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사진 크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불침함처럼 당당한 모습의 향로봉

 


 향로봉의 유래


백두대간 남녘땅의 최북단인 향로봉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진부령을 대간종점으로 삼고, 2005년 3월, 진부령 표지석 앞에서 졸업 기념사진을 찍던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 향로봉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능선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하고, 지루한 군사도로를 따라 정해진 코스로 향로봉에 올랐다가 똑 같은 코스를 되밟아 하산해야하는 곳을 밤잠을 설쳐가며 갈 까닭이 있겠느냐는 비판의 소리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마산에서 진부령으로 내려오면서 설원너머로 본 향로봉의 신비로운 모습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어, 여러 가지 제약은 있겠지만, 언제고 갈 수만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마침 산정산악회에서 향로봉을 간다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신청을 한다.  

진부령으로 내려서면서 보았던 눈 덮인 향로봉


2008년 9월 5일(금)

산정산악회의 안내로 9월 5일, 무박으로『진부령-군사도로-향로봉-군사도로-진부령』구간을 걷는다. 산행거리는 약 32Km, 22시 30분경,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3시 경, 진부령에 도착하여 입산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차내에서 수면을 취한다.


모처럼 3차대 대원들을 만나 같이 산행을 한다. 백두대간을 함께했던 그리운 얼굴들이다. 여왕봉, 목련, 다이아, 예원, 경담, 우정, 지헌, 그리고 나리, 두레골 등 낮 익은 산정산악회 대원들이 무척 반갑다. 새벽의 싱그러움 속에서 목련님의 설명으로 길가에 지천으로 핀 들꽃들을 만나보고,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우정대원의 입담에 시간이 3~4년 전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지루하다는 군사도로가 우리들에게는 지루하기는 커녕 정겹기만 하다.  

고산에서나 볼 수 있다는 금강초롱이 지천이다.

 

미역취

 

투구꽃

 

산 아래는 노염(老炎)으로, 한낮에는 무더위에 시달리겠지만, 1,000m가 넘는 고산지대는 이미 초가을이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상큼하고 밝게 내려 쪼이는 햇볕에서 더 이상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유난히 파란 북녘하늘과 아련하게 보이는 금강산, 구름 위에 떠있는 마산, 신선봉, 상봉과 그 뒤로 보이는 황철봉, 그리고 공룡능선을 지나 대청봉에 이르는 설악능선은 잠시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정녕 축복 받은 날이다.

설악능선 파노라마

 

오늘의 산행 기록은 아래와 같다.

『(05:52) 을지부대 초소 통과-(05:54) 칠섭로 돌표지-(06:31) 50번 전신주 앞-(06:40) 70번 전신주-(07:12) 123번 전신주-(07:20) 칠전봉 갈림길-(07:21) 향로봉 사수 입간판-(07:31) 표지기 커튼-(07:49) 향로로 돌표지-(07:58~08:14) 공터/아침식사-(08;32) 고 김칠섭 중령 추모비/향로봉 쉼터-(08:40) 300번 전신주-(08:51) 316번 전신주-(09:05~09:46) 중간 인원점검-(10:42) 헬기장/공터-(10:44~10:50) 향로봉 정상-(10:52~11;16) 중식/하산-(12:47) 향로봉 쉼터-(13:13) 칠섭로 돌표지-(13:42) 향로봉 방문 환영 팻말-(14:18) 49번 전신주-(14:47) 부대 앞 초소/진부령』식사 40분, 인원점검 약 40분 포함, 총 8시간 55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군인들이 야간훈련을 마치고 귀대할 때까지 부대 앞에서 기다린다. 새벽이라 쌀쌀하다. 대원들 모두가 재킷을 걸치고 있는 모습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윽고 군인들 대열 뒤로 앰블런스가 모습을 보이고, 5시 52분 입산허가가 떨어진다.

부대 앞 초소 통과


곧이어 칠섭로 돌 표지와 안내판을 지난다. '칠섭로'라는 도로명은 원래는 칠절봉(1,172m)에서 따온 '칠절로'였었는데, 2004년 4월 작전 중, 짙은 안개 속에서 고압선에 감전된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고 김칠섭 중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칠섭로'로 새롭게 명명 했다고 한다.  

칠섭로 돌 표지와 안내문


군사도로를 따라 오른다. 진부령(529m)과 칠절봉(1172m) 간의 고도차가 600m에 가깝지만 능선사면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에서는 심한 오르막으로 느끼지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새벽하늘 아래 아직 잠이 덜 깬 마산이 모습을 보인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는 대원들

 

마산

 

6시 31분, 볼록거울이 있는 50번 전선주 앞을 지난다. 부대입구에서부터 향로봉까지 1번부터 480번 전신주가 약 30m간격으로 세워져 있어, 도로를 따라 움직이며 대강 거리계산을 할 수가 있다. 사야가 트이며 향로봉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능선 위에 우뚝 솟은 삼봉(995m)을 보고, 동쪽으로 구름이 띠처럼 걸려있는 마산(1,051.9m), 신선봉(1204m), 그리고 상봉(1239m)을 카메라에 담는다.  

50번 전신주 부근의 볼록거울

 

삼봉

 

마산(중앙), 신선봉, 상봉(우)


6시 43분, 70번 전신주를 지난다. 이어 40도 방향으로 46번 국도를 굽어보고, 오른쪽으로 전신주들이 열병(閱兵)하고 있는 가야할 군사도로를 우러른다. 이 부근 도로주변에 야생화가 특히 많다. 목련님의 강의가 시작되고, 우정대원이 수제자를 자처하자, 목련님은 시험을 보겠다며 겁을 준다. 시험 본다는데, 겁먹지 않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구해라! 천하의 우정대원도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복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재기 넘치는 지헌대원이 즉석에서 금강초롱, 마타리, 용담을 향로봉의 3대 야생화로 지정한다. 누가 이처럼 멋지고, 즐거운 군사도로를 지루하다 했는가

70번 전신주

 


칠절봉 가는 길


 

물봉선

 

까실쑥부쟁이

 

어수리


7시 12분, 123번 전신주를 지나자, 칠절봉이 정면에 우뚝한데 향로봉 가는 군사도로는 칠절봉을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하여 북쪽으로 향한다. 7시 21분, '충성! 향로봉은 반드시 사수하겠습니다.' 라는 향로봉 대대 입간판을 지나면서, 9부 능선을 자르며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칠절봉 갈림길


 

향로봉 사수 서약 입간판

 

향로봉 가는 길


신선봉 왼쪽에 흰 구름을 배경으로 죽변봉(680.9m)의 잘 생긴 모습이 시선을 끈다. 7시 31분, 도로가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곳에 표지기들이 커튼처럼 걸려있고, 그 아래는 야생화가 지천인데, 이런 풍광에 매료된 대원 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군사도로 변에는 전신주들의 열병식이 진행되고, 그 뒤로 멀리 황철봉(1391m)이 우뚝하다.  

죽변봉

 

표지기, 야생화 그리고 찍사

 

황철봉


7시 49분, 향로로 돌표지(이면에는 칠섭로라고 음각)를 지난다. 칠절봉 능선분기를 지나 북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향로봉 능선이 시작되는 곳인 모양이다. 오른쪽으로 신선봉과 상봉이 훨씬 가깝게 보인다. 7시 58분, 넓은 공터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대원들과 합류하여, 산악회가 나누어준 시루떡과 두유로 아침식사를 한다.  

향로로

 

가까운 신선봉과 상봉

 

아침식사를 한 도로변 공터


약 16분 만에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다시 군사도로를 따라 걷는다. 8시 32분, 고 김칠섭 중령의 추모비와 건너편의 향로봉 쉼터를 지난다. 8시 45분경, 전망 좋은 313번에서 316번 전신주 사이를 지나며 설악능선을 한눈으로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과 장쾌함에 넋을 잃는다.  

고 김칠섭 중령의 추모비

 

향로봉 쉼터


136번 전신주를 지나자, 도로는 왼쪽으로 굽어지며 정면에 동굴봉(1140m)과 그 위의 군사시설이,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 향로봉이 불침함(不沈艦) 같은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9시 5분, 부대정문 초소 앞에 도착하여 중간인원 점검을 위해 후미를 기다린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자 대원들은 4열 종대를 이룬 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신고한다.  

136번 전신주

 

동굴봉


 

향로봉 정상

 

인원 점검


명단작성과 인원점검을 마친 군인이 부대로 들어가 소대장에게 보고를 한 모양이다. 사병 두 명을 대동한 소대장이 나타나 향로봉 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인솔사병을 따라 단체로 향로봉에 오르고, 군사시설, 초소, 군인들의 촬영을 금하며, 아울러 버섯, 나물 등의 채취행위는 즉각 하산 조치하여 처벌하니 특히 유의하라고 주의사항을 열거한다. 소대장의 이야기를 박수로 화답한 대원들은 4열 종대를 유지한 채 향로봉으로 향한다. 이런 인원 파악에 40여분이 소요된다. 선두로 올라 온 대원들은 1 시간 반을 기다렸다고 툴툴댄다.(딱한 양반들, 누가 아침도 굶은 채 뛰라고 시켰나?)

파란하늘, 길가의 야생화, 그리고 상큼한 공기냄새-멋진 트래킹 코스다.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던 삼봉이 지금은 바로 눈앞에 있고, 그 뒤로 동해바다가 하늘에 둥실 떠 있다. 삼봉 오른쪽으로 한 가닥 구름이 신선봉 허리에 걸려 있고,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능선이 장엄한데, 향로봉 능선에 우뚝 솟은 동굴봉이 지척이다. 실로 멋지고 황홀한 조망이다. 10시 44분, 삼각점이 있는 향로봉 정상에 오른다.

삼봉과 그 뒤로 동해

 

설악능선과 동굴봉

 

공터에서 본 향로봉 정상

 

삼각점


정상에서 향로봉의 유래를 카메라에 담고, 군인의 설명을 들으며 북녘 땅을 바라본다. 군인은 왼쪽으로 격전지였던 편치 볼을 가리키고, 오른쪽이 금강산이라고 알려준다. 북녘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이어 북한 땅을 배경으로 돌탑과 향로를 카메라에 담는데 눈치 없는 소금장수가 방해를 한다. 청동향로 뒤에서 목련, 예원, 우정이 포즈를 잡는다.

유난히 파란 북녘하늘


향로봉 정상


헬기장인 너른 공터로 다시 내려와 기념비석 세개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 중 하나, 옛 전장 터를 다시 찾은 제3군단장의 영탄의 소리가 애잔하다. 이어 3차대가 펼치고 있는 점심상으로 끼어든다. 비록 덕암의 족발은 빠졌지만 언제 보아도 풍성한 3차대의 식탁이다.

향로봉 진지공사기념비

 

아! 향로봉


11시 16분, 식사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하는 지헌부부의 뒷모습이 다정하다. 하산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올라올 때 인원 점검을 했던 부대 앞 초소에서 개별적으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록하고 바로 통과한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풍광들을 다시 음미하고, 향로봉 능선이 만들어 주는 그늘을 따라, 길가의 아름다운 야생화에 눈길을 주며, 유유히 걸어 내린다.

하산하는 지헌부부

 

산오이풀

 

오리방풀

 

촛대승마


하산 1/3 지점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군인 찦차가 자나간다. 차 안에 여왕봉, 목련, 예원의 모습이 보인다. 운 좋게 하산하는 군용 찦차에 편승한 모양이다. 끝가지 씩씩하게 걸어 내려오던 다이이님이 나중에 그 소리를 듣고는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잠시라도 작전 중인 군인 찦차를 한번 꼭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49번 전신주에 이른다. 다이아님의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다.

 

2시 47분, 진부령에 내려서서 낮 익은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고, 뒤풀이 장소인 식당으로 향한다. 정 대장님이 하산하는 대원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한다. 식당 뒤에서 차가운 지하수로 땀을 씻어내고, 뒤풀이 자리로 끼어든다. 맥주로 갈증을 풀고 시원한 황태 해장국에 밥을 말아 시장기를 달랜다.

낮 익은 진부령

 

하산하는 대원들을 맞이하는 정 대장님


이윽고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여 식사를 마치자 버스는 4시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귀경버스에 앉아 오늘 산행을 반추하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언젠가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날, 군인들이 힘들여 개설한 군사도로는 말끔하게 포장되고, 많은 관광객들이 승용차로 옛 격전지인 향로봉을 찾을 것이다.

 

한편 대간꾼들은 오늘 우리들이 걷지 못했던 능선을 타고 향로봉에 오르고,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 대열 속에 3차대 대원들과 함께 걷는 내 모습을 넣어보며, 행복한 잠속으로 빠져든다.

 


(2008. 9. 7.)














뻐꾸기 at 06/24/2010 12:44 pm comment

그러고 보니 그날 저와 같이 산행을 하셨네요. 반갑습니다.

at 04/24/2010 08:09 am comment

안녕하십니까 우림님의 블록 중에 제마음에 드는 항복있으면 댓글적고 스크랩해도 되는지요? 저작권침해 문제 때문입니다 그럼 건강관리에 유의 하시고 고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림 at 04/24/2010 08:39 am reply

안녕하세요? 마음에 드시는 것 있으면 스크랩하세요. 저작권문제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at 04/10/2010 03:24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at 04/08/2010 03:07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감사하며 담아갑니다 우림님 건강관리에 유의하시고 고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at 03/16/2010 04:54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저는 산을 좋아합니다 형편이 되면 산행도 해보고싶습니다 감사하며 담아갑니다 고운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at 03/08/2010 04:11 am comment

꼭한번 가 보고싶어집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at 03/07/2010 12:52 pm comment

안녕하십니까 우림님 우림님의 블로그에서제 마음에 드는 내용있으면 댓글적고 담아가도 되는지요? 요즘 저작권침해 문제 때문니다 전에는 허락해 주셨는데 아직도 유효한지요?

우림 at 03/07/2010 09:35 pm reply

안녕하세요? 필요하시면 주저마시고 담아가세요. 산행하시는데 도움이 된다면 영광이지요.

at 10/24/2009 05:22 am comment

귀한 사진 감사히 담아갑니다

at 02/07/2009 04:03 pm comment

우림님 ! 향로봉 진지공사 기념비 소개내용중에서 제피군단장이 잘못 기술되어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제피군단장의 피는 한글이 아니라 로마자 3입니다. 따라서 제3군단장으로 기록해야 맞습니다.

우림 at 10/24/2009 11:52 pm reply

잘못 읽었군요. 바로 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soohwan at 02/07/2009 03:24 pm comment

72 년 12월에 GOP 철수 하면서 전방에서 진부령으로 향로봉을 넘어 왔고 89년도에 사단 항공 대장으로 향로봉 헬기장에 수도 없이 오르 내렸던 기억이 선하네요.동절기 부식 추진을 헬기로 하던 생각도.... 오래전 잊혀지던 기억을 생각나게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좋은사진으로 좋은추억에 잠기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윤영진님 at 02/07/2009 01:39 pm comment

남한에도 금강산 있는데 북한 금강산 뭐하러 가는지...

Hwa at 02/07/2009 07:57 am comment

향로봉 정상의 사진을 여기서 볼 줄 몰랐습니다. 79-80년도에 향로봉 국방부에서 근무하던 사람입니다. 주목, 만삼주 등 그립네요. 8월에 입산하는데 올라가보니 전 부대원이 이미 동절기 잠바입고 김장을 벌써 끝냈더군요. 지금은 해외에서 살고 있지만 항상 그리운 고국산천입니다. 그 때는 언제나 하산하나 그것만 기다렸었는데 벌써 50중반이 되버린 나를 보면 세월은 진짜 유수지요. 아마 저하고 같은 근무지에서 생활했던 분들도 동감이겠지요.......

태호 at 02/07/2009 12:19 am comment

저도 산행을 많이 한사람인데 그곳은 못가본체 지금은 산행을 못하고 있어 많이 부럽읍니다

진호 at 12/06/2008 08:54 pm comment

오매나!!!!!!!!!!!!!!!!!!!!!!!!!!!!!!!!! ^*^ ~~~~~~~~~~~~~~~~~~~

at 12/06/2008 07:06 pm comment

잘봤습니다. 촬영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

이수범님 at 12/06/2008 06:07 pm comment

70년 중반에 벙커작업하다 다치고 시누크가 기상 이변으로 이북으로넘어가서 휴식을취햇던 둥글봉, 다시 보니 젊은 시절이 그립군요

중달 at 12/06/2008 05:46 pm comment

귀한 사진들 잘 보고갑니다.

dongyeol at 12/06/2008 04:53 pm comment

한번 가 보고싶은충동이 온몸에 전율 합니다. 길은모르지만 기회있을때 잘 아시는 분과함께 바짝 붙어 따라가겠습니다.

이승호님 at 12/06/2008 03:26 pm comment

86년에서 89년까지 이곳에 젊음를 뿌렸던 남자입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진부령상회 주인 딸래미도 지금쯤 나같이 40대초 내지 중반이 되었겠네요... 그립다, 향로봉, 보고싶다, 진부령......

병준 at 12/06/2008 01:42 pm comment

아 그리운 향로봉과 둥글봉... 2000년부터 2002년 3월까지 근무했던 향로봉 대대 예비역입니다. 아... 우리 천리마 중대원 모두 보고 싶군.... 그대로야 그대로...그렇게 그때는 여기가 싫더니... 매번 오르락 내리락 했던 전술도로며...

까치고개 at 12/06/2008 11:01 am comment

좋은 사진 감사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하늘코끼리 at 12/06/2008 10:54 am comment

다른나라 명산을 사진으로 봐도 우리나라 금강산 이 더 좋은것 같아요.

at 12/06/2008 10:50 am comment

777식구들 이글을 꼭 봤으면 좋겠네요. 같이 근무했던 분들 연락 주세요--- 아! 향로봉, 그리고 늘어선 전봇대--, 그 중간의 추보비(정--병장님)--, 추운날 얼마나 추우실까----( djfzkepddl@hanmail.net )

at 12/06/2008 10:42 am comment

아 그리운 향로봉!!! 위에 눈물이 납니다의 김?윤 병장님, 저는 88년부터 90년까지 역시 위의 안테나부대에서 컵라면을 나누어주던 육군병장 홍?진입니다.이런곳에서 흔적을 보니 반가워 어쩔줄 모르겠네요. 사진으로 향로봉을 보니 가슴이 턱 막힙니다. 연락 주세요 천안 두정고등학교에 있습니다.이런곳에 전화번호를 남기기는 그렇고--( djfzkepddl@hanmail.net )

전상림님 at 12/06/2008 04:03 am comment

잘 보았습니다. 89~91년에 근무했던 향로봉이 바로 생생 하군요.. 도로며, 건물, 산 능선이 모두 생각나네요. 꼭 다시 가보고 싶은곳 입니당 ^^*

at 12/06/2008 03:31 am comment

.

at 12/06/2008 12:43 am comment

10년전에 군생활한곳 당시 관할연대 수색중대원으로 근무하면서 수도없이 오르락내리락한곳이네요~ 제대하면 다시는 산에 가지안으리하고 생각하면서 다니던곳 이렇게 보니까 느낌이 색다르네요 잘보고 갑니다

재랑 at 12/05/2008 08:47 pm comment

향로봉... 이른아침 산허리를 포근하게 감싸고있는 새하얀 구름과책책이 늘어선 gop 점등 불빛. 짙은 어둠이 내리면 동해 어선들의 불빛과 밤하늘에 초롱초롱 맻혀있던 별들을 구분지울수 없는 신비한 마력이 피어나는 천지인의 조화를 이룬곳... 담배 한모금에 아스라이 부모님 생각났던... 06년 막내 입니다 ^^*

세계를 마당삼아 at 12/05/2008 07:05 pm comment

좋은곳 잘보고 갑니다.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군요.

kihong at 12/05/2008 06:54 pm comment

1994년도에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답글쓴이중 막내군요 새벽근무시 발목까지 깔리던 안개(구름)가 꼭 신선이 된것같은 느낌을 주곤 했는데 그런감회보다도 매번 행군으로 진부령 밑 대대까지 발까지며 걷던생각밖에 잘 기억에 남질 않는군요 기회가 된다면 그때 근무했던 중대막사, 훈련때 다니던 선점 분침호까지 한번 가보고 싶네요 여전히 향로봉 OP는 구질구질하네요 거기에 배치돼있던 캐리버 50 기관총 작동이 되려나 옛날생각 하면서 정말 잘보고 갑니다.

김성윤님 at 12/05/2008 05:47 pm comment

눈물이 납니다. 87년부터 89년까지 사진속 안테나가 서있는 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많이 좋아졌네요.. 그때만 해도.. 면회도 되지않는 오지 였는데.. 지금은 등산객이 출입이 가능한가 보네요.. 지금쯤 눈이 한참 내렸겠네요.. 그때는 눈만 봐도 지긋지긋 했는데.. 하지만 눈이 그친 후의 금강산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네요.. 그리고. 같이 웃고 울던 그 친구들. 모두 잘 있는지 궁금하네요.. 참.. 저는 그 기간에 저녁때마다 컵나면 배달하던.. 김?윤 입니다..

이을재 at 12/05/2008 05:33 pm comment

여긴 내청춘을 불살랏던 70년대초의 부대엿는데....다시보니 그시절 더덕과,머루,다래,주목나무바둑판,피나무바둑판사역..그당시 상납용주목나무바둑판은 어느놈한테 상납했는지?아름드리주목나무를 댕강댕강짤라다가 검열나온 상급부대넘들한테 줬는데...그당시상납받은넘들 그걸잘쓰나?지금아고보니 그주목나무는 수백년은 족히 넘으리라...암튼 진부령,칠절봉,향로봉다시보니 그립습니다..다시한번가보고싶네요..잘봤습니다

상도 at 12/05/2008 04:53 pm comment

부럽습니다. 어캐가나요???

복규 at 12/05/2008 03:30 pm comment

1975년 가을 부터 그곳에서 근무 했던 사람으로 감회가 새롭 습니다.겨울 푹설 ,이른 아침의 운해 참으로 아름다운 곳 이지요.그런데 탱크 모습은 보이질 않네여.

hs at 12/05/2008 03:20 pm comment

감개가 무량합니다 70년대말 향로봉 대대에 근무하면서 향로봉 정상의 PX 앞에 있는 3군단장의 "아 향로봉 남강은 옛산 옛물 ...,"하던 돌비가 아직도 건재하고 80년 1월 생일날 진부령에서 향로봉 20km 길을 무전병만 데리고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가 지켜왔던 향로봉이 후배들이 잘 지켜고 있군요

happyman at 12/05/2008 02:29 pm comment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85년부터 학군장교로 근무했던 향로봉... 11월초에 눈발이 날리며 5월까지 잔설이... 눈밭을 헤치면서 부식을 추진했던 기억,북풍한설에 동해안 오징어가 딸려올라 온다던 거센 바람 산더덕이며,취나물,곰취... 다시 가서 생활해 보고 싶네요 다시한번 아름답고 소중한 사진에 감사드립니다!!

hong at 12/05/2008 01:53 pm comment

아~!감개 무량합니다. 1975년도에 그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옛 건물은 간데없어보이나, 안테나며, 주변 모습들은 예전 그대로이군요. 너무도 아름다운 그 절경에 빠져 18개월, 생 억지를 쓰며 근무하고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조석으로 해무가 펼치는 황홀한 풍경들이 눈에 아련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

순옥 at 12/05/2008 11:48 am comment

꼭한번 가보고 싶네여..잘보구 갑니다.. 발길이 머무느 곳 http://dcamp.co.kr/bbs/zboard.php?id=good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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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山經表)에서는 우리나라 산을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체계화하였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워 온 지질구조에 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산이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현상을 관찰하여, 이를 체계화한 것이다.


실제로 대간을 종주하면서 산맥에 의해 나누어진 여러 지방의 말들, 생활모습 등이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하고, 우리 선조들의 무한한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백두산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1,625Km이고, 현재 남한에서 종주 할 수 있는 구간인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640Km~690Km에 이른다고 한다. 도상 거리가 이러니, 고도를 감안한 실제거리, 그리고 들머리, 날머리 등을 고려하면, 남한지역의 백두대간 종주를 위해서만도 약 1,300Km~1,500Km를 걸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우리가 살고 있는 내 나라, 내 땅을 내 발로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생각뿐이지, 어디 국토종주가 그리 쉬운 일인가? 4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 후, 1주일 걷고, 1주일 쉬는 식의 국토종주를 생각해 본 적도 있지만 집사람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역시 생각으로 그치고 만다.


