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2)

국내여행 2012. 12. 17. 15:18

 

 

 

제지기 오름에서 본 섶섬과 보목포구

 

2010년 9월 7일(화)
태풍 말러의 중심세력이 어제 자정쯤 제주도를 지났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구름이 많은 날씨지만 비는 그치고 바람도 없다. 비가 그쳤으니 오늘은 올레 8코스를 답사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펜션을 나선다. 8코스는 가장 포퓰러한 코스중의 하나로 월평마을에서 시작하여 대평포구에서 끝나는 16.3km의 구간이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올레’는 제주도 말로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뜻한다. 2007년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현재 16개의 정규코스와 5개의 비정규코스가 만들어져, 그 총길이가 341.8Km에 이른다. 2009년 올레 길을 찾은 육지 사람들의 수는 약 2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올레는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걷는 것으로 시작해서 걷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제주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제주올레다. 올레 걷기의 핵심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제주의 초원을 꼬닥꼬닥(느릿느릿) 걷는 간세(조랑말)의 걸음걸이를 배워야한다. 걷는 동안 머릿속의 복잡함은 버려지고 오직 제주의 바다, 바람, 오름 등 자연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제주올레 코스(펌)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월평마을로 찍어 놓고, 1136번 도로를 서쪽으로 달리면서 연신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을 눈여겨 찾지만,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더니, 제주월드컵경기장 부근에 이르러, 다행히 24시간 영업을 하는 ‘푸주옥 서귀포점’을 발견한다. 설렁탕 전문집이다. 아침부터 백세주 두어 잔으로 반주를 하고 설렁탕으로 식사를 하면서 올레 안내서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다가, 올레코스에도 난이도에 따라 상, 중, 하의 구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8코스는 난이도가 ‘상’인데다, 거리도 16.3Km로 긴 편이라, 집사람이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8코스는 어려운 코스에 속한다고 운을 떼자, 집사람은 쉬운 코스로 가자며, 안내서를 들여다보더니, 6코스의 난이도가 ‘하’라고 외친다. 6코스는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총 15Km의 구간이다. 이렇게 코스를 바꾸고, 식사 후 쇠소깍을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린다.

 

‘쇠소깍’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고 한다. ‘쇠’는 마을이름에서, ‘소’는 연못, ‘깍’은 제주도말로 접미사, 이들이 합쳐져서 쇠소깍이라는 묘한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쇠소깍에서 유명한 것은 밧줄을 당겨 뗏목을 운행하는 ‘테우’다. 제주에서 가장 느린 교통수단인 이 ‘테우’를 타고 주변의 비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일품이라고 한다. 우리가 쇠소깍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8시 40분경인데. 테우의 운행은 9시부터라고 한다. 집사람은 엉성한 뗏목을 보더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어지러우니 그냥 걷기나 하자고 한다. 잠시 쇠소깍 주변을 둘러보고, 올레 걷기를 시작한다.

쇠소깍, 물빛이 유난히 푸르다

테우

안내판

 

태풍의 여파로 아직도 파고 높은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 길을 천천히 걷다, 첫 번째 올레 표지기를 만난다. 이 표지기는 순방향 표지기이고, 역방향은 주홍색이라고 한다. 쉬멍놀멍 걸으라고 곳곳에 쉼터도 보이고, 올레 주변의 무성한 야자수와 정겨운 돌담이 눈길을 끈다.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아름다운 해변 길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별유천지를 거니는 느낌이다.

바다, 태풍의 여파로 아직도 파고가 높다.

올레 표지기

야자수

돌담

쉼터

쉼터에 전시된 사진 중의 하나

바닷가 용암

올레길을 걷는 집사람, 왼쪽에 보이는 섬이 섶섬이다.

 

30여분 쯤 걷다보니 저 앞에 마을이 보이고, 길가에 Two Weeks라는 카페가 보인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멋진 카페다. 차와 와인, 맥주 등을 팔고 있다. 맥주는 버드와이저, 카프로, 하이네켄 등 모두 수입 브랜드뿐이다.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젯밤 바람이 심했다며 아름다운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주인아저씨도 멋쟁이다. 젊었을 때는 한가락 했을 것 같은 노부부가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카페 Two Weeks

멋진 정원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카페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올레 간세표지기가 보이는 제지기 오름 입구다. 해발 500m의 제지기 오름을 향해 잘 정비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을 꾸벅꾸벅 쉬지 않고 오르는 집사람이 대견하다. 제지기 오름을 오르며 보는 조망이 좋다. 섶섬과 보목포구, 서귀포 시가지를 굽어보고,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한라산의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본다. 오름을 흔히 새끼 분화구라고 한다는데 정상에서 분화구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제지기 오름 안내판

간세 표지기

서귀포 시가지

구름을 이고 있는 한라산

정상

 

제지기 오름을 내려서서 마을길을 걷다, 슈퍼에 들러 포카리스웨트와 생수를 산다. 마을길에는 인적이 없다. 뒤돌아 본 제지기 오름이 나지막하다. 마을길에서 한동안 올레 표지기가 보이질 않자 집사람이 불안해한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올레 길에서 크게 벗어날 리가 없다. 보목로를 지나 문필로로 들어선다. 길가에 올라와 앉은 작은 어선이 이채롭다.

