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 건너에서 본 영남루


3번째 먹거리 여행을 떠난다. 말이 좋아 먹거리 여행이지, 실제로는 짧은 시간에 많을 것을 보려는 욕심으로, 2박 3일의 여행기간 동안, 1,000Km 이상을 달리는 강행군이다. 그것도 1톤짜리 봉고트럭을 타고서 말이다.


처음으로 이 여행을 제안한 김광현 사장은 은퇴 후, 소일꺼리로 묘목재배를 시작한다. 이제는 5년이 넘게 캐리어가 쌓여, 전문가가 되다 보니, 묘목 재배지가 중부지역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따라서 묘목을 돌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활동범위도 넓어져서, 그의 승용차이자 작업차인 1톤짜리 봉고트럭의 년 간 주행거리는 5만 키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발로 뛰는 김 사장에게, 나무 돌 볼일이 없는 12월, 1월은 참기 어려운 달이다. 그래서 매해 1월 중순이면, 삼목회 회원들에게 먹거리 여행을 떠나자고 꼬드긴다. 하지만 이 꼬드김에 걸려드는 것은 언제나 나와 김석근 사장 정도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로 1톤짜리 봉고트럭을 타고 여행하는 것이 쪽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저녁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김 사장의 투 캡 형 봉고트럭이 탈거리로 선택되어, 다른 차종과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김광현 사장에게서 찾아야 한다. 김 사장은 무지무지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여행기간 내내 계속 혼자서 운전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핸들 주위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천부(天賦)의 운전기사가, 승차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기름 값 덜 들고, 승용차보다 높아 조망 좋겠다, 4륜구동이라 못 가는 길이 없으니, 여행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차가 없다고 우기는데, 누가 다른 차를 거론할 수 있겠는가? 택도 없는 이야기이다.

김 사장과 김사장 애마


둘째는 여행자들의 관계다. 차주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자 간의 관계가 미묘해진다. 여행 동반자 관계인지?, 또는 운전자와 손님 관계인지?, 아니면 운전자와 조수 관계인지?, 도통 아리송해 진다. 그러니 머리 좋은 상과대학 출신자들이라, 이처럼 복잡한 관계에 처음부터 말려들려고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외 2박 3일간에 1,000Km 이상을 주파해야하는 중노동, 코 고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긴긴 밤, 여행코스에 대한 이견 조정 등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삼목회 회원들이 꼬드김에 걸려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럼, 김석근 사장과 나는 뭔가? 왜 따라나서는 건가? 이유야 간단하다. 역마살이 붙었는지, 둘이 다, 돌아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수석에서 지도를 보면서, 바이오 네비게이터 역을 담당한다. 김석근 사장은 넓은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 가지만, 차가 정차하면, 차의 외관 청소, 그리고 지출되는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 차가 일단 숙박지에 도착하면, 모텔을 찾아 들어, 현장 확인을 한 후, 그럴듯한 방을 잡는 것은 김석근 사장과 나와의 공동 임무다.


이번 3차 먹거리 여행은 출발 전부터 일이 꼬인다. 두 차례 풍 섞인 먹거리 여행담을 듣고, 비교적 순진한 정문모 사장이 동행하겠다고 따라 나선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지만 메일을 통해 여행코스를 상의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너희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이번에도 빠질 터이니, 셋이 잘 다녀오너라."라는 메일을 발송하고, 그 이후는 감감 무소식이다. 어찌나 섭섭하던지....


출발 전날, 김석근 사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몸이 이상하여, 이번에는 못 가니 둘이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다. 갑자기 맥박이 40회 정도 밖에 뛰지를 않고, 가슴이 쿵쿵거리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걱정이 된다. 우리들 나이에서는 건강을 자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먹거리 여행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무리하지 말고, 검사 잘 받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는다.


2006년 1월 17일(화).

7시 5분 전, 복정역에 도착하여 2번 출구로 나선다. 아직도 사방은 어둑어둑한데, 저 앞에 봉고트럭 한 대가 하얀 배기가스를 뿜으며 서 있다.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른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조수석에는 전나무 잔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나무 냄새를 풍기라고 쌓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좀처럼 서울을 벗어날 기회가 없는 딱한 중생을 위한 따듯한 배려인 모양이다.


트럭은 중부고속도로를 달린다. 회색빛 동천(冬天)이 안개를 타고. 고속도로까지 내려와 있다. 지난주보다는 훨씬 풀린 날씨지만, 고속도로변의 관목들은 하얀 서리꽃을 달고 춥다고 아우성이다. 트럭은 2차선으로 정확히 시속 80Km의 속도로 달린다. 의자가 딱딱해 엉덩이는 다소 고생을 하지만, 차가 높아 눈은 호강을 한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의 주행 - 이게 김 사장의 주행원칙이다. 이후 텅 빈 중부내륙 고속고로를 달릴 때도 이 원칙은 불변이다. 한번 원칙이 세워지면 좀처럼 이를 깨지 않는 것이 김 사장의 장점이다. 면전에서 싫은 소리를 해도, "어~허허~" 하고 한번 웃으면 그만이다. 그 만큼 대범하다. 김 사장의 또 다른 장점이다. 이처럼 겁 없이 김 사장의 흉을 보는 것도 다 김 사장의 이 "어~허허~"를 믿기 때문이다.

한가한 중부 내륙고속도로


여주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하느라 잠시 머물고, 중간에서 두어 차례 용무를 보기위해 정차한 것 이외에는, 트럭은 줄곧 달려, 12경, 창녕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24번 국도로 내려선다. 서울을 출발한 후 5시간을 달린 것이다. 고속도로를 제 속도로 달린 것 보다 약 1시간 정도 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늘의 기착지는 울산이다. 하지만 울산에 가기 전에 옛 가락국의 땅, 밀양을 둘러보자는 욕심에서 우회로를 택한 것이다. 유명한 영남루와 아랑각, 표충사, 얼음골, 호박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24번 국도를 달리면서 밀양시 산내면, 단장면에 걸쳐있는 웅장한 영남알프스의 능선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24번 국도는 화왕산(757m)허리를 굽이굽이 감돌아 오른다.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요즈음은 부곡을 거쳐 밀양으로 들어가는 편한 길이 있다지만, 24번 국도에서 보는 이 아름다움은 놓치기 아까운 풍광이다.


밀양 시내로 들어서서, 이정표를 참고로, 물어물어 좁은 골목길을 올라 영남루에 이른다. 다행스럽게도 아랑각, 박시춘 생가, 무봉사, 밀양 시립박물관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밀양 아리랑 노래비(碑)를 카메라에 담고, 건너편 영남루로 들어선다. 입구에 매표소가 있지만 사람은 안 보인다. 덕분에 공짜로 들어선다.

밀양아리랑 노래비

한곳에 모인 밀양 유적

오른쪽으로는 연꽃무늬의 돌꽃인 석화(石花)와 단군을 비롯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덟 왕조의 시조왕 위패를 모신 천진궁이 배치돼 있고, 너른 뜰을 건너 밀양강 변에 영남루가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1843년 이인재(李寅在)부사가 중건한 조선시대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석화

석화 해설

만복문과 천진궁


밀양강은 낙동강의 지류라고 한다, 그 밀양강 절벽에 자리 잡은 영남루에 올라, 밀양시를 굽어보며 밀양 아리랑을 웅얼댄다. 강물은 굽이쳐 흐르고, 누각 아래 대나무 숲이 푸르다. 건물 내부를 돌아본다. 많은 명필 현판들이 붙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이인재 부사의 두 아들, 이증석(11살)과 이현석(7살)이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현판이라고 한다.

영남루에서 본 밀양강

올려 본 영남루


 

 

현판들


영남루를 나와, 비탈길을 따라, 강변으로 내려서서 아랑각을 향한다. 아랑각 담장에 뿌리박은, 밑둥만 남은 오랜 고목에서 새로운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경이롭다. 아랑각은 밀양부사의 딸 윤동옥(尹東玉)이 유모와 함께 영남루로 달구경 나왔다가, 괴한의 핍박을 받게 되자,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애절한 전설이 있는 아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63년 10월 육영수 여사가 헌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랑각

아랑의 영정

부사 이상사(李上舍) 앞에 나타난 아랑


아랑각을 둘러보고 다시 영남루 쪽으로 올라온다.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3,000여곡의 대중가요를 작곡한 박시춘 씨가 낳고, 성장한 생가는 관광 시즌이 아니어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어, 담 너머로 뜰 안의 사진만 찍고, 시립박물관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다. 3층으로 된 박물관에는 단원 김홍도의 선유도, 오원 장승업의 화조도와 같은 그림 외에도 밀양지역의 많은 향토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시간이 없어 내부 관람은 생략하고, 주변만 둘러 본 후 서둘러 계단을 내려선다. 벌써 1시 30분이 가까워진다. 무봉사 참배도 생략하고 트럭으로 돌아온다.

박시춘 생가

박시춘 생가의 뜰

박물관 정원에 세워진 사명대사동상


트럭에 올라, 밀양강을 건너, 멀리서 영남루를 바라보며, 식사할 식당을 물색한다. 밀양의 향토 음식으로는 고동국, 회를 치지만 김 사장은 민물고동이라고 이를 꺼린다. 전통 찜이 유명하다지만 식당이 상남면에 있어 제법 거리가 멀다. 가능하면 진행 방향인 산내면, 단장면 쪽에서 식사를 하려고,식당에 전화를 해 보지만, 시즌이 아니라 영업을 않는다는 대답이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강변 가까운 곳에서 주차가 가능한 남경정이란 자그마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수육과 설렁탕을 주문한다. 식당 모양새에 비해, 음식이 깔끔하고 맛이 있다. 백세주를 반주로 점심을 포식한다. 김 사장은 운전을 해야 하니, 술은 한두 잔에 그쳐야 하고, 나머지는 전부 내 몫이다. 비용은 반부담이 원칙이니, 횡재를 하는 기분이라 싫지가 않다. 식사를 마치고 주인에게 표충사로 가는 길을 자세히 물은 후, 2시 40분 경 표충사로 향한다.


