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4, 3.(일)
봄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고속도로 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하늘은 잿빛이다. 그 아래 펼쳐진 비에 젖은 산하는 온통 옅은 회색이지만 암울하다는 느낌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느낌이다.

 

비에 젖어 까맣게 윤기가 도는 나무들, 벌써 초록빛이 감도는 늘어진 버들가지, 노란빛이 완연한 개나리, 비에 젖어 누워있는 논과 밭, 그 너머 마을과 산이 안개에 가려 희미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무릎까지 빠지는 강원도 눈 덮인 산을 걸었는데, 지금은 비가 내리는 봄을 헤집고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봄비 내리는 차창 밖 풍경>

 

내가 다니던 당일산행 백두대간 팀이 지난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참여회원 부족으로 해체되는 바람에 산악회를 옮기는 과정에서, 뛰어 넘은 9구간을 보충하기 위해, 오늘은 산정산악회 5차 팀의 산행에 합류하여, 백두대간 제18소구간을 간다.

 

우중에도 30여명 가까운 대원들이 참여한다. 5차 팀은 이번이 18번째 산행이라고 한다. 전체 일정의 1/3을 넘어서, 이제는 팀 자체의 조직을 갖추고, 회장단과 총무가 수고를 한다. 산악회에서는 대빵 님이 직접 나와 전체 산행을 리드한다.

 

9시경 버스는 죽암 휴게소에서 30분 간 정차한 후, 계속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더니, 10시에 영동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3번 국도를 달려 횡계로 향한다. 어느새 비는 멎었다. 대빵 님이 산행자료를 배포한다. 『지기재(260)-금은봉 갈림길(380)-속밭골재(300)-신의터재(260)-장자봉 갈림길(380)- 무지개산 갈림길(420)-437.7봉-윤지미산(538)-화령재(310)』가 오늘의 산행코스다. 도상거리 약 15.9Km, 산악회가 제시하는 산행시간은 후미기준 약 6시간이다.

<18소구간 산행지도>

오늘실제 산행시간은 마루금 : 4시간 45분, 중식 : 30분 , 총 산행시간 : 5시간 15분이다.

달리는 버스에서 대빵 님이 산행에 참고될 사항들을 설명한다. 배포한 1/50,000지도의 1cm는 500m이고, 산악인들이 간단히 도상거리를 재는 방법은 주먹을 쥘 때, 손등에 나타나는 4개 마디를 지도에 대 보고, 그 네 마디의 거리를 대강 4Km로 인식한다는 점. 도상거리의 약 130%정도가 실제거리라는 점. 오르막일 때는 도상거리로 한시간에 약 2Km를 걷고, 내리막은 4Km 정도를 걸어, 평균 3Km 정도를 걸으면 보통속도라는 점등을 친절히 알려준다.

 

버스는 횡계에서 514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차창 밖으로는 다시 비가 내린다. 지방도로를 따라 맑은 개울이 흐른다. 개울가에 백로 몇 마리가 한가롭게 먹이를 찾고 있고, 비에 젖은 밭에는 까치 두 마리가 이리 저리 날고 있다. 역시 먹이를 찾는 모양이다. 정겨운 시골 풍경이다. 왼쪽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10시 32분 지기재에 도착한다. 시원하게 뚫린 포장도로 변에는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버스가 신의터재에서 기다린다해서, 배낭은 차에 두고, 스패츠를 착용한 후 왼쪽 시멘트 길로 접어들어 산행을 시작한다.

<지기재 - 901번 지방도로>

시멘트 길은 마을로 이어진다. 길 아래 왼쪽으로 과수원에 나무들이 비를 맞으며 줄지어 도열해 있다. 마을 첫 번째 집에서 임도를 버리고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대간 길은 다시 우마차 길로 내려선다. 높다란 포플러 나무를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다. 등산로는 다시 오른쪽 산길로 이어진다. 잡목 숲을 지나고, 키 작은 소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커다란 묘를 지난다. 묘비에는 ○○처사의 묘라는 글귀가 눈에 뜨인다. 대간 길은 이 묘의 한쪽 월성(月城) 위를 통과한다. 가는 봄비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내린다.

<시멘트 대간길>

<길 아래 과수원>

<정겨운 포플러 길>

 

11시에 20여 미터 슬랩 구간을 지난다. 11시 11분 쑥밭골재를 지나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노란 솔잎이 깔린 등산로에는 솔 향기가 가득하다. 길가에 산수유가 한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눈터진 버들강아지에는 빗방울이 매달려 있다.

<슬랩구간>

<산수유 >

<산수유인줄 알았는데 돌냉이 님이 일깨워준 생강나무 꽃 - 대원 사진>

<버들강아지 눈 텃다. 봄 아가씨 오신다.>

 

마을 가까운 나지막한 능선 길에는 유난히 묘들이 많다. 마을이 있고, 논과 밭이 이어지며, 과수원이 보인다. 사자(死者)와 생자(生者)가 함께 공존하는 대간 길, 이 아름다운 산책길을 여유 있게 걷는다. 뒤로 후미 팀이 떨어져 있고, 선두와도 멀지 않으니, 더욱 여유가 생기나 보다. 3차대와는 달리 5차대는 선두가 속도를 내지 않아 선두와 후미 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대빵 님은 5차에 걸쳐 당일대간 산행을 한 결과 얻어진 노하우라고 자랑한다.

