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청 그림엽서)
쿰부히말 트레킹을 함께 했던 장영동 씨의 집이 문산이다. 과묵한 중년으로 다감(多感)한 애주가(愛酒家)다. 군사분계선 근처 계곡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어죽을 쑤면 맛이 기차다며, 문산을 방문하면 맛을 보이겠다고, 일행을 초대한다.
트레킹을 다녀와서 한 달이 후딱 지나고 해가 바뀐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히말라야에 가서도 밟아 보지 못했던 눈을 서울 근교의 산에서 함께 밟아보기로 한다. 어느 산엘 가야하나? 북한산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산은 어딘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노고산(495.7m)이다. 이런 연유로 지난 1월 12일, 노고산 산행을 할 때, 수지, 용인에는 연락을 하면서도 문산은 멀다고 느껴 생략을 한다. 산행 중에 우연히 김연수 씨가 장영동 씨에게 전화를 걸자, 장영동씨는자기를 뺐다고 무척 섭섭해 하며, 다 저녁에 뒤풀이 자리인 연신내로 솔방울 술병을 들고 찾아와서 따진다. “형님들! 수지, 용인이 멀어요? 문산이 멀어요?”
노고산에서 본 북한산
연신내 뒤풀이 자리의 장영동 씨
이러니 다음 모임의 장소는 어쩔 수 없이 문산이다. 장영동 씨는 골짜기들이 얼어붙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고, 따라서 어죽 대접은 못하지만, 첫날 반나절의 문산 관광과 다음날 감악산 산행 안내를 자청하며, 대원들을 소집하라고 강권한다.
문산역
알고 보니 문산까지는 지하철로 쉽게 갈 수가 있는 곳이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역에서 다섯 정거장을 더 가면 대곡역이다. 대곡역에서 내려, 문산 가는 지하철로 바꿔단다. 15분~20분 간격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면, 30분 이내에 종점인 문산역에 도착한다. 서울의 중심인 시청을 기점으로 볼 때, 과연 문산(약 32Km)이 수지나 용인보다 가깝다는 장영동 씨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오늘 모임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네 사람을 제외한 여덟 사람이 모인다. 멀리 광주에서 정성원 씨가 올라오고, 근무 중인 최맹규 씨는 퇴근하고, 저녁에 합류한다. 문산에 도착하여 출구로 나오지만, 안내를 하겠다던 장영동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곧 나갈 터이니 역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커다랗게 잘 지은 역사를 빠져 나오자, 저 앞에서 장영동 씨가 터덜터덜 마중을 나온다.
주는 정, 오는 정
막걸리/천상병
우표 한 장의 행복/오탁번
큰 따님
군인도시쯤으로 생각했던 문산이 크고 번화하다. 우선 우뚝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눈길을 끈다. 인구가 얼마쯤 되느냐고 묻는다. 상주인구가 약 5만이라고 한다. 역에서 3분 거리에 장영동 씨네 식당이 있다.(031-954-5652) 상호가 ‘주는 정 오는 정’이다. 정을 줄 터이니, 오라는 소리다. 식당에서 밥을 주는 게 아니라 정을 주겠단다. 재미있는 상호다. 그 뿐인가 ?
식당안으로 들어선다. 크지 않은 식당이다. 오른쪽 벽에 쿰부히말 트레킹 때 찍은 커다란 사진 5~6매가 걸려있다. 웅장한 히말라야의 풍광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왼쪽 벽에는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와 오탁번 시인의 “우표 한 장의 행복”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가난한 시인들이 한 잔 술의 즐거움과 고마움을 노래한 시들이다. 잔잔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더 말하지 않아도 식당의 분위기가 짐작이 된다.
포천 막걸리에, 아침에 장영동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생 두부, 삶은 제육과 순두부탕 그리고 묵은지 등 소박한 식단이지만 맛은 일품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영동 씨 부인의 손맛이다. 한 시간이 넘게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장영동 씨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문산 관광에 나선다. 큰 따님이 집에를 가야겠다며 동승한다.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가다, 백 밀러에 비친 따님의 모습이 고와 슬쩍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흔들려 윤곽은 흐리지만 빼어난 미인이다.
통일의 관문
얼어붙은 임진강
도라산역 방향을 알리는 교통표지판
도라전망대 방향을 알리는 교통표지판
따님을 집 앞에 내려주고, 봉고차는 문산읍을 벗어나 개성, 평양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달린다. 저 앞 “통일의 관문”에서 군인들이 출입증을 확인하고 차량을 통과시킨다. 장영동 씨는 이 길을 자주 다니는 모양이다. 차창 밖으로 출입증을 슬쩍 보여주고는 멈추지도 않고 그냥 통과한다. 이어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넌다.
