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 건너에서 본 영남루


3번째 먹거리 여행을 떠난다. 말이 좋아 먹거리 여행이지, 실제로는 짧은 시간에 많을 것을 보려는 욕심으로, 2박 3일의 여행기간 동안, 1,000Km 이상을 달리는 강행군이다. 그것도 1톤짜리 봉고트럭을 타고서 말이다.


처음으로 이 여행을 제안한 김광현 사장은 은퇴 후, 소일꺼리로 묘목재배를 시작한다. 이제는 5년이 넘게 캐리어가 쌓여, 전문가가 되다 보니, 묘목 재배지가 중부지역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따라서 묘목을 돌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활동범위도 넓어져서, 그의 승용차이자 작업차인 1톤짜리 봉고트럭의 년 간 주행거리는 5만 키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발로 뛰는 김 사장에게, 나무 돌 볼일이 없는 12월, 1월은 참기 어려운 달이다. 그래서 매해 1월 중순이면, 삼목회 회원들에게 먹거리 여행을 떠나자고 꼬드긴다. 하지만 이 꼬드김에 걸려드는 것은 언제나 나와 김석근 사장 정도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로 1톤짜리 봉고트럭을 타고 여행하는 것이 쪽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저녁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김 사장의 투 캡 형 봉고트럭이 탈거리로 선택되어, 다른 차종과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김광현 사장에게서 찾아야 한다. 김 사장은 무지무지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여행기간 내내 계속 혼자서 운전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핸들 주위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천부(天賦)의 운전기사가, 승차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기름 값 덜 들고, 승용차보다 높아 조망 좋겠다, 4륜구동이라 못 가는 길이 없으니, 여행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차가 없다고 우기는데, 누가 다른 차를 거론할 수 있겠는가? 택도 없는 이야기이다.

김 사장과 김사장 애마


둘째는 여행자들의 관계다. 차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자 간의 관계가 미묘해진다. 여행 동반자 관계인지?, 또는 운전자와 손님 관계인지?, 아니면 운전자와 조수 관계인지?, 도통 아리송해 진다. 그러니 머리 좋은 상과대학 출신자들이라, 이처럼 복잡한 관계에 처음부터 말려들려고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외 2박 3일간에 1,000Km 이상을 주파해야하는 중노동,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긴긴 밤, 여행코스에 대한 이견 조정 등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삼목회 회원들이 꼬드김에 걸려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럼, 김석근 사장과 나는 뭔가? 왜 따라나서는 건가? 이유야 간단하다. 역마살이 붙었는지, 둘이 다,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면서, 바이오 네비게이터 역을 담당한다. 김석근 사장은 넓은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 가지만, 차가 정차하면, 차의 외관 청소, 그리고 지출되는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 차가 일단 숙박지에 도착하면, 모텔을 찾아 들어, 현장 확인을 한 후, 그럴듯한 방을 잡는 것은 김석근 사장과 나와의 공동 임무다.


이번 3차 먹거리 여행은 출발 전부터 일이 꼬인다. 두 차례 풍 섞인 먹거리 여행담을 듣고, 비교적 순진한 정문모 사장이 동행하겠다고 따라 나선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지만 메일을 통해 여행코스를 상의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너희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이번에도 빠질 터이니, 셋이 잘 다녀오너라."라는 메일을 발송하고, 그 이후는 감감 무소식이다. 어찌나 섭섭하던지....


출발 전날, 김석근 사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몸이 이상하여, 이번에는 못 가니 둘이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맥박이 40회 정도 밖에 뛰지를 않고, 가슴이 쿵쿵거리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걱정이 된다. 우리들 나이에서는 건강을 자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먹거리 여행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무리하지 말고, 검사 잘 받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는다.


2006년 1월 17일(화).

7시 5분 전, 복정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선다. 아직도 사방은 어둑어둑한데, 저 앞에 봉고트럭 한 대가 하얀 배기가스를 뿜으며 서 있다.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른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조수석에는 전나무 잔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나무 냄새를 풍기라고 쌓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좀처럼 서울을 벗어날 기회가 없는 딱한 중생을 위한 따듯한 배려인 모양이다.