 

11시 31분 고압선 철탑을 지나고, 11시 39분 신의터재에 도착한다. 비는 모르는 사이에 그쳤다. 도로 변에는 작은 공원을 조성하여, 신의터재 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의사(義士) 절곡(節谷) 김준신(金俊臣)의 유적비와 역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배치해 놓았다. 등산로 입구에는 지기재 4.6Km, 1시간 30분이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다,

<신의터재>

<이정표 - 대원 사진>

사진을 찍고, 버스에 올라 배낭을 챙겨, 화동과 상주 방향을 가르치는 이정표를 지나 임도로 들어선다. 임도에 올라 나지막한 하늘을 이고 있는 서쪽의 아름다운 산세를 카메라에 담는다. 대간 길은 임도 초입, 오른쪽으로 나란히 누워있는 무덤 3기 뒤로 이어진다.

<장자봉 가는길>

<비 개인 서쪽 하늘과 산세>

등산로의 경사가 급해지더니, 서서히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여기저기 묘들이 산재해 있고, 소나무 숲길 가에는 이름 모를 나무가 분홍 색 초롱꽃을 매달고 서 있다. 싸리나무 인 듯 싶은 키작은 나무는 마디마다 물방울을 매달고 반짝인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물방울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12시 24분 왼쪽으로 밭을 끼고 임도를 걷는다. 등산로는 전면에 장자봉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12시 38분 산행표지리본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장자봉 갈림길을 지난다.

<분홍빛 초롱꽃>

<물방울 꽃(?)>

<봄의 전령 1- 대원 사진>

<봄의 전령 2 - 대원 사진>

12시 58분, 무명봉에 오르고, 50여 미터 내려서서, 등산로를 벗어나, 서쪽 조망이 좋은 자리에서 도시락을 푼다. 조망을 즐기며 혼자 앉아 천천히 점심을 먹는다. 한낮인데도 비 그친 먼 서쪽하늘은 마치 황혼인양 붉은 색을 띄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보인다. 아마도 선교리 일대인 모양이다. 식사를 하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다 식사를 한다.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1시 30분 윤지미산을 향해 비탈길을 내려선다.

<점심 먹으며 바라 본 서쪽 조망>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선교리>

나뭇가지 사이로 걸어 온 능선을 뒤돌아본다. 봉우리 3개가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에 담는다. 특이하게도 이 구간의 대간 길에는 이정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 구간을 관장하는 산림청만 예산을 못 받았나보다. 12시 32분 처음으로 "산 그리고 사람들"에서 나무에 붙여놓은 작은 비닐표지를 발견한다. 지기재에서 9.2Km 떨어진 지점이다.

<걸어온 길>

등산로는 참나무 사이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2시 27분 또다시 "산 그리고 사람들"이 나무에 붙여 놓은 작은 비닐표지가 보인다. 지기재에서 12.3Km 떨어진 437.7m 봉이다.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판곡 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2시 47분 윤지미산(538m) 정상에 오른다. 대빵 님의 말에 의하면 윤지미산은 공식 명칭이 아니고, 산악인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등산지도에도 윤지미산의 명칭이 표기돼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이름이다.

<등산인들이 만들어 붙인 이정표>

<윤지미산 오르는 길>

좁은 정상에는 "대전 원진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비닐표지판을 매어 놓았고, 자그마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이제 날씨는 활짝 개어 햇빛이 밝게 비치나, 나무에 가려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다. 등산화 끈을 고쳐 매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후 급경사 비탈길을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길은 땅이 녹아 미끄럽다. 미끄러운 길을 10분 가까이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등산로는 오솔길로 변하고 왼쪽으로 전망이 확 트인다.

<윤지미산 정상표지>

<정상석>

잘 손질된 무덤 2기가 저 아래 저수지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굽어보며 먼 산들을 마주하고 누어 있다. 조금 더 내려서니 임도에 이른다. 길가의 산행리본들이 오른 쪽으로 유도한다. 왼쪽으로 인삼밭이 있고, 등산로 주변의 쭉쭉 뻗은 나무들이 아름답다. 등산로는 오른쪽 오름 길로 이어진다. 오름 길에서 방금 내려온 윤지미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윤지미산 산자락을 자르고 이어지는 당진-상주간 고속도로 공사장이 내려다보인다. 3시 47 경 화령재에 내려선다. 대빵 님이 반갑게 맞으며, 화령재 표지석과 뒤의 정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안부의 묘 2기>

<멀리 보이는 봉황산>

<뒤돌라 본 윤지미산>

<임도를 지나 등산로는 오른 쪽으로>

<단양 - 상주간 고속도로 공사, 오른쪽이 윤지미산 자락>

<화령재>


배낭을 버스에 내려놓고, 산악회에서 준비한 캔 맥주로 목을 추기면서, 25번 국도 위로 이어진 300m 대간 길을 걸어 내려가 다음 산행코스 입구를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간단히 식사를 한다.

<고속도로상의 일몰>

이윽고 후미 팀이 도착하여 식사를 마친 후, 버스는 4시 2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 25번 국도를 서쪽으로 달린다. 보은을 지나고. 청주를 거쳐 경부고속고로로 진입한다. 일요일 오후의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버스는 거침없이 전용도로를 달린다. 탁 트인 벌판 위로 지는 해가 아름답다.

 

 

(2005. 4. 7.)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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