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한반도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

 

여. 야 정치권 국민 모두가 무사안일 주의에 빠저있다. 북한이 존재 하는한 우리는 시한 폭탄을 안고. 산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돼! 
 
다소 긴내용 이지만 천천히 읽어 보시길 바라면서...  
  
한반도에서 전면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설마설마 하면서 너무도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듯하다. 심지어 불안감을 조장한다고 야단을 친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도 최근들어 외교적으로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이북의 전면전 준비를 감지하고 대응 준비하고 있는듯하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가 갖고있지 않는 첩보위성을 보유하고 24시간 이북의 동태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은 왜 이 시점에서 사드와 포병부대를 추가로 남한에 배치하려고 할까? 
미국은 오래전부터 위기상황을 알고 대처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고 할까?  미국을 등에 업고 우방국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찿고 있다. 한국의 독도를 고집하고 있는 속내는 뭘까? 당연히 일본은 한반도의 전쟁발발시 그 틈을 내다 보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중국은 왜 다시 이북과 가까워 지려고 할까? 남한에 사드배치를 왜 반대하고 있을까? 중국 또한 이북의 도발가능성을 인지하고 비상시에 이북영토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준비하고 있는듯하다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이 일어나면 우방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까지도 속내는 반기는 입장일것이다 이들은 전쟁 최고의 수혜국가가 된다 
 
최근까지 이북은 동해상으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낭비해 가면서 수백발에 가까운 다양한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계속 발사했다  왜 발사했을까?  
 
단순히 미국과 남한을 위협 내지는 시위하기 위해서 했을까?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것이다.  이북이 동해상으로 실험 발사한 각종 중장거리 미사일의 낙착지점을 남한으로 반경을 그려보라.  모두가 남한의 중요 기반시설 내지는 군사 시설이 있는 지점과 일치하고 있을것이다.

  
이미 이북은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 해야할것이다. 다만 그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것이다  
 

핵발전소, 주요 군부대, 공군부대 위치등의 좌표를 사전 입력해 두고 미사일이 떨어지는 거리와 방향을 확인했다면 이해가 빠를것 같다 
 
이북이 전면전을 벌일 경우는 2일 이내에 서울을 함락하여 기름과 식량등 전쟁물자 부족 문제를 해결할수 있고, 더나아가서 1주일 내에 전쟁을 끝낼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다보고 도박할것이다  
 
물론 이 판단이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결정일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합리성에 근거하여 일어난 적은 한번도 없다  
 
김정은은 30대 초반이기 때문에 오판으로 일으킬수도 있다 
 
이북이 전면전을 하려면 제일먼저, 
 
첫째, 남한의 전기와 통신을 최우선적으로 마비시키려 할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자체 파괴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송신탑만 몇개 파괴되어도 전기 공급은 중단된다  
 
둘째, 주요 통신시설을 파괴 하려할것이다 주요 기지국만 몇개 파괴되어도 우리는 인터넷은 물론 이동통신이 불가능하게 되어 통신두절이 될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고립된다 
 
셋째, 방송을 차단시킬것이다 몇개의 방송 송신타워만 파괴되어도 방송은 중단되어 온 국민들은 깜깜지옥 속에 갇힌다  
 
넷째, 공항활주로, 고속도로, 항만, 철도 등도 초기에 폭격대상이 된다  모든 이동수단이 마비된다 
 
다섯째, 수도시설과 가스시설도 우선 폭격대상이 될것이다 식수공급중단 사태로 우리는 순식간에 아비귀환이 된다   
 
이와 동시에 수백대의 무인비행기가 소량의 폭탄과 화확무기를 탑재하고 새벽 2시에 미리 입력된 각 군부대 좌표로 날아와서 동시에 공중에서 자폭한다  
 
이북의 수천대의 방사포가 새벽 2시부터 2시간 동안 쉴새없이 남한의 전방 군부대에 일제히 폭격을 가한다  
 
각종 비대칭 무기와 탱크를 앞세운 특수부대의  이북지상군이 남하하기 시작한다 
 
우리 공군력과 해군력, 자주포대들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고 전방의 군부대는 우왕좌왕하느라 정신이 없다   
 
상상만해도 아찔하다  
 
우리군은 통신도 두절되고 지휘통제도 되지 않는 상태에 놓인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모두가 잠든 새벽 2시에 일어난다면 서울은 순식간에 함락될수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 내부에 있는 종북세력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와서 방화와 폭력 범죄를 일으킨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과 일본은 정찰위성등의 정보망을 통하여 감지할 수 있다. 이 긴박한 정보는 우리 대통령에게 1시간 내에 보고가 된다  
 
이 경우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먼저 이북에 대하여 선제 공격명령을 내릴  준비나 각오가 되어 있을까?  일단 먼저 전면적인 공격을 받고난 후 후속적인 대응 내지는 대처는 엄청난 인명피해와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 패전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다  결국 적화통일로 갈수도 있다는 얘기다 
 
피해를 줄일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발위험을 감지했을때 우리가 선제 공격을 할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과연 우리의 군 통수권자는 결정적인 긴박한 순간에 선제공격 명령을 내리고 동시에 비상계엄령과 국회를 해산시길수 있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을까? 사전에 극단적 내부 종북인사들을 잡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을까? 걱정된다 
 
<국가안전처>에서 제작한 한반도 전쟁 가상 시나리오를 심각하게 관전하면서 '有備無患'의 정신자세를 가다듬도록 합시다! 
 
한반도 전쟁 가상 시나리오 보기 - :

▼ 아래 클릭
http://youtu.be/9SDVKxVtECM 
 
위 상황이 오늘 새벽 2시에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할까? 다같이 고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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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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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부패척결 특별법 제정할 수 있나?  