도라전망대 1
도라전망대 2
도라전망대 3
도라전망대 4
도라전망대에 도착한다. 평일에 추운 날씨라, 일반인들은 보이지 않는데, 마침 외국시찰단이 방문 중이다. 이들이 브리핑을 받는 모양이다. 내부출입이 통제된다. 전망대에서 군인의 설명을 들으며 북쪽을 바라본다. 송악산을 배경으로, 군사분계선, 개성공단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심안(心眼)에 영상을 담아온다. 군사분계선 너머 인공기가 분계선 남쪽의 태극기보다 높게 걸려있다. 별 것에 다 신경을 쓰는 북한의 실상이 딱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사진, 바닥의 노란 선이 포토라인이다. 그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DMZ 전시관
한반도 통일을 상징하는 조형물
전시관 앞의 이글루
관광안내소
땅굴과 주변을 감시하는 모니터
전망대를 떠나 제 3땅굴로 향한다. 너른 광장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전시관, 오른쪽은 관광안내소이다. 전시관은 외관만 둘러보고 제 3땅굴이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한다. 카메라를 보관하고, 헬멧을 쓴 후, 땅굴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를 뚫어 만든 굴이다, 높이 2m, 폭 2m 라고 한다. 낮은 곳에서는 헬멧이 천장에 부딪친다. 약 25분 동안 땅굴을 둘러보고, 안내소 매점에서 북한산 소주, 맥주와 들쑥술을 구입한다.
제 3 땅굴의 구조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에 위치한 제 3땅굴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투한 땅굴로,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이며, 남방 한계선까지의 거리는 435m다. 1시간당 군인이동은 완전무장 시 1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하고, 비무장 시에는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문산까지의 거리는 12km다.
1978년 10월 17일 발견된 이 땅굴은 그 위치가 서울에서 불과 44km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규모면에서는 제 2 땅굴과 비슷하지만, 서울로 침투하는 루트로는 제 1. 2 땅굴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Km, 통일촌 민가에서 3.5Km 떨어져 있고,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상 “펌”)
남북출입사무소
이어 남북출입사무소에 들러 개성공단 운영에 관한 브리핑을 듣는다. 장영동 씨와 함께 쿰부히말 트레킹을 한 사람들이라고 VIP대접을 한다.
도라산역
유라시아 횡단철도
VIP 통로에서 기념촬영
다음 코스는 도라산역이다. 장영동 씨의 친구 분인 부 역장님이 뛰어 나와 일행을 역장실로 안내한다. 차를 내오고, 사진을 보여주며, 문산까지의 지하철 연장, 도라산 역사의 신축 등의 경위와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이어 북한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시베리아철도(TSR), 만주철도(TMR), 몽고철도(TMGR)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소련과 중국이 경쟁적으로 북한에 부설한 철도에 관해 걱정을 한다. 시베리아 철도는 꼭 한 번 타보고 싶다. 한 달 정도의 여정으로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유럽에서 비행기로 귀국하면 좋겠다. 지금도 7박 8일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까지의 왕복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부 역장님은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다닌다는 지하통로를 통해 우리들을 플렛폼으로 안내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역
야로슬라블 역과 노보시비르스크 역
바이칼 호수와 울란바토르를 떠나는 몽골열차
철도청에서도 시베리아 철도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시베리아철도 주변의 사진들을 여러 매 걸어 놓았다.
플랫폼에서 본 도라산 역사
안내를 해 주신 부 역장님
광주가 고향인 정성원 씨와 DJ
평양 205Km / 서울 56Km(철도청 그림엽서)
열차시간표
역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역사를 빠져 나오며, 열차시간표를 카메라에 담는다. 문산역에서 도라산역 까지 하루에 6번 열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문산역에서의 출발 시간은 11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15분. 열차가 도착하면, 전망대, 땅굴 등을 순회하는 버스가 기다린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는 관광회사를 통하지 않고, 가족끼리, 친구끼리의 개별방문이 가능하다. 되도록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와서 보고, 분단의 현실의 직접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화석정
화석정의 유래
현판
화석정 시
기단의 해설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석정을 둘러본다.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 이이는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화석정에 기름칠을 하게하여, 북으로 쫓기던 선조가 임진강을 건널 때 불을 질러, 몽진의 길을 밝혀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화석정이다. 박정희 대통령 글씨의 현판, 율곡의 화석정 시가 눈길을 끈다.
맹 지점장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식당으로 돌아와 장뇌 산삼으로 담근 산삼 주를 마신다. 부드럽고 맛이 순하다. 부인 말로는 좀처럼 내 놓지 않는 술이라고 한다. 저녁때가 되어 도라산역 부 역장님이 북한산 소주를 들고 찾아오시고, 맹 지점장이 부인과 함께 모습을 나타낸다. 오늘은 마침 두 분의 23주년 결혼기념일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퇴근하자마자 만사를 젖혀 놓고 달려왔다고 한다. 추장호 씨의 제안으로, 김연수 씨가 달려 나가 축하 케익을 사온다.
(2010. 2. 4.)
* 사진 찾아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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