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2)

서울의 명소 2016. 3. 20. 10:04

 

  창덕궁 후원, 관람지, 관람정과 존덕정

 

창경궁을 포함한 창덕궁의 총면적은 약 17만평 정도이고, 이중 후원이 차지하는 면적이 70%를 넘는다고 한다. 전각관람은 자유로운 관람인데 비해, 후원관람은 문화재 보호와 생태보존을 위해 제한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즉 하루 관람횟수와 1회 관람인원, 그리고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고 안내인이 동행하여 해설을 한다.

  매표소 안내문

 

후원관람은 1회 관람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는데, 그 중 50명의 표는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나머지 50명분은 관람시간 1시간 전부터 매표소에서 판매한다. 따라서 관람객들이 많이 몰리는 봄, 가을에는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원하는 시간에 관람이 가능하다.

 

후원을 관람하려면 돈화문 옆 매표소에서 전각입장권을 구입하여, 돈화문을 통과한 후, 아래 그림의 점선을 따라, 후원 입구로 가서 표를 취득한 후, 입장하여, 대기한다.

   후원 입구(좌), 창경궁 입구

 

 

후원입구 가는 길(붉은 점선)과 후원탐방로(펌)

 

 후원입구

 

11시가 되자, 명찰을 목에 건 안내원이, 50~60명쯤 되어 보이는 관람자들을 창덕궁 후원 안내판 앞으로 모으더니, 자기소개를 한 후, 창덕궁 후원에 대한 설명을 한다.

  창덕궁 후원 안내판 앞에서 설명하는 안내원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은 한국의 유일한 궁중 정원으로, 궁원(宮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비원(祕苑) 등으로 이름도 다양하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4개의 골짜기에 부용정,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등의 연못을 만들고, 능선에는 아름다운 정자를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 창덕궁이, 경복궁을 제치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은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정원이지만,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기도 하고, 때로는 연회를 열고, 활쏘기 시합을 즐기는가 하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비롯한 각종 어전행사가 벌어졌으며,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이 창덕궁 후원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끝내고, 해설자는 먼데서 오신 분들도 있으실 터인데,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부산, 대전에서 오신 분, 영국에서, 캐나다에서 오신 분 등 다양하다. 해설자는 관심을 가지시고 멀리서 오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오늘 우리들은 부용정, 애련지, 존독정, 옥류천, 연경지를 차례로 돌아보게 되는데,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개별행동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를 한다.

   부용지 가는 길

 

첫 번째 방문지인 부용지(芙蓉池)와 주함루(宙合樓)는 휴식뿐만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고 한다, 300평 넓이의 부용지는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의 궁궐 연못이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에 의해서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용지일원 배치도

 

 부용지 1 부용지, 부용정, 그리고 사정기각비

 

 부용지 2 부용지와 주합루

 

1792년에 건립한 부용정(보물 1763)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을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후,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부용정

 

주합루(보물1769)1776(정조 즉위년)에 지은 2층 누각이다.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초기 왕실도서관으로 출발한 규장각은 점차 정책연구기관으로 기능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중기 문예부흥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적서(嫡庶)의 구별 없이 다양한 인재들이 여기서 활동하였다.

   주합루 - 관람불가

 

주합루라는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에는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임금이, 그 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했다.

   주합루, 수어문 현판

 

동쪽으로는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는 부용지를 마주하고 있는 영화당(暎花堂)은 앞뒤로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18(1692)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인 이 건물의 앞마당, 춘당대에서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영화당 신 벗고 오를 수 있다

 

영화당 현판

 

 영화당에서 본 부용지

 

춘당대 동쪽 끝에 후원의 우일한 화장실과 매점이 있어. 안내원은 관람자들에게 잠시 자유 시간을 준 후 애련지(愛蓮池)와 의투합(倚斗閤)으로 이동한다.

   안내문

 

 배치도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은 숙종18(1692)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愛蓮亭)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애련지와 애련정

 

 애련지와 기오헌(寄傲軒) 사이의 고목

 

의두합(倚斗閤)은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그의 롤 모델(Role model)은, 할아버지인 정조였으므로, 주합루 뒤쪽에 집을 짓고 이곳을 나라 일을 생각하는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효명세자는 1830년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후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의투합과 운경거

 

불로문(不老門)은 하나의 통 돌을 깎아 세운 문으로 임금이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불로문 맞은편에 창경원으로 통하는 영춘문이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들을 이용 할 수 없고,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창경궁 출입문으로 출입한다.

   불노문

 

 영춘문

 

존덕전(尊德亭)과 펌우사(砭愚榭)로 이동한다. 존덕정(1644년 건립)은 육각정자 형태로 겹 지붕이 특이하다. 폄우사는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독서하던 곳이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고쳐준다는 뜻이다.

배치도

 

 관람지와 관람정 그리고 펌우사와 존덕정

 

 한반도 모양을 닮은 관람지

 

존덕정과 승재각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두 개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이채롭다. 내부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는데, 정조가 집권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신하들의 충성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천장 중앙에 그려진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은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존덕정

 

 萬川明月主人翁自序

 

 천장화

 

안내원은 펌우사 앞에 깔린 돌들은 팔자걸음을 연습하던 곳이라며, 본인이 직접 연습하는 모양을 보여준다. 관람정(觀纜亭)은 평면이 부채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태의 정자이다. 관람은 닻줄 즉 배 띄움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펌우사와 팔자걸음 연습 시범

 

 다음 옥류천 일원으로 이동한다. 오르막길을 올라 능선에서 취규정(聚奎亭)을 만나고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옥류천 일원의 배치는 아래와 같다.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을 가리킨다.

  능선 위의 취규정

 

옥류천 일원 배치도

 

인조 14(1636)에 커다란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둥근 홈을 만들어 옥과 같이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 임금과 신하들이 여기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옥류천과 소요암 뒤로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초가 청의정이 보인다.

 

 소요암과 유상곡수

 

근처의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과 함께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많은 임금들로부터 사랑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소요암에는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정조는 특히 농산정을 좋아하여,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행차 준비를 할 때, 창덕궁 후원에서 혜경궁이 타고 갈 가마를 메는 연습을 실시한 후, 농산정에서 신하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소요정

 

 취한정

 

 태극정

 

 농산정

 

마지막 탐방지인 연경당(演慶堂-보물 1770))으로 이동한다. 연경당은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종에게 진작례(進爵禮)를 올리기 위해 1828(순조 28)사대부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 칸 민가형식의 집이다. 진작례란 신하들이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행사로, 효명세자는 이를 왕권 강화책으로 이용한 것이다.

 

  연경당 배치

 

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달에 있는 신선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주인대감의 일상거처인 사랑채와 안주인 등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로 나뉘어져 있고, 단청은 하지 않았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중국풍의 벽체와 서적 보관을 위해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 식 차양을 설치했다.

   장락문

 

 연경당 1

 

 영경당 2

 

 선향재 1

 

 선향재 2

 

 선향재 앞마당에서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1220분 경, 후원관람을 마치고 돈화문 쪽으로 이동한다. 넓은 이동로가 가볍게 오르내리고, 길 주변의 고목들이 눈길을 끄는데, 안내인은 이동 중에 만난 천연기념물 194호인 창덕궁 향나무에 대하여 마지막 해설을 한다.

   후원 관람을 마치고 돈화문으로 이동

 

 고목

 

 창덕궁 향나무

 

 안내문

 

이어 안내원은 이것으로 후원관람은 마치지만,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자유롭게 궁궐전각을 관람할 수 있으니, 보다 더 궁전 분위기에 젖어 보시라며,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고 부연한다.

 

 

(201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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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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