트럭은 중부고속도로를 달린다. 회색빛 동천(冬天)이 안개를 타고. 고속도로까지 내려와 있다. 지난주보다는 훨씬 풀린 날씨지만, 고속도로변의 관목들은 하얀 서리꽃을 달고 춥다고 아우성이다. 트럭은 2차선으로 정확히 시속 80Km의 속도로 달린다. 의자가 딱딱해 엉덩이는 다소 고생을 하지만, 차가 높아 눈은 호강을 한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의 주행 - 이게 김 사장의 주행원칙이다. 이후 텅 빈 중부내륙 고속고로를 달릴 때도 이 원칙은 불변이다. 한번 원칙이 세워지면 좀처럼 이를 깨지 않는 것이 김 사장의 장점이다. 면전에서 싫은 소리를 해도, "어~허허~" 하고 한번 웃으면 그만이다. 그 만큼 대범하다. 김 사장의 또 다른 장점이다. 이처럼 겁 없이 김 사장의 흉을 보는 것도 다 김 사장의 이 "어~허허~"를 믿기 때문이다.

한가한 중부 내륙고속도로


여주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하느라 잠시 머물고, 중간에서 두어 차례 용무를 보기위해 정차한 것 이외에는, 트럭은 줄곧 달려, 12경, 창녕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24번 국도로 내려선다. 서울을 출발한 후 5시간을 달린 것이다. 고속도로를 제 속도로 달린 것 보다 약 1시간 정도 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늘의 기착지는 울산이다. 하지만 울산에 가기 전에 옛 가락국의 땅, 밀양을 둘러보자는 욕심에서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유명한 영남루와 아랑각, 표충사, 얼음골, 호박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24번 국도를 달리면서 밀양시 산내면, 단장면에 걸쳐있는 웅장한 영남알프스의 능선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24번 국도는 화왕산(757m)허리를 굽이굽이 감돌아 오른다.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요즈음은 부곡을 거쳐 밀양으로 들어가는 편한 길이 있다지만, 24번 국도에서 보는 이 아름다움은 놓치기 아까운 풍광이다.


밀양 시내로 들어서서, 이정표를 참고로, 물어물어 좁은 골목길을 올라 영남루에 이른다. 다행스럽게도 아랑각, 박시춘 생가, 무봉사, 밀양 시립박물관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밀양 아리랑 노래비(碑)를 카메라에 담고, 건너편 영남루로 들어선다. 입구에 매표소가 있지만 사람은 안 보인다. 덕분에 공짜로 들어선다.

밀양아리랑 노래비

한곳에 모인 밀양 유적

오른쪽으로는 연꽃무늬의 돌꽃인 석화(石花)와 단군을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덟 왕조의 시조왕 위패를 모신 천진궁이 배치돼 있고, 너른 뜰을 건너 밀양강 변에 영남루가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1843년 이인재(李寅在)부사가 중건한 조선시대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석화

석화 해설

만복문과 천진궁


밀양강은 낙동강의 지류라고 한다, 그 밀양강 절벽에 자리 잡은 영남루에 올라, 밀양시를 굽어보며 밀양 아리랑을 웅얼댄다.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누각 아래 대나무 숲이 푸르다. 건물 내부를 돌아본다. 많은 명필 현판들이 붙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이인재 부사의 두 아들, 이증석(11살)과 이현석(7살)이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현판이라고 한다.

