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명소'에 해당되는 글 57건

  1. 2016.04.19 삼목회 남산 나들이 4
  2. 2016.03.20 창덕궁(2)
  3. 2016.03.13 창덕궁(1)
  4. 2015.07.19 성북동 길(2)
  5. 2015.07.15 성북동 길(1)
  6. 2012.12.17 낙산공원
  7. 2012.12.17 남산공원

 

남산 웰빙 조깅 메카

 

올해 들어 대학동창 모임인 삼목회(三木會) 회장이 바뀌었다. 지난 5년 간 수고를 한 정문모 회장에 이어, 강승구 회원이 회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삼목회 회장은, 일반적인 회장직과 달리, 회원들을 위해 총무와 경리업무를 담당하는 도우미이다.

 

삼목회는 연륜이 깊은 모범적인 모임이다. 1961년 상과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모이기 시작한 모임이다보니, 어언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을 면면히 이어 온 흔치 않은 모임이다. 회원은 7, 회원 수가 단출하다 보니, 삼목회에는 회칙도 필요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회원들과 봉사자인 회장뿐이다.

 

오랫동안 인사동에 있는 한식집에서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에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일상 돌아가는 세상사를 화제로 삼다가, 회원들이 하나 둘 퇴직을 하게 되자, 저녁식사가 점심식사로 바뀌고, 모임도 두 달에 한번으로 줄어들더니 정문모가 회장이 된 이후, 모임의 장소도 인사동에서 강남 교대역 부근의 송정으로 바뀐다.

 

회원들의 거소도 제 각각이다. 일산, 강남, 분당, 용인, 그리고 대전 등에 흩어져 산다. 멀리 대전에서 사는 손명환 교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임에 빠진 적이 없다. 출석률을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99%이상 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른 회원들이 적당히 빠질 수 가 있겠는가? 특별한 목적도 없이, 두 달에 한번 씩 얼굴을 보고, 식사를 하면서 2~3시간 동안 잡담을 하다 헤어져도, 그게 좋아, 다음 모임을 기다린다.

 

강승구 회장이 카카오 톡을 통해, 이번 달 삼목회 모임은 남산에서 하자고 제안을 하고, 모든 회원들이 이에 기꺼이 동의하자, 김 회장은 아래와 같이 구체계획을 통보한다.

 

- 4151130, 3호선 동대역 6번 출구, 장충동파출소 앞 집합

- 버스로 남산 타워로 이동

- 계절밥상에서 중식

- 북쪽둘레 벚꽃 길 약 1시간 걷고, 장충단으로 회귀

 

2016415()

1125, 동대역 6번 출구를 나와, 광장 쪽을 보니, 강 회장이 손을 들어 반긴다. 회원들이 다 모이자, 강 회장은 아름다운 장춘공원을 잠시 둘러 본 후, 버스 정류장으로 일행을 안내한다.

 

 장충당공원 안내

 

 

장충당공원

 

 장충정

 

 장충단

 

 장충단비 안내

 

 장충당공원 산책

 

 수표교

 

 수표교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공원풍광 1

 

 공원풍광 2

 

 다담에 뜰 찻집

 

이준열사 동상

 

순국열사 이한응 선생기념비

 

 

버스를 기다리며

 

이윽고 전기 차, 남산투어버스가 도착하여 탑승하고, 1153, 남산타워 승강장에서 하차하여, 남산타워로 향한다. 평일인데도 남산타워로 오르는 길은 인파로 붐빈다.

 

   우리가 탔던 남산 순환버스

 

하차해서 본 남산타워

 

타워 가는 길

 

성벽 길

 

 올려다 본 타워

 

 타워 4층 계절밥상

 

12, 계절밥상에 도착,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안내를 받는다. 뷔페식당이다.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하고, 내장객이 많아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한 동안 대기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음식 가짓수도 많고, 깔끔한 편이다. 30분 정도 점심을 즐긴다.

 

계절밥상 데스크

 

 식당 안

 

 일행 1

 

 일행 2

 

식당 밖 복도에 자리를 깔고, 점심상을 펼친 노부부가 눈에 뜨인다. 식사를 끝낸 할아버지는 막걸리에 취했는지 한동안 길게 눕기까지 한다. 남산 순환도로 부근에는 쉼터도 많고 식사할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남의 영업장 복도에서 자리를 잡은 이유를 모르겠다. 식당에서도 모르는 척하고, 손님들도 고개를 돌린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권리만 주장하며, 법을 무시하고 떼만 쓰면 된다는 천민민주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작금의 사회분위기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식당 복도에서 점심상을 차린 노부부

 

식사를 마치고 4층에서, 신록이 아름다운 성벽과 꽃동산을 굽어보고, 팔각정으로 향한다. 팔각정 앞에서 모처럼 인증 샷을 찍으려고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부탁을 했더니, 정성껏 사진을 세 컷이나 찍어준다. 우리나라 아가씨가 아닌 것 같아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태국에서 왔다고 한다. 태국! 아름다운 나라라고 추겨주고, 여러 차례 가본 적이 있다고 하자, 아가씨가 반갑게 웃는다.

 

   신록-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신록의 계절이 한 달은 빨라진 것 같다.

 

 꽃동산

 

 태국 아가씨가 찍어 준 인증 샷

 

봉화대를 지나, 사랑의 자물쇠가 가득한 전망대에서 북쪽과 동쪽의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망대 위 사람들의 말소리가 다양하다. 절반이 외국인들 같다.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 인도사람 등등 다양하다. 사랑의 자물쇠 가격은 7,000~10,000원 정도다.

 

   봉화대,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사랑의 자물쇠 1

 

 사랑의 자물쇠 2

 

 자물쇠 판매안내

 

 안산, 인왕산

 

 인왕산, 삼각산, 북한산,

 

 신라호텔과 장충체육관

 

중앙계단 가파른 길을 내려선다. 뒤돌아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잠두봉 포트 아일랜드에서 서울의 서쪽, 북쪽, 동쪽 모습을 동영상에 담는다.

 

중앙계단을 내려서는 일행

 

 뒤돌아 본 남산타워

 

 잠두봉 포토 아이랜드

 

.동영상 1

 

동영상 2

 

 서울 시가지와 그뒤로 인왕산과 북악산

 

복사꽃이 화사한 하산 길에서 이번에는 우리나라 청년의 도움으로 두 번째 인증 샷을 찍고, 214분 경, 북측 순환로 입구로 내려건다. 북측 순환로는 웰빙 조깅 메카라고도 불리 우는 최상급의 산책로다.

 

두 번째 인증 샷

 

북측 순환로 입구

 

이정표

 

업 다운이 심하지 않고 완만하게 구부구불 이어지는 8m 넓은 도로의 절반인 4m폭은 탄성포장으로 되어 있어, 달리거나 걷기에 좋고, 도로주변의 벚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고목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하여 봄철에는 환상적인 꽃길이 열린다. 곳곳에 쉼터와 꽃밭을 만들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도로변에 자연수를 이용한 실개천을 만들어, 물소리를 즐길 수도 있다.