우연히 당일 산행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가이드 하는 산악회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앞 뒤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 나선다. 2004년 2월 10일 이렇게 시작한 대간종주가 2005년 11월 9일 완료된다. 대간종주에 약 21개월이 걸린 셈이다. 가고파 산우회와 산정 산악회의 가이드를 받고, 함께 산행한 산우(山友)들의 도움으로 국토종단의 꿈을 이룬 것이다. 가고파의 이 회장님, 산정의 정 대장님, 그리고 함께 산행한 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몸과 마음, 공히 충분한 준비 없이 따라 나선 산행이라,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든다. 힘들어 하는 것을 옆에서 보는 집사람도 걱정을 많이 한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적응을 할 수 있게 되고, 집사람도 마음이 놓이는 눈치다.


배낭 메는 법, 신발 끈 매는 법, 산길 걷는 법 등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따라 나서서, 산행을 하면서 일일이 배웠다. 하찮은 것들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긴 산행을 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사항들이다. 양말 신는 법, 하산 시 등산화 끈을 조이는 요령 등을 몰라, 발톱이 몇 번씩 빠진 대원들도 있다. 이제 나침반을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고, 산세를 보고 지형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대간종주를 하면서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산악회를 따라 단체로 산행을 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선두와 후미의 문제이다. 선두가 이해를 하고, 후미는 열심히 따라 붙어, 실제로 팀이 깨어지는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역시 이 문제가 단체산행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두에 서는 사람들은 체력이 강한 사람들이다. 후미보다 2배정도 빠르게 걸으려면, 체력은 4배정도 더 소비해야 한다. 1.5배 빠르려면(선두 4시간, 후미 6시간 소요) 후미에 설 때 보다 2.125배의 체력이 소모된다. 산행에서 스피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은 강한 체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부터 비롯하는지도 모르겠다.


체력 차이가 2배 이상 날 수가 있고, 사람에 따라 산행 스타일도 다를 수 있음으로, 선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비난을 받아야 할 까닭은 없다. 그렇다고 선두가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선두에게는 극복해야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무릎 손상의 방지, 다른 하나는 먼저 하산해서 기다려야하는 시간의 선용(善用)문제다.


백두대간 종주처럼 장기간 산행을 해야 할 경우, 무리하게 질주하다가 무릎에 고장이 생겨, 고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무릎 뼈에 금이 갔을 경우, 치료가 되더라도, 이후 산행에 많은 지장을 받게 되고, 그래서 영원히 산행을 포기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선두로 일찍 내려와서 기다리는 동안, 술만 마신다면, 술을 마시러 산에 왔는지, 산행을 하러 산에 왔는지, 아니면 그 둘 다를 함께하려고 산에 왔는지 아리송해진다.


나는 체력도 약하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산행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항상 후미를 면치 못한다. 후미에게는 두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하나는 혼자 떨어져 길을 잃었을 때, 다른 하나는 먼저 산행을 마친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데서 오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혼자 떨어져 길을 잃었을 때에 대비하여, 항상 지도와 나침반을 소지하고, 필요할 때 등반대장에 긴급 연락할 수 있도록 등반대장 전화번호가 저장된 전화기를 넣고 다닌다.


선두를 기다리게 하는 부담감을 털어 버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한 번은 최후미로 하산하여, 모두가 기다리는 버스에 오르면서 받았던 싸늘한 시선에 위축되어, 이렇게 남들에게 폐를 끼치기보다는, 차라리 대간종주를 포기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이 부담감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하나는 행보법이다. 체력이 많이 소요되는 오름길은 천천히 오르되, 평지나 위험하지 않은 내리막에서는 허리를 쭉 펴고, 최선을 다해 빨리 걷는다. 고래 대장님이 가르쳐 준 행보법이다. 이 행보 법에 의해 전체적인 산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나름대로 목표 산행시간을 설정하고, 그 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치게 되면, 선두와 아무리 시간차가 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이다. 목표 산행시간을 설정하기 위하여 선답자 들의 산행기와 고도 표를 참조했다. 설혹 산악회에서 제시하는 소요 산행시간이 6시간이더라도, 나름대로 계산한 소요시간이 7시간 30분이라면, 7시간 30분이 목표시간이 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산행해야 할 도상거리를 알 경우, 간단히 소요 산행시간을 계산할 수가 있다. 산행해야 할 도상 거리를 2.5로 나누고, 여기에 점심시간 30분을 가산하여 산정한다. 예컨대, 도상거리가 15Km 라면, 2.5로 나눈 값, 6시간에 점심시간 30분을 합하여, 6시간 30분으로 정한다.


장기간 산행에서 꼭 필요한 등산 용구가 스틱이다. 두 개의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르막에서도 필요한 힘의 일부를 양팔에 분산시킬 수 있어 도움이 되고, 특히 하산 할 때, 무릎 보호를 위하여, 필수적인 용구라고 생각한다. 스틱 사용법을 올바르게 익히고, 제대로 사용한다면, 스틱의 효용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금강산도 갈 수 있고, 멀지 않은 장래에 백두산, 묘향산 등도 갈 수 있게 되겠지만, 북한에 속해 있는 백두대간길이 열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다. 아쉽기는 하지만, 조바심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9개의 정맥과 100대 명산을 비롯한 많은 산들이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간종주를 하면서 배우고, 익힌 경험이 앞으로의 산행을 보다 더 즐겁고 보람 있게 해 줄 것이다. 대간종주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하 대간 산행일지를 정리한다.


1. 2004년 2월 10일(화) : 가재마을-수정봉-여원재

2. 2004년 2월 24일(화) : 성삼재-만복대-정녕치-고리봉-고기리

3. 2004년 3월 9일(화) : 여원재-고남산-통안재-매요리-아실재-지리산 휴게소

4. 2004년 3월 23일(화) : 사치재-사리봉-복성이재-다리재-봉화산-송리마을

5. 2004년 4월 13일(화) : 송리마을-광대치-월경산-중재-백운산-영취산-무령고개

6. 2004년 4월 27일(화) : 무령고개-영취산-민령-깃대봉-육십령

7. 2004년 5월 11일(화) : 빼제-된새기미재-덕유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8. 2004년 5월 28일(금) : 성삼재-반야봉-벽소령-장터목-천왕봉-중산리(1무1박3일)

9. 2004년 6월 8일(화) : 덕산재-부항령-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

10. 2004년 6월 22일(화) : 우두령-석교산-삼마골재-해인리


이상 가고파 산우회의 가이드를 받으며 산행을 한 구간이다. 하지만 7월 들어 회원들 참여가 부진하자 대간 팀이 해체되고, 7월 한 달은 공을 친다. 8월부터 산정산악회 3차 백두대간 종주 팀에 편입한다.


11. 2004년 8월 7일(토) : 동엽령-백암산-귀봉-횡경재-지봉-월음재-대봉-갈미봉-빼재

12. 2004년 8월 14일(토) : 밤티재-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고모치-삼송리

13. 2004년 8월 21일(토) : 밀재-대야산-버리미기재 (역코스)

14. 2004년 8월 28일(토) : 버리미기재-장성봉-악휘봉 왕복-은티재-은티마을

15. 2004년 9월 4일(토) : 은티마을-구왕봉-지름티재-성터-희양산-이만봉-분지리

16. 2004년 9월 11일(토) : 이화령-조봉-황학산-백화산-평천지-사다리재-분지리

17. 2004년 9얼 18일(토) : 이화령-조령산-신선암-조령 제3관문-고사리 마을

18. 2004년 9월 25일(토) : 하늘재-월항삼봉-북암문-마폐봉-조령 제3관문-고사리 마을

19. 2004년 10월 1일(금) : 한계령-대청봉-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비선대(무박)

20. 2004년 10월 8일(금) : 대관령-새봉-선자령-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무박)

21. 2004년 10월 16일(토) : 구룡령-치밭골령-갈전곡봉-왕승골-쇠나드리-조침령-진동리

22. 2004년 10월 23일(토) : 백봉령-생계령-고병이재-석봉산-두리봉-삽당령

23. 2004년 10월 30일(토) : 삽당령-978.8봉-석두봉-989.7봉-1006봉-화란봉-닭목재

24. 2004년 11월 5일(금) : 댓재-두타산-청옥산-고적봉-갈미봉-상월산-백봉령(무박)

25. 2004년 11월 13일(토) : 하늘재-포암산-938.봉-897봉-1032봉-부리기재-중평리

26. 2004년 11월 20일(토) : 안생달-차갓재-981봉-새목재-대미산-부리기재-중평리

27. 2004년 11월 27일(토) : 안생달-묏등바위-황장산-황장재-벌재-옥녀봉-저수재

28. 2004년 12월 3일(금) : 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무박)

29. 2004년 12월 11일(토) : 저수재-투구봉-시루봉-흙봉-뱀재-솔봉-묘적령-사동리

30. 2004녕 12월 18일(토) ; 죽령-1,286봉-삼 형제봉-도솔봉-묘적봉-묘적령-사동리

31. 2004년 12월 31일(금) : 도래기재-구룡산-신선봉-부소봉-태백산-화방재(무박)

32. 2005년 1월 8일(토) : 닭목재-왕산1쉼터-왕산2쉼터-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33. 2005년 1월 15일(토) : 죽령-연화봉-연화1봉-비로봉-국망봉-안부-어의곡리

34. 2005년 1월 22일(토) : 고치령-1,060.6봉-1,272봉-상월봉-국망봉 안부-어의곡리

35. 2005년 1월 29일(토) : 고치령 -1.096.6봉-마구령 -갈곳산 -늦은목이-오전리 사기점

36. 2005년 2월 5일(토) : 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1,220봉-선달산-늦은목이-오전리

37. 2005년 2월 12일(토) : 싸리재-은대봉-함백산-만항재-청옥봉-수리봉-화방재

38. 2005년 2월 19일(토) : 피재-노루메기새목이-건의령

39. 2005년 2월 26일(토) : 싸리재-금대봉-쑤이밭령-비단령-매봉산-피재

40. 2005년 3월 11일(금) : 용대리-소간령-마장터-대간령-마산-진부령

41. 2005년 3월 19일(토) : 건이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지각산-자암재-조탄동

42. 2005년 3월 26일(토) : 댓재-자암재 -환선굴-대이리


산정 산악회 백두대간 3차대 공식 행사는 이상으로 종료된다. 이하는 땜방 산행이다.


43. 2005년 4월 3일(일) : 지기재-437.7봉-윤지미산-화령재 (5차대)

44. 2005년 4월 10일(일) : 화령재-봉황산-비재-갈령삼거리-형제봉-피앗재(5차대)

45. 2005년 4월 17일(일) : 밤티재-문장대-천황봉-피앗재-형제봉-갈령(5차대)

46. 2005년 5월 11일(수) : 우두령-삼성산-황악산-백운봉-운수봉-궤방령(가고파)

47. 2005년 5월 25일(수) : 추풍령-작점고개-갈현-용문산-국수봉-큰재(가고파)

48. 2005년 7월 2일(토) : 궤방령-가성산-장군봉-눌의산(743.3m)-추풍령(6차대)

49. 2005년 7월 16일(토) : 큰재-백학산-지기재(6차대)

50. 2005년 9월 15일(목) : 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남덕유산-삿갓봉-무룡산-동엽령

51. 2005년 9월 27일(화) : 한계령-점봉산-조침령-진동리(무박-가고파)

52. 2005년 10월 11일(화) : 미시령-황철봉-마등령-오세암-백담사(무박-가고파)

53. 2005년 11월 9일(수) : 미시령-성봉-화암재-신선봉-장터목-용대동


* 5차대, 6차대는 산정산악회 백두대간 팀, 표시가 없는 것은 개별 산행임.


(2005. 11. 21.)

1 [조고문 / 2005-11-27,11:43:21]

우림님의 백두대간 완주산행 축하하고요 남은 북한구간은 물론

정맥 100대명산 산행에 푹 빠저 보시지요 암튼 축하합니다 [삭제]

2 [우림 / 2005-11-29,10:32:57]

조 고문님 ! 반갑습니다.

요즈음에는 산에서 뵙기가 어렵네요.

독립군 산행을 하시는 모양이군요. 좋은 산 가실 때는 꼭 연락주세요. [삭제]

3 [東城.... / 2005-12-06,20:23:29]

우림님 축하드립니다.1년 9개월만에 완주를 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완주증은 어디서 받으시지요? [삭제]

4 [우림 / 2005-12-08,09:35:49]

동성 님 !

오랜만입니다.

"숲 강좌"는 거의 끝나 가는지요?

졸업하면, 숲 해설가로 변신하는 건가요?


만난지 한참됐는데,

이번 토요일, 도봉산에서 만납시다.

동성 님의 마가목주 맛 못 잊어, 기다리는 사람들 많아요. [삭제]

5 [東城.... / 2005-12-09,08:27:59]

우림님,和峰依命으로 오봉,여성봉,도봉산 산행 참석합니다.

금년에는 마가목 열매 채취를 못했고 고래2가 했는데 같이 가자고권했습니다. 토요일 뵙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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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봉에서 본 남쪽 조망-뒤로, 화채봉, 대청봉 , 귀떼기청봉,가운데 황철봉

신선봉과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흐르는 능선

미시령에서 진부령구간은 백두대간종주의 종점구간이다. 무박으로 미시령을 출발, 신선봉, 대간령, 마산을 거쳐, 다음 날, 일찍이 진부령에 도착한다. 진부령의 거대한 표지석 앞에 모여 환하게 웃으며 졸업사진을 찍고, 근처 식당에서 떠들썩하게 완주 자축파티를 갖는 것이 관례처럼 되 버렸다.


2005년 3월 11일(금), 산정산악회 3차 백두대간종주 팀은 이날 무박으로 진부령구간 산행을 시도하지만, 아침부터 내린 눈으로 미시령의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이른 새벽에 용대동 박달나무 쉼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대간령에 올라, 마산을 거쳐, 진부령에 도착, 졸업사진을 찍고, 자축파티를 한 적이 있다. 하늘이 말리는 바람에, 미시령-진부령 구간의 절반만 산행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숙제로 남겨두게 된 것이다.


대간종주를 마무리하여야겠는데, 남은 숙제 풀기가 쉽지 않다. 다른 종주 팀을 따라 땜방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하산 후 남의 자축파티에 끼어드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무박산행으로 놓치게 되는 신선봉에서의 조망이 무척 아쉽다.


산악회 가이드를 받지 않고, 개별산행을 할 경우에는 교통편과, 입산금지구역의 산행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이 구간산행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급기야 대간완주에 이 반 구간만 달랑 남게 된다.


2005년 11월 9일(수).

남은 숙제를 풀기위해 심사숙고해서 잡은 날이다. 동반자는 조 고문님이다. 조 고문님도 이 곳 남은 구간만 마치면 대간종주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흔쾌히 모험 한번 해 보자고 동의해 온다. 6시 10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6시 25분 발 무정차 속초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미시령을 통과하지만 그 곳에서 정차를 해줄지는 기사 마음에 달렸다.


속초까지 3시간 30분에 달리는 우등버스다. 요금은 16,800원. 제법 비싸다. 조 고문님은 기사 바로 뒷좌석에 앉고, 나는 오른 쪽 입구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첫 차라서 그런지 승객은 모두 7-8명뿐이라, 지정된 좌석에 앉지 않았다고 시비하는 사람도 없다. 이윽고 버스 기사가 나타나 승차권을 회수하고, 버스가 출발한다. 기사양반 인상이 크게 까다로워 보아지 않아 일단 마음이 놓인다.


버스는 남한강 줄기를 거슬러 달린다. 강에는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홍천을 지나, 44번 국도로 접어들자, 추수가 끝난 논에 서리가 하얗다. 어제가 입동(立冬)이다. 오늘 강원도 산간지역의 최저기온은 영하 2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을 것이라고 예보한다. 단풍철도 지났으니, 산행객들이 많이 줄어, 감시원들의 감시도 소홀할 터이고, 더 추워지면 산행이 어려워질 듯싶어 오늘을 디 데이로 정한 것이다.


버스는 홍천강 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는 홍천강의 아침풍광이 아름답다. 화장실을 들른 후, 버스 문 앞에서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버스 기사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등산하러 나왔는데, 미시령 휴게소에서 잠간만 내려주세요. 미안합니다." 기사양반은 우리들을 한번 흘끗 쳐다보더니, 말없이 버스에 오른다.

홍천강의 아침

승객의 편의를 생각하는 기사 입장에서는 미시령에서 잠시 멈추어, 승객을 내려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승객들 중에는 무정차 버스인데, 왜 정차를 하느냐고,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어, 운이 나쁘면 속초까지 내쳐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사전에 준비해 두어야 한다.


기사양반의 침묵을 묵인으로 이해하고, 예비했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아마도 기사양반은 배낭을 들고 앞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부탁하기 전에, 이미 상황을 짐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감시원의 눈을 피하는 일뿐이다.


버스가 미시령에 접근한다. 조 고문님은 열심히 왼쪽 산세를 살피고, 나는 오른쪽으로 감시소 위치를 눈여겨본다. 버스가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조 고문님이 씽긋 웃는다. 뭔가를 찾았다는 신호다. 9시 8분 버스가 미시령 정상에 멈춰 선다. 기사양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안녕히 가시라고 답례를 한다. 버스에서 내려선다. 강한 바람에 모자가 휘익 날린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08 미시령도착-9:12 능선-9:55 샘-10;39 성봉-11:17~11:20 화암재-11:42 신선봉 갈림길-11:51~11:57 신선봉-12:15~12:50 중식-13:30 알바 인식, 마가목 채취-16:08 대간령 하산길-16:17 마장터-17:03 박달나무 쉼터> 중식시간을 포함하고, 길을 잘못 들어 마가목을 채취하며 1시간 이상 헤맨 시간까지, 약 8시간 동안 산행을 한 셈이다.


미시령 휴게소가 한가하다. 조심스럽게 휴게소로 접근한다. 감시원이 나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재빨리 출입금지 팻말을 지나, 가파른 절개지를 뛰듯이 달려 오른다. 바람이 사나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3~4분 쯤 허겁지겁 달려, 능선에 올라서도 내쳐 달린다. 누가 뒤쫓아 오는 기색은 없다. 비로소 한숨 돌리고 주위를 조망한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다. 차갑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다. 강한 바람에 가스가 모두 날려갔는지, 멀리까지 시계가 트였다. 나무들도 잎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만 앙상하여 조망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면으로 저 멀리 삼각형 바위덩어리 모습을 한 성봉이 우뚝 솟아 있다. 오른쪽으로는 성봉에서 흘러내린 암봉들이 울퉁불퉁 험상궂은 형상을 하고 골짜기로 달리고, 그 아래 협곡 사이로 속초시와 푸른 동해 바다가 보인다.

성봉 오르는 길

성봉에서 흘러내리는 암봉


몸을 돌려 남쪽을 향한다. 왼쪽으로 역광 속의 울산암 옆모습이 그로테스크하다. 신흥사 쪽이나, 중봉 정도에서 볼 때의 부드러운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마치 악마의 성처럼 으스스하다. 정면으로 미시령 고개가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는 황철봉의 웅장한 모습이 버티고 서 있다. 시계가 무척 맑아, 황철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뚜렷하고, 정상 부근의 너덜지대도 확실히 보인다.

울산암



황철봉, 미시령, 뒤로 대청, 중청

오늘의 산행시작은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모험 이였지만, 운 좋게도 최선의 방법으로 신성봉이 우리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제는 아무리 늑장을 부리며 여유 있게 산행을 하더라도 4시 경이면 하산을 할 수 있겠다.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능선을 오른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지만, 이런 바람에도 익숙해진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등산로에는 바람에 날려 낙엽도 머물지를 못한다. 샘터에 이른다. 두세 개 야영장이 있는 비교적 넓은 공터 한 귀퉁이에 분명히 샘터가 있어야 하는데, 샘터가 보이지 않는다. 샘터 자리라고 짐작되는 곳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걷어 내니, 비로소 샘이 모습을 보인다. 플라스틱 관을 통해 적지 않은 물이 흘러내리는 데도, 샘이 낙엽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 것이다. 차지 않은 물맛이 한 없이 부드럽다.

낙엽에 묻혔던 샘

10시 9분 바위 전망대 위에 선다. 남쪽으로 황철봉이 자세를 조금 낮추어 누어있고, 황철봉 뒤, 왼쪽으로는 대청봉과 중봉이, 오른쪽으로는 귀떼기 청봉이 보인다. 미시령을 통과하는 56번 국도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북쪽으로 가장 깊게 휘어진 도로 끝에서 우리가 걸어 온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골짜기가 뚜렷이 보인다. 조 고문님이 차창을 통해서 이 골짜기를 발견하고, 씽긋 웃었던 것이다. 확실한 개구멍을 발견했다는 신호다.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에 명랑호, 청초호가 뚜렷하고, 속초시의 건물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저 멀리 동해 바다가 푸르다.  

속초-영랑호, 청초호가 뚜렷하고, 그 뒤로 동해가 푸르다


등산로는 암릉으로 이어지고,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주위는 진달래 군락지인 모양이다. 봄철에 진달래가 만개하면 장관이겠다. 눈앞에 성봉이 가깝고, 성봉 위에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오늘 대간 길에서 유일하게 본 사람 모습이다. 성봉 옆으로 신선봉이 남성다운 거친 모습을 나타낸다.

성봉-정상에 두 사람이 보인다.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신선봉


너덜지대를 지나 성봉으로 오르는 길가에 새롭게 만든 참호가 눈에 뜨인다. 성봉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이 서 있고, 그 아래 바위에 누군가가 붉은 스프레이로 성봉이라고 써 놓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조망을 즐긴다. 발아래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험한 암릉길이 이어지고, 그 뒤로 황량한 모습의 신선봉이 우뚝 서 있다. 신선봉 뒤로 동해가 푸르고, 신선봉에서 대간령으로 흐르는 능선이 장엄하다. 곳곳에 너덜지역이 보인다.

성봉 정상의 돌탑


성봉으로 이어지는 너덜길과 무명봉

성봉에서 본 동쪽 조망-운봉산과 문암

성봉을 내려서서 화암재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다. 그 늘진 사면이라 돌 위로 흐른 물이 두텁게 얼어붙어 있는 곳도 있다. 눈 쌓인 겨울철에는 위험한 곳이다, 조심조심 내려오면서 보는 암릉길의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기암 사이로 보이는 동해가 한 없이 푸르다. 이윽고 너른 화암재에 도착하여, 과일을 들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화암재는 동쪽으로는 화암사로, 서쪽으로는 마장터로 이어지는 네거리이다.

상봉 하산길에 본기암들과 동해바다


화암재

신선봉으로 향하는 황량한 오름길을 오른다. 잎이 다 떨어진 참나무 지역을 지나고, 관목지대를 통과한다. 심한 바람에 시달려 키를 낮추고 이리저리 굽은 오래된 관목들이 눈에 뜨이고, 키 작은 나뭇가지에 걸린 빛바랜 표지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어김없는 고산 풍경이다.  

뒤돌아 본 성봉

 


온갖 풍상에도 꿋꿋한 고목

신선봉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으로 가면 신선봉, 왼쪽으로 내려서면 대간길이다. 바닥에 눈에 익은 비닐 표지판이 돌에 눌려 있다. 복원대 표언복 교수가 놓고 간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이다. 표 교수가 이곳을 지난 것이 2005년 7월 22일로 돼 있으니, 교수님도 어쩔 수 없이 불법산행을 한 모양이다.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


오른 쪽 신선봉으로 오른다. 관목지대가 끝나고 너덜지대가 신선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신선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작은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 한 귀퉁이에 군(軍)에서 세운 경고판이 서 있다. 참호, 교통호 등 군사시설을 손궤하지 말라는 경고판이다. 아마도 이 지역이 군사 훈련지역인 모양이다.

신선봉 아래 헬기장-뒤로 성봉, 멀리 대청봉도 보인다.

11시 50분 경, 신선봉 정상에 오른다. 너덜바위가 얼기설기 얽힌 좁은 공간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표지리본들이 심한 바람에 몸부림을 친다. 거시기 팀이 1,204M라고 고도를 표기한 작은 판자 토막이 바위 사이에 끼여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본다. 사방이 탁 트이고 시계에 막힘이 없다. 안개가 많다는 이 지역을 이런 날씨에 오르다니, 실로 축복을 받은 느낌이다.

신선봉 정상

북쪽으로 광활한 토성면이 내려다보인다. 북서쪽으로 마산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뒤로 향로봉 능선이 아련하다. 서쪽으로는 대간령 쪽으로 흘러내리는 광활한 관목 숲, 그 사이사이에 머리를 내민 암봉들, 그리고 너덜지대들이 가히 장관을 이룬다. 황량하고 거친 남성적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는다. 남쪽으로는 지나온 성봉이 날카롭고, 동쪽으로 속초에서 고성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뚜렷하다. 동해 바다는 마냥 푸르기만 하다.

