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모랑마봉 국가공원 북문

 

2013년 6월 21일(금)

아침에 일어나 공동화장실로 가보니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포기하고 천막을 돌아와 밀전병 같은 팬 케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어 EBC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일행들을 만나 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살핀다. 승차장 옆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우체국이 보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EBC 우체국

 

이른 아침인데도 보기 좋게 진열된 기념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버스가 올 시간이 됐는지, EBC로 갈 사람들은 줄을 서라고 한다. 줄을 서다 보니, 우리 일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젊은 한족들이다. 국력이 커지는 조국이 자랑스럽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자신들의 땅에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겠다.

기념품 매대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이윽고 버스에 오른다.(왕복요금 25 위안) 버스는 돌 많은 계곡 길을 달려, 10여분 후에 우리들을 EBC에 내려준다. 초모랑마봉 관광지 안내도와 EBC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에는 ‘베이스 캠프’를 大本營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大本營’, 2차대전 때 일본군에서 많이 쓰던 용어라 눈에 거슬린다.

초모랑마봉 관광지 안내도

 

 EBC 표지석

 

길을 차단하고 천막을 쳐 놓은 곳에서 또 한 차례 여권을 확인 대조한 후, 전망대로 들어가게 한다. 전망대 위에 서서 주위를 살핀다. 네팔 쪽의 EBC 와는 달리, 깎아지른 에베레스트 북벽이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어, 그 위용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다 보니 화장실이 가까이에 있는데 줄은 보이지 않는다. 일행에게 화장실 들르겠다고 보고를 하고 뒤로 쳐진다.

 여권을 확인 대조하고 전망대 출입을 허용한다.

 

 전망대애서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에베레스트는 네팔 쪽에서 보는 남쪽 모습과 티베트 쪽에서 보는 북쪽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네팔 EBC에서는 에베레스트 산 기슭 주변에 솟아 있는 창체(7,553m)· 쿰부체(6,640m)· 놉체(7,855m)· 로체(8,516m) 등 높고 낮은 봉우리들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네팔에서 에베레스트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칼라파타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티베트 쪽 EBC에서는 에베레스트를 가까이 볼 수 있어 좋다.

 칼라파타르(5,545m)에서 본 에베레스트 1

 

 전망대에서 본 에베레스트

 

네팔 쪽에서 본 에베레스트에는 눈이 없다. 한 개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 같아 보인다. 에베레스트가 높게 솟아 상승기류가 생기고, 이 기류에 의해 눈이 날려, 쌓이지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정상 부근에서 눈이 날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칼라파타르(5,545m)에서 본 에베레스트 2

 

북쪽에서 본 에베레스트에도 간간이 눈이 벗겨진 모습이 보이는 것도 상승기류 때문이겠다. 하지만 남쪽에 비해 많은 눈이 쌓여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남쪽에 비해 북쪽에 눈이 더 많이 와서일까? 아니면 상승기류가 남쪽에 비해 약해서일까?

 천막촌 계곡 쪽에서 본 에베레스트

 

인도측량국에서 “XV(15)"라는 측량번호로 부르던 산이 세계 최고봉으로 판명된 것은 1852년이다. 하지만 현지주민들이 그 산을 무어라 부르는지 알 길이 없자, 당시 인도측량국 장관으로 큰 공적이 있었던 조지 에베레스트(George Everest)의 이름을 따서 MT, Everest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1865년이다.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07년 영국산악회 창설 50주년을 기념하여 에베레스트 등정을 계획했으나, 인도정부가 영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티베트와 네팔은 외국인의 입국을 꺼려하여 계획이 무산되고 만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국에서는 다시 에베레스트 등정에 관심이 모아져 1907년 영국왕실지학회와 영국산악회가 공동으로 에베레스트 위원회를 발족하고, 에베레스트 등반준비를 마친 후, 1921년 1차 에베레스트 원정을 시작으로 1938년 까지 17년 동안에 7차례나, 도전했으나 실패 했고, 그 이후에도 14년에 걸쳐, 영국 두 차례, 스위스 두 차례, 캐나다, 미국, 덴마크, 그리고 소련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다.

