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재의 억새, 신불산 쪽

 

2010년 10월 13일(수)
쾌적한 실내온도, 은은하게 풍기는 나무냄새 속에서 숙면을 하고 아침 6시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다. 밖으로 나오니, 공기냄새부터가 다르고, 하늘에는 아침햇살을 받아 붉게 물든 조개구름이 곱다,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방으로 돌아와 어제 남겨온 감자전에, 사과와 서울에서 가져온 간식거리를 더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7시 30분 경, 표충사로 향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본 하늘

 

재약산 아래 너른 터에 자리를 잡은 표충사는 큰 가람이다. 마침 사명대사 400주기 추모대제가 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어 더욱 뜻이 깊다. 약 1시간 동안 절 경내를 두루두루 참배한다.

일주문

재약산 표충사 안내문

표충사 안 뜰, 뒤로 재약산이 우람하다.

석등과 3층 석탑, 오른쪽으로 천황산 사자봉이 우뚝하다.

안내문

팔상전과 대광전

대광전 안의 불상

목 백일홍의 예쁜 자태

가을의 꽃 국화

서산대사 영정

우리나라 각 사찰에 봉안 된 서산대사 영정전시

안내문

 

아침산책 겸 표충사를 둘러보고 얼음골로 향한다. 식당가를 지나며 문을 연 집을 찾으나 허사다. 9시가 조금 넘어, 얼음골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안내도를 카메라에 담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매점을 지나 철 계간을 오른다. 뒤로 하늘금을 긋고 있는 천황산 줄기가 장엄하다. 길가의 낙엽을 쓸고 있던 매표소의 아저씨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모두 경노냐고 묻는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침이라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된다.

얼음골 입구의 등산안내도

철 계단 뒤로 보이는 천황산

 

길가에 보이는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고, 공사 중인 아이스벨리리조트를 지난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려고 서울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더니, 대규모 내외장공사가 한창이다. 11월 말 경에나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얼음골 결빙지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밀양사람들은 그 이유가 아이스벨리리조트 같은 대규모의 시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의 철거를 주장한다고 한다.

얼음골 안내판

공사 중인 아이스밸리리조트

 

천황사로 다가간다. 천황사는 보물 제1213호인 석불좌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에 왔을 때는 대광명전의 문이 굳게 닫혀 구경하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천황사를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 결빙소로 향한다. 완연히 냉기가 느껴진다. 처음 온 동생과 집사람이 무척 신기해한다. 잠시 길에서 벗어나 천황산에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인 너덜을 가까이보고, 철책d 둘러쳐진 결빙지에 이른다. 역시 얼음은 보이지 않는다.

천황사와 일행

밀양 천황사 석불좌상

안내문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리

가까이 본 너덜

결빙지


안내문

 

돌길을 오르느라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결빙지를 둘러보고 나더니, 네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긴 통나무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쉬고 있다. 2.9Km 떨어진 천황산은 못 오르더라도, 240m거리의 가마불 협곡을 보지 않고,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일행을 구슬려 가마불 협곡으로 향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천황산에서 흘러내리는 너덜지대가 장관이다. 힘들어 하던 일행도 이 광경을 보더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일행

불가마 협곡으로 향하다 뒤돌아본 천황산 너덜

 

불가마 협곡으로 이어지는 암릉에 전에 없던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다행이다. 우뚝 솟은 암봉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어둠침침한 깊은 협곡에 걸린 폭포에는 물이 말라, 강아지 오줌발만한 물줄기가 흐를 뿐이다.

 

불가마 협곡을 대충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매점이 문을 열었다.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생수 두 어병과 컵 두 개를 산 후 값을 지불하려하자 컵 값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어 신불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을 물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떠나려하자, 택배용으로 상자에 담던 사과 다섯 개를 건네주며 가면서 맛을 보라고 한다. 각박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 좋다. 인심은 곳간에서부터 나는 법, 똘레랑스(관용)을 자랑하던 프랑스에서 매일 과격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라!