뒤돌아 본 신선봉 정상

 

  마산과 향로봉

 

신선봉에서 본 서쪽 사면

울산암과 화채봉

바람이 거세어 정상에서 5분 정도 머물다가 아쉽지만 서둘러 하산한다. 갈림길을 지나 대간길로 들어서서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에 앉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마지막 봉우리라는 신선봉을 우러러보며 점심식사를 한다. 북설악 광대한 지역에서 조 고문님과 단둘이 앉아 호젓하게 하는 이 점심식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식사하며 바라 본 신선봉(우)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신발 끈을 고쳐 맨 후 대간령으로 내려선다. 올돌하게 홀로 떨어져 솟아있는 암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길을 걷는다. 뚜렷한 능선길을 누군가가 나뭇가지로 가로 질러 막아 놓았다. 나뭇가지를 치우고 계속 능선길을 내려선다. 하지만 새롭게 만든 참호에 이르러 길은 끊어지고 참호 아래는 벼랑이다. 아마도 능선 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 군인들이 참호를 만들면서 생긴 길로 내려선 모양이다. 주위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본다.

황량한 하산길

오른쪽으로 너덜지대가 보이고,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눈에 뜨인다. '어, 이건 또 무슨 횡재인가?' 동성 대원의 마가목주를 맛 본 후, 마가목만 보면 욕심이 생긴다. 조 고문님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내려 온 길을 되 집어 올라가, 나뭇가지로 길을 막았던 곳에 회귀하여, 오른 쪽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가목 아래에 선다.


철 지난 마가목 열매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나무에 기어올라, 바싹 마른 마가목 열매를 채취한다. 조 고문님이 무척 흥겨운 모양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열매를 따면서, "올해는 마가목 구경을 못하고 넘어 가는가 했더니, 알바를 한 덕에 마가목 구경을 한다."고 마냥 즐거워한다.


마가목 열매를 채취하고 길을 찾아 나선다. 오른 쪽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암봉이 보인다. 산 사면을 가로 질러, 암봉 위에 오른다. 암봉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조망한다. 오른쪽으로 또 다른 능선이 흐르고, 그 능선 저 아래 구조물이 보인다. 아마도 헬기장인 모양이다. 맞은 편으로 마산이 뾰족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향로봉이 뚜렷하다. 하지만 지금 서 있는 암봉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서기가 쉽지 않겠다.


반대로 왼쪽을 본다. 서남쪽으로 용대동으로 짐작되는 마을이 멀리 보이고, 참호가 있던 벼랑을 내려선 능선이 부드럽게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완만한 산 사면을 가로 질러, 그 능선에 이르기가 쉬워 보인다. 원칙은 능선 분기점으로 회귀하여, 오른쪽 능선길을 찾아야 하겠지만, 한동안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려니 슬그머니 꾀가 난다.


조 고문님과 상의를 한 후, 왼쪽 사면으로 내려서서 참호가 있던 벼랑을 돌아, 부드러운 왼쪽 능선에 오른다. 이 때 시간이 3시 경이다. 서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길이 뚜렷하고, 나뭇가지에 간간이 산행리본도 매달려 있다. 낮은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며 능선은 계속 서쪽으로 흘러내린다. 오른쪽으로 대간능선이 뚜렷이 보이고, 대간령이라고 짐작되는 안부도 눈에 뜨인다.


갑자기 능선이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왼쪽으로 다른 능선이 보인다. 길을 버리고 골짜기를 지나 왼쪽 능선에 올라, 능선을 타고 내린다. 이윽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른 골짜기를 지난다.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저 아래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물 흐르는 계곡에 내려서니 바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화암재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이다.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내려선다. 침엽수 조림지역에 이르고, 4시 8분 경 대간령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침엽수들은 노란 잎들을 모두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다. 숲에는 억새가 무성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내려서서 마장터에 이른다. 지난 3월에는 눈 속에 파묻혀, 비어 있던 집 앞마당에서 두 사람이 억새다발을 만들고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이방인들을 경계한다.

잎떨어진 침엽수 군락지

마장터

마장터를 뒤로하고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하산을 계속한다. 5시 경, 훈련장에 도착하여, 개울을 건너, 박달나무 쉼터를 지난다. 56번 국도는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S자로 휘어진 구 도로를 따라 용대동 삼거리에 이르러, 불을 환하게 밝힌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마당에 강원도 번호판을 단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다. 넓은 음식점에는 손님이 없다. 남자 두 사람과 식사를 하던 아주머니가 마주 나온다.

용대동 개울가의 갈대(?)

"인제에 가야하는데, 이곳에서 넉넉하게 식사를 하고, 기름 값을 드릴 터이니, 태워다 줄 수 있나요?" 라고 묻자, 남자가 "몇 사람인데요?" 라고 되묻는다. 두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아주머니가 미안 한 듯, 태워 다 드리고 싶지만, 술을 마셔서 안 되겠다고 한다.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특산물을 판매하는 매장을 갖춘 식당에는 역시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인제로 나갈 차편을 묻는다. 여직원이 6시에 버스가 있다고, 친절하게 버스 정류장 위치를 알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캔 맥주 2개를 사들고 나온다. 5시 40분경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갠 맥주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다. 6시 조금 지나 원통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후 원통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서울 가는 막차시간은 7시 40분이다. 7시 25분 차표를 산다. 요금은 13,300원. 완행이라 조금 싸다. 표를 파는 아가씨에게 근처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소개 받은 식당에 들어서서, 음식을 주문하고, 백세주 한 병을 부탁한다. 조 고문님은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 술 한 잔이 없다면 너무나 썰렁하다. 단출하게 2명뿐인 졸업생이 백세주로 완주를 자축을 한다. 식당 음식은 맛이 좋고, 양도 풍성하다.


7시 25분 원통을 출발한 버스는 홍천, 용문, 양평을 거쳐, 10시 35분,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2005. 11. 11)

 
우림 at 11/18/2005 09:12 am comment

그래요. 전 구간을 마감했지요. 2004년 2월 첫 구간 산행을 했으니, 21개월이 걸린 셈이죠. 감사합니다.

고락산성 at 11/17/2005 06:53 pm comment

이제 완전히 백두대간 졸업인가요? 축하 합니다. 고생 하셨구요. 빠지지 않고 종주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대간 길임을 이해 갑니다. 진정한 대간졸업을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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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봉에서 본 여명 속의 서북능선- 가운데 대청, 오른쪽 귀떼기청봉>

 

 <떠 오르는 태양속에 불 타는 황철봉>

 

<1326봉에서 본 공룡능선, 서북능선, 그리고 화채봉>

5차 백두대간 종주 팀은 지난 5월 5일 연휴를 이용하여 한계령을 출발, 서북능선을 거쳐, 대청봉에 오르고, 희운각에서 일박한다. 다음 날은 일찌감치 공룡능선을 넘고, 황철봉을 거쳐 미시령으로 하산하는 2구간 산행을 감행한다. 황철봉 구간을 땜방하기 위해 나도 이 산행에 합류한다.


5월 6일 아침 6시, 희운각을 출발한 대원들은, 공룡능선을 넘은 후 마등령에서 두 팀으로 나뉜다. 10시까지 마등령에 도착한 대원들은 황철봉으로 향하고, 늦은 대원들은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해야 한다.


내가 마등령에 도착한 것은 10시 5분경이다. 하지만 10시 전에 도착한 대원들 중에서도 여자 대원들을 제외하고, 선발된 14인의 정예대원들은 10시 경에 이미 황철봉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황철봉 구간을 가려고, 일부러 참여한 나는 산악회 요원의 양해를 얻은 후, 5분 먼저 출발한 대원들을 급히 뒤쫓는다.


마등령 정상에 이르러, 무심코 직진하는 외길 급사면을 급히 달려 내린다. 아무리 달려도 앞선 대원들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진행하는데, 이정표가 보인다. 마등령 정상에서 비선대 쪽으로 1Km나 떨어진 지점이다. '아뿔싸! 알바를 했구나. 이럴 수가 있나?'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다.


마등령 정상으로 회귀하여, 황철봉으로 향해야 하나? 또는 마등령까지 다시 돌아가서 백담사 팀에 합류하여야 하나? 아니면 비선대로 계속 하산을 해야 하나? 황철봉으로 향할 경우에는 앞선 대원들과 1시간 이상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다. 휴대폰 배터리도 다 되어, 연락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홀로 따라가야 한다. 무리다. 아쉽지만 비선대로 하산하기로 방침을 정한다. 맥이 쭉 빠진다. 희운각 대피소의 비좁은 잠자리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험한 공룡능선을 달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다. 비참한 기분으로 혼자서 터덜터덜 비선대로 내려서는 길이 무척이나 길고 험하게 느껴진다.


2005년 10월 11일(화).

오늘은 이처럼 한차례 거부당했던 황철봉 구간에 다시 도전 한다. K 산악회가 가이드를 하고, 역시 불법 산행이라 무박으로 역코스를 취한다.<미시령(767m/3K)-1318.8m봉(0.9K)-황철봉(1381m/1.1K)-저항령(1100m/1K)-1249.6m봉(1.8K)-1326.7m봉(2K)-마등령정상(1320m/0.2K)ㅡ마등령(1212m/1.4K)-오세암(6K)-백담사> 도상거리 약 17.4Km, 기준산행시간은 약 10시간이다.


버스는 새벽 2시, 남설악휴게소에 도착하여 30분간 정차한다. 좁은 곳에서 쪼그리고 자며 와서 그런가? 버스에서 내리니 몸이 무겁고, 추위가 느껴진다. 커피를 마셔, 잠을 쫓고, 포카리 스웨트를 구매한 후 다시 버스에 올라 준비운동을 한다. 몸통을 돌려보고, 양팔을 뻗어 본다. 앉은 채 발 뒤꿈치 세웠다 놓았다를 100회 이상 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산악회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요령을 알려준다.

 

1. 지금부터 산행준비를 하고, 도착 10분 전에 배낭을 멘 채 대기한다.

2. 하차해서 한동안은 랜턴을 켜지 말고, 앞사람을 따라 신속히 이동한다.

3. 황철봉 너덜지대까지는 선두, 후미구분 없이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함께 이동한다.

4. 활철봉 너덜지대를 지나기까지는 스틱은 사용하지 않는다.

5. 마루금 거리는 약10Km 정도다. 너덜지대는 특히 안전에 유의하고 천천히 이동한다.

6. 불가피하게 탈출해야 할 경우는 저항령에서 백담사 쪽으로 탈출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3:00) 미시령도착 산행시작-(3;06) 주능선에서 인원 점검-(4:05) 첫 번째 너덜지대-(4:47) 1318.8m봉-(5:55~6:05) 황철봉-(6:47) 저항령-(7:20~7:40) 아침식사 -(7:40~9:05) 1249.5m봉 우회-(9:40) 1,326.7m봉-(9:56) 마등령 정상-(10:00~10:12) 마등령-(10:54) 봉정암 갈림길-(10:55~11:05) 오세암-(12:02) 영시암-(13:20) 백담사> 총 산행시간 10시간 20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새벽 3시 경, 버스가 멎자, 하차한 대원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앞사람을 따라 신속히 이동한다.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어쩔 수 없이 랜턴을 켠다. 아마도 감시소를 피해, 우회하는 길인 듯싶다. 내리막이 끝나고, 급경사 오르막으로 이어지더니, 이윽고 능선위에 선다. 우회로를 거쳐 주능선에 오른 모양이다. 사방이 탁 트인 공지에 대원들이 모여 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왼쪽으로 속초시의 불빛이 멀리 보인다.


앞에서부터 번호 붙여가 시작되고, 번호는 31번에서 그친다. 일행은 다시 조용히 기다린다. 이윽고 후미가 접근하고, 다시 번호 붙여가 이어진다. 마지막 번호가 43번, 대원들이 모두 도착한 것이다. 산악회 회장이 이를 확인하고, 선두가 출발한다.


대원들은 일렬종대로 가파른 오름세를 힘들여 오른다. 4시가 조금 넘어 첫 번째 너덜지대에 이른다. 거대한 돌무더기 사면이다. 앞 사람을 따라,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며, 기듯이 조심스럽게 오른다. 어둠 속에서 오르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오히려 가파른 육산을 오르기보다 힘은 덜 드는 느낌이다.

<첫 번째 너덜지대 접근>

 

거대한 바위 위에 작은 돌들이 2~3개씩 포개져 있다. 너덜지대에서 길 안내 표시라고 한다. 4시 47분, 1318.7m봉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다.<설악 22, 1987 재설> 사방은 어둠뿐이다. 암릉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니, 앞에 다시 거대한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포개진 돌 - 너덜지대의 이정표>


너덜지대를 오른다. 날씨가 쾌청하다. 1,300m가 넘는 고지대인데도 안개조차 없다. 이윽고 동쪽으로 검은 어둠 속에 한줄기 붉은 띠가 가로 걸리고, 5시 55분경, 후미 그룹은 황철봉 정상(1381m)에 오른다. 선두 그룹은 이미 속도를 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커다란 바위들이 삐죽 삐죽 솟은 좁은 정상은 텅 비었다. "천연보호구역"이란 글자가 음각된 돌 팻말이 세워져 있다. 동쪽의 붉은 띠가 점점 넓어진다.

<여명 속의 속초시 불빛>

 

<정상의 천연보호구역 돌 팻말>

 

정면으로 대청, 중청의 거대한 모습이 멀리 여명 속에 검게 부각되고, 대청과 중청이 만든 V자 능선 아래 불빛이 반짝인다. 후미 대장이 "봉정암 불빛이다." 라고 외친다. 모두들 신기한 듯 바라본다. 약 10여분 정도 정상에 머물며, 기념사진을 찍고, 여명 속의 주위 풍광을 살핀다. 역광으로 보이는 바위와 나무들이 그림 같다.

<황철봉 정상>

 

<황철봉에서 보는 여명>

암릉길을 내려선다. 주위가 점차 밝아진다. 뒤돌아 황철봉을 바라본다. 뾰족한 검은 삼각형위에 삐죽삐죽 솟은 바위들이 날카롭다. 비탈진 사면을 내려선다. 나뭇가지에 걸린 산행리본들이 뚜렷이 보이고, 오른 쪽으로 운해가 펼쳐진다. 싱그럽고, 아름답다. 정면으로 저항령 능선이 붉은 빛을 띠고 날카롭게 흐르고, 전면 산 사면에 또 거대한 너덜지대가 보인다. 그 뒤로 웅장한 서북능선이 연분홍빛 하늘을 이고 있고, 귀떼기청봉이 올돌하다. 이곳에서,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기막힌 풍광이다.

<뒤돌아본 황철봉>

 

<북서 방향의 운해>

 

<저항령능선과 서북능선>

해가 뜬다. 먼 바다 위를 덮은 검은 구름을 비집고, 해가 떠오른다. 어디서 보아도 일출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온 세상이 숨죽인 듯 고요하고, 사방에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뒤돌아 황철봉을 바라본다. 황철봉이 훨훨 불타고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저항령능선은 또 어떤가?  산사태가 난 것처럼 보이는 흉물스러운 너덜지대도 붉은 색을 띠고 반짝인다.

<일출>

 

<불 타는 황철봉>

<가까이 본 저항령능선>


6시 47분 저항령에 도착한다. 산악회 회장이 홀로 기다리고 있다. 탈출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후미 팀을 배웅한 회장은 혼자서 백담사로 향한다. 2시간 정도면 하산이 가능하니, 먼저 내려가서 선두 팀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후미 팀이 숲을 지나, 너덜지대에 이른다. 후미 팀은 박 여사를 포함한 여자대원 3명에, 나와 후미대장까지 모두 5명이다. 너덜지대를 오르며 뒤돌아 황철봉에서 저항령으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능선을 본다. 암벽과 단풍, 그리고 군데군데 작은 너덜들이 뒤섞인 능선이 떠오르는 햇빛아래 장엄하다.

<황철봉에서 저항령으로 흐르는 능선>

 

<황철봉에서 동으로 흐르는 암릉>

 

<저항령능선으로 이어진 너덜>

 

<저항령능선으로 오르는 대원들>


7시 20분경, 저항령능선에 오른 후미 팀은 암봉 아래 모여 아침 식사를 한다. 투명하게 맑은 날씨, 설악의 이 구간에서 이런 날씨를 만나다니, 실로 엄청난 행운이다. 아침이지만 어찌 축하주 한잔이 없겠는가? 후미대장과 나는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시고, 여자대원들은 산사춘을 나누어 축배를 든다.


정면에 장엄한 서북능선이 누워있다. 우뚝 솟은 귀떼기청봉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능선들이 헤라클레스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남성미를 과시한다. 다이어트 중이라는 후미 대장은 과일만 들고, 식사는 않더니, 내가 식사를 마치자. 서둘러 출발하자고 앞장을 선다. 후미 팀이 이곳저곳에서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중위 팀에게도, 1시간 이상 뒤졌을 듯싶다. 서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눈앞의 귀떼기청봉>


나는 배낭을 꾸리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후, 스틱을 챙기느라, 5분 정도 지체하여, 7시 40분 경, 일행을 뒤따라, 경사가 급한 암릉길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앞에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고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길바닥에는 다른 산악회 종이 표지판이 암봉으로 직진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다.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안전제일, 무리하지 않고, 급경사 우회로를 내려선다.


우회로는 암봉 뒤로 이어지고, 뒷면에서 본 암봉은 오르기가 수월해 보인다. 조망를 보려고 암봉에 올라선다. 좁은 암봉 위에 젊은 등산객이 혼자서 버너를 피워 놓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등산객이 불쑥, "여기는 등산로가 아니데요."라고 말한다. 고얀 젊은이다. 아마도 혼자서 아침준비를 하는데 끼어든 불청객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길을 물은 것도 아니고, 암봉을 저 혼자서 전세 낸 것도 아닌데, 버릇이 없다. 이렇게 호젓한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반가워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아침 식사준비가 거창해 보이고, 배낭은 내 배낭의 3배는 되는 것 같다. "혼자 대간을 하는 중이요?" 라고 물으니, 그냥 왔다고 한다. 다른 등산객들이 올라오지 않았냐고 다시 묻는다. 역시 올라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남쪽으로 1326m봉이 가까이 보인다. 즐거운 산행을 하라는 인사를 뒤로 남기고 암봉을 내려서서, 비탈길을 달린다.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걸려 있다. 경사가 완만해 지며, 등산로는 오른 쪽으로 굽어진다. 이상하다, 우회할 암봉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방향이 이상하다. 나침반을 꺼내 본다. 마등령으로 가려면 남쪽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이 길은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방향이 달라질지도 모르니, 조금 더 진행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길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경사가 급한 골짜기로 이어진다.

< V자 골짜기로 우회하며 올려본 암봉>

<전망바위에서 본 우회한 암릉>

<전망바위에서 본 1326m봉>


주저 없이, 되돌아서서 산행리본이 걸려 있던 곳으로 회귀한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오며, 찬찬히 주위를 살펴본다. 왼쪽 암릉으로 이어지는 바위에 진흙자국이 묻어있다. 아까는 급히 내려오느라 미쳐 못 보고 지나쳤던 곳이다. 왼쪽으로 들어서니. 등산로는 암릉을 지나 다시 골짜기로 떨어진다. 앞에서 후미 대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대답을 하고,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곳에 이르니, 후미대장이 혼자 기다리고 있다. 오래 기다렸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후미 대장이 왜 혼자 오냐고 묻는다. 내가 최후미라고 대답하자, 젊은 대원 한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고 다시 묻는다. 암봉 위에서 젊은 등산객을 한 사람 보았지만, 우리 일행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한다. 후미대장은, 자신은 남아서, 젊은 대원을 더 기다려 볼 터이니, 너무 뒤쳐지지 말고, 앞선 여자대원들을 빨리 쫓아가라고 지시한다.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왼쪽으로 거대한 암봉들이 솟아 있다. 1,249.5m봉을 우회하는 모양이다. 저 앞에 여자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능선에 오르니. 전방에 또 하나의 암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1326m봉이 둥글게 보인다. 왼쪽으로 저항령 계곡이 깊고, 그 아래로 설악동이 아련히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울산 바위가 보인다. 9시 경 마지막 암봉을 우회하고, 등산로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1326m봉으로 오르는 능선>

 

<저항령 계곡>


몇 차례 작은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길은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9시 20분 경, 숲을 벗어나니, 정면에 거대한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천천히 마지막 너덜지대를 오른다. 너덜지대를 통과하면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북으로는 지나온 황철봉과 저항령능선이 뚜렷하고, 동쪽으로 울산바위가 선명하다. 그 뒤로 동해바다가 푸르다. 여자대원들과 후미대장은 저 아래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걸어온 길 - 황철봉에서 저항령능선>

 

<너덜지대 오르다 본 울산암>

 

9시 40분 1326m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자그마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맑은 가을 하늘아래, 사방에 거칠 것이 하나도 없다. 지나온 황철봉과 저항령능선, 울산바위와 동해, 화채봉, 대청봉과 이어지는 서북능선, 그리고 발아래 공룡능선.... 설악의 장관들이 모두 다 모였다. 기묘한 암봉들과 색색의 단풍들이 만들어 놓은 풍광이 숨 막히게 아름답다.

<1326봉에서 본 암봉과 설악동>

이윽고 후미대장과 여자대원들이 올라온다. 여자대원들이 탄성을 발한다. 후미대장은 뒤쳐진 젊은 대원을 걱정한다. 정규 대간요원이 아닌, 처음 참가한 대원이라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안타까워한다. 약 10분 동안, 기다리며 주위의 조망을 즐긴다.


9시 40분 경 마등령 정상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10분 후, 낮 익은 마등령 정상에 선다. 후미대장은 이곳에서 젊은 대원을 기다릴 터이니, 나머지 일행들은 마등령에서 쉬면서 기다리라고 지시한다. 10시 경, 마등령에 도착하여, 배낭을 풀어 놓고, 쉰다.

<마등령에서 본 공룡능선>


10시 10분 경, 후미대장이 내려온다. 암봉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젊은 등산객은 아무리 보아도 우리 일행 같지는 않았고, 설혹 우리 일행이라 하더라도, 무작정 기다릴 수 도 없어, 10시 15분 경 우리는 오세암으로 향한다. 오세암으로의 내리막길은 단풍이 한창이다. 아름다운 단풍길을 쉬지 않고 달려, 10시 55분 오세암에 이른다. 우뚝 솟은 바위를 배경으로 단풍에 묻힌 오세암이 아름답다. 계속 증축이 이루어지나보다. 건설 장비차가 머물고 있다.

<오세암 하산길의 단풍>

 

오세암에서 약수를 마시며 쉰다. 절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10여분 동안 젊은이를 기다리다, 일행은 다시 백담사로 향한다. 12 경 영시암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아래 모여, 간단히 세수를 하고, 고생한 두 발을 차가운 물에 담가 피로를 풀어준다. 평일인데도 백담사 계곡을 오르내리는 인파가 끊이질 않는다.

<오세암에서 본 풍광>

<오세암>

1시 20분 백담사 버스 정류장에 이른다. 운 좋게 바로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른다. 1시 45분 버스는 용대리 백담사 매표소에 도착하고, 우리들은 산악회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차장 앞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산악회 대원들을 만난다. 회장에게 후미 팀이 도착했음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우리들은 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2시 30분 경,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젊은 대원과 통화가 된 모양이다. 이제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젊은 대원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저녁 이란과의 대표 팀 축구중계를 못 볼까 걱정하는 대원들이 늘어난다. 이윽고 3시 15분 경, 젊은 대원이 버스에 오르고, 차는 서울로 향해 출발한다. 버스에 오른 젊은 대원을 보니, 암봉에서 보았던 고얀 젊은이는 아니다.


집에 들어서니, TV에서는 방금 터진 우리 대표 팀의 첫 골 장면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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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東城.... / 2005-10-17,15:09:45]
우림님! 대단하시네요.마가목 구경은 좀 하셨습니까.
저는 가고파 산우회 10월 21~22일 무박2일 황철봉 코스 산행을 할 작정입니다. 산행 모습 함 보여주세요....
우정님! 지난 노인봉 코스의 동해 전망대에서 막걸리 마실때 매점 문짝에 <귀떼기 청봉> 시가 있었는데 이상국씨인가 하는 분이 지은 것인데 혹시 사진 촬영 했으면 올려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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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東城.... / 2005-10-17,17:47:48]
화봉님, 가고파 산우회에 전화로 확인 했는데 설악동쪽은 복잡해서 백담사쪽으로 하산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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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림 / 2005-10-17,19:51:07]
우정 님 !
지난 번 황철봉 갈 때는 형님 전시회 조수 노릇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요?
하지만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쳤네요. 사실 여부는 조 고문님에게 확인해보세요.
이번 21일, 22일에도 가고파에서 또 금요 무박산행 계획이 있고,
화봉, 동성 대원은 참여할 모양이니, 우리 우정 님, 또 고민거리 생겼네요.
땜방을 할 것인가? 틈새에 참여해 의리를 지킬 건가?

東城 님 !
마가목을 한 곳에서 보긴 했는데, 너무 높게 달리고,
후미에서 어정대느라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지요.
東城 님은 이번 길에도 꼭 채취하여, 다시 한 번 명주 맛 좀 보여주세요.