 

꽃길

 

숲 터널

 

 웰빙 조깅 메카에서 산책하는 일행

 

 담소하며 걷는 일행

 

 실개천 1

 

실개천 2

 

 실개천 운용 안내

 

 쉼터

 

 꽃밭 속의 쉼터

 

화장실, 이정표, 안내도 등이 잘 정비되어 있고, 필동, 장충동 쪽으로 내려설 수 있는 갈림길이 있는가 하면, 남산타워로 통하는 길도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다. 그 외에도 찻집 목멱산방이 있고, 와룡묘, 조치훈 시비, 활터 석호정 등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걸으면서 보는 원경 또한 뛰어나다.

 

이정표

 

안내도(사진 클릭하면 커짐)

 

 목멱산방

 

 조치훈 시비

 

 와룡묘

 

 와룡묘 안내(사진 클릭하면 커짐)

 

산책로에서 본 남산타워

 

 서울 시가지가 가깝게 내려 보이고

 

북쪽 순환로를 약 50분 동안 걷고, 장충공원 갈림길에서, 왼쪽 계단으로 내려서서 동대역으로 향한다. 이정표는 장충공원까지의 거리가 310m라고 알려 준다. 가파른 돌계단길이지만, 청청한 소나무를 만나 반갑고, 주변의 화사한 꽃들에 시선을 빼앗겨, 지루한줄 모르겠다.

 

  이정표

 

 청청한 소나무가 반갑고

 

 1

 

 2

 

 3

 

계단이 거의 끝나는 지점, 오른쪽에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의 기념비가 우뚝하다. 경내로 들어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갈파한 외솔 최현배. 그는 일제강점기에 겨레의 얼인 말과 글릉 지킨 독립운동가 이자, 국어문법을 바로 세우고 한글 가로쓰기를 이루는 등 한글의 과학화와 국어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한글학자이다. 그의 시 을 보면서 선비정신이 투철했던 선생을 새삼 기리게 된다. 이어 동국대 입구를 지나, 동대역에 도착한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외솔의 님

 

 동대입구

 

강승구 회장이 사전답사를 철저히 한 모양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면 우리들은 <A지점>에서 버스를 타고, <B지점>으로 이동한 후, <C지점> 계절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팔각정을 거쳐, 중앙계단을 내려서서 <D지점> 북쪽 순환로로 들어선다. 멋진 산책로를 50분 동안 걷고, <E지점>에서 장충공원으로 내려선 것이다.

 

우리가 돌아 본 코스(사진 클릭하면 커짐) 

 

나들이 총소요시간은 버스 탄 시간과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약 4시간에 이르지만, 실제로 걸은 시간은 2시간 10분 정도로 알맞다.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남산 나들이를 한껏 즐길 수 있게 준비를 한 강 회장께 감사한다. 하지만 집안 일 때문에, 오늘처럼 좋은 모임에, 안홍지 회원이 참석치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2016.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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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2)

서울의 명소 2016. 3. 20. 10:04

 

  창덕궁 후원, 관람지, 관람정과 존덕정

 

창경궁을 포함한 창덕궁의 총면적은 약 17만평 정도이고, 이중 후원이 차지하는 면적이 70%를 넘는다고 한다. 전각관람은 자유로운 관람인데 비해, 후원관람은 문화재 보호와 생태보존을 위해 제한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즉 하루 관람횟수와 1회 관람인원, 그리고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고 안내인이 동행하여 해설을 한다.

  매표소 안내문

 

후원관람은 1회 관람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는데, 그 중 50명의 표는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나머지 50명분은 관람시간 1시간 전부터 매표소에서 판매한다. 따라서 관람객들이 많이 몰리는 봄, 가을에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원하는 시간에 관람이 가능하다.

 

후원을 관람하려면 돈화문 옆 매표소에서 전각입장권을 구입하여, 돈화문을 통과한 후, 아래 그림의 점선을 따라, 후원 입구로 가서 표를 취득한 후, 입장하여, 대기한다.

   후원 입구(좌), 창경궁 입구

 

 

후원입구 가는 길(붉은 점선)과 후원탐방로(펌)

 

 후원입구

 

11시가 되자, 명찰을 목에 건 안내원이, 50~60명쯤 되어 보이는 관람자들을 창덕궁 후원 안내판 앞으로 모으더니, 자기소개를 한 후, 창덕궁 후원에 대한 설명을 한다.

  창덕궁 후원 안내판 앞에서 설명하는 안내원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은 한국의 유일한 궁중 정원으로,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비원(祕苑) 등으로 이름도 다양하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4개의 골짜기에 부용정,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등의 연못을 만들고, 능선에는 아름다운 정자를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 창덕궁이, 경복궁을 제치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은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정원이지만,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기도 하고, 때로는 연회를 열고, 활쏘기 시합을 즐기는가 하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비롯한 각종 어전행사가 벌어졌으며,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이 창덕궁 후원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끝내고, 해설자는 먼데서 오신 분들도 있으실 터인데,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부산, 대전에서 오신 분, 영국에서, 캐나다에서 오신 분 등 다양하다. 해설자는 관심을 가지시고 멀리서 오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오늘 우리들은 부용정, 애련지, 존독정, 옥류천, 연경지를 차례로 돌아보게 되는데,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개별행동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를 한다.

   부용지 가는 길

 

첫 번째 방문지인 부용지(芙蓉池)와 주함루(宙合樓)는 휴식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고 한다, 300평 넓이의 부용지는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의 궁궐 연못이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 의해서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용지일원 배치도

 

 부용지 1 부용지, 부용정, 그리고 사정기각비

 

 부용지 2 부용지와 주합루

 

1792년에 건립한 부용정(보물 1763)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을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후,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부용정

 

주합루(보물1769)1776(정조 즉위년)에 지은 2층 누각이다.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초기 왕실도서관으로 출발한 규장각은 점차 정책연구기관으로 기능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중기 문예부흥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적서(嫡庶)의 구별 없이 다양한 인재들이 여기서 활동하였다.

   주합루 - 관람불가

 

주합루라는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에는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임금이, 그 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했다.

   주합루, 수어문 현판

 

동쪽으로는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는 부용지를 마주하고 있는 영화당(暎花堂)은 앞뒤로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18(1692)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인 이 건물의 앞마당, 춘당대에서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화당 신 벗고 오를 수 있다

 

영화당 현판

 

 영화당에서 본 부용지

 

춘당대 동쪽 끝에 후원의 우일한 화장실과 매점이 있어. 안내원은 관람자들에게 잠시 자유 시간을 준 후 애련지(愛蓮池)와 의투합(倚斗閤)으로 이동한다.

   안내문

 

 배치도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은 숙종18(1692)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愛蓮亭)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애련지와 애련정

 

 애련지와 기오헌(寄傲軒) 사이의 고목

 

의두합(倚斗閤)은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그의 롤 모델(Role model)은, 할아버지인 정조였으므로, 주합루 뒤쪽에 집을 짓고 이곳을 나라 일을 생각하는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효명세자는 1830년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후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의투합과 운경거

 

불로문(不老門)은 하나의 통 돌을 깎아 세운 문으로 임금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불로문 맞은편에 창경원으로 통하는 영춘문이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들을 이용 할 수 없고,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창경궁 출입문으로 출입한다.

