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대암산에서 본 조망-왼쪽 1,157m봉, 그 뒤로 서북 능선과 대청봉(오른쪽)>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많았지만. 내가 낳고, 내가 자란 우리 땅, 조국의 산하를 내 발로 직접 걸어 본 지난 기간은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함께 산행하면서 만난 산우(山友)들과 나눈 우정은 나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 준다.

하지만 아직도 종주 마무리가 안 되는 것이 아쉽다. 휴식년제가 시행되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구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휴식년제를 시행하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 하지만, 경직된 법 운영에는 불만이다.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시기에도 입산신청을 하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있다지만, 실제로 허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관리기관의 고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누구보다도 내나라, 내 국토를 사랑하는 대간꾼들이 범법자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

2005년 9월 27일(화)
오늘은 무박으로 점봉산 구간을 땜방 산행한다. 가이더는 K 산악회다. 마지막 경유지에서 대원들이 오르자. 버스 안이 그득하다. 3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연령층이고, 여자대원들도 7명이나 된다. 이중 20% 정도는 나처럼 땜방 산행으로 참여한 듯 싶다. 다른 산악회에서 함께 대간 산행을 했던 조 고문님, 그리고 화봉 대원의 모습도 보인다.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잠이 깬다. 새벽 2시 10분, 버스는 남설악 휴게소에 30분간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새벽 공기가 차다. 주중이기 때문인지, 너른 주차장은 텅 비었다.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는다. 물을 보충하고, 포카리 스웨트를 구입한 후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자, 산악회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산행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오늘 산행은 불법 산행이다. 자신이 선두에 설 터이니, 암릉구간이 끝나는 1,157.6m봉까지는 선두, 후미 구분 없이, 모두 함께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2. 암릉구간을 지날 때는 여성대원들이 힘들어 할 것이다. 서로 도우며 통과해야 한다. 자칫 사고가 나더라도 불법 산행이기 때문에 구조요청이 어렵다.
3. 버스가 한계령에 접근하면 실내등은 소등한다. 지금부터 산행 준비를 모두 마치고, 배낭을 멘 채 대기하라.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등산로로 진입한다.
4. 초반에는 암릉구간이 많으니, 스틱은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망대암산을 통과한 후 사용하는 것이 좋다.
5. 헤드 랜턴은 손에 쥐고, 발 밑만 비추며 이동한다. 한계령 휴게소 쪽으로 불빛이 비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주기 바란다.

이어서 알바하기 쉬운 곳에 대한 주의와 부득이 탈출을 해야할 경우에는 단목령에서 강선리 쪽으로 탈출하라고 일러 준다.

회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차안은 산행 준비로 어수선하다. 밖의 기온이 많이 차가운 모양이다. 차창에 이슬이 맺혀, 창 밖이 보이지 않는다. 한계령 3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버스 헤드라이트 속으로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내등이 소등된다. 산행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긴장해서 꼿꼿이 앉아 있는 대원들의 실루엣이 비장해 보인다. 적지 고공투하 진전의 공수부대 대원들의 영화 장면이 언뜻 떠오른다.

버스가 한계령을 넘는다. 왼쪽으로 한계령 휴게소의 불빛이 환하다. 버스 안은 숨소리마저 죽인 듯 고요하다. 한계령을 넘은 버스는 오른쪽으로 굽어, 필례약수 방향으로 들어서더니, 이윽고 멈추어 선다. 3시 10분 경이다. 대원들은 소리 없이 도로를 건너고, 수로를 넘어, 숲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3:10) 산행시작-(4:15) 암릉구간 통과-(4:41) 필례골 갈림길-(6:03^6:10) 망대암산-(6:50~7:20) 점봉산, 아침식사 및 휴식-(7:51~7:56) 홍포수막-(8:22) 961.5m봉-(8:55) 855.5m봉-(9:00~9:10) 단목령-(9:35) 875m봉-(10:03) 1,020.2m봉-(10:23~10:28) 북암령-(10:55~11:00) 1,136m봉-(11:32) 1,133m봉-(11:42) 양수발전소-(11:59) 이정표-(12:16) 첫 로프 레일 설치지점-(12:50) 이정표-(13:09) 이정표-(13:16) 조침령-(13:45) 진동리』 총 산행시간은 10시간 15분으로, 마루금 산행 약 9시간 15분, 아침식사 약 30분, 날머리 약 30분 등이 소요된 산행이다.