영남루에서 본 밀양강

올려 본 영남루


 

 

현판들


영남루를 나와, 비탈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서서 아랑각을 향한다. 아랑각 담장에 뿌리박은, 밑둥만 남은 오랜 고목에서 새로운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경이롭다. 아랑각은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尹東玉)이 유모와 함께 영남루로 달구경 나왔다가, 괴한의 핍박을 받게 되자,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애절한 전설이 있는 아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63년 10월 육영수 여사가 헌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랑각

아랑의 영정

부사 이상사(李上舍) 앞에 나타난 아랑


아랑각을 둘러보고 다시 영남루 쪽으로 올라온다.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3,000여곡의 대중가요를 작곡한 박시춘 씨가 낳고, 성장한 생가는 관광 시즌이 아니어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어, 담 너머로 뜰 안의 사진만 찍고, 시립박물관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다. 3층으로 된 박물관에는 단원 김홍도의 선유도, 오원 장승업의 화조도와 같은 그림 외에도 밀양지역의 많은 향토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시간이 없어 내부 관람은 생략하고, 주변만 둘러 본 후 서둘러 계단을 내려선다. 벌써 1시 30분이 가까워진다. 무봉사 참배도 생략하고 트럭으로 돌아온다.

박시춘 생가

박시춘 생가의 뜰

박물관 정원에 세워진 사명대사동상


트럭에 올라, 밀양강을 건너, 멀리서 영남루를 바라보며, 식사할 식당을 물색한다. 밀양의 향토 음식으로는 고동국, 회를 치지만 김 사장은 민물고동이라고 이를 꺼린다. 전통 찜이 유명하다지만 식당이 상남면에 있어 제법 거리가 멀다. 가능하면 진행 방향인 산내면, 단장면 쪽에서 식사를 하려고,식당에 전화를 해 보지만, 시즌이 아니라 영업을 않는다는 대답이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강변 가까운 곳에서 주차가 가능한 남경정이란 자그마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수육과 설렁탕을 주문한다. 식당 모양새에 비해, 음식이 깔끔하고 맛이 있다. 백세주를 반주로 점심을 포식한다. 김 사장은 운전을 해야 하니, 술은 한두 잔에 그쳐야 하고, 나머지는 전부 내 몫이다. 비용은 반부담이 원칙이니, 횡재를 하는 기분이라 싫지가 않다. 식사를 마치고 주인에게 표충사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물은 후, 2시 40분 경 표충사로 향한다.


표충사가 가까워지자 주위 산세가 범상치 않다. 표충사는 재약산의 사자봉, 수미봉, 분수봉 등을 등지고 펼쳐진 큰 가람이다. 일주문을 지나, 노송이 울창한 송림을 거쳐, 경내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표충서원, 유물관이 배치된 마당을 지나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본당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팔상전, 대광전, 관음전, 명부전, 표충사 누각, 표충사 종루, 그리고 삼층 석탑과 석등이 빼꼭 차게 들어서 있다.

일주문

표충사

유물관

3층 석탑

대광정

팔상전과 사자봉


표충사 누각 앞에서 약초 등을 팔고 있는 보살님은 이 자리가 바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과 왜군이 격전을 벌였던 전장 터였다고 설명하면서, 주위의 산세를 가르친다. 지금은 표충사 국민관광지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유서 깊은 표충사를 훑어보고, 경내 매점에서 뜨거운 대추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 후, 다음 경유지인 얼음골로 향한다. 얼음골로 향하는 24번 국도에서 보는 주위의 산세가 웅장하다. 영남 알프스에 속하는 운문산(1,188m), 가지산(1,240m)이 가깝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얼음골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지방 도로로 내려서서, 12분 쯤 달리니, 오른쪽으로 커다란 가지산 도립공원 안내판이 보이고,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언양가는 길

얼음골로 가는 지방도로 분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휴게소 옆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건너 얼음골로 향한다. 얼음골은 밀양시 산사면 남명리 소재의 천황산(1,189m) 북쪽 중턱, 해발 600m~700m에 이르는 약 9,000평 넓이의 계곡이다. 이곳은 4월 초순부터 바위 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 많아져, 삼복시기가 되면 절정에 이르게 되고, 반대로 한겨울에는 얼음이 녹아 물에 더운 김이 오른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224호로 지정된 얼음골은 표충비각, 무봉사 태극나비, 만어사 어산불영경석과 더불어 밀양의 4대 신비로 불리운다.


