 것이다.


주인에게 먹을 만한걸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주인은 영덕 대게는 큰 놈일수록 맛이 좋다 면서, 한 마리에 150,000원 하는 큰놈 중에서, 다리가 1~2개 잘린 상이용사를 골라, 50,000원에 줄 터이니, 2 마리 정도면, 영덕 대게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김 사장은 이 마트에서 러시아 산 털게를 Kg 당 25,000원 주고 사 먹었다고 하니, 아마 점심에 100,000원어치 대개를 먹자하면 펄쩍 뛸게 틀림없다. 일이 난처하게 됐다.

수족관의 영덕 게 - 한 마리에 18만을 호가하는 놈도 있다


주인에게 Kg 에는 얼마냐고 묻는다. 주인은 영덕 대게는 Kg으로는 팔지를 않고, 수입 게만 Kg으로 판다면서, 맨 아래 수족관에 둥둥 떠 있는 놈들을 가리킨다. 그러는 사이에 불륜(不倫)으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와 수족관을 기웃거린다. 눈치 빠른 주인이 더 이상 나를 상대할 리가 없다.


자리로 돌아와 김 사장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김 사장 왈, "맛만 보고가자." 그렇다면,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다. 다시 수족관으로 나간다. 점포 뒤로 150,000원짜리 게를 보러 갔던, 불륜들도 다시 나와, 앞의 수족관을 기웃거린다. 좋은 영덕 대게를 고르는 법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다리가 가늘고, 몸집이 큰 놈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놈을 고르는 것이 요령이라고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수족관에서 움직이는 게들을 본다. 적당한 놈이 눈에 띄어, "저거, 얼마요?" 라고 물으니, 35,000원이라고 한다. "그 놈으로 합시다."라고 하니, 주인은 "한 마리 만요?" 하며 딱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래요, 오늘은 영덕대게 맛만 봅니다."라고 대꾸해준다. 주인은 내가 고른 놈 뒤를 느릿느릿 따라가는 엉뚱한 놈을 꺼내, 아줌마에 획 던지며, "이거, 삶아요." 라고 한다. "아니, 그 놈이 아닌데...."라고 하고 싶지만, 말할 기회를 놓치고, 할 일 없이 자리로 돌아온다.


백세주를 주문하니, 삶은 소라와 함께 가져다준다. 서비스로 주는 소라 맛이 아주 좋다. 불륜들도 게를 골랐는지 식당으로 들어와서, 저 만치에 자리를 잡는다. 이윽고 아주머니가 커다란 쟁반에 담긴 삶은 게를 가져 다 놓는다. 등껍질이 붉은 놈이 그럴 듯해 보인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게 등짝을 뜯어내고, 다리를 떼어 낸 후, 몸통을 가위로 자른다.


역시 본 고장에서 먹는 게 맛이 훌륭하다. 불륜들의 테이블에도 삶은 게가 운반된다. 쟁반이 두 개다. 얼마짜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마리씩 주문한 모양이다. 남자가 소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면, 여자는 잽싸게, 발라 논 게살을 남자 입에 넣어준다. 저런 호강 한번 못해보고 고지식하게 세월만 보낸 두 늙은이는 게 껍데기 국물에 비빈, 한 공기 밥을, 둘이 나누어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식당 문을 나선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어느새 진눈개비로 변하여 도로가 하얗다. 날씨가 험해져서 걱정이 되지만, 이제 남은 것은 하회마을을 잠시 둘러보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만약 계속 진눈개비가 내린다면, 하회마을 관광을 포기하고 서울로 바로 올라가면 된다. 하지만 34번 국도로 들어서니, 이 곳 날씨는 말짱하다. 34번 국도에는 차량 통행이 뜸하고, 의외로 곳곳에 도로 양쪽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있다. 임하호가 가까워지자, 임하호로 흘러들어가는 계류 위로 높다랗게 걸린 다리를 지나면서, 굽어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안동 시내를 통과하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하여, 하회 마을에는 5시가 다 되어 도착한다. 주차비가 2,000원, 입장료가 2,000원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오른쪽에 있다. 기념관 안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생일상을 받는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다. 해지기 전에 강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마을로 들어서지 않고, 바로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받는 엘리자베스 여왕

강변길


마을 삼면을 낙동강이 감싸고 흐른다. 너른 백사장, 무성한 송림, 강 건너편의 단애, 그리고 지는 해를 받으며 펼쳐진 옛 가옥들, 완연히 별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연화부수의 지형이라고 한다.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을 부감할 수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 유감이다.