 
이법철(대불총, 지도법사)

 
작금의 한국 TV 등 언론에서는, 지난 2015년 4월 9일 북한산 형제봉 300m 떨어진 나무에 자신의 푸른색 넥타이로 목을 매 자살한 경남기업 전 회장 성완종씨의 자살시체에서 나온 유서의 뇌물을 준 인사들의 명단 때문에 연일 특별방송을 하듯 해대고 있다.

일부 한국인들은 성완종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한국의 정경유착(政經癒着)이 빚은 국민혈세를 나눠 먹는 도적판을 벌이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 분개하여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여 수사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올바른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비관적 견해가 난무! 한다.
 
항간의 국민들은 성완종의 자살을 보면서 두 가지로 비판하고 있다.

 

첫째, 與野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민주화를 다투워 외쳐대면서 민주정치 70년이 가까워 왔는데도 속내는 여전히 부정한 뇌물공여에 대해서는 중개인을 두던 아니면 본인이 직접 돈을 받는 짓을 계속해 온다고 맹비판 하는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 건국이후 소위 한국 경제인들은 대통령과 그 최측근인 실세에게 사바사바의 거액의 뇌물을 건내지 않고는 사업에서 성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세청,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에서 보호받고 은행의 대출 등 도움을 전폭적으로 지원 받으려면, 최고 권력자나 측근 실세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거액의 돈을 바쳐야 성공한다는 비판론이 있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이나 정직한 사업가에게는 은행 돈은 대출받기 어렵지만, 권력자에게 뇌물의 비자금을 바치는 자는 은행 돈은 제호주머니 돈처럼 마음대로 쓰고, 설사 가져간 은행 돈이 들통나 문제가 발생하여 감옥에 가더라도 오래지 않아 권력자로부터 사면을! 받는 세계가 한국 사회이다. 
 
대한민국 정치인에 부정뇌물을 어떤 명분으로던 바치는 경제인이 어찌 성완종 뿐일까? 뇌물바친 경제인이 모두 양심선언의 실토를 한다면, 정치판은 국민들의 분노에 의해 폭탄으로 폭파시켜야 할 대상들일 것이라는 항설이다. 하지만 돈을 받아먹은 만큼 권력은 경제인에게특혜를 주어 온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권력자에 돈을 바쳐야 한다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정화개혁이 될 수 있을까? 
 
성완종은 죽어서까지 박근혜 정부를 정조준하는 폭로를 했다. 여기에는 무서운 음모론이 퍼지기도 한다. 그 음모론은 박근혜정부를 망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이다. 음모자들은 국민적 의혹을 받아 조사 대상인 이명박 정권의 국내 사대강 사업과 해외 자원개발 등 부정부패의 조사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고도의 음모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성완종은 범인이 상상 못할 재주가 많은 사람인 것같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때 경제 비리로 수감되었을 때, 두 번이나 사면 받았다는 언론 보도는 무엇을 웅변하는가? 
 
성완종은 노무현 대통령 때도 권부와 “주고 받는” 밀착한 사이라는 뜻이 아닌가? 성완종은 DJ 대통령 때도 권부와 인연이 깊다고 주장하는 항설도 있다. 성완종은 한국사회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최고 권부와 통해야 한다는 착상으로 전심전력으로 권부와 대선, 총선 등 선거 때면 기부의 후원자 노릇을 하고, 대선, 총선 등 선거판에 권부의 요인들과 으레 약방의 감초같이 기념촬영을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검찰은 성완종의 유서에 근거한 뇌물을 받은 자들에 대해 수사를 한다는 언론 보도이다. 검찰의 수사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수사라고는 비등하는 항설이다. 성완종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與野를 막론하고 독배적 뇌물을 주고 명단을 활용해 오는데, 검찰이 성완종에 대해 수사에 나서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듯이, 돈을 받은 자들의 명단을 공개할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인데 검찰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독배적 뇌물을 먹은 정치인들은! 성완종의 명단 공개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구원을 외면했을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같은 검찰이 성완종 유서를 근거한 뇌물받은 자들의 수사에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검찰의 수사도 특검의 수사도 대다수 국민들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항설이다. 與野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통한 수사에서만 국민이 납득하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이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어찌 기업인 성완종 하나의 정치계 뇌물공세만 있을까? 권부에 남몰래 돈 바치는 자들이 기업인들만 있을까? 종교계에도 권부에 바치는 자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라는 여론은 분분한지 오래이다.
 
종교계의 돈은 아무리 먹어도 체(滯하지 않는다는 의미깊은 말은 어제 오늘의 전언이 아니다. 국민에게 사기 쳐 떼돈 벌고 있는 일부 종교인들이 권부에 상습적으로 바치는 돈도 수사에 나설 때가 되었다. 조선총독부에 돈부대를 바치던 승려들의 후예는 존재하는 것이다. 차제에 검찰은 총체! 적으로 한국사회에 만연된 암적(癌的)인 고질병인 권부에 돈바치고 특혜를 받는 기업인은 물론, 종교인 등까지 수사를 해서 국민들의 의혹을 통쾌하게 해소해주는 검찰이 되어 줄 것을 바란다.
 
