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박물관

 

티베트 박물관

티베트 박물관은 노부링카(Norbu Linka) 동남쪽, 포탈라궁(Potala Palace) 서남쪽에 있다. 대지면적 53,000m², 전시면적 10,000m²의 규모의 현대적 시설을 갖춘 전시관으로 1999년 10월에 개관했다고 한다.

전시실 입구

 

 쌍체도관

 

 암화-무사

 

 판텐라마의 인장

 

 티베트 고문서

 

건물 외관이 아름답다. 현대건축의 실용성과 예술적인 기품에 티베트 민족 전통건축의 특징이 가미된 작품이라고 한다. 유사이전의 유물, 티베트 역사유물, 문화예술, 그리고 민속문화의 4개 부문에 걸친 1000여점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Tashi sholpa

 

 문성공주상

 

 석각법왕상

 

 

 석각대성취자상(Stone carving of Mahasiddha)

 

 탱화

 

 다단밍주 궁(达旦明久颇章/Dadan Mingjur Palace)

 

노부링카(羅布林卡/Norbu Linka)

노불링카는 포탈라궁에서 서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라싸 강가에 위치해 있다. “노불링카”는 티벳어로 “보배로운 정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8세기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역대 달라이라마가 정무를 보고 종교 활동을 하던 여름궁전이다. 7대 달라이라마 이후 역대 달라이라마는 모두 노불링카의 확장 공사를 단행했는데 이 가운데 8대와 13대 달라이라마가 진행한 공사규모가 가장 크다. 8대 달라이라마가 확장 공사를 하면서 노불랑카는 공원의 특징을 갖추게 되고, 13대 달라이라마 때는 “금색림(金色林)”을 만들면서 공정 서쪽에 금색파장(金色颇章) 등 건축물도 세웠다. (中韓聯合文化罔에서 인용, 이하 동)

입구로 이어지는 주 출입로

 

 입구

 

 아름다운 정원 1

 

 아름다운 정원 2

 

 아름다운 정원 3

 

 금색궁전 입구

 

노불링카의 부지면적은 약 36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그 안에 격상파장(格桑颇章)、금색파장(金色颇章)、달단명구파장(达旦明久颇章), 조길파장(措吉颇章(湖心亭))등의 궁전을 짓고, 각 궁전은 다시 궁구(宫区)、궁전구(宫前区), 정원(林区)으로 구성된다. 이중 조길파장(措吉颇章(湖心亭) 궁전이 노불링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주요전당 내부의 벽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하고, 노불링카 안에는 대량의 문물과 전적이 잘 보존되어있다.

 단단 밍주궁

 

 안내문

 

 오체투지

 

 호심정 1

 

 호심정 2

 

포탈라궁은 “세계의 지붕위에 있는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포탈라궁의 궁전배치, 토목공정, 금속제련 기술, 회화, 조각 등 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포탈라궁은 티벳민족을 주축으로, 한족, 몽고족, 만족 등 각 민족의 뛰어난 공예기술과 티벳족의 건축예술의 합쳐서 이룩한 작품이다. 유네스코는 포탈라궁과 쌍벽을 이루는 노부링카를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황토벽과 빗물받이

 

 

 담과 문

 

칼상궁전(格桑颇章/Kalsang Palace)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현재 노부링카는 동물원까지 갖춘 공원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티베트사람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설둔절(Sho Dun) 축제기간에는 공원 안에서 전통 티베트 연극이 공연되고,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궁으로 몰려들어 텐트를 치고, 밤새워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긴다고 한다

 공원 1

 

 공원 2

 

 포탈라궁

 

포탈라궁(布达拉宫)

포탈라궁은 라싸 시내 중심의 홍산(紅山)에 위치하고 있다. ‘포탈라’는 산스크리트어인 “붓다”를 음역한 것으로 원래 관세음보살이 기거하던 섬을 가리킨다. 포탈라궁은 7세기 토번(吐蕃) 왕조의 제32대 송첸캄포[松赞干布]시기에 처음 축조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홍산궁(红山宫)”이라고 불렀었는데 훗날 토번왕조가 몰락하면서 점차 훼손되고 방치되었다. 17세기 5대 달라이라마가 홍산궁(红山宫)의 옛터에 새롭게 웅대한 궁전을 지었고 이를 “포탈라궁”이라고 불렀다.

 포탈라궁에서 본 라싸 시가지

 베이징로와 야오왕산(藥王山,3746m)

 

 포탈라공장과 서장화평해방기념비

 

포탈라궁은 규모가 크고 기세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으며 산의 지세를 따라 건축되었다. 부지면적 36만 여 평방미터에 주요한 건축은 총 13층이며 높이는 117미터에 달한다. 포탈라궁은 유명한 티벳식 궁전 건축이며 티벳족의 고대건축과 중국 고대건축예술이 합쳐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입구 표지석

 

 입구에서 본 포탈라궁

 

 포탈라궁과 여인

 

 포탈라궁(부분) 1

 

 포탈라굴(부분) 2

 

포탈라궁의 주요한 건축물에는 백궁(白宮), 홍궁(紅宮) 및 주변에 세워진 다양한 건축물들이 포함된다. 백궁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군은 1648년에 세워졌다. 백궁은 역대 달라이라마가 정치와 종교를 주관하던 곳으로서 건축물은 남향으로 되어 있으며 7층으로 되어 있다. 홍궁은 포탈라궁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홍궁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군은 1694년에 세워졌다. 6층 건물로 역대 달라이라마를 모시는 영탑(灵塔)이 있고 이곳에서 각종 종교 활동을 진행한다. 이외에 포탈라궁은 산위의 승관학교(僧官学校), 승사(僧舍), 동서정원및 산 아래쪽의 설노성(雪老城)、 티벳지방정부(西藏地方政府)마기강(马基康)、인경원(印经院)、감옥(监狱)、마구간(马厩)、포탈라궁후원(后园)、용왕택(龙王潭) 등 부속건물도 포함하고 있다.

 백궁

 

 홍궁

 

 

 홍궁과 백궁

 

5대 달라이라마로부터 시작해 포탈라궁은 역대 달라이라마의 동궁(冬宫)으로 사용되어왔고 티벳지역 통치자들이 정교합일의 정치를 하는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중요한 종교, 정치의식은 모두 이곳에서 거행된다. 포탈라궁의 대규모 건축은 티벳족, 한족, 몽고족의 문화, 예술, 종교 등 모든 방면의 역량의 총화로 이루어진 걸작이다.

 지에팡 공원에서 춤추는 티베트인들

 

 문화유산일 경축행사장

 

 행사요원들

 

맺는 말

아직은 가기가 쉽지 않은 티베트를 티벳 카일라스님 덕에 라싸주변은 물론, 수미산, EBC까지 둘러보았다. 20여일, 짧지 않은 기간에, 참여자들도 많았는데도, 고산병으로 중도탈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수미산, 초모랑마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티벳 카일라스님의 덕이다.

 

스님들, 불목하니님, 목조선님 등 불자 분들, 앙코르님을 비롯한 사진의 고수 분들 그리고 반듯한 젊은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포탈라궁은 웅장하고 아름답고 당당하다. 티베트를 중심으로 한족, 몽골족의 건축술, 예술의 정화가 하나로 융합되여 만들어진 걸작이고, 정치와 종교가 합체가 된 체제에서나 나올 수 있는 작품이겠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돌아보는데, 왜 이몽룡이 어사출두 전에 변학도에게 보낸 시가 떠올라 머릿속에서 맴을 도는지 모르겠다.

 

金樽美酒千人血 (금잔미주 천인혈)

玉盤嘉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절대자의 존재를 굳게 믿는다. 오체투지를 하면서 고행을 하는 티베트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오래되어 지금은 배우들 이름은 물론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영화 한편을 소개한다.

 

어린 딸 하나를 둔 미국 가정의 이야기다. 남편은 트럼페터, 아내는 가수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딴따라 부부다. 어린 딸을 보모와 함께 집에 남겨두고 부부는 전국을 순회하며 돈을 번다.

 

크리스마스이브다. 다른 집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데, 부모와 떨어져 보모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딸아이는 외롭고 무료하여, 비를 맞으며 마당에서 그네를 탄다. 아이는 감기에 걸리고, 이를 방치한 결과, 소아마비로 악화된다.

 

놀란 모보가 아이를 입원시키고 부모에게 연락을 한다. 병원에 입원한 딸의 상태가 위독한 것을 보고, 부부는 한밤중에 교회를 찾아가 간곡하게 기도를 올린다. 딸아이를 살려주시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잘 키우겠다고....순회공연을 다니다 보면, 신앙생활은 소홀했을 터인데도, 스스럼없이 교회를 찾는 부부, 그르고 한밤중에도 문이 열려있는 교회...

 

기도가 통한 걸까? 딸아이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한쪽 다리는 영영 회복치 못해 절름발이가 된다. 딸아이가 생명을 구하자 아버지는 트럼펫 상자를 들고 강으로 나가, 다리 위에서 황금빛 트렘펫을 강으로 던진다.

 

딸아이가 장성하여 성년이 된다. 생일파티가 열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딸아이가 아빠에게 선물 꾸러미를 내민다. 의아한 아버지가 선물 꾸러미를 풀어 트럼펫을 꺼낸다. 다리를 절며 달려온 딸이 와락 아빠에게 안긴다.