뒤돌아 본 제지기 오름

문필로로 들어서고

길가의 어선

 

다시 아름다운 해안 길로 나오니 올레 표지기가 눈에 뜨이고, 서귀포 시가지가 가깝게 보인다. 표지기의 안내로 숲속으로 들어선다. 지독한 잡목 넝쿨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진다. 밧줄이 걸려있는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자 저지대 수렁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숲길에서 만난 간세 표지기 등에 숫자가 보인다. 6코스 8구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잡목 넝쿨길

간세 표지기

 

저지대 수렁길을 벗어나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하나 둘 씩 올레꾼들이 모습을 보인다. 젊은 청년들이다. 배낭을 메고 빠르게 걷는 젊은이들의 드러난 어깨와 팔뚝이 구릿빛이다. 한 동안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올레길이 서귀포 보목 하수처리장을 지나고, ‘검은여 토종탉 도가니’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굽어지더니, 풍광이 좋은 KAL 호텔을 지나서, 1132번 도로로 나온다.

다시 해안 길, 서귀포가 가깝게 보인다.

보목하수처리장

KAL 호텔

 

이 지점이 쇠소깍에서 약 7Km 떨어진 지점이다. 반도 못 왔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멀쩡한데, 잡목 넝쿨을 지나며 독충에 물렸는지, 집사람의 양팔과 목, 얼굴이 붉게 부어올라, 가렵다고 야단이다. 할 수 없이 올레길 걷기를 여기서 중단하고, 택시로 쇠소깍 주차장으로 되돌아온다. 도중에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요즘은 올레 길을 제대로 걷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차로 경치 좋은 거점 거점만 둘러보고, 이렇게 차량 왕래가 많은 큰길가는 걷지 않는다며, 8코스를 차타고 둘러보는 요령을 자세히 알려준다. 그 외에 ‘허’자 번호판(렌터카)의 차를 타고 온 손님들은 모두 봉으로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라며, 해안도로변의 횟집들, 특히 용두해안도로의 횟집들은 바가지로 유명하다고 귀띔을 해 준다.

 

차를 타고 다시 1132번 도로를 달려 KAL 호텔 앞으로 온다. 아까 보았던 ‘감자바위’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올레 6코스 나머지를 차를 타고라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주차장까지 갖춘 도로변의 감자바위는 전형적인 대중식당이다. 내부가 역시 깨끗하다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없다. 우리가 들어서자 방으로 안내한 주인아저씨는 에어컨부터 켠다. 벽에 걸린 메뉴를 보니, 삼겹살 200Kg 12,000원, 고등어구이도 12,000원이다. 나는 삼겹살을 먹고 싶은데, 집사람은 고등어구이를 택한다. 눈치 빠른 주인아저씨가 고등어구이에 된장찌개면 두 분 점심으로 충분할 거라고 권한다.

 

주문을 하고 아침에 먹다 남긴 백세주 병을 꺼내며 잔을 빌려달라고 청한다. 주인 아저씨가 웃으며 잔을 가져온다. 여행 중이라 많이 마시지 않고, 반주정도를 하다 보니, 술병을 차고 다니는 꼴이 됐다고 변명을 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웃는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다. 특히 갓 구운 고등어 맛이 일품이다. 아까 들었던 택시기사 양반의 말씀에는 다분히 과장 끼가 있는 모양이다.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아직까지 바가지를 씌우려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 식당들이 모두 깨끗하고,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이 있는 외에, 손님에 대한 배려도 손색이 없다. 한 때 악명 높던 제주도의 바가지요금이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이를 시정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후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주인아저씨가 젊은 여행객 두 사람을 옆자리로 안내한다. 우리가 식사하는 것을 보더니 같은 것을 주문한다. 서울서 오늘 내려온 부부라고 한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와서, 10년 후, 다시 찾아오기로 서로 약속을 했는데, 작년에는 바빠 못 오고, 1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부부다. 오늘은 스쿠터, 내일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마지막 날에는 차를 빌려 해안도로를 일주하겠다고 한다.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안주인이 식사가 맛이 있었느냐고 인사를 한다. 집사람이 고등어가 연하고 간도 딱 알맞다고 칭찬을 하자, 안주인 입이 함지박 만해지며, 고등어가 노르웨이 산이라고 알려준다. 노르웨이 산이라면 비행기로 공수를 했더라도 생물이 아닌, 냉동이겠는데, 이처럼 싱싱하다는 것이 놀랍다.