나는 역대 문민 대통령들은 첫째, 대북 퍼주기, 둘째, 대통령 본인과 친인척 졸개들까지 대졸부(大猝富)되기, 셋째, 국민혈세로 국내 좌파 지원하기를 계속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대 문민 대통령 가운데 부정뇌물에 가장 깨끗한 대통령으로 박근혜 대통령으로 꼽고 기대한다. 박대통령만은 부정뇌물로 더러운 정치판에 진흙속에 연꽃같은 정치인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꽃같은 정치를 하는 대통령 옆에 예나 지금이나 떼돈 벌어 보자고 작심하는 탐욕스러운 패거리가 박대통령을 위요(圍繞)하는 한 부정부패를 단절할 수 가 없다고 본다. 뇌물에 깨끗한 대통령을 앞세우고 떼묻은 정치인들은 도적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왜 성완종은 노무현 정권 때도 사면을 두 번이나 받는 혜낵을 누려왔으면서 유독 박근혜정부만을 향해 비수같은 유서의 명단을 남!겼을까? 음모론이 비등하고 있다. 뇌물사건의 진위(眞僞) 여부를 알 수 없는 성완종의 유서 하나로 박근혜정부를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경악할 일은 일부 언론은 성완종을 조건없는 기부왕이요, 의인(義人)으로 찬사하고, 노무현 정권처럼 사면해주지 않은 박근혜정부를 맹비난하는 보도를 하는 것이다. 국민이여, 동의하는가? 나는 이렇게 해법을 제언한다. 차제에 與野는 정치개혁을 위해 YS, DJ,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는 장장 20년간에 자행된 국민이 제기하는 의혹난무의 부정뇌물사건에 관해 특별수사를 할 수 있는 ‘특별법’을 국회에서 시급히 제정하여 총체적으로 수사에 나서 과감한 개혁의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돈박스를 권부에 바쳐 은행돈과 관급공사를 제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이법철(대불총, 지도법사)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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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 英雄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본 뉴스들을 떠올렸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흑자가 일본을 훌쩍 넘었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 일본은 감히 넘보지 못할 무역흑자 대국이었다,
금융위기 후의 특수한 사정 탓이겠지만 식민지였던 우리가 이 흑자대국을
한번이라도 앞서는 일은 필자의 생애에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다 

런던에서 팔리는 전자제품의 30%가 삼성전자 제품이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성장 하는 자동차 회사는 현대자동차다,
모두 일본 회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다, 
대영제국의 저 콧대 높은 수도와 세계자동차 산업의 메카에서 우리가
일본을 위협 하게 된 이 일들을 기적이라는 말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 된 정도의 기적은
이제 기적 축에 끼기도 어려울 정도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궁금한 것은 우리의 무엇이 이런 기적을일으켰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300년간 퇴락을 거듭하다가
100
무려 300년간 지리멸렬하다가 망했다면 집안이든사회든, 
나라든 회생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게 마련이다,
우리만 유일하게 정말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듯이 일어났다,
우리 어딘가에서 소중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답 외의 다른 답 하나가 있다면 이 땅에서
1910
1910
바로 그해 2 12일에 이병철이란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장차 전자 왕국을 만들어 어마어마한 국부(國富) 
창출하게 될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라가 망한 해에 앞으로 나라를 먹여살릴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다 .
그로부터 5년 뒤 1915 11 25일 정주영이란 아이가 태어났다,
이 남루한 아이가 조선(造船)대국자동차대국의 꿈을 이루고
우리 후손들이 영원히 얘기할 성공 신화를 만들 줄 안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장성하기까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몰랐으나 꿈과 의지만은 똑같았다
 .

 

필자는 이병철정주영 두 사람의 업적은 광개토대왕에 필적한다고 믿는다,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장군들은
거의 전부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다, 
밖을 공격해 영토를 넓힌 사람은 광개토대왕 같은 몇 사람뿐이다 . 
지금의 세계에서 영토는 시장(市場)이다,
이병철과 정주영은 지구 땅 끝까지 찾아가 상륙했다,
피를 흘리며 교두보를 확보하고 거기서

 

적을 치면서 전진해 
우리 영토로 만들었다,
그렇게 얻은 영토가 5대양과 6대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대영제국에 해가 지지 않았던 것과 조금도 다를 것 없이
지금 대한민국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한 대기업 회장은
유명하지만그는 이병철정주영의 발톱 새 때만도 못한
수준"이라고 했다두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광개토대왕과 같은 영웅은 수백년에 한 명씩 태어나는 법이다,
정주영과 이병철은 5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것만도 기적과 같은 역사의 행운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주영이 태어난 지 다시 2년 만인 1917 11 14 
박정희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작고 못생겼던 이 아이가 패배의식에 찌든 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몰아갈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박정희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중화학공업 육성전략외자도입 
전략은 결국 모두 성공하고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이병철?정주영이 있었고,
이병철?정주영이 있었기에 박정희가 위대할 수 있었다,
몇 백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영웅들이
한꺼번에 태어나 절망적 무()에서 찬란한 유()를 창조했다,
한반도 천지개벽의 이 순간을 살면서 우리 민족에게 세 사람을
한꺼번에 주신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식민지 시절 박정희가 일본군에 들어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가 쌓은 토대 위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곳곳에서 일본을 제치고 있다,
이 이상의 극일(克日)이 있는가,
일본과 가장 잘 싸운 사람이 누군가,
이병철?정주영의 과오에 대해서도 말 들이 있지만
그들의 업적에 비하면 지엽 말단도 되지 않을 일들이다 

이제 박정희 탄생 93주년곧 다시 정주영 탄생 95주년이다,
이병철 100주년을 계기로 이 세 거인과 함께했던
우리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가 일어났으면 한다,
박정희는 국립묘지에 묻혔으나 정주영이병철은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은 국민 마음속의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고 생각한다.

 

(옮긴 글)
당신들은 한국의 영웅입니다
올해는 이병철 탄생 102주년,
박정희 95,
정주영 97,
동시 탄생, 민족 행운의 7 

몇 백년에 한 명 나올 영웅 세 사람 이 거의 동 시에 탄생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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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속의 초모랑마

 

저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는 34살의 회사원입니다. 용인 민속촌 근방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회사 일로, 서울 역삼역 근처의 본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용인 회사에 있을 때에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다가 막상 서울을 가려고 하니까 차도 막힐 것 같고 지하철을 타자니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분당에서 많이 있기에 용인 신갈에서 오리역까지 완행으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가 750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버스는 만원 상태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보통 때와 다르게 서있는 사람은 3~4명 정도고 모두 앉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구성 쯤 도착해서 막 출발을 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버스를 간신히 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주려고 시골에서 가져온 식료품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10 미터 정도 앞으로 전진을 했을까요?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운전기사가 할아버지에게 차비 없으면 빨리 내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번만 태워 달라고 애원하다 시피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운전기사에게 어르신한테 너무한다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찰나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사아저씨한테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잖아욧!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아저씨 앞으로는 이렇게 불쌍하신 분들 타시면 공짜로 10번 태워주세요.”

