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1)

서울의 명소 2015. 7. 15. 09:49

 

심우장(尋牛莊) - 성북동 달동네, 북정마을에 있는 만해 한용운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6칸짜리 북향집

 

201578()

육백산 이끼폭포를 탐방하려고, 0014분 경, 산악회버스 경유지인 서초구청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등산객도 버스도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버스도착이 늦는다면, 기다리는 등산객들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등산객들도 없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 우천으로 산행이 취소 됐는데, 나만 모르고, 나왔나?

-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버스가 출발 시간인 15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떠났나?

 

잠시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와 등반대장에게 전화를 한다. 등반대장은 14분 까지 기다리다, 출발했다는 대답이다. 71일부터 출발시간이 10분에서 15분으로 변경된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이제 전화를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오히려 타박이다.

 

새벽부터 황당한 일을 당한 내 기분과는 달리, 비가 온다던 날씨는 쾌청하기만하다. 게다가 이틀 전에 내린 비()덕에 오늘은 덥지도 않고, 대기도 상쾌할 정도로 투명하다. 오전에는 집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으나, 오후에는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점심식사 후, 성북동 길을 걸어 보려고 집을 나선다.

 

중앙일보의 성북동 길/그곳에 가고 싶다.”(2014. 10. 09.)에서 성북동 길은 문인의 길, 화가의 길, 사랑의 길, 해탈의 길로, 한국 예술 100년이 켜켜이 쌓인 '인문학 박물관' 이라고 갈파했다. 좀 더 그 까닭을 들어보자.

 

간송(澗松) 전형필이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을 사들여 성북동에 보관하고, 비슷한 시기에 문인들도 하나둘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용운이 심우장에 자리를 잡은 1933년 이태준이 성북동에 들어왔다.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한 이효석, 정지용 등 구인회(九人會)의 활동무대였고, 청록파(靑鹿派) 조지훈이 32년간 시를 쓴 곳이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의 집,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도 이곳이 고향이다.

 

성신여대 김명석(국문학) 교수는 국문학사에서 이렇게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동네는 없었다. 성북동은 살아 있는 인문학 박물관이라고 했다. 이렇게 성북동은 한국 문학 100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고, 그런 문학을 가능케 했던 문인들의 스토리가 가득한 장소이며, 한글 문학을 가능케 했던 훈민정음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곳이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했다. 60년대 교분을 다진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는 대표적인 예다. 이산이 어스름 저녁 하늘을 그린 저녁에를 짓자, 이에 수화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한 그림을 발표했다. 한국미술대상전 제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한국 추상미술의 놀라운 성취다. (이상 성북동 길/그곳에 가고 싶다.”에서 발췌)

 

서울에서 낳고, 서울에서 자랐으면서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처럼 널리 잘 알려진 성북동 길을 아직도 걸어보지 못한 터라, 산엘 못가 쳐진 기분도 바꿀 겸, 좋은 날씨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이다. 강남구청역에서 출발, 두 차례 지하철을 바꿔 탄 후, 153,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온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롭고, 멀리 아름다운 북한산이 깨끗한 모습으로 반긴다.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본 성북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도로를 따라 오른다. 우선 다른 곳과 달리, 이곳 성북로 곳곳에 외국의 깃발이 자주 보인다. 성북동에 외국 대사관저가 많아, 이들을 알리는 깃발인 모양이다. 11분 쯤 걸어, 성북로가 왼쪽으로 굽어지는 로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서, 25, 첫 번째 방문지인, 최순우(崔淳雨) 옛집에 이른다.

  성북로가 좌로 굽어지는 로타리

 

  최순우 옛집

 

4대 국립박물관장이며, 미술사학자인 최순우(1916~1984)1976년부터 작고할 때 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돌층계를 올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먼저 절제된 수의 나무를 심고, 석물을 배치한, 크지 않은 마당의 단아한 모습들이 눈길을 끌고. 벽과 벽사이의 공간이 무척 아름다운데, 오랜만에 보는 장독대가 반갑다.