 

종교는 이런 게 아닌가 모르겠다.

 

 

(201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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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본 간덴사원

 

간덴사원(甘丹寺)

라싸에서 동남쪽으로 약 47km 떨어진 원불산 능선, 해발 4200m 정도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간덴은 도솔천(兜率天)의 의미라고 한다. 겔룩파(Gelug Sect)의 창시자 총카파(Tsongkhapa)가 지은 절로 겔룩파의 총 본산이며, 역대 겔룩파의 교주인 간덴 트리파(Ganden Tripa)가 이절의 지주가 된다. 간덴 트리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다음의 제 3의 권력자이다.(관련자료 발췌, 이하 동)

 간덴사원 가는 길의 차창 밖 풍경

 

 아름다운 저수지에서 잠시 머물고

 

 저수지 풍광 1

 

 저수지 풍광 2

 

 간덴사원 오르는 길 1

 

 간덴사원 오르는 길

 

 표지석

 

 단체기념사진

 

 간덴사원 안내석

 

간덴사원 주위의 능선을 따라 순례길이 만들어졌고, 순례길에서 보는 조망이일품 인데, 천장을 하는 곳도 가까이 있어 운이 따른다면 그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순례길 입구, 우리는 오른쪽 아랫길을 택한다.

 

 순례길에서 본 라싸강

 

 중국지배 후 시도된다는 개량농지와 초지 1

 

 개량농지와 초지 2

 

 순례길 1

 

 순례길에서 조망을 즐기는 대원들

 

 향로

 

 순례길 2

 

 순례길 옆의 카타

 

 순례길 3

 

 뒤돌아 본 천장 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아래

 

이절은 문화혁명 때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됐던 것을 1981년부터 복구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 정도 수복이 된 상태이나 완전 복구까지는 아직도 요원하다고 한다.

 대법당 예불

 

 공사 중인 간덴사원

 

간덴사원 관람을 마치고 서울에서 각자 가져온 신 라면을 모아 점심식사를 한다. 5~6명씩 팀을 만들어 점심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고, 오랜만에 먹는 신라면 맛에 잠시 집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모두들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Free Tibet

 

남초(納木錯)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4,718m)에 있는 호수 남초는 , 담슝(当雄)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산간지역에 있고, 티베트에 있는 3개의 성호 중에서도 가장 성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양띠의 해에는 ‘호수둘레 순례축제’에 참여하려는 순례자들이 꼬리를 물고 몰려온다. 호수 면적이 1,920Km²에 달해 호수 주위를 일주하는데는 일주일이 꼬박 걸린다.. 라싸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관련자료 발췌)

 

당초에는 간덴사원을 먼저 가고, 다음날, 남초에 가기로 스케줄이 잡혀 있었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계획이 변경되어 남초 탐방을 먼저 하기로 한다. 이래서 로만님(국문과교수 출신)은 티벳 카일라스님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안내방송이 약한 게 흠이라고 젊잖게 촌평을 한다.

 

5시 30분, 기상, 6시 식사, 6시 30분 출발이다. 약 !00Km 떨어진 곳인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무척 서두른다. 우리들은 G109번 국도를 타고 북상하여, 칭짱열차로 내려왔던 곳을 거슬러 올라간다. 왼쪽 어둠 속에 능선이 날카로운 산이 버티고 있다.

 

도이롱더겐(推龍德床) 체크포인트를 지나고, 9시경 양파(羊八井, 4300m)에 도착하여 용무를 본다. 이른 아침인데도 기념품을 파는 아가씨의 표정이 밝고, 왼쪽으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넨칭당구라산(716m)이 모습을 보인다. 이어 당고라 마을을 지는데, 마을 뒤로 보이는 만년설 산의 빙하가 무시무시하다

 양팔정

 

 넨칭당구라산

 

 당고라 마을

 

G109 국도는 칭짱열차의 선로와 나란히 달린다. 경관이 좋다. 넨칭당구라산이 가깝고,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의 모습이 한가하다. 9시 20분 경 당슝에 도착하여 국도를 버리고 왼쪽 도로로 들어선다.

초원

 

10시 10분 경, 돌 표지가 있는 라켄라(那根拉, 5190m)고개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경관을 즐긴다. 이어 10시 40분 경, 남초국가공원입구에 도착한다. 커다란 개를 데리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탈렌트 개와 매니저다.

 라켄라 고개 돌표지

 

 남초국가공원 입구

 

 탈렌트 개와 매니저, 사진을 찍게 하고, 15위안을 받는다.

 

10시 30분 경,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10시 50분, 남초마을에 도착하여, 양병관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1시 30분에서 2시까지 자유시간을 갖는다. 남초마을 양쪽으로 높직한 봉우리가 있다. 호수를 굽어보기 좋은 곳이다. 우리들은 식당 뒤 계단을 따라올라 전망대로 향한다.

 남초마을

 

 식당 뒤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고도가 높아 숨이 가쁘고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천천히 쉬지 않고 오른다. 시야가 넓어지며 호수가 크게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만년설 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있다.

 시야가 넓어지며 호수가 크게 보인다.

 

 앞에 첫 번째 전망대가 보인다.

 

 첫 번 째 전망대 오르다 되돌아 본 풍광

 

첫 번째 전망대에 오른다. 발아래에 호수가 넓게 펼쳐 있고 호숫가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 높은 곳에 이런 호수가 있다니 눈앞에, 두고도 믿기질 않는다. 망연히 굽어보다 눈을 들어보니 저 앞에 제2, 제3 전망대가 보인다.

그쪽에서 보면 호수는 또 어떤 모양일까? 궁금한 마음에 천천히 건너편에 보이는 제2 전망대로 향한다. 한동안 가다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제1 전망대가 그림 같다.

 첫 번째 전망대 1

 

 첫 번째 전망대 2

 

 첫 번째 전망대 위에서 굽어 본 호수

 

 저 앞에 보이는 제2, 제3 전망대

 

 뒤돌아 본 제1 전망대

 

왼쪽으로 호수가 더 넓게 보이고, 그 뒤로 만년설 봉들이 조금 더 가깝게 보인다. 12시 30분 경, 제2 전망대에 오른다. 이제 초르텐이 보이는 제3 전망대가 지척이다. 15분 후에 제3 전망대에 오른다. 여기저기 돌탑들이 보이고, 타르초로 뒤덮인 초르텐 안을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벽에 "Free Tibet"라는 글귀가 보인다.

 제2 전망대로 이동하다 본 호수

 

 제3 전망대

 

여기까지 올라온 대원들은 몇 사람이 되지 않는다. 전망대 끝까지 이동하여 좌우로 갈라져 보이던 호수가 하나로 합쳐진 광경을 바라본다. 장관이다. 한동안 망연히 서서 바라보다, 초르텐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온다. 놀랍게도 여기까지 올라오신 스님 한 분이 호수를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있는 경건한 모습을 발견한다.

 하나로 합쳐진 호수

 

 경건한 스님의 모습

 

하산을 시작한다. 왔던 능선길로 되돌아서지 않고 왼쪽에 보이는 사면길을 따라 호수로 바로 내려선다. 호수물이 맑고 깨끗하여 바닥이 보인다. 게다가 물빛은 또 얼마나 고운지! 손을 씻고 발을 담가본다. 시원한 호숫가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2시가 다 되어 식당으로 돌아온다.

 사면길 딸 호수로 향하고

 

 호숫가

 

일행이 다 모이자, 2시 40분 경, 라싸로 향한다. 오늘 저녁은 티베트 전문식당에서 티베트 음식을 맛본다.

 

 

(201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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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뿡사원

 

데뿡사원(哲蚌寺)

데뿡사원(Drepung Monastery)은 라싸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격배산(格培山)의 중턱에 있다. 데뿡은 티벳어로 “쌀더미”라는 의미라고 한다. 1416년에 겔룩파(Gelug Sect)의 창시자 총카파(Tsongkhapa)의 제자인 잠양 초제(Jamyang Choje)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관련자료 발췌, 이하 동)

 격배산

 

 정문

 

 창시자, 창건자

 

250,000m²의 부지에 세워진 이 절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먼데서 보면 건물들이 산 사면을 따라 층층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절 경내의 길은 마치 작은 마을길처럼 잘 뚫려있다. 그런가하면 전각들은 티베트 종교의 특성을 예술적으로 잘 살려서 장대하고 웅장하며 아름답다.

 전각들이 산 사면을 따라 층층이 배치되고

 

 Garden Palace 가는 길

 

 경내 도로 1

 

 경내 도로 2

 

 건물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마니차와 옴마니밧메홈

 

데뿡사원은 티벳의 대표적인 사원이고 교육기관이다. 하여 건물의 스케일이나 승려들의 수에 있어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절은 대법당, 4개의 대학, 그리고 간덴궁(Ganden Palice)로 구성되고, 대법당과 부속사원들의 지붕은 황금으로 장식했다.

대법당

 

 지붕 1

 

 지붕 2

 

이절에서 2대부터 5대까지의 달라이 라마가 정무를 보았고, 2대, 3대, 4대 세분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안치돼 있다고 한다. 문화혁명 때 초토화 됐던 이 절은 아직도 복원 중이라고 한다. 대법당에서 내려다보는 라싸시가 아름답다. 절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더 추가한다.