 

라고 말하면서, 만 원짜리를 돈 통에 넣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의 찡~~~함이 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시고 가는 게 아니겠어요.

 

정말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도 창피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도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어른이라는 게 이렇게도 후회가 되는 하루였습니다.

 

오리역에 다 왔을 때, 저는 만원을 지갑에서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내리는 문이 열렸을 때, 그 꼬마 주머니에 만 원짜리를 얼른 찔러 넣고는, 도망치듯 뛰어 내렸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반성하는 하루를 살 게 해준 그 꼬마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여 감사합니다. 

(2015. 02.22.)

 

이글은 히말라야여행동호회의 오영철 님이 퍼다 실은 것을, “무한공유하자는 말씀에 따라, 널리 알리고자, 귀한 에베레스트의 일출 사진과 함께 모셔다 놓은 것이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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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클레이은행(펌)

 

며칠 뒤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 담당 부총재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점심 약속 하루 전 정주영은 호텔에서 초조와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만사 제쳐놓고 관광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지요. 그는 현대건설 수행원들과 셰익스피어 생가와 옥스퍼드대를 둘러보고 낙조 무렵에는 윈저궁을 보았어요.

 

이튿날 정주영은 우아한 영국 은행의 중역 식당으로 안내되었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담당 부총재가 물었어요.

 

정 회장의 전공은 경영학입니까? 공학입니까? ”

 

소학교만을 졸업한 정주영은 짧은 순간 아찔했지요. 그러나 태연하게 되물었어요.

 

~ 제 전공이오? 그 이전에 우리가 당신네 은행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보셨습니까?”

 

! 네 봤습니다.!”

 

정주영은 순간적으로 전날 관광하다가 옥스퍼드대 같을 때 졸업식 광경을 본 생각이 났어요.

 

오스포드대학(펌)

 

어제 내가 그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옥스퍼드대에 갔더니 한번 척 들쳐보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주더군요.”

 

하면서 태연하게 농담을 했어요. 정주영은 구질구질하게 자신이 학력은 짧지만 사업경험은 누구보다 많다고 말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그의 큰 배포를 보여주는 유머를 내던졌어요. 그러자 부총재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지요.

 

옥스퍼드대 경영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그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겁니다. 당신은 그들보다 더 훌륭하군요. 당신의 전공은 유머이시군요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당신의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낼 터이니 행운을 빌겠소.”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정주영의 유머 한마디가 그 어려운 차관을 이끌어 낸 것이지요.

 

부총재가 정주영을 만나자고 한 건 자신들이 빌려줄 돈으로 조선소를 만들려는 CEO의 됨됨이를 보기 위해서였지요. 부총재는 그런 식의 만만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CEO라면 대출을 해 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최종적인 확인을 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실 정주영이 은행 쪽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은 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 하네요. 실제로 현대건설은 치밀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었고, 그 치밀함을 인정한 은행이 대출을 해주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은행 쪽은 사전에 현대가 건설한 화력 발전소 비료 공장 시멘트 공장을 치밀하게 조사했던 거지요. 그러나 최종적인 확신은 정주영의 배포가 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두 번째 관문도 통과 되었어요.

 

그러나 아직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관문이었지요. 영국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주려면 영국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보증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수출신용보증국 총재는 배를 살 사람의 계약서를 갖고 와야 승인해 줄 수 있다고 했지요.

 

만약 내가 배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작은 배도 아니고, 4~5천만 달러짜리 배를 세계 유수의 조선소들을 다 제치고 선박 건조 경험도 전혀 없고. 또 조선소도 없는 당신에게 배를 주문하지는 않을 거요. 설사 당신네가 배를 만들 수 있다 해도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원리금을 갚을 수 있겠소?"

 

"입장을 바꾸어 당신이 나라면 배를 주문할 사람이 없는데 보증을 해주겠소? 그러니까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확실한 증명을 내놓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차관을 승인할 수 없소

 

정말 난감했지만 정확한 지적이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도 가난한 나라였지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배를 만든다고 해도 그 배를 믿고 사갈 사람이 없었던 거지요.

 

정주영은 다시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바닷가의 사진을 꺼내 보았어요. 그러면서 자신처럼 정신 나간 사람을 찾아야 했지요.

 

'내가 누구냐? 천하의 정주영 아니냐? 여기서 무너질 내가 아니지.'

 

그날부터 마음을 다잡아먹고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에서 만들 배를 사줄 선주를 찾아 나섰던 거지요.

 

허허 벌판 모래사장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당신이 내 배를 사주겠다고 하면 내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주겠소. 미친놈 취급당하기 딱 좋은 말이었지요. 그런데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세번 만나니까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다름 아닌 선박 왕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리바노스였지요. 리바노스가 정주영의 배포를 믿고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보고 계약을 했어요. 선박에는 세계적인 리바노스지만 정주영의 사람 됨됨이에 밀려 파격적으로 정주영과 계약을 맺었어요.

 

 

 

리바노스와 계약(펌)

 

하지만 정주영 역시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했지요.

 

틀림없이 좋은 배를 만들어 주겠다. .값을 싸게 해주겠다. 만약 약속을 못 지키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주겠다. 계약금은 조금만 받겠다. 우리가 배를 만드는 진척상황을 보고 조금씩 배 값을 내라. 우리가 만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인수를 안해도 좋고 원금은 몽땅 되돌려주겠다. ”

 

정주영은 리바노스가 보낸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있는 그의 별장에 가서 유조선 2척을 주문받았지요. 이렇게 해서 마지막 관문을 넘어섰다 하네요.