   불노문

 

 영춘문

 

존덕전(尊德亭)과 펌우사(砭愚榭)로 이동한다. 존덕정(1644년 건립)은 육각정자 형태로 겹 지붕이 특이하다. 폄우사는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이다.

배치도

 

 관람지와 관람정 그리고 펌우사와 존덕정

 

 한반도 모양을 닮은 관람지

 

존덕정과 승재각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두 개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이채롭다. 내부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는데, 정조가 집권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신하들의 충성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천장 중앙에 그려진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은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존덕정

 

 萬川明月主人翁自序

 

 천장화

 

안내원은 펌우사 앞에 깔린 돌들은 팔자걸음을 연습하던 곳이라며, 본인이 직접 연습하는 모양을 보여준다. 관람정(觀纜亭)은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이다. 관람은 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펌우사와 팔자걸음 연습 시범

 

 다음 옥류천 일원으로 이동한다. 오르막길을 올라 능선에서 취규정(聚奎亭)을 만나고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옥류천 일원의 배치는 아래와 같다.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능선 위의 취규정

 

옥류천 일원 배치도

 

인조 14(1636)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옥류천과 소요암 뒤로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초가 청의정이 보인다.

 

 소요암과 유상곡수

 

근처의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많은 임금들로부터 사랑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정조는 특히 농산정을 좋아하여,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행차 준비를 할 때, 창덕궁 후원에서 혜경궁이 타고 갈 가마를 메는 연습을 실시한 후, 농산정에서 신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소요정

 

 취한정

 

 태극정

 

 농산정

 

마지막 탐방지인 연경당(演慶堂-보물 1770))으로 이동한다. 연경당은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종에게 진작례(進爵禮)를 올리기 위해 1828(순조 28)사대부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 칸 민가형식의 집이다. 진작례란 신하들이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행사로, 효명세자는 이를 왕권 강화책으로 이용한 것이다.

 

  연경당 배치

 

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달에 있는 신선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주인대감의 일상거처인 사랑채와 안주인 등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로 나뉘어져 있고, 단청은 하지 않았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중국풍의 벽체와 서적 보관을 위해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 식 차양을 설치했다.

   장락문

 

 연경당 1

 

 영경당 2

 

 선향재 1

 

 선향재 2

 

 선향재 앞마당에서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1220분 경, 후원관람을 마치고 돈화문 쪽으로 이동한다. 넓은 이동로가 가볍게 오르내리고, 길 주변의 고목들이 눈길을 끄는데, 안내인은 이동 중에 만난 천연기념물 194호인 창덕궁 향나무에 대하여 마지막 해설을 한다.

   후원 관람을 마치고 돈화문으로 이동

 

 고목

 

 창덕궁 향나무

 

 안내문

 

이어 안내원은 이것으로 후원관람은 마치지만,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자유롭게 궁궐전각을 관람할 수 있으니, 보다 더 궁전 분위기에 젖어 보시라며,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201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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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1)

서울의 명소 2016. 3. 13. 10:48

 

 한복 입은 아가씨들 궁전 관람(무료)

 

 혼자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을 만나고, 이중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기로 한다, 창덕궁을 첫 대상으로 꼽는다.

 

창덕궁에 관한 모든 정보는, <창덕궁 http://www.cdg.go.kr> 잘 정리 되어있다. 방문 전에 둘러보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 경우는 아무 사전준비 없이 무작정 방문하고 나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창덕궁 홈페이지 자료로 공부를 하고, 그 내용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

 

창덕궁은 1405(태종 5)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웃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비원으로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다양한 정자, 연못, 수목, 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한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상 홈페이지 자료)

 

창덕궁 관람은 일반(전각)관람과 후원관람 두 가지가 있는데, 전각관람은 자유관람이고, 후원관람은 문화재 보호와 생태보존을 위해 제한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후원관람은 언어권별(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로 정해진 시간에 따라서 인원제한(100-인터넷 예약 50, 당일 선착순 현장 판매 50)을 두어 안내해설사와 함께 관람을 하게 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다. 후원관람의 인터넷예약은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관람예약-후원 관람예약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2016225()

222일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22510인터넷예약을 하고, 23일 오전 해설사로부터 창덕궁 정문 매표소 앞에서 10시에 만나자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950분 경 매표소 앞에 도착하여, 955, 해설사 장 여사를 만난다. 자신은 자원봉사자라며 예약한 사람들이 더 있으니 잠시 기다리는 동안, 우선 매표소에서 전각관람 표를 구입하라고 한다.

 매표소에 게시된 관람요금과 관람시간

 

전각관람료는 성인이 3,000원인데, 65세 이상은 무료다. 경로입장권을 받고, 500원을 주고 한글판 경복궁 팜프렛을 구입한다. 이윽고 아이들 3명을 대동한 젊은 부부가 모습을 보이고, 이어 

준비가  끝나자, 정 여사는 우선 돈화문에 대한 설명부터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팜프렛에 실린 내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태종12)에 건립되었다. 2층 누각 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규모 크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한 이듬해인 1609년에 재건되었다. 보물 383호다.

 

敦化中庸大德敦化에서 가져온 것으로 '큰 덕은 백성들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층 문루에 종과 북이 있어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돈화문

 

일행은 돈화문으로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선다. 정 여사는 왼쪽 회나무를 가리킨다. 학자의 기개를 닮아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던 회나무는 학자수라고 도 불린다며, 창덕궁에는 수령 300~ 400년이 넘는 회나무 10여 그루가 있는데, 모두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회나무 1

 

 회나무 2

 

이어 정 여사는 우리들에게 창덕궁 세계유산비를 보여주고, 궐내각사(闕內各司)로 안내한다. 궁궐 안에 설치된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관청들을 궐내각사라고 하는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弘文館, 玉堂),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內醫院, 藥房),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奎章閣, 內閣),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藝文館)등이 중심시설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에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궐내각사 전경

 

   청덕궁 세계유산

 

  궐내각사 전각 배치도

 

 규장각

 

 검서청

 

  궐내각사 내부

 

이어 금천(禁川)을 건너 선원전(璿源殿)으로 들어선다. 선원전은 역대 제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금천 1

 

 금천 2

 

 선원전 전각 배치도

 

 어진

 

 선원전 마당의 향나무

 

 내찰당과 담 넘어 양지당

 

 약방

 

 담장 너머 전각들

 

궐내각사와 선원전원 둘러보고 금천교 쪽으로 나오면서, 정 여사에게.

 

나는 비원을 둘러보려고, 예약을 했던 것인데, 비원은 언제 보게 되나요?”

라고 묻는다.