표충사가 가까워지자 주위 산세가 범상치 않다. 표충사는 재약산의 사자봉, 수미봉, 분수봉 등을 등지고 펼쳐진 큰 가람이다. 일주문을 지나, 노송이 울창한 송림을 거쳐, 경내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표충서원, 유물관이 배치된 마당을 지나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본당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팔상전, 대광전, 관음전, 명부전, 표충사 누각, 표충사 종루, 그리고 삼층 석탑과 석등이 빼꼭 차게 들어서 있다.

일주문

표충사

유물관

3층 석탑

대광정

팔상전과 사자봉


표충사 누각 앞에서 약초 등을 팔고 있는 보살님은 이 자리가 바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과 왜군이 격전을 벌였던 전장 터였다고 설명하면서, 주위의 산세를 가르친다. 지금은 표충사 국민관광지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유서 깊은 표충사를 훑어보고, 경내 매점에서 뜨거운 대추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 후, 다음 경유지인 얼음골로 향한다. 얼음골로 향하는 24번 국도에서 보는 주위의 산세가 웅장하다. 영남 알프스에 속하는 운문산(1,188m), 가지산(1,240m)이 가깝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얼음골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지방 도로로 내려서서, 12분 쯤 달리니, 오른쪽으로 커다란 가지산 도립공원 안내판이 보이고,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언양가는 길

얼음골로 가는 지방도로 분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휴게소 옆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건너 얼음골로 향한다. 얼음골은 밀양시 산사면 남명리 소재의 천황산(1,189m) 북쪽 중턱, 해발 600m~700m에 이르는 약 9,000평 넓이의 계곡이다. 이곳은 4월 초순부터 바위 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 많아져, 삼복시기가 되면 절정에 이르게 되고, 반대로 한겨울에는 얼음이 녹아 물에 더운 김이 오른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224호로 지정된 얼음골은 표충비각, 무봉사 태극나비, 만어사 어산불영경석과 더불어 밀양의 4대 신비로 불리운다.


도립공원이라 길이 잘 정비돼 있고, 왼쪽으로 얼음골 450m를 알리는 이정표도 보인다. 천황사에 이른다. 암자같이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인적이 없는 사찰로 들어가 법당에 모신 천황사 석불좌상를 구경하려고 닫힌 법당 문을 당겨 보지만 안으로 잠겼는지, 끄덕도 않는다. 할 일 없이 천황사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130m 떨어진 결빙지로 이어지는 돌길을 오른다.

이정표


이제까지의 길과는 달리 골짜기가 깊어지며, 돌길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 미끄럽고, 오른쪽 골짜기로 떨어지는 천황산 너른 사면에는 거대한 너덜지대가 펼쳐있어,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골짜기에는 귀기(鬼氣)마저 감도는 듯싶다. 동의보감의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하며, 인체를 속속들이 공부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천황산 너덜


이윽고 보호철책이 둘려진 결빙지에 이른다. 비스듬이 쌓인 바위 틈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한 옆에 얼음골을 설명하는 해설판이 세워져 있다. 실로 자연의 신비는 무궁무진한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벌써 시간은 5시가 넘었다. 왼쪽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가 보인다. 지형으로 보아 가마골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인 듯싶다. 올라왔던 미끄러운 길보다는 이 길이 수월해 보이고, 가마골 폭포도 구경할 겸, 왼쪽 길로 접어든다.

결빙지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서 뒤돌아 천황산과 너덜지대를 바라본다. 어둡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실로 장엄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언덕을 지나 가마골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계단길 이다. 가마골에 내려선다. 폭포는 중턱에서 얼어붙어 있고, 용립한 암봉 사이로, 가마솥을 걸어 놓은 아궁이 같이 생긴, 긴 협곡이 유현(幽玄)하다. 여름에 오면 장관이겠다. 서둘러 계단을 따라 협곡을 빠져 나온다. 10여분을 달려 내려 천황사에 이른다.

뒤돌아 본 천황산

가마골 폭포

가마골 협곡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호텔 아이스 벨리"에는 벌써 두서너 군데, 불이 밝혀진 곳이 있다. 작고 아담한 호텔이다. 우리는 오늘 반나절 남짓 밀양을 돌아보았지만 밀양에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하루 또는 이틀 정도, 집사람과 함께, 호텔 아이스 벨리 같은 곳에 묵으면서, 차분하게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호텔 아이스 벨리


사례 호박소는 얼음골에서 2Km 밖에 안 떨어진 관광명소이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지금 시각에는 갈 곳이 못된다. 아쉬움을 안고, 24번 국도에 올라 울산으로 향한다. 도로가 오르막을 오르면서 오른쪽의 취서산(1,092m), 신불산(1,209m),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영남 알프스가 웅장한 모습으로 따라온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영남 알프스를 종주하려면 2박 3일의 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올 가을, 억새 철에, 꼭 한번 종주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영남 알프스 - 퍼온 사진


동남쪽 저 아래로 언양과 그 뒤로 울산시에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언양을 지나 우리는 울산 12경중의 하나로 꼽히는 "무룡산에서 본 공업단지 야경"을 확인하기 위해 외곽도로인 북부순환도로를 거쳐, 31번 국도를 타고, 무룡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반대편 도로에서 진입하는 무룡산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바닷가, 정자동까지 내려와. 파출소에서 무룡산 진입로를 묻는다. 경찰관은 자세히 길을 가르쳐주며, 무룡산 오르는 도로가 좁고 험해, 밤에는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무룡산 정상에는 TV 3사 송신탑이 솟아 있고, 이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좁은 시멘트 도로가 가파르게 구불구불 이어진다. 마주 오는 차가 서로 빗겨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이다. 외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봉고트럭은 나 홀로 잘도 오른다. 길이 굽어지는 곳에서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무성한 억새가 바람에 쓸리고 있다.


남산 타위에 올라가, 서울 야경을 보는 식의 전망대를 기대했으나, 무룡산 정상에는,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은 전혀 없다. 정상의 요지는 3개의 송신탑이 차지하고, 철책을 둘러쳐서,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겨우 남쪽사면 한 귀퉁이에 서서, 나뭇가지의 방해를 받으며, 발아래 울산공단의 야경을 본다. 가히 장관이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고, 시간도 늦었다. 서둘러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하지만 노출시간이 길어지면서, 손 떨림 현상이 나타나, 좋은 사진을 얻는데도 실패한다.

무룡산 정상

무룡산에서 본 공단 야경


차로 돌아와 서둘러 하산한다. 8시가 훨씬 넘었다. 이제는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는 일이 급하다. 두 차례 먹거리 여행을 하면서 터득한 요령 중에 하나는 숙소는 시장 부근에 정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점이다. 울산에서는 중구 옥교동 중앙시장 근방에 숙소를 정하고, 시장에서 곰장어를 안주로 술 한 잔을 한 후, 숙박을 한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는 가까운 태화강 변을 일주하기로 계획을 세운바 있어, 중앙시장으로 차를 몬다.


중앙시장 부근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는다. 새로 지은 듯한 말끔한 모텔들이 눈에 뜨인다. 그럴 듯한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가 온돌방을 달라고 하니, 쪽문을 반쯤 열고, 아줌마가 흘긋 내다보더니, 온돌방은 없다고 한다. 분위기가 숙박객을 받는 모텔이 아니라 2~3시간 방을 빌려주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모텔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조금 수수해 보이는 모텔을 찾아서 온돌방을 찾는다. 역시 침대방 뿐이란다. 침대방이라지만 트윈이 있을 리 없고, 싱글 베드일 터이니, 난방을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바닥에서 자는 사람은 감기 걸기 십상이겠다. 김석근 사장도 없어서, 혼자서 온돌방을 찾아 주위를 맴돌며 헤맨다. 고약하다. 아시다시피 모텔의 사무실은 대체로 2층에 있다. 주차장과 통하는 1층 현관을 지나 2층으로 오르는 구조가 많다. 주차장은 너덜거리는 고무 차단막이 걸려 있어, 이를 헤집고 현관에 들어서면, 반나체의 아가씨 사진들이 현관 바닥에 너절하게 널려있다.


한 시간이 넘게 열 댓 군데를 드나들지만. 온돌방 주겠다는 곳이 없다. '요것 봐라, 울산, 참 맹랑한 도시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침대방 2개를 빌릴 각오를 하고, 이름도 유혹적인 신축, 큐피트 모텔을 찾아 사무실을 두드린다. 다행이 온돌방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특실이라 60,000원 짜리 방인데, 45,000원만 내고 묵으라고 한다. 늙은이 두 사람이 잘 것이니, 특실은 필요 없고, 일반실을 달라니까 일반실은 없다는 반응이다. 40,000원으로 깎자고 해본다. 아주머니는 안 되겠다고 쪽문을 닿으려는데, 옆의 아저씨가 40,000원에 주무시고 가라고, 선선히 받아 준다.


짐을 숙소로 옮기고, 10시가 넘은 시간에 식당을 찾아 나선다. 이 시간에 시장 통에서 곰장어 집 찾다가 시간을 보내다보면, 저녁을 굶을 판이다. 큰 거리에 삼겹살 집들이 나란히 연이어 있다. 그 중에서 손님 많은, "구이사랑" 집으로 들어가, 돼지갈비를 주문한다. 음식 맛이 좋고, 젊은 울산 아줌마의 인심이 후하다. 맥주, 소주, 백세주를 차례로 마시며, 시장했던 김이라 한껏 포식을 한다.