도립공원이라 길이 잘 정비돼 있고, 왼쪽으로 얼음골 450m를 알리는 이정표도 보인다. 천황사에 이른다. 암자같이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인적이 없는 사찰로 들어가 법당에 모신 천황사 석불좌상를 구경하려고 닫힌 법당 문을 당겨 보지만 안으로 잠겼는지, 끄덕도 않는다. 할 일 없이 천황사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130m 떨어진 결빙지로 이어지는 돌길을 오른다.

이정표


이제까지의 길과는 달리 골짜기가 깊어지며, 돌길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 미끄럽고, 오른쪽 골짜기로 떨어지는 천황산 너른 사면에는 거대한 너덜지대가 펼쳐있어,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골짜기에는 귀기(鬼氣)마저 감도는 듯싶다. 동의보감의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며, 인체를 속속들이 공부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천황산 너덜


이윽고 보호철책이 둘려진 결빙지에 이른다. 비스듬이 쌓인 바위 틈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한 옆에 얼음골을 설명하는 해설판이 세워져 있다. 실로 자연의 신비는 무궁무진한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벌써 시간은 5시가 넘었다. 왼쪽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가 보인다. 지형으로 보아 가마골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인 듯싶다. 올라왔던 미끄러운 길보다는 이 길이 수월해 보이고, 가마골 폭포도 구경할 겸, 왼쪽 길로 접어든다.

결빙지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서 뒤돌아 천황산과 너덜지대를 바라본다. 어둡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실로 장엄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언덕을 지나 가마골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계단길 이다. 가마골에 내려선다. 폭포는 중턱에서 얼어붙어 있고, 용립한 암봉 사이로, 가마솥을 걸어 놓은 아궁이 같이 생긴, 긴 협곡이 유현(幽玄)하다. 여름에 오면 장관이겠다. 서둘러 계단을 따라 협곡을 빠져 나온다. 10여분을 달려 내려 천황사에 이른다.

뒤돌아 본 천황산

가마골 폭포

가마골 협곡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호텔 아이스 벨리"에는 벌써 두서너 군데, 불이 밝혀진 곳이 있다. 작고 아담한 호텔이다. 우리는 오늘 반나절 남짓 밀양을 돌아보았지만 밀양에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하루 또는 이틀 정도, 집사람과 함께, 호텔 아이스 벨리 같은 곳에 묵으면서, 차분하게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호텔 아이스 벨리


사례 호박소는 얼음골에서 2Km 밖에 안 떨어진 관광명소이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지금 시각에는 갈 곳이 못된다. 아쉬움을 안고, 24번 국도에 올라 울산으로 향한다. 도로가 오르막을 오르면서 오른쪽의 취서산(1,092m), 신불산(1,209m),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영남 알프스가 웅장한 모습으로 따라온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영남 알프스를 종주하려면 2박 3일의 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올 가을, 억새 철에, 꼭 한번 종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영남 알프스 - 퍼온 사진


동남쪽 저 아래로 언양과 그 뒤로 울산시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언양을 지나 우리는 울산 12경중의 하나로 꼽히는 "무룡산에서 본 공업단지 야경"을 확인하기 위해 외곽도로인 북부순환도로를 거쳐, 31번 국도를 타고, 무룡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반대편 도로에서 진입하는 무룡산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바닷가, 정자동까지 내려와. 파출소에서 무룡산 진입로를 묻는다. 경찰관은 자세히 길을 가르쳐주며, 무룡산 오르는 도로가 좁고 험해, 밤에는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무룡산 정상에는 TV 3사 송신탑이 솟아 있고, 이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좁은 시멘트 도로가 가파르게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주 오는 차가 서로 빗겨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이다. 외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봉고트럭은 나 홀로 잘도 오른다. 길이 굽어지는 곳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무성한 억새가 바람에 쓸리고 있다.


남산 타위에 올라가, 서울 야경을 보는 식의 전망대를 기대했으나, 무룡산 정상에는,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은 전혀 없다. 정상의 요지는 3개의 송신탑이 차지하고, 철책을 둘러쳐서,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겨우 남쪽사면 한 귀퉁이에 서서, 나뭇가지의 방해를 받으며, 발아래 울산공단의 야경을 본다. 가히 장관이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고, 시간도 늦었다. 서둘러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하지만 노출시간이 길어지면서, 손 떨림 현상이 나타나, 좋은 사진을 얻는데도 실패한다.

