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쪽에서 본 산방산
숙소에서 바라본 새벽 무렵의 서귀포
2010년 9월 6일(월)
제주항공의 김포공항 발 제주행 첫 비행기 B738-800의 좌석 190석이 만석이다. 휴가철도 지났고, 태풍 말로(Malou)가 제주도로 접근 중이라는 예보가 있는데도 이러니, 성수기 때는 제주도 가는 비행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리가 공연한 이야기가 아니로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한 달 중 22일이나 지겹게 비가 내린 8월 달을 보내면서 심신이 피곤하고 따분한 느낌이다. 기분 전환 겸,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고, 화젯거리인 올레 한 두 코스를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아침 밥상머리에서 이야기를 꺼내니, 아들 녀석이 엄마도 같이 가시라고 제 어미 등을 떠민다. 이 더위에 가긴 어딜 가느냐고 반대할 줄 알았던 집사람이 의외로 잠자코 있다.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스페인 성지트레킹에 관심이 많은 집사람이라 아마도 제주 올레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들어가, (주) 제주여행나라와 접속하여, 2박 3일 제주여행 계획을 짠다. 제주도 여행이니 제주항공을 이용하기로 하고, 서귀포에 20평형 펜션을 숙박지로 정한 후, 항공료와 숙박비 400,000원을 바로 송금한다.
모처럼 집사람이 따라 나선다기에 하도 반가워, 서둘러 예약부터 하고나서, 구체적으로 예행계획을 점검하다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비행기 출발시간 6시 55분이 문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출발 한 시간 전에 김포공항 제주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행사로부터 휴대폰으로 받은 예약번호를 제시하고, 탑승권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예삿일이 아니다. 제주항공에 확인을 해 본다. 출발시간 20분 전에 탑승수속을 종료하니, 늦어도 30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라는 이야기다. 6시 20분경에 김포공항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너무 일러, 지하철이나 공항리무진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아들 녀석에게 데려달라고 부탁을 하여, 겨우 이 문제를 해결한다.
다음은 제주도의 날씨다. 9월 1일의 일기예보는 6일과 7일, 제주도에 비가 내리고, 8일은 맑다고 한다. 하늘사정이 그렇다는데 어쩌랴? 8일 하루는 맑다고 하니, 한라산 등반이나 올레 한 코스의 트레킹은 제대로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3일(금요일) 저녁의 일기예보에는 태풍 말로가 접근 중이라 제주도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날씨, 음식, 숙박, 교통 등의 요소가 두루 잘 갖추어져야하는데, 모처럼의 집사람과의 나들이가 태풍을 맞으러 가는 꼴이 됐으니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20%~30%의 수수료를 물고라도 해약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행사에서 보내온 안내문을 보니, 계약취소는 정상근무시간에만 가능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취소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태풍 속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겠다. 비가 오면 차가 필요하겠기에 일요일 오후, 렌터카를 예약한다. 여행사 담당 여직원도 딱하게 느꼈던지, 특별히 싼 가격으로 렌터카를 알선해 준다. 6일 오전 8시부터 8일 오후 7시까지, LPG가스용 소나타의 렌트 비용이 90,000원이니, 무척 싼 가격이다.
비행기가 제주도로 접근하고, 기장이 현재 제주도의 날씨를 알려준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심하고, 비가 내린다고 한다. 공항 짐 찾는 곳에서 짐 나오기를 기다린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도착한 비행기가 제주항공 외에도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4편이나 더 있어 이른 아침인데도 공항이 북적인다.
제주공항의 베기지 클레임
공항주차장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렌터카를 인수한다. 차 외부와 내부가 모두 깨끗하다. 10여 년 전의 냄새 나던 렌터카와는 딴판이다. 비수기라 내비게이션도 공짜다. 보험료 30,000원은 별도다. 보험료가 다소 비싼 느낌이라 보험은 생략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LPG충전소에서 가스를 가득 채우고 (50,000원) 아침식사 할 수 있는 곳을 물으니 근처의 ‘황가네 제주 뚝배기’ 집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황가네 제주뚝배기
대중음식점인데도 식당이 깨끗하고 음식 맛도 괜찮다. 집사람은 순두부, 나는 오분작 뚝배기(소)를 주문한다. 오분작은 전복새끼라고도 부르는데 자연산이라고 한다. 식사를 하면서 공항에서 얻은 대형광관지도를 들여다보며 우중에 가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식당에서 가까운 곳에 사라봉이 있다. 제주 시가지와 바다를 굽어 볼 수 있는 명소라고 한다. 지금은 비가 와서 조망을 즐길 수는 없겠지만 가까운 곳이니 한번 찾아가 보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에게 안내를 맡긴다.