발 밑에 불을 밝히며, 대원들이 일렬 종대로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다. 앞사람에게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싹 다가서면 앞사람이 부담을 느끼게된다. 최소한 2m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산행할 때의 기본예의라고 한다.

그렇다고 보통 산행 때, 오르막에서 나처럼 걸음이 느린 사람 뒤를 무작정 뒤따르는 것은 큰 고역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런 경우에 간단히 “양로(讓路).” 한 마디면 족했다. 그러면 앞사람은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준다. 지금 세대야 한자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니, “미안합니다.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길을 내 달라고 하면 좋겠다.

고요한 산 속에는 발자국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거칠어지는 숨소리뿐이다. 산행 시작 후 10여 분이 지나 주능선에 오른다. 왼쪽 하늘에 그믐달이 걸려있고, 별들이 총총하다. 바로 머리 위로 북두칠성이 선명하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군데군데 암릉이 섞인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걸음들이 빨라진다.

앞에 대원들이 모여 있다. 왼쪽으로 거대한 암릉이 가로막아, 정체가 생긴 거다. 듣던 것처럼 직벽은 아니다. 가파른 암릉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두 손 두 발을 사용하면서,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 발 놓을 곳을 확실히 하고, 몸을 늘려, 바위의 홀드를 잡거나, 나무뿌리를 잡고 기어오른다. 손에 쥔 헤드랜턴이 부담이 된다. 어려운 곳에서는 앞 선 사람이 불을 비쳐주며, 손잡을 곳을 알려준다. 남자 대원들에게야 별 것 아니겠지만, 팔 힘이 약한 여자대원들은 힘이 들겠다. 드디어 암릉 위에 올라서서 내려보니, 높이가 10여 미터 가까이 되는 듯 싶다.

이어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이어지고, 일렬 종대 행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다시 정체가 된다. 어려운 코스에 이른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리막이다. 그런데 내리막으로 내려서기 전에 허공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옆으로 트래버스를 하면서 내려서야 하는 곳이다. 아래는 새카만 절벽이다. 어두워 다행이지, 밝은 날에는 오금이 저려, 옆으로 타고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험한 코스다. 앞 서 건너간 사람이 발 놓을 자리, 손잡을 곳을 알려주는 요령으로, 한 사람씩 위험한 곳을 타고 넘는다. 일단 이곳을 지나면, 나머지는 긴 내리막이지만, 조심해 내려서면 큰 문제는 없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서, 앞서 내려온 대원들이 완전히 소등을 한 채 긴 줄을 만들고, 뒷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롭게 대원이 내리막에 내려서면, 소등하라는 지시가 전달된다. 오른쪽으로 한계령 휴게소 불빛이 가까이 보인다. 대원들은 미인의 눈썹같이 요염한 그믐달과 총총한 별들을 올려보며 조용히 기다린다. “오늘이 음력 8월 25일, 하현달이로구나.” 조 고문님이 혼잣말을 한다. ‘아직도 음력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분이 있구나.’ 속으로 혼자 감탄한다. 이윽고 후미대장이 내려서고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4시 15분 경이다.

<그믐달>

이 후에도 몇 차례 암릉길이 이어지지만 위험한 곳은 지난 모양이다. 두 군데 짧은 직벽에는 로프가 걸려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른다. 내리막을 지나고, 오르막이 계속된다. 4시 4l분 경, 삼림청에서 세운 이정표를 지난다. 이정표는 현재의 위치가 필례골 삼거리이고, 주전골 안부에서 2Km 떨어진 곳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1,157m봉 정상은 언제 지나는 지도 모르고 지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안내판은 몹시 낡아 군데군데 코팅한 곳이 벗겨져 있다. <한계령 휴게소 4.0K, 망대암산 2.0K>

<이정표>

평범한 업 다운이 계속되면서 선두의 속도가 빨라지고. 후미 구룹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두 차례, 풀이 무성한 안부에서 등산로를 놓친다. 대원들이 흩어져 산행리본을 찾으면, 어김없이 왼쪽 방향으로 산행리본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어두워서 멀리서 리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내리막으로 치닫던 등산로는 5시 25분 경,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5시 47분 경,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며. 후미대장이 바싹 다가붙는다. 후미대장에게 길을 내 주고, 최후미로 쳐져 천천히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등산로 왼쪽 암봉 위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후미대장이 암봉으로 오르라고 소리친다.