생맥주집 나폴레옹 앞의 김 사장


11시 반이 넘어, 식당을 나와 모텔로 돌아간다. "나폴레옹"이란 생맥주 집 간판이 보인다. 김 사장이 어찌 생맥주집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김 사장은, 딱 한 조끼씩만 마시자며, 내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맥주 집으로 들어선다.

 


(2006.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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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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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고개에서 오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어머니는 매해 김장철이면 배추를 100포기에서 150포기 정도를 사다가 김장을 담그셨다. 7남매와 함께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다. 집사람은 10포기 정도의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장을 한다. 배추 량이 엄청 줄었지만 역시 겨울 준비임에는 틀림이 없다. 장모님이 오시고, 처형, 처제도 와서 모처럼 집안이 북적댄다.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이 반가워 데굴데굴 굴고, 껑충껑충 뛰던 짱아 녀석은 막상 김장이 시작되고, 여자들이 바삐 움직이자, 거실 한 귀퉁이, 제 방석 위에 납죽 엎드려, 두 눈만 굴리고 있더니, 이내 심심한지 잠이 들어 버린 눈치다. 이달 12월이면 만 8살, 사람으로 치면 50대 후반에 해당하는 나이다. 눈치가 빤한 녀석이라, 일하는데 거치적대다가 야단맞을 짓은 아예 하려들지 않는다.


전에는 김장철이면, 마당 한 귀퉁이를 파서, 김장독을 묻는 일은 남자들 몫이었다. 하지만 주거환경이 바뀌어 마당이 사라지고, 딤채라는 훌륭한 김치 냉장고가 등장하고 난 이후에는 김장철에 남자들이 할 일이 따로 없다. 김치 속을 넣을 때가 되면, 간을 보라고, 집사람이 배추 속고갱이에 방금 버무린 속을 싸서 한 접시 들고 들어온다. 잘 절여진 배추 맛이 부드럽고, 무와 굴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김장 쌈을 맛보며, 머릿속의 시계바늘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 어머니가 김치 담그던 정경을 떠 올린다.


이렇게 김장을 마치면, 집사람은 겨울나기 준비에서 벗어나 홀가분해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이럴 때 당일치기로 어디 한 차례 바람이라도 쏘이고 온 다면 많은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잔머리를 굴린다.


차를 타고 훌쩍 드라이브만 하는 것은 좀 싱겁다. 3~4시간 정도 가볍게 걷고, 철에 맞는 별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멀지 않은 오서산이 제격이겠다. 오르막길이 제법 힘이 든다고는 하지만, 오서산 정상에 올라, 철 지난 억새도 보고, 날씨만 좋다면 막힘없이 탁 트인 서해바다를 조망한 후, 천북면 장은리 굴단지에 들러 제철인 굴구이를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2005년 11월 30일(수).

주초부터 강한 바람에, 눈, 비가 뿌리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다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모처럼 정한 일정이라, 동생네 부부와 짱아까지 합쳐, 일행 다섯이, 새벽 6시, 오서산을 향해 출발한다. 새벽길을 나섰는데도 여자 둘은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뒷좌석에서는 이야기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새벽인데도 하향 길 경부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윽고, 서해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해대교를 건넌다. 여자들은 행담휴게소는 너무 복잡하니, 다음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자고 한다. 7시 40분경, 서산휴게소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휴게소 스피커에서는 대중가요 소리가 요란하다. "에그, 저 놈의 소리 좀 죽일 수 없나?"


짱아는 애견 보호소에 넣어 둔다. 안 됐지만, 지가 따라 다니려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서둘러 식사를 마친 집사람이 짱아를 보호소에서 꺼내 안는다. 짧은 시간인데도 짱아는 벌써 눈물, 콧물이 범벅이고, 보호소에 넣은 것이 원망스러웠던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서산휴게소를 출발한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무척 한산하다. 광천 인터체인지에서 요금을 계산하며, 오서산 가는 길을 묻는다. 광천 읍내를 통과하다가 오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광천은 토굴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이나 어리굴젓 등 젓갈류로 유명한 고장이다. 알부자들이 많고, 그래서 광천에 가서는 돈 자랑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광천 읍내는 길이 좁고,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알부자들이라 외관 치장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오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진행한다. 진행하는 길 요소요소에 이정표가 잘 부착돼 있어, 초행이지만, 어렵지 않게 오서산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달린다.


눈앞에 삼각형 모양의 오서산이 다가오고, 산 아래로 접근하자, 오서산 등산로를 알리는 팻말이 도로 왼쪽으로 보인다. 팻말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왼쪽 시멘트 길로 들어선다. 시멘트 길은 차 하나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외길로, 마을로 이어진다. 정암사까지는 한참 거리라는데 아무리 보아도 정암사로 오르는 차도는 아닌 듯싶다.

중담마을에서 본 오서산 전경

마침 등산객 한 사람이 도로를 따라 걷고 있다. 등산객에게 묻는다.


"안녕하세요? 이 길이 정암사 가는 길, 맞나요?"

 

"정암사 가는 길은 맞는데, 차를 타고 가시게요? 차를 타고 가시려면 큰 길로 다시 나가, 주차장을 끼고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가셔야 해요."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좁은 길에서 겨우 차를 돌려,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나와 주차장 쪽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넓은 상담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을 끼고 시멘트 도로가 산 쪽으로 이어진다. 시멘트 도로로 들어선다. 오늘은 주중이고, 이른 아침이라 통제요원이 보이지 않지만, 주말이나 등산객들이 많은 시즌에는 정암사로 이어지는 이 도로는 차량 출입이 통제되어,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등산로를 통해 정암사로 오르게 된다.


시멘트 도로가 그치고, 자갈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안심사라는 암자가 보인다. 자갈길이지만 비교적 손질이 잘 되어, 승용차가 오르기에 별 어려움이 없다. 도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길 양쪽으로 낙엽송 숲이 울창하여, 길은 온통 노란 솔잎으로 뒤 덥혀 있다. 절이 가까워지나 보다, 다시 시멘트 길이 나타나고, 꼬불꼬불 경사가 급해진다. 이윽고 정암사 바로 아래, 작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정암사 일주문 앞에 모여 선 나들이 일행

오서산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과 보령군 청소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예부터 까마귀가 많이 서식하여 오서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서해바다를 끼고 넓게 펼쳐진 평야에 산 하나가 해발 고도 790.7m로 우뚝 솟아 있어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주능선에서 보는 조망이 아주 빼어난 산이다.


주능선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바위지대와 부드러운 육산이 혼재해 있어, 바위지대에는 거센 해풍에 시달린 청송들이 낮은 자세로 바위들과 조화를 이루고, 육산에는 억새가 무성하여, 특이한 경관을 자랑하는 산이다. 10월 초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억새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77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자들이 극락전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하는 동안, 정암사 주위를 둘러본다. 정암사는 오서산 북쪽, 바위가 많은 가파른 사면에 작은 터를 잡고, 서쪽을 향해 세워진 절이다. 절터가 비좁아서인가? 일주문과 종각을 합쳐서 지은 건물이 특이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정암사 본당이 자리를 잡고 있고, 본당 뒤로 좁은 마당을 건너, 극락전이 배치돼 있다. 극락전 오른 쪽, 조금 높은 자리에는 자그마한 산신각이 덩그마니 놓여 있다. 그게 전부다. 고려시대 때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라고는 하지만 대웅전도 없는 작은 사찰이다.

일주문과 종루가 합쳐진 특이한 구조의 건물

정암사 본당 현판

극락전

정암사 본당 건물은 지붕을 보수하는 중이고, 스님들은 불도 닦기에 맹진 중인지, 경내에는 인적이 없다. 산 북쪽 사면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초겨울의 산사 분위기가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이윽고 여자들이 참배를 마치고 나온다. 우리들은 9시 25분 경, 일주문을 나서서, 화장실을 지나, 왼쪽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이라 산을 오르는 사람은 우리 일행뿐이다.


짧은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져, 부드러운 오름길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서 있다. <상담 주차장 2.8K, 오서산 정상 2.6K>. 억새 철이 지난 평일, 이른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덕에 상담 주차장에서 정암사까지의 2.8Km는 차를 타고 올라와 여자들의 산행이 한결 수월해진다. 정상까지는 고작 2.6Km, 아무리 산이 가파르더라도, 능선에 올라 바람만 강하지 않고, 날씨만 좋다면 오늘 나들이는 성공적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정표에서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더니,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날카로운 돌들이 비쭉비쭉 솟은 험한 길이다. 북쪽 사면이라 등산로는 딱딱하게 얼어있다. 매제(妹弟)가 앞장을 서서 오르고, 짱아가 쫄랑쫄랑 뒤를 쫓는다. 짱아는 어렸을 때부터의 산책으로 다리 힘이 좋고,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한 덕에 가파른 산길도 거침없이 오른다. 그 뒤로 여동생이 오르고, 한참 쳐져서 집사람이 힘겹게 급사면을 오른다.


나는 여기서도 후미로 쳐져, 집사람과 4보정도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를 따른다. 허리를 펴고, 발뒤꿈치부터 확실히 땅을 딛고, 앞으로 체중을 옮기며, 천천히 오르라고 행보 법을 가르쳐준다. 매제를 따라 오르던 짱아 녀석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쏜살같이 다시 앞서 오른다.


