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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나들이
1
청량리역에서 철도회원 카드로 발권기를 통해 예매했던 기차표 3매를 받았다. 안내요원이 친절하게 발권기 사용법을 알려주어 도움이 됐다. 발권기는 기차표 매매창구가 붐빌 때는 제법 편리하겠으나 그 이외에는 특별히 편리한 점을 찾을 수 없을 듯 싶었다.
용문으로 나들이 가는 유치원생들 과 부모들로 기차 안이 다소 소란하더니 이들이 내린 후에는 원주에서 승차한 부인들이 가끔씩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 외에는 차안은 비교적 조용하다. 무궁화호가 돼서 그런지 기차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여유를 부리며 달린다. 식당차가 없어 점심은 변 교수의 제안으로 영월에서 버섯찌개를 잘 하는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영월 역사는 한식 기와로 지붕을 엮어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영월 시가지와는 제법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역 앞에서 택시기사들에게 버섯찌개를 잘하는 집을 안내하라고 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기사치고는 몸이 뚱뚱한 기사양반이 혹시 콩국수를 좋아하면 들러 보라고 소개한 근처의 허름한 행운식당을 찾았다.
규모에 걸맞지 않게 중국음식과 한식을 겸하고 있어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칡과 쑥을 넣어 만든 국수의 면발도 괜찮았고, 콩 국물도 고소한 게 맛이 좋았다. 김치 맛도 괜찮아서 김 사장은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보자 했을 정도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기차 시간이 빠듯하여 들르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가격은 한 그릇에 3,500원. 거운리까지의 택시 비는 10,000원 정도이니까 타기 전에 확인하라고 알려 주는 식당 아가씨의 친절도 고마웠다.
영월 역에서 거운교까지는 택시로 약 15분 거리. 기사양반은 모처럼 외지 손님이 이것 저것 물어 오자, 신이 난 모양이다. 단종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 래프팅회사의 난립과 동강오염, 래프팅 덕에 동강을 찾는 사람들은 무척 많아 졌지만, 택시손님은 줄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끝이 없다. 어느덧 거운리 매점 앞에 도착했다.
매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앞으로의 트레킹 코스에 관해 물었다. 아주머니는 여름에는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 강변을 따라 난 등산로가 한 여름 웃자란 풀로 뒤 덮였을 거란다. 그러니길 찾기가 쉽지 않아, 고생이 심할 거하고 한다. 그리고 해전에 문희마을에 도착하기도 여려울 것 같으니 다른 길을 택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지도에 나타난 등산로의 존재를 굳게 믿고, 다순 거리계산에 따른 소요시간을 확신하는 우리들의 귀에 이 충고가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매점을 출발해 산모롱이를 지나 강변을 따라 나 있는 농로를,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트레킹을 즐기기 한 시간여, 동강의 명소 아라연에 도착한다. 아라연에서는 뱃사공 이해수씨가 나루를 건네주고 있었다. 하루에 소주 7, 8병씩을 거뜬히 마신다는 동강 뗏목 사공 출신의 38년생 이해수씨는 어라연 도강에 1인당 10,000원씩 30,000원을 내고 건너려면 건너고 말면 말라는 태도다. 전혀 듣지도 못했던 횡포다. 다른 길은 없냐고 물었더니 온 길을 되돌아가는 길밖에는 없다는 대답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도선료에 기분은 상했으나 어쩔 수 없이 이해수씨 부인에게서 산 영월 좁쌀 동동주를 권하면서 도선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수씨는 우리가 한잔씩 마시는 동안 3잔째 잔을 받아 술병을 바닥 낸 후, 할머니가 권하는 밥 한 그릇을 매운탕에 말아 먹고는 마지못해 일어선다.
상선암 근처 건너편 강변까지 쇠로 된 배를 삿대질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이 줄줄이 내려오는 래프팅 고무보트들에게는 신기해 보인 모양이다. 말을 거는 사람,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 - 하지만 이해수씨는 냉냉하다. 너희들은 흐르는 물결을 따라 10명이 노를 저으며 내려오지만, 자기는 삿대 하나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기개가 대단하고, 래프팅인가 지랄들을 하면서 오줌, 똥을 싸 질러대어, 그 맑던 동강 물을 오염시켜서, 이제는 물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고, 도강 손님들 발길도 끊겼다고, 래프팅을 허가한 영월군, 평창군, 정선군의 세 군수를 싸잡아 개새끼들이라고 매도한다.