<여명>


 

<망대암산 암봉>

6시 3분 경, 암봉 위에 선다. 도둑이 망을 보던 산이라 해서 망대암산(1,236m)이라 했다던가? 망보기에 알맞게 사방이 탁 트였다. 여명 속에, 북서쪽으로 우리가 지나 온 1,157.6m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곳에서 떨어져 내린 긴 능선이 구불구불 발 아래로 이어진다. 그 뒤로는 귓떼기청봉에서 흐르는 능선과 오른쪽으로 대청봉으로 뻗은 서북 능선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실로 장쾌하다. 맞은 편, 십이담계곡 쪽으로 우쭐우쭐 솟은 암봉들은 7형제 바위라고 후미대장이 알려준다. 왼쪽으로는 하얀 구름바다 속에 검은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 있다. 여명 속에 보는 풍광이라 더 한층 신비롭다. 뒤돌아 서면 코앞에 점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부드럽다.

<귓떼기청봉>


 

<대청봉>

<점봉산 오르다 본 1.157m봉과 이어진 능선, 오은쪽 망대암산>

<일출>

<점봉산>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여 떠날 줄 모른다. 지난 봄 땜방을 하면서 몇 번 만났던 여자대원, 박 여사가 연신 사방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불평을 한다. 언제 다시 올 거라고, 모처럼 이곳에 왔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지도 않고, 달리기만을 능사로 아는 남자대원들이 못마땅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10분이고, 20분이고 머물며, 떠오르는 태양 빛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주위 풍광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후미대장이 움직이니, 박 여사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뜬다.

나는 2~3분을 더 지체하며, 물도 마시고 쉬면서, 장쾌하게 흐르는 서북 능선을 바라보고, 깜깜한 밤중에 우리가 걸어왔던 능선 길을 되돌아 본 후, 떠오르는 태양을 카메라에 담고, 암릉 사이로 이어진 좁은 길을 지나 비탈길을 내려선다. 등산로는 안부를 거쳐,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길가에 “대민 계도문” 이란 알림판이 서 있다. 이곳 주목지대를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죽어 천년의 주목과 살아 천년의 주목이 나란히 서서, 마침 떠오른 햇빛을 받아, 붉은 빛을 띄고 있다.

<죽은 주목, 산 주목>

박 여사가 후미 구룹에서 떨어져, 연신 뒤를 돌아보며,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변하는 주위 풍광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나도 뒤를 돌아보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점봉산으로 오른다. 발아래 망대암산에서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반쪽이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불타고 있고, 그 뒤로 귓떼기청봉이 장엄하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이다.

<점봉산 오르다 본 망대암산, 귓떼기청봉, 7형제 바위>

6시 50분, 점봉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화봉 대원이 기다리고 있다. 약 10분전에 올라와서 주위 풍광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1,424m), 삼각점<설악 26, 04 재설> 그리고 고 임주영씨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누워있다. <점봉에서 넌 산이 되는구나. 4829. 6. 23.> 화봉 대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도시락을 풀어,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이기는 하지만 정상에서 어찌 정상주 한잔 없겠는가? 보드카. 럼주 그리고 백세주를 혼합한 칵테일을 후미 팀과 한잔씩 나누어 마신다.

<정상석>


 

<추모 석판>

후미 팀이 서둘러 하산을 하고, 정상에는 화봉 대원과 단 둘만 달랑 남아, 주위를 굽어본다. 동쪽으로 태양이 뚜렷이 모습을 보이고, 남쪽으로는 작은 점봉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부드럽게 흐르다가 곰배령으로 뚝 떨어진다. 북쪽의 능선이 햇빛을 받아 더욱 뚜렷하고, 왼쪽의 운해는 여전하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7시 20분 경, 후미 팀을 쫓는다.