경사가 더욱 심해지며,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간혹 나무계단 폭이 너무 넓어 집사람이 힘들어 한다. 9시 47분, 북서쪽 사면이 터진, 전망대에 이른다. 발아래 지나온 광천읍이 널찍하게 펼쳐 있다. 생각보다 넓은 고장이다. 아파트인지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 아마도 종래의 광천읍에서 외곽으로 새로운 타운이 조성되는 모양이다.

광천읍

지루한 계단길이 끝나고, 더욱 경사가 급해진 등산로에는 굵은 로프가 매어져 있다.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이놈의 오르막은 길기도 하네..." 라며 집사람이 힘들어 한다. 위에서 기다리던 짱아 녀석이 답답한지 쪼르르 달려 내려와 같이 걷다가는 다시 앞서 나간다.


10시 경, 아차산(424.4m)과 오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고개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정암사 0.6K, 오서정 0.9K> 이제 힘든 고비는 넘긴 것이다. 커다란 바위 앞에 모여 따듯한 물을 나눠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주능선에 올랐는데도 바람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씨다. "천사가 나들이를 하면, 햇님이 웃는다." 라고 하더니 우리 일행 중에 천사가 있는 모양이다. 바람걱정, 날씨걱정을 모두 털어 버린다.

능선분기점 이정표

더운 물을 마시고 한 숨 쉬고 나니 기운들이 나는 모양이다. 쾌청한 날씨에 차가운 대기가 한없이 상쾌하다. 주능선을 타고 천천히 오른다. 조그마한 바위에 올라서니, 서쪽 조망이 확 트인다. 아차산 너머로 드넓은 보령군 청소면이 펼쳐진다. 너른 들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뚜렷하고, 서해바다가 평야로 깊게 만입한 천수만이 푸르다. 옅게 드리워진 안개 때문에 길게 누운 안면도는 희미하다. 모두들 시원하게 터진 조망에 탄성을 발한다.

아차산과 천수만

천수만과 안면도

완만한 오르막 등산로가 이어진다. 앙상한 참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어뜨렸지만, 바람이 심해서인지 등산로는 낙엽도 쌓이지 않은 붉은 황톳길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한없이 푸르다. 환갑이 지난 여인 둘이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며, 소녀들처럼 연신 감탄사를 발한다. 등산로 위로 나지막하게 드리워진 푸른 소나무 가지 아래로 산책하듯 걷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림 같다.

파란 하늘 - 동생 사진

쾌적한 등산로

등산로는 암릉으로 이어진다. 저 앞에 높다란 바위 전망대가 솟아 있고, 높은 바위 위에는 소나무 두어 그루가 분재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허공에 떠 있다. 오른쪽으로는 오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다.

멀리 본 전망바위

정상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오서정이 작게 보인다.

바위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환상이다. 철 지난 억새, 검은 바위와 푸른 소나무, 그리고 키 작은 관목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그 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대기는 아직도 차갑지만 맑은 하늘에서 거침없이 내려 비치는 햇살로 등에는 땀이 배이기 시작한다. 전망대가 가까워질수록 암릉 길이 험해진다. 마치 오석처럼 반듯반듯한 돌들이 무척 미끄럽다. 겁 없이 몇 차례 기어오르다 미끄러진 짱아 녀석의 행보가 조심스러워 진다.

전망바위오르는 길

바위 전망대 위에 선다. 서쪽과 남서쪽 조망이 끝내준다. 걸어 온 능선을 따라 내려다보면, 저 아래 아차산 너머로 청소면 너른 들이 질펀하고, 남서쪽으로는 성연저수지가 바로 발아래 푸르다. 그 뒤 첩첩히 이어진 나지막한 산 너머로 대천 해수욕장이 희미하게 보인다. 조금 더 왼쪽으로는 청천저수지가 멀리 이어지고, 그 뒤로 충청도에서 제일 높은 성주산이 뚜렷하다. 뒤를 돌아보면 가야할 오서정에서 오서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이 눈앞에 다가온다.

성현 저수지

아차산과 걸어온 능선

가까이 본 전망바위

바위 전망대를 지나 능선은 오른쪽으로 굽어지고, 등산로 주변은 억새가 지천이다. 오늘 보니 억새는 역광으로 볼 때 희게 반짝인다. 철 지난 억새밭은 많은 등산객들에게 밟히고, 눌린 자국들이 역역하다.

내려다 본 전망바위

멀리 본 오서산 정상

억새 1

억새 2

억새 3 -동생 사진

오서정에 이른다. 막힘없이 사방을 모두 둘러 볼 수 있는 좋을 자리에 정자가 서 있다. 북으로 멀리 홍성이 보이고 그 뒤로 용봉산이 희미하다. 북동쪽으로 죽전리, 화계리, 광성리에 펼쳐진 너른 들이 질펀하고, 광천 저수지가 가깝다. 동남쪽으로는 칠갑산이 아련하다. 남으로 뻗은 능선은 오서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동쪽 공덕고개에서 오서산으로 기어오르는 능선이 힘차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계를 굽어보는 느낌이다.

오서정

정상 가는 길

동쪽 조망

칠갑산 방향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악휘봉, 신선봉, 고적대 등 전망 좋은 곳을 여러 곳 보았지만, 바다를 굽어보며, 평야 위에 우뚝 솟아있어, 그림같이 질펀한 평야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는 오서산 같은 곳이 흔치 않다. 오서정에 걸린 단 하나의 현판의 내용도, 자연보호를 하자는 말로 해석 되어 재미가 있다

오서정에 걸린현판

간이 통신탑을 지나, 12시 경에 오서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는 정상석 2개와 삼각점, 이정표 그리고 오서산 등산 안내도 등이 골고루 비치돼 있다. 정상석은 보령시와 광천읍에서 각각 세운 모양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헬리포트에 모여 앉아, 과일 등을 먹으며 아름다운 조망을 완상한다.

정상을 향하여

오서산 정상

짱아 녀석은 오랜만의 등산이 피곤한 지, 벗어 놓은 내 재킷에 코를 박고 엎드려 쉬고 있다. 두 여인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광활하고 아름다운 조망, 역광 속에서 반짝이는 억새,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화창한 날씨, 그리고 푸른 하늘에 매료되어,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다.

헬기장의 짱아

매제와 나는 꼬냑을 정상주로 마시고, 조망 해설판이 있는 건너편 봉우리로 향한다. 봉우리에 서니 성주산, 칠갑산, 대천 해수욕장이 더욱 뚜렷하다. 이윽고 짱아와 두 여인이 쉬고 있는 헬리포트로 되돌아와, 12시 45분 경, 일행은 올라온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성주산

대천해수욕장

하산 길의 시계가 더욱 투명하다. 옅은 안개에 가려 아련히 보이던 안면도와 대천 해수욕장이 이제는 보다 뚜렷하다.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쫄랑쫄랑 내려서는 짱아를 보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반색을 한다. 정상에서 내려온다고 하니, 짱아의 오서산 정상정복을 축하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산길

급경사 하산 길을 힘겹게 내려선다. 매제도 하산길이 힘들었다고 하니, 여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2시 10분 경 정암사에 도착한다.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이면 충분한 산행 거리를, 4시간 45분 만에 주파한 것이다. 배가 고프다. 서둘러 차에 올라 천북면 장항리의 "굴단지"로 향한다.

굴단지

40번 국도가 이어지는 방조제 부근에 100여개가 넘는 천막집 매점들이 굴 구이로 성업 중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럴듯해 보이는 집을 찾아 들어선다. 석화 한 다라에 25,000원이다. 가스 불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석화를 올려놓으면, 불에 익은 석화가 입을 벌린다. 이놈을 집게로 들어 올려, 칼로 입을 완전히 벌리게 하고, 굴을 도려 내, 초장에 찍어 먹는다.


가스 불에 굴 껍질이 탁탁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고, 입 벌인 놈을 골라, 면장갑을 낀 손으로 옮겨, 칼질을 해서 먹으려니, 맛은 좋으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굴구이 집 아줌마의 도움을 받으며, 굴 까는 솜씨들이 점차 익숙해진다. 구은 굴은 백세주 안주로도 일품이다. 25,000원짜리 한 다라면 4사람이 충분히 포식을 할 수 있는 양이다. 굴국수도 맛을 보고, 매점을 나서니, 어느덧 5시다. 방조제에 올라,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뻘건 태양이 바다 속으로 텀벙 잠겨버린다.

석양

일몰

방조제 위를 달려, 남당을 지나고, 홍성 인터 제인지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오른다. 오후 늦게 포식한 굴구이와 굴국수로 만복 상태라, 서울에 도착해서도, 저녁을 생략한 채 헤어진다. 8시 30분 경 집에 도착한다.

 


(200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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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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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단풍구경도 할 겸 바람을 쏘이고 싶어 한다. 제대로 된 단풍을 보려면 산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집사람 체력이 산길을 3시간 이상 걷는 것이 무리라. 주산지와 주왕산의 주방천 계곡을 돌아보기로 하고 동생부부와 함께 길을 떠난다.


이제는 도로 사정이 좋아져, 웬만한 곳은 당일치기 나들이가 가능하다. 2005년 11월 1일 아침 6시 집을 떠나 주산지를 먼저 들르고, 주방천 계곡을 여유 있게 둘러 본 후, 10시 30분경 귀가한다. 이때의 사진들을 정리한다.


차는 한적한 중앙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매제가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면서 "바이오 네비게이터" 역할을 한다. 동생네 차가 연비가 좋아 동생네 차를 동원한 것이다. 뒷좌석에는 집사람과 여동생 둘이 타고 짱아 녀석이 집사람 곁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얌전하게 엎드려 있다.