 라싸시

 

 소원을 비는 여인이 향을 태우고

 

경을 읽으며 시주를 권유하는 사람들

 

 겔룩파 창시자 춍카파

 

 5대 달라이 라마

 

 白度母

 

 화려함의 극치 - 신자들인 백성들의 삶은 어떤가?

 

 미륵불

 

 금녀의 법당도 있다.

 

 주방, 사진을 찍으려면 15위안을 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법당 안의 사진은 20위안을 내고 찍었다. 하지만 다른 법당으로 이동했더니, 다시 20위안을 내라고 한다. 납득하기 어려워 그 다음부터는 슬쩍슬쩍 찍는다.

 

죠캉사원의 야크기름 등잔불

 

죠캉사원(大昭寺)

라싸 구시가지 중심에 있다. “부처의 절“이라는 의미의 죠캉사원은 7세기 중엽에 송첸캄포의 당나라 문성공주, 그리고 네팔의 브리쿠티 데비(Bhrikuti Devi)공주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고, 그 후의 통치자들에 의해 증축, 개축되었다고 한다.(관련자료 발췌, 이하 동)

 바코르 광장에서 본 죠캉사원

 

 가까이 본 죠캉사원

 

 향을 피우는 티베트 여인

 

오체투지 하는 신도들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

 

 唐蕃和盟碑- 563년 당나라와 토번간의 평화조약 기념비

 

25,100m²의 경내에 수많은 거대한 건물들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황금 지붕을 한 4층 높이의 이 절은 당나라의 건축수법을 따랐지만, 동시에 인도, 네팔의 건축양식도 함께 가미했다고 한다. 사방에 4개의 주 법당이 건립되고, 20개가 넘는 소 법당들은 석가모니의 이미지에 따라 중앙에 모았다고 한다. 법당은 금 불상, 은 불상, 동 불상으로 가득하고, 사방 벽에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그린 탱화가 봉안돼 있다.

 절 안으로 들어서고,

 

 경내

 

 굳게 닫힌 문, 휘장으로 가린 탱화, 달라이라마 옥좌에는 커버를 씌웠다

 

 슬쩍 찍은 불상

 

 법당 내 정원

 

 옥상 1

 

옥상 2

 

 옥상 3

 

 옥상에서 본 포탈라궁

 

죠캉사원 앞에는 너른 바코르(八角街) 광장이 있고, 죠캉사원 둘레, 약 800m 구간에 형성된 시장거리는 티베트인들의 전통적인 순례길이다. 카일라스가 멀고, 험해 그곳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곳 죠캉사원을 찾아 순례를 하면서 평소에 지은 죄업의 사(赦)함을 받고자 한다. 바코르 방문객들은 티베트 순례자들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야한다.

 바코르 광장

 

 바코르 마켓 1

 

 바코르 마켓 2

 

죠캉사원은 티베트인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중국의 티베트 지배에 항거하는 시위가 가장 많이 일어났던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잠잠한 모양이다.

 

죠캉사원 법당 안에서는 일체 사진을 수 없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사진을 찍으면 가이드가 잡혀 간다고 한다. 웃기는 이야기다. 가이드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이절에는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이 있고, 문성공주 일행이 티베트에 도착하는 장면을 묘사한 벽화 등이 있어 관광객들이 이를 마구 찍어 전 세계로 퍼뜨리면 중국에 좋을 것이 없을 터이니 원천봉쇄를 하는 모양이다.

 

(201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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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서부역

 

티베트가 중국에 병합되지 않고, 독립된 국가로 남아 있다면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받아 들였을까? 아니면 은둔 왕국으로 계속 남아 있었을까? 만약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인들을 받아 들였다면 티베트는 지금의 네팔처럼 전 세계 트레커들의 천국이 됐을 것이다.

 

라싸로 가기 위해 2013년 6월 4일 김포공항에서 북경 행 중국남방항공기에 오른다. 기종은 에어버스. 한국 스튜어디스도 타고 있고, 서비스, 기내식 모두 훌륭하다. 국제선 항공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80년도 말 처음 중국 비행기를 탔을 때는 기종이 맥도날드 더글라스(지금은 보잉사에 흡수되어 없어졌다)인데 안전벨트도 떨어져 나가 없어서, 착륙할 때, 의자 손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버틴 적이 있었다. 25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김포공항에서 중국남방항공기에 오르고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순항을 하다. 북경이 아닌, 대련에 착륙한다. 북경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와 돌풍으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가 없어, 잠시 대련에 내렸다 북경 날씨가 호전되면 다시 이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대련에서 한 시간쯤 대기했던 비행기는 다시 이륙하여 북경에 도착한다.

 

비행기 도착이 늦어져 혹시 못 오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무척 걱정을 했다는 현지 가이드 아가씨는 우리들을 ‘예원’이라는 식당으로 안내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한 후,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밀릴 것을 걱정하며, 서둘러 북경서역으로 출발한다.

 예원 식당

 

6시 40분 경 북경서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받고 부근 편의점에서 마실 물 등을 산 후, 인파로 붐비는 역 구내로 들어선다. 여러 차례 티베트여행 경험이 있는 불목하니님이 줄을 서서 승차를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하니, 1인당 10위안씩 내서, 안내인에게 수수료로 주고, 빠른 길로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덕분에 7시 20분경에 승차를 완료하고, 기차는 8시 8분에 정확하게 출발한다.

 북경 서부역

 

 역 건너편의 종유 센추리 그랜드 호텔

 

 역구내

 

북경에서 라싸까지는 4,064Km이다. 이 중에서 칭하이(靑海)성의 성도 시닝(西寧)과 시짱(西藏)자치구의 라싸(拉薩)간의 1,956Km의 구간이 ‘칭짱열차’구간으로, 2006년 7월1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개통됐다. 칭짱열차는 ‘하늘 길을 달리는 열차’라고도 불린다. 구간 평균고도가 4,500m에 이르고, 가장 높은 곳은 탕구라산 역으로 5,073m에 달한다.

칭짱열차 구간 고도표(펌)

 

‘하늘 길을 달리는 열차’로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철도의 개설목적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강제로 통합한 티베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배하기 위한 인프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티베트 지역으로 뻗은 G318국도와 G219국도의 서부지역 포장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겠다.

 

하는 짓이 1910년 한일 합방 후, 일본 놈들이 한반도에서 했던 짓과 똑 같다. 철도를 놓고, 도로를 뚫는다. 그리고 이런 철도와 도로가 마치 조선민족을 위해 놓은 것처럼, 패전 후에는, “조선을 공짜로 먹은 것이 아니다.”라는 망발을 하지 않는가?

 

미국 켈리포니아주의 GDP규모는 프랑스 다음으로 세계 6위라고 한다. 켈리포니아주의 대부분은 본래 멕시코 땅이었으나, 전쟁에 져서 빼앗기고, 돈을 받고 팔기도하여, 지금의 미국 땅이 돼 버린 것이다. 켈리포니아주의 경제가치가 날이 갈수록 커지자, 멕시코 정부는 끈질기게 미국에게 전쟁에서 잃은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유엔에 제소하는 등 세계여론의 지원을 호소한다.

 

귀찮아진 미국이 한 가지 꾀를 내어 멕시코 정부에 제안을 한다. “좋다. 반환해 주겠다. 하지만 그 동안 그 땅에 투자한 돈은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나? 다른 것은 다 포기 하더라도 고속도로 건설비만은 반드시 되돌려 받아야 하겠다.” 이 제안을 받은 멕시코 정부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고속도로 건설비를 계산해 본다. 그 결과는 멕시코 전체를 두 번 팔아도 모자라는 액수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에 나옴직한 이야기이지만,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그만큼 중요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 일 것이다.

 

중국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라싸와 티베트 제2의 도시인 시가체 간의 철도 공사를 목하 진행하고 있다.

 

북경에서 라싸까지 구간을 4인실 표를 구해 달린다. ‘라사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을 때, 신속히 진압군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라고 티베트 사람들이 우려했던 슬픈 사연이 있는 칭짱열차를 타고 보니, 심사가 매우 복잡하다.

 

칭짱열차의 운영 상황은 양호한 편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 접근하고, 열차에 산소조절 장치가 있어 4000m~5000m의 고지를 달려도 고소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열차의 운행속도도 적당하여 기차의 흔들림도 심하지 않다.

 

비교적 싼 가격으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고, 화장실 사용에도 큰 불편이 없다. 아침 해뜨기 전과 저녁 해질 무렵에 복도로 나와 수시로 변하는 차창 밖의 풍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고, 지루한 오후시간에는 식당차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풍력발전기

 

 서녕(2295m)에 도착. 여기서부터 하늘 길 열차다

 

 청해호 부근(3200m)을 지난다. 3000m가 넘는 고지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둠이 내리고 먼 산에 잔설이 보인다.

 

이른 아침,  고도가 높아지며 멀리 산이 보이고

 

 당고라산(5072m)부근을 지나고

 

 차나호 (4594m)

 

 念靑唐古拉峯(7162m)을 가까이 지난다.