 

그래요?, 그러면, 11시 후원탐방 팀에 합류하시면 되겠네요. 함께 전각을 둘러보시다가, 시간이 되면 안내해 드리지요.”라고 대답하더니,

 

후원탐방은 가이드를 따라 진행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니까, 후원탐방이 끝난 후, 전각탐방을 계속하시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친절하게 덧붙여 설명을 해준다. 느티나무 고목이 눈길을 끄는 돌다리 금천교 (錦川橋)에 이른다.

   금천교와 진선문

 

 금천교 느티나무, 정면의 목책길이 선원전에서 나오는 길이다.

 

예로부터 궁궐을 조성할 때에는 궁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명당수를 건너게 하였다. 이 물은 궁궐의 안과 밖을 구분해 주는 경계 역할을 함으로 금천(禁川)이라고 불렀다. 창덕궁의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동쪽 궐 밖으로 빠져 나간다.

 

1411(태종11) 금천에 다리를 놓았는데 비단처럼 아름다운 물이 흐르는 개울에 놓인 다리라 하여 금천교(錦川橋)라 불렀고,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2011년 보물 1712호로 지정되었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 상, 북쪽에 거북 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쫓는 귀면(鬼面)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금천교-귀면과 해태상()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進善門)으로 들어선다. 정면으로 숙정문, 왼쪽에 인정문이 보인다. 경국대전에 진선문에 신문고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돈화문을 통과하여 진선문에 걸린 신문고를 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억울한 백성들은, 두드리기 힘든 신문고는 포기하고, 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인정전 배치도

 

 인정문과 숙정문

 

인정문(보물 813)을 지나 인정전(仁政殿-국보 225)으로 들어선다. 1408(태종 5)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된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政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이다. 이러한 행사 때에는 인정전 앞의 품계석에 맞춰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했다.

   인정문

 

 인정전

 

 품계석

 

조선의 궁궐 정전에는 공통적으로 정면에 임금의 용상(龍床)과 나무로 만든 곡병(曲屛)을 두고 뒤에는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을 둘렀는데 일월오악도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폭포, 파도,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천장에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 1908년 전기시설이 가설되면서 인정전에 전등이 설치되고, 커튼, 유리창문 등을 더해, 서양식으로 개조됐다.

   인정전 용상

 

인정전 관람을 마치고, 선정문을 지나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便殿)인 선정전(宣政殿-보물 814)으로 들어선다. 임금은 일월오악도를 배경으로 중앙에 앉고 그 좌우로 문관과 무관이 자리 잡은 한쪽에서는 사관(史官)이 앉아 국사에 대한 논의를 세세히 기록하였다. 이 건물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선정문, 선정전

 

 선정문

 

 선정전 안내

 

 선정전 용상

 

이어 장 여사는 옆에 있는 희정당(熙政堂)을 놔두고 뒤쪽의 대조전(大造殿)으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아마도 후원탐방 시간을 의식한 모양이다.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눠진다.

  선평문과 대조전

 

 화장대

 

 온돌 아궁이

 

 대조전 뒤뚤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1917년 이 건물이 불에 타자,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을 옮겨다 지었다.

   대조전

 

경훈각

 

흥복헌

 

경훈각(景薰閣)과 흥복헌(興福軒)은 대조전의 부속 건물로 대조전과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어,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준다. 보물 816호로 지정되었다. 이중 홍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대조전 배치도

 

대조전 뒤뜰을 지나, 희정당(熙政堂)으로 이동한다. 보물 815호인 희정당은 임금의 침실이 딸린 편전이었는데,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아,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여 어전회의실로 사용 되었다.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의 건물은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을 옮겨 지은 것이다.

  희정당

 

희정당까지 안내를 한 정 여사는 후원관람 매표소로 나를 데려다 주고 헤어진다. 남은 성정각과 낙선재는 후원을 관람한 후, 둘러본 것이다.

  성정각 배치도

 

성정각 (誠正閣)은 세자의 교육장이고, 이 일대가 동궁이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옥각누각인 삼삼와(三三窩), 그 옆의 칠분서(七分序), 그리고 승화루(承華樓)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성정각

 

 승화루

 

1910년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으로 내국(內局)이라고도 불렀다.

  낙선재 배치도(사진 크릭하면 커짐)

 

낙선재(樂善齋), 석복헌(錫福軒), 수강재(壽康齋)가 하나의 일곽(一廓)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낙선재라 부른다. 후사가 없던 헌종은 1847(헌종 13)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중희당(重熙堂) 동쪽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을 차례로 지었다.

  낙선재 일원 1

 

 낙선재 일원 2

 

 낙선재 일원 3

 

 상량정과 낙선재 누마루

 

 낙선재

 

 대청과 내실

 

 석복헌

 

 수강재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새로 건물을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단청을 하지 않은 낙선재의 소박한 모습이 헌종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아름다운 화계(꽃계단)와 꽃담, 다채로운 창살들이 돋보인다. 낙선재의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이고, 대청마루 앞 주련에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 옹방경의 글씨가 있다.

  장락문

 

만월문과 꽃담

 

낙선재 창살문양

 

낙선재 현판

 

 후원 1

 

 후원 2

 

마지막 황후인 윤 황후(순정효황후)가 석복헌에서 1966년까지 생활했고, 낙선재는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 등이 1963년부터 1989년까지 거처하여,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2012년 낙선재 일원이 보물 1764호로 지정되었다.

 

 

(2016.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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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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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2)

서울의 명소 2015. 7. 19. 09:46

 

 

 길상사 극락전 불상

 

와룡공원 입구 정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더위와 갈증을 해소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 와룡공원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성북 우정의 공원으로 향한다.

와룡공원길 1

 

와룔공원길 2

 

337, 우정의 공원에 내려선다. 성북구에서는 이 일대에 30여 개국의 외교관저가 모여 있는 것을 기념하여, 이곳에 우정의 공원을 조성하고 국기를 계양해 놓았다. 잠시 우정의 공원을 둘러보고, 수월암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대사관로를 따라 오른다. 길 건너편에 경비원이 서 있는 외국인 사택단지 입구가 보인다.

  성북 우정의 공원 안내판

 

 우정의 공원

 

 수월암

 

 외국인 사택단지 입구

 

345,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삼청각을 향한다. 깨끗하게 정비된 인적이 없는 대사관길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 353, 삼청각에 이른다.

  삼거리

 

 대사관길 1

 

 대사관길 2

 

 삼청각

 

삼청각(三淸閣)1972년 건립되어 1970~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에는 손님이 줄어들어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9912월에 문을 닫았다.

 

1999년 말, 건물과 부지를 인수한 화엄건설()이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관할 성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문화재 보존여부에 대한 판단문제로 건축허가 결정이 유보되었다. 이후 2000522일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 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 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10,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규모는 대지 5,884, 연건평 1,331평이다. 6채의 한옥이 있으며, 건물마다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되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이상 위키백과)

 

20분 동안 삼천각의 동백헌(東白軒), 취한당(翠寒堂), 일화당(一龢堂), 유화정(幽霞亭), 청천당(聽泉堂), 천추당(千秋堂) 등을 둘러본다. 자칫 헐려버릴 뻔했던 아름다운 건물들이, 문화시설로 지정되어, 새롭게 활용되어 다행이다.