가고파 금요 무박산행 해 보세요.
아마 후회 안 할 겁니다.
날씨만 좋으면, 조망이 기찬 곳이 3곳 정도가 있지요.

오늘 저녁 블로그에 사진 정리 해 놀게요.
번거럽더라도 들러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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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정 / 2005-10-20,11:49:47]
동성님 ~
죄송합니다, 만당의 막걸리를 탐하다가, 미쳐 매점문짝의 詩귀절을
놓쳤습니다. 詩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하고요 ㅋ

우림님~
제 고민꺼리를 미리 알고 계시니,,,나 원참,,, 참 나원,,,원 참나,,,
틈새꾼들중엔 이미 황철봉 땜빵을 마친 백성들이 제법있기도 하고
이미 공지된것을 지난번에 이어 두번씩 번복하기도 그렇고,,
이번엔 그냥 틈새를 갈까 합니다.
우림님께서는 한강기맥을 가셔야겠네요.
만많치 않지만,아름다운 구간이 꽤 많습니다.
부디 안산,즐산하시기 바랍니다.
금남정맥도 취소되었고, 그러면 언제 뵐수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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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東城.... / 2005-10-21,10:41:22]
대관령쪽에 21일 밤 눈이 온다해서 산행이 취소되었습니다...
가기가 정말 쉽지 않은 곳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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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늘소 / 2005-10-21,11:20:17]
우림님
소간방에 올리신 황철봉구간 절경사진 잘보았구요
황철봉 사진정리하신 블로그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공짜 관람하려구요 ^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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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림 / 2005-10-21,19:15:42]
설악에 눈이 내리는 모양이군요.
틈새를 선택한 우정 님의 의리에 하늘이 감응했나보네요.
아쉬움이 남을까보아 다른 사람들 접근도 아예 막아버리는군요.

東城 님에게는 더 좋은 날씨, 더 좋은 조망을
마련하겠다는 설악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기다리던 김에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블로그에 따로 사진을 정리한 것은 없구요,
산정 홈페이지에 사진이 5매로 제한되는 것에 비해,
같은 후기지만 블로그에서는 약 30매 정도의 사진을 실었죠.
늘소 님, 틈나실 때 들러주세요.

"http://kr.blog.yahoo.com/urimahn" 을 검색하면,
"야후! 블로그 - 하늘" 이 뜰 겁니다. 그걸 크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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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래 / 2005-10-13,21:05:42]

너덜에 울산바위 그리고 불타는 설악......


30여년 동안 두지 못했던 바둑 한판이 생각나는지....... [삭제]

2 [잭울프 / 2005-10-13,23:19:28]

정말 대단하신 우림님~!

축하드립니다. 마의 구간을 드뎌해내셨군요.

지칠줄 모르는 패기와 열정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한편으로 쪼금 걱정도 되거든요.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니신지....

그 구간, 혹 붉은 마가목 많이 달렸던가요? ㅋ

(저도 지난주 우림님이 다녀오신 양수발전소구간 땜방마쳤습니다.

함상철님을 만났습니다. 함선배님은 현재 전주지사에서 근무중이라는군요.)

이번주엔 "대관령-진고개" 땜방하려고요.

4째주에 "틈새산행"준비하겠습니다.

지헌을 통해 공지드리죠. 그럼~. [삭제]

3 [우정 / 2005-10-14,10:29:38]

경복궁앞 ,갤러리 현대에서 작은兄<신성희> 개인전 오픈이

어제 있었지요. 조수 노릇하느라, 겨우 소간방에 들어와 보니

점?산,황?봉 구간을 다녀오셨군요,

조총꽈리에 올랐던 열,겨우 식히나 했더니, 이젠 우림님께서,

또 불을 집히는군요. 너무들 하십니다.

동절기3차대가 밟으려했던 魔의 두 구간을 이좋은 계절에

그리도 가볍게 넘어오셨네요.

그것도 "날씨 좋아 그렇게 조망이 기막힌날에,," 말입니다


우림선배님~ 너무 그러시는게 아닙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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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암산에서 본 조망-왼쪽 1,157m봉, 그 뒤로 서북 능선과 대청봉(오른쪽)>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많았지만. 내가 낳고, 내가 자란 우리 땅, 조국의 산하를 내 발로 직접 걸어 본 지난 기간은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함께 산행하면서 만난 산우(山友)들과 나눈 우정은 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 준다.

하지만 아직도 종주 마무리가 안 되는 것이 아쉽다. 휴식년제가 시행되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구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휴식년제를 시행하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 하지만, 경직된 법 운영에는 불만이다.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시기에도 입산신청을 하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있다지만, 실제로 허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관리기관의 고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누구보다도 내나라, 내 국토를 사랑하는 대간꾼들이 범법자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

2005년 9월 27일(화)
오늘은 무박으로 점봉산 구간을 땜방 산행한다. 가이더는 K 산악회다. 마지막 경유지에서 대원들이 오르자. 버스 안이 그득하다. 3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연령층이고, 여자대원들도 7명이나 된다. 이중 20% 정도는 나처럼 땜방 산행으로 참여한 듯 싶다. 다른 산악회에서 함께 대간 산행을 했던 조 고문님, 그리고 화봉 대원의 모습도 보인다.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잠이 깬다. 새벽 2시 10분, 버스는 남설악 휴게소에 30분간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새벽 공기가 차다. 주중이기 때문인지, 너른 주차장은 텅 비었다.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는다. 물을 보충하고, 포카리 스웨트를 구입한 후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자, 산악회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산행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오늘 산행은 불법 산행이다. 자신이 선두에 설 터이니, 암릉구간이 끝나는 1,157.6m봉까지는 선두, 후미 구분 없이, 모두 함께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2. 암릉구간을 지날 때는 여성대원들이 힘들어 할 것이다. 서로 도우며 통과해야 한다. 자칫 사고가 나더라도 불법 산행이기 때문에 구조요청이 어렵다.
3. 버스가 한계령에 접근하면 실내등은 소등한다. 지금부터 산행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배낭을 멘 채 대기하라.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등산로로 진입한다.
4. 초반에는 암릉구간이 많으니, 스틱은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망대암산을 통과한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5. 헤드 랜턴은 손에 쥐고, 발 밑만 비추며 이동한다. 한계령 휴게소 쪽으로 불빛이 비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주기 바란다.

이어서 알바하기 쉬운 곳에 대한 주의와 부득이 탈출을 해야할 경우에는 단목령에서 강선리 쪽으로 탈출하라고 일러 준다.

회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차안은 산행 준비로 어수선하다. 밖의 기온이 많이 차가운 모양이다. 차창에 이슬이 맺혀, 창 밖이 보이지 않는다. 한계령 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버스 헤드라이트 속으로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내등이 소등된다. 산행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긴장해서 꼿꼿이 앉아 있는 대원들의 실루엣이 비장해 보인다. 적지 고공투하 진전의 공수부대 대원들의 영화 장면이 언뜻 떠오른다.

버스가 한계령을 넘는다. 왼쪽으로 한계령 휴게소의 불빛이 환하다. 버스 안은 숨소리마저 죽인 듯 고요하다. 한계령을 넘은 버스는 오른쪽으로 굽어, 필례약수 방향으로 들어서더니, 이윽고 멈추어 선다. 3시 10분 경이다. 대원들은 소리 없이 도로를 건너고, 수로를 넘어, 숲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3:10) 산행시작-(4:15) 암릉구간 통과-(4:41) 필례골 갈림길-(6:03^6:10) 망대암산-(6:50~7:20) 점봉산, 아침식사 및 휴식-(7:51~7:56) 홍포수막-(8:22) 961.5m봉-(8:55) 855.5m봉-(9:00~9:10) 단목령-(9:35) 875m봉-(10:03) 1,020.2m봉-(10:23~10:28) 북암령-(10:55~11:00) 1,136m봉-(11:32) 1,133m봉-(11:42) 양수발전소-(11:59) 이정표-(12:16) 첫 로프 레일 설치지점-(12:50) 이정표-(13:09) 이정표-(13:16) 조침령-(13:45) 진동리』 총 산행시간은 10시간 15분으로, 마루금 산행 약 9시간 15분, 아침식사 약 30분, 날머리 약 30분 등이 소요된 산행이다.

발 밑에 불을 밝히며, 대원들이 일렬 종대로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다. 앞사람에게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싹 다가서면 앞사람이 부담을 느끼게된다. 최소한 2m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산행할 때의 기본예의라고 한다.

그렇다고 보통 산행 때, 오르막에서 나처럼 걸음이 느린 사람 뒤를 무작정 뒤따르는 것은 큰 고역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런 경우에 간단히 “양로(讓路).” 한 마디면 족했다. 그러면 앞사람은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준다. 지금 세대야 한자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니, “미안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길을 내 달라고 하면 좋겠다.

고요한 산 속에는 발자국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거칠어지는 숨소리뿐이다. 산행 시작 후 10여 분이 지나 주능선에 오른다. 왼쪽 하늘에 그믐달이 걸려있고, 별들이 총총하다. 바로 머리 위로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군데군데 암릉이 섞인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걸음들이 빨라진다.

앞에 대원들이 모여 있다. 왼쪽으로 거대한 암릉이 가로막아, 정체가 생긴 거다. 듣던 것처럼 직벽은 아니다. 가파른 암릉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두 손 두 발을 사용하면서,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 발 놓을 곳을 확실히 하고, 몸을 늘려, 바위의 홀드를 잡거나, 나무뿌리를 잡고 기어오른다. 손에 쥔 헤드랜턴이 부담이 된다. 어려운 곳에서는 앞 선 사람이 불을 비쳐주며, 손잡을 곳을 알려준다. 남자 대원들에게야 별 것 아니겠지만, 팔 힘이 약한 여자대원들은 힘이 들겠다. 드디어 암릉 위에 올라서서 내려보니, 높이가 10여 미터 가까이 되는 듯 싶다.

이어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이어지고, 일렬 종대 행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다시 정체가 된다. 어려운 코스에 이른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리막이다. 그런데 내리막으로 내려서기 전에 허공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옆으로 트래버스를 하면서 내려서야 하는 곳이다. 아래는 새카만 절벽이다. 어두워 다행이지, 밝은 날에는 오금이 저려, 옆으로 타고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험한 코스다. 앞 서 건너간 사람이 발 놓을 자리, 손잡을 곳을 알려주는 요령으로, 한 사람씩 위험한 곳을 타고 넘는다. 일단 이곳을 지나면, 나머지는 긴 내리막이지만, 조심해 내려서면 큰 문제는 없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서, 앞서 내려온 대원들이 완전히 소등을 한 채 긴 줄을 만들고, 뒷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롭게 대원이 내리막에 내려서면, 소등하라는 지시가 전달된다. 오른쪽으로 한계령 휴게소 불빛이 가까이 보인다. 대원들은 미인의 눈썹같이 요염한 그믐달과 총총한 별들을 올려보며 조용히 기다린다. “오늘이 음력 8월 25일, 하현달이로구나.” 조 고문님이 혼잣말을 한다. ‘아직도 음력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분이 있구나.’ 속으로 혼자 감탄한다. 이윽고 후미대장이 내려서고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4시 15분 경이다.

<그믐달>

이 후에도 몇 차례 암릉길이 이어지지만 위험한 곳은 지난 모양이다. 두 군데 짧은 직벽에는 로프가 걸려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른다. 내리막을 지나고, 오르막이 계속된다. 4시 4l분 경, 삼림청에서 세운 이정표를 지난다. 이정표는 현재의 위치가 필례골 삼거리이고, 주전골 안부에서 2Km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1,157m봉 정상은 언제 지나는 지도 모르고 지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안내판은 몹시 낡아 군데군데 코팅한 곳이 벗겨져 있다. <한계령 휴게소 4.0K, 망대암산 2.0K>

<이정표>

평범한 업 다운이 계속되면서 선두의 속도가 빨라지고. 후미 구룹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두 차례, 풀이 무성한 안부에서 등산로를 놓친다. 대원들이 흩어져 산행리본을 찾으면, 어김없이 왼쪽 방향으로 산행리본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어두워서 멀리서 리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내리막으로 치닫던 등산로는 5시 25분 경,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5시 47분 경,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며. 후미대장이 바싹 다가붙는다. 후미대장에게 길을 내 주고, 최후미로 쳐져 천천히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등산로 왼쪽 암봉 위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후미대장이 암봉으로 오르라고 소리친다.

<여명>


 

<망대암산 암봉>

6시 3분 경, 암봉 위에 선다. 도둑이 망을 보던 산이라 해서 망대암산(1,236m)이라 했다던가? 망보기에 알맞게 사방이 탁 트였다. 여명 속에, 북서쪽으로 우리가 지나 온 1,157.6m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곳에서 떨어져 내린 긴 능선이 구불구불 발 아래로 이어진다. 그 뒤로는 귓떼기청봉에서 흐르는 능선과 오른쪽으로 대청봉으로 뻗은 서북 능선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실로 장쾌하다. 맞은 편, 십이담계곡 쪽으로 우쭐우쭐 솟은 암봉들은 7형제 바위라고 후미대장이 알려준다. 왼쪽으로는 하얀 구름바다 속에 검은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 있다. 여명 속에 보는 풍광이라 더 한층 신비롭다. 뒤돌아 서면 코앞에 점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다.

<귓떼기청봉>


 

<대청봉>

<점봉산 오르다 본 1.157m봉과 이어진 능선, 오은쪽 망대암산>

<일출>

<점봉산>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여 떠날 줄 모른다. 지난 봄 땜방을 하면서 몇 번 만났던 여자대원, 박 여사가 연신 사방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불평을 한다. 언제 다시 올 거라고, 모처럼 이곳에 왔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지도 않고, 달리기만을 능사로 아는 남자대원들이 못마땅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10분이고, 20분이고 머물며, 떠오르는 태양 빛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주위 풍광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후미대장이 움직이니, 박 여사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뜬다.

나는 2~3분을 더 지체하며, 물도 마시고 쉬면서, 장쾌하게 흐르는 서북 능선을 바라보고, 깜깜한 밤중에 우리가 걸어왔던 능선 길을 되돌아 본 후, 떠오르는 태양을 카메라에 담고, 암릉 사이로 이어진 좁은 길을 지나 비탈길을 내려선다. 등산로는 안부를 거쳐,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길가에 “대민 계도문” 이란 알림판이 서 있다. 이곳 주목지대를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죽어 천년의 주목과 살아 천년의 주목이 나란히 서서, 마침 떠오른 햇빛을 받아, 붉은 빛을 띄고 있다.

<죽은 주목, 산 주목>

박 여사가 후미 구룹에서 떨어져, 연신 뒤를 돌아보며,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변하는 주위 풍광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나도 뒤를 돌아보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점봉산으로 오른다. 발아래 망대암산에서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반쪽이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불타고 있고, 그 뒤로 귓떼기청봉이 장엄하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이다.

<점봉산 오르다 본 망대암산, 귓떼기청봉, 7형제 바위>

6시 50분, 점봉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화봉 대원이 기다리고 있다. 약 10분전에 올라와서 주위 풍광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1,424m), 삼각점<설악 26, 04 재설> 그리고 고 임주영씨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누워있다. <점봉에서 넌 산이 되는구나. 4829. 6. 23.> 화봉 대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도시락을 풀어,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이기는 하지만 정상에서 어찌 정상주 한잔 없겠는가? 보드카. 럼주 그리고 백세주를 혼합한 칵테일을 후미 팀과 한잔씩 나누어 마신다.

<정상석>


 

<추모 석판>

후미 팀이 서둘러 하산을 하고, 정상에는 화봉 대원과 단 둘만 달랑 남아, 주위를 굽어본다. 동쪽으로 태양이 뚜렷이 모습을 보이고, 남쪽으로는 작은 점봉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부드럽게 흐르다가 곰배령으로 뚝 떨어진다. 북쪽의 능선이 햇빛을 받아 더욱 뚜렷하고, 왼쪽의 운해는 여전하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7시 20분 경, 후미 팀을 쫓는다.

<작은 점봉산>


 

<운해는 여전하고...>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7시 51분 경 홍포수막터에 이르니, 후미 팀이 쉬고 있다. 함께 5분간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다. 고산의 등산로는 단조롭다. 주로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줄을 이은 숲 속에는 키 작은 산죽이나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에, 숲 속의 명암이 교차되면서, 눈앞이 어른거린다. 숲 속에서도 선글라스가 필요하겠다. 쾌적한 산책길을 빠르게 진행하여, 8시 22분 961.5m을 지나고. 8시 54분 855.5m봉에 이른다. 855.5m봉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다. <설악 458, 2005 복구>

<단조로운 길에 명암이 교차하여 눈이 피곤하다.>


 

<855.5m봉 삼각점>

등산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6분 후 단목령(855m)에 이른다. 단목령은 4거리 너른 공지다. 단목령(檀木嶺)이라고 한자로 음각된 고풍스런 팻말이 걸려 있고, 임산금지 구역으로 지정 고시한다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이란 간판과 백두대장, 백두여장의 두개의 장승,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다. <점봉산 5.0K, 양수발전소 4.8K, 오색약수 3K>

<단목령>


 

<단목령 나무표지판>

후미 팀이 도착하여 함께 휴식을 취하며 과일을 나누어 먹는다. 남자 분이 67세, 여자 분이 64세인 부부, 박 여사, 그 외 남자 4명에, 후미대장까지 포함하여 모두 8명이 후미를 이루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을 하면서 쉴 때는 함께 모여서 쉰다. 연세 많은 부부가 함께 산행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외국 속담에 “나이 들어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젊었을 때 자신이 자기 몸에 한 일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두 분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몸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대단한 분들이다.

단목령에서 느긋하게 쉬고, 9시 10분 경, 마지막 고지 1,136m봉을 향해 출발한다. 완만한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휴식년제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등산로는 뚜렷하고, 요소 요소에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다. 산돼지들이 칙뿌리를 캤는지, 온통 땅을 뒤집어 놓은 흔적이 줄곧 눈에 뜨이는 것을 보면, 사람 왕래는 그다지 빈번한 것 같지는 않다. 단목령을 떠난 지 25분 후,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는 작은 마루턱에 오른다. 825m봉이다. 이어서 아름다운 참나무길이 이어지고, 10시 3분 1,020m봉에 올라 후미 팀을 기다리며 잠시 쉰 후, 북암령을 향해 비탈길을 내려선다.

11시 23분 북암령에 도착한다. 산행리본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누군가가 북암령이라는 비닐표지판을 나무에 걸어 놓았다. 역시 산림청에서 입산금지를 알리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간판이 세워져 있다. 후미 팀을 기다려도 내려오는 기색이 없어, 먼저 출발한다.

<북암령>

 

 


<산림청에서 세운 보호림 간판>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허위허위 올라. 약 27분 후 1,136m봉에 도착한다.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속초 24, 1992 재설> 서북 방향으로 멀리 점봉산이 보인다. 주위를 조망하며 약 5분간 후미 팀을 기다린다. 소식이 없다. 더 기다리지 못하고 11시경 자리를 뜬다. 아름다운 산책길이 이어진다. 날씨는 화창하고, 11시가 지났는데도 별로 덥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화봉 대원과 다른 남자 대원이 먼저 앞장서 달린다. 후미에서는 아직도 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1,136m봉에서 본 점봉산>


 

<아름다운 산책길>

삼각점이 있다는 1,133m봉이 나타날 때가 됐다. 하지만 주의 깊게 주위를 살피며 걸었는데도, 끝내 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11시 32분, 길가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는 이정표를 지난다. 첫 번째 만나는 장승 이정표다. 높다란 장대 끝에 단목령, 조침령 두 방향을 알리는 양팔이 달려 있다. 그 것이 전부다. 현재 위치가 어디라는 표시도 없고, 단목령, 조침령까지의 거리도 적혀 있지 않다. 누가 세웠다는 표시도 없다. 튼튼해 보이기는 하지만, 왜 이런 이정표를 세우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우러러 봐야할 정도로 높게 걸린 양팔이, 우선 기분 나쁘다.

<첫번째 장승 이정표>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간혹 무성한 잡초 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11시 42분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 앞에 선다. 현재의 위치는 양수발전소, 이 곳에서 조침령까지의 거리가 2.0Km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누군가가 매직펜으로 이 거리를 수정해 놓았다. “도상 3.2Km, 실제거리 4.5Km. 소요시간 1시간 40분에서 2시간이라고...,” 이후 조침령에 내려서니, 같은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조침령에 세워 놓은 이정표에는 이 구간 거리를 3.5Km라고 표기하고 있다.

<양수발전소에 세워진 문제의 이정표>

 

 

<조침령에 세워진 이정표 - 같은 구간의 거리가 다르다.>

내가 조침령에 도착한 시간이 1시 16분 경이니까, 양수발전소에서 조침령까지 1시간 33분이 걸린 셈이다. 남은 거리가 2Km라고 믿고, 지친 몸으로 하산하던 여자대원들이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 조침령에 질려, 하산 후 산림청에 대고 퍼붓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엉터리 이정표를 세워 놓은 양반들 귀께나 가려웠겠다.

비탈길을 내려선다. 무성한 초지를 지나니, 정면으로 부드러운 푸른 능선이 보이고. 이어서 무성한 억새 밭을 지난다. 억새 밭을 카메라에 담고 팔을 내리는데, 오른쪽 팔꿈치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한 떼의 벌들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잘못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인 것이다. 통증은 계속되고 오른 팔이 무겁게 느껴진다. 벌에 쏘여 고생했다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은근히 겁이 난다. 설마하고 준비하지 않은 암모니아수가 아쉬워진다.

<등산로는 무성한 잡초와 억새 사이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벌에 쏘인다>

11시 59분, 두 번째 멋대가리 없는 장승 이정표를 지난다. 여전히 조침령, 단목령 두 방향만 알려 줄 뿐이다. 위치는 1,018m봉이라고 짐작하지만 삼각점은 발견하지 못한다. 다시 내리막길을 달린다. 경사는 그다지 급하지 않으나, 새로 설치 한 듯한 새하얀 로프가 경사로를 따라 이어진다. 안부를 지나, 길은 왼쪽 사면을 오르더니, 좁은 암릉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전망바위에 선다.

왼쪽으로 웅장한 산세가 흐르고, 산허리를 관통하며, 한 가닥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고압 송전탑들이 줄지어 버티고 서있다. 지도를 보니 양양군 영덕리 방향이다. 북동쪽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멀리 동해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왼쪽 조망>

 

<멀리 동해가 보인다>

좁은 능선 길에서 키 작은 관목들이 배낭을 잡아끈다. 아마도 철쭉능선을 지나나보다. 12시 50분 세 번째 장승 이정표 앞에 선다. 근처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무수히 걸린 것을 보고, 900.2m봉이라고 짐작한다. 이정표를 우러러 보니, 파란 가을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유유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다. 이정표 한 팔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오른 쪽으로 급회전하여,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제 조침령이 가깝다고 짐작한다.

<세번째 장승이정표>

안부에 내려서면 조침령일 것이라는 짐작을 비웃듯, 등산로는 다시 오르막을 지나 평지로 이어진다. '대간길에서 어디 한두 번 속았나?' 체념하며 천천히 걷는다. 색다른 비닐 표지를 지난다. “ 잠깐 ! 한숨 돌리고 가시죠.../ 이곳이 북위 38°00‘ 00” 입니다./ 2005. 9. 25 대전 이진기 “ 바로 3일 전에 부착한 새로운 표지다. 가도, 가도 조침령은 멀기 만하다. 혹시 조침령을 지나친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구룡령까지 가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색다른 표지판>

1시9분, 네 번째 장승 이정표를 지난다. 여전히 한 팔은 조침령을 가르친다. ‘아하! 알바는 아니구나.’ 비로소 안심한다. 이럴 때는 장승 이정표도 고맙다. 무지막한 이정표 기둥에는 “TM좌표 와 경위도 좌표”가 표시돼 있다. 이 좌표들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상은 자꾸만 달라지고, 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기가 죽는지, 발걸음이 더욱 더 무거워진다. 눈앞의 단풍나무가 벌써 곱게 물들고 있다

<장승이정표 기둥의 좌표 표시>


 

<벌써 옷을 갈아입는 조침령의 단풍>

이윽고 세운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팔각정에 올라선다. 조침령으로 이어진 도로가 보인다. 1시 16분, 조침령에 이른다. 조침령 주위는 말끔하게 손질이 되어 있다. 조금 전에 지난 팔각정도 그렇고, 등산로에서 내려서는 길은 방부목을 깔았다. 낡은 이정표와 깔끔한 등산 안내도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잠시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침령의 팔각정>

언제 따라 왔는지 박 여사가 모습을 보인다. 혼자다. 어쩐 일이냐고 묻는다. 부부 중에 여자 분이 무릎이 아파 걷지를 못해 혼자 내려 왔다고 하며 걱정을 많이 한다. 오른 쪽 길을 따라, 진동리로 향한다. 비포장 도로 왼쪽에 조침령 표지석이 예쁘게 서 있다.