 

정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신화적인 이야기지요. 그 뒤부터 정주영은 부하직원이 어렵다고 하면, "해보기나 했어?" 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하네요.

 

 

 

주영은 귀국하여 곧바로 박정희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대문 앞까지 달려 나와 그를 맞았지요. 그때 지도를 놓고 볼펜으로 그리며 본인의 구상을 설명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비서들에게 정 회장이 볼펜으로 그리는 대로 공장을 짓게 해주고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지시를 했다 하네요. 훗날 박대통령은 울산현장에 자주 들러 막걸리를 같이 나누며 정주영을 격려했다 하지요.

 

대통령의 신임 - 1964년 단양시멘트공장 준공, "임자는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사욕이 없어."(펌)

 

하지만 그건 준비 작업에 불과 했어요. 앞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짓고 그 조선소에서 다시 배를 만들어야 했지요. 그러나 정주영은 이때 그의 특기인 역발상 창의력을 발휘했어요.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조선소는 조선소이고 선박건조는 선박건조다 반드시 다 지어진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

 

그러면서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병행해서 진행시켰어요. 제일먼저 스웨덴에서 배 만드는 설계사를 데려왔지요. 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 배 만드는 공장도 없으면서, 모래사장의 모래를 포크레인으로 퍼내고 웅덩이를 파놓고. 거기에 올라오는 물을 펌프로 퍼내 가면서 그 웅덩이 속에서 최초의 배를 만들었어요.

 

공장도 없이, 독크도 없이, 모래를 퍼내 놓고 그 속에서 리바노스가 주문한 배 한척을 만들면서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하고 안벽을 만들고,

도크를 파고, 14만평의 공장을 지었지요.

 

거의 모든 직원들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여기저기 고인 웅덩이 물에 대충 얼굴을 씻고 일터로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숙소에 돌아와 구두끈도 못 푼 채 잠을 자며 배를 만들었어요.

 

 

정주영도 거의 울산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어쩌다 서울에 오면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갔어요. 이른 새벽 남대문 근처를 지날 때면 부부가 그날 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길을 지나는 장사꾼들을 보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정주영은 자신도 모르게 목젖이 뜨거워 졌어요.저렇게 새벽부터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려 갈 수 있고, 자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임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요.

 

그래!! 모든 이들의 삶은 다 그 자리에서 나름대로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다. 얼마 안 되는 하루벌이를 위해서도 저토록 필사적으로 열심인데…….”

 

훗날 정주영은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유대감과 존경심을 많이 느꼈다고 하네요. 그때마다 " 그래 다 같이 노력해서 하루빨리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주먹에 불끈 힘을 주었다고 했어요.

 

최초의 배가 완성되던 날 막아 놓았던 바닷물을 딱 텄지요. 물이 웅덩이로 쏴 들어오면서 배가 붕 떴어요. 그리고 잠시 후 붕 뜬 배가 바다 쪽으로 쑥 밀려나갔지요.

 

세상이 온통 뒤집혔지요.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 앉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단 한척의 배도 만들지 못했던 우리가 세계적인 대형 선박을 만든 것이지요. 이것이 세계 제1의 조선국가로 성장하게 된 바탕이라 하네요.

 

건조 능력 70만 톤, 부지 60만평, 70만 톤급 드라이 도크 2기를 갖춘 국제 규모의 조선소 준공을 본 것은 19746. 기공식을 한 1972부터 23개월 만이었지요.

 

이날 박정희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하여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는 휘호를 써 주었어요. 현대조선은 그렇게 세워졌어요.

 

선박 건조(펌)

 

그러나 한창 잘나가는 듯하던 조선 사업에 위기가 닥쳐왔지요. 이는 바로 1973년에 불어 닥친 오일쇼크 였어요. 오일쇼크로 인해 유조선을 주문했던 사람들이 배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취소가 잇따랐지요.

 

현대조선이 만든배 가운데 3척이 울산 앞바다에 그냥 떠 있었어요. 그 중 1척은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리바노스가 주문한 유조선 이었지요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현대조선으로서는 휘청할 수 밖게 없었지요.

 

그러나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을 생각 했어요. ‘만들어 놓은 배를 가져가지 않으면 우리가 그 배를 갖고 새로운 사업을 하면 되것 아니냐.’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지요.

 

19763월 인도하지 않은 초대형 유조선 3척을 가지고 아세아상선을 설립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기름을 우리가 우리 유조선으로 운반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 기름을 실어 날던 외국 선박회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지요. 아세아상선에 수송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1400만 달러를 요구했어요.

 

그렇지만 정주영은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지 내가 택시를 타다가 자가용을 구입했는데, 택시회사에 돈을 주어야 하나? 그 동안은 우리한테 유조선이 없어서 자기네 배를 택시처럼 돈 주고 빌려 쓴 것인데, 우리가 배를 만들고 우리배로 우리기름을 운반하겠다는데 돈을 달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였지요.

 

정주영은 뚝심으로 버텄지요. 8개월을 버텼더니 3백만달러로 떨어졌어요. 그래도 옴싹달싹 안하고 버텼지요. 결국에는 10원도 안주고 우리기름을 현대 아세아상선에서 운송할 수 있었어요. 거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뚝심도 큰 힘이 되었다 하네요.

 

대통령의 신임 - 고속도로 준공(펌)

 

그렇게 출발했던 아세아상선은 지금 현대상선이 되었지요. 오일쇼크로 몹시도 정주영을 힘들게 했던 현대조선은 요즘 세계적인 현대중공업이 되었구요.