부용대

부용대로 건너는 나루터

강변 송림


김 사장은 몇 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하회마을에 와 봤다고 한다. 오늘은 나를 위해 복습을 하는 셈이다. 김 사장 설명에 의하면, 독특한 지형에 들어선 이 마을은 대대로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전통가옥들, 그리고 마을에 갖고 있는 유물들을 보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이 마을 전체를 주요 민속자료 제 122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남쪽에서 마을로 진입한다. 마을중심부에는 양반들이 살았던 대규모의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고, 그 주변을 에워싸듯이 평민들의 초가집들이 배치되어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토담, 주렁주렁 탈바가지가 걸린 하회탈 전시관, 민박을 받는다는 낮은 초가집 등, 모두가 지나간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들을 이곳에서 본다. 김 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유명한 입암고택(양진당)과 충효당을 중점적으로 둘러본다. 이런 큰 고택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에서 도배까지 해 주며 관리를 해주기 때문이란다.

남쪽에서 본 마을

초가 매점

하회탈 전시관

좁은 골목길

정겨운 토담길


양진당은 솟을 대문이 높직하고, 커다란 규모의 사랑채에는 입암고택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서둘러 충효당을 둘러보고, 징비록을 비롯한 서애 류성룡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된 영모각으로 들어선다. 미증유의 왜란을 겪은 재상, 유성룡은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하고, 이반된 민심 수습에 진력했던 명재상이다. 그분의 유물들을 이 정도로 모으고, 보전하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입암고택 솟을대문

임압고택 사랑채

충효당

영모각

유성룡 초상


영모각을 나서니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마을 입구로 나오면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인, 고풍스런 분위기의 작은 식당이다. 두 개의 테이불에서 선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간 고등어 정식과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 그리고 동동주 반 되를 주문한다. 할머니가 시중을 들고, 할아버지가 거든다. 며느리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식당 내부


동동주도 싱거운 편이고, 음식도 별 특징이 없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할아버지는 서애 유성룡의 13대 손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술 한 잔을 권해도, 술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이제 더 찾아올 손님도 없다고 보았는지, 할머니만 남겨 놓고, 횡 하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선다. 사방이 조용하고 인적이 없다. 너른 주차장에 홀로 서 있는 트럭을 움직여 서울로 출발한다.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됐다. 사흘 전, 7시에 서울을 떠났으니, 꽉 찬 2박 3일간의 여행을 한 셈이다. 다음부터는 여행의 패턴이 조금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많은 것을 보려고 하기 보다는, 유서 깊은 곳을 골라, 여유를 갖고, 차분히 돌아보고 싶은 기분이다.

 


(200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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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수중암


2006년 1월 18일(수).

아침 6시 핸드 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방이 너무 덥고, 김 사장 코고는 소리에 밤새껏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제 하루 종일 트럭에 시달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잔 때문인지, 머릿속이 휘휘 내 둘리는 게, 영~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김 사장은 알람 소리에도 상관없이 여전히 코를 골고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용무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딜럭스한 화장실이다. 벽면과 바닥의 타일이 고급스럽다. 커다란 샤워 부스 안에는 월풀(Whirl Pool) 시설의 욕조까지 있고, 목욕물을 연화(軟化)시키는 장치도 달려있다. 어제 밤-아니, 오늘 새벽이지, 나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발만 씻고 말았지만, 김 사장은 30분 넘게 월풀에서 첨벙거리다 나오면서 엄지손가락을 내 보였던 시설이다.