<표지석>

길 가운데서 군용 트럭이 방향을 바꾸고 있고, 오른쪽 공지에서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트럭을 지나치며, 박 여사가 군인들에게 묻는다. “이 길이 진동리 가는 길 맞나요?”, 얼굴을 검게 위장한 군인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저 트럭 안 내려가나? 타고 가면 좋겠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시며, 박 여사와 비포장 도로를 터덜터덜 걷는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고, 예의 트럭이 천천히 내려온다. “저걸 타면 좋은데... 군인 차는 작전 중에는 민간인 안 태우지요?.” 라고 박 여사가 아쉬워한다. “어디, 한번 세워 봅시다. 밑져야 본전인데.” 팔을 뻗어 트럭을 세운다. 우리들 앞까지 굴러온 차가 멎고, 조수석 유리문이 내려진다. “편승할 수 없나요?” 라고 물으니, 조수석 문이 열리며, 군인이 뛰어 내린다. 군인은 트럭 뒤로 돌아가 차단 문을 내린다. 미안해서, “10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걷기가 힘들어서...”라고 중얼거리자. 군인이 묻는다. “어디서 오시는데요?” “한계령에서 출발했어요.”라고 대답하자, 놀랍다는 눈치다. 놀라워하는 눈이 무척 맑아 보인다.

트럭 뒤에 타고 있던 군인이 팔을 뻗어, 박 여사 승차를 도우려 하지만, 박 여사는 대간꾼답게 도움 없이 거뿐히 차에 오른다. “ 차가 많이 덜컹대니 조심하세요.” 라고 외치고, 군인은 조수석으로 달려간다.

뒷좌석에 군인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다. “점심 식사했나요? 라고 박 여사가 묻는다. ”예, 했습니다.“ 자세도 흩뜨리지 않고 군인답게 간결하게 대답한다. 얼굴을 검게 위장하고, 군복에 철모를 쓴 완벽한 군인이지만 마주 앉아 바라보니, 군인 아저씨가 아닌, 앳된 얼굴이다.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몬드가 들어 있는 새알 쵸크릿과 인삼 젤리를,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권한다. 군인이 사양한다. ”젊은 사람은 단 것을 좋아하지.“ 삼총사에서 맏형 아토스가 달따냥에게 단 것을 주면서 하던 소리를 빌어 재차 권한다. 군인이 마지못해 받는다. 박 여사도 떡을 건네 준다.

작대기 세 개, 병장이다. “제대 얼마 안 남았지요?”, ”10개월 남았습니다.“
”어디서 왔어요?“ 라고 박 여사가 묻는다. ”부산입니다“ ”어머, 최전방에 왔군요.“
트럭은 비포장도로를 털털대며 천천히 굴러간다. 속도는 걷는 것에 비해 별반 빠를 것도 없다.

트럭 짐칸에는 커다란 양철통이 3-4개 놓여있다. 아마도 훈련 중인 사병들의 점심을 실어 나르고,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다. 트럭이 모퉁이를 돈다. 앞에 대원 세 사람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도 차를 세우지도 않았는데, 대원들 옆에서 차가 서고, 조수석에서 다시 군인이 뛰어 내린다. 무릎이 아파 힘들게 걷던, 젊은 여자 대원이 반색을 한다. 1시 45분 경, 트럭은 버스가 정차한 곳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 맛이 유난히 좋다. 점심을 마치고 조침령 주위를 둘러보며 쉰다. 이윽고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던 여자대원과 함께 후미 팀이 도착한다.

버스는 2시 3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10. 1)

1 [東城.... / 2005-10-03,09:05:36]

청산에 홀로 가는 나그네...

수고하셨습니다.10월1일은 가랑비가 뿌렸지만 이화령에서 조령3관문을 다녀왔습니다.10월7~8일에는 마가목 구경 잘 하십시요. [삭제]

2 [잭울프 / 2005-10-03,18:50:24]

지난대간길에 춘설을 헤치고 가다가 결국 양수발전소에서 탈출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화봉님과 조고문님도 동행하셨군요.

젊은이 못잖은 패기와 체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도 이번주말에 그 구간이나 종주해보렵니다.

유익한 정보 얻었습니다.

글구 동성님 오랫만에 뵙습니더.

대간중에 조령관 고사리마을내려갈때도 비를 맞았던기억이 나는군요.

대청마가목에 대한 추억이 가슴저리네요~.

동성님의 마가목주를 다시 기대하며, 건강들 하십시요! [삭제]

3 [우정 / 2005-10-04,10:36:38]

우림님~ 지금쯤 벌침 맞은곳이 가려울텐데, ,,,올겨울 감기

안 걸리시겠네요 .


화봉선배님, 조기현고문님, 함께하셨다니,

새로운 보수 우익세력의 태동이 느껴지네요.

동성님까지 가세하시고, 이사장님들까지 가세하시면,

가히 가공할만한 공포의 우익세력이 구성될듯 합니다.


잭~ 선배님들께서는 저렇게 벌침까지 맞아가며

무박 땜빵도 찿아가며 노익장을 과시하는데,

우리 젊은것들은 시방 뭣들하는건지?

정신 똑바루 차리구, 틈새다,번개다 ,하면서리,흩어진 세력들을

끌어 모아야지,

조만간 마가목주와 복분자 시음대회를 기획해보자구요. [삭제]

4 [우림 / 2005-10-04,15:16:40]

동성 님 !

지난 10월 1일,

6l일 만에 복분자 술을 걸러, 약 1,500cc 정도를 건졌지요.

색갈 : 맑고, 고은 빛이 최상.

향 : 복분자 냄새가 코로도 느껴지고, 마신 후 입안에 향이 남아 좋은 편.

맛 : 걱정했던 단 맛은 없고, 약간 무거운 맛.


6개월 자체 숙성기간을 기다리려, 내년 3월까지 두면,

무거운 맛이 가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참고 기다려 봐야지요.

술 박사님 ! 술 익은 후, 품평 부탁합니다.


잭 울프 님 !

단독 결행이 어려울 거야 없지만,

알바를 조심해야 할 곳이 두세 군데 있더군요.

조 고문님도 엉뚱한 곳에서 알바를 했거든요.

가기 전에 전화 주세요.


우정 님 !

우익 보수세력에 뭐 문제 있수?

요즘 개혁 내세우는 사람들, 정체도 아리숭해 불안합디다.


이번 토요일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삭제]

5 [우정 / 2005-10-06,10:06:27]

맥아더를 쓰어트리자고 아우성치는 철닥서니들이

방방 뛰는 요즘세상에, 역사를 바로보고 해석할줄아는

우리젊은 백성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수는 없다는 예기지요.

얼마전 인천 자유공원에서 귀신잡는 해병출신들 아니였으면,

맥아더는 쓰러졌을테고, 그와 더불어, 우리해병과 인천상륙작전을 펼치다 죽어간 연합군과우리 선배들의 피값도 개값이 됬을테고,

강정구교수 같은 또라이가 주장하는

"625는 북한이 주도한 통일전쟁이었다" 는 논리앞에, 우리해병선배님들과 연합군들은 천하에 없는 역적~, 통일을 방해한 민족의

원수세력 쯤으로 전락 되었을 껍니다.

우리의 엄연한 역사까지도,뒤집고자 설쳐대는 세력들의 어깨에 힘이 싣려지는 요즘 세상돌아가는 작태앞에

우린 열심히 틈새다 번개다하면서리, 체력을 양성함은 물론

아울러 선열들이 흘리신 피를 마시는 마음으로, 마가목이다,

복분자주다 하며, 붉게 물든 酒食을 마시며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고취

시켜시켜야 한다는 당위를 이 우정은 강력히

주장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대목에서 박수~>


차제에 이번 존경하옵는 우익세력의 회동은 우리 민족의 근간이요

뿌리가 이토록 건재 하다는것을 묵시적으로

보여주신것 입니다. < 또 박수~>


개혁이란 그럴듯한 명분앞에 설쳐대는 저들의 정체가

아리숭하다고 하셨습니까?.대낮에?

물론 잘 알고 계시다는 역설법인줄 압니다.


동성님께서 바톤을 받으시면 이 댓글난이, 격조있는 논객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겠네요.


제 꽈리가 넘 길었나요?. [삭제]

6 [東城.... / 2005-10-07,07:13:15]

울프氏! 찬손 브른턴손 氏 ! 잘 계셨습니까. 저는 중도 우파입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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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새벽에 추워서 잠을 깬다. 재킷을 껴입고,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아침에 잠이 깨어, 눈을 뜨니 창 밖이 훤하다. 옆자리 이 사장은 벌써 일어나 앉아 있다. "몇 시요?" 물으니, "6시 15분."이라고 대답한다.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이상하다. 핸드폰이 왜 6시 시보를 않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더니,
"밧데리가 다 됐을 꺼야." 라고 이 사장이 말한다.

 
"새 밧데리를 넣어 왔는데?"
"산에서는 밧데리가 금방 달아."


과연 세 사람 전화기가 모두 먹통이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다 보니, 우리들 건너편에서 두 사람이 웅크리고 자고 있다. 잠결에 들은 소리의 주인공들인 모양이다. 대피소 문을 밀고 밖으로 나선다. 새벽 공기가 차다. 먼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고, 가까운 골짜기에는 하얀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위로 산봉우리 두어 개가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심호흡을 해 본다.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진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권 사장도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대피소에서 새벽 풍광-구름 위에 봉우리는 
삿갓봉>

함께 스트레칭을 한다. 헌데 권 사장 몸의 유연성이 보통이 아니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맨 손 체조는 하지만, 내 몸의 유연성은, 권 사장에 비하면,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요가를 했니?" 라고 물으니,


"요가는 안 했지만, 테니스가 순발력을 요구해서, 밥 먹듯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왔지. 너도 해보라고. 처음에는 힘들지만 꾸준히 하면 되요."

 

사발면 3개를 주문하여, 인절미를 곁들여, 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빵 뿐이지만, 양이 충분하고, 향적봉 대피소도 있으니 먹을 것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어제 늦게 도착한 산꾼 두 사람이 일어나 앉아 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장년들이다. 역시 육십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왜? 알바를 했소?"라고 물으니, "아니요, 늦게 2시 반쯤 산행을 시작했고, 밤중에는 안개가 짙어 고생 좀 했지요." 안개 때문에 10시간 정도를 걸어 12시 반에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한다.

2005년 9월 16일(금).
커피까지 주문해 마시고, 느긋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8:04) 대피소 출발-(8:16) 헬기장-(8:34) 전망대-(9:00) 헬기장-(9:09~9:14) 무룡산 정상-(10:13) 돌탑-(10:34) 1,380m 이정표-(11:06) 동엽령-(11:52) 1,312m봉-(12:39) 송계삼거리-(13:13) 중봉-(13:31) 향적봉대피소-(13:39~46) 향적봉-(13:52~14:30) 대피소에서 중식-(16:00) 백련사-(17:14) 삼공매표소』총 산행시간 9시간 10분, 마루금 산행 7시간 18분, 중식 38분, 날머리 1시간 14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대피소 앞마당을 지나 무룡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 오른쪽에 <덕유 01-38> 팻말이 서 있고, 팻말 주위에 보랏빛 들국화가 소복하게 피어있다. 8시 4분, 이 팻말을 지나 언덕길을 오른다. 대피소에서 무룡산까지는 2.14Km, 약 1시간 거리다. 조용한 산길을 천천히 걷는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조망이 일품이다. 맑은 하늘 아래, 가까운 산들은 윤곽이 뚜렷하나, 먼 산들은 산 꼭지를 구름바다 위에 둥실 띄우고 있다.

<대피소 마당 끝에 세워진 119구조대 팻말 - 그 아래 쑥부쟁이가 곱다>

 

<삿갓봉에는 아직도 구름이 걸리고, 그 아래로 황점이 보인다>

 

<구름에 가린 남서쪽 조망>

얼마 걷지 않아 오름세가 그치고, 등산로는 평탄해진다. 길가의 무성한 잡초에 맺혀 있던 이슬로 바지가랑이가 축축해 온다. 산책하듯 싱그러운 아침을 걷는다. 정면으로 무룡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 더 진행하여 8시 16분 경, 헬기장에 오른다. 헬기장에서 잠시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다. 남서쪽으로 삿갓봉이 구름 위로 간신히 머리를 내밀고 있고, 그 구름 아래로 바람골이 아련하게 펼쳐져 있다. 정면에 무룡산이 부드럽게 누워 있다. 무룡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힘차다.

<무룡산으로 뻗은 능선>

8시 22분, <덕유 01-37> 팻말을 지나고, 이어서 삿갓재골 대피소 0.8Km를 알리는 이정표를 통과한 후. 8시 34분, 전망대에 선다. 구름이 걷히는 조망이 일품이다. 멀리 서봉에서 동봉을 거쳐 삿갓봉, 그 뒤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저곳을 내가 걸어왔구나....

<헬기장에서 본 걸어론 길>

 

8시 47분, <덕유 01-36> 팻말을 지나 암릉에 오르니, 부드러운 무룡산이 바로 전면에 모습을 보이고, 무룡산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암릉에서 내려서서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오르다 힘이 들면, 뒤돌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다. 헬기장에 오르기 직전, 뒤돌아본 조망이 압권이다. 설명할 말이 없다. 사진으로 설명을 대신해야겠다.

<무룔산 오르는 길>

<무룔산 오르다 뒤돌아 본 조망-동봉,서봉, 삿갓봉이 가깝다>

<가까이 본 무룔산>

9시 헬기장에 오른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워 보이던 무룡산이 가까이 보니, 정상에 다가갈수록 돌 투성이의 암산임을 알 수 있겠다. 헬기장 한 귀퉁이에 <덕유 01-35> 팻말이 서 있다. 헬기장을 지나 암릉을 타고 9시 9분 비교적 널찍한 무룡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 직전의 헬기장>

무룡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뒤에 중봉 오르다 뒤돌아보는 조망과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육십령에서 오르는 능선이 서봉을 거쳐, 동봉으로, 다시 삿갓봉을 지나 무룡산에 이른다. 이 장쾌한 흐름이 한눈에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 바로 무룡산 정상 부근이다.

<무룡산 정상에서 본 남서방향 조망>

정상석에는 무룡산의 높이를 1.491.9m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상석 앞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옆에는 <덕유 01-33>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정표도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있다. 이곳에서 동엽령까지의 거리는 4.2Km이다. 모두들 아름다운 조망에 취해 정상에서 떠날 줄 모른다.

<무룡산 정상>


<무룡산 정상의 이정표>

무룡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부드럽다. 등산로는 산죽밭으로 이어지다가, 싸리나무 군락지를 비집고 통과한다. 때로는 산죽과 싸리나무가 뒤섞인 곳을 지나기도 한다. 뒤 따라 오는 두 사람의 몸은 보이지 않고, 산죽과 싸리나무 사이에서 머리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뒤로 무룡산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뒤돌아본 무룡산>

 

<무룡산에서 내려서는 산죽, 싸리밭 길>

 

내리막이 그치고 돌이 드믄드믄 박힌 흙길이 이어진다. 향적봉 6.2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돌탑 앞에 선다. 길가에 <덕유 01-28> 팻말이 서 있다. 이곳에서 뒤돌아 본 부드러운 무룡산이 한없이 평화롭다. 등산로는 안부를 거쳐 나지막한 오르막을 오르더니 전망대에 이른다. 길가에 해발 1,380m라고 알려주는 이정표와 <덕유 01-27>의 팻말이 나란히 서있다. 눈앞에 동엽령으로 이르는 공룡 등뼈 같은 암릉과 그 뒤로 구름에 가린 중봉이, 그 왼쪽으로 향적봉 철탑이 보인다.

<돌탑>

<동엽령 오르는 길 - 중봉, 향적봉이 보인다.>

 

동엽령으로 향하는 길은 공룡 등뼈 같은 암봉들을 오른쪽으로 끼고 능선 사면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지나면서 길가 숲 속에, 홀로 떨어져 피어있는 푸른 색 야생화를 본다. 푸른색 색감이 신비로운 느낌이 들 정도로 곱고. 야무지게 오므린 꽃봉오리가 새치롬하다. 몇 차례 이 꽃을 지나치지만 한결같이 모두들 꽃잎을 오므린 모습이다. 작은 벌 한 마리가 꽃봉오리를 파고들어, 꽃봉오리 속에 온몸을 감춘다. 신기한 듯 바라보던 이사장이 "사진을 찍어, 목련 님께 무슨 꽃인지 물어보자."라고 제안한다.

<칼잎용담>

10시 56분, 벌겋게 흙이 들어 난 자그마한 언덕에 오른다. <덕유 01-25> 팻말이 맨땅에 박혀있다. 백암봉, 중봉을 거쳐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10분 후 동엽령에 내려선다.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고도 1,320m의 동엽령은 경북 북상면 병곡리와 전북 안성면 용추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북쪽으로 중봉과 향적봉이 가까이 보인다. 고개에는 커다란 안내판과 통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서있다. 119 구조대 팻말의 위치는 <덕유 01-24>이다.

<동엽령 직전 고개를 오른다.>

<산행 중 길동무-동엽령의 구조대 팻말과 이정표>

동엽령을 출발하여 송계삼거리로 향한다. 이 길은 지난 해 백두대간을 하면서 역으로 내려왔던 구간이라 낯설지가 않다. 완만한 오름세로 이어지던 길이 평탄해지며, <덕유 01-23> 팻말을 지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 숲에서 예의 푸른 야생화를 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산책로가 계속이어 진다. 길 왼쪽으로 나무 펜스가 쳐져 있다. 목장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다. 나무 펜스 밖으로는 팔 벌린 이정표가, 안쪽으로 <덕유 01-22> 팻말이 서있다.

<목장길 같은 등산로>

등산로는 오르막 암릉으로 이어진다. 11시 52분 전망대에 선다. 전면으로 백암봉으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암릉길이 보이고, 뒤로는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 뒤로 서봉과 동봉이 이제는 까맣게 떨어져 있다. 전망대를 내려서서 흙길을 지나 다시 오르막 암릉길을 오른 후. 12시 39분 송계사 삼거리(1,420m)에 도착한다. 삼거리에는 안내판과 통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 향적봉까지 남은 거리는 2.1Km에 불과하다.

<송계 삼거리 가는 길>

<송계삼거리의 119 구조대 팻말-뒤로 보이는 덕산리>

송계사 삼거리에서 배낭을 벗어 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를 조망한다. 동쪽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가득 달려있는 길이 빼재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다. 전면으로는 왼쪽에 향적봉, 오른쪽에 중봉이 솟아 있고, 중봉에서 덕유평전을 거쳐 삼거리로 흐르는 길이 띠처럼 이어진다. 뒤돌아서면 이제까지 걸어온 능선들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중봉 오르는 길-덕유평전은 이미 가을이다.>

 

12시 45분 삼거리를 뒤로하고 중봉으로 향한다. 너른 초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중봉이 정면을 막아선다. 초원을 지나, 중봉으로 이어진 능선길이 아름답다. 초원은 벌써 가을이다. 붉은 색, 노란 색으로 수를 놓은 것 같다. 초원을 가로질러 중봉을 오른다. 통나무 울타리 사이로 등산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암릉이 나타난다. 암봉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는 조망이 숨을 멎게 한다. 덕유평전이 근경이면, 구름에 가린 무룡산과 뾰족한 삿갓봉은 중경, 서봉과 동봉은 원경을 이룬다. 균형이 꽉 잡힌 완벽한 그림이다. 무룡산에서 본 서남쪽의 장쾌한 조망과 쌍벽을 이룬다 하겠다.

<중봉 오르다 뒤돌아 본 조망-완벽한 그림이다.>

1시 13분 중봉 정상(1,594m)에 오른다. 맨땅에 정상목이 서 있고, 그 옆에 <덕유 01-17>팻말이 박혀 있다. 정상목에 표시된 향적봉까지의 거리는 1.0Km이다. 서둘러 정상 주변을 카메라에 담고 앞선 일행을 뒤따른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오름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철탑을 지나 푸른 능선 끝에 우뚝 솟은 암봉이 향적봉 정상이다.

<중봉 정상>

<중봉 정상에서 당겨 찍은 서남쪽 조망>

<중봉 정상에서 본 향적봉>

<중봉 정상에서 굽어 본 안성면>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 여기저기에서 고사목들을 본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주목이 눈길을 끈다. 1시 31분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한다. 일행들이 쉬고 있다. 정상까지는 100m 거리다. 배낭을 대피소에 두고 향적봉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다. 1시 39분 향적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고사목>

<주목>

<가까이 본 향적봉>

<향적봉 대피소>

정상에는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있다. 정상목, 정상석, 등산 안내판, 이정표, 돌탑, 119구조대 팻말, 그리고 "향적봉 정상에서 바라본 덕유산 전경" 파노라마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우뚝 솟은 암봉에 오른다. 발아래 무주리조트가 보인다. 등산객을 위함인지 리프트가 운행되고 있다. 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푸르게 흐르고 그 사이로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정상 돌탑>

<정상석>

<무주 리조트>

1시 52분 경, 향적봉 대피소로 되돌아온다. 대피소 앞에 설치된 테이블에 남은 음식을 모두 꺼내 펼친다. 칵테일 200cc, 빵이 전부다. 대피소는 문이 닫혔다. 칵테일을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파운드 케이크로 점심을 먹는다. 식사가 끝날 무렵, 자리를 비웠던 대피소 관리인이 돌아와 대피소가 문을 연다. 맥주를 사서 목을 추긴다. 이 곳 대피소에 붙은 간판은 "산악인의 집"이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시설이 아닌, 사설 대피소라 맥주를 취급한다.

 

2시 30분, 백련암으로 출발한다. 대피소 앞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백련암까지의 거리를 2.4Km로 표기하고있다. 40분 정도면 하산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하산길이 만만치 않다. 노송들이 늘어선 넓은 하산 길이지만, 돌들이 삐죽삐죽 솟은 급경사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이제 지친 몸으로 무리를 하다 발목이라도 다치면 큰일이다. 엉금엉금, 조심조심 기어 내린다. 백련사 경내에 들어서니 벌써 4시다.

<벡련사-왼쪽이 대웅전>

구천동 계곡 적당한 곳에서 알탕을 하겠다는 생각도 접는다. 계곡이 금년 말까지 휴식년제로 출입금지다. 백련사에서 구천동 버스정류장까지는 약 5.4Km, 버스 시간이 확실치 않아, 지친 몸이지만 방울소리를 내며 달린다. 5시 14분 상공매표소에 도착한다. 이제 버스 정류장은 지척이다.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땀 냄새나는 몸은 씻어야겠다. 매표소 앞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옷을 말끔히 갈아입은 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5시 50분이다.

<삼흥 매표소>


 
구천동 버스터미널은 여름 한철은 문을 열지만, 비수기에는 문을 닫는다. 닫힌 문에 엉성한 버스 운행시간표가 계시돼 있다. 대전행 막차가 6시에 있다. 안도의 숨을 돌리고, 슈퍼에서 캔 맥주를 사다 마시며 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하지만 6시가 되어도 버스는 감감 무소식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터미널 뒤에서 기다리던 버스는 6시가 되자 출발을 한 것이다.

 

무주행 버스는 수시로 있다지만, 비수기라 믿을 수가 없다. 전화기를 빌어 택시를 부른다. (전화 번호는 버스 터미널에 붙어 있는 명함에서 안다.) 20,000원의 요금을 지불하고, 6시 50분 경 무주에 도착하여, 7시발 대전행 버스 표를 산다. 구천동에서 눈뜨고, 대전행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서울에 도착하여, 고기로 영양 보충할 귀중한 1시간을 날려 버린 셈이다.

 

7시 50분 대전에 도착한다. 저녁식사 시간을 감안하여 9시 10분 서울행 버스 표를 산다. 1시간 여유가 있으나 고기를 굽을 시간은 못 된다. 설렁탕에 수육으로 참기로 하고 설렁탕 집을 물어, 찾아든다.

 

버스는 9시 10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추석을 앞두고, 고속도로 하행선은 정체가 심하지만 상행선은 막힘이 없다.

 

우정산행으로 험한 길에 동반해 준 이 사장, 권 사장에게 감사한다.

 

 

(2005. 9. 22)

1 [東城.... / 2005-09-27,08:56:24]

덕유산에서 발원한 성천, 산수천, 분계천과 갈천이 합류하여 위천으로 모여서 빚어 놓은 덕유산 계곡의 절경 중의 하나다. 신권 선생은 이곳의 아름다운 산천미와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자가 산수 간에 있으니(亭於山水間)

물을 사랑하고 산을 잃은 것은 아니네(愛水非遺山).