 

기차는 출발 후 3일 째 되는 날(6얼 6일) 3시 40분에 라싸 역에 도착한다. 정확하게 43시간 32분이 걸렸다. 라싸 역에 내려서 받은 첫 인상은 역이 무지 크다는 점이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으려 하니, 무장한 군인이 못 찍게 한다. 세상에 공공장소인 역사(驛舍)의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나라가 다 있다.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을 하다, 파라솔 아래에서 군이 둘이 경비를 하고 있는 곳을 지난다. “니먼 하오!” 라고 중국말로 인사를 하고, “Lhasa railroad station is very grand and beautiful! Wonderful!"이라고 추켜 줬더니, 이들도 ”Beautiful!“을 연발하며, 라싸 역 사진을 찍어도 제지하지 않는다.

 기차에서 내리고

 

 출찰구로 나온다.

 

 몰래 찍은 라사역

 

 당당하게 찍은 라사역

 

우리들은 버스에 올라, 라싸강을 건너, 종허국제관광구(Zhonghe Internatioal Tourist City)에 있는 拉薩河大酒店(Rhasa River Hotel)에 투숙한다. 방을 배정받고 샤워를 한 후, 시내 구경에 나선다.

 

라싸는 죠캉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중국의 지배 하에서 새롭게 건설된 구시가지 서쪽의 신시가지로 구성된다. 생각보다 큰 도시로 넓고, 깨끗한 현대적인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단편적인 라싸의 모습을 담는다.

라사 지도

 

 포탈라궁에서 본 라사 1

 

 포탈라궁에서 본 사라 2

 

 錦珠東路

 

 林廓北路

 

 인파

 

 北京東路 1

 

 北京東路 2

 

高原之寶

 

 포탈라궁

 

 포탈라궁 광장

 

우리들은 고도적응을 위해 4일 동안 라싸에 머물면서, 포탈라궁, 노블랑카, 티베트박물관, 데뿡사원, 죠캉사원, 간덴사원, 그리고 남쵸를 둘러본다.

 

(201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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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무 가는 길

 

2013년 6월 22일(토)

새벽녘에 비가 내리고 방에 비가 샌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잠이 깨어 둘러보니, 무연님이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플라스틱 통에 받고 있고, 바닥에 두었던 여행용 가방은 흙물이 튀어 엉망이다. 천정뿐 아니라 벽에서도 물이 줄줄 흐른다. 우선 가방과 배낭을 빗물이 튀는 범위 밖으로 옮겨놓고, 요와 이불이 벽에 닫지 않도록 끌어 놓는다.

 

어찌 보면 티베트에 와서 가장 티베트다운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구문명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데 비해, 티베트문화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의 공존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비새는 방 정도는 크게 신경 쓸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이집은 제법 규모가 큰 게스트하우스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고, 중국의 티베트 병합이 기정사실화 되어, 관광객들이 더 늘게 되면, 체면을 중요시하는 중국이 비새는 방을 묵인 할 리가 없을 터이니, 지금은 중국화가 덜된 덕택에, 비새는 방에서 잘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런 시기가 길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이 아침이 되니 비가 멎는다. 아침식사를 하고, 9시가 조금 못 되어 숙소를 출발한다. G318국도를 타고 잠시 서진(西進)하다,먼푸((門布)를 지나며서 남하하여, 약 150Km 떨어진 장무로 향한다. 황량한 광야를 달린다. 간간이 묘목을 심어 놓은 곳들이 눈에 뜨인다. 乃龍을 지나는 모양이다. 마을은 보이지 않는데, ‘發展乃龍 敎育先行’이라는 하얀 글씨가 산허리에 커다랗게 새겨져있다.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흩날리다 이내 멎는다. 9시 45분 경 먼푸((門布)마을에 도착하여 잠시 차가 멎는다. 오래된 마을이다. 개들이 한가롭게 도로 위를 산책하고, 펌프로 물을 긷는 여인들이 보인다.

 먼푸(門布)마을

 

10시 45분 경, 라롱라(拉龍拉,5,200m)고개 올라, 시샤팡마(8,027m)와 히말라야 연봉을 바라보고, 11시 30분 경 니알람(Nyalam,3,900m)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식사를 한 후,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12시 30분, 장무(樟木,2,300m)로 향한다.

 라롱라 고개

 

 고개에서 본 히말라야

 

 구름에 가린 시샤팡마

 

니알람과 장무간의 고도차는 1,600m 된다. 산허리를 잘라 만든 도로를 따라 내리며 보는 계곡의 풍광이 일품이다. 우리들은 차에서 내려 30분 정도 도로를 따라 걸으며 멋진 풍광을 즐긴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구절양장의 도로에 화물차 통행이 빈번하다.

 

 파곡하(波曲河)깊은 계곡

 

 폭포

 

 도로로 떨어지는 폭포 1

 

도로로 떨어지는 폭포 2

 

 아름다운 풍광에 빠지신 스님

 

 신선이 되신 스님들

 

 줄지어 서 있는 타타 화물트럭

 

2시 40분 경 장무에 도착하여 財綠賓館(Cai Yuan Hotel)에 투숙한다. 방을 배정받고, 우선 샤워부터 한 후, 길거리 구경에 나선다.

 투숙한 호텔

 

호텔 로비에 걸린 장무 전경

 

 장무 풍경 1

 

 장무풍경 2

 

 장무풍경 3

 

빠(酒吧)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들

 

 건물 사이의 좁은 계단길

 

장무는 중국과 네팔 국경에 자리 잡은 무역도시이고, 중국 국경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통해 네팔과 인도 등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중국은 라싸에서 카트만두까지 G318국도를 연장하여 우정공로(725Km)라 부르고,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중국화 시킨 도시다. 가파른 절벽에 떨어질 듯 걸려 있는 집들, 좁은 도로 양쪽에 빽빽하게 늘어선 다양한 상점들, 여기저기 건축 중인 건물들, 그리고 다양한 인종들... 무역도시답게 활기가 넘친다.

 

2013년 6월 23일(일)

10시에 업무를 시작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차례를 기다리려고,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8시 40분 경 호텔을 떠난다., 9시 경에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0순위다. 제일 앞줄에서 업무시작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른 아침 출입국 사무소로 향하고

 

 제일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린다.

 

 우의교

 

 강 건너 네팔

 

 출국울 기다리는 세련된 모습의 중국 젊은이들

 

10시 정각, 업무가 시작되고, 출국절차를 밟는다. 출국수속은 간단하지만, 짐 검사가 무척 까다롭다. 가방이고, 배낭이고, 속속들이 뒤진다. 특히, 책은 책갈피까지 살피고, CD같은 것은 어딘가로 들고 갔다 다시 가져와 되돌려 준다. 고약하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다. 쿰부히말, 그리고 안나푸르나와 랑탕을 두 차례에 걸쳐 안내해 주었던, 가이드 옹추와 셀퍼 파쌍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라 카일라스도 이들을 인정하고, 네팔 쪽의 가이드를 부탁한 모양이다.

 

우의교를 건너면 네팔의 코다리((Kodari), 출입국사무소가 있다. $25을 내고 비자를 받은 후, 간단하게 입국절차를 마친다. 짐 검사 같은 것도 없다. 방금 전에 치렀던 출국절차와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우의교를 건너, 네팔 땅, 짐을 끌고 출입국 사무소로 향한다.

 

 입국 수속

 

입국수속을 마친 일행은 버스에 올라 카트만두로 향한다. 이윽고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팀은 네팔 잔류 팀과 작별을 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2013.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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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모랑마봉 국가공원 북문

 

2013년 6월 21일(금)

아침에 일어나 공동화장실로 가보니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포기하고 천막을 돌아와 밀전병 같은 팬 케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어 EBC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일행들을 만나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살핀다. 승차장 옆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체국이 보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EBC 우체국

 

이른 아침인데도 보기 좋게 진열된 기념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버스가 올 시간이 됐는지, EBC로 갈 사람들은 줄을 서라고 한다. 줄을 서다 보니, 우리 일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젊은 한족들이다. 국력이 커지는 조국이 자랑스럽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자신들의 땅에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겠다.

기념품 매대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이윽고 버스에 오른다.(왕복요금 25 위안) 버스는 돌 많은 계곡 길을 달려, 10여분 후에 우리들을 EBC에 내려준다. 초모랑마봉 관광지 안내도와 EBC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에는 ‘베이스 캠프’를 大本營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大本營’, 2차대전 때 일본군에서 많이 쓰던 용어라 눈에 거슬린다.

초모랑마봉 관광지 안내도

 

 EBC 표지석

 

길을 차단하고 천막을 쳐 놓은 곳에서 또 한 차례 여권을 확인 대조한 후, 전망대로 들어가게 한다. 전망대 위에 서서 주위를 살핀다. 네팔 쪽의 EBC 와는 달리, 깎아지른 에베레스트 북벽이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어, 그 위용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다 보니 화장실이 가까이에 있는데 줄은 보이지 않는다. 일행에게 화장실 들르겠다고 보고를 하고 뒤로 쳐진다.

 여권을 확인 대조하고 전망대 출입을 허용한다.