황가네 제주뚝배기 메뉴
사라봉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바람도 자고, 비도 보슬비 수준이다. 잘 정비된 계단을 따라 오른다. 도중에 화장실이 있어 둘러본다. 깨끗하다. 정상 가까이에는 완만한 널마루를 깔아 노약자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해 놓았다. 정상에 정상석과 팔각정이 보인다. 잠시 팔각정에 올라가 보지만 바람만 드세고 보이는 것은 안개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안개 속에 떠 있는 바다와 제주 시가지 일부를 굽어본다.
잘 정비된 한적한 계단 길을 집사람이 오른다.
정상부근의 아름다운 널마루길
정상석
안개 속 조망
공원을 둘러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아보지만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하여 멀지 않은 제주민속박물관으로 향한다.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대우를 받아 우리는 공짜로 입장한다. 박물관 본관 건물 앞 너른 뜰에 전시된 여러 형태의 용암들이 돌 많은 제주도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박물관 입구
수돗가
다양한 형태의 용암전시
새끼줄 용암
박물관 본관 건물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종유석 동굴 모형을 지나면 화산의 분출형태 등 제주도의 화산분출 과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한다. 이어 제주도의 숲과 그 속에서 사는 동식물들의 모형을 규모 있게 전시해 놓았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민속박물관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우중인데도 나이 드신 일본인 관광객들이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어 제주도 사람들의 옛 생활모습을 소개하는 민속관, 그리고 바다 생물관을 둘러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멋진 박물관이다.
지하동굴 모형길
바닥에장식한 화산분출 유형
풍어제
해녀
20여 미터나 되는 부라이드고래 뼈
대왕 쥐가오리
박물관을 나와 제주의 상징인 용두암으로 향한다. 용두암을 둘러보고 해안도로변의 횟집에서 점심식사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용두암 주변도 전에 비해 잘 정돈된 모습이다. 중국관광객들이 빗속을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용두암 1
용두암 2
용두암 안내판
용두암을 떠나 인터넷에 많이 알려진 ‘바닷풍경 횟집’을 찾아간다. 태풍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해안으로 몰려와 부서지는 포말이 하얗게 솟구친다. 이윽고 용두암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닷풍경 횟집에 도착한다. 주차장도 없고 식당에 손님도 없어 보이자, 집사람이 고개를 젓는다.
차를 돌려 다시 용두암 쪽으로 향하다, 주차장이 있는 ‘어부횟집’을 보고 주차장으로 들어서지만. 비바람이 하도 심해, 차에서 내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비가 그만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식당 안주인이 커다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온다.
어부횟집
2층으로 올라가자 종업원이 수건을 들고 쫓아 나온다. 주인, 종업원, 모두가 재치 있어 좋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안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먹거리를 고른다. 안주인은 오늘아침 이른 비행기들은 도착했지만, 늦은 비행기들은 제주공항의 기상상태가 나빠 결행을 했다는 이야기, 태풍의 중심부가 오늘밤 제주도를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는 회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회를 맛보고 싶고, 오래 전에 우도에서 흑돔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고 하니까. 흑돔 1Kg을 주문하라고 권한다. 가격은 140,000원, 2~3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인데, 비도 오니. 천천히 많이 드시란다. 모처럼 집사람과 나온 길이다. 점심 회 스페셜이 1인당 25,000원이지만, 큰 맘 먹고 흑돔 1Kg과 백세주를 주문한다.
서비스 음식들이 나온다. 은갈치회, 돔껍질, 조개탕, 대하, 연어, 전복, 멍게 등 한 상이 그득하다. 메인인 흑돔 말고, 나온 것만 먹어도 충분하겠다. 안주인은 돔껍질이 손이 많이 가는 귀한 것이니 맛보라고 권하면서, 여러 가지를 맛보시라고 준비를 했다고 한다. 바깥주인은 김 위에 연어를 놓고, 그 위에 차가운 소스를 얹은 것을 녹기 전에 들어보시라고 권한다. 모두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맛이 있다. 이윽고 흑돔이 나온다. 생각보다 양이 많다. 여전히 고소하고 쫄깃쫄깃 한 흑돔을 둘이서 열심히 먹는데도 2/3정도 먹고 나니 끽이다.