  대문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마당 1

 

  마당 2

 

  마당 3

 

  마당 4

 

  마당 5

 

  벽과 벽 사이

 

  반가운 장독대

 

마침 박영숙 백자 전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가옥과 백자의 고고한 아름다움이 더 한층 돋보이는 듯싶다. 최순우 옛집 중수기와 매죽수선재(梅竹水仙齋) 현판을 카메라에 담는다.

  박영숙 백자 전

 

백자와 고가구

 

  옛 마루 위의 백자

 

완당의 매죽수선재

 

중수기(사진 크릭하면 커짐)

 

크지는 않지만, 한국적인 미가 담뿍 담긴, 학자가 살던 집이다. 인근 지역의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했던 이집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관리된다고 하니 더욱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옛집 안에 있다는 선생의 유물전시관 관람을 생략하고, 성북동 지도 1매를 얻어 들고 대문을 나선다. 최순우 옛집은 매해 41일부터 1131일까지(동절기는 휴관),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오후 4, 무료 개방한다.

  성북동 예찬 최순우 옛집에서 얻은 지도, 많은 도움이 됐다.(사진 크릭하면 커짐)

 

10분 정도 최순우 옛집을 둘러보고, 골목을 따라 계속 오르다, 왼쪽에 성북동쉼터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다시 성북로로 나와, 길 건너 선잠단지(先蠶壇址)에 이른다. 이곳은 조선 성종(1457~1494) , “뽕나무가 잘 크고, 살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해 달라.”라고 기원을 드리던 제단이라고 한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매년 5월에 이곳에서 선잠제례가 열린다고한다.

  선잠단지

 

  터만 남고

 

안내판(사진 크릭하면 커짐)

 

선잠단지가 있는 곳에서, 길상사로 이어지는 선잠로가 오른쪽으로 분기(分技)하지만, 성북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여, 성북 파출소를 지나고, 222,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선다. 저 앞에 간송미술관 정문이 보인다.

  계속 성북로를 따라 걷는다.

 

  간송미술관 가는 길

 

  미술관 정문

 

이 미술관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을 정리연구전시하여,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되찾고자 설립되었다.

 

미술관의 규모는 1층과 2층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으며 소장품은 전적,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그림, 글씨, 부도, 석탑 등에 걸쳐 다양하다. 2011년 현재 훈민정음(국보 제70),·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제68)·,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제135) 등 국보 12, 보물 10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이 등록되어 있다.

 

전시회는 회화·서예·도예·서화로 나뉘어 매년 봄(5가을(10) 2주일씩 2회 개최되며, 이 밖의 상설전시는 하지 않는다. (백과사전 발췌)

 

, 가을 두 차례 전시회 때 이외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 수위실 앞에서 안뜰의 사진 한 장만 찍고, 올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되돌아선다.

   미술관 입구

 

성북로가 오른쪽으로 굽어 돌면서 2차선으로 좁아진다. 오른쪽으로 실상선원이 보이고, 이어 덕수교회 앞에 이르지만, 조선 말기에 마포강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1900년경에 지었다는 여름별장은 좀처럼 눈에 뜨이질 않는다. 아마도 덕수교회 부속 노인학교 건물 뒤에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학자의 집(최순우 고택)과 갑부의 별장을 비교해 보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종석 별장을 방문하려면 현 소유자인 덕수교회에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한다.

   성북로가 좁아지고

 

  실상선원

 

 덕수교회

 

 덕수교회 부설 노인학교

 

이종석 별장을 찾느라 주위를 맴돌다 보니, 건너편에 오래된 멋진 성당 건물이 눈에 뜨인다. 가까이 가보니 한국순교 복자 수도원, 피정의 집이다. 문이 굳게 닫혀있다. 선원, 교회, 천주교 수도원이 서로 가까운 이웃을 이루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또한 성북동 길의 멋이 아니겠는가?

  천주교 수도원 건물

 

 한국순교 복자 수도원(韓國殉敎福者修道院)

 

성북로를 조금 더 따라 오르면, 성북구립미술관에 이르고, 미술관 뒤쪽에는 상허 이태준의 가옥인 수연산방이 있다. 오늘은 성북동 길을 걸어보자고 나온 터라, 성북구립미술관은 겉모습만 훑어보고, 수연산방으로 발길을 옮긴다.