 

초기의 에베레스트 원정사(遠程史)에서 티베트 쪽의 북쪽루트를 택하느냐? 아니면 네팔 쪽의 남쪽루트를 택하느냐? 가 성패를 좌우한다.

 

죤 헌트(John Hunt)를 대장으로 하는 영국원정대의 힐러리(Edmund P. Hillary-33세)와, 셀파 텐징(Tenzing Norgay-39세)은 종전에 영국원정대가 8차례나 시도했다 실패한 북동루트를 버리고, 스위스대가 1952년에 시도했던 남동루트를 통해 1953년 5월 29일 11시 30분에 최초로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 세계적으로 17번째의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 끝에 이룩한 성과다.

에베레스트 남동루트

 

에베레스트 등정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라는 명언을 남긴 조지 말로리(Gorge Mallory)가 그 사람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잠시 일을 했던 말로리는 재학시절 당대 최고의 등반가인 어빙(Irvine)과 홋날 영국 산악회 회장이 된 제프리 영(Jeoffrey winthrop young)에게 등산기술을 배운다. 그는 등반 기술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폭 넓은 신뢰를 얻어, 당시 영국산악계에서 가장 우수한 등반가로 인정을 받았고, 최초로 에베레스트의 등로를 발견한 사람이다.

 

1921년 영국이 최초로 티벳의 북면 노스 콜 루트로 정찰 팀을 파견할 때 제1차 대원으로 선발된다. 그 후 세 번째 등반에 나선 1924년 6월 8일, 오후 12시 50분경, 앤드루 어빙(Andrew Irvine)과 함께 해발 8,220m의 제6캠프를 떠나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제2스텝에 도달한 후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관련자료 발췌)

말로리 스텝(펌)

최초로 에베레스트 북벽 무 산소 등반에 성공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에베레스트의 미스테리’라는 책에서 말로리는 당시의 장비로는 결코 제2스텝을 오를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남동루트에도 정상 직전에 힐러리 스텝이 있지만, 북동루트의 제2스텝에 비하면 산책로에 불과하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북동루트로 정상에 오른 최초의 팀은 중국 팀이다. 1975년 400명이 넘는 중국원정대는 군사작전을 펴듯 인해전술로 제 2스텝에 접근하고, 알미늄 사다리를 연달아 설치하며 이를 통과하여, 결국 9명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을 한다. 하지만 9명중 티베트인이 8명이고 중국인은 단 한명 뿐이다.

 

지금은 에베레스트 등정 코스가 무려 22개나 된다고 한다. 이제까지 약 10,0000명 정도가 등정을 시도하고 그중 약 2,500명 정도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50,000정도면 정상까지 데려다주는 상업등반대가 문제가 된다. 시즌이면 한꺼번에 400~500명이 몰려들어, 정상에서 70m 아래에 있는 힐러리 스텝에서 해마다 정체현상이 생겨, 사람들이 2~3시간씩 기다리게 되자, 힐라리 스텝에 철 계단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자료 발췌)

에베레스트 등정루트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변질된 에베레스트지만, 산은 여전히 당당하고 장엄하다. 10시 35분 경, 우리들은 EBC를 출발하여 쟈시종(扎西宗), 운가촌(云加村)을 거쳐 팡라(Pang La-5120m))고개를 넘고, 초모랑마 국립공원 북문으로 나와 딩리(定日)로 향한다.

 EBC 출발

 

 1시경 쟈시종 도착

 

 성도찬관에서 중식

 

 팡라고개

 

 전망대 안내판

 

 전망대에서 본 희말라야 연봉

 

 딩리

 

5시경 딩리에 도착하여 지난번에 묵었던 숙소에 투숙한다. 이제 우리들의 티베트여행은 다 끝난 셈이다.

 

 

(2013. 7. 19)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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