 

삼청각 배치도(펌)

 

 이정표

 

 남천문

 

 취헌당

 

 영표문

 

 일화당

 

 한식당

 

 천추당

 

 청천당

 

 유하정

 

 일화당 가는 길

 

삼청각을 나와 왔던 길을 되 집어나가 수단 공화국 대사관저, 터키 대사관저 등을 지난다. 달동네 북정마을과는 딴판인 고급주택가다. 이어 정법사 입구를 지나, 한국가구박물관에 이른다. 이곳은 미리 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밖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발길을 돌려, 길상사를 향해 선잠로로 들어선다. 성북 빌 하우스와 화사하게 핀 능소화가 눈길을 끈다.

   대사관저 1

 

 대사관저 2

 

 정법사 입구

 

 한국가구박물관

 

 밖에서 본 한국가구박물관

 

 성북 빌 하우스

 

 능소화

 

440분 경 길상사(吉祥寺)에 도착한다. 애절하고 멋진 이야기가 담긴 길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와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시인 백석(白石)1930년대 말 기생 김영한에게 반해 자야(子夜)’라고 부르며 같이 살았다. 동거를 반대한 집안 어른을 피해 택한 사랑의 도피처는 러시아였다. 백석은 러시아에서 자야를 기다리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썼다.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야는 러시아에 가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백석과 자야가 만날 수 있는 길은 끊기고 말았다. 자야는 성북동에 요정 대원각 을 세워 큰 부를 일궜지만 백석의 생일(71)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자야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화돼 951000억원 상당의 대원각 부지 23000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했다. 그것이 지금의 길상사다. 99년 숨진 자야는 생전에 그 돈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글을 남겼다. [안충기 기자의 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상사

 

 일주문

 

 조감도(크릭하면 사진 커짐)

 

 이정표

 

 관세음보살상과 설법전

 

 성모상을 닮은 관세음보살상(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작품)

 

 길상7층보탑

 

 안내문

 

 극락전 1

 

극락전 2

 

 침북의 집

 

 적묵당

 

 경내 1

 

 경내 2

 

20분 동안 경내를 둘러보고, 5시경 일주문을 나서니, 한성대입구-길상사 간을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당초에는 차를 타지 않고 성북동 길을 걸어보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생각보다 지역이 넓고, 방문해야 할 곳 도 많아, 오늘은 어차피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본 터라, 가을쯤 하루 날짜를 잡아 다시 오기로 하고, 셔틀버스에 올라 귀가한다.

 

 

(2015.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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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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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1)

서울의 명소 2015. 7. 15. 09:49

 

심우장(尋牛莊) - 성북동 달동네, 북정마을에 있는 만해 한용운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6칸짜리 북향집

 

201578()

육백산 이끼폭포를 탐방하려고, 0014분 경, 산악회버스 경유지인 서초구청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등산객도 버스도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버스도착이 늦는다면, 기다리는 등산객들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등산객들도 없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 우천으로 산행이 취소 됐는데, 나만 모르고, 나왔나?

-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버스가 출발 시간인 15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떠났나?

 

잠시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와 등반대장에게 전화를 한다. 등반대장은 14분 까지 기다리다, 출발했다는 대답이다. 71일부터 출발시간이 10분에서 15분으로 변경된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이제 전화를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오히려 타박이다.

 

새벽부터 황당한 일을 당한 내 기분과는 달리, 비가 온다던 날씨는 쾌청하기만하다. 게다가 이틀 전에 내린 비()덕에 오늘은 덥지도 않고, 대기도 상쾌할 정도로 투명하다. 오전에는 집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으나, 오후에는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점심식사 후, 성북동 길을 걸어 보려고 집을 나선다.

 

중앙일보의 성북동 길/그곳에 가고 싶다.”(2014. 10. 09.)에서 성북동 길은 문인의 길, 화가의 길, 사랑의 길, 해탈의 길로, 한국 예술 100년이 켜켜이 쌓인 '인문학 박물관' 이라고 갈파했다. 좀 더 그 까닭을 들어보자.

 

간송(澗松) 전형필이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을 사들여 성북동에 보관하고, 비슷한 시기에 문인들도 하나둘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용운이 심우장에 자리를 잡은 1933년 이태준이 성북동에 들어왔다.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한 이효석, 정지용 등 구인회(九人會)의 활동무대였고, 청록파(靑鹿派) 조지훈이 32년간 시를 쓴 곳이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의 집,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도 이곳이 고향이다.

 

성신여대 김명석(국문학) 교수는 국문학사에서 이렇게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동네는 없었다. 성북동은 살아 있는 인문학 박물관이라고 했다. 이렇게 성북동은 한국 문학 100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고, 그런 문학을 가능케 했던 문인들의 스토리가 가득한 장소이며, 한글 문학을 가능케 했던 훈민정음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곳이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60년대 교분을 다진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는 대표적인 예다. 이산이 어스름 저녁 하늘을 그린 저녁에를 짓자, 이에 수화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했다. 한국미술대상전 제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한국 추상미술의 놀라운 성취다. (이상 성북동 길/그곳에 가고 싶다.”에서 발췌)

 

서울에서 낳고, 서울에서 자랐으면서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처럼 널리 잘 알려진 성북동 길을 아직도 걸어보지 못한 터라, 산엘 못가 쳐진 기분도 바꿀 겸, 좋은 날씨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다. 강남구청역에서 출발, 두 차례 지하철을 바꿔 탄 후, 153,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온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롭고, 멀리 아름다운 북한산이 깨끗한 모습으로 반긴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본 성북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도로를 따라 오른다. 우선 다른 곳과 달리, 이곳 성북로 곳곳에 외국의 깃발이 자주 보인다. 성북동에 외국 대사관저가 많아, 이들을 알리는 깃발인 모양이다. 11분 쯤 걸어, 성북로가 왼쪽으로 굽어지는 로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서, 25, 첫 번째 방문지인, 최순우(崔淳雨) 옛집에 이른다.

  성북로가 좌로 굽어지는 로타리

 

  최순우 옛집

 

4대 국립박물관장이며, 미술사학자인 최순우(1916~1984)1976년부터 작고할 때 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돌층계를 올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먼저 절제된 수의 나무를 심고, 석물을 배치한, 크지 않은 마당의 단아한 모습들이 눈길을 끌고. 벽과 벽사이의 공간이 무척 아름다운데, 오랜만에 보는 장독대가 반갑다.

  대문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마당 1

 

  마당 2

 

  마당 3

 

  마당 4

 

  마당 5

 

  벽과 벽 사이

 

  반가운 장독대

 

마침 박영숙 백자 전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가옥과 백자의 고고한 아름다움이 더 한층 돋보이는 듯싶다. 최순우 옛집 중수기와 매죽수선재(梅竹水仙齋) 현판을 카메라에 담는다.