김 사장이 화장실이 급해 잠이 깬 모양이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독촉이 성화같다. 화장실을 나선다. 너른 방에는 50인치 TV, 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PC가 놓여 있고, TV 한 채널에서는 24시간 헬리콥터 영화를 상연한다는 안내 쪽지가 붙어 있다. 커피나 차를 타 마실 수 있게 돼 있고, 화장대에는 고급 스킨로션과 크림로션, 그리고 콘돔까지 비치 돼 있다. 특실이라 하지만 이런 모텔은 처음이다. 60,000원도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든다.


울산시민들의 평균 연령은 35.2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고 한다. 숙박 객을 기피하는 모텔들, 화이브 스타(Five Stars) 호텔 뺨치는, 모텔 특실의 시설들 - 역시 젊음이 좋다는 생각이 들고, 울산의 경기가 호황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현대 자동차가 조업을 단축할 때는 울산시 전역에 방송을 한다고 한다. 혹시 외출 중인 사모님들이 있으면 빨리 귀가하라는 메시지로.... 물론 웃자고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아침을 하는 식당을 찾아 시장 통으로 들어선다. 중앙시장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 상인에게 물어, 식당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선다. 작은 식당에 손님은 우리뿐이다. 동태찌개 5,000원, 지방도시의 시장에 있는 식당이라, 생태거니 기대를 하고 주문을 한다. 주인아저씨가 보던 신문을 내 민다. 조선일보다.


얼추 끓여, 식탁 위 가스 불에 얹어 놓은 동태찌개를 보니, 원양에서 잡아 온 냉동동태다. 혼자서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 우스워, 속으로 피식 웃는다. 음식은 간이 맞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 주며, 숭늉을 가져다주는 주인아저씨의 서비스에는 정성이 느껴진다.


오늘은 10시 30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견학할 예정이다. 모텔로 돌아가 양치질을 하고, 짐을 챙겨 나오면, 약 1시간 30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울산 12경중의 하나인 "태화강 십리대밭" 정도는 둘러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선바위, 반구대, 작괘천, 그리고 문수 체육공원 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주인아저씨에게 태화강 주변을 둘러보는 요령, 현대자동차 공장으로 가는 길을 묻고, 식당을 나선다.


울산은 생각보다 큰 도시다. 도심을 태화강(太和江)이 흐른다. 태화강은 1970~90년대의 산업화로 중병에 걸린다. 각종 공장폐수와 생활오수가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 마구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화강이 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되살아난다. 이제는 40년 동안 사라졌던 연어도 돌아오고, 강변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삼호교와 태화교 사이에 십리대밭과 삼호섬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고, 공원 주변, 대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 산책로가 만들어 졌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태화강변을 따라, 삼호교와 태화교 사이를 차로 돌아보기로 한다.

남산에서 본 태화강(십리대밭) - 퍼온 사진


처음 방문하는 큰 도시의 길 찾기가 쉽지가 않다. 태화강 십리대밭을 차로 한 바퀴 돈 후, 시내로 들어와 도로 표지판을 따르고, 길을 물어, 10시 15분 경, 현대자동차 홍보관에 도착한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단체와 개인의 공장견학을 허용한다. 12명 이하는 개인으로, 현대자동차 홈 페이지에서 공장견학을 신청할 수 있다. 매일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2회 실시한다.

현대자동차 문화회관


홍보관 직원에게 신청확인서를 보여주니, 자유롭게 홍보관을 구경하다가 10시 30분에 소강당으로 모이라고 한다. 크지 않은 홍보관에는 현대자동차의 발자취를 사진과 글로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초창기 그림에 담담하게 웃는 모습의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과 회장의 친필 글씨가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淡淡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약 150만평 부지에 단일 공장을 세운,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정 회장의 소박한 인품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정주영 회장과 그이 친필 좌우명

홍보관에 전시된 알파엔진

홍보관의 알미늄 바디카


소규모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린이과 어린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다. 안내 여직원이 나와 간단한 인사를 한 후, 홍보영화가 상영된다. 영화는 자동차 제조과정을 보여주고, 자동차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씽씽이라는 로봇이 해설을 하는, 어린들의 눈높이에 맞춘 홍보영화다.