 

 전망대애서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에베레스트는 네팔 쪽에서 보는 남쪽 모습과 티베트 쪽에서 보는 북쪽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네팔 EBC에서는 에베레스트 산 기슭 주변에 솟아 있는 창체(7,553m)· 쿰부체(6,640m)· 놉체(7,855m)· 로체(8,516m) 등 높고 낮은 봉우리들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네팔에서 에베레스트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칼라파타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티베트 쪽 EBC에서는 에베레스트를 가까이 볼 수 있어 좋다.

 칼라파타르(5,545m)에서 본 에베레스트 1

 

 전망대에서 본 에베레스트

 

네팔 쪽에서 본 에베레스트에는 눈이 없다. 한 개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 같아 보인다. 에베레스트가 높게 솟아 상승기류가 생기고, 이 기류에 의해 눈이 날려, 쌓이지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상 부근에서 눈이 날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칼라파타르(5,545m)에서 본 에베레스트 2

 

북쪽에서 본 에베레스트에도 간간이 눈이 벗겨진 모습이 보이는 것도 상승기류 때문이겠다. 하지만 남쪽에 비해 많은 눈이 쌓여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남쪽에 비해 북쪽에 눈이 더 많이 와서일까? 아니면 상승기류가 남쪽에 비해 약해서일까?

 천막촌 계곡 쪽에서 본 에베레스트

 

인도측량국에서 “XV(15)"라는 측량번호로 부르던 산이 세계 최고봉으로 판명된 것은 1852년이다. 하지만 현지주민들이 그 산을 무어라 부르는지 알 길이 없자, 당시 인도측량국 장관으로 큰 공적이 있었던 조지 에베레스트(George Everest)의 이름을 따서 MT, Everest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1865년이다.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07년 영국산악회 창설 50주년을 기념하여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획했으나, 인도정부가 영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티베트와 네팔은 외국인의 입국을 꺼려하여 계획이 무산되고 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에서는 다시 에베레스트 등정에 관심이 모아져 1907년 영국왕실지학회와 영국산악회가 공동으로 에베레스트 위원회를 발족하고, 에베레스트 등반준비를 마친 후, 1921년 1차 에베레스트 원정을 시작으로 1938년 까지 17년 동안에 7차례나, 도전했으나 실패 했고, 그 이후에도 14년에 걸쳐, 영국 두 차례, 스위스 두 차례, 캐나다, 미국, 덴마크, 그리고 소련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다.

 

초기의 에베레스트 원정사(遠程史)에서 티베트 쪽의 북쪽루트를 택하느냐? 아니면 네팔 쪽의 남쪽루트를 택하느냐? 가 성패를 좌우한다.

 

죤 헌트(John Hunt)를 대장으로 하는 영국원정대의 힐러리(Edmund P. Hillary-33세)와, 셀파 텐징(Tenzing Norgay-39세)은 종전에 영국원정대가 8차례나 시도했다 실패한 북동루트를 버리고, 스위스대가 1952년에 시도했던 남동루트를 통해 1953년 5월 29일 11시 30분에 최초로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 세계적으로 17번째의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 끝에 이룩한 성과다.

에베레스트 남동루트

 

에베레스트 등정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라는 명언을 남긴 조지 말로리(Gorge Mallory)가 그 사람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잠시 일을 했던 말로리는 재학시절 당대 최고의 등반가인 어빙(Irvine)과 홋날 영국 산악회 회장이 된 제프리 영(Jeoffrey winthrop young)에게 등산기술을 배운다. 그는 등반 기술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폭 넓은 신뢰를 얻어, 당시 영국산악계에서 가장 우수한 등반가로 인정을 받았고, 최초로 에베레스트의 등로를 발견한 사람이다.

 

1921년 영국이 최초로 티벳의 북면 노스 콜 루트로 정찰 팀을 파견할 때 제1차 대원으로 선발된다. 그 후 세 번째 등반에 나선 1924년 6월 8일, 오후 12시 50분경, 앤드루 어빙(Andrew Irvine)과 함께 해발 8,220m의 제6캠프를 떠나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제2스텝에 도달한 후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관련자료 발췌)

말로리 스텝(펌)

최초로 에베레스트 북벽 무 산소 등반에 성공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에베레스트의 미스테리’라는 책에서 말로리는 당시의 장비로는 결코 제2스텝을 오를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남동루트에도 정상 직전에 힐러리 스텝이 있지만, 북동루트의 제2스텝에 비하면 산책로에 불과하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북동루트로 정상에 오른 최초의 팀은 중국 팀이다. 1975년 400명이 넘는 중국원정대는 군사작전을 펴듯 인해전술로 제 2스텝에 접근하고, 알미늄 사다리를 연달아 설치하며 이를 통과하여, 결국 9명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을 한다. 하지만 9명중 티베트인이 8명이고 중국인은 단 한명 뿐이다.

 

지금은 에베레스트 등정 코스가 무려 22개나 된다고 한다. 이제까지 약 10,0000명 정도가 등정을 시도하고 그중 약 2,500명 정도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50,000정도면 정상까지 데려다주는 상업등반대가 문제가 된다. 시즌이면 한꺼번에 400~500명이 몰려들어, 정상에서 70m 아래에 있는 힐러리 스텝에서 해마다 정체현상이 생겨, 사람들이 2~3시간씩 기다리게 되자, 힐라리 스텝에 철 계단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자료 발췌)

에베레스트 등정루트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변질된 에베레스트지만, 산은 여전히 당당하고 장엄하다. 10시 35분 경, 우리들은 EBC를 출발하여 쟈시종(扎西宗), 운가촌(云加村)을 거쳐 팡라(Pang La-5120m))고개를 넘고, 초모랑마 국립공원 북문으로 나와 딩리(定日)로 향한다.

 EBC 출발

 

 1시경 쟈시종 도착

 

 성도찬관에서 중식

 

 팡라고개

 

 전망대 안내판

 

 전망대에서 본 희말라야 연봉

 

 딩리

 

5시경 딩리에 도착하여 지난번에 묵었던 숙소에 투숙한다. 이제 우리들의 티베트여행은 다 끝난 셈이다.

 

 

(201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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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촌에서 본 에베레스트

 

 천막촌에서 당겨 찍은 석양 속의 에베레스트

 

2013년 6월 20일(목)

밤중에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덕에 피로가 많이 풀린 느낌이다. 6시 경에 일어나, 30여분 동안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짐 정리를 한다. 매일 풀었다 꾸렸다를 반복하는 짓에 이제는 이골이 났지만, 이런 귀찮은 일 때문에 여행 자체가 싫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걱정까지 하게 될 정도로 지겨운 일이다.

 

8시 30분 숙소 앞에 집합하여, 짐을 차에 실어 놓고, 가까운 식당으로 이동한다. 오늘 아침은 중국식 조찬이다. 9시 30분 경, 딩리(定日)를 향해 출발한다. 사가에서 딩리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보롱(Borong)을 지나고 라롱라(拉龍拉)고개를 넘어 G318국도로 진압한 후 딩리에 이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G219국도와 G318국도를 타고 eld리에 도착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이동거리가 300Km가 채 못 되는데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500Km나 된다. 우리는 비포장도로로 간다.

지도

 

얄룽창포(雅魯藏布)강을 왼쪽에 끼고 도로가 이어지는데 오른쪽 벌판은 메말라 사막화가 진행되는 느낌이다. 왼쪽으로 희미하게 집들이 보인다. 지도를 보니 저바(折巴)라는 곳을 지나는 모양이다. 길가에 타르초가 보이고 팻말이 세워져 있다. ‘법에 정한 대로 도로를 관리하여 원활한 소통을 보장하라.’ 라고 강조하고 있다.

 강을 건너 먼지를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도로 변의 팻말

 

도로는 강과 멀어지며 남쪽으로 이어진다. 9시 10분 경, 도로 변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바람을 쏘인다. 땅위에 선인장 같은 파란 식물들이 보이고, 나팔꽃 같이 생긴 꽃 두 송이가 돌밭에 떨어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돌밭에 떨어진 꽃이 아니라, 땅위에 파란 잎을 내리고, 그 위에 꽃 한 송이를 달랑 피워낸 처절한 모습이다.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다.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

 

돌밭 위의 경이 1

 

돌밭 위의 경이 2

추위와 바람 속에서 힘겹게 싹을 틔우면서 어쩔 수없이 꽃도 함께 피는 이 처절한 들꽃의 이름은 "인카빌레아 영허스밴디"입니다. 1904년 영국군이 라싸를 침공할 때, ‘영허스밴디’라는 군인에 의해 처음 알려지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불목하니 님이 알려주셨습니다.>

 

다시 차가 출발하고 도로는 산간으로 이어진다. 도로관리를 잘 하자고 강조하는 팻말을 세울 정도로 신경을 써서인지 비록 비포장도로이지만 노면이 비교적 매끄러워 생각보다 덜컹거림이 심하지 않다. 이런 도로가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오르고 내리고, 이어 황야를 달린다. 거친 황야에 여기저기 꽃들이 보인다.

 비포장도로지만 도로사정이 양호하다.

 

 황야의 들꽃

 

나중에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

 

9시 30분, 민자이 고개임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지나, 타르초가 나부끼는 고도 4,800m의 고개 위에 선다. 남쪽으로 들판을 건너고, 두 겹 산을 넘은 뒤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의 연봉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고개에서 내려서서 들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내린다.