 

이것저것 구실을 붙여 다 만들어진 유조선을 안 찾아가려고 떼를 썼던 리바노스 그러나 정주영은 그를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하네요. 어쨌든 황량한 모래벌판 사진 한 장을 보고 배를 주문해 주었던 지난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2007525일 현대중공업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됐어요.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우리해군은 미군이 폐기 처리한 구축함을 가져다 페인트칠을 해서 쓰고 있었지요.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봐요. 이날 진수식에서 정몽준 회장은 500원 짜리 거북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그리워했다 하네요.

 

지금 전 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 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 중 4척이 한국산이라 하지요.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에 싼 가격으로 수주를 맏긴 배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있지요.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만들 도크가 없다 하네요.

 

길이 200m15층 높이의 배를 땅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 가 띄우는 데,이런 신공법은 한국 조선소에서만 하고 있으며 선박 엔진 또한 세계최고라 하지요.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은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어요. 이들이 세계 선박 엔진시장의 45%를 싹쓸이하고 있다 하네요.

 

지금 세계의 선주(船主)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모래바람이 휘날리던 미포만은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아졌지요. 그곳에선 3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가 한척씩 쏟아지고 있어요.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 낸다고 하지요 세계 조선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하네요. 한척의 배를 만든 이익금으로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정주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 했나 봐요.

 

그리고 또 1984" 정주영 유조선공법"이라는 내용으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지요. 당시 충남 서산간척사업 A지구 매립공사는 6.4를 연결함으로써 완공되는 사업이었지요.

 

이 사업으로 생기는 육지는 여의도 면적의 43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땅이었어요. 바다를 막아 옥토를 만드는 국가사업에 마지막 물막이 공사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드나드는 물의 양이 34천만 톤, 밀물시의 유속은 초당 8미터에 달해 20톤에 달하는 돌망태를 넣어도 그대로 물에 휩쓸려갔지요.

 

흔히 최종 물막이 공법은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로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가는 점고식(漸高式)또 덤프트럭 등 육상장비를 이용해 점차 구간을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漸縮式) 그리고 이들 두 방법을 같이 쓰는 병행식 등이 있어요.

 

하지만 서산 간척지 공사는 빠른 유속으로 인하여 통상적인 공사방법으로는 엄청난 비용과 작업기간이 오래 동안 소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지요. 이때 정주영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대형 유조선으로 조수를 막아 놓고 물막이 공사를 하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어요.

 

물막이 1(펌)

 

물막이 2(펌)

 

이 획기적인 공법의 사용으로 계획공기 45개월 가운데 36개월을 단축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방조제를 쌓는 성과를 올렸으며, 280억 원의 경비도 절약함으로써 전세계을 놀라게 했지요.

 

정말 정주영 다운 배포요 정주영 다운 공법 이었지요.

이 기술은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유조선공법"으로 명명되어,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이제 우리나라 경제계의 큰 별은 가고 없어요. 2001321일 당신이 설립한 서울아산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요.

 

  50세 때의 정주영(펌)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을 때 미국 CNN 방송이 한 시간 이상을 특집으로 방송했는데, 이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호는 아산(峨山)이며 19151125일에 농부인 아버지 정봉식(鄭捧植)과 어머니 한성실(韓成實)62녀중 장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지요. 8세에 통천송전소학교(通川松田小學敎)에 입학하여 13세에 졸업하였으며,

그와 함께 졸업한 동창생은 27. 그의 정식 최종학력은 소학교 졸업이 유일하지요.

 

 

매일 아침 함께 식사하는 정주영 일가(펌)

 

20005월에 현대명예회장직에서 물려났고, 1987년 제1회 한국경영대상,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8IOC훈장과 노르웨이 왕실훈장을 수상하였으며, 사후에는 20015월 제5회 만해상 평화상이 추서되었지요.

 

이후 5년 뒤인 200611월에 미국 타임(TIME)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에 선정되었으며, 2008DMZ 평화상 대상이 특별 추서되었지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하면 된다는 신화를 창조하신 거인 정주영 !!

대한민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경제대인 이지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 했어요. 우리는 그를 잊지 말아야 하고, 그는 위인 중에 위인, 거인 중에 거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산적: 조동렬(일송) *-

 

 

 

(2015. 02.18.)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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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구르면서 '인혁당 사건' 때 부친을 떠나보낸 친구는 개인적인 恨은 간직해도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1965년생인 정청래 의원은 이승만 정권 때는 세상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탄압받을 나이가 안 됐다. 그런 개인적 체험 없이도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니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에 비유하는 걸 보면 그의 능력은 한쪽으로 몹시 발달했다.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를 히틀러처럼 보는 시각은 그쪽에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몸으로는 '국민 통합을 위해' 참배는 했지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는 쉽지 않은 참배를 마친 뒤 이런 소감을 밝혔다.

    "진정한 국민 통합은 '역사(歷史)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또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원론적인 얘기를 했을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으라는 소리 같기도 하고, 분명히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반평생 밥벌이해온 나는 대체 이 말이 해독(解讀)이 안 됐다.

    우선 '역사의 가해자'는 누굴 지칭하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설마 아버지의 유산(遺産) 때문에 그가 '역사의 가해자'라는 유치한 논리를 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역사의 가해자'는 이승만·박정희가 유력하다. 무덤 속 그들이 어떻게 반성하고 무슨 수로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희생된 피해자들은 있었다. 문 대표도 대학에 다닐 때 투옥된 적이 있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깔리고 피를 묻혔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당시 대통령이 잔혹한 가해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살았던 대다수 국민과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라고 부르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에서나 할 소리가 아닌가. 시대마다 당면한 과제가 있는 법이다. 나라를 끌고 가는 철학과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공과(功過)가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에게는 '건국' '자유민주체제 편입' '근대화와 경제 부흥'의 혜택이 더 컸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 오늘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민주화'가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 잣대에 맞지 않으면 역사의 가해자로 모는 것은 오만과 독선이다. 32년 뒤 재심(再審)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1975년)으로 부친을 떠나보낸 친구는 개인적인 한(恨)은 간직해도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시절 1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한 보수 논객 류근일씨나 시인 김지하씨도 그렇게 사적으로만 그 시대와 역사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 문 대표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을 말하는가. 그 국민은 '역사의 가해자' 이승만을 새롭게 발견하고 "해방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재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국민은 또 다른 '역사의 가해자' 박정희를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왔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역사의 가해자'에 대한 다수 국민의 판단이 그릇된 것일까, 아니면 문 대표나 그쪽 진영에서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처럼 과거 시절의 개념으로 현재의 정국을 운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금의 한쪽 잣대로 과거 시절을 재단하는 것도 참고 봐주기 어렵다.