영화가 끝나자, 안내 여직원은 방문객들을 인솔하고, 홍보관을 한 바퀴 돈 후, 아이들에게 모형 자동차를 한 대씩 선물한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제 3공장을 견학하러 출발한다. 제 3공장은 아반떼 등을 조립하는 공장이다. 조립되는 자동차들이 이동을 하고, 젊은 작업원 들은 한 곳에 서서, 동일한 작업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게오르그의 소설 25시가 생각난다. 힘든 작업을 하는 젊은이들이 대견스럽다.


공장 견학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자동차 선적장으로 이동한다. 공장 곳곳에 완성차들이 줄지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안내원이 아이들에게 자동차를 한 대 만드는데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아이들 입에서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정답은 약 24시간이라고 한다. 고급차일수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소나타를 기준으로, 약 24시간 정도가 걸리고, 그 중 약 8시간이 도장하는데 소요된다고 한다.

공장안에 늘어선 완성차


버스를 탄 채, 부두를 한 바퀴 돌고, 홍보관으로 돌아와 해산을 한다. 약 1 시간이 걸리는 견학코스다. 오늘 공장을 견학한 아이들 중에서, 꿈을 크게 갖고, 정 회장님과 같이 배포 큰 일을 저지를 놈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적을 기다리는 완성차들


두 늙은이는 다시 봉고 트럭에 올라 대왕암 송림을 구경하러, 장생포로 향한다. 105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길의 오른쪽으로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보인다. 울산은 현대의 도시다. 울산이 호경기를 누릴 수 있는 것도 현대의 공장들 덕이라 하겠다.

멀리 본 현대중공업


옛날 봉건국가 시대에는 국가에 공헌한 사람의 가문에 황제가 면죄부를 내려주어, 그 후손들이 설혹 죄를 짓더라도, 죄를 묻지 않는 제도 있었던 모양이다. 수호지에서 시진이 이에 해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대라는 하나의 기업의 힘으로 울산이 호경기를 구가하고, 온 국민이 직접, 간접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몽헌 회장을 자살로 몰아넣는 것이 오늘의 정치판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정주영 회장이 늘그막에 정치판으로 뛰어들었겠는가? 사명감이 없는 정치가는 사기꾼보다도 더 파렴치하다고 한다. 국민들이 잘못 뽑은 정치가로 인한 피해는 부메랑이 되어 즉각 국민들에게로 되돌아온다. 장생포로 향하는 흔들리는 트럭에서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고 복잡하다.


대왕암 송림은 울산광역시 동구 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 울산 12경중의 하나다. 신라 문무대왕비가 죽어서 호국용이 되어, 이곳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1만5천여 그루의 아름드리 송림과 기암괴석, 동해의 탁 트인 푸른 바다 등으로 동해안에서 해금강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절경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이라 옛날부터 동면팔경(東面八景)중 용추모우(龍湫暮雨)로 지정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공원에는 용추암, 낙화암, 탕근암 등 층암절벽과 기암들이 거센 파도와 어우러져, 제2의 해금강을 연출한다. 이곳의 울기등대는 1912년 등대를 설치하여 지금까지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상 퍼 온 글)

대왕암 송림의 산책길



울기등대


울창한 송림 숲을 유유히 걷고, 단애에 서서 푸른 동해바다를 굽어본다. 바람이 불고, 제법 싸늘한 날씨인데도 운동복을 입은 아낙네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바다로 향한 벤치에는, 방한모로 온통 머리를 감싸고, 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명상에 잠겨 있는 여인도 보인다. 평화롭고 한가한, 경치가 빼어난 바닷가 공원이다. 공원산책로 주변의 동백나무에 핀 빠알간 동백꽃들이 아름답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을 유유자적, 주위를 둘러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긴다.

대왕암 송림에서 본 울산 동구

산책로 변의 동백나무

해변의 기암괴석 1

해변의 기암괴석 2

 

해변의 기암괴석 3

공원을 나서자 1시가 가깝다. 하지만 적당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동해안 해변도로를 달리다가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포항을 향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주전동에 이르러 한적한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바닷바람을 쏘인 후, 남일 횟집을 찾아 들어선다. 식사시간이 지나 식당은 한가하다. 조용하고 깨끗한 식당이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5만원짜리 모듬회를 주문한다. 백세주로 반주를 하면서 천천히 늦은 점심을 즐긴다. 오늘 일정은 해 전에 포항에 도착하면 된다. 서두를 것이 없다.