  박영숙 백자 전

 

백자와 고가구

 

  옛 마루 위의 백자

 

완당의 매죽수선재

 

중수기(사진 크릭하면 커짐)

 

크지는 않지만, 한국적인 미가 담뿍 담긴, 학자가 살던 집이다. 인근 지역의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했던 이집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관리된다고 하니 더욱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옛집 안에 있다는 선생의 유물전시관 관람을 생략하고, 성북동 지도 1매를 얻어 들고 대문을 나선다. 최순우 옛집은 매해 41일부터 1131일까지(동절기는 휴관),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오후 4, 무료 개방한다.

  성북동 예찬 최순우 옛집에서 얻은 지도, 많은 도움이 됐다.(사진 크릭하면 커짐)

 

10분 정도 최순우 옛집을 둘러보고, 골목을 따라 계속 오르다, 왼쪽에 성북동쉼터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다시 성북로로 나와, 길 건너 선잠단지(先蠶壇址)에 이른다. 이곳은 조선 성종(1457~1494) , “뽕나무가 잘 크고, 살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해 달라.”라고 기원을 드리던 제단이라고 한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매년 5월에 이곳에서 선잠제례가 열린다고한다.

  선잠단지

 

  터만 남고

 

안내판(사진 크릭하면 커짐)

 

선잠단지가 있는 곳에서, 길상사로 이어지는 선잠로가 오른쪽으로 분기(分技)하지만, 성북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여, 성북 파출소를 지나고, 222,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선다. 저 앞에 간송미술관 정문이 보인다.

  계속 성북로를 따라 걷는다.

 

  간송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정문

 

이 미술관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을 정리연구전시하여,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되찾고자 설립되었다.

 

미술관의 규모는 1층과 2층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으며 소장품은 전적,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그림, 글씨, 부도, 석탑 등에 걸쳐 다양하다. 2011년 현재 훈민정음(국보 제70),·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제68)·,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제135) 등 국보 12, 보물 10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이 등록되어 있다.

 

전시회는 회화·서예·도예·서화로 나뉘어 매년 봄(5가을(10) 2주일씩 2회 개최되며, 이 밖의 상설전시는 하지 않는다. (백과사전 발췌)

 

, 가을 두 차례 전시회 때 이외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 수위실 앞에서 안뜰의 사진 한 장만 찍고, 올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되돌아선다.

   미술관 입구

 

성북로가 오른쪽으로 굽어 돌면서 2차선으로 좁아진다. 오른쪽으로 실상선원이 보이고, 이어 덕수교회 앞에 이르지만, 조선 말기에 마포강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었다는 여름별장은 좀처럼 눈에 뜨이질 않는다. 아마도 덕수교회 부속 노인학교 건물 뒤에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학자의 집(최순우 고택)과 갑부의 별장을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종석 별장을 방문하려면 현 소유자인 덕수교회에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성북로가 좁아지고

 

  실상선원

 

 덕수교회

 

 덕수교회 부설 노인학교

 

이종석 별장을 찾느라 주위를 맴돌다 보니, 건너편에 오래된 멋진 성당 건물이 눈에 뜨인다. 가까이 가보니 한국순교 복자 수도원, 피정의 집이다. 문이 굳게 닫혀있다. 선원, 교회, 천주교 수도원이 서로 가까운 이웃을 이루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또한 성북동 길의 멋이 아니겠는가?

  천주교 수도원 건물

 

 한국순교 복자 수도원(韓國殉敎福者修道院)

 

성북로를 조금 더 따라 오르면, 성북구립미술관에 이르고, 미술관 뒤쪽에는 상허 이태준의 가옥인 수연산방이 있다. 오늘은 성북동 길을 걸어보자고 나온 터라, 성북구립미술관은 겉모습만 훑어보고, 수연산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성북구립미술관

 

서울시 민속 문화재인 수연산방(壽硯山房)상허의 산문으로 지용의 운문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문체를 자랑하던 소설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4년 동안 살던 집이라고 한다. 이태준은 이곳에 머물며 '황진이''달밤'등의 작품을 집필했으나. 소설가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 후, 남로당계의 숙청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태준 가옥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1999년 외종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귀가 후, 전화를 해본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좀 더 알아보아야겠다.

  수연산방

 

어쩔 수 없어 발길을 돌려 다시 성북로로 나와 만해 한용운선생의 심우장으로 향한다. 2차선 좁은 도로, 도로 양쪽의 풍광이 아름답다.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원을 지나고, 예쁜 성북 설렁탕집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나니, 잠시 후 만해의 산책공원이 모습을 보인다.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원

 

 성북 설렁탕

 

 만해의 산책공원

 

우선 산책공원 아래쪽에 배치한 선생의 소개 글과 심우장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님의 침묵과 함께 앉아 계신 선생의 좌상을 카메라에 담은 후, 층계를 올라, 심우장에 이른다.

   만해 한용운(사진 크릭하면 커짐)

 

  심우장(사진 크릭하면 커짐)

 

 님의 침묵과 선생

 

 심우장 가는 길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이곳 성북동은 원래 성 밖 마을 북장골, 한적한 동네였다.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워키 백과)

  6칸짜리 북향집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정면에 벽돌로 된 관리동이 있지만 내다보는 보는 사람도 없다. 왼쪽으로 북향의 심우장이 자리하고, 마당 북쪽에 심우당 안내판이 보인다.

 

  심우장 안내(사진 크릭하면 커짐)

 

 심우장 현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의 전서체

 

선생이 서재로 쓰셨다는 단칸방에는 선생의 초상이 걸려 있고, 가운데 방에는 선생의 유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신을 벗고 가운데 방으로 들어가 유품들을 둘러 본 후, 부엌과 찬마루를 카메라에 담으니 끝이다.

   단칸방 서재에 걸린 초상

 

 마저절위와 오도송

 

마저절위(磨杵絶韋)맷돌질은 맷돌공이가 다 닳도록 하고, 책은 가죽으로 된 끈이 끊어지도록 본다."라는 뜻이고, 오도송(悟道頌)은 선생이 1917123(39세 때) 오세암에서 정진하던 중 한밤중에 깨달음을 얻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대법륜 - “거대한 진리의 수레바퀴가 구른다.”

 

 부엌과 찬마루

 

심우장을 나선다. 맞은편 벽에 북정마을을 보고 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복정마을 향해 산동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 비둘기 쉼터에 이른다. 높다란 시멘트벽에 비둘기들 앉아 있고,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걸려 있다.

   북정마을로 오세요.

 

 산동네 골목길

 

 시멘트 옹벽길

 

  비둘기 쉼터

 

 성북동 비둘기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성 밖 북정마을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달동네라고 한다. 이런 북정마을을 가로 질러 한성도성으로 향한다. 와룡공원길을 건너고, 나무계단을 올라,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왼쪽 와룡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은 3년 전에 한성도성 길을 걸으며 지났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와룡공원길

 

 이정표

 

 한양도성

 

320, 와룡공원 입구로 나와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서울을 잠시 굽어 본 후, 정자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처럼 와룡공원 입구로 나온 것은, 이곳에서 성벽 길을 따라 성북동 쉼터로 내려서서, 한성대입구역에서 지하철로 귀가하여, 6시경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와룡공뤈 입구

 

 와룡공원 전망대에서 본 서울 1

 

  서울 2

 

 현 위치(사진 크릭하면 커짐)

 

헌데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을 바꾸어, 나온 김에, 계속하여 대사관로도 걸어보고, 삼청각, 한국가구박물관, 그리고 길상사 등을 들러보기로 한다.