<작은 점봉산>


 

<운해는 여전하고...>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7시 51분 경 홍포수막터에 이르니, 후미 팀이 쉬고 있다. 함께 5분간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다. 고산의 등산로는 단조롭다. 주로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줄을 이은 숲 속에는 키 작은 산죽이나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에, 숲 속의 명암이 교차되면서, 눈앞이 어른거린다. 숲 속에서도 선글라스가 필요하겠다. 쾌적한 산책길을 빠르게 진행하여, 8시 22분 961.5m을 지나고. 8시 54분 855.5m봉에 이른다. 855.5m봉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다. <설악 458, 2005 복구>

<단조로운 길에 명암이 교차하여 눈이 피곤하다.>


 

<855.5m봉 삼각점>

등산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6분 후 단목령(855m)에 이른다. 단목령은 4거리 너른 공지다. 단목령(檀木嶺)이라고 한자로 음각된 고풍스런 팻말이 걸려 있고, 임산금지 구역으로 지정 고시한다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이란 간판과 백두대장, 백두여장의 두개의 장승,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다. <점봉산 5.0K, 양수발전소 4.8K, 오색약수 3K>

<단목령>


 

<단목령 나무표지판>

후미 팀이 도착하여 함께 휴식을 취하며 과일을 나누어 먹는다. 남자 분이 67세, 여자 분이 64세인 부부, 박 여사, 그 외 남자 4명에, 후미대장까지 포함하여 모두 8명이 후미를 이루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을 하면서 쉴 때는 함께 모여서 쉰다. 연세 많은 부부가 함께 산행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외국 속담에 “나이 들어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젊었을 때 자신이 자기 몸에 한 일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두 분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몸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대단한 분들이다.

단목령에서 느긋하게 쉬고, 9시 10분 경, 마지막 고지 1,136m봉을 향해 출발한다. 완만한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휴식년제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등산로는 뚜렷하고, 요소 요소에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다. 산돼지들이 칙뿌리를 캤는지, 온통 땅을 뒤집어 놓은 흔적이 줄곧 눈에 뜨이는 것을 보면, 사람 왕래는 그다지 빈번한 것 같지는 않다. 단목령을 떠난 지 25분 후,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는 작은 마루턱에 오른다. 825m봉이다. 이어서 아름다운 참나무길이 이어지고, 10시 3분 1,020m봉에 올라 후미 팀을 기다리며 잠시 쉰 후, 북암령을 향해 비탈길을 내려선다.

11시 23분 북암령에 도착한다. 산행리본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누군가가 북암령이라는 비닐표지판을 나무에 걸어 놓았다. 역시 산림청에서 입산금지를 알리는 “산림유전자원 보호림” 간판이 세워져 있다. 후미 팀을 기다려도 내려오는 기색이 없어, 먼저 출발한다.

<북암령>

 

 


<산림청에서 세운 보호림 간판>

경사가 급한 오르막을 허위허위 올라. 약 27분 후 1,136m봉에 도착한다.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속초 24, 1992 재설> 서북 방향으로 멀리 점봉산이 보인다. 주위를 조망하며 약 5분간 후미 팀을 기다린다. 소식이 없다. 더 기다리지 못하고 11시경 자리를 뜬다. 아름다운 산책길이 이어진다. 날씨는 화창하고, 11시가 지났는데도 별로 덥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화봉 대원과 다른 남자 대원이 먼저 앞장서 달린다. 후미에서는 아직도 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1,136m봉에서 본 점봉산>


 

<아름다운 산책길>

삼각점이 있다는 1,133m봉이 나타날 때가 됐다. 하지만 주의 깊게 주위를 살피며 걸었는데도, 끝내 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11시 32분, 길가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는 이정표를 지난다. 첫 번째 만나는 장승 이정표다. 높다란 장대 끝에 단목령, 조침령 두 방향을 알리는 양팔이 달려 있다. 그 것이 전부다. 현재 위치가 어디라는 표시도 없고, 단목령, 조침령까지의 거리도 적혀 있지 않다. 누가 세웠다는 표시도 없다. 튼튼해 보이기는 하지만, 왜 이런 이정표를 세우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우러러 봐야할 정도로 높게 걸린 양팔이, 우선 기분 나쁘다.

<첫번째 장승 이정표>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간혹 무성한 잡초 사이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11시 42분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 앞에 선다. 현재의 위치는 양수발전소, 이 곳에서 조침령까지의 거리가 2.0Km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누군가가 매직펜으로 이 거리를 수정해 놓았다. “도상 3.2Km, 실제거리 4.5Km. 소요시간 1시간 40분에서 2시간이라고...,” 이후 조침령에 내려서니, 같은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조침령에 세워 놓은 이정표에는 이 구간 거리를 3.5Km라고 표기하고 있다.