서안동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버리고 34번 국도로 내려선다. 시원하게 너른 호수를 지난다. 지도를 보니 "임하호"다. 잠시 차를 멈추고,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임하호를 본다. 맑은 호수는 산 그림자와 하늘의 구름까지 담고 있다. 사진에 취미가 있는 여동생은 역광을 아쉬워하면서도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 역광으로 찍은 임하호

 

청송은 예부터 산간벽지로 알려져 있다. 산간의 좁은 논에는 아직도 추수를 하지 않아, 누렇게 익은 벼가 보기 좋고, 띄엄띄엄 보이는 농가는 옛 모습 그대로이다. 임하호로 흐르는 개울물들이 한없이 맑아 보인다. 월천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청송읍을 지나니, 어린 가로수들의 잎이 붉게 물들어 아름답다. 주왕산 방문객들이 늘어나자, 새롭게 가로수를 정비한 모양이다.


이윽고 갈림길에 이른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주왕산, 직진하면 주산지다. 멀리보이는 주왕산의 암봉들이 웅장하다. 차는 직진하여 고개를 오른다. 주위의 단풍이 곱다.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 이어지고, 길 가에서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사과 맛을 본다. 청송 꿀 사과 맛이 무척 달다.


주산지 입구 너른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라는 석비가 세워져 있다.

 

주산지는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8m, 넓이 약 6,000평정도 크기의 인공호수다. 150년 수령의 능수버들과 왕버들이 호수 물속에서 자라는 모습이 이채롭다. 영상미가 뛰어난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감탄했던 집사람이나, 동생들은 규모가 작은 것에 실망하는 눈치지만, 단풍 속에 묻혀있는 조용한 호수는 여전히 아름답다. 영화에 나왔던 호수 위의 절은 자연보호를 위해 철거했다고 한다.

▶ 주산지 풍경

 




되돌아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관광버스가 도착했는지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짱아를 안고 내려간다. 집에 두고 오면 좋겠지만, 짱아가 집안에서는 대소변을 일체 보지 않고, 아침, 저녁 산책길에 밖에서 해결함으로 오랜 시간 집을 비워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오는 도리밖에 없다.

 

주왕산 입구로 들어선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입구의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다. 야영장 부근까지 올라가, 주차를 하고, 사람들 물결에 떠밀려, 매표소로 향한다. 당초에는 내원동에 가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내원동의 집들을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를 확인해 보니, 사실이다. 할 일없이 깨끗해 보이는 식당을 찾아들어 간다. "연지식당", 산채 비빕밥으로 식사를 한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다. 내려올 때도 들려, 해물파전, 감자전을 주문했는데, 즉석에서 부쳐 주는 부침개 맛이 훌륭하다.


▶ 주왕산 입구에서 찍은기암(旗岩)

 

공원 입구에서 표를 받던 직원이 달려오더니, 강아지는 출입금지라고 한다. 보관소에 두고 가란다. 매표소 뒤에 강아지 한 마리씩을 넣어둘 수 있는 개장이 마련돼 있다. 출입을 금지 시키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본다. 강아지 배설물로 생태계가 파괴되어 출입을 금지 시킨다고 한다.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라고 했더니, 자연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종주해 보니, 복원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생태계를 파괴한 것은 강아지 배설물이 아니라, 무절제한 사람들의 행위다. 강아지 배설물이 문제라면, 동반자가 치우도록 규제를 하고, 위반 시에는 벌금을 물리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법으로 출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후진국적인 발상이다. 공원에 강아지 출입을 금지했을 때, 견공들의 견권을 주장하는 애견가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처럼, 이 법이 널리 알려지면 다시 한 번 세상 시끄러워지겠다.


대원사는 기념 촬영하는 사람들로 붐벼, 내려 올 때 들르기로 한다. 공원길을 따라 오른다. 산책로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되고, 곳곳에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이정표도 친절하다. 계곡은 영구 휴식년제를 시행, 출입을 금지하여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 장군봉

 

▶ 계곡 초입에서 본 풍광




▶자하성터

 

▶ 이정표, 우리는 주왕암, 주왕굴 쪽으로 오른다.

 

▶ 주왕암으로 오르다 본 암봉

 

▶ 주왕암, 주왕굴 가는 길 

 

 

 

 

 




▶ 전망대에서 본 암봉들

 

 

 

 

 


▶ 제1폭포 가는 길과 제1 폭포







제 2 폭포 가는 길과 제 2 폭포

 

 


 

▶ 제 3 폭포

 

 


▶ 단풍과 청류

 




▶ 하산길에 본 기암

 



짱아를 찾으러 매제와 함께 먼저 달려 내려온다. 대전사 경내가 이제는 한가하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짱아를 찾으러 관리인과 개장으로 간다. "강아지가 무척 순하던데요, 조용히 잘 있어요." 라고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관리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짱아를 칭찬한다. 개장 문을 열자 짱아가 와락 품으로 뛰어든다. 눈물에 콧물에 얼굴이 말이 아니다. 다른 개장에는 시츄와 곱게 물들인 마르티스가 나란히 갇혀있다. 짱아가 혼자 심심하지는 않았겠다. 시츄는 순한 눈을 굴리며, 바라보고 있고, 마르티스는 나오려고 버둥대다, 짱아만 안고 나오니 심하게 짖으며 항변한다.

▶ 대전사

 



짱아를 안고, 다시 대전사 입구로 들어와 여자들을 기다린다. 버둥대던 짱아도 안정을 찾았는지, 이제는 조용하다. 이윽고 여자들이 내려와 불당에 들어가 참배를 한다. 대전사를 배경으로 일행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공원을 나선다.

강아지를 맡아주었던 관리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관리인은 내가 강아지를 안고, 대전사 경내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왜 공원 안에 강아지를 들여놨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맡겼던 강아지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관리인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


(200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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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강화도

국내여행 2012. 11. 30. 12:57

2004. 3. 15. 안면도 가족 나들이 때  찍은 사진 모음이다.

<은파>

<짱아>

<삼봉해수욕장>

<바닷가의 트럼펫>

<바람이 멋을 모른다, 머플러를 날려야지>

<역광이지만 다정하네>

<장승에 기대어>

<바다, 모래, 암석, 장승>

<월 보고 웃나?>

<삼봉 해수욕장과 동심>

<해양박물관>

<바닷가 풍경 1>

<바닷가 풍경 2>

<바닷가 풍경 3>

<,바닷가 풍경 4>

<바다농장>

<섬으로 가는 길 - 부교>

<휴식>

<바다농장 2>


그리고 보니강화도 사진도 몇장 있네요.

<강화도 선수 선창 1>

<선수 선창 2>

<물때의 선수 선창>

<어선과 갈매기>

<강화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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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기간 : 2005. 4. 4 - 2005. 4. 6.
2. 여행지 : 섬진강변, 상족암, 통영, 거제

<산동마을>

<산동마을에서 본 지리산 서북능선>

<산수유>


 

<산책>


<산동면 상위>

<돌담과 산수유>

<꽃속 산책>

<기념사진>

<섬진강>

<상족암>

<상족암 앞바다>

<夫 >


 

<婦>


 

<해안 널마루>

<공룡해변>

<통영 진입 직전 휴계소에서 본 일몰>

<4월 5일 새벽 통영 수산과학관에서 본 한려수도>

<한려수도 2>

<아침 산책>

<달아공원>

<달아공원 2>

<달아공원 동백>

<제승당 동백>

<동백 2>

<동백 3>

<선실>

<멀리 본 거제도>

<기념사진 2>

<한산도 뱃길>

<한산도 동백>

<한산도 산책>

<남망산 공원에서 본 통영>

<동백>

<항해>

<남망산 공원>

<남망산 공원 2>

<기념사진 3>

<청마 문학관>

<청마 생가>

<생가 2>

<문학소녀>

<문학소녀 2>

<통영 활어시장>

<거제도>

<포로수용소 막사촌>

<망산 중턱 도로에서 본 해지는 바다>

<해지는 바다 2>

<명사 해수욕장의 일몰>

<일몰 2>

<신선대>

<유채>

 

<이정표>

<신선대 2>

 

<신선대 3>

 

<신선대 4>

 

<신선대 5>

 

<수선화>

<접사>

<평사리와 섬진강>

<빗속의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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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정

해돋이를 본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미륵도로 향한다. 해돋이도 보고, 산양관광도로도 일주하겠다는 생각이다. 산양관광도로는 통영 앞 바다 미륵도를 해안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다. '산양-연화-달아'를 잇는 구불구불 하면서도 시야가 탁 트인 바닷길이 일품이다.

아직도 주위가 어둑한 시간, 7시 20분 경 달아공원(達牙公園)에 도착한다. 공원으로 들어서 동백나무가 심어진 공원길을 따라 관해정(觀海亭)에 오른다. 관해정 앞 넓은 바위 위에 삼면으로 보이는 바다와 그 위의 섬들을 소개한 달아공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전망 바위 위에서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아침 바다를 본다.

<관해정 안내판>

<관해정에서 본 한려수도 1>

<관해정에서 본 한려수도 2>

<관해정에서 본 한려수도 3>

통영에서 일출을 보려면 남망산(南望山) 공원을 오르던가, 미륵산엘 올라야하는데, 달아공원으로 왔으니 일출은 산에 막히고, 일몰은 때가 아니다. 엊저녁 숙소를 찾느라 이 근방을 헤메다 찍은 달 사진하나가 겨우 달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이 지역과 어울릴 뿐이다 .

 

달아공원을 내려와 해안도로를 달린다. 참으로 아름다운 바닷길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배들이 정박한 아름다운 포구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당포마을을 지난다. 지금은 아름다운 포구지만, 옛날 당포대첩지가 이곳이다. 어선들이 빽빽하게 정박해 있다.

