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경북 문경시를 경계짓는 대미산은 북으로는 월악산 국립공원 남으로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등 주변의 수려한 산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백두대간상의 육산이다.

 

조선 영정조시대에 발간된 문경현지에는 대미산을 黛眉山으로 표현, 검푸른 눈썹의 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문경의 모든 산의 근원이 이 대미산에서 시작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대미산은 大美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퇴계 이황께서 대미산(大美山)이라 이름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평리에서 본 대미산>

 

<황장산 오르다 본 대미산>

 

출범할 때는 100여명 가까이 참여했으나, 머나먼 대간 종주 길의 70% 정도를 소화한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은 1/3이 채 못된다. 특별한 등산 경험도 없이, 무조건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재미를 붙이고, 여기까지 꾸준히 산행을 계속해 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엄청나게 체력이 강해졌다고 만족해한다.

 

후미에서 출발, 지금은 중위 구룹을 형성하는 이들의 재미는, 이제 선두를 쫓는 재미인 모양이다. 일부는 이미 선두 구룹에 편입됐고, 횟수를 거듭할 수록 선두와의 시간차는 줄어든다.

 

후미(後尾)는 이런 중위 팀을 쫓으려는 욕심을 버리는 순간부터 자유로워지고, 널널해 진다. 하지만 이런 후미도 2가지 점에서는 결코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첫째는 혼자 뒤로 쳐져 걷다가 알바를 하면 어쩌나? 또 하나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먼저 도착한 분들의 차가운 눈총을 받는 건 아닌가?

 

차련 님은 무리하게 중위 팀에 합류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후미로 쳐지지도 않는다. 누가 무어라 해도 고집스레 자기스텝으로 꾸준히 걸어간다. 이런 차련 님의 모습이 은영 님은 좋았던 모양이다. 대간 팀원 중에서도 최상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은영 님은 차련 님을 에스코트한다. 차련 님은 더욱 당당하게 걷는다.

 

후미가 중위 팀을 쫓으려면 힘이 들겠지만, 차련 님 정도를 목표로 쫓아보면 어떨까? 자유롭고 널널하게 걷고 싶은데, 뒤로 쳐지면 왠지 불안하고, 창피하게 느껴져서, "미친 듯이 헉헉대며" 중위 팀을 쫓는 이들에게, 즐거운 산행이 되도록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변화된 상황에서 이렇게 별도로 후미 구룹을 조직화 할 필요성이 커진다. 그러면 알바 걱정이나 차가운 눈총에서 해방되어 산행을 보다 즐길 수가 있겠다.

 

두타, 청옥 무박 산행 시. 차련, 은영의 명콤비는 기준시간 13시간을 거의 다 소비하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여유 있는 행보로 여유있게 산행을 마친다. 오케이, 후미 구룹을 조직화 해 보자. 후미당을 창당하자. 당 대표는 당연히 은영 님이다.

 

차련 님이 앞장서고, 은영 님이 뒷받침하는 행보는 변함 없이 계속된다. 후미당 당원들은 이 두 사람을 목표로 그 뒤만 쫓으면 된다. 이들보다 뒤졌던 사람들은 조금 더 열심히 걸어 이들을 따르면 되고, 무리하게 중위 팀을 쫓으려던 이들은 여유를 갖고 산행을 즐기면서, 이들을 뒤따르면 된다. 당수는 뒤따르는 당원들의 상황을 보고, 가끔씩 속도를 조절한다. 점심은 모두 함께 모여서 한다. 혹시 차련 님이 결간 할 경우에는 다른 여자 당원이 앞장을 선다.

 

후미당 창당의 또 다른 이유는 산행 기본사항에 대한 교육, 훈련의 필요성에서 찾는다. 이미 잘 알아서 몸에 익은 분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산행 속도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가 있다. 등산화 끈 매는 법, 배낭 꾸리는 법, 비탈 길 보행법, 보행 시 호흡법, 스틱 사용법, 발가락 아픈 것 해결 방법 등 모두, 모두 중요하다.

 

2004년 11월 20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29 소구간을 산행한다. 산행코스는『안생달(500)-작은 차갓재(740)-차갓재(740)-981봉-새목재(820)-삼거리(1,051)-대미산!1,115)-부리기재(870)-중평리』,이다. 도상거리 약 15.5Km, 산악회 기준 소요시간은 약 5시간 30분이다.

 

은영 대표가 정식으로 후미당을 창당하고, 이를 공고한다.

 

늦가을 고속도로는 안개가 자욱하다. 상행 선은 한적한데, 이 안개 속에서도 하행 선에는 차들이 줄을 잇는다. 수능고사가 끝나, 한숨 돌린 학생들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버스는 충주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다. 안개는 여전하다.