무룡산 정상

무룡산에서 본 공단 야경


차로 돌아와 서둘러 하산한다. 8시가 훨씬 넘었다. 이제는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는 일이 급하다. 두 차례 먹거리 여행을 하면서 터득한 요령 중에 하나는 숙소는 시장 부근에 정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점이다. 울산에서는 중구 옥교동 중앙시장 근방에 숙소를 정하고, 시장에서 곰장어를 안주로 술 한 잔을 한 후, 숙박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가까운 태화강 변을 일주하기로 계획을 세운바 있어, 중앙시장으로 차를 몬다.


중앙시장 부근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는다. 새로 지은 듯한 말끔한 모텔들이 눈에 뜨인다. 그럴 듯한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가 온돌방을 달라고 하니, 쪽문을 반쯤 열고, 아줌마가 흘긋 내다보더니, 온돌방은 없다고 한다. 분위기가 숙박객을 받는 모텔이 아니라 2~3시간 방을 빌려주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모텔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조금 수수해 보이는 모텔을 찾아서 온돌방을 찾는다. 역시 침대방 뿐이란다. 침대방이라지만 트윈이 있을 리 없고, 싱글 베드일 터이니, 난방을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바닥에서 자는 사람은 감기 걸기 십상이겠다. 김석근 사장도 없어서, 혼자서 온돌방을 찾아 주위를 맴돌며 헤맨다. 고약하다. 아시다시피 모텔의 사무실은 대체로 2층에 있다. 주차장과 통하는 1층 현관을 지나 2층으로 오르는 구조가 많다. 주차장은 너덜거리는 고무 차단막이 걸려 있어, 이를 헤집고 현관에 들어서면, 반나체의 아가씨 사진들이 현관 바닥에 너절하게 널려있다.


한 시간이 넘게 열 댓 군데를 드나들지만. 온돌방 주겠다는 곳이 없다. '요것 봐라, 울산, 참 맹랑한 도시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침대방 2개를 빌릴 각오를 하고, 이름도 유혹적인 신축, 큐피트 모텔을 찾아 사무실을 두드린다. 다행이 온돌방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특실이라 60,000원 짜리 방인데, 45,000원만 내고 묵으라고 한다. 늙은이 두 사람이 잘 것이니, 특실은 필요 없고, 일반실을 달라니까 일반실은 없다는 반응이다. 40,000원으로 깎자고 해본다. 아주머니는 안 되겠다고 쪽문을 닿으려는데, 옆의 아저씨가 40,000원에 주무시고 가라고, 선선히 받아 준다.


짐을 숙소로 옮기고, 10시가 넘은 시간에 식당을 찾아 나선다. 이 시간에 시장 통에서 곰장어 집 찾다가 시간을 보내다보면, 저녁을 굶을 판이다. 큰 거리에 삼겹살 집들이 나란히 연이어 있다. 그 중에서 손님 많은, "구이사랑" 집으로 들어가, 돼지갈비를 주문한다. 음식 맛이 좋고, 젊은 울산 아줌마의 인심이 후하다. 맥주, 소주, 백세주를 차례로 마시며, 시장했던 김이라 한껏 포식을 한다.

생맥주집 나폴레옹 앞의 김 사장


11시 반이 넘어, 식당을 나와 모텔로 돌아간다. "나폴레옹"이란 생맥주 집 간판이 보인다. 김 사장이 어찌 생맥주집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김 사장은, 딱 한 조끼씩만 마시자며, 내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맥주 집으로 들어선다.

 


(2006. 1. 27.)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거리 여행(9) - 포항/하회마을  (0) 2012.11.30
먹거리 여행(8) - 울산  (0) 2012.11.30
오서산 만유기(烏棲山 漫遊記)  (0) 2012.11.30
주산지와 주왕산 나들이  (0) 2012.11.30
안면도, 강화도  (0) 2012.11.30
Posted by Urim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