물은 산의 가에서 흘러나오고(水自山邊出)

산은 물을 따라 둘러 있는데(山從水上還)

신령한 구역이 여기에서 열리니(靈區由是闢)

즐거운 뜻이 더불어 관련된다네(樂意與相關)

그러나 인(仁)과 지(智)의 일을 생각하면(然爲仁智事)

모든 것이 오히려 부끄럽네(擧一猶唯顔) -愼權, 1501~1573)-


일찍이 미수 허목 (許穆·1595-1682)은 덕유산기(德裕山記)에 적기를 ‘남쪽 지방의 명산은 절정을 이루는데 덕유산이 가장 기이하다(南方名山絶頂, 德裕最奇)’고 찬탄하기도 하였다.


우림님! 사진도 좋고 멋이 있습니다. [삭제]

 

2 [우림 / 2005-09-27,16:46:53]

덕유산을 오르다 보니,

사계절의 서로 다른 덕유산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데요.

특히 덕유산 겨울은 유명하지요.

겨울에는 종주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삿갓재를 거쳐, 무룡산에 오르고, 동엽령에서 하산하거나.

동엽령에서 시작하여, 덕유평전을 거쳐, 향적봉에 올랐다가,

무주 리조트의 곤도라를 타고 내려와도 좋겠지요.

올 겨울 한번 합시다.


한문는 언제 그렇게 익히셨오?

집안에 한문에 조여가 깊으신 조부님이 계서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접할 기회가 많았나 보군요.

부럽습니다.


1 [잭울프 / 2005-09-20,23:04:31]

아니 우림님! 덕유산엘 다녀오셨네요.

땜방이셨나요. 동엽령을 추억하니 아직도 "분계천도강작전"의 숨가뻤던 순간들이 가슴을 쓸게 합니다.

틈새함께 못해서 섭했습네다.

그나저나 목련님은 어데로갔나 어데로가~? [삭제]

 

2 [참꽃마리 / 2005-09-21,10:55:22]

우림님, 안녕하세요? 저는 5차대인데 저희랑 몇번 같이 산행하셨지요.

우연히 이 곳을 방문하여 예쁜 꽃사진을 보았습니다.

꽃이름은 "칼잎용담"입니다. [삭제]

 

3 [우정 / 2005-09-21,16:30:21]

결국 덕유종주를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추석다음날이 아니었으면 틈새에 缺山 하실분이 아니신데,,,,

저희들끼리만 줄거웠습니다.

이번주 토요산행 10월 24일은 주흘산으로 갑니다.

3차대들이 모일것입니다

화봉님,深山님,이사장님,우림님 함께 가시죠?

잭~

요새 목련께서는 좀 바쁘셔, 목련표 산행? 이래나 뭐래나,,,,,ㅉㅉ [삭제]

 

4 [우림 / 2005-09-22,09:58:02]

짹 울프 님 !

장수덕유산 땜방을 했지요. 하는 김에 종주도 하고,

도봉산 틈새에 끼지 못해 미안합니다. 오랜만에 다락능선을 오르고 싶었는데,

명절 다음 날은 처가에 징발 당하는 전통이 있어, 어쩔 수가 없었네요.


참꽃마리 님 !

예쁜 이름이네요. "칼잎용담", 꽃 이름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긍금하군요, 어느 분인가? 대강 짐작 가는 곳은 있는데, 모르겠네요. 힌트 좀 주세요.

꽃에 대해서도 아직 궁금한 게 더 있구요.

꽃말은? 1,000 미터 급 이상 고산에서만 자라는 꽃인가? 꽃잎을 여는 때는?

번거럽지만 한번 더 소간방에 들러주세요.


우정 님 !

주흘산은 멀리서, 가까이서 여러 차례 보았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가는군요.

하지만 넷째 토요일은 한강기맥으로 참여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심산 대원도 지금은 일본의 북 알프스를 오르고 있을 터이고,

그나저나 목련 님 찾는 수인광고를 내야하지 않겠는지요?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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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왼쪽)과 장수덕유산>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하려면 아직 3구간 반을 더 땜방해야 한다. 산이야 어디를 가지 않겠지만, 시간은 간다. 그러니 느긋하게 땜방할 기회를 기다리지 못하고,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금년 중에 모두 마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육십령에서 동엽령까지의 장수덕유산(서봉) 구간이 땜방을 해야하는 구간 중에 하나다. 지난 7월에 땜방할 기회가 있었지만, 장마가 끝난 후, 무더위 속에서 무박으로 하는 산행이라, 그것보다는 더위가 얼추 가시는 9월중에 삿갓재 대피소에서 일박한 후, 향적봉을 거쳐, 백련사로 하산하는 덕유산 종주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통편을 검색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대전까지 가고, 대전에서 장계 행 버스를 탄 후, 장계에서는 택시로 육십령까지 가는 방안을 선택한다. 육십령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의 산행시간을 8시간 정도라고 볼 때, 해 떨어지기 전에 대피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11시에는 산행을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9월에 접어드니 낮 시간이 급격히 짧아지고, 해 지는 시간이 빨라진다. 따라서 덕유산 종주를 시도하려면 추석 전에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하여 9월 15일, 16일을 산행 일로 잡고 널리 동반자를 물색한다. 하지만 웬만한 산꾼이면, 장수덕유산을 안 가본 사람이 없다보니, 동반자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

 

동반자가 없으면 혼자라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굳힌다. 반갑게도 심산(深山) 이문치 사장이 동반하겠다고 나선다. 덕유산 종주를 2번이나 했고, 대간을 하면서 2차례 장수덕유산에 오른 이 사장이지만, 내가 혼자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2l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의 일본 북 알프스 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사장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동반 결정이라 하겠다. 이후 이 사장의 연락을 받고, 대학 동창인 권기정 사장도 출발 전날 참여키로 하여, 모처럼 동창 세 사람이 덕유산 종주 산행길에 나선다.

 

종주코스는 아래와 같이 잡는다.
『육십령(약700m/2.3K)-할미봉(1,026.4m/2.92K)-교욱원삼거리(약900m/2.93K)-장수덕유산(1.492m/1.51K)-남덕유산(1,507m/1.45K)-월성재(1,240m/약 2K)-삿갓봉(1,418m/약 1K)-삿갓골재 대피소(1.260m/2.14K)-무룡산(1,492m/4.25K)-동엽령(1,320m/2,2K)-송계사삼거리(1,420m/2.0K)-향적봉(1,614m/2.4K)-백련암』마루금 도상거리 약 27.1Km, 여기에 백련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의 거리 약 5.7Km를 합치면 총 32.8Km에 달하는 긴 여정이다.

 

2005년 9월 15일(목).
5시 50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매표구에서 만나기로 한다. 강남구청 역에서 7호선 첫차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 역에 내려, 5시 45분 경 경부선 제 2 매표소 앞에 선다. 대전행 표를 파는 곳이라, 이 곳에서 기다리지만, 5시 50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윽고 권 사장이 모습을 보인다. 매표구가 여러 곳이라 이곳 저곳 찾아 다녔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이 사장에게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이 사장도 다른 매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대답이다.

 

버스는 정각 6시에 대전으로 향한다. 대전 동부고속버스터미널이 목적지다. 대전에는 버스터미널이 3군데가 있다. 따라서 승차 전에 반드시 행선지를 확인해야 한다. 드믄드믄 자리를 잡은 승객들은 빼앗긴 새벽잠을 보충하느라 모두들 골아 떨어진 모습이다. 버스가 이동 침실인 셈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깜빡 잠이 든다. 7시 10분 경 눈을 뜨고, 가져온 김밥 한 줄로 아침을 때운다.

 

7시 45분 버스는 예정보다 15분 빨리 터미널에 도착한다. 장계로 가는 동부시외버스터미널은 길 건너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산다. 8시 30분 출발, 요금은 7,200원, 장계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50분이다.

 

표를 사고 대합실 쪽으로 이동하는데, 낮선 아저씨가 다가오면서,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육십령까지 간다니까, 승용차로 가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마침 진주 쪽으로 가는 승용차가 있어 빈차로 가느니,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미 표를 샀다고 하자, 얼마를 주었냐고 다시 묻는다. 21,600원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표를 무르고, 30,000원에 승용차로 가자고 한다.

 

일행들과 상의를 하고, 매표구로 가서, 환불을 요구하니, 아침인데도 아가씨는 선선히 환불에 응해준다. 미안하다. 8시 20분 경, 검정 색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오른다. 당초에는 10시 20분 경, 장계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택시요금은 10,000원), 10시 40분 육십령에 이르러, 11시전에 산행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뜻밖에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어, 1시간 반정도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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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양반도 손님들을 모시고 가게되어 다행이라고 즐거워한다. 승용차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무섭게 질주한다. 장수 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장계를 거쳐, 구 도로로 육십령으로 향한다. 승용차는 구불구불 험한 산길을 잘도 오른다. 기사 양반은 오랜만에 육십령을 오른다며, 전에 이 험한 길에서 버스가 굴렀던 끔찍한 사고를 회상한다.

 

9시 10분 경 육십령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고, 춥다. 해발고도 약 700m의 육십령의 날씨는 이미 늦가을 날씨다. 휴게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육십령루에 올라 주위를 조망한다. 좌우의 대간 마루금은 구름에 가리고, 발 아래로 장계면이 밝는 햇볕 아래 넓게 펼쳐져 있다. 아름답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장수군에서 세운 육십령 안내도 앞에 선다. 안내도는 간단히 육십령의 유래를 설명하고, 영남과 호남을 이어주는 이 고개에서 주위 명산들까지의 거리 및 소요시간을 알려준다. 남덕유산 약 8Km(7시간), 영취산 약 11Km(7시간), 백운산 약 14.5Km(9시간), 장안산 약 14.5Km(9시간).

<육십령루 현판>

<육십령 안내판>

고개 마루턱에 세워진 충영탑과 거대한 표지석을 카메라에 담고, 대간꾼들에게 잘 알려진 조경자 할머니 얼굴이라도 보려고, 고개 너머 휴게소를 찾는다. 조 할머니는 외출 중이라 만나지를 못하고, 다른 할머니 두 분이 지키고 있는 휴게소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다시 고개 마루턱으로 되돌아온다.

<충영탑>

<표지석>

오늘의 산행 기록은 아래와 같다.
『(9:28) 산행시작-(10:07) 헬기장-(10:28~33) 할미봉 정상 -(10:40) 대포바위 갈림길-(11:13) 공터-(11:40) 교육원 삼거리-(12:13) 첫 번째 전망대-(12:37)-두 번째 전망대-(13:29) 돌탑-(13:32) 장수덕유산 정상-(13:35~14:20) 헬기장에서 중식-(14:29) 남덕유 갈림길-(15:10) 남덕유 정상-(15:22) 다시 삼거리-(15:58) 월성재-(16:40) 남덕유 2.3K 이정표-(17:19) 삿갓봉 정상-(17:38) 샘터/황점 방향표지-(17:46) 삿갓재 대피소』, 총 산행시간은 8시간 18분으로, 마루금 산행 7시간 33분(휴식 포함)에, 중식 시간이 45분이다.

 

대간길 입구에 이정표가 서 있고, 등산로는 통나무로 막혀 있다 아마도 경방기간에 출입을 통제하느라고 막아놓은 통나무를 치우지 않은 모양이다. 통나무를 잘라 만든 아취 있는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고, 통나무 사이를 빠져 넘어, 9시 28분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는 <육십령(2.3K)-할미봉(2.92K)-교육원 삼거리(2.93K)-서봉>이라고 거리를 알려주고, 그 아래로는 육십령은 덕유산 종주의 시점(始點)으로 삿갓재 대피소까지 거리는 약 13Km, 소요시간이 7~8시간임으로, 9시 이후의 종주는 조난의 위험이 있어 금한다는 알림 말이 적혀 있는 나무판이 붙어 있다.

<등산로 입구의 이정표>

육십령은 해발고도가 약 700m이다, 할미봉의 고도는 약 1,026.4m, 따라서 앞으로 300m 정도의 고도 차를 죽여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한 덕에 1시간 반을 벌었겠다, 기다리는 산악회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겠다, 바쁠 것이 하나도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가파른 사면을 천천히 오른다.

 

이윽고 주능선에 오른다. 직진하는 길과 오른쪽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이른다. 오른쪽 내리막으로 붉은 산행리본이 매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리막을 내려서니, 등산로는 아름다운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12분, 왼쪽으로 무덤 1기가 누워 있고, 그 뒤로 119 구조대의 <덕유 11-02> 팻말이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난다. 500m 단위로 세워진 이 팻말들은 이정표보다 더 유용하게 걸어 온 거리와 가야할 정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무덤 1 기 - 산행 중 유일하게 본 무덤>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습관이란 것이 무섭다. 바쁠 것도 없는데, 평탄한 길에서는 속도를 내어 두 사람을 젖히고 홀로 앞서 걷는다. 대신 오르막에서는 속도를 죽여 체력 손실을 최소화한다. 고래 대장에게 배운 행보법이다. 가파른 길이 참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간간이 암릉이 나타나고, 암릉 위에서니, 왼쪽으로 장계면 너른 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할미봉 오르면서 본 장계면>

 

10시 경, 작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비교적 너른 공터다. 공터 한 옆에 <덕유 11-03> 팻말이 서있다. 공터를 지나, 급한 비탈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난다. 공터를 지난 후 7분만에 비교적 잘 손질된 헬리포트에 오르고, 등산로는 누런 황톳길을 지나 푸른 잡목 숲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서상면 상남리 방향의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 높은 산들은 구름을 이고 있다.

<미 8군 표지의 헬리포트>

 

2시 방향에 나뭇가지 사이로 암봉들이 보인다. 할미봉이 가까운 모양이다. 10시 10분 경 삐죽 삐죽 솟은 암봉 뒤로 할미봉 정상이 보인다.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진다. 본격적으로 암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두 사람에게 길을 내 주고, 잠시 멈춰 서서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본다. 멀리 깃대봉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뒤로 백운산, 영취산,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대간과 정맥을 하면서 걸었던 능선이라 더욱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까이 본 할미봉>

암릉길을 10여분쯤 더 올라, 10시 28분 경 할미봉 정상에 선다. 정상에는 앞서 오른 두 사람이 쉬고 있다. 할미봉 정상은 너른 암반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함양 304, 2002년 복구>, 커다란 할미봉 정상 안내판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동남쪽으로 불끈 솟은 암봉 뒤로 상남리의 마을이 그림 같다. 주위의 조망을 즐기며 5분 간 휴식한다.

<할미봉 정상에서 본 상남리>

<할미봉 정상의 조망 안내판>

<할미봉 지나 가야할 마루금 - 서봉은 구름에 가렸다>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선다. 로프가 걸려 있다. 전에는 로프가 없었다고, 심산 대원이 귀뜀을 해준다. 직벽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로프가 없어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겠다. 물론 눈 쌓인 겨울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로프는 3 구간에 걸쳐 거의 잇달아 매어져 있다.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서자 흙길이 이어진다.

 

10시 40분 대포바위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지난다. 안내판 한 귀퉁이가 떨어져 너덜거린다. 보기가 흉하다. 안내판 설명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이 전주성을 공격하려고 육십령을 넘는다. 문득 할미봉 쪽을 바라보니, 산 중턱에 거대한 대포가 걸려있다. 혼비백산한 왜군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 운봉을 거쳐 남원으로 선회한다. 덕분에 장계 지역은 화를 면하게 되고, 이 후 이 바위는 대포바위라 불려진다. 하지만 남근석이란 명칭이 더 친근하다고 한다. 사내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이 남근석을 향해 치마를 걷어올린 채 소원을 빌면, 사내아이를 얻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포바위 안내판>

 

대포바위 안내판을 지나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져, 급한 암릉길로 이어진다. 역시 로프가 걸려 있다. 암릉길에서 서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암릉길을 내려서니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10시 55분, 넓은 공터에 세워진 <덕유 11-05> 팻말을 지난다. 이후 교육원 삼거리까지의 약 3Km 구간은 다소간의 업 다운은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아름다운 참나무 숲 오솔길이다. 다시 앞장을 서서 빠르게 달려나간다.

<서봉이 보인다>

<너른 공터를지나고>

 

11시가 지나자 더워지기 시작한다. 11시 40분 교욱원 삼거리(900m)에 이른다. 아취있는 통나무 이정표와 팔을 벌린 이정표, 두 가지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다. 이곳에서 서봉까지의 거리는 2.13Km, 고도차이는 약 600m에 이른다. 가파른 언덕길을 허위허위 오른다. 10여분 정도 오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날카로운 서봉과 서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제 모습을 보인다. 산죽밭을 지나니, 황톳길 급경사 사면에는 밧줄이 이어져 있다. 자그마한 언덕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 숲을 지난다. 송림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시원하다.
<교욱원 삼거리>

 

<나뭇가지 사이로 가까이 보이는 서봉>


 
삼거리를 지나오른쪽 급경사 암릉길을 오른다. 오른 쪽으로 남덕유산(동봉)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11시 54분 너른 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 주변에는 옅은 보랏빛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들국화인가? 무척 아름답다.

 

급경사 암릉길을 오른다. 두어 군데 "위험"표지 팻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12시 34분 암봉에 올라선다. 지도에 표기된 첫 번째 전망대인 모양이다. <덕유 11-12>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주위를 둘러보며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전면에 날카로운 서봉과 그 옆으로 부드러운 동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 서상면 군장동에서 유연하게 시작하여 할미봉에서 힘차게 솟구친 아름다운 능선을 감상한다. 확 트인 시야에, 눈 아래 펼쳐진 조망이 그림 같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이 시원하다. 머리 속이 텅 비워지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본 서봉 가는 길>

<전망대에서 본 오른쪽 조망>

로프가 걸려 있는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선다. <덕유 11-13> 팻말을 지나니 서봉의 암봉들이 눈앞에 가까워진다. 해발 1,300m, 육십령에서 6.8Km 지점에 와 있다고 이정표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1시 10분, 두 번째 전망바위 위에 선다. 울퉁불퉁한 바윗덩어리, 서봉 정상이 눈앞에 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뒤돌아 본 조망>

<가까이 본 서봉>

 

암봉을 내려서서 정상으로 향한다. 길은 다시 가팔라지며, 곳곳에 로프가 걸려있다. 작은 공터에 이른다. 예쁜 돌탑이 서 있고, 약수터 방향과, 남덕유산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으로 돌아 암릉을 오르니, 바로 장수덕유산(서봉) 정상이다. 시각은 1시 32분. 정상에는 <서봉, 해발고도 1,492m>를 알리는 안내판, <덕유 11-15>의 구조대 팻말, 그리고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다.

<돌틈에 세워진 119 구조대 팻말>

<동료들은 정상에 서고>

<정상 직전 돌탑과 이정표>

<서봉 정상의 등산 안내도>

<서봉에서 본 장계면>

이 사장과 권 사장은 정상을 지나 건너편 헬기장에 배낭을 벗어 놓고 쉬고 있다. 1,500m 가까운 고도임에도 바람도 없어, 사방이 고요하다. 추석이 가까운 평일이기 때문인지. 서봉 정상에 오르기까지 사람구경을 못한다. 정상주 한잔씩을 나누어 마시고, 김밥과 떡으로 점심을 즐긴다.

<정상 건너편 헬기장>

 

헬기장에서 하계(下界)를 굽어본다. 저 아래 장수군 장계면과 함양군 서상면이 밝은 햇빛 아래 평화롭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한 눈에 내려보며 신선노름을 하고 있는 거다. 수많은 능선들이 굽이굽이 깊은 골을 이루며 내달린다. 지리산 천왕봉도 보인다지만 안개에 가려 식별이 어렵고, 대간 능선이 멀리 아련하다. 앞을 막아 선 우람한 남덕유산은 구름을 이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속인들 앞에 제 모습 들어내기를 꺼리는 모양이다. 북동쪽으로 멀리 삿갓봉이 구름 속에 흐릿하게 솟아 있다.

<헬기장에서 본 장계면 - 깃대봉, 영취산, 백운산, 장안산이 보인다>

<헬기장에서 본 서상면>


<남덕유산 정상부>

바쁠 것 없는 산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들면서 자리를 뜨지 못한다. 땀이 다 식었는지 오싹 한기를 느끼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철사다리를 내려선다. 산죽 사이로 <덕유 11-16> 팻말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산행리본들이 가득 달려있다. 4분 후 두 가지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는 삼거리에 이른다. 남덕유 정상까지는 0.34Km, 월성재까지 1.1Km 라고 거리를 알려준다. 오른쪽 공터에 배낭을 벗어 놓고, 2시 50분 경, 권 사장과 함께 남덕유산 정상을 향한다. 이 사장은 공터에 남아, 낮잠을 즐기겠단다.

<두번째 남덕유 갈림길 이정표>

롱 다리 이사장이 성큼성큼 앞장을 서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모습이 사라진다. 교보증권 사장노릇을 끝으로 월급쟁이에서 벗어난 이 사장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장한 체구다. 아마도 90년대 후반, 여의도에서 만나 것이 마지막이니, 거의 10년 만에, 오늘 새벽, 다시 만난 이 사장의 입술이 터져 있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기분 나는 김에 테니스를 다섯 게임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 꼴이 됐다고 웃는 친구다.

 

동봉 오름 길에 오른쪽으로 조망이 트이고, 바위 덩어리 서봉이 험상궂게 버티고 서있다. 공터에 이른다. 앞서 보았던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이고, 한 옆에 이정표가 서 있다.<남덕유산 0.1Km, 삿갓재골 대피소 4.2Km> 계단을 오르고, 암릉을 거쳐, 3시 10분 경 남덕유산 정상(1,507m)에 선다. 정상에는 <덕유 11-17> 팻말, 이정표, 정상석, 삼각점 등이 고루 배치돼 있다. 안개가 짙어 주위 조망은 별로다. 가까운 서봉이 안개에 가려 더욱더 험상궂어 보인다. 권 사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3시 22분 이 사장이 기다리고 있는 공터에 도착하여 월성재로 향한다.

<남덕유산 정상석>

<동봉에서 본 서봉>

 

가파른 비탈길을 달려, 3시 58분 경, 월성재(1,240m)에 도착한다. 커다란 등산 안내판,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이정표, 그리고 <덕유 01-44>팻말이 사이 좋게 나란히 서 있다. 너른 공터 주변에는 작은 붉은 꽃이 다닥다닥 달린 야생화가 가득하다. 오른쪽으로 황점으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하고, 직진하는 길이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삿갓봉 꼭지가 보인다.

<월성재 안내판>

<월성재에서 북동 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삿갓봉>

 

월성재에서 약 5분간 휴식을 취한 후, 산죽 사이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오늘 산행의 마지막 오름인 삿갓봉으로 향한다. 5분 정도 올랐을까? 갑자기 전망이 확 트인다. 정면으로 멀리 삿갓봉이 보이고, 삿갓봉으로 이어진 웅장한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관이다. 오른쪽으로는 낮게 드리워진 검은 구름 아래 저녁을 맞는 황점 마을이 아련히 누워있다. 이 사장이 시커멓게 우뚝 솟은 서봉을 등지고, 전망대로 올라오고 있다.

<삿갓봉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능선>

 

4시 15분 <덕유 01-43> 팻말을 지난다. 검은 구름에 쌓인 삿갓봉이 가까이 보인다. 등산로는 삿갓봉으로 이어진 능선을 타지 않고 산 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이어진다. 4시 50분 삿갓골재 대피소 2.0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1,340m봉 전망대에 선다. 배낭을 벗어 놓고, 주위를 살핀다. 서봉에서 동봉을 거쳐, 월성재로 떨어지는 긴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정면으로 삼각형 삿갓봉이 뾰족하다.

<가까이 본 삿갓봉>

왼쪽으로 가파른 암릉길을 내려선다. 로프가 걸린 곳이 있고, 와이어 로프가 설치된 곳을 지난다. <덕유 01-41> 팻말을 지나고,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핀 칼날능선 위를 걷는다. 저녁안개가 온 몸을 휩쓸고 흐른다.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이윽고 암릉이 끝나고, 산죽길이 이어진다.

<칼날능선 위의 쑥부쟁이>

 

삿갓골재 대피소 1,0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나뭇가지에 "봉갓삿"이라는 묘한 팻말이 붙어 있다. 붉은 화살표가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삿갓봉으로 오른다. 6분 후 정상표지석이 세워진 좁은 삿갓봉 정상(1418.6m)에 이른다. 사방이 온통 안개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고, 산행 리본이 어지럽게 걸려있는 왼쪽 사면을 따라 삿갓봉을 내려선다. 이번에는 "삿갓봉"이란 팻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묘한 팻말>

<삿갓봉 정상석>

 

나무에 걸린 "삿갓골재 대피소" 팻말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부드러운 흙길이 비교적 평탄하게 이어진다. <덕유 01-40> 팻말을 지나고, 삿갓골재 대피소 0.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숲길에 안개가 내려앉아 주위가 벌써 어둑해지는 느낌이다. 샘터/황점 방향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니 길은 오른 쪽으로 굽어져 내리막 비탈길로 이어진다. 발전기 소리가 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대피소가 보인다. 5시 46분 삿갓골재 대피소에 도착한다.