 

버스는 안개 속을 달려, 문경에 도착하고, 다시 901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린다. 오늘의 하산지점 중평리를 거치더니, 여우목 고개를 넘고, 바깥산다리에서 북으로 진로를 잡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안생달에 도착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도로에 붉은 재킷을 입은 산림 감시원이 길을 지키고 있다. 산불조심기간(11월 15일 - 12월 15일까지)이라 산행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산악회 인솔자가 나가서 양해를 구해 보지만 감시원이 고개를 젓는 모습이 차안에서도 보인다. 할 수 없이 버스는 외길을 후진하여 내려오다 겨우 차를 돌려 50여 미터 후퇴한다.

 

길이 굽어 감시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 버스가 정차하고, 대원들은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다. 등반대장이 앞장을 서서 산아래 두 서너 채 모여있는 민가로 향한다.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아마 산림 감시원도 이 개 짖는 소리로, 상황을 알고 있겠지만, 집요하게 막겠다는 의욕은 없는 눈치다.

<길없는 길을 찾아>

 

개 짖는 소리에 응해, 민가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나와, 집 뒤로 난 희미한 길을 알려준다. 10시 10분 경 대원들은 이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밭둑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그럴 듯하던 길이 산 사면으로 이어지면서 온통 한 여름 자란 넝쿨들로 뒤덮여, 길 찾기도 쉽지 않고, 넝쿨들이 발목을 휘감는다. 거친 길에 익숙하지 못한 여자 대원들이 뒤로 쳐진다.

<밭 둑길을 따라 편대산행>

 

경사가 급해지면서 넝쿨들은 사라지고, 두텁게 덮인 낙엽으로 한 발 오르면, 두 발 미끄러지는 어려운 산행이 이어진다. 길 건너에 바라보이는 산세가 수려하다. 아마도 황정산과 감투봉인모양이다. 이윽고 능선에 올라선다. 길은 능선을 따라 북으로 이어진다. 한결 수월하다. 816봉을 지나, 묘 1기가 있는 근방에서 겨우 대간 마루금과 만난다 10시 54분 경이다.

<대간 마루금을 맞나고>

 

안생달에서, 작은 차깃재를 거쳐 차깃재에 이르는 삼각형의 두 변 대신, 안생달에서 밑변에 해당하는 산 사면을 치고 올라, 차깃재 가까이 오른 셈이다. 시간도 기준시간 50분에 비해 약 6분정도 단축됐다. 이제 일행은 울창한 낙엽송 숲길로 이어진 대간 마루금을 따라 923봉으로 향한다.

 

923봉으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는 가파르지 않다. 약 20여분 오르니 길가에 백두대간 중간 지점임을 알리는 의미 깊은 이정표가 서있다. 경기 평택 여산회 백두대간 구간 종주대가 2004년 5월 11일 세운 이정표다. 이 지점에서, 천왕봉과 진부령까지의 거리가 공히 367.325Km라 한다.

<대간 중간 지점임을 알리는 이정표>

 

11시 27분, 923봉을 지난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고 산행 리본만 무수히 걸린 작은 공지다. 비탈길을 내려선다. 다시 울창한 낙엽송 숲이 이어진다. 뒤돌아보니 923봉이 나뭇가지사이로 뾰족하게 보인다. 꽤나 높은 봉을 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는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아름다운 낙엽송 길>

 

11시 56분 너른 헬리포트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는 것을 보아. 새목재인 모양이다. 한 무리의 일행이 모여 사진을 찍고, 과일을 먹으며 쉬고 있다. 차련 님, 은영 님도 보이고, 언제 앞섰는지 오름길에 강한 후미당원 한 사람도 이미 도착해 쉬고 있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많이 올 비 같지는 않다. 이윽고 다른 후미당원들도 도착한다.

 

삼거리 오르막을 오르는데 비가 굵어지더니, 우박이 섞여 내린다. 대원들이 서둘러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챙겨 입는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지 않아 버텨보던 나도 방수 재킷을 꺼내 입는다. 바람도 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더니 해가 비친다. 변덕이 심한 날씨다.

 

12시 35분 경, 또 다른 헬리포트에 도착한다. 그 동안 내린 비로 바닥은 젖어 있으나 다행이 비는 멎었다. 앞서 도착한 일행들이 점심 채비를 한다. 은영 님과 차련 님이 자리를 잡고 있다. 후미당원들이 모두 도착하여 함께 점심을 한다. 넓은 헬리포트에 대원들이 가득 모여 식사를 한다. 모두 28명이나 된다.

<28인의 중식>

 

1시경 점심을 마친 대원들이 차례로 대미산으로 향한다. 헬리포트를 벗어나자 바로 삼거리다. 이정표가 서있다. 〈대미산 약 40분, 황장산 약 4시간〉,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점심을 먹고 났더니 더 춥게 느껴진다. 바람이 심해진다. 바람에 쫓기듯 대원들이 서둘러 대미산을 향한다.

<삼거리 이정표>

 

1시 8분 눈물샘 이정표를 지난다. 날씨가 차고 바람이 불어, 누구도 눈물샘에 내려가 보지 않고, 지나친다. 사진을 찍느라 뒤쳐졌던 나는 앞선 대원들을 따라 속도를 낸다. 대미산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선두에 후미당 당원인 여왕봉 님이 서고, 그 뒤로 긴 대열을 이루고, 대원들이 따른다. 누군가 장난삼아 번호를 부쳐보라고 소리친다. 번호 부쳐가 시작되고, 19번째가 최종 후미라고 신고한다.

