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의 기적
기적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모세의 기적을 믿을 것이다. 지팡이 하나로 바다를 가르고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다는 얘기는 과학자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해나 남해에도 매년 몇 차례씩 바닷길이 열리는 걸 보면서 나는 혹시 모세가 살던 시절에 홍해의 수심이 특별히 낮았던 것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만일 모세가 기원전 2000년경 실존했던 인물이라면 해양지질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한 '기적'이다.
나는 모세의 기적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려운 기적을 하나 알고 있다. 지질하게 가진 것도 없고 변변하게 물려받은 것도 없는데 동족상쟁의 전쟁까지 겪으며 거의 완벽하게 쑥대밭이 되었다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어느 한 나라의 얘기를 알고 있다. 그 나라 어디든 시커먼 액체가 콸콸 용솟음치는가? 그 나라 전국 곳곳에 조상들이 금괴라도 파묻어 뒀다던가? 그 나라가 기적을 일구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그저 매일 빈둥빈둥 놀았나 보다. 그 나라 국민만 열심히 일하고 다른 나라 국민은 죄다 뒷짐 지고 구경만 한 모양이다.
2015년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민주화의 아픔과 IMF 사태 등 온갖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동안 우리의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1000억 배 이상 증가했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 이보다 더 엄청난 기적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11년이나 살았던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대니얼 튜더는 대한민국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며 아쉬워한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스스로를 믿고 한번 자신 있게 살아보자. 지나친 걱정은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마저 앗아간다. 우리 모두 스스로 자기 어깨를 한번 도닥여주자. 양팔을 크게 벌려 스스로를 꼭 껴안아주자. 그리고 말해주자. 나는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국민이라고.
필자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이대석좌교수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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