40분여 후 반대편 강변에 도착했다. 이 때 시간이 4시 30분 경. 강변의 풍광은 그럴 듯 하나 갈 길이 바빠, 부리나케 걷다 보니 상점이 하나 보인다. 해 지기 전에 문희마을에 도착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어렵다는 대답이다.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상점을 지나자 바로 등산로로 이어지면서 거운리의 아주머니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음은 물론, 길이 있더라도 풀과 잡목들이 길길이 자라 앞으로 헤쳐나가기가 어려웠다. 변 교수와 나는 반바지, 반소매의 가벼운 트레킹 차림이라 정강이와 팔뚝이 금새 상처투성이가 돼 버린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가시가 돋친 넝쿨이 아랫도리를 휘감으면 정강이가 아려왔다. 길 없는 길을 헤매는 모습이 배를 타고 내려오는 트레킹 강사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 지금 뭣들 하시는 거예요?" 라고 물어 왔다. 묻는 의도를 훤히 알겠음으로 대답할 말이 궁해진 변 교수가
"지랄하는 거지요."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자 상대방은 더 말이 없다. 지랄하는 사람들과 더 상대 않겠다는 태도다.
어라연에서 문산나루까지는 약 3Km, 한시간 이내 거리이나,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앞으로 얼마를 더가야 될 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아직도 멀었다는 대답이다. 문희마을 민박집에는 저녁 술안주로 백숙을 준비 시켰는데 강변에서는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 연락할 길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이윽고 멀리 강굽이 지는 곳에 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산나루에 도착한 것이다. 이 때가 오후6시경. 아줌마 뱃사공 집에서 전화를 빌어 문희마을에 전화를 하여 악전고투 끝에 문산나루에 도착했음을 알리고, 진탄나루까지 마중을 부탁한 후, 맥주 한 캔으로 갈증을 풀고, 문산나루를 건넜다. 뱃사공 아줌마는 진탄나루까지는 강변을 따라 길이 좋고, 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 까지도 길이 좋아 부지런히 걸으면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7시 반 정도니 해지기 전에 문희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고도 했다.
팔과 다리는 상처로 쓰라리나 다시 힘을되 찾은 우리는 진탄나루로 향했다. 하지만 화불단행이라 했던가? 40여분쯤 부지런히 걸어, 이제는 거의 진탄나루에 도착할 시점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차가 2대가 정차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어. 진탄나루까지 얼마나 남았나고 묻자, 딱하다는 표정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고 대답한다. 온 길을 다시 내려가 강변으로 난 길을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분명히 외줄기 길을 부지런히 달려왔는데 중간에 강변 쪽으로 난 다른 길이 있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었다. 뱃사공 아줌마는 강변을 따라 걸으라고 했는데 우리가 달려온 길은 산길이 아니였던가?
문산나루 초입까지 다시 내려와서야 강변으로 난 오른쪽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의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이제야 갈 길을 찾은 것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나 강변 길은 모래가 알맞게 섞여 있어 발바닥이 편안하고, 오른쪽에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왼쪽 어둔 숲에는 반딧불 빛이 반짝거는 것이 가히 선경이다. 다만 진탄나루에서 기다릴 우 선생이 신경에 쓰인다.
어둠은 점점 짙어지고, 밤눈이 어두운 나는 점점 후미로 쳐진다. 선두에서 "첨벙" 물소리가 나더니 변 교수가 길에 고인 물을 조심하라고 후미에 알려온다. 멀리 강 건너편에 불빛이 보이고, 우리들 발자국 소리에 개들이 짖어댄다. 진탄나루가 가까운 모양이다. 갑자기 변 교수가 소리친다.
"길이 없어 졌다!"
왼쪽에서 흘러내리는 여울이 오른쪽 강으로 합수하면서 이제까지의 길이 끊어진 것이다. 문산나루에서 문희마을에 전화했을 때 민박집 아줌마가 여울을 건너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으나 깜깜한 속에서 여울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길이 없어 건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야호 소리를 외쳐대며 도움을 청할 뿐이었다.