<당포 대첩지 표지판>

<당포>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타임 머신을 타고 400여 년을 거슬러, 당포 전투내용을 살펴보자.

 

『1592년 6월 2일 왜선이 당포(唐浦)에 정박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 장군은 곧 그곳으로 달려간다. 당포 선창에는 일본 수군장수 가메이(龜井玆矩)와 구루시마(來島通元)가 인솔하는 대선 9척, 중·소선 12척이 정박하고 있고, 일본수군들은 성 안팎에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다 조선수군을 보고 발포하며 덤빈다. 하지만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수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대패하고 왜장 구루시마가 전사한다.』 ( http://www.koreandb.net/General/person/p161_09888.htm )


다시 관광도로를 달려, 통영대교를 건너서 숙소에 도착한다. 미륵산에는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한다. 8시가 조금 넘어, 식당에서 전복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찹쌀을 넣고, 정성을 드렸다. 전복도 제법 많이 보인다.

 

유람선 터미널에 전화를 한다. 해금강까지 돌아보는 4시간 짜리 코스가 10시에 출항한다고 한다. 날씨는 잔뜩 흐려 잿빛이다. 전형적이 겨울 날씨이나 춥지는 않다. 배가 출항하여 한산섬에 접근하자, 멀리 산꼭대기에 커다랗게 서있는 '한산대첩기념비'가 보이고, 거북모양의 '거북등대'를 지난다. 출항해서 20분 후 한산섬에 도착한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을 주고, 제승당을 돌아보게 한다.

<유람선 승선>


<유람선>

<거북선 등대와 뒤로 한산섬 대첩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이 이 섬의 운주당에 3년 8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군사를 정비하고, 왜군의 침입에 대비한다. 하지만 정유재란으로 이곳은 폐허가 되고, 이후 통제사 조경이 유허비를 세우고 이순신 장군이 머물면서 집무를 봤던 운주당(運籌堂) 옛터에 제승당(制勝堂)이란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한산도 이 충무공 유적지 표지석>

 

제승당에는 제승당 본 건물 외에도 수루와 한산정, 충무사 등의 건물이 있다. 휴게소와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제승당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머무는 수호사가 있고, 그 옆에 충무공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 있다. 바로 옆의 대첩문을 지나 충무문을 거쳐 제승당까지 가는 길은 조경이 잘 돼 있다. 특히 충무문을 오르는 계단 양쪽에  붉게 핕 동백꽃이 눈길을 끈다.

<대첩문>

<충무문 주변의 조경목이 특이하다>

<충무문>


<충무문 계단길의 동백>

충무문을 지나, 제승당으로 들어선다. 제승당안에는 노량해전도, 진중생활도, 우국충정도, 한산대첩도, 사천해전도 등의 그림이 걸려있고, 거북선 모형과 지자총통, 현자총통, 커다란 제승당 현판도 함께 전시되어있다.

<제승당 경내 안내도>


<제승당>

제승당 왼편에는 이충무공의 후손으로 통제사와 부사 등을 지낸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행적비들이 줄지어 서 있고, 수루가 높다랗게 솟아 있다. 수루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충무공의 "한삼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를 되 뇌이며, 왜적 섬멸과 토사구팽을 아울러 걱정하던 충무공의 고뇌를 생각해 본다.

<수루>

<수루에서 본 한산만>

 

제승당 오른편에는 한산정과 충무사가 있다. 한산정에서 바라보이는 과녁은 바다를 사이에 둔 활터다. 거리 145m, 그 외에 풍향 등도 고려해야함으로 관중이 쉽지 않겠다.

<한산정>

<바다 건너 과녁>

<안내판>

 

영정을 모신 충무사로 들어가는 곳엔 세 개의 유허비를 볼 수 있다, 통제사 조경과 통제사 이태상이 이곳을 재건하거나 중수할 때 세운 것으로 영조(1739년)와 고종(1877년) 때 만든 것이라 한다. 충무사 왼쪽 화단에 꽃이 활짝 핀 동백이 아름답다.

<충무사>

<유허비>

<동백 1>

<동백 2>

 

한산도 해전은 조선과 일본의 수군 주력이 해상에서 한판 승부를 가린 정통적인 해전이다. 육전과는 달리 해전에서 연패한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특명으로 조선 해군을 박멸할 계획을 세운다. 우선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70여 척으로 구성된 제1진을 거느리고 웅천(熊川) 방면에서 출동하고,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는 제2진을,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는 제3진의 대 병선을 이끌고 이에 합세한다.

 

이를 탐지한 이순신은 7월 6일 이억기와 더불어 90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露梁)에 이르러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의 전함 7척과 합세한다. 7일 저녁 조선 함대가 고성(固城) 땅 당포에 이르렀을 때 적함 대·중·소 7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에 들어갔다는 정보에 접하고 이튿날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 바다로 적을 유인할 작전을 세운다.

 

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해도 굶어죽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이리하여 먼저 판옥선(板屋船) 5, 6척으로 하여금 적의 선봉을 쫓아가 급습한다, 이에 적 함선이 일시에 쫓아 나오자, 아군 함선은 거짓 후퇴를 하고, 왜군은 득의양양하여 끝까지 쫓아온다. 아군은 예정대로 한산도 앞 바다에 이르자 미리 약속한 신호에 따라, 모든 배가 일시에 북을 울리며, 뱃길을 돌려 호각을 불면서,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일제히 적을 향하여 진격한다.

 

모든 지자총통(地字銃筒)·현자총통(玄字銃筒)·승자총통(勝字銃筒)을 한꺼번에 쏘아 적함을 격파, 분소(焚燒)한 것만도 66척, 적의 목을 잘라 온 것이 86급(級), 기타 물에 빠져죽고 찔려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한산도로 도망친 400여 명은 군량이 없이 13일간을 초식(草食)하다가 겨우 탈출한다. <이상 한산대첩, http://www.tongyeong.pe.kr/contents/g8.html>

 

한산도를 떠난 유람선은 매물도로 향한다. 비진도가 오른쪽으로 지나가고, 멀리 매물도가 보인다.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소매물도에 연이은 등대섬, 이렇게 세 섬을 일컬어 매물도라고 한다.

<비진도>

 

<매물도 원경>

<매물도 근경>

<매물도 앞바다 - 김 사장 사진>

<등대섬 - 김사장 사진>

<매물도>

대매물도에는 당금(35가구)과 대항(21가구)의 두 마을이 있고, 소매물도에도 1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으며, 등대섬에는 등대와 등대 직원의 관사가 있다고 한다. 유람선은 매물도 주위를 돌아 기암괴석을 구경시키고, 해금강으로 향한다.

 

해금강의 원명은 갈도, 칡섬이라고 하나 강원도에 있는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 하여 해금강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배는 섬 주위를 돌며, 파도와 해풍이 만든 조각품을 구경시켜준다. 선녀바위, 신랑신부바위, 은진미륵바위 등 이름 붙은 바위도 많다. 바위에는 겨울 바람 속에서 낚싯줄을 드리운 강태공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유람선은 십자동굴을 들러갔다 나오더니, 선수를 돌려 통영으로 향한다.

<해금강 1>

<해금강 2>

 

다시 한산섬으로 배가 접근하자, 여기 저기 굴 양식장이 보인다. 굴 양식장안에는 보트를 탄 사람들이 많다. 이들도 역시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주로 돔을 낚는단다. 유람선은 2시가 조금 지나 선착장에 도착한다.

<한산만의 낚싯배>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선착장 주변의 횟집을 골라 들어선다. 통영까지 와서 회도 먹지 않고 간다면 이게 어디 먹거리 여행이라 하겠는가? 역시 생선 맛이 틀리다. 서울에서처럼 얄상하게 뜬 회가 아니라, 무딘 쇠칼로 듬성듬성 베어낸 회의 씹히는 맛이 다르다.통영의 회맛을 즐기며, 우리는 이번 먹거리 여행을 마무리한다.

 

 


(200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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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에서 본 남해대교, 안산, 그리고 노량바다>


 

2005. 1. 26. (수)
여행 둘째 날이다. 7시경 아침 산책에 나선다. 아직 어둠이 짙다. 남해대교의 불빛이 노량바다에 비쳐 점멸 한다. 서쪽 하늘에는 그믐달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어제는 밤중이라 몰랐었는데 숙박했던 모텔 화단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붉은 꽃을 가득 달고 서 있다.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해대교 옆으로, 조그만 포구가 면해 있다.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그 아래 바다로 길게 뻗은 선착장은 남해대교 유람선 선착장이라고 한다. 대교 너머로 삼각형의 뾰족한 산이 어제 내린 눈을 하얗게 이고 있다.

<거북선과 충렬사>

<포구로 귀환하는 아침배>

 

김 진호 회장이 도착하여, 부근의 식당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김 진호 회장은 모텔이나, 횟집, 그리고 이 식당에서 명사 대우를 받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김 진호씨는 새우 양식협회 회장이다. 식사 후 김 진호 회장이 남해 안내를 하겠다고 앞장을 선다. 우선 가까운 충렬사로 안내한다.