<양수발전소에 세워진 문제의 이정표>

 

 

<조침령에 세워진 이정표 - 같은 구간의 거리가 다르다.>

내가 조침령에 도착한 시간이 1시 16분 경이니까, 양수발전소에서 조침령까지 1시간 33분이 걸린 셈이다. 남은 거리가 2Km라고 믿고, 지친 몸으로 하산하던 여자대원들이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는 조침령에 질려, 하산 후 산림청에 대고 퍼붓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엉터리 이정표를 세워 놓은 양반들 귀께나 가려웠겠다.

비탈길을 내려선다. 무성한 초지를 지나니, 정면으로 부드러운 푸른 능선이 보이고. 이어서 무성한 억새 밭을 지난다. 억새 밭을 카메라에 담고 팔을 내리는데, 오른쪽 팔꿈치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한 떼의 벌들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잘못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인 것이다. 통증은 계속되고 오른 팔이 무겁게 느껴진다. 벌에 쏘여 고생했다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은근히 겁이 난다. 설마하고 준비하지 않은 암모니아수가 아쉬워진다.

<등산로는 무성한 잡초와 억새 사이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벌에 쏘인다>

11시 59분, 두 번째 멋대가리 없는 장승 이정표를 지난다. 여전히 조침령, 단목령 두 방향만 알려 줄 뿐이다. 위치는 1,018m봉이라고 짐작하지만 삼각점은 발견하지 못한다. 다시 내리막길을 달린다. 경사는 그다지 급하지 않으나, 새로 설치 한 듯한 새하얀 로프가 경사로를 따라 이어진다. 안부를 지나, 길은 왼쪽 사면을 오르더니, 좁은 암릉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전망바위에 선다.

왼쪽으로 웅장한 산세가 흐르고, 산허리를 관통하며, 한 가닥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고압 송전탑들이 줄지어 버티고 서있다. 지도를 보니 양양군 영덕리 방향이다. 북동쪽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로 멀리 동해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왼쪽 조망>

 

<멀리 동해가 보인다>

좁은 능선 길에서 키 작은 관목들이 배낭을 잡아끈다. 아마도 철쭉능선을 지나나보다. 12시 50분 세 번째 장승 이정표 앞에 선다. 근처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무수히 걸린 것을 보고, 900.2m봉이라고 짐작한다. 이정표를 우러러 보니, 파란 가을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유유히 공중을 선회하고 있다. 이정표 한 팔이 가르치는 방향을 따라 오른 쪽으로 급회전하여,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제 조침령이 가깝다고 짐작한다.

<세번째 장승이정표>

안부에 내려서면 조침령일 것이라는 짐작을 비웃듯, 등산로는 다시 오르막을 지나 평지로 이어진다. '대간길에서 어디 한두 번 속았나?' 체념하며 천천히 걷는다. 색다른 비닐 표지를 지난다. “ 잠깐 ! 한숨 돌리고 가시죠.../ 이곳이 북위 38°00‘ 00” 입니다./ 2005. 9. 25 대전 이진기 “ 바로 3일 전에 부착한 새로운 표지다. 가도, 가도 조침령은 멀기 만하다. 혹시 조침령을 지나친 것은 아닌가? 이러다가 구룡령까지 가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색다른 표지판>

1시9분, 네 번째 장승 이정표를 지난다. 여전히 한 팔은 조침령을 가르친다. ‘아하! 알바는 아니구나.’ 비로소 안심한다. 이럴 때는 장승 이정표도 고맙다. 무지막한 이정표 기둥에는 “TM좌표 와 경위도 좌표”가 표시돼 있다. 이 좌표들의 용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상은 자꾸만 달라지고, 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기가 죽는지, 발걸음이 더욱 더 무거워진다. 눈앞의 단풍나무가 벌써 곱게 물들고 있다

<장승이정표 기둥의 좌표 표시>


 

<벌써 옷을 갈아입는 조침령의 단풍>

이윽고 세운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팔각정에 올라선다. 조침령으로 이어진 도로가 보인다. 1시 16분, 조침령에 이른다. 조침령 주위는 말끔하게 손질이 되어 있다. 조금 전에 지난 팔각정도 그렇고, 등산로에서 내려서는 길은 방부목을 깔았다. 낡은 이정표와 깔끔한 등산 안내도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잠시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침령의 팔각정>

언제 따라 왔는지 박 여사가 모습을 보인다. 혼자다. 어쩐 일이냐고 묻는다. 부부 중에 여자 분이 무릎이 아파 걷지를 못해 혼자 내려 왔다고 하며 걱정을 많이 한다. 오른 쪽 길을 따라, 진동리로 향한다. 비포장 도로 왼쪽에 조침령 표지석이 예쁘게 서 있다.