 교통표지판

 

 고개 위의 타르초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

 

커다란 호수가 있는 초원으로 내려선다. 파오가 몇 채 보이고, 소와 양들이 초원에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풍경이다. 마침 아낙네들이 아이를 데리고 파오 밖에 나와 있다. 카일라스님이 접근하여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여준다. 신기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주머니들의 양해를 얻고 사진 몇 카트를 찍는다.

 평화롭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초원

 

 카일라스님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젊은 엄마와 아기

 

자애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 멋쟁이 할머니

 

쵸코릿, 캔디, 볼펜 등을 답례로 드리고 이분들과 작별을 한다. 차는 계속 초원을 달린다. 달리는 차속에서 조금 전에 만났던 할머니를 떠 올린다.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할머니, 세파에 찌든 모습과는 거리가 먼 여유로운 얼굴이다. 이 할머니도 지은 죄업을 씻게 해달라고 오체투지를 하며 고행을 하실까? 이 할머니와 웅장하고 화려한 포탈라궁이나 노블린카, 그리고 죠캉사원 등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 일까? 이 할머니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유목생활 - 속세의 삶에 만족하고, 더 큰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 아닐까?

 

험한 톨마라고개를 오체투지로 넘으면서 카일라스 코라를 하던 젊은 티베트 여인이 생각난다. 그 여인이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됐을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불심이 깊어, 생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유목민 촌에서 방금 본 할머니처럼 평범하지만 자애롭고 여유 있는 얼굴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험한 세파에 찌든 흉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늙었을 때의 얼굴 모양을 결정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종교인가? 아니면 그가 살아온 세속의 삶인가? 또는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진 것인가?

 

부질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차들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너른 들판을 달린다. 멀리 만년설 봉이 보인다. 10시 40분 경, 우리들은 아스팔트 도로로 들어서고, 얼마지 나지 않나 G318 77Km, 마라산(馬拉山) 17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너른 벌판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차들이 커다란 호숫가에 멈춰서고, 대원들은 차에서 내려 주위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호수 오른쪽 뒤로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 연봉들이 그림 같다. 호숫가를 떠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린다. 히말라야 연봉들이 가깝게 다가온다.

 호숫가 정차

 

 아름다운 호수

 

 당겨 찍은 히말라야 연봉들

 

 초오유 1

 

 초오유 2

 

왼쪽 멀리 커다란 마을이 보인다. 나중에 안내판을 보니 마을이름이 寺龍村(Ser long Chong)이다. 12시 경 희봉(希峰)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은 후, G318국도를 달려, 1시 30분 경, 딩리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에서 10여명의 폴랜드 관광객들을 만난다. 티베트에서 유럽 관광객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양반들은 용케 허가를 받은 모양이다.

寺龍村

 

 검문소

 

 딩리 반점

 

점심식사를 마치고 EBC로 향한다. 여전히 잘 정비된 비포장도로다. 집이 몇 채 있는 마을 앞을 지난다. 아이들 서 너 명이 먼지 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뚜오지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초코릿과 사탕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단 것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이런 오지에서 단 것을 먹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비포장도로로 진입 EBC로

 

티베트에 가면 어디고 구걸하는 아이들, 기념품 등을 사라고 귀찮게 구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라싸도 그렇고, 유명한 사원이나 관광지 어디에도 그런 아이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를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오지까지는 그런 행정력이 미치지 못 했는지, 캔디를 달라는 아이들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차는 마을을 지나 광야를 달리고 개울을 건넌다

 개울도 건너고

 

 

길이 변해 돌밭길이 이어진다. 많이 덜컹댄다. 카이라스님은 심한 경우에는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내려서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었는데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 돌밭길 주위의 산들의 모양이 특이하다. 마치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 같아 보인다.

 

 돌밭길

 

 화염산인가?

 

히말라야산맥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돌밭 너머로 만년설 봉이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아득하다. 다시 천막과 돌집이 보이고, 어린 녀석 하나가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초코릿과 사탕을 주려고 하니,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자꾸 주어 버릇하면 아이에게 거지근성을 키워주어 해가 된다는 논리다. 어쩌면 오른 소리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실은 참으로 답답한 소리를 하는 양반이다.

 

 만년설 봉 1

 

 만년설 봉 2

 

 지나온 길

 

5시 43분, 다리를 건너고, 한동안 돌길은 더욱 더 험해지다가, 길이 황야를 버리고 산허리를 타고 오르면서 황톳길로 변한다. 5,140m의 져구라(遮古拉)고개로 구불구불 가파르게 이어지는 길이다. 이윽고 고개 위에 서니 히말라야 연봉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선다.

 

 길이 산허리로 이어지며 황톳길로 변하고 가파르게

 

 더욱 가까워진 히말라야연봉들

 

고개를 내려서서 개울을 따라 달린다. 왼쪽 황톳빛 산 위, 푸른 하늘에 하얀 달이 걸려 있다. 7시 52분, 롱푸사(絨布寺) 안내판을 지나, 천막촌으로 들어서며 비로소 에베레스트의 모습을 본다. 8시 30분 경, 천막촌에 도착한다. 마을 왼쪽의 칼날 같은 암봉들이 지는 햇빛을 받고 불타는 듯 곱다.

 

 개울을 따라 달리고

 

 

 불타는 암봉

 

 에베레스트

 

천막으로 가득 찬 마을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같은 차를 타고 온 동승자들 단위로 텐트를 배정한다. 우리들은 雪域扎西旅館(Snowland Tashi Hotel)을 배정 받는다. 4호차 동숙자 5명과 기사 뚜오지, 그리고 천막 종업원을 포함하여, 7명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함께 숙박한다.

 

 붐비는 천막촌(다음날 아침에 찍은 사진)

 

 우리가 묵은 숙소

 

관광객들이 많아 서인지, 영문으로 표기한 메뉴를 보여준다. ‘Pork Flied Rice'를 주문한다. 내일 아침 것도 주문하라고 해서, ’팬 케익‘도 함께 주문한다. 오므라이스도 있고 식단 에는 10여종의 음식들이 있는데 가격은 10~15위안 정도로 저렴하다. 하지만 음식의 질은 한참 떨어진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 석양 속의 아름다운 에베레스트를 카메라에 담는다.

 

 석양 속의 에베레스트

 

천막 안에는 화장실이 없고 멀리 떨어진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몇 군데 없는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니, 내일 아침이 큰일이다. 텐트 안에서 늦게까지 난로를 피워주는 때문인지, 침낭이 없어도, 추운 줄 모르고 잠을 잔다.

 

 

(201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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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젖 짜는 여인들

 

2013년 6월 19일(수)

파양의 해발 고도는 5,000m나 되고. 어제 저녁 반주 량을 초과하여 마신 고량주의 영향도 있어, 잠자리에 들자 숨이 가쁘고, 밤새 5~6차례 화장실을 드나들게 되어 잠을 설친다.

 

오늘은 파양을 출발하여 약 226Km 떨어진 사가에서 숙박하고, 내일은 사가를 떠나 비포장도로를 약 400Km 정도를 달리면 이번 여행의 마지막 탐방지 EBC에 이르게 된다. 오늘은 사가까지 간다는 소리에 여행사를 통해서 온 분들 사이에서 여행 일정을 너무 느슨하게 잡는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휴오얼에 방이 없어, 3시간 반을 더 달려, 약 250Km 떨어진 파향에 늦게도착한 것은 벌써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시간 여유가 있어 9시 경에 느지막하게 식사를 한다. 중국식 아침식사다. 멀건 흰 쌀죽이 입에 당긴다. 세 공기를 훌훌 마신다. 속이 편하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차에 옮겨 실으며 떠날 차비를 하는데, 숙소 일을 도와주던 아가씨가 내다본다. 볼펜을 하나 건네주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거절하는 기색이 없다. 나이 드신 분들은 사진 찍기를 거부하지만, 젊은 아가씨들은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서인지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파양 숙소에서 떠나기 전에 찍은 아가씨 사진, 본인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G219번 국도를 달린다. 국도 변의 풍경에 많이 익숙해진 대원들은 멍하지 차창 밖을 내다보거나, 아예 졸고 있다. 파양을 떠난 지 30여분 쯤 지난 시각, 창밖의 풍경이 일변한다. 주위가 온통 사막이다. 이윽고 차가 멈춰 선다. 종파현(仲巴縣) 도로변에 사막이 여러 군데 있다더니, 어느새 우리들이 종파현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한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막의 풍광에 빠져든다.

사막으로 들어서고

 

 모래, 강, 가까운 산 과 먼 산, 그리고 그 위로 하늘

 

 사막 가운데서 멈춘 차량들

 

 동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난 후에 보여주는 앙코르님의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

 

 모래 산에 오른 대원들

 

다시 차에 올라 15분 쯤 달리니, 언제 사막이 있었냐는 듯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멀리 양떼들이 점점이 보인다. 하지만 다시 5분 쯤 지나자, 우리들은 또 다른 사막으로 들어서게 된다. 11시 15분, 차는 扎東寺(Dratun Monastery) 안내판이 보이는 나지막한 고개마루턱에 정차한다.