<왼쪽 김 진호 회장>

<충렬사 안내판>


<충렬사 석비>

<충렬사>

충렬사는 노량 앞 바다의 푸른 물결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노량마을 해안 언덕, 울창한 숲 속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이 충무공은 관음포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 3개월 간 이곳에 안치되었고 한다. 남해사람 김여빈과 고승 후가 이 충무공이 순국한지 35년이 지난 1633년에 초가집 한 칸을 사당으로 건립하여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자 남해현령 이정건이 사당 앞에 충민공비를 세웠다고 한다. 1965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충렬사"와 '나라를 위해 싸운 공적이 극히 큰 것'이라는 뜻의 "보천욕일"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상 남해군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충무공 영정>

<충무공 초상>

<충무공 가묘>

<박 정희 대통령 기념 식수 -김 사장 사진>

남해대교와 충렬사는 남해 12경 중 제2경에 속한다. 어제 내린 눈은 밤사이 다 녹아, 사당 안은 비 온 후처럼 정갈하다. 사당에 모신 충무공 영정, 뒷뜰의 가묘, 그리고 굽어보이는 노량바다에 정박해 있는 거북선 등이 충무공을 회상케 하여, 나도 모르게 옷깃이 여며진다. 남해군은 주위에 있는 민가를 매입하여 연차적으로 남해 충렬사 주변을 성역화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충렬사 건너편의 안산>

충렬사 참배를 마치고, 장흥에 있는 김 진호 회장의 양식장으로 향한다. 양쪽의 섬 사이로 금오산이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만처럼 오목한 곳에 5만여 평의 양식장과 부화장이 필경수산의 장흥양식장이다. 김 진호 회장은 전공을 살려 특히 부화에 주력하는 듯 싶다. 지난해 매미 태풍으로 먼 바다에 정박했던 거대한 선박들이 어장에까지 밀려 들어와 어장이 억망이 됐던 것을 겨우 이만큼 복구해 놨다고 한다.

<필경수산, 동흥 양식장>

<동홍 양식장과 금오산>

<멀리 본 금오산>

<양식장 근처의 방파제>

<동흥 바닷가 풍경 - 마늘밭이 싱그럽다>

 

양식장을 둘러보고 사무실까지 구경한다. 사천대교까지 동행하겠다는 김 진호 회장에게 길을 묻고, 바쁜 김 진호 회장과는 아쉬운 작별을 한다. 눈 온 다음날 바닷가의 경치는 숨막히게 아름답다. 바닷가에 면한 경사진 밭에는 마늘이 파랗게 자라고, 밭둔덕과 밭고랑에는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남해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섬이다. 해안을 따라 돌면 그 거리가 800리에 이른다고 한다. 동흥에서 강진만을 타고 내려오다 화룡쪽으로 섬을 서쪽으로 가로지른다. 화룡에서는 오른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남하한다. 저 멀리 광양만이 보인다. 남면의 몽돌해안, 다랭이 마을을 거쳐 금산으로 향한다.

<남면으로 향하면서 본 바다 1>

<남면으로 향하면서 본 바다 2 - 멀리 광양만>

<남면으로 향하면서 본 바다 3>

<남면으로 향하다 본 바다 4 >

<금산 방향의 산세>

 

어제 내린 눈으로 금산으로 오르는 도로는 차량을 통제한다. 도보로 올라갔다 보리암까지 들렀다오면 최소한 3시간은 걸릴 것이다. 지금 시각이 12시 30분 경, 그러면 통영을 둘러보는데 지장이 생긴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멀리서 금산을 카메라에 담고. 상주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금산 정상>

푸른 바다와 백사장, 멀리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뒤로는 오래된 송림의 숲, 겨울이라 인적이 뜸한 해수욕장이 더 한층 아름답다. 이 해수욕장이 남해 12경 중 3경에 해당한다. 관광 안내소에 들러 남해 관광 팜플렛을 얻고. 미조로 향한다.

<상주해수욕장 앞바다>

<상주 해수욕장에서>

 

미조는 아름다운 포구다. 방파제가 길게 바다를 가로막고 그 위에 하얀 등대가 그림 같다. 포구답게 활어 위판장도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 가 보지는 못하고, 부둣가의 오륙도라는 횟집에 들러 갈치조림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 2층에서 아름다운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갈치조림은 1인분이 만원이다.값도 적당하고,맛도 훌륭하다.

<미조항 1>

<미조항 2>

<식당 오륙도>

 

점심을 먹고 해안 관광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항도마을 도로변에 전망대가 마련돼있다.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차를 멈추고 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카메라에 담는다.

<항도마을 전망대에서 본 풍광 1 >


<항도마을 전망대에서 본 풍광 2 >

<항도마을 전망대에서 본 풍광 3 >

남해 10경 물건의 방조어부림을 지난다. 이 곳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고 한다. 아쉽지만 멀리서 사진만 찍고 지나친다.

<미도의 방조어림>

 

우리의 봉고트럭은 창선교에 접근한다. 창선교가 걸린 곳이 지족해협이다. 이 다리가 창선면 지족 마을과 삼동면 지족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지족해협에는 26통의 원시어업 죽방렴이 설치돼 있어, 남해 4경으로 꼽힌다. 창선교를 건너 77번 국도를 타고 창선사천대교에 이른다. 대교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하룻밤을 지낸 남해와 작별한다.

<창선교>

<원시 죽방렴>

<창선 삼천포 대교>


< 멀리 사천시가 보인다>

오늘의 종착지는 통영이다. 통영으로 가는 길에 고성을 잠간 들르기로 한다. 공룡발자국 화석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고성군은 브라질, 캐나다와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라고 한 다. 해안을 중심으로 1억여년전 백악기시대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5,000여 개나 산재해 있다. 천연기념물 411호인 상족암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에는 해안을 따라 길이 2㎞의 탐방로가 개설돼 있다.

<공룡 발자국 - 김 사장 사진>


<관람대>

<촛대바위>

<촛대바위와 공란층 안내판>

이 탐방로를 따라 공룡 발자국을 구경하고, 상족암이란 이름의 유래가 되는 층층이 쌓인 바위섬을 둘러본다. 뒤로 공룡박물관이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숙박지인 통영으로의 갈 길이 바뻐, 박물관은 들러보지도 못하고 길을 재촉한다.

<상족암 앞바다>

<상족암 1 >

 

<상족암 2 >

<상족암 3 - 한쪽 상다리 사이로 본 건너편 단애>

<상족암 4 - 즉석 매점, 해삼, 멍게 그리고 소주를 판다>

 

77번 국도를 타고, 오른쪽으로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통영으로 향한다.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6시경 통영에 들어선다. 내일은 유람선을 타고 한산도 등을 둘러 볼 예정이라. 충무교를 건너,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미륵도로 들어서서, 숙소를 찾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 되돌아 여객선 터미널 쪽으로 나온다. 서호 시장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손님을 기다린다.

 

이 주위에는 신축한 모텔들이 많다. 숙소를 정하고, 모텔 주인에게 꼼장어 잘하는 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텔 주인이 부인과 의논을 하더니, 여객선 터미날 앞, 한산도 식당을 소개한다.

 

한산도 식당은 좁은 공간에 상이 너댓 개가 놓여있다. 우리가 들어서니, 안쪽으로 붙여 놓은 상에서 식사를 마친 선객들이 막 일어서는 참이다. 자리를 잡고 식당 안을 둘러본다. 좁기는 하지만 비교적 깨끗하다. 벽에는 이 집에서 음식을 먹고 간 사람들의 소감을 적은 글들이 빼곡이 적혀있다. 대체로 음식 맛과 분위기가 좋다는 표현이다.

 

꼼장어를 잘 한다는 소개를 받고 왔다니까, 식당 주인이 의아한 얼굴을 한다. 꼼장어는 없고, 장어구이라면 맛이 있다고 한다. 통영에 가면 지금이 꼼장어 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꼼장어를찾았으나, 통영에서는 꼼장어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장어구이를 시키고,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굴회 한 접시 5,000원" 이라는 글귀가 눈에 뜨인다. 굴회(?), 굴회가 뭐냐고 물었더니, 장어구이를 시켰으니, 굴회는 조금 서비스를 하겠단다. 나중에 나온 걸 보니 생굴이다.

 

주인의 양해를 얻고, 김 사장이 가져온 위스키를 마신다. 미안해서 식당주인에게도 한 잔 권하니, 스스럼없이 받아 마시고, 주방에 있는 부인까지 불러낸다. 사람이 솔직하고 붙임성이 있어 보인다.

<통영의 장어구이>

 

이윽고 장어구이가 나온다. 바다장어를 굽고, 그 위에 초장을 얹었다. 부드럽고 맛이 괜찮다. 주인 아저씨는 퇴근을 하는지 먼저 나가고, 부인과 일하는 아주머니가 상 앞에 앉아, 음식 수발에, 술 상대를 해준다. 위스키 한 병이 바닥나고, 내일 아침 준비를 부탁한다. 15,000원에 전복죽을 주문한다.

 

숙소로 돌아와 코를 고는 두 양반을 나란히 눕게 하고, 나는 가장 안쪽을 차지하여 잠자리에 든다.

 

 


(200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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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먹거리여행-신월 삼거리 안내판>

 

김광현 사장이 지난해처럼 올해도 먹거리 여행을 떠나자고 강력히 제안해 온다. 2월부터는 다시 나무들을 돌봐야 함으로 시간이 없으니 1월중에 3박 4일 정도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다. 삼목회 김석근 회장도 반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번 먹거리 여행의 캐스팅 보드는 내가 쥐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난해 먹거리 여행을 다녀 온 후에는 다시는 이런 여행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3박 4일 일정 중, 첫날만 계획에 따르고, 그 이후는 너무 많은 곳을 보려는 김 사장을 따라 이리저리 차만 타고 다니는 것이 내 기질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두대간을 한답시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섣달 그믐날에도 집을 떠나 산 속에서 보낸 후라 요즈음 집사람 입이 많이 부어 있다. 먹거리 여행 이야기를 꺼내 놓고, 넌지시 집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의외로 먹거리 여행에 대한 집사람의 반응은 관대하다. 산처럼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 일정을 2박 3일로 단축하고, 행선지도 엄선하여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자고 두 김씨에게 메일을 보낸다. 김 회장은 쌍수를 들어 이 제안을 환영하고, 3박 4일쯤의 일정으로 여기 저기 다니고 싶은 김 사장은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동의한다.

