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구르면서 '인혁당 사건' 때 부친을 떠나보낸 친구는 개인적인 恨은 간직해도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1965년생인 정청래 의원은 이승만 정권 때는 세상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탄압받을 나이가 안 됐다. 그런 개인적 체험 없이도 '유대인의 히틀러 묘소 참배'니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절하는 것'에 비유하는 걸 보면 그의 능력은 한쪽으로 몹시 발달했다.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를 히틀러처럼 보는 시각은 그쪽에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몸으로는 '국민 통합을 위해' 참배는 했지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는 쉽지 않은 참배를 마친 뒤 이런 소감을 밝혔다.
"진정한 국민 통합은 '역사(歷史)의 가해자' 측에서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또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원론적인 얘기를 했을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으라는 소리 같기도 하고, 분명히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사에서 반평생 밥벌이해온 나는 대체 이 말이 해독(解讀)이 안 됐다.
우선 '역사의 가해자'는 누굴 지칭하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설마 아버지의 유산(遺産) 때문에 그가 '역사의 가해자'라는 유치한 논리를 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역사의 가해자'는 이승만·박정희가 유력하다. 무덤 속 그들이 어떻게 반성하고 무슨 수로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희생된 피해자들은 있었다. 문 대표도 대학에 다닐 때 투옥된 적이 있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깔리고 피를 묻혔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당시 대통령이 잔혹한 가해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살았던 대다수 국민과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라고 부르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에서나 할 소리가 아닌가. 시대마다 당면한 과제가 있는 법이다. 나라를 끌고 가는 철학과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공과(功過)가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에게는 '건국' '자유민주체제 편입' '근대화와 경제 부흥'의 혜택이 더 컸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 오늘의 기반이 만들어졌다.
'민주화'가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 잣대에 맞지 않으면 역사의 가해자로 모는 것은 오만과 독선이다. 32년 뒤 재심(再審)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1975년)으로 부친을 떠나보낸 친구는 개인적인 한(恨)은 간직해도 박정희를 역사의 가해자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시절 1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한 보수 논객 류근일씨나 시인 김지하씨도 그렇게 사적으로만 그 시대와 역사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 문 대표가 "역사의 가해자 측에서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 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을 말하는가. 그 국민은 '역사의 가해자' 이승만을 새롭게 발견하고 "해방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그가 없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재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국민은 또 다른 '역사의 가해자' 박정희를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아 왔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역사의 가해자'에 대한 다수 국민의 판단이 그릇된 것일까, 아니면 문 대표나 그쪽 진영에서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처럼 과거 시절의 개념으로 현재의 정국을 운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금의 한쪽 잣대로 과거 시절을 재단하는 것도 참고 봐주기 어렵다.
대통령 묘역(墓域) 참배는 역사와의 대화(對話)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사자(死者)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있다. 역대 대통령이 생전에 매달렸을 국가적 고민을 기억하며 지금의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깊은 인식과 각성에서 문 대표가 참배에 나섰을까. 검은 양복에 엄숙한 표정으로 이·박 전 대통령 묘역에 섰지만 그 생각은 '역사의 가해자'에 머물렀다. 당초 의도한 대로 중도층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주위의 비판이 거세거나 여론이 나빠지면 그는 언제든지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한낱 정청래 의원의 퍼붓는 발언에도 그가 꼼짝 못하는 것도 그런 이치다.
지도자급 정치인이 높은 자리를 맡으면 바로 다음날 현충원에 가고, 어느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했느니 안 했느니로 잡음과 분열을 만드는 장면은 일상의 코미디처럼 됐다. 참배한들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덤 속 사자들이 그런 참배를 원했을 리도 없다. 차라리 자신의 부모 묘소나 납골당에 가서 효자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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