<표지석>

길 가운데서 군용 트럭이 방향을 바꾸고 있고, 오른쪽 공지에서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트럭을 지나치며, 박 여사가 군인들에게 묻는다. “이 길이 진동리 가는 길 맞나요?”, 얼굴을 검게 위장한 군인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저 트럭 안 내려가나? 타고 가면 좋겠는데...’ 혼자 김칫국을 마시며, 박 여사와 비포장 도로를 터덜터덜 걷는다.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리고, 예의 트럭이 천천히 내려온다. “저걸 타면 좋은데... 군인 차는 작전 중에는 민간인 안 태우지요?.” 라고 박 여사가 아쉬워한다. “어디, 한번 세워 봅시다. 밑져야 본전인데.” 팔을 뻗어 트럭을 세운다. 우리들 앞까지 굴러온 차가 멎고, 조수석 유리문이 내려진다. “편승할 수 없나요?” 라고 물으니, 조수석 문이 열리며, 군인이 뛰어 내린다. 군인은 트럭 뒤로 돌아가 차단 문을 내린다. 미안해서, “10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걷기가 힘들어서...”라고 중얼거리자. 군인이 묻는다. “어디서 오시는데요?” “한계령에서 출발했어요.”라고 대답하자, 놀랍다는 눈치다. 놀라워하는 눈이 무척 맑아 보인다.

트럭 뒤에 타고 있던 군인이 팔을 뻗어, 박 여사 승차를 도우려 하지만, 박 여사는 대간꾼답게 도움 없이 거뿐히 차에 오른다. “ 차가 많이 덜컹대니 조심하세요.” 라고 외치고, 군인은 조수석으로 달려간다.

뒷좌석에 군인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다. “점심 식사했나요? 라고 박 여사가 묻는다. ”예, 했습니다.“ 자세도 흩뜨리지 않고 군인답게 간결하게 대답한다. 얼굴을 검게 위장하고, 군복에 철모를 쓴 완벽한 군인이지만 마주 앉아 바라보니, 군인 아저씨가 아닌, 앳된 얼굴이다.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몬드가 들어 있는 새알 쵸크릿과 인삼 젤리를,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 권한다. 군인이 사양한다. ”젊은 사람은 단 것을 좋아하지.“ 삼총사에서 맏형 아토스가 달따냥에게 단 것을 주면서 하던 소리를 빌어 재차 권한다. 군인이 마지못해 받는다. 박 여사도 떡을 건네 준다.

작대기 세 개, 병장이다. “제대 얼마 안 남았지요?”, ”10개월 남았습니다.“
”어디서 왔어요?“ 라고 박 여사가 묻는다. ”부산입니다“ ”어머, 최전방에 왔군요.“
트럭은 비포장도로를 털털대며 천천히 굴러간다. 속도는 걷는 것에 비해 별반 빠를 것도 없다.

트럭 짐칸에는 커다란 양철통이 3-4개 놓여있다. 아마도 훈련 중인 사병들의 점심을 실어 나르고,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다. 트럭이 모퉁이를 돈다. 앞에 대원 세 사람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도 차를 세우지도 않았는데, 대원들 옆에서 차가 서고, 조수석에서 다시 군인이 뛰어 내린다. 무릎이 아파 힘들게 걷던, 젊은 여자 대원이 반색을 한다. 1시 45분 경, 트럭은 버스가 정차한 곳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 맛이 유난히 좋다. 점심을 마치고 조침령 주위를 둘러보며 쉰다. 이윽고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던 여자대원과 함께 후미 팀이 도착한다.

버스는 2시 3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10. 1)

1 [東城.... / 2005-10-03,09:05:36]

청산에 홀로 가는 나그네...

수고하셨습니다.10월1일은 가랑비가 뿌렸지만 이화령에서 조령3관문을 다녀왔습니다.10월7~8일에는 마가목 구경 잘 하십시요. [삭제]

2 [잭울프 / 2005-10-03,18:50:24]

지난대간길에 춘설을 헤치고 가다가 결국 양수발전소에서 탈출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화봉님과 조고문님도 동행하셨군요.

젊은이 못잖은 패기와 체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도 이번주말에 그 구간이나 종주해보렵니다.