주전동 바닷가 암석

식당에서 본 풍경


회가 신선하고, 회를 친 솜씨 또한 뛰어나다. 회와 함께 서비스되는 식사와 별미라는 미역국 맛이 일품이다. 멀리 바다로 길게 뻗은 방파제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람 그림자도 얼씬 않는다. 고요한 겨울 바다에 갈매기 떼가 한가롭다. 매운탕 까지 먹고 나니, 만복상태가 된다.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간다.


다시 트럭에 올라 북상을 계속한다. 해안선을 한 굽이 돌아서서, 검은 자갈밭으로 유명한 주전 해수욕장에 이른다. 울산 12경중에 하나다. 너른 해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한 가족이 눈에 뜨일 뿐, 검은 자갈에 부딪혀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그 뒤로 펼쳐지는 쪽빛 바다가 그림 같다.

주전 해수욕장


31번 국도를 따라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북상을 계속한다. 오른쪽으로 문무대왕 수중능이 보인다. 감은사(感恩寺) 복원지를 지나 도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언덕 위의 이견정(利見亭)에 이른다. 잠시 차를 멈추고 정자에 올라, 멀리 문무대왕암을 굽어본다. 이곳이 문무대왕암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견정

이견정에서 본 문무대왕 수중암


호미곶(虎尾串)을 찾아 929번 국도로 들어선다.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에 있어, 제일 먼저 해가 뜬다는 곳, 일찍이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고 했다고 한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强酸猛虎氣像圖) - 퍼온 사진


하지만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는 그의 저서 조선의 산악론에서 "이태리는 외형이 장화(長靴)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다.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에서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 한반도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支那)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라고 주장하고, 일제는 호미곶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한다.


고토분지로의 연약한 토끼 설에 반발한 최남선 선생은 1908년 11월에 발행된 '소년지(少年誌)' 창간호에서 "우리 대한반도는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 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 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이 땅의 생왕하면서도 무량한 원기(元氣)와 진취적이면서도 무한한 팽창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반박 한다. (이상 퍼 온 글)


이러한 호미곶에 이르니 비가 흩날리며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다. 서둘러 바닷가에 세운 상생의 손과 해맞이 공원을 카메라에 담고 등대 박물관을 관람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등대박물관이라 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짜임세가 있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나서니 벌써 어두움이 내린다. 트럭은 포항시를 향해 출발한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해맞이 공원

등대박물관의 해양수산관


영일만 너머로, 멀리 보이는 포항제철소의 불빛이 장관이다. 포항시내로 들어서니,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밀린다. 다행히 오늘은 헤매지 않고, 바로 죽도시장에 이른다. 시장 부근, 황토 찜질방 광고가 요란한 모텔 옆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서니,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숙박을 할 거냐고 묻는다. 온돌방이 있느냐고 되묻자, 있다고 한다. 일진이 좋은 날인 모양이다. 단 번에 숙소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저씨를 따라 방을 확인하고, 35,000원 달라는 숙박비를 30,000원으로 깎아 숙소를 정한다.

포항제철의 불빛


죽도시장은 갈대밭이 무성한 포항 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때는 점포수가 1,200여개에 달하는, 경북 동해안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재래시장으로 발전하였지만, 최근에는 대형 할인매장의 포항 진출로,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횟집 200여개가 밀집하여 성업 중이라, 사계절 내내, 저렴한 가격으로 동해안의 싱싱한 회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죽도 어시장


어시장을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점포를 하나 골라 안으로 들어선다. 회 15,000원, 양념 값 5,000원에 매운탕 까지 끓여준다. 과메기는 10,000원에 12마리를 준다. 듣던 대로, 엄청 싼 가격이다. 백세주를 반주로 둘이 양껏 먹어도 다 먹지를 못하고, 음식을 남겨 둔 채 일어선다.


모텔로 돌아와 나는 안 쪽 자리에서 곯아 떨어지고, 김 사장은 축구를 보겠다고 TV앞에 자리를 편다.

 


(200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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