 

식사 후 첫 방문지는 소정방폭포다. 정방폭포야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소정방폭포는 가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져 어디고 척척이다. 쉽게 소정방폭포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역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다. 규모가 정방폭포에 비해 작아서 소정방폭포라 불리는 모양이지만, 정방폭포와는 달리 3단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기가 좋다. 올레 길과는 달리, 외국인을 포함한 관광객들이 보인다.

소정방폭포

폭포주변의 관광객들

 

다음은 내비게이션에 이중섭 미술관을 찍는다. 이중섭 거주지로 이어지는 돌길이 아름답다. 화가의 거주지가 번듯하다. 관리하는 노인에게 듣기와는 달리 이중섭 화가가 부자였던 모양이라고 하자, 노인은 펄쩍 뛰며, 이중섭 가족 4명이 산 곳은 1.4평짜리 쪽방이라며, 그런 곳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이중섭 거주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돌길

이중섭 거주지

1.4평짜리 쪽방

안내문

 

미술관으로 이동한다. 번듯한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 ‘소의 말’을 듣는 화가의 모습이 보인다. 만 40세(1916~1956)로 요절한 천재화가, 하늘이 탐을 내어 일찍 데려간 모양이다.

미술관 앞의 소의 말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 헤치다.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는 역시 공짜다. 전시된 작품들은 복사본이지만 화가의 천재성과 가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순수함과 가족애가 뭉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 황소에서 느껴지는 그의 강렬한 힘과 열정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제 규모는 작지만 공원까지 만들어 천재를 기리며 자랑스러워하는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천재화가 이중섭은 영원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공원 안내도

이중섭 공원의 맨드라미

 

다음으로 찾은 곳은 6코스의 종착점 외돌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잘 정비된 공원을 지나, 바닷가 절벽 위에 선다. 좌우로 용암들이 보이지만 안내판이 없어 어느 것이 외돌개인지 알 수가 없다. 외돌개 앞 문섬의 모양이 특이하다. 외돌개를 나와 기사양반이 소개한 8코스의 논짓물로 가는 길에 별내린 전망대에 잠시 들러 유현한 천제연 계곡을 굽어본 후 민물과 바닷물로 번갈라 목욕을 할 수 있다는 논짓물을 둘러보고 주상절리대로 향한다.

멋진 외돌개 공원 1

외돌개 공원 2

왼쪽 용암

오른쪽 용암

문섬

별내린 전망대에서 본 천제연 계곡

논짓물

 

주상절리대 주차장은 차량으로 가득하고 관람코스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안내판의 해설을 읽고 그 생성과정이 대강 이해가 되지만, 눈앞에 용립한 기둥모양의 용암을 직접 보니 더욱 더 자연의 신비가 오묘하게 느껴진다. 궁금한 것은 무등산의 입석대와는 어떻게 다른 건 지 모르겠다. 주상절리를 잠시 둘러보고 내국인을 위한 면세점이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로 향한다. 면세점 안을 둘러보지만, 집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주상절리대 안내판 1

안내판 2

주상절리 1

 


주상절리 2

 

나오다 보니 3층에 양식당이 있다. 모처럼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3층 식당으로 들어선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전망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나는 안심 스테이크, 집사람은 은갈치조림을 주문한다. 백세주가 있느냐고 물으니, 종업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한라산 소주가 있다고 권한다. 한라산 소주 맛이 부드럽고 순하다. 커다란 식당을 전세 내어 우리부부만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한다.

 

하지만 음식은 별로다. 호주산 안심스테이크는 역시 한우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은갈치 조림도 조림이 아니라 국이라고 한다. 식대는 VAT포함 75,000원. 손님이 없이 썰렁한 이유를 알겠다. 내일 아침 일찍이 한라산에 오르려고, 아침식사 용으로 빵집에 들러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7시경 펜션으로 돌아온다.

 

(2010. 9. 12.)

 

김언자님 at 09/13/2010 05:34 pm comment

평온한 행복을 선사하시는 하늘님 감사합니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 타고 오른 간월재(1)  (0) 2012.12.17
제주도 여행(3)  (0) 2012.12.17
제주도 여행(1)  (0) 2012.12.17
삼목회 2010년 봄나들이  (0) 2012.12.17
문산(汶山)에 초대를 받고  (0) 2012.12.17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