    대통령 묘역(墓域) 참배는 역사와의 대화(對話)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사자(死者)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있다. 역대 대통령이 생전에 매달렸을 국가적 고민을 기억하며 지금의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깊은 인식과 각성에서 문 대표가 참배에 나섰을까. 검은 양복에 엄숙한 표정으로 이·박 전 대통령 묘역에 섰지만 그 생각은 '역사의 가해자'에 머물렀다. 당초 의도한 대로 중도층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주위의 비판이 거세거나 여론이 나빠지면 그는 언제든지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한낱 정청래 의원의 퍼붓는 발언에도 그가 꼼짝 못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지도자급 정치인이 높은 자리를 맡으면 바로 다음날 현충원에 가고, 어느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했느니 안 했느니로 잡음과 분열을 만드는 장면은 일상의 코미디처럼 됐다. 참배한들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덤 속 사자들이 그런 참배를 원했을 리도 없다. 차라리 자신의 부모 묘소나 납골당에 가서 효자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을 듯하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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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화의 세 영웅(펌)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국가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박정희는 국가목표 설정을 위해 심사숙고 한다.

 

이승만 정권 때는 남북통일이 지상과제였고, 4.19 이후의 장면내각 때는 잇따른 내각개편과 혼란으로 국가목표를 논할 여유도 없었겠지만, 독재와 부정 부패에 항거해 궐기한 4.19를 염두에 둔다면, 국가의 목표로 민주화를 거론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도 못 되어, 카메룬, 수단, 케냐 등과 함께 최빈국에 속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남북통일이나, 민주화가 국가의 당면한 정책 목표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여 박정희는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국가의 당면 목표로 설정한다. 그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바탕으로 강력한 관주도형의 경제운용을 하는 한편, ‘잘 살아보세.’ 구호를 앞세운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식개혁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하고자 한다.

 

1962년 이후 한국은 30여 년 동안, 년 평균 9%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짧은 기간 안에 훌륭하게 산업화를 이룬다. 이런 한국의 유례가 없는 발전상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압축 성장’, ‘한강변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물론 이런 기적은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적극 참여한 온 국민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방향을 정하고,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능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여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의 3인을 대한민국 산업화의 세 영웅으로 꼽아 칭송하는 이유이고, 동시대에 이런 세 영웅이 배출된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융성하게 하고자 하는 신의 뜻이라 할 수 있겠다.

 

서론이 길어 졌지만, 시인 일송 조동렬 교수가 흡사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정주영을 소개한 글이 있어 나누어 여기에 모셔 싣는다.

 

아산 정주영(펌)

 

정주영과 거북선 지폐 - 일송 조동렬

 

1970년대 초 어느 날 밤 정주영은 청와대에 뒤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었어요. 무거운 침묵이 오래 동안 흘렀지요. 박 대통령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더니 정주영에게도 한대를 권했어요. 정주영은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날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원래 과묵한 박 대통령이지만 이날은 더욱 말이 없이 시간만 흘렀어요. 정주영은 박 대통령이 불을 붙여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는데, 드디어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를 해요?

어떻게 하든 해내야지..

임자는 하면 된다는 불굴의 투사 아니오?”

 

실은 정주영도 조선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요. 그러나 그건 제반 여건상 지금은 아니고 나중 일이었어요. 하지만 대통령은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었지요.

 

이유는 있었어요. 곧 포항제철이 완성되는 때였지요.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산업이 필요했던 거지요. 당시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먼저 삼성 이병철에게 조선 사업을 권유했어요. 정주영은 삼성 이병철에게 거절당한 뒤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결국 정주영은 그날 박대통령에게 승낙을 하고 말았어요.

 

"각하의 뜻에 따라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심 했어요.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못할 것도 없지. 그까짓 철판으로 만든 큰 탱크를 바다에 띠우고 동력으로 달리는 게 배지. . 배가 별거야.’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치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정주영의 특기가 발휘 되었지요.

 

정주영은 조선업자로 조선소 건설을 생각한 게 아니라 건설업자로서 조선소 건설을 생각했어요. 배를 큰 탱크로 생각하고 정유공장 세울 때처럼 도면대로 철판을 잘라서 용접을 하면 되고, 배의 내부 기계는 건물에 장치를 설계대로 앉히듯이 도면대로 제자리에 설치하면 된다고 여긴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조선소를 지을만한 돈이 없었어요. 대형 조선소를 지으려면 차관을 들여와야 하는데 해외에서 차관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지요. 그래서 일본에도 가고, 미국에서 갔어요. 그렇지만 아무도 정주영을 상대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미친놈 취급만 당했지요.

 

너희 같은 후진국에서 무슨 몇 십만 톤의 조선소를 지을 수 있냐?”는 식이었어요. 정주영은 약이 올랐지요. 그때부터 하면. 된다는 모험심이 발동 했어요. ‘안된다고?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

 

당장 필요한건 돈이었어요. 해외에서 차관을 얻으려면 3번에 걸친 관문을 뛰어 넘어야 했지요. 일본과 미국에서 외면당한 정주영은 영국 은행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어요.