 

 

(20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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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

낙산공원

서울의 명소 2012. 12. 17. 19:42

 

낙산공원 중앙광장 벽면을 장식한 좌청룡

 

낙산(駱山)은 한양의 좌청룡으로, 북현무인 삼각산, 남주작 남산, 그리고 우백호 인왕산과 더불어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을 이룬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이성계는 태조 4년(1396년), 2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이 내사산을 잇는 타원형의 성을 쌓는다.

                     내사산 성벽길(펌)

서울 성곽

 

산을 좋아 한답시고 7~8년 동안 열심히 산을 찾아다니면서도, 지금은 공원으로 변해버린 낙산은 좀처럼 찾아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산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산행지는 못 되더라도, 서울의 역사가 담긴 낙산공원은 반드시 답사를 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8월 25일자 조선일보의 “도심 속 산책길, 서울 성곽 중 가장 아름다운 ‘낙산 성북구간’”이라는 기사를 본다. 마침 이날은 거실 천정도배를 한다고 집 안이 온통 북새통이라, 신문 스크랩과 새로 마련한 DSLR 니콘 카메라를 들고 낙산공원을 향해 집을 나선다.

조선일보 기사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 7호선에 올라, 2호선을 거쳐, 4호선으로 바꿔 탄 후,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쪽으로 걷는다. 오른쪽 길 건너에 보이는 혜화문(동소문)을 카메라에 담고 조금 더 진행하여, 성벽 길로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는 동소문에서 홍인지문(동대문)까지의 성벽 길이가 2.2Km라고 적혀있다.

혜화문(동소문)

나무 데크 길

 

나무계단을 올라, 뒤돌아 혜화문과 성북동 일대, 그리고 북한산을 돌아보고 성벽 길을 걷는다. 성벽 길 곳곳에 벤치가 있고, 이정표가 보인다. 고도가 높아지며 북한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불암산, 수락산이 모습을 보인다. 오늘 사진은 새로 장만한 니콘 DSLR로 찍은 것이다. 그 동안 산에 다니며, 니콘 5100 똑딱이로 사진을 찍어 왔으나, 보다 더 멋지고 선명한 사진을 찍어 보겠다는 욕심에 100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보급용 DSLR을 장만한 것이다. 오늘이 뜻 깊은 첫 출사일이다.

동소문, 성북동, 그리고 북한산

벤치와 이정표

성벽

성벽 길

북한산이 한 눈에

동쪽 조망

 

성벽 길을 걷는다. 첫 번째 만난 암문에서 성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낙산공원 놀이광장이다. 오른쪽은 제1~제3 전망광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마을 순환버스 회차지점을 지나, 성벽 길 안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제1, 제2 전망대에서 인왕산과 북악산을 보고, 남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중앙광장으로 향한다.

낙산공원 그림지도

앞에 보이는 첫 번째 암문으로 들어서고

왼쪽 전망대 가는 길

놀이광장 오른쪽 버스 회차지점

놀이광장에서 본 성벽

제 2 전망대

인왕산과 북악산

남산

중앙광장에는 낙산전시관, 봉산탈춤민속극장과 매점이 있다. 전시관을 잠시 둘러본다. ‘1910년/민족의 설음을 함께한 낙산’, ‘1950년/페허 속에서’, ‘1960년/근대화 속의 낙산’ 등의 글과 사진으로 낙산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매점 앞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다.

낙산박물관

낙산

1950/폐허 속에서

봉산탈춤민속극장

 

점심 식사 후 이화장으로 향한다. 이화장이 지난 폭우로 수해를 입어 많은 전시물들이 훼손됐다고 하더니, 관리인이 문 밖에서 출입을 막는다. 사정사정 끝에 겨우 이박사의 동상과 건물 사진만을 찍는 것으로 양해를 얻는다. 이화장을 뒤로 하고 가파른 골목길을 지나, 낙산정, 홍덕이네 밭을 둘러보고 비우당으로 향한다.

안내문

이화장의 이승만 대통령 동상

이화장 1

이화장 2

이화장 길 오르막 골목

낙산정

 

홍덕이 밭

안내문

버스 회차로에 나와 낙산공원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고, 산책 나온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비우당과 자주동샘을 찾아, 둘러본 후, 다시 버스 회차로로 돌아와 성벽 길을 따라 동대문으로 향한다.

창신동쪽의 낙산공원 입구

비우당, 비가 오면 방에서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면서 우산이 없는 백성들을 걱정했다는 청백리 유관의 집

 

자주동샘

 

안내문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1


 

성벽길 2


 

성벽길 3

 

성벽 길을 따라 내리다, 왼쪽으로 또 다른 암문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유명한 산동네 벽화를 보지 못한 것에 생각이 미친다. 더위를 피해 길 가에 나와 앉아 한담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어, 벽화가 있다는 창신4나길로 들어선다.

꽃 계단길

벽화 1

벽화 2

벽화 3

조형1

조형 2

조형 3

조형 4

당초 동대문으로 내려서려던 계획을 바꾸어 동숭동으로 들어선다.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자리는 많은 소극장들이 몰려있는 꿈과 예술, 그리고 낭만의 거리로 탈바꿈하여, 젊음의 활기가 가득하다. 수도 서울, 좌청룡의 기상이 흠씬 느껴지는 기분이다.

아르코 예술극장

거리의 화가

낙산공원 입구

샘터 파랑새 극장

손목에 찬 Watch GPS의 기록을 보니,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를 나와 이곳까지 오늘 걸은 거리가 7.93Km이다. 혜화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한다.



 

(201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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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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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서울의 명소 2012. 12. 17. 16:07

 

 

 

잠두봉에서 본 파노라마 1. 왼쪽부터 안산, 인왕산, 삼각산

파노라마 2. 왼쪽부터 삼각산, 북한산, 도봉산

 

집사람이 겨울철의 단독산행을 극구 반대하는 터라, 산행을 하려면 산악회의 안내를 받아야하는데, 맹추위와 폭설이 계속되자, 산악회의 산행일정 취소가 잇따른다. 11일(화)저녁, 12일(수) 산행이 취소 됐다는 산악회의 연락을 받고는 고민에 빠진다. 집사람은 날씨도 추운데 잘 됐다며, 기온이 오르는 낮 동안에 가까운 선릉에라도 다녀오라고 권한다.

 

두 어 시간 동안에 선릉을 한 바퀴 돌고 오면 10,000보 정도를 걷게 도니, 운동량으로는 부족함이 없겠지만, 너무 싱겁다.한양 4산(漢陽 四山)중, 남산과 낙산은 이제 공원으로 변해 산행대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답사해야 할 곳으로 늘 생각해오던 터라 이참에 눈 내린 남산공원을 둘러보기로 하고 교통편 등을 알아본다.