유익한 정보 얻었습니다.

글구 동성님 오랫만에 뵙습니더.

대간중에 조령관 고사리마을내려갈때도 비를 맞았던기억이 나는군요.

대청마가목에 대한 추억이 가슴저리네요~.

동성님의 마가목주를 다시 기대하며, 건강들 하십시요! [삭제]

3 [우정 / 2005-10-04,10:36:38]

우림님~ 지금쯤 벌침 맞은곳이 가려울텐데, ,,,올겨울 감기

안 걸리시겠네요 .


화봉선배님, 조기현고문님, 함께하셨다니,

새로운 보수 우익세력의 태동이 느껴지네요.

동성님까지 가세하시고, 이사장님들까지 가세하시면,

가히 가공할만한 공포의 우익세력이 구성될듯 합니다.


잭~ 선배님들께서는 저렇게 벌침까지 맞아가며

무박 땜빵도 찿아가며 노익장을 과시하는데,

우리 젊은것들은 시방 뭣들하는건지?

정신 똑바루 차리구, 틈새다,번개다 ,하면서리,흩어진 세력들을

끌어 모아야지,

조만간 마가목주와 복분자 시음대회를 기획해보자구요. [삭제]

4 [우림 / 2005-10-04,15:16:40]

동성 님 !

지난 10월 1일,

6l일 만에 복분자 술을 걸러, 약 1,500cc 정도를 건졌지요.

색갈 : 맑고, 고은 빛이 최상.

향 : 복분자 냄새가 코로도 느껴지고, 마신 후 입안에 향이 남아 좋은 편.

맛 : 걱정했던 단 맛은 없고, 약간 무거운 맛.


6개월 자체 숙성기간을 기다리려, 내년 3월까지 두면,

무거운 맛이 가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참고 기다려 봐야지요.

술 박사님 ! 술 익은 후, 품평 부탁합니다.


잭 울프 님 !

단독 결행이 어려울 거야 없지만,

알바를 조심해야 할 곳이 두세 군데 있더군요.

조 고문님도 엉뚱한 곳에서 알바를 했거든요.

가기 전에 전화 주세요.


우정 님 !

우익 보수세력에 뭐 문제 있수?

요즘 개혁 내세우는 사람들, 정체도 아리숭해 불안합디다.


이번 토요일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삭제]

5 [우정 / 2005-10-06,10:06:27]

맥아더를 쓰어트리자고 아우성치는 철닥서니들이

방방 뛰는 요즘세상에, 역사를 바로보고 해석할줄아는

우리젊은 백성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수는 없다는 예기지요.

얼마전 인천 자유공원에서 귀신잡는 해병출신들 아니였으면,

맥아더는 쓰러졌을테고, 그와 더불어, 우리해병과 인천상륙작전을 펼치다 죽어간 연합군과우리 선배들의 피값도 개값이 됬을테고,

강정구교수 같은 또라이가 주장하는

"625는 북한이 주도한 통일전쟁이었다" 는 논리앞에, 우리해병선배님들과 연합군들은 천하에 없는 역적~, 통일을 방해한 민족의

원수세력 쯤으로 전락 되었을 껍니다.

우리의 엄연한 역사까지도,뒤집고자 설쳐대는 세력들의 어깨에 힘이 싣려지는 요즘 세상돌아가는 작태앞에

우린 열심히 틈새다 번개다하면서리, 체력을 양성함은 물론

아울러 선열들이 흘리신 피를 마시는 마음으로, 마가목이다,

복분자주다 하며, 붉게 물든 酒食을 마시며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고취

시켜시켜야 한다는 당위를 이 우정은 강력히

주장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대목에서 박수~>


차제에 이번 존경하옵는 우익세력의 회동은 우리 민족의 근간이요

뿌리가 이토록 건재 하다는것을 묵시적으로

보여주신것 입니다. < 또 박수~>


개혁이란 그럴듯한 명분앞에 설쳐대는 저들의 정체가

아리숭하다고 하셨습니까?.대낮에?

물론 잘 알고 계시다는 역설법인줄 압니다.


동성님께서 바톤을 받으시면 이 댓글난이, 격조있는 논객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겠네요.


제 꽈리가 넘 길었나요?. [삭제]

6 [東城.... / 2005-10-07,07:13:15]

울프氏! 찬손 브른턴손 氏 ! 잘 계셨습니까. 저는 중도 우파입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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