암봉과 단풍

물 마른 폭포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인 간월재로 향한다. 이윽고 1077번 도로로 진입하여 호박소 터널을 지나, 69번 지방도로로 들어선다. 24번국도로 돌아서 접근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른 길이다. 간월재로 이어지는 임도는 동쪽의 등억리와 서쪽의 신불산 자연휴양림 양쪽에 있지만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의 서쪽의 신불산 자연휴양림 쪽에서만 가능하다. 사전에 얻은 정보대로 신불산 자연휴양림 하단 쪽으로 들어가 보니, 휴양림 관리인은 잘못 들어왔다며, 휴양림 상단 쪽에서만 간월재로 이어지는 임도로 진입할 수 있다며, 69번 지방도로로 다시 나가서 3Km 정도 떨어진 휴양림 상단으로 가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69번 지방도로로 나와 휴양림 상단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잘못을 범한다. 지도는 가지고 있지만 나침반을 가져오지 않아 방향을 착각하고 그만 반대방향으로 진행하여 대형 알바를 한 것이다. 3Km를 넘게 달렸는데도 그럴듯한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묻고,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달려, 겨우 신불산 자연휴양림 상단으로 진입한다. 돌 많은 비포장임도를 조심스럽게 오른다. 차를 많이 아끼는 매제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12시 5분,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 일방통행로를 따라 간월재로 향한다. (집에 돌아 와 실수한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 녀석이 내비게이션에 나침반 기능이 있는데 그걸 몰랐냐고 웃는다.)

간월재와 휴양림 갈림길

 

간월재가 가까워지자 비포장도로가 시멘트포장도로로 바뀌며 길이 넓어지고, 도로변에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12시 24분 경, 차량들이 가득 찬 신불재에 도착하여, 빈 공간에 겨우 차를 세우고, 억새구경에 나선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 억새도 아직 제대로 피지 않았는데, 간월재는 시장바닥처럼 인파로 붐빈다. 모처럼 찾아왔지만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간월재로 통하는 임도

임도를 가득 메운 차량들

 

목책 길을 따라 잠시 억새 사이를 거닐다, 매제와 나는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고, 여자들 셋은 간월산 중턱까지 올랐다 차로 오기로 한다. 이윽고 여자들이 돌아오자, 간월재를 뒤로하고,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 불고기로 유명한 언양으로 향한다.

간월재 표지석

간월재의 억새, 간월산 쪽

 

이번에는 똑똑이(집사람은 네비게션을 똑똑이라고 부른다.)의 도움으로 큰 고생 없이 언양IC 부근에 있는 “원조 삼거리 불고기”를 찾아 든다. 정육점을 겸하여 암소 한우의 특A 부위를 사용한다는 이 식당에서 삼거리 특미(160g, 22,000원) 3인분, 불고기(200g, 15,000원) 2인분에 백세주(6,000원)와 공기 밥(2,000원)을 주문하여 식사를 한다. 소문대로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한 시간이 넘게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식대 총액 112,000원) 3시가 넘어,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원조 삼거리 불고기

 

일본에 소노 아야꼬라는 소설가가 있다. 1931년 도꾜에서 태어난 그녀는 40세 되는 해부터 나이가 들어 추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할 사항들을 메모하기 시작하고, 그 이듬해에 계노록(戒老錄)을 출판한다.(우리나라에서는 오정순 씨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로 번역) 그 책에는 ‘자주 씻어라’,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을 써라’,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가라‘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 문득 그녀가 계노록에서 지적한, ‘새로운 기계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힐 것’이란 항목이 크게 와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모든 것을 맡기고 멍청하게 따라가는 것이 바보스럽다고 느껴, 평소 내비게이션에 관심이 없다가, 이번에 여러 차례 실수를 범하고 나니, 새로운 기계사용에 대한 거부감은 심리적 노화와 비례한다는 그녀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구입하여 차에 장착해야겠다.

 

언양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차례로 달려, 이천휴게소에서 우동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8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한다. 계획보다 약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번에 늙은이 다섯 사람의 총 여행비용은 차의 기름 값을 포함하여 700,000원 정도가 들었으니, 꽤나 알뜰한 여행을 한 셈이다.

 

(201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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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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