 다시 초원, 그리고 양떼

 

 차는 다시 사막으로 내려서고

 

扎東寺 안내판

 

차에서 내려, 초르텐과 타르초의 환영을 받으며 절로 향한다. 작은 외곽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선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짜임새가 있어 보이는 절이다. 절 내부로 이어지는 중문 양쪽에 걸린 현판을 본다. 오른쪽에는 ‘仲巴縣 平安寺庵’ 왼쪽에는 ‘縣級重點文物保護單位’라는 글자가 보인다.

초르텐과 타르초가 우리들을 환영하고

 

 바깟 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절 안뜰에서 본 절의 모습이 짜임새가 있어 보인다.

 

현판의 내용에 의하면, 이 절의 이름은 평안사이고,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중파현의 문화재로 현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절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길거리에 높게 세워진 扎東寺라는 안내판은 무엇인가? 궁금해서 야후 차이나 등 아무리 자료를 뒤져 보아도,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을 뿐, 그 관계를 알 수가 없었다. 아시는 분 해답을 주시면 고맙겠다.

 

어둑한 절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여인의 몸으로 표현한 티베트의 지도다. 라싸의 티베트 박물관에서 본 것과 같은 그림이다. 박물관에서는 실내조명의 방해로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방해가 없어 어렵지 않게 귀한 그림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다행이다.

 티베트 지도

 

어둑한 절 내부를 둘러본다. 사진 찍는 것을 금하지 않아 고맙다.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색감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사천왕상(우리식의 표현)과 탕카, 그리고 가운데에 정좌하고 계시는 부처님 불상의 크고 형형한 눈이다. 혹시 척박한 환경, 암울한 속세의 삶이 이처럼 화려하고 강렬한 티베트 고유의 탕카 예술의 배경에 있는 건건 아닌가? 하는 아마추어적인 생각과, 듣던 대로 세계 어느 나라 불상보다도 티베트 불상의 부처님 눈이 크고 형형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천왕상 1

 

사천왕상 2

 

 보살상

 

 탕카

 

 불상

 

잠시 절 옥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이 길게 형성이 되 있고, 몇 몇 집들의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북쪽으로 또 다른 초르텐이보인다. 옥상에서 내려와 북쪽의 초르텐으로 향한다. 초르텐 밑에 야크의 뿔이 가득하다. 살아서 기여했던 야크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은 야크들의 안식을 기원하여 초르텐 아래에 뫃아 놓은 야크 뿔

 

30분 정도 절 구경을 한 후, 일행은 다시 차에 분승하여 국도를 달린다.10분 쯤 달렸을까? 왼쪽 넓은 초원 물가에 여러 채의 파오와 양떼들이 보인다. 차가 가까이 접근하여 도로변에 정차한다. 여자들이 한 무리의 양들을 촘촘히 묶어 놓고 젖을 짜고 있다.

 양젖 짜기

 

젖 짜기 구경을 마치고 국도를 달리다 1시 14분, 라창의 한 상점에서 마실 물을 사게 하더니, 점심 먹을 생각도 않고 내쳐 달린다. 3시경, 사가에 도착하여, 번화가 사가호텔 옆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지난번에 투숙했던 3인 1실의 게스트 하우스에 방을 잡는다.

라창에서 물을 사고

 

게스트 하우스 앞마당의 태양열 열기구

 

4시가 조금 지난 시각,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샤워 할 곳도 없어, 간단히 세수만 한 후, 룸메이트들과 함께 거리구경에 나선다. 사가는 제법 큰 도시다. 군사도시라고 하는데 군인들은 어디 박혔는지 코빼기도 볼 수가 없다.

 

찻집도 들어가 차를 마신다. 젊은 아가씨가 혼자서 운영을 하는 찻집이다. 20위안만 내면 커다란 보온병의 차를 끊임없이 부어준다. 버드와이저 캔 맥주 박스가 있는 걸 보면 술도 파는 모양이다. 젊은 청년 한명이 들러오더니 콜라를 주문하고, 아가씨는 작은 잔에 콜라를 계속 따라준다. 다른 젊은 청년이 또 들어온다.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는 모양이다

밖에서 본 찻집

 

 

찻집 안

 

 벽에 걸린 영업허가증

 

규모가 큰 차오쓰((超市-슈퍼마켓)도 여럿 보여 들어 가본다.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다. 반주로 자주 마시던 고량주 랑(郞)은 12 위안, 식사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카스테라(우리나라의 마드렌느 3~4개 정도를 합친 크기의 카스테라 6개 입), 간식용 과자가 각각 10위안이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다. 싱싱한 바나나도 한 근에 7위안, 사과도 크고 탐스럽다.

 

식사대용으로 가능한 妙堡

 

 간시용 과자 旺旺雪餠

 

모처럼 시간이 나는 기회를 활용하여, 그 동안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 젊은이들과 함께 자리를 하려고 술과 과일, 그리고 과자류 등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젊은이들과 더불어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여행사를 통해 온 분들 중에 여자 분이 세분 있다. 두 분은 가정주부, 또 한 분은 20대의 아가씨다. 여행 중에 이분들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함께 즐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이대승 씨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힘이 드는 일을 기꺼이 대신 해주었다.

 

 여행사를 통해 오신 두 주부님과 가운데 이대승 씨

 

내일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힘겨운 이동을 해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201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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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사(吉烏寺)위에서 본 마나사로바 호수

 

마나사로바 호수. 티베트 사람들은 이 호수를 ‘불패의 호수’라는 의미의 ‘마팜초(Mapham Tso)’라고 부른다고 한다. 카일라스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져 있는 이 호수는 카일라스의 만년설을 수원(水源)으로 해발고도 4,583m 위에 둘레 약 80Km에, 412Km²의 넓이를 가진 거대한 담수호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카일라스와 더불어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뵌교의 교도들에게 “성호(聖湖,Manasarovar)”라 불리는 성지로, 많은 순례자들이 3일~5일의 일정으로 호수주위를 일주하는 곳이다. 그들은 카일라스를 우주의 중심, 그리고 마나사로바를 우주의 자궁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마야부인(麻耶夫人)이 이곳에서 목욕한 후 인간으로서의 불순을 정화하고 신성을 얻어 석가(釋迦)를 잉태했다는 일화가 있고,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遺骸) 일부도 그의 유언에 따라 여기에 뿌려졌다고 한다.(이상 관련자료 발췌)

 

2013년 6월 18일(화)

7시 15분의 로비 집합을 7시 45분으로 잘못 안 사람들이 있어 계획보다 30분 늦게 山城酒家로 이동, 아침식사를 하고, 8시 30분 경, 자다(扎达)를 출발한다. 자다에서 바얼(巴尔)까지는 117Km. 눈 쌓인 5000m이상의 고개 두 개를 넘고, 잔설이 아름다운 광야를 달린다. 한여름에 이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즐길 수 있다니! 이번 여행에서 크나 큰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다.

 도로와 평원과 먼 산, 그리고 하늘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잔설에 다양한 색감을 보이는 들판

 

가까운 산, 먼 산

 

첫 번째 고개를 넘고

 

 내리막길에서 화물 트럭을 만나 아찔한 순간도 넘기고

 

 산과 벌판 1

 

 산과 벌판 2

 

10시 42분, 우리들은 바얼에 도착하여, G219 국도로 들어서서, 먼투(門土)로 향한다. 국도변의 풍광은 지나온 산간풍경과는 딴판이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별세계로 온 느낌이다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은 여전하지만, 가까운 산이나 들판에서는 눈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푸른 초원에서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산간풍광과 완연히 다른 국도변 풍광

 

11시 30분 경 먼투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1시가 다 되어 먼투를 떠나, 바가(巴嘎)로 향한다. 먼투를 지나자, 창밖의 풍광이 또 변한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가깝고, 너른 들판은 온통 부드러운 황갈색 이다. 차는 뻥 뚫린 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린다. 아름다운 창밖의 풍경이 끊임없이 변한다.

 먼투에 도착, 검열을 받은 후 식당으로 향한다.

 

 황갈색 대지와 만년설의 조화

 

 대지의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고 만녈설 봉이 가깝다.

 

 수미산을 당겨 찍고

 

 새가 있는 풍경

 

바가가 가까워지자 들판에 잔설이 보인다. 이 부근에도 어제 눈이 온 모양이다. 2시 22분, 바가에 도착하여 G219번 국도를 버리고 S207 국도로 들어서서 눈 덮인 광야를 달린다. 저 멀리 마나사로바 호수가 모습을 보인다.

 눈 덮인 들판

 

바가에 도착, 오른쪽, S207 국도로 들어서고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황야를 달린다.

 

 

미나사로바 호수 주변 지도(펌)

 

이윽고 호수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차가 멈추고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데, 스님 두 분이 호수로 다가가는 모습이 멀리 보인다.

 당겨 찍은 호수 1

 

당겨 찍은 호수 2

 

 호수로 다가가는 스님들

 

우리들은 다시 차에 올라 호수 안쪽으로 이동하여 지우사(吉烏寺)에 이른다. 가파른 산 중턱에 세워진 이 절은 인도의 탄트라 불교를 처음으로 티벳에 전한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수행토굴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홍위병난 때 파괴됐던 것을 1985년에 복구했다고 한다. 절 옥상에서 보는 주위 풍광이 압권이다.