갑자기 건너편 길에 자동차 불빛이 보이더니 그 불빛이 점점 우리들 쪽으로 닦아 오고 있다. 손수건을 꺼내 자동차 불빛을 향해 흔들며 "야호", "야호"외쳐 댔으나 차는 바로 우리 눈앞에서 왼쪽 여울을 따라 건너편 길로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붉은 미등마져 멀리 사라지자 사방은 더욱 더 짙은 어둠에 휩싸이고 우리들은 다시 절망한다. 김 사장이 가지고 있던 라이터가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빛이나, 그 불빛으로는 여울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다행히 멀리 자동차 불빛이 또 보인다. 불빛이 가까워지자 다시 손수건을 꺼내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빛이 코앞에까지 닦아들어 여울을 따라 또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순간, 이 차는 바로 여울을 향해 돌진하더니 우리들 앞에 멈춰 섰다.
"문희마을까지는 어떻게 가나요?" 하고 반트럭 기사에게 묻자,
"제가 문희마을에서 마중 나온 사람입니다." 하면서 민박집 주인 우문제씨가 차에서 내린다.
2
우문제씨 가 그려준 백운산 개념지도를 들고 8시 10분 경 민박집을 출발한다. 등산로로 진입하는 밭까지 우문제씨가 직접 안내를 하면서, 칠족령까지는 한시간 이내에 주파하되, 그 이후 백운산 정상까지의 길은 3시간이건, 4시간이건 서둘지 말라고 당부한다. 잡풀이 우거진 밭길을, 어제의 악몽을 되 삭이며 약 3분쯤 걸으니 등산로가 나타난다. 낙엽과 솔잎으로 덮인 등산로가 울창한 숲 사이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져 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천국과 같은 곳에서 삼림욕을 즐기며 오솔길을 40여분 걸어 우문제씨가 일러준 장소에 도착했다. 이 지점은 칠족령 2/3 높이의 지점으로 여기서 제장나루를 거쳐 소사나루, 그리고 기정으로 돌아 흐르는 세 굽이 동강을 내려 볼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짙푸른 동강, 하얗게 비치는 모래톱, 점점이 박혀 있는 민가들 - 우문제씨가 왜 이 코스를 잡아 주었는 지 이해할 수 있겠다.
왔던 길을 되돌아 10여분을 걸어, 제4봉 능선 길로 이어지는 안부를 거쳐 능선길에 오른다. 이 능선 길을 줄곧 따라가면 백운산 정상이다. 황토위로 나무뿌리들이 어지럽게 기어가고, 돌들이 비쭉 비쭉 솟은 좁은 능선 길, 오른 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연해 있다. 눈이나 비가 오면 전혀 통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능선 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절벽 쪽 바위틈 사이로 자란 아람드리 소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간간이 부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칠족령에서 백운산 정상까지의 직선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림짐작으로 4Km가 못될 듯 싶은데 고도 차이는 350m가 넘고, 그 사이로 3개의 봉우리가 연결되는 지형이다. 그 중 제3봉이 가장 높게 우뚝 솟아있어, 경사도 심하고, 위험하기도 가장 위험한 곳이다. 조그만 돌탑에 동판이 박혀 있다. 1999년에 이곳에서 실족한 이 모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판이다. 자연을 사랑했던 여인, 여기 잠들다. 당년 30세.
위험 구간을 지나자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오히려 경사도 급하지 않고, 길 폭도 넉넉하여 이제까지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풀린다. 정상에는 조그만 돌탑이 쌓여 있고, 스텐레스 판으로 멋대가리 없이 만들어진 정상 표시 판이 서있다. 정상에서 내려 다 보이는 동강은 여섯 굽이를 감돌아 흐른다. 그 굽이를 따라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던 봉우리들이 절벽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저 절벽 위를 걸었다고 생각하니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모한 짓을 한 느낌이 든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대강 11시 30분 경, 2시간 반을 절벽 길에서 보낸 셈이다. 정상에서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계곡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소나무를 비롯한, 이름 모를 아람드리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급경사 길을 한시간여 내려오니 문희 마을이다. 만약 이 길을 택해 정상을 향했더라면 절벽 길의 위험은 없지만 엄청난 지구력과 스테미너가 필요할 듯 싶었다. 이상한 것은 골짜기를 내려오는 데 물 흐르는 곳을 한번도 지나지 않은 점이다. 우문제씨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잊어버려 아직도 궁금하다.