 

그러나 영국은행 버클레이즈와 협상을 벌였으나 신통한 반응을 얻을 수 없었어요. 돈을 빌리기 위해선 영국식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정주영은 1971년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에 사업계획서와 추천서를 의뢰했어요. 타당성 있는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있어야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얼마 후 사업계획서는 만들어 졌지만 추천서는 해줄 수 없다는 거였지요.

 

정주영은 영국의 유명한 조선회사 A&P애플도어 회장의 추천서를 받기위해 런던으로 날아갔어요. 그에게는 조선소를 지을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모래사장을 찍은 흑백사진이 전부였지요.

 

미포만 항공사진(펌)

 

울산 미포만의 어제와 오늘(펌)

 

  런던에 도착하여 일주일 만에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어렵사리 만났어요. 그러나 롱바톰 회장은 비관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지요.

 

아직 배를 사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고 또 현대건설의 상환능력과 잠재력도 믿음직스럽지 않아 힘들 것 같다.” 는 말이었지요.

 

그럼,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도 안 됩니까? " 그러자 그는

 

"한국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이었지요 이때 궁하면 통한다는 정주영식 기지가 발동했어요. 정주영은 문득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어요. 지폐 그림은 바로 거북선이었지요.

 

정주영은 주머니에서 거북선 그림의 지폐를 꺼내 테이블위에 펴놓으며,

 

이걸 잘 보시오. 이 우리나라 지폐에 그려진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인데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당신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소.”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을 물리쳤지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다는 말이지요."

 

롱바톰 회장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지폐를 들고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앞면에는 한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있고 뒷면에는 바다에 떠있는 배가 그려져 있었지요. 그 모습이 거북이와 많이 닮았어요.

 

 

500원 짜리 지폐(펌)

 

"정말 당신네 선조들이 실제로 이 배를 만들어 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

 

"그렇고말고요!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만든 배입니다. 한국은 그런 대단한 역사와 두뇌를 가진 나라이지요. 불행히도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로 인해 좋은 아이디어가 묻혀 있었지만 잠재력만은 충분한 나라입니다.“

 

우리 현대도 자금만 확보된다면 훌륭한 조선소와 최고의 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회장님!! 버클레이 은행에 추천서를 보내주십시오.”

 

정주영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어요. 롱바톰 회장은 잠시 생각한 뒤 지폐를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지요.

 

"당신은 당신네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롱바톰 회장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어요.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이 정말 좋은 배를 만들기를 응원하겠소.'

 

그러면서 롱바톰 회장은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축하 악수를 청하고 있었지요. 수많은 프레젠테이션과 완벽하게 만든 보고서에도 'NO'를 외쳤던 롱바톰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500원짜리 지폐 한 장 이었지만 이는 정주영의 번뜩이는 기지의 산물이었지요.

 

그날 롱바톰 회장은 현대건설이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시공하고 있고 발전계통이나 정유공장 건설에 풍부한 경험도 있어 대형조선소를 지어 큰 배를 만들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버클레이즈 은행에 보내주었어요. 정주영의 기지로 첫 번째 관문이 통과되는 순간 이었지요.

 

 

(2015. 02. 10)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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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금년 11일을 기해 '독도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외교부 독도 동영상은 독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과정,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 우리 독도 영토주권의 근거 등을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설명하고자 제작하였습니다.

 

 

외교부 독도(http://dokdo.mofa.go.kr/kor/) 검색해 보시면 독도동영상외에도, ‘독도 바로 알기에 독도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래에 위 동영상의 영어판과 일본어판을 모셔다 싣는다.

 

Dokdo, Beautiful Island of Korea

 

 

大韓民国しい領土独島

 

(2015. 01.05.)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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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


청춘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다.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은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와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살의 청년보다

육십 노인이 더 청춘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이하 생략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 78세 때 쓴 시다. 원문은 5소절로 이루어져 있으나, 앞의 2소절만 옮긴다.

 

하지만 원문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원문 전체를 싣는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조금씩 뉘앙스의 차이를 보이는, 서너 가지 번역본을 만나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원본 전문



(201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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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기적

모셔온 글 2015. 1. 6. 16:45

 70년의 기적

기적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모세의 기적을 믿을 것이다. 지팡이 하나로 바다를 가르고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다는 얘기는 과학자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해나 남해에도 매년 몇 차례씩 바닷길이 열리는 걸 보면서 나는 혹시 모세가 살던 시절에 홍해의 수심이 특별히 낮았던 것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만일 모세가 기원전 2000년경 실존했던 인물이라면 해양지질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한 '기적'이다.

나는 모세의 기적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려운 기적을 하나 알고 있다. 지질하게 가진 것도 없고 변변하게 물려받은 것도 없는데 동족상쟁의 전쟁까지 겪으며 거의 완벽하게 쑥대밭이 되었다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어느 한 나라의 얘기를 알고 있다. 그 나라 어디든 시커먼 액체가 콸콸 용솟음치는가? 그 나라 전국 곳곳에 조상들이 금괴라도 파묻어 뒀다던가? 그 나라가 기적을 일구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그저 매일 빈둥빈둥 놀았나 보다. 그 나라 국민만 열심히 일하고 다른 나라 국민은 죄다 뒷짐 지고 구경만 한 모양이다.

2015년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민주화의 아픔과 IMF 사태 등 온갖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동안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1000억 배 이상 증가했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 이보다 더 엄청난 기적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11년이나 살았던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대니얼 튜더는 대한민국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며 아쉬워한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스스로를 믿고 한번 자신 있게 살아보자. 지나친 걱정은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마저 앗아간다. 우리 모두 스스로 자기 어깨를 한번 도닥여주자. 양팔을 크게 벌려 스스로를 꼭 껴안아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나는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국민이라고.


필자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이대석좌교수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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