 

 지우사 1

 

 

 지우사 2

 

지우사에서 본 마나사로바

 

 지우사 건너편 언덕 위의 초루텐

 

초루텐 부근에서 죽은 야크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절 주위에서 한동안 주위 풍광을 살펴본다. 마나사로바 호수 옆에 또 하나의 호수가 있다. 귀호(鬼湖, Langa Tso)가 그것인데, 마나사로바 호수는 담호(淡湖)인데 비해 바로 옆에 있는 귀호는 염호(塩湖)라고 한다. 또 하나의 신비이고, 자연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차에 분승한 일행은 지우사를 떠난다. 귀로에 카일라스님의 배려로 호숫가로 가까이 접근한다. 인도인들은 우주의 자궁인 이 호수의 물로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기만 해도, 오욕칠정을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지만,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된 우리 일행들은 호수 주위를 배회할 뿐, 누구도 감히 호수로 들어서려는 사람이 없다.

호슷가를 거닐고

 

다시 눈 덮인 벌판을 달려, 5시경 G219 국도로 진입하고, 약 20분 후, 후오얼(Huoel) 도착하지만, 숙박할 방이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약 250여km를 더 달려, 8시 30분경에 파양(帕羊) 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후오얼에 방이 없어 약 250km 떨어진 파양으로 달린다.

 

 도로 보수

 

 야크들이 길을 막고

 

파양에 도착, 숙소를 정하고

 

긴 여정이었지만, 카일라스와 자다현의 토림, 구게왕국의 폐허지, 그리고 오늘 마나사로바 주변을 돌면서, 중국의 지배와는 무관하게, 티베트의 변함없이 의구(依舊)한 산하(山河)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그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늦은 식사를 하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빠이주(白酒)잔을 기울인다.

 

“아리(阿里)지구를 가보지 않았다면 티베트를 보았다고 하지 말라.”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다.

 

 

(2013. 7. 12.)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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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게왕국 유적지

 

우리들은 6월 4일(화) 한국을 출발하여 비행기, 기차, 그리고 전용 승합차를 동원하여 6월 13일(목) 카일라스 코라의 관문인 다르첸에 도착하고, 6월 14일부터 2박 3일 동안에 카일라스의 외부코라와 내부코라를 모두 마쳤다. 날씨관계로 코라 중에 카일라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첫날 하루뿐이었다.

 

5년 전, 불목하니님이 카일라스 내부코라를 할 때에는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에는 5,800m에 있는 사리탑을 지나, 거의 6,000m 가까이 올랐던 모양이다. 이번 티베트 여행은 20박 21일 동안의 비교적 긴 여행이지만 워낙 범위가 넓고, 방문지역이 많아, 카일라스에 집중하기를 원했던 분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차 티베트의 여행규제가 완화되고, 개별적인 자유여행이 가능해지면, 이번 여행을 경험 삼아, 머지않아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수미산 코라를 마치고 구게왕국으로 향하는 도중 비가 내리더니, 산간에서는 눈으로 변해, 밤새 내린다. 눈 덮인 고산지역의 풍광이 환상이고, 귀로에 둘러 본 마나사로바 호수 주변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된다.

한 여름인데도 아리지구에는 폭설이 내리고

 

 마나사로바 호수 주변의 잔설

 

2013년 6월 17일(월)

다르첸의 남북사해반점(南北四海飯店)에서 아침식사를 한 일행은 8시 30분 경, 다시 승합차에 분승하여, 구게왕국의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 다르첸에서 약 225Km 떨어져 있는 자다(扎达,3,650m)로 이동한다. 우리들은 다시 G219번 국도로 들어서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달린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너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다르첸을 떠나고 나서 1시간 쯤 지난 시각, 우리들은 먼투(門土)에 이르러 검문을 받는다. 이정표가 보이고, 길가 너른 공터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순간 테베트인들의 데모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지만, 군경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학생들이 운동시합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먼투 도착

 

10시 25분, 바얼(巴尔)에 도착하여 G219 국도를 버리고 왼쪽 지방도로로 진입하여 자다로 향한다. 잘 포장된 도로가 산간으로 이어진다. 지도에 6261m의 라지아(拉加)산이 보인다. 산허리를 잘라 만든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며 고도를 높이는데,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어느 사이에 눈으로 변해 주위가 하얗게 변한다.

 산허리를 크게 돌아 오르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어느새 눈으로 변해 주위가 하얗게 변 한다

 

도로는 고개를 넘어 평원을 달린다. 하얗게 눈 덮인 평원에 검은 야크들이 떼 지어 이동을 하고 있다. 도로는 다시 산허리를 타고 오르더니, 12시 30분 경, 우리들을 전망대로 안내한다. 안내판이 있는 전망대에 서니, 토림(土林)이 잔설을 이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미국의 그랜드 캐넌과 흡사하다.

 눈 덮인 평원과 야크 떼

 

 다시 산허리를 타고 오르고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서 본 토림

 

 마왕당 관경대

 

전망대에 서면 눈 덮인 산 아래에 토림의 바다가 펼쳐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이곳이 토림으로 둘러싸인 지방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면 황갈색의 토림과 햇빛 아래 반짝이는 눈 덮인 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토림은 반 응고된 바위로 이루어 진 것인데, 두꺼운 것은 300 미터, 얇은 것은 겨우 몇 미터에 불과하여, 각양각색의 다양한 모양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전망대 안내판은 토림을 설명하고 있다. 다른 자료에는 본래 바다 밑에 잠겨 있던 이 지역이 지각 변동으로 크게 융기하여 고지대를 형성하고, 오랜 세월 동안 뻘이 굳어져 바위가 되면서, 비바람에 씻겨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토림은 황혼 무렵에 보는 것이 가장 아르답다고 한다. 아래 그림은 전형적인 토림의 홍보사진을 퍼 온 것이다. 뒤로 보이는 만년설의 히말라야산맥 너머가 인도다. 5,600Km²에 달한다는 이 토림은 보는 곳에 따라 그 모양이 실로 다양하다.

홍보용 토림사진(토림)

 

 수트레지강과 토림

 

전망대를 내려서서 자다로 접근한다. 고도가 낮아지며 눈은 다시 진눈깨비로 변하고, 차창 밖으로 강이 보인다. 카일라스에서 발원하여 인더스 강으로 흘러드는 수트레지강(象泉河)이다. 구게왕국은 이물을 끌어들여 목축과 보리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수투레지 강이 흐르고

 

1시가 조금 넘어 가랑비가 내리는 자다로 들어서고, 이어 산성주가(山城酒家)라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자 비도 멎었다.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18Km 떨어진 구게왕국 유적지로 향한다. 매표소에서 차들이 멈추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잠시 후, 카일라스님이 모습을 보이더니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왕궁의 보수공사로 유적지 내부는 볼 수가 없어, 겉만 둘러볼 수밖에 없다고 알려준다.

자다

 

 입구의 돌표지

 

뒤돌아본 돌표지와 토림

 

 유적지 1

 

 유적지 2

 

유적지 3

 

유적지 4

 

티벳의 토번왕국(吐蕃王國)의 마지막 왕 랑다마(郞達瑪)가 암살되고 그의 아들 주지더니마(吉德尼瑪) 왕자가 권력쟁탈 전에서 패하자, 그는 라싸를 빠져나와 아리(阿里) 지역으로 도피해 새로운 왕국을 세우고, 이후 왕국을 셋으로 나누어 아들들에게 주었는데,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과 접경지역인 캐시미르의 라다크(Ladahk)왕국과 인도, 네팔과의 접경지역인 서부 티벳의 푸랑(普蘭)왕국, 그리고 구게(古格)왕국의 세 곳이라고 한다.

 

동서교역의 중심에 위치한 구게왕국은 700여 년 간 16명의 왕이 통치를 하고, 세력이 강할 때에는 서쪽이 캐쉬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까지 지배했다고 한다.

 

지금의 구게왕성은 10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증축되어, 황토산 전체를 왕궁과 사원, 방어시설, 그리고 주거지 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게왕국은 1635년 캐쉬미르의 라다크인들의 집요한 공격에 굴복하여 멸망했다고 한다.(이상 관련자료 요약)

 

특히 이 왕궁에서 유명한 것은 왕실사람들의 거주지인 황토산 꼭대기의 여름궁전과 산 밑바닥에 있는 동궁(冬宮)인 지하궁전을 연결하는 비밀통로와 2Km에 달하는 회전식 취수도(取水道)를 이용하여 산꼭대기에 물을 끌어 올렸다는 시설 등이다. 하지만 뜻밖의 보수공사로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겉만 훑어보게 되니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일행은 구게왕국 유적지의 겉만 둘러보고, 다시 자다로 돌아와 하북원건(河北援建) 호텔에 숙소를 정한 후, 낮에 점심식사를 했던 곳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이제 여행도 절반 이상이 지나고, 티베트의 서쪽 끝까지 왔다는 안도감에서 일까? 대원들은 늦게까지 고량주를 마시며 여정(旅情)을 달랜다.

 하북원건 호텔

 

 호텔 로비 벽에 걸린 장식

 

 

(2013. 7. 10.)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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