한숨 쉬고 동강으로 견지 낚시를 나갔다. 초등학교 2학년생인 우문제씨의 아들이 낚시와 미끼를 준비하고 앞장을 선다. 민박 객이 낚시를 원하면 이 친구가 가이드가 된다. 변 교수는 견지 낚시를 해봤지만 김 사장이나 나는 처음이라 이 꼬마 사범에게 요령을 배운 후 낚시 줄을 드리웠다. 강바닥 자갈은 이끼로 미끈거려 동강의 오염이 심상치 않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오염의 주범은 상류의 양어장이라고 한다. 먼저 꼬마 사범이 한 마리를 낚고, 이어서 김 사장의 낚시에도 한 마리가 물렸다. 변 교수와 나는 무릎 근처까지 물에 잠기게 강속으로 들어갔으나 재미를 붙인 김 사장은 허리께 까지 잠기도록 깊이 들어가 낚시에 열심이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꼬마 사범이 추워 보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때까지 잡은 것이 모두 4마리 - 김 사장이 3마리, 꼬마사범이 한 마리를 잡았다.
"잡은 고기로 뭘 하냐? 매운탕에 넣냐?"
"죽은 것은 매운탕에 넣지만, 살아 있는 것은 회를 쳐요. 제가 회 쳐 드릴께요. 저도 회를 좋아해요."
물고기들이 죽기 전에 집에 가야한다고 서둘러 집에 도착하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회를 떠서 소주 한병과 함께 평상으로 가져 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생치고는 작아 보이는 꼬마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주를 따라 주며 어른 셋을 상대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말이 빠른 것을 보면 머리도 좋아 보인다. 토끼도 키우고, 한 살짜리 강아지 흰둥이도 제 것이라고 한다. 황영조 같은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 꿈이라 한다. 지나치게 상식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야행성이다. 밤 12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힘들게 일어난다. 하지만 어제는 셋이 모두 10시전에 잠에 떨어졌다. 백운산이 그 만큼 험했던 모양이다. 변 교수는 두어 시간 동강 물로 맛사지를 받아서인지 다리는 전날 보다 오히려 한결 편하다고 즐거워한다.
오늘은 동강 나들이의 마지막 날, 래프팅을 즐기는 날이다. 진탄나루에서 12경에 출발하는 팀에 합류할 수 있게 우문제씨가 예약을 해 놨다. 진탄나루까지는 약 3.5Km,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것을 사양하고, 걷기로 한다.
9시 20분경 민박집을 떠나 강변으로 이어진 신작로 길을 물길 따라 천천히 걷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다. 함께 지낸 정이 아쉬운지 흰둥이가 졸랑졸랑 뒤를 따라 온다. 뒤돌아보면 멈춰 서고, 앞으로 나가면 따라온다. 혹시 길을 잃을까해서 쫓아도, 30여분 동안을 계속 따라오더니 강폭이 넓어지면서 길이 복잡해지고, 강변에 텐트 친 사람들이 있는 지점에서 언제 되돌아 갔는 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건너편 강변에는 흰 왜가리, 검은 물새들이 가끔씩 보이고 황새여울 근처에는 대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고 한가로이 앉아 있다. 변 교수는 쉬는 곳이 명당이라는 명언을 남긴다. 가다가 쉬는 곳은 예외 없이 시원한 그늘, 땀을 식히는 바람, 정겨운 물소리가 어울러 진 곳이다. 이렇게 쉬엄쉬엄 걸어 진탄나루에 도착한 것이 10시 40분경. 그저께 밤에 깊이를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여울은 고작 정강이가 잠길 정도의 깊이 밖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대부분이 젊은 학생들, 또는 회사원들이고, 이따금 어린이들, 그리고 아줌마 부대도 보인다. 12시경에 우리와 합류 할 팀이 도착하여 점심을 마치고, 조를 편성했다. 고무보트에는 통상 10인이 탑승, 함께 노를 젓는다.