 

2005년1월 25일(화).

지하철 분당선 정자역 3번 출구를 빠져 나온 시간이 9시 45분 경이다. 일산에서 오는 김 회장은 아직 인 것 같고, 김 사장의 트럭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까지는 무척 춥더니,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다. 그래도 한데서 떨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다시 역으로 들어가 새들을 구경한다. 정자역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말라고, 제법 커다란 새장에 여러 종류의 새들을 모아놨다.

 

다시 역을 나온다. 길가에 작년에 신세를 졌던 <경기 94 다 6201 호>, 4WD 타입, 기아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다. 김 사장의 어부인, 김선인 여사는 봉고차를 타고 천하주유를 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상과대학 출신들의 실용주의를 간과했던 모양이다. 기름이 디젤이라, 승용차에 비해 기름 값이 절반이고, 좌석이 높아 조망이 좋을 뿐 아니라, 4륜 구동도 가능하여 오지에서도 거칠 것이 없을 터인데, 왜 우리가 승용차를 타겠는가?

<우리가 타고 다닌 봉고 트럭>

 

10분쯤 늦게 김 회장이 도착하고 이어서 2차 먹거리 여행이 시작된다. 운전은 김 사장의 몫이다. 체력도 좋지만 본래 운전하기를 좋아한다. 거기다 자기 애마(愛馬)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도 꺼리는 눈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바이오 네비게이터"역을 자청하며, 작으나마 이 번 여행에 기여할 거리를 찾는다.

<평일 오전, 정자역 앞의 분당 거리는 한산하다.>

<날씨는 잔뜩 흐려 눈이 내릴 것 같다.>

 

이번 먹거리 여행은 처음부터 속 편하게 큰 프레임만 정하고, 구체 여행계획이 없이, 운전수 마음대로 가도록 맡겨두기로 한다. 김 사장은 남해에서 옛날 회사 친구를 만나 볼 생각인 모양이다. 12시 조금 넘어 비룡 인터체인지에서 35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평일이라, 고속도로에는 교통량이 많지 않다.

<우리는 35번 고속도로를 탄다>

산청에서 점심을 먹고, 웅석봉과 지리산 능선을 멀리서나마 보자고, 59번 국도로 하동을 거쳐 남해로 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은다. 산청의 별미는 3가지 정도란다. 더덕구이, 추어탕, 그리고 한정식이다.

 

산청 인터체인지에서 요금을 계산하고, 산청 관광 팜플렛을 달랬더니 길가 고속도로 관리소로 가 보란다. 관리소에는 산청군에서 발간한 "智異山과 東醫寶鑑의 고장 山淸"이라는 훌륭한 팜플렛이 비치돼 있다. 팜플렛을 얻고 내친김에 직원들에게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더덕구이는 철이 아니고 추어탕이나 한정식을 하려면 안내를 하겠단다.

 

식당 이름과 위치만 가르쳐 주면 족하다해도, 마침 군청에 가야할 일이 있다고, 친절한 여직원이 앞장을 선다. 세 늙은이가 봉고차로 여행하는 것이 신기한가 보다. 소형차가 앞장을 서서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더니, 이윽고 "고향 한정식" 앞까지 안내해 준다.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고향>

<산청 "고향"에서 점심 식사>

<산청 추어탕>

 

2시가 넘은 시각이라 식당에는 손님도 없이 휑∼하다. 큰 소리로 사람을 찾으니, 안 주인인 듯 싶은 여인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온다. 아마도 설거지를 하던 중인 모양이다. 방으로 안내를 받는다. 비교적 정갈하게 정돈된 방이다.

 

추어탕을 주문하고, 이 지방의 좋은 술을 추천하라고 부탁하니. 가격은 좀 비싸지만 산청 복분자 술이 좋다고 권한다. 추어탕은 5,000원, 복분자 술은 10,000원이다. 상이 차려지고 음식이 나온다. 주문하지 않은 파전이 한 접시 놓여있다. 세 늙은 여행객을 위한 서비스인 모양이다.

 

산청 복분자 술은 스위트한 것이, 뒷맛이 개운하다. 지리산 복분자 술도 마셔봤지만, 그 맛과는 달리 가볍고 개운하다. 갈아서 만든 추어탕도 특색이 있다. 고사리, 숙주, 그리고 우거지 등 야채를 많이 넣고 끓여 국물이 시원하다.

 

눈길에 조심하라는 식당 안 주인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오른다. 산청의 따듯한 인정과 후한 인심, 그리고 좋은 술과 특색 있는 추어탕에 흡족해진 우리들은 골목길을 돌아 나와 59번 국도로 접어든다. 여전히 싸라기눈이 흩날린다. 봉고는 힘들게 밤머리재를 오른다. 도로에는 눈이 제법 싸이고, 우리의 기사 양반은 4륜구동으로 기어를 바꿔 넣는다.

 

싸라기눈이 바람에 불려 휘날린다. 밤머리재 꼭대기, 넓은 공터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차를 세우고 도로 건너편 웅석봉 산행 들머리 안내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웅석봉은 지리산의 동부능선, 주능선, 서부능선을 연결하는 70.5Km에 달하는 지리산 태극종주의 기점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6.25 때는 토벌대에 쫓긴 빨치산들이경호강을 건너고, 달뜨기를 넘어, 웅석봉으로 잠입, 지리산에 웅거한 곳이기도 하다.

<밤고개재 오르는 길>

<밤고개재 정상 - 웅석봉 들머리>

 

눈이 내려, 웅석봉의 올돌한 모습이나,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은 보지 못하지만, 도로를 따라 심산의 설경을 구경하는 것도 또한 별다른 재미다. 눈 쌓인 도로를 서행하여 진주로 연결되는 20번 국도로 내려선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한참을 달려 내려오다 보니 하동으로 통하는 59번 국도 도로표지판이 오른 쪽으로 보인다.

<차 창밖 풍경 1>

<차 창밖 풍경 2>

 

청학동 알림판이 보이지만 우리 기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신월 삼거리에 이른다. 요즈음 구설수에 오른 유흥준의 나의 문화여행 답사기에서 발췌했다는 <당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라는 팻말 붙어 있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아름다운 길이란 소리다.

 

삼거리를 왼쪽으로 돌아, 섬진강 변의 음식점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를 세운다. 짙은 안개에 가려 섬진강이 회색 띠처럼 걸리고. 그 위로 눈이 떨어져 녹아 버린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바람도 쏘이고, 사진도 찍는다.

<눈 내리는 섬진강>

 

하동에서는 19번 국도를 타고 남하한다. 벌써 5시가 넘어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남해대교를 건넌다. 마주 오는 차들이 모두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행한다. 남해로 들어서서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 이락사(李落祀)에 도착한다. 눈발은 여전히 드문드문 내리고, 시각은 5시 30분이 넘어, 사방이 어둡다.

<눈 내리는 남해대교를 건너..>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으로 후퇴하려는 고니시 유끼나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500여척의 왜선들과 명,조 연합함대가 벌인 해전이 노량해전이다. 1598년 11월 19일 새벽2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이순신 함대는 왜선 200여척을 격파한다. 왜선 50여척은 도망을 가고, 나머지 왜선들은 관음포에서 퇴로가 차단되어 최후의 발악을 한다. 이 와중에서 이순신 장군은 퇴각하던 왜군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한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 이순신의 8대 손인 통제사 이항권(李恒權)이 충무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웠다. 이 것이 1973년 6월, 사적 제232호로 지정되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라고 부르게 된다.

 

나는 어둑어둑한 이락사를 둘러보고, 김 사장은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관음포 이락사 - 어두워 사진이 않좋아 퍼온 사진으로 대체>

<이락사 충구몽의 유언비 - 퍼온 사진>

 

차는 다시 방향을 돌려 대교 앞, 노량으로 향한다. 양식업을 하는 김 사장의 친구가 있는 곳에는 모텔이 없어, 노량에 있는 모텔을 소개받고, 오늘은 그 곳에서 숙박하기로 한다. 베니스 모텔에 도착한다. 김 사장 친구 덕에 1층에 5명은 족히 잘 수 있는 넓은 방을 얻는다. 이윽고 김 사장 친구가 도착하고, 부근 횟집으로 이동한다.

<베니스 모텔>

 

회를 잘 아는 김 사장 친구 분이 잡어 회를 주문한다. 김석근 회장이 게블을 먹고 싶다해서, 게블 한 접시를 따로 청한다. 생선 맛이 서울에서 먹는 맛과 다르다. 김 회장이 가져온 매실주를 마시며 남해의 신선한 회를 즐긴다.

 

김 사장 친구, 김 진호씨는 우리보다는 한 두 살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수산대학을 나와, 두산 상사에서 양식업 부문에서 일을 하다 독립하여 자신의 양식장과 부화장을 운영하는 분이다. 양식업과 관련,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학구파라고 한다. 젊잖고 친절히다. 운전을 해야 한다고 술은 사양하면서, 대신 남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식사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온다. 눈은 이제는 가랑비로 변했다. 모텔 방에서 다시 김 진호씨와 어울려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11시가 가까워진다. 김 진호씨는 내일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다. 11시가 넘어 김 진호씨는 양어장으로 돌아가고, 우리 세 늙은이도 발 닦고, 잠자리에 든다.

 

 

(200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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