흑돔에 이어 이번에는 우럭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 내온다. 황금빛으로 노랗게 튀긴 우럭은 모양만으로도 작품이다. 맛을 보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집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배가 불러 매운탕은 사양한다. 횟집 음식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이집은 안주인의 성의와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마워서 블로그에 소개를 하겠다고 주인부부의 사진을 찍는다. 식대는 10% 할인해서 134,000원이다. 4사람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니 결코 비싼 것도 아니다.
어부횟집 주인부부
횟집을 나서자 바람도 자고, 빗발도 많이 가늘어졌다. 남은 시간에 방림원에 들러 야생화를 구경하고 송악산과 산방산을 둘러보기로 한다. 방림원도 입장료를 받지만 경로우대로 공짜로 구경하고 차 대접까지 받는다. 이하 발림원은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방림원이 있는 예술인 마을 입구의 조각
방림원 안내판
입구
목백일홍과 고목
빠삐용란
부추꽃
김구다로
만데넬라
백화동산
폭포와 연못
방림원에 개구리가 많은 이유
방림원을 나와 송악산으로 향한다.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산방산이 아름답다. 이윽고 송악산에 도착하지만, 정상은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려 몸살을 앓는 통에 출입을 금지시켰다, 분화구인 정상에서면 마라도까지 보인다는 송악산,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 여러 곳에 일본군들이 굴을 파 놓아 유명해진 송악산... 정상은 오르지 못하고주변의 산책로를 걸으며 멋진 풍광을 즐긴다. 이어 산방산을 지나 7시경, 예약한 서귀포 동흥동에 있는 모리화 펜션에 도착한다.
도로변에서 본 산방산
송악산 분화구 안내판과 경고문
정상출입이 금지된 송악산
송악산 주변의 전망대
바닷속의 기암
가까이 본 산방산
멀리 보이는 하멜 표류선
노부부가 운영하는 모리화 펜션 301호실, 3층 전망이 좋은 방이다. 호텔 못지않게 깔끔하게 꾸며놓은 펜션이다. 하루 객실료 80,000원. 샤워를 하고 중국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월요일 저녁인데도 방마다 모임 손님들이 가득하다. 인근에서는 제법 알려진 중국식당인 모양이다. 종업원이 아닌, 안주인이 테이블로 안내를 하더니 주문을 받는다. 점심을 늦게 먹어 간단히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고맙게도, 잡탕밥 1인분을 두 그릇으로 나눠주겠다고 한다. 하여 잡탕밥 1인분과 백세주를 주문한다. 헌데 안주인이 샘플용 백세주 한 병을 들고 와서 많이 드실 것 같지 않아 샘플용으로 서비스한다며, 나이 드신 두 분이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모리화 펜션과 중국식당
침실에서 내다본 서귀포시내 야경
내가 처음 제주도를 찾은 것은 1958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다. 같은 반 친구와 둘이서, 목포에서 500톤급 철선을 타고 해질녘에 출발하여 새벽에 제주항에 입항한다. 용두암, 삼성혈 등 제주시내 명소를 두루 구경하고, 영실을 거쳐 백록담에 오르려고, 버스로 협재로 이동한다. 비양도가 마주 보이는 해수욕장, 그때 바닷물색이 그렇게 다양하게 곱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떤 곳은 쪽빛, 어떤 곳은 연두 빛, 어떤 곳은 네이비 불루,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디맑은 바다. 그 뿐인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조개가 밟힌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청년이 정신없이 바다 속에서 놀고 있는 낮선 학생들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제주도 구경도 하고 한라산을 오르려고 왔다고 하니,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오늘 밤은 어디서 잘 거냐고 재차 묻는다. 조금 있다 마을로 들어가 민박할 곳을 찾겠다고 하니,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한다. 우리보다 5~6세 정도 많은 큰 형님 벌의 청년이다. 전형적인 제주도 민가인 그분 댁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돼지가 있는 화장실도 체험한다. 형님은 다음날 오백나한을 거쳐 백록담에 오르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점심 때 먹으라고 빵을 한보따리 싸준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 참석하러 자주 제주도를 찾았고, 어떤 때는 가족들을 동반하고 내려와, 강의가 없는 오후에, 함께 렌터카로 제주도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던 곳, 하지만 은퇴 후 오랫동안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모처럼 태풍과 함께 방문하게 된 제주도다. 제주도 하면 항상 비양도 앞바다의 바닷물, 협재에서의 하룻밤 민박, 그리고 정 많던 형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 아름다운 풍광과 따듯한 인심은 변함이 없고, 이제는 세계 속의 관광지로 성큼 자란 제주도의 새로운 모습을, 서귀포의 야경을 통해, 하염없이 바라본다.
(201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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