 

2011년 1월 12일(수)
오늘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에서 서울시내 조망, 한옥마을 구경, 그리고 남산타워에서 보는 서울야경 등을 염두에 두고, 1시 30분 경 집을 나서서, 402번 시내버스로 남산도서관 앞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낳고, 서울에서 자랐으면서도 남산에 왔던 것이 언제인가? 가물가물하다. 남산타위에 올랐을 때 화장실 냄새가 역겨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을 정도다.

나들이 개념도

 

버스에서 내려 왼쪽 남산공원 입구로 향하며, 정약용 동상을 지난다. 높게 솟은 남산타워 위로 반달이 떠있다. 이어 만나는 퇴계 이황선생의 동상을 카메라에 담고, 1번 입구 주변의 시설물들을 둘러본다. 깔끔하게 정돈된 입구의 풍광이 좋지 않게 남아 있던 남산의 기억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도로변에서 본 남산타워

이 퇴계 선생 동상

남산공원

공원 안내도

이정표

1번 게이트 입구

 

공원입구로 들어선다. 승용차를 타고 왔을 경우, 공원 안의 주차장 주차료는 10분 당 300원, 1시간에 1,800원이다. 날씨가 차가운 평일이라, 두텁게 차려입은 노인 산책객들이 간간이 보일뿐 인적이 드물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후원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안 의사의 동상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서울시 교육연구 정보원 건물이 보인다. 안 의사의 유묵을 담은 많은 비석들과 조형물을 둘러보고 지하로 연결되는 명상의 길을 따라 내려선다.

안 의사 동상

서울시 교육연구 정보원 건물

비석들로 가득한 후원

국가안위 노심초사

조각 “한얼”

명상의 길 하단

 

기념관 입구에 있는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 안내문을 카메라에 담고, 안로 들어선다. 오픈 형 높은 천장의 넓은 홀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안 의사가 단정하게 앉아 계시고, 정면 벽 한쪽은 안 의사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글이 컬러풀한 한글 모듬 글자로 장식되어 있다.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이다. 때 마침 군인 단체관람객들이 들어서지만 발자국소리,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한다.

안내문

안 의사 좌상

어린이들에게 주는 글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데 힘쓰는 사람이 되어라. 대한국인 안중근”

 

지하층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로 지상 층으로 이동한다. 지상 층의 전시물 촬영은 허용이 되지 않아, 안 의사의 탄생과 성장과정, 의병대장이 되어 행한 왜군과의 전투, 그리고 의거와 체포, 투옥, 재판, 사형 등에 관한 전시물을 그림으로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이어 종합 영상실에서 13분짜리 영상물을 관람하고, 추모실에서 잠시 묵념을 드린 후,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나선다.

전시관 도입부의 부조(浮彫)

안 의사의 유언

 

한일합방 당시의 상황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관심이 있는 분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꼭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반공을 국시로 삼아 민주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이승만 대통령과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아직까지 건립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사명감을 가졌던 두 분 대통령이 독재를 하고, 정적들을 제거하여, 피해를 본 다수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제는 이분들의 공과를 분명히 하고, 공을 기릴 때가 됐다는 생각도 해본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나와 분수대로 향한다. 겨울철이라 분수는 얼어있지만 잘 손질된 광장이 시원하다. 이어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남산 케이블카를 향해 계단 길을 지나고, 성벽 길을 오른다. 중무장을 한 가족단위의 산책객들이 눈에 뜨인다.

분수대 길

눈 덮인 분수대

이정표

계단 길

성벽 길

 

이윽고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에 이른다. 서울의 강북지역과 이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북한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반기는 명소다. 야경을 찍기 위해서는 남산타워보다도, 이곳 잠두봉과 남쪽의 포토 아일랜드가 찍사들에게는 더 인기가 있는 명당자리다.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

안산과 인왕산 방향의 조망

북악산, 북한산 방향의 조망

낙산 방향의 조망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미끄럽다. 해가 진 후에 이 길을 내려서기가 부담이 될 듯싶어, 야경을 보고 하산할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할 생각으로 운행시간과 요금을 확인한다. 이어 봉수대에 올라 잠시 주위를 조망하고 국사당 터에서 관리인 아저씨에게 남산 한옥마을 가는 길을 묻는다. 아저씨는 걸어가는 길도 있지만 1시간 이상 시간이 걸릴 터이니 남산 순환버스를 이용하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팔각정과 타워 주변을 둘러 본 후, 순환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선다.

케이블카 운행시간과 요금

봉수대

봉수대 안내판

봉수대에서 본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방향의 조망


 

국사당터 안내판

팔각정

올려다 본 남산 타워

 

순환버스에는 세 개의 노선이 있다. 02번 충무로 행을 타니, 약 15분 정도 지나자, 남산 한옥마을 입구인 충무로역에 도착한다.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야경을 보러 남산으로 다시 오려면 이곳에서 02번이나, 05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기사양반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남산골 한옥 마을은 필동에 서울에 있던 전통가옥 5채를 옮겨놓아, 지금은 사라진 옛 가옥정취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남산 순환버스 노선도

남산골 한옥마을 정문

한옥마을 종합안내도

이정표

청화지

순정효 황후 윤씨 친가

해풍부원군 윤택영 댁

재실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한옥마을에는 전통한옥 외에 타임캡슐, 국악당 등이 있고 수시로 여러 가지 이벤트가 벌어져 지금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추운 날씨에도 일본인, 중국인 등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젊은 내국인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전통문화 체험교실 안내판

천년 타임캡슐 돌 표지

통로

천년 타임캡슐 사업안내

입구

타임캡슐

서울 남산국악당

 

약 50분 동안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입구를 나서자 충무로 일대에는 어둠이 내리기시작하고 멀리 북한산의 윤각이 뚜렷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약 10분 정도 기다리자, 05번 순환버스가 도착한다. 다시 국사당 터로 올라와 황혼 속의 서울 시가지를 굽어보고,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충무로

황혼 속의 서울(불암산 방면)

전망대 발권창구

일몰(63빌딩방향)

관악산 방향

한남대교 방향

 

맥주를 사 마시며 어둠이 더 내리기를 기다린다. 황혼 속에 붉게 보이던 도시가 잿빛으로 변하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더니, 6시가 넘자 서울의 야경이 펼쳐진다. 가히 장관이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굉장한 야경은 삼각대도 없는 똑딱이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야경 1

야경 2

 

사진 찍기를 단념하고 전망대를 돌며 찬찬히 야경을 즐긴다. 지난해 12월에 보았던 하코다데의 야경은 서울의 야경에 비하면 규모면에서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타워에는 관람객들이 점차 늘어난다. 하지만 하코다데처럼 많은 인파는 아니고, 게다가 외국 관광객보다는 내국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6시 20분 경, 타워에서 내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순환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선다.

남산타워 앞 광장

려다 본 남산타워

버스정류장에서 본 서울야경

02번 순환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02번 버스를 타고, 충무로역에서 내려 전철로 갈아 탄 후, 귀가한다. 실로 오랜만의 남산 나들이다.

 

 

(201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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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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