<삿갓재골 대피소>

7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지만, 오늘 손님은 달랑 우리 세 사람뿐이다. 대피소로 들어서서 널널하게 자리를 잡는다. 배낭을 내려놓고, 관리인에게 땀 씻을 곳을 물으니, 60m 아래, 샘터를 이용하던가, 아니면 대피소 앞 물통에 받아 놓은 물을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물통의 물을 이용해 땀을 닦는다. 춥다.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의 땀을 대강 닦아내고, 서둘러 재킷을 꺼내 입는다.

 

대피소에서 파는 음식은 사발 라면이 고작이다. 전자 레인지가 없어, 햇반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맥주도 팔지 않는다. 고객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전형적인 철가방의 자세다. 사발 라면 3개를 주문하고, 방으로 들어와 술잔을 나누며, 피로를 달랜다. 보드카와 럼주를 1;1로 섞고,(東城 대원의 비방이다) 이에 다시 2배 정도의 백세주를 부어 만든 칵테일이다. 신문도, TV도 없는 썰렁한 대피소에서 세 사람이 술잔을 나누며 앉아 있자니, 속세와 단절된 별 세계에 온 것 같아, 마음이 고요하다. 이 사장도, 권 사장도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남은 김밥과 사발 라면으로 저녁을 마치고, 뒤처리를 끝냈지만, 아직 8시도 안 됐다. 널찍널찍 떨어져 담요를 펴고 잠자리를 마련한 후, 마당으로 나선다. 산 속의 공기가 상큼하다. 둥근 달이 잠깐 얼굴을 비치더니, 하늘 가득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깨뜨린다. 10시 경 잠자리에 든다.

 

 

(2005. 9. 20)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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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6일(토).
6차대를 따라 땜방 산행에 나선다. 6차대는 오늘, 16번째 산행으로, 『큰재-백학산-지기재』코스를 간다. 어제가 초복- 삼복 더위에, 장마전선이 남하하여 비는 오지 않고, 습도만 잔뜩 높아, 불쾌지수가 80이 넘는다는 보도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른다.

 

코스는 또 어떤가 ? 도상거리가 17.7Km라 하지만, 최근 「산 그리고 사람들」에서 GPS를 동원하여 측정한 거리는 무려, 2l.2Km나 된다고 한다. 고도 차가 심하지 않은 비교적 평탄한 코스라고는 하나 거리가 만만치 않고, 지루한 길이라 삼복더위 속에서 걷기에는 적당한 코스가 아니다.

<오늘의 산행 코스>

버스가 마지막 경유지, 복정역에서 대원들을 태운다. 오늘 참여 인원은 39명이라고 한다. 날씨와 코스를 감안할 때 대단한 호응이다. 3차 대원으로는 영환 대원, 다이아 대원이 여전하고, 유수모 님 부부, 이영하 대장을 모처럼 만난다. 무척 반갑다. 오늘은 이영하 대장이 선두에 서고, 부인과 함께 참여한 박병준 대장이 후미를 맡아 산행을 진행한다.

 

낮게 드리워진 하늘 아래,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버스 안은 강한 냉방으로 춥게 느껴지지만, 창 밖으로 흐르는 대기는 물기를 머금어 눅눅해 보인다. 스쳐 지나가는 산들이 울울청청, 한껏 생명력을 과시한다.

 

버스는 죽암 휴게소에 도착하여 30분간 정차한다. 휴게소에서 심천 대원을 만난다. 당일 코스로 지리산을 간다고 한다. 3차 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혼자서 다른 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앞으로 3차 대원들이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틈새산행을 보다 조직화할 필요가 있겠다. 대빵 님도 기꺼이 돕겠다고 말한바 있다.

 

버스는 10시 30분 경 큰재(320m)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30) 큰재 도착-(10:39) 스트레칭 후 산행 시작-(10;53) 묘 통과-(11;00) 시멘트 도로-(11;35) 회룡재-(12:10) 개터재-(12:32) 505m봉-(12:45, 13;20)중식-(14:11) 윗왕실재-(14:40) 무덤 1기-(15:25) 백학산-(15:52) 임도-(14:43) 임도-(17:05) 소정재-(17:43) 470m봉-(18:04) 지기재』, 마루금 6시간 50분에 중식 35분, 총 7시간 25분이 소요된 힘든 산행이었다.

<큰재 도착>

버스가 큰재에 도착하고, 대원들이 하차하자, 홍 대장과 박 대장이 대원들에게 5분간 준비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하차해서 산행준비를 마친 대원들, 주위 사진 찍기를 마친 대원들이 편하게 자리를 잡고 준비운동을 한다. 박 대장은 최소한 허리, 무릎, 발목운동은 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시범을 보인다.

 

다른 팀에서는 행해지지 않는 산행 전 준비 운동이 왜 6차대에서만 가능한가? 돌아오는 버스 에서 박병준 대장은 3차대에도 준비운동을 적극 권했지만 역시 실행이 되지 않더라고 토로한다. 6차대에는 선두 경쟁이 없는 것 같다. 선두 대장이 리본을 달며, 선행(先行)하지만, 대원들은 이를 쫓아 선두 경쟁을 벌이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오늘도 후미보다 2시간 넘게 일찍 하산한 부부 팀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자기 페이스대로 걷는 다고 한다. 여자대원들도 서두르지 않는 기색이다. 선두그룹, 중위그룹, 그리고 후미그룹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니,

 

"아줌마, 오이 마사지하고 내려왔수? 라는 야유도 없는 것 같다.

 

박병준 대장은 대원들에게 즐기는 산행을 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어차피 하루 산행인데, 산악 마라톤 하듯 달리기만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산의 아름다음도 즐기지 못하지 않는가? 점심도 충분히 시간을 내어 즐기되, 음주는 하산 후에 하라고 강조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조언이 6차대에게는 주효한 듯 싶다. 6차대, 브라보 !

 

박 대장은 오늘도 「산 그리고 사람들」의 상기 GPS 자료를 인용하면서, 약 21 Km의 거리를 7시간 30분 정도에 산행한 것은 훌륭한 기록이라고 대원들의 사기를 높여준다. 그러면서 서둘지 말고 즐기라고 강조한다. 오늘 코스의 산악회 기준 소요시간은 6시간 40분이다. 이 산악회의 기준 시간은 후미를 서둘게 만들고, 후미를 불안하게 만든다.

 

폐교가 되어 문이 닫힌 옥산 초등학교 인성분교 울타리를 끼고 이어지는 농로(農路)를 따라 산행은 시작된다. 한여름의 농로는 댑싸리가 어깨 높이까지 자라 있다. 그 사이를 걷고 있자니, 시골에 돌아 온 기분이다. 이윽고 등산로는 어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날씨도 점차 맑아져, 이따금 햇빛이 내 비친다.

<폐교와 폐가 사이의 농로로 산행을 시작한다.- 대원 사진>

 

10시 53분, 묘를 지난다. 봉분은 누렇지만 잡풀이 무성하지 않은 것을 보면 가끔씩은 손질을 한 묘 같다. 아마도 후손들이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모양이다. 숲길은 평탄하나, 바람 한 점이 없어, 무덥다. 시멘트 길로 내려선다. 회룡과 양촌을 연결하는 도로다. 도로에는 오른쪽으로 오르라는 종이표지가 돌로 눌러져있다. 약 100m 정도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산행 표지리본이 가득 매달려 있고, 등산로는 숲으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참나무 숲 대간 길이 이어지며 이윽고 회령재에 도착한다.

<회령재>

회령재의 황톳빛 임도에는 햇살이 밝게 비친다. 잡초가 무성하지 않고, 길이 뚜렷한 것을 보면. 지금도 빈번히 사용되는 임도인 모양이다. 등산로는 임도를 건너 절개지로 이어진다. 한 구비 오르막을 지나 평탄하던 길이 다시 경사가 급해진다. 사면을 오르다 뒤를 돌아다본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산봉우리가 보인다. 방향으로 보아 국수봉이라고 짐작하고 카메라에 담는다.

<당겨 찍은 국수봉>

 

11시 58분 경, 높게 솟은 무명봉을 우회하여, 등산로는 개터재로 내려선다. 오른 쪽으로 푸른 능선이 펼쳐지고, 안부에 가까워지자 마을이 보인다. 공성면의 제법 큰 산골 마을이다. 12시 10분 개터재에 도착한다. 개터재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개터재를 알리는 비닐판>

<개터재>

등산로는 개터재를 건너 울창한 잡목 숲으로 이어진다. 오르막 길 나무 아래에서 영환 대원이 쉬고 있다. 463m봉 부근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뒤따라온 다이야 대원과 친구들에게도 알린 후, 505m봉을 향해 출발한다.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개터재를 지나 22분이 경과된 지점에 산행리본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505m봉이라고 짐작한다.

<505m봉>

이정표라도 세워져 있으면 한결 도움이 되련만, 아무리 둘러 봐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궤방령에서 추풍령까지는 이정표가 하나도 없는 대간길의 유일한 구간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다음 구간인 추풍령에서 대재까지 구간에도 이정표다운 이정표는 없었지만, 그래도「산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 놓은 비닐 표지와 목원대 표언복 교수가 갈현고개에 걸어 놓은 비닐 표지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오늘 구간에서도 아직은 이정표나 비닐 표지하나 구경 못한다. 이후 백학산 정상을 800 미터 앞둔 지점에 「산과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 놓은 손바닥만한 비닐표지가 유일한 것이다. 궤방령에서 지기재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의 기나 긴 대간길에는 왜 이렇게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정표는 외로운 길손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다정한 길동무다. 온 길을 확인하고 가야할 길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지역의 산악회나, 이 지역을 관장하는 산림청은 꽤나 무신경한 것 같다. 애향심을 거창한데서만 찾을 일이 아니다. 외지에서 온 길손들이 외롭지 않게, 비닐표지 이정표라도 마련하여, 길손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씨도 크나큰 애향심의 발현이라 하겠다.

 

505m봉을 지나, 12시 45분 경, 463m봉 부근이라고 짐작되는 길가, 높직한 공터에서 자리를 잡는다. 도시락을 풀고 점심 채비를 한다. 다이아 대원과 친구 세 사람이 합류한다. 아이스박스에 담아 온 맥주를 나눠 마시며 갈증을 달랜다. 다이아 대원이 조총 부부를 위해 마련해온 홍어회가 일품이다. 조총 부부는 없지만, 모두가 잘 삭은 홍어라고 입맛을 다신다. 안주가 좋은 데 어찌 술이 없을까, 영환 대원이 위스키를 꺼낸다.

<단란한 중식 - 대원 사진>

식사가 한창인데, 박 대장이 한 무리의 후미 일행과 함께 지나친다. 홍어회 맛을 보라고 불러들인다. 합류한 후미 일행은 쉬면서 땀을 들이며, 빨리 방을 빼라고 독촉이 성화같다. 식사가 빠른 여자 대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윽고 후미 대원들이 점심상을 차린다. 상추에, 과일에 푸짐한 점심상이 펼쳐진다. 방 값으로 60도 짜리라는 홍주 한 잔씩을 받아 마시고. 1시 20분 경 영환 대원과 함께 자리를 뜬다.

 

점심도 먹었겠다, 취기도 적당하겠다, 윗왕실재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한줄기 바람만 시원하게 불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뒤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국수봉이라고 짐작되는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 1시 49분, 산행리본이 어지러운 봉우리에 선다.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져 급히 떨어진다. 463m봉이라고 확신한다. 영환 대원과 배낭을 벗어 놓고,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쉰다.

 

비탈길을 내려서며 눈앞에 우뚝 솟은 무명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동물 이동로에 선다. 윗왕실재에 도착한 것이다. 동물 이동로를 건너 무명봉으로 향한다. 왼쪽으로 윗왕실의 푸른 논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명봉을 힘겹게 오른다. 2시 40분 경 무덤 1기를 지나고, 산행리본이 걸린 고개를 지난다. 무명봉 정상인 모양이다. 2분쯤 걸어 내려서니, 지나온 능선들이 뒤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것이 무슨 봉인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다. 2시 50분, 477m봉을 지난다.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조망이 아름답다.

<윗왕실재 뒤의 무명봉>

<윗왕실재>

<윗왕실 마을>

2시 56분, 「산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 놓은 비닐 표지판을 지난다. 현 위치를 477m봉으로 표기하고, 백학산까지의 거리가 0.8Km라고 적혀있다. 477m봉은 이미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다. 지도나 고도표에 의하면 477m봉에서 백학산까지는 약 1.5Km에 이른다. GPS로 측정한 거리라지만 이해가 안 된다.

<산과 그리고 사람들이 부착한 비닐표지판>

급경사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른다. 능선에 이르러 등산로는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평평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3시11분 첫 봉, 3시 20분 둘째 봉 그리고 3시25분 백학산 정상(615m)에 이른다. 정상에는 다이아 대원과 친구들이 쉬고 있다. 이들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먼저 하산한다. 정상에는 정상석 이외의 다른 표지는 없다. 사방이 나무로 가려 조망도 별로다.

<백학산 정상의 정상석>

이윽고 60도 짜리 홍주에 취해, 뒤로 쳐졌던 영환 대원이 올라온다. 함께 물을 마시고 쉰다. 정상초를 즐긴다. 3시 32분 경 백학산을 내려서서 경사가 급한 내리막을 달린다. 15분쯤 내려서자 앞이 트이면서 멀리 마을과 도로가 보인다. 3시 52분 임도에 이른다. 길에는 산정산악회 종이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내려서라고 가르친다. 오늘은 요소 요소, 필요한 곳에는 빠짐없이 산악회 산행리본이 걸려 있거나 길 위에 종이 표지판이 놓여 있다. 이영하 대장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하산하며 본 조망>

<백화산 넘어 첫번째 임도>

임도 왼쪽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대간 마루금에도 물이 흐르고 있다. 임도 오른쪽으로 리본이 걸려있다. 등산로는 오르막 숲길로 이어진다. 리본 앞에 배낭을 벗어 놓고, 냇가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흐르는 물에 두 발을 담가, 열을 식히고 싶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아쉽지만 참는다.

<대간 마루금을 흐르는 냇물>

 

4시경 다시 배낭을 지고 길을 재촉한다. 갈 길이 6Km 남짓 남아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서인지 힘이 나는 것 같다. 완만한 내림 길을 속력을 내어 달린다. 영환 대원도 힘이 나는 모양이다. 앞장 서 달린다. 4시 43분 임도에 이르고, 리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선다. 등산로는 숲길을 한 바퀴 감아 돌더니, 시야가 확 트이는 논 가로 이어진다. 푸른 논 너머, 야트막한 동산에는 특수 작물을 재배하는지, 하얀 시설물들이 보인다. 논의 벼에는 벌써 이삭이 달려있다.

<대간길은 논두렁을 타고 이어지고....>

등산로는 논둑을 지나 잡초가 한길이 넘게 우거진 안부를 지나 농로로 이어진다. 농로 주변에 과수원이 펼쳐진다. 포도밭이 있고, 사과나무도 있다. 어떤 밭에는 담배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농로 위에 경운기가 서 있다. 부부가 일을 하다 쉬는 모양이다. 혼자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며, 아저씨는 술을 권하고, 아주머니는 도마도을 권한다. 술은 덥다고 사양하고, 도마도 한쪽을 받아먹는다. 냇물에라도 담갔던 것인지 무척 시원하다. 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아주머니가 두 손을 흔들며 질색을 한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길길이 자란 잡초에 묻히고...>

<먼 산을 배경으로 그림같은 포도원을 지나...>

<담배 밭과 만난다>

이번 구간은 변화가 없어서, 꽤나 지루한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등산로 주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수없이 임도나 농로를 건넌다. 과수원, 목장, 논과 밭, 그리고 무덤들을 가까이에 두고 이어지는 이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오지의 신비나, 암릉 길의 스릴은 없지만, 또 다른 대간 길의 진수를 보여 주는, 무척이나 정겨운 길이라 하겠다.

5시 5분, 아스팔트 고갯길, 소정재에 도착한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걷는다. 주위가 온통 과수원이고 밭이다. 아름답다. 얼마 내려서지 않아, 리본이 왼쪽 농로로 유도한다. 농로를 따라 걷는다. 등산로는 다시 오른 쪽 숲으로 이어진다. 더위 때문인지 무척 지쳐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나무가 우거져 숲은 컴컴하다. 물이 흘러내린 경사진 골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대간 길에 물이 흐르다니? 길을 잘 못 든 것은 아닌가? 갑자기 불안해진다. 하지만 외길을 따라 왔으니 잘못일리 없다고 되 뇌이며, 마루턱에 올라선다. 대간 표지 리본들이 보인다.

<수정재 아스팔트와 과수원>

<땡볕에 과수원의 사과는 영근다>

 

470m, 마지막 봉우리를 오른다. 왼쪽으로 묘 2기가 나란히 놓여있고, 그 너머로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5시 43분 경 470m봉을 지난다. 앞이 트이며 빈 밭을 지나는 대원들이 보인다. 밭둑을 지나 농로로 내려선다. 포도원 사이로 이어진 시멘트 길을 걷는다. 홍 대장이 마주 올라오며, 수고했다고 웃으며 반긴다. 6시 4분 지기재에 도착한다. 길가의 분수령 표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의 거북 비석 등 낮이 익은 곳이다.

<묘에서 본 그림>

<빈 밭을 내려서는 대원들>


<낮익은 지기재>

버스는 소정리 쪽으로 300여 미터 내려선 곳에 주차 해 있다. 먼저 하산한 대원들이 길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다. 차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기사 양반이 준비한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신다. 많이 지친 몸이 살 것 같다. 땀을 씻을 곳이 마땅치 않다. 6시 30분 경 후미 팀이 도착하자, 버스는 소정리 개울로 향한다. 장마로 불은 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대원들은 냇가로 내려가 목물을 하는 등 땀을 닦는다. 몸을 씻고, 땀에 젖은 옷을 몽땅 갈아입으니 날라 갈 듯 시원하다.

<아! 시원, 시원.... 대원 사진>

신탄진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버스전용노선을 달려, 9시 26분 경 톨게이트를 지난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다. 샤워를 하고 체중을 달아보니 2Kg이나 빠졌다. 겨울의 보온관리보다 여름의 체력관리가 더 어려운 모양이다. 힘든 하루였다.

 

이제 땜방을 해야하는 구간은 육십령에서 동엽령에 이르는 덕유산 구간, 그리고 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설악산의 3구간이 남아 있다. 공교롭게 명산들만 남은 셈이다. 이 구간들은 삼복 더위가 지나고,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 여유를 갖고, 천천히 산행할 계획이다.

 

 


(2005. 7. 17.)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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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출범한 백두대간 종주 6차대가 7월 2일(토), 14번째 산행으로 「궤방령-눌의산-추풍령」구간을 산행한다. 이 구간은 땜방을 해야하는 구간이고, 정맥 산행일정과도 겹치지 않아, 6차대와 함께 산행할 절호의 기회라고 오래 전부터 기다려 왔다.

 

가장 최근에 발족하여 아직 자체 조직도 갖추지 않은 6차대이지만, 6차대는 2가지 점에서 관심을 끈다. 첫째는 3차대에서함께 대간을 했던 대원들 가운데, 상당수의 대원들이 6차대에 참여하여, 재수(再修)를 하거나, 못다한남은 구간을 이수(履修)하고 있다. 때문에 이 곳에 가면 이들을 반갑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그 한 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산행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팀이란 점이다.

 

대간 산행을 하는 날에는새벽에 집을 나와,3시간정도, 좁은 버스에 쪼그려 앉아 졸다가,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산행 전에 경직된 근육을 이완 시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 필요성도 느끼고 있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항상 별개의 문제다. 스트레칭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준비 운동에 익숙하지 않아, 쑥스러워서 인지 ? 또는 갈 길을 서두르는 조급함 때문인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산행지에 도착하면, 기껏 함께 기념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생략한 채 서로 앞을 다투어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별나게도 6차대는 출발 전 모든 대원들이 함께 모여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가 좋다. 그리고 궁금하다. 왜 6차대에서는 이것이 가능한가? 팀 전체를 이끄는 강한 독재자가 있는 건가? 혹시 스트레칭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는 제도가 있는 건 아닌가? 그도 저도 아니면,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뛰어난 인물들만 모인 팀인가?

 

장마가 시작되고, 어제까지 중부지방에는 집중 호우가 쏟아져, 가옥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크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한여름의 장마는 더위를 식혀주는 은총과 농사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신이 베풀어주신 오묘한 조화(調和)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고마운 장마가 최근에는 게릴라성 폭우로 돌변, 피해를 주더니,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중부지방에서부터 장마가 시작되는 이변을 보인다. 폭우로 모처럼 기대하던 산행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산악회에 전화를 한다. 우천 불구 산행은 강행된다는 대답이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빠르게 남으로 이동하여, 폭우는 지나가고, 비는 소강상태를 보인다. 하지만 우중 산행에 대비,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평소보다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마지막 경유지, 복정역에서 대원들을 태우니, 오늘 참여 인원이 35명에 이른다. 날씨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인원이다. 우중 산행을 염려해서인지 대빵 님이 직접 나와 진두지휘한다.

 

3차대에서 함께 산행했던 대원들을 반갑게 만난다. 오늘 산행에서는 정진수 대장이 선두에 서고, 은영 당수가 중위를 맡아, 무전기를 챙긴다. 후미는 대빵 님이다. 죽암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 버스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부슬비가 차창을 두드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개울에는 누런 황톳물이 사납게 흐른다. 이 지역에도 지난밤 폭우가 쏟아진 모양이다. 버스는 황간 I/C로 내려서서, 49번 국도를 타고 내리더니, 매곡 삼거리에 이르러, 왼쪽으로 돌아, 977번 지방도로로 진입한다. 10시 41분 버스는 궤방령에 도착한다.

<차창 밖으로 본, 강처럼물이 불은하천>

<궤방령>

오늘의 구체 산행코스는 『궤방령(310m)-418봉-첫 번째 안부(320m)-두 번째 안부(380m)-가성산(710m)-장군봉(606m)-683봉-눌의산(743.3m)-경부고속도로-철도건널목-국도-추풍령(220m)』으로, 도상거리 약 10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5시간이다.

<오늘의 산행지도>


 

실제 산행시간 기록은 아래와 같다.
『(10:41) 궤방령 도착-(10:44) 산행 시작-(10:57) 418봉-(11;10) 두 번째 안부-(12:29, 13;00) 가성산 도착, 중식 후 출발-(13:30) 장군봉-(14:04) 683봉 헬기장-(14:19, 14;30) 눌의산 정상, 휴식 후 출발-(15:10) 포도밭-(15:24) 고속도로 통과-(15:37) 추풍령』이다. 마루금 4시간 23분, 중식 30분, 총 4시간 53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궤방령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그쳐 있다. 하지만 대원들은 우중산행 준비에 바쁘다. 차량통행이 빈번한 도로변이라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인지, 또는 우중산행 준비에 바빠서 인지, 대빵 님이 스트레칭을 하라고 권해도 반응이 없이, 모두가 바쁘게 돌아간다. 모처럼 함께 준비운동을 하려던 기대가 깨진다. 산행준비를 마친 대원들은 왼쪽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서서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한 경사의 잡목 숲길이 비에 젖어 있다. 습도가 높다. 바람 한 점 없는 오름 길이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서니 나뭇가지에 산행표지 리본이 가득 달려 있다. 아마도 418m봉인 모양이다. 이정표도 없고, 고도계도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걸려있는 표지리본이 다양한 걸로 보아 418m봉이라고 짐작한다.

<418m봉을 지나는 대원들>

 

오늘 구간은 대간 중에서 가장 짧은 구간(도상거리 약10Km)에, 가장 낮은 령(嶺)(대관령, 220m)을 지나는 2가지 기록을 갖는다고 대빵 님이 설명했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 백두대간 길에 이정표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구간 - 오늘은 이정표를 한 개도 구경하지 못한다.

 

비탈길을 내려서서 4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오리골 갈림길인 모양이다. 역시 이정표는 없다, 정면으로 가팔라지는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른다. 11시42분 경 뻘겋게 떼가 벗겨진 무덤을 지난다. 비구름이 안개처럼 숲에 드리워져 있다.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연신 땀을 훔쳐내고, 비탈길에 서서, 찬 어름 물을 마시며 열을 식힌다.

<두 번째 안부 - 오리골 가는길>

 

나뭇가지 사이로 북서쪽 전망이 트인다. 멀리 산 사면을 타고 비구름이 빠르게 오르는 걸 보면 날이 개이려나 보다. 흙 길만 계속되더니, 길가에 드믄드믄 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산로가 완만하게 오른쪽으로 감돌아 오르면서 왼쪽으로 점점 시야가 트인다. 비에 말끔하게 씻긴 마을이 그림같이 누워있다. 바람결이 스쳐간다. 한결 살 것 같다.