우리 셋은 회사원 6명과 한 조를 이루었다. 과장으로 불리우는 사람은 30대중반을 넘어 보이고 계장인 여직원을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20대들이다. 간단한 준비운동 후에 구명조끼와 헬멧 착용 법을 가르쳐 주고 조별로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안전요원은 노를 다루는 방법, 노 젓는 법, 기타 안전 수칙을 일러 준 후 각자에게 보트의 자리를 정해준다. 우리들 세 늙은이는 가운데 자리에 배치되고, 여자 2명은 뒷자리에 자리를 정해준다.
동강에는 급류가 많지를 않아 래프팅이라기 보다는 강변의 빼어난 경관을 즐기는 물놀이라고 한다. 위험하지도 않다. 섭새까지 내려오는데 약 4시간정도 시간이 걸린다. 안전요원은 강 양편의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이름 있는 여울에 오면, 그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울러 여울 놀이에 알맞은 준비된 프로그램을 하나씩 진행해 나간다. 보트를 좌우로 요동치게 하여 물 속에 빠뜨리기, 지나가는 옆 배와 물싸움하기, 배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여울 타기,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승객들에게 노래도 시키고 여직원을 뱃머리에 세워 타이타닉의 유명한 장면을 연출시키기도 한다. 위험이 없는 뱃놀이다 보니 안전요원은 안전요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광 가이드라고 할만큼 승객들을 즐겁게 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듯 싶었다. 아마도 래프팅 회사간에 경쟁이 심해서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고객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 한동안 동심으로 돌아가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일까? 하루에 수천 척의 고무보트가 동강을 흘러 내려온다고 한다. 안전요원은 우리의 기차시간까지 의식하곤 샤워를 끝나자 대기했던 회사 코란도가 우리를 역까지 태워주도록 수배해 준다. 코란도는 10분여를 달려, 5시 15분경 우리들을 영월역에 내려 주었다. 기차 출발시간 30분 전이다.
4
우문제씨 집 앞마당 평상에 앉아 있으면 저 아래 동강 줄기가 뜰 안으로 흘러들어 올 것같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느새 시야에서 벗어난 물줄기는 슬그머니 왼쪽으로 감돌아 작은 여울을 만들며, 물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우문제씨 집에서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가 이 물소리이고, 아침에 잠이 깨어 제일 먼저 듣는 소리도 바로 이 물소리이다.
집 뒤로는 촛대봉이 뒷산 노릇을 한다. 촛대봉은 그 높이가 880미터가 넘는 백운산에 뒤지지 않는 바위산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등산이 어렵다고 한다. 이 촛대봉이 집 뒤를 받치고 있어 집안에서는 백운산 정상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백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제2봉, 제3봉이 좌청룡을 이루었고, 동강을 뒤로 저 멀리 칠족령이 우뚝 솟아있다.
문희마을에는 네가구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주 인구는 모두 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문제씨 자녀 2명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영월 부근에 살며 초등학교를 다니고, 방학이나 주말이 되어야 문희 마을에서 부모들과 함께 지낸다. 내년부터는 토요일 수업이 없어 토요일에도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부자가 함께 즐거워 하고 있다. 요즈음은 방학 때라 네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문제씨는 강 건너의 밭 8,000여평, 집 뒤쪽의 밭 12,000여평에서 밭농사를 하면서 민박을 받고 있다. 밭농사가 어느 정도 일거리인지 감을 잡을 수는 없으나 민박 일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다. 토요일에는 무박으로 칠족령을 넘은 50여명의 등산객들이 아침 7시에 우문제씨 집에서 식사를 하고 래프팅을 하기 위해 진탄나루로 떠났다. 일요일에도 또 한번 전쟁을 치러야 한다니까 비슷한 규모의 식사 준비를 해야하는 모양이다. 음식이 간이 맞고, 두 부부가 성실하여 일년 내내 민박 손님이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우문제씨는 대통령과 총리만 다녀가지 않았다고 농담을 한다.
평당 500원에 산 땅이 이제는 100배나 뛰어 상당한 자산가가 된 외에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 단골 민박 객을 확보한 우문제씨지만 여전히 순박하고 겸손하다. 어라연의 이해수씨와는 달리 자연 속에서의 삶을 즐기는소박한 모양이 보기 좋다.부러운 일이다.
(2001.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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