  성북구립미술관

 

서울시 민속 문화재인 수연산방(壽硯山房)상허의 산문으로 지용의 운문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문체를 자랑하던 소설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4년 동안 살던 집이라고 한다. 이태준은 이곳에 머물며 '황진이''달밤'등의 작품을 집필했으나. 소설가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 후, 남로당계의 숙청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태준 가옥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1999년 외종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귀가 후, 전화를 해본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좀 더 알아보아야겠다.

  수연산방

 

어쩔 수 없어 발길을 돌려 다시 성북로로 나와 만해 한용운선생의 심우장으로 향한다. 2차선 좁은 도로, 도로 양쪽의 풍광이 아름답다.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원을 지나고, 예쁜 성북 설렁탕집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나니, 잠시 후 만해의 산책공원이 모습을 보인다.

   한국순교복자 성직수도원

 

 성북 설렁탕

 

 만해의 산책공원

 

우선 산책공원 아래쪽에 배치한 선생의 소개 글과 심우장 안내문을 찬찬히 읽어보고. ‘님의 침묵과 함께 앉아 계신 선생의 좌상을 카메라에 담은 후, 층계를 올라, 심우장에 이른다.

   만해 한용운(사진 크릭하면 커짐)

 

  심우장(사진 크릭하면 커짐)

 

 님의 침묵과 선생

 

 심우장 가는 길

 

 심우장

 

심우장(尋牛莊)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이곳 성북동은 원래 성 밖 마을 북장골, 한적한 동네였다.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碧山)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워키 백과)

  6칸짜리 북향집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정면에 벽돌로 된 관리동이 있지만 내다보는 보는 사람도 없다. 왼쪽으로 북향의 심우장이 자리하고, 마당 북쪽에 심우당 안내판이 보인다.

 

  심우장 안내(사진 크릭하면 커짐)

 

 심우장 현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의 전서체

 

선생이 서재로 쓰셨다는 단칸방에는 선생의 초상이 걸려 있고, 가운데 방에는 선생의 유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신을 벗고 가운데 방으로 들어가 유품들을 둘러 본 후, 부엌과 찬마루를 카메라에 담으니 끝이다.

   단칸방 서재에 걸린 초상

 

 마저절위와 오도송

 

마저절위(磨杵絶韋)맷돌질은 맷돌공이가 다 닳도록 하고, 책은 가죽으로 된 끈이 끊어지도록 본다."라는 뜻이고, 오도송(悟道頌)은 선생이 1917123(39세 때) 오세암에서 정진하던 중 한밤중에 깨달음을 얻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전대법륜 - “거대한 진리의 수레바퀴가 구른다.”

 

 부엌과 찬마루

 

심우장을 나선다. 맞은편 벽에 북정마을을 보고 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복정마을 향해 산동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 비둘기 쉼터에 이른다. 높다란 시멘트벽에 비둘기들 앉아 있고,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걸려 있다.

   북정마을로 오세요.

 

 산동네 골목길

 

 시멘트 옹벽길

 

  비둘기 쉼터

 

 성북동 비둘기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는 성 밖 북정마을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달동네라고 한다. 이런 북정마을을 가로 질러 한성도성으로 향한다. 와룡공원길을 건너고, 나무계단을 올라,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왼쪽 와룡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은 3년 전에 한성도성 길을 걸으며 지났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와룡공원길

 

 이정표

 

 한양도성

 

320, 와룡공원 입구로 나와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서울을 잠시 굽어 본 후, 정자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처럼 와룡공원 입구로 나온 것은, 이곳에서 성벽 길을 따라 성북동 쉼터로 내려서서, 한성대입구역에서 지하철로 귀가하여, 6시경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와룡공뤈 입구

 

 와룡공원 전망대에서 본 서울 1

 

  서울 2

 

 현 위치(사진 크릭하면 커짐)

 

헌데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을 바꾸어, 나온 김에, 계속하여 대사관로도 걸어보고, 삼청각, 한국가구박물관, 그리고 길상사 등을 들러보기로 한다.

 

 

(20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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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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