<걷히는 비구름>

<비온 후 말끔해진 마을>

다시 허위허위 된비알 길을 오른다. 12시 19분, 산행리본들이 어지럽게 달린, 제법 널찍한 공지에 중위 그룹을 이끌고 온 은영 당수와 3차 대원들이 쉬고 있다. 다이야 대원, 늘소 대원, 동성 대원, 영환 대원, 모두 땀에 흠뻑 젖어있다. 12시 29분, 가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정상 석은 절반이 잘려져 없어졌다. 저절로 잘렸을 리는 없을 터이니, 어느 철없는 등산객이 힘 자랑을 한 모양이다.

<반만 남은 가성산 정상석>

 

묘하게 정상이 모두 시멘트로 포장 돼있다. 용도를 모르겠다. 사방의 잡목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낮게 드리워진 시커먼 하늘이 휑하니 보일 뿐이다. 다소 시간이 이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바람기가 있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이윽고 대빵 님이 후미일행과 같이 도착하여 점심 대열에 합류한다. 백세주를 나누어 반주를 하고 김밥을 먹는다. 동성 대원은 럼주를 개봉하고, 영환 대원은 오뎅을 다 준비해 왔다. 은영 당수와 영환 대원이 준비해온 과일이 푸짐하다.

<가성산 정상, 시멘트 위에서 점심>

 

점심을 마친 대원들이 하나씩 둘씩 짝을 지어 출발한다. 1시 경, 동성 대원, 영환 대원과 함께 최후미로 쳐져 왼쪽 급경사 길을 내려선다. 뻘겋게 들어 난 진흙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스틱을 사용해, 네 발로 걷는다. 그래도 여의치 않은 곳은 나무 가지를 잡고 내려선다. 아차! 발이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바지 궁둥이가 볼만하겠다. 이런 급경사를 27분간 내려선 후 안부에 이른다. 등산로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이어진다.

 

1시 30분 경, 언덕 위에서 대빵 님이 쉬고 있다. 장군봉이다. 역시 아무런 표지가 없다. 대빵 님도 장군봉이라고 확신을 갖기 어려운 모양이다. 바람이 시원하니 쉬고 가라고 권한다. 내리막을 거쳐 완만한 오름세를 걷는다. 울창한 잡목 숲 사이로 이따금 햇빛이 비쳐든다, 땅에 희미한 그림자가 생긴다. 정면으로 시야가 트이며 푸른 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683m봉이다. 2시 경 산행리본이 달려 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683m봉인가 했더니, 뒤에 따라오던, 두레골 대원이 683m 봉 정상은 헬리포트라고 귀뜀해 준다.

<장군봉 내려오며 본 683m봉>

야생화에 조예가 깊고, PC도 잘 다루어, 아름다운 화면과 섬세한 후기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는 두레골 대원은 역시 예습에도 철저하다. 4분쯤 더 걸으니 잡초가 무성한 조그마한 헬기장을 지난다. 헬기장을 건너오는 두레골 대원의 얼굴에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제 날씨는 많이 개였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정면에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이 얼굴을 내민 눌의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시 헬기장을 건너고, 등산로는 급경사 사면을 오른다. 더위에 지쳐 천천히 걷는다. 자주 쉬며 물을 마신다. 후미에서 따라 오르는 대빵 님에게도 길을 양보하고, 최후미로 쳐진다. 두 발자국 오르고 한 걸음 쉬는 특유의 주법으로 천천히 오른다. 2시 19분 경, 너른 헬기장이 있는 눌의산 정상에 선다.

<눌의산 정상>

정상에서 비로소 사방의 조망이 트인다. 대빵 님으로부터 주위의 산세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남쪽 바로 눈앞에 지나온 가성산이 밋밋하게 누워있다. 그 뒤로 여시골 산에서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이 멀리 보인다. 동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그 오른쪽 끝에 김천시가 펼쳐져 있다. 북으로 금산에서 묘함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대원들을 부른다. 하루 종일 조망다운 조망도 즐기지 못하고, 찜통 같은 숲길만 걷다가, 조망이 좋은 이 곳에 서니, 땀을 흘린 보람이 느껴진다.

<눌의산 정상에서 본 가성산>

<여시골산에서 황악산으로 흐르는 대간 능선>

<경부고속도로와 오른쪽 김천시>

<눌의산 정상에서 본 광천리방향, 그 뒤가 묘함산>

여자대원들이 가져온 과일로 정상파티가 벌어진다. 3차 대원들은 한발 앞서 하산을 시작하고, 한참 후인 2시 30분 경, 영환 대원과 함께 뒤를 따른다. 더위 때문인지 많은 대원들이 느긋하게 정상파티를 즐기며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하고 역시 미끄럽다. 조심조심 내려선다.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서니 다시 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에서 오른쪽으로 추풍령 저수지와 추풍령을 내려다본다. 헬기장을 건너 다시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되더니, 점차 경사는 완만해지고, 등산로는 추풍령으로 내 닫는다.

<헬기장에서 본 추풍령 저수지>

아무리 내리막길이라도 대간 길은 반드시 두 서너 차례는 오름 길이 있게 마련인데, 신통하게도 추풍령으로 떨어지는 이 길은 줄곧 내리막 일변도이다. 길이 평평해지면서 다이야 대원과 친구 분, 그리고 늘소 대원이 길가에서 산딸기를 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두개 따서 먹어보니 맛이 별로다. 시원한 맥주 생각에, 이들을 앞질러 달린다. 오른쪽으로 포도밭이 보이고, 등산로는 포도밭 왼쪽으로 이어져, 임도로 오른다. 저 앞에 은영 당수와 동성 대원이 걸어간다. 앞에 보이는 고속도로로 차들이 질주하는 것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대간길의 산딸기 - 대빵님 사진>

<포도밭 1>

<포도밭 2>

뒤돌아 지나온 눌의산과 포도밭 주위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뒤쳐진다. 3시24분 경 고속도로 지하 통로를 지나 커다란 포도밭에 이른다. 정면에 포도밭을 가로질러 시멘트길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진행하여 철로 건널목을 건넌 후, 오른 쪽으로 마을을 통과하여 국도에 이른다. 추풍령이다. 3시 32분 경이다.

<고속도로 지하통로로 향하는 대원들>

<추풍령 건널목에서 본 기차길 - 대빵 님 사진>

왼쪽에서 대원 한 사람이 내려온다. 왼쪽에는 아무 것도 없단다. 함께 오른 쪽으로 국도를 따라 내려온다. 국도에서 보는 눌의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저 아래 버스가 보인다. 3시37분 버스에 도착,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건너편 추풍령 할매갈비 본점으로 들어선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식당으로 들어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3차대에 합류한다.

<추풍령에서 본 눌의산>

<국도 변 충북 도계석 - 추풍령 표지석은 간 곳이 없다>


 

시원한 맥주를 한 컵 마시니 살 것 같다.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서 인지, 모두들 갈증이 심한 모양이다. 동성, 은영, 영환 등 네 명이 맥주 6병을 비운다. 이윽고 후미 팀이 모두 하산을 한 모양이다. 기사 양반이 와서, 모두들 내려왔다고 알려준다. 동성 대원이 카운터로 가더니 계산을 한다. 남은 잔을 비우고 서둘러 일어선다. 밖에는 그 동안, 잠시 비가 내린 모양이다. 도로가 젖어있다.

 

버스에 올라 배낭을 챙긴다. 이윽고 후미대원들도 출발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4시 2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5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신탄진 휴게소에 도착, 30분간 정차한다.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모처럼 만났으니 3차 대원들은 논현동 비어 할레에서 생맥주 한잔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동성 대원이 불쑥 제안을 한다.

 

7시가 조금 지나 양재역에 도착한다. 다이야 대원은 함께 온 친구 때문인지 양재역에서 내린다. 논현역에서 나머지 3차 대원들과 술은 못하지만 분위기에 끌려 합석하기로 한 정진수 대장이 함께 어울려 비어 할레로 들어선다.

 

모처럼 만난 자리,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2차대와 3차대간에 있었던 숨은 이야기들, 마가목 주 이야기, 댓글 필화사건 등 화제가 무궁하게 이어진다. 술을 전혀 못하는 정진수 대장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9시가 가까운 파장 무렵, 동성대원이 정색을 하며 계산은 자기가 하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여기는 나의 영역이라고 이의를 제기해도 막 무가내기다. 아마도 아침에 버스에서 만난 순간부터 오늘은 자신이 한 방 쏘겠다고 작심을 모양이다.

 

땀을 많이 흘리고, 반소매, 반바지 차림에 에어컨이 강한 홀에 앉아 있어서인지, 두통이 나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또 정진수 대장은 술도 안 하니 2차 가자는 제안도 못하고, 따듯한 대접만 받고 헤어진다. 앞으로 땜방을 해야하는 3차 대원들은 6차대에 합류하도록 적극 권장한다.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과의 즐거운 해후와, 아울러 정겨운 대접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2005, 7. 3.)

Posted by Urimahn
,

 

2005년 5월 25일(수).
K산악회를 따라 2번째로, 백두대간 제14 구간의 땜방 산행에 나선다. 산정산악회 6차대의 이 구간 산행이 7월 둘째 토요일(7월9일)로 예정돼 있어, 정맥 산행과 중복이 되기 때문이다. 산행코스는, 『추풍령(220m)-금산(384m)-502m봉-435.2m봉-사기점고개(390m)-작점고개(340m)-갈현-687m봉-용문산(710m)-국수봉(790m)-큰재(320m)』이다.

<오늘의 산행지도>

실제 산행시간은 『10시 10분 추풍령 할매 갈비집 앞 도착-10시18분 도로공사장 좌측의 등산로로 진입-10시38분 금산-11시8분 502m봉-11시41분 435.7m봉-12시 1분 사기점고개-12시53분 작점고개-13시18분 473.7m봉-13시20분 중식,13시45분 중식 후 출발-13시59분 갈현고개-15시04분 용문산-16시8분 국수봉-17시 18분 큰재 도착』으로, 마루금 6시간 43분, 중식 25분, 총 7시간 8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이 구간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 어오면, 상주시 공성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의 4개 면에 속해 있다. 도상거리가 약 18.5Km로 비교적 긴 편이고, 특히 산행시간의 기준을 잡기가 어려운 곳이다.

 

조선일보사에서 간행한 실전 백두대간 종주에서는 8시간 38분이 소요된다고 설명하고, 산악회 기준시간은 7시간 50분, 나의 실제 산행시간은 6시간 42분, 지난 해 고래 님의 이 구간 산행시간은 5시간 47분(이상, 중식시간 제외한 마루금 산행시간)으로 편차가 심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아마도 이 구간은 백두대간 마루금 훼손이 워낙 심해, 조금씩 실제 걸은 길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이 그런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요 구간별 소요 시간을 비교해 본다.

 


추풍령에서 사기점고개까지의 구간은 도상거리가 약 5Km로, 대강 2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조선일보의 경우, 3시간으로 보아, 약 1시간정도를 더 많게 본 것은 아마도 자료 처리과정에서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된다. 조선일보에서는 502m봉에서 435.7m봉까지의 도상거리 약 1.5Km, 완만한 산책길의 소요시간을 1시간 20분이라고 했으나, 이 구간은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임으로, 이는 원고 작성자의 착오, 아니면 미스 프린트 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사기점고개에서 작점고개에 이르는 길은 2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임도를 걷고 관측소로 오르는 시멘트 길을 따르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어렵지만 마루금을 찾아 걷는 방법이 그 것이다. 산악회에서는 이 구간 소요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보아, 30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마루금을 찾아 걷는다고 보았기 때문 일 것이다.

 

어찌됐건 작점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임도와 시멘트 도로로 훼손되어, 마루금 찾기가 쉽지않고, 많은 대간꾼들이 도로를 따라 걷는다면, 이 구간은, 후미를 기준으로, 약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보면 적당하겠다.

 

***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날씨는 맑은 편이지만, 안개가 옅게 끼어, 창 밖의 풍광이 선명하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산들은 신록의 싱그러움을 버리고, 이미 짙은 녹색으로 바꾸어 치장을 한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물이 흥건하다.

 

죽암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9시 10분 경 다시 추풍령으로 향한다. 추풍령 휴게소를 지나 버스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4번 국도로 내려서서, 잠시 영동 쪽으로 북상하다, 추풍령 할매 갈비집 앞에 정차하고, 대원들을 내려놓는다. 대원들은 스틱을 펴는 등 산행준비에 바쁘다. 이윽고 열을 지어, 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왼쪽 고속도로 건너편에 눌의산이 푸르게 솟아있다.

<눌의산>

도로를 따라 약 200여 미터 오른 후. 오른쪽 도로 공사장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서자, 왼쪽으로 산행 리본이 어지럽게 매달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등산로는 수로(水路)를 건너, 가파른 산길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잡목숲길을 힘겹게 오른다. 떡갈나무 잎들은 아직도 신록이다. 싱그럽다.

<등산로는 바로 이 도로공사장 왼쪽 사면이다.>

너른 암릉이 이어지고 경사가 급해지며, 10시 34분 경, 토사의 붕괴를 막으려고 철망을 씌워 놓은 금산에 오른다.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이 금산의 북쪽 절반이 잘라져 나가 100m가 넘는 절벽이 만들어져 있다. 위험하다. 절벽 아래로 보이는 차량들이 성냥갑 같다. 아직도 자갈 채취가 계속되는 지, 공사장으로 이어진 길 위로 트럭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위험한 절벽 끝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남으로 눌의산을 찍고, 발아래 추풍령, 북동 방향으로 추풍령 저수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가야할 방향은 바로 앞의 낮은 산들이 시야를 가린다. 사진을 찍다보니 최후미로 쳐진다. 서둘러 오른쪽으로 난 급사면 비탈길을 달린다.

<절반이 잘려나간 금산>

<추풍령호와 자갈채취 공사장 진입로>

<추풍령>

 

급경사 내리막길이 안부에 이르러,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비교적 평탄한 등산로로 바뀐다. 하지만 좁은 등산로로 뻗어 나온 잡목 가지들이 마구 배낭을 잡아당긴다. 등산로는 다시 급경사 오름길로 이어지고,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502m봉이다. 봉우리를 지나자 등산로는 훨씬 넓어지고, 편안해져, 산책로로 변한다. 비교적 너른 공지에 잘 손질 된 해주(海州) 오(吳)공의 묘를 지난다. 11시 17분 경이다.

 

널널한 숲길을 통과하고, 435.7m봉을 지난다. 오르막길에 추풍령 4.3Km라는 비닐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산 그리고 사람들이 GPS로 측정한 거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길가에 하얀 꽃을 가득히 매단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찔레꽃인가? 하지만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없다. 찔레꽃은 아닌 모양이다.

<산과 그리고 사람들의 이정표>

<무슨 나무인가?>

오른쪽으로 관측소가 보이는 능선과 묘함산이 보인다. 12시 경 누런 진흙길, 임도에 내려선다. 사기점고개다. 임도는 동쪽으로 휘어져, 묘함산이 더욱 가까워진다. 퇴비 철인가? 거름 냄새가 심하게 나는 임도를 걸어, 12시 25분 시멘트 길에 올라선다.

<묘함산>

<사기점고개>

시멘트 길은 북쪽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길 위에 놓여 있는 산악회 표지가 두 방향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 하나는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라고 지시를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라고 유도한다. 아마도 오른쪽 산길이 대간 마루금을 제대로 걷는 길인 듯 싶은데, 대원들은 시멘트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간다.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는 대원들>

12시 32분, 시멘트 길은 왼쪽으로 90도 꺾여 돌고, 정면에서 산행리본이 우리를 숲으로 이끈다. 3분쯤 비탈길을 내려서자 다시 시멘트 길과 만난다. 결국 3분간 지름길을 걸은 셈이다. 도로 왼쪽으로 납골당을 지나고, 한참을 걸으니 오른쪽으로 파란 보리밭이 펼쳐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납골당>

<보리밭인가? 자신이 없다>

12시 43분, 산행 리본의 유도에 따라, 시멘트 도로를 벗어나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걷는다.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등산로는 다시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숲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숲길을 걸어 오른다. 내리막길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작점고개다.

 

12시 53분 작점고개에 내려선다. 작점고개에는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의 도계를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고,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앞서 내려 온 대원들이 능치 쉼터란 현판이 붙어 있는 정자에서 쉬고 있다. 점심은 어디서 할 것인가? 의견을 나눈다. 용문산에서 하자는 의견이 다수다.

<작점고개>

휴식을 취한 대원들이 하나 둘, 북쪽으로 난 돌 층계 길을 올라, 용문산으로 향한다. 완만한 능선 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1시 18분, 주위의 나무를 벌목해 놓은, 474.7m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깃대가 세워져 있고, 동남쪽으로 묘함산의 산형이 뚜렷이 보인다. 내려 쪼이는 햇볕이 뜨겁다.

<474.7m봉>

474.7m봉을 지나 등산로가 왼쪽으로 굽어지는 곳에서, 멀리 용문산이 보인다. 길가를 벗어나 배낭을 풀고, 점심채비를 한다. 대원 몇 사람이 지나친다. 점심을 먹자고 권해보지만, 앞선 일행을 따라가야 한다고 서둘러 걸어간다. 용문산 쪽의 마을을 굽어보며 혼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이 투명하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이 시원하다. 숲 속은 고요하다. 점심을 마치고 한숨 자고 싶은 곳이다.

<점심을 하면서 바라 본 용문산>

 

1시 45분 점심을 마치고, 아쉽지만 다시 길을 떠난다. 약 25분간 점심을 하는 동안, 대원들과는 멀리 떨어졌을 것이다. 혼자 걷는 길이 호젓하고 즐겁다. 점심 후라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다. 1시 59분 갈현고개에 이른다. 고개에는 표언복 교수가 매어 달아 논 비닐 표지판이 눈에 뜨인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교수의 표지판이다. 반갑다. 표지판은 용문산 까지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표언복 교수의 이정표>

약 340m 고도의 갈현고개와 710m 고도의 용문산 사이에는 상당한 고도 차가 있지만, 이 고도차는 약 2Km 정도의 거리로 희석되어 가파른 줄 모르고, 유유히 걸어 오른다. 687m봉을 지나 안부를 거쳐 용문산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팔라 힘이 든다.

 

넓은 헬리포트인 용문산 정상에 오른다. 헬리포트 한 귀퉁이에 삼각점이 박혀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다. 북으로 국수봉이 가까이 보이고, 북서쪽과 서쪽의 산세가 웅장하다. 오른쪽으로는 산골짜기를 따라 펼쳐진 마을이 보인다.

<용문산 정상에서 본 국수봉>

<용문산 정상에서 본 묘함산>

<용문산 정상에서 본 서쪽 조망>


내리막 길을 서둘러 달린다. 30여분을 달려 소로가 연결된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대원 몇 사람이 쉬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평평한 숲 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경사가 급해진다. 떡갈나무 잎새가 온통 하늘을 가려, 굽이굽이 이어지는 오름 길은 아름다운 연초록 터널 길을 이룬다. 쉬엄쉬엄 오르며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이윽고 드믄드믄 암릉이 나타난다. 정상이 가까운 모양이다. 암릉에 올라서니 조망이 확 트이면서,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문산이 보이고, 묘함산이 우뚝 솟아 있다 장쾌한 흐름이다. 4시 8분 국수봉 정상(790m)에 오른다.

<국수봉 오르다 전망대에서 본 용문산과 지아온 길>

국수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좁은 정상은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을 방해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간식을 취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무릎 보호대를 고쳐 매어, 가파른 내리막에 대비한다.

<국수봉 정상>

 

정상에서 왼쪽으로, 급경사 길을 내려선다. 10여분쯤 내려서서, 전망대 위에 선다. 동쪽으로는 공성면의 너른 들이, 북서쪽으로는 상주시로 연결되는 골짜기 마을이 펼쳐진다. 정면으로 683.5m봉과 475m봉이 눈 아래 있다. 다시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안부를 지나 683.5m봉 오름길에서, 뒤돌아 용문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망대에서 본 서북쪽 조망>

<전망대에서 본 683.5m봉>

 

삼각점이 있는 683.5m봉을 지나고, 고도가 점차 낮아진다. 멀리 차 소리가 들린다. 왼쪽으로 산 사면을 일군 밭이 보이고, 마침 밭일하는 사람이 켜 놓은 라디오에서는 아메리칸 컨트리 뮤직이 흥겹게 흘러나고 있다. 등산로는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뒤덮인 산책길이다. 5시 18분 큰재에 도착하여 뒤로 보이는 국수봉을 카메라에 담고 버스로 향한다.

<큰재에서 바라 본 국수봉>

<큰재 신곡리 표지석>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땀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는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물을 주는 배관에서는 물이 콸콸 솟는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폐교가 된 초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서서, 산악회가 마련한 밥과 국으로 식사를 한다.

<풀이 무성한 폐교 운동장>

풀이 웃자란 교정의 한 귀퉁이에 서 있는 교적비는 말한다.

 

"옥산 초등학교 인성분교는 1949년 11월 9일 개교하여 졸업생 597명을 배출하고, 1997년 3월1일 폐쇄되었음 - 경상북도 교육감"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성장하면서 고향을 떠난다, 마을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그들이 다니던 학교는 문을 닫고. 운동장에는 방초만 무성한 채 오랜 시간 버려져있다. 이제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대도시에는 사오정, 오륙도 등 잉여 노동력이 넘쳐흐르고, 텅빈 교정은 이들의 U턴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버스는 5시 4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5. 27.)


1 [우정 / 2005-05-30,17:22:31]

조선일보의 구간별 산행시간의 오류까지 분석해내시는 치밀함이야

우림님의 타고나신,,,,뭡니까?

이구간은 나도 결간을 했던곳인데, 언제 땜빵을 하게 될지 ,,,,,

6차대도 끝낸구간이니 천상 7차대와 내년에 가게 됬네요 .

내년 땜빵때 좋은 자료로 사용될 후기 잘 간직해 두겠습니다. [삭제]

2 [고래 / 2005-05-30,22:05:37]

산행시간 잊어버리세요..

그날의 컨디션......

산이 좋아 한번 쉬면 20~30분은 순간 ....

이스리가 있으면 1시간도 순간임다.


조선일보 "실전백두대간" 은 10년전 길이 없던 시절 길찿아 헤메며 20k이상 장비를 메고 산행한 참고자료 입니다.


즐산하세요. [삭제]

3 [우림 / 2005-05-31,10:37:59]

우정 님 !

자당님은 어떠신지요?

연로하시기만해도 편찮은 곳이 많아지는데...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하루 빨리 쾌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산에서 만나야지요.

우정님 빠지면 적막강산.


고래 님 !

다리를 다쳤다구요?

얼추 나았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무리하지 마시기를...


시간을 잊어버린 산행 !

하고 싶군요.

대간 땜방 마치고,

고래 님 따라 다녀도 될런지요? [삭제]

4 [東城.... / 2005-06-01,08:55:47]

우림님! 25일, 28일 연짱은 무리가 아니신지요.28일 뵈오니 다이어트가 많이 되었드군요. 설설 놀아가면서 하시지요.

동성주막에 산행, 여행정보 많이 퍼 놓았습니다...

제가 갖고 다니는 비상약 술은 보드카 (Smirnoff), 럼 (Captain Morgan) 반반 썩은 것이라 향이 좋지요.

고래2와 집부근에 와서 마신답니다.... [삭제]

5 [우림 / 2005-06-01,11:37:07]

동성 님 !

말씀대로 땜방 마치면 슬슬 할게요.


6월의 주모,

문정숙의 "만추"는 감명 깊게 본 영화.

여행과 산행정보는 리스트를 만들어 놓을까 합니다.


Smirnoff 50도 짜리가 한 병 있는데,

럼주 사다가 칵테일 해 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삭제]

6 [대빵 / 2005-06-01,14:07:05]

존경합니다

항상 꼼꼼하게 정리하시는 우림님!


날씨도 더워 마루금 걷기가 짜증 날때가 많을 겁니다

절대 무리하시지 마시고 안전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삭제]

7 [우정 / 2005-06-02,21:50:45]

동성님~

오랫만에 불러보는 아호~.


대간산행 잘 하고 계시지요?. 언제가 됬든 동성님의 특급브랜딩 秘酒 맛볼날을 기다립니다.

"설설 놀아가면서,,,"하시는 여유있는 산행~ 눈에 선합니다


우림님께서도 슬슬하십시요.


우정은 살살 하겠습니다. [삭제]

8 [東城.... / 2005-06-03,07:08:08]

山정희 운영위원장께서도 건재하시지요...

찬손 부른튼손,살라미 소시지, 바스크 치즈가 생각나네요... [삭제]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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