<눈물샘 이정표 - 진눈개비 속, 샘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번호 붙여 앞으로 - 지난 산행부터 보이는 편대모습이다.>

 

1 시 20분 경 대미산에 오른다. 사방이 확 트였지만 지금은 비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속리산에서 소백산에 이르는 대간 능선을 볼 수 있다 했는데 유감이다. 증명 사진들만 찍고, 서둘러 하산한다. 여전히 여왕봉 님이 앞장을 선다.

<대미산 정상석>

 

내리막길에서 걸음이 느린 여왕봉 님이 앞장을 서니 길이 막힌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뒤따른다. 대원 한 사람이 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겨우살이를 가르치며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다른 나무에 붙어 겨우겨우 살아간다고 해서, 겨우살이라는 등, 새가 열매를 부리로 쪼아먹고, 다른 나무에 가서 주둥이를 비벼 닦을 때 옮겨진다는 등, 이 겨우살이가 암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등 강의가 그치질 않는다. 과연 나무 박사다. 1시 49분 부리기재에 도착한다.

<겨우살이>

 

중평리를 향해 낙엽 쌓인 급사면을 내려선다. 젊은 남자대원이 여왕봉 님에게 자기 스틱 2개를 넘겨주고, 그녀의 스틱 한 개를 받아 쥐더니, 쏜살 같이 앞서 달린다. 나는 그 여자대원 앞에 서서 비탈길에서의 스틱 사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며 따라 해 보라고 한다.

 

"허리를 펴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지그재그로 스틱을 앞에 놓아라, 놓여진 스틱에 가볍게 체중을 싣고, 보행 폭을 좁혀 잽싸게 걸어라," 말로 설명하고 앞서 시범을 보이면서 내려온다. 얼마가지 않아 여자대원은 감이 잡히나 보다. 속도가 빨라진다. 하산 길의 낙엽이 벌써 지난주 보다 못하다. 바람에 휩쓸렸는지 많이 줄었다.

 

개울가에서 땀을 씻고 있는 중위 팀을 만난다, 함께 내려온 여왕봉 님이 지난주보다 빨리 내려왔다고 스스로 대견해 한다. 한 두 번 더 연습해 몸에 익히면 이 여자대원의 주력도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다.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중평리에 도착하니 2시 40분 경이다. 4시간 30분 정도 걸은 산행이다. 중평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산골이다. 지나 온 대미산이 구름 한 덩이를 이고, 파란 하늘위로 솟아 있다, 아름답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식사가 준비된 식당에 들어선다.

<아름다운 중평리 마을>

 

선두 팀에게서 맥주 한잔을 받아 마신다. 하산 후 마시는 맥주 맛은 언제나 천하일미다. 후미보다 2시간 넘게 빨리 하산한 선두 팀은 벌써 10병째 맥주를 비운다고 한다. 돼지고기 수육에, 두부 찌개, 신선한 야채 등 좋은 안주에 술도 가지가지다. 맥주, 소주, 복분자 술, 오가피 주 등, 등,

 

버스는 4시 20분 출발 예정이라 한다. 이술 저술 받아 마시다보니 꽤 취한다. 4시 경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밖은 대낮이다. 대미산이 아름답고, 노란 단풍을 이고 도열한 쭉쭉 뻗은 나무들이 곱다. 출발 전에 사진을 몇 장 더 담아 둔다.

 

4시 20분 경 버스는 서울로 향한다.

 

 

(2004. 11. 21)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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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암산(布岩山, 961.7m) 일명 베바위산이라고도 하였는데 문경읍에서 갈평리를 지나 관음리로 접어들어 옛고개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우뚝 솟은 포암산이, 마치 베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희게 우뚝 솟은 모습이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 즉, 지릅 같이 보여서인지, 이 산을 마골산이라는 옛 기록도 보이고 있으며 계립산이라고도 한다. 옛 신라 때 고개인 하늘재를 지나서 오르면 백두대간 상에 있다. 소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깔나무가 많다. (문경시 홈페이지에서 발췌)

<지난번 탄항산 오르다 본 포암산>

 

<만수봉 삼거리 쪽에서 본 포암산>

 

"저희 이대로 산행하게 해주세요!"

 

지난번 두타, 청옥 무박 산행 중, 알바를 해서 고생했던 여자대원들 중 한 분이 산악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절규(絶叫)다. 힘은 부치지만 대간 산행은 계속하고 싶은데, 도움을 주지 않는 남자 대원들에 대한 원망과 호소가 담긴 절규다.

 

이 호소의 영향인지. 오늘의 산행모습은 이제까지와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다. 회장님을 포함한 후미 15명이 809봉을 넘어, 점심식사를 하러 한자리에 모인다. 약 30여분간 즐겁게 함께 식사를 하고, 1시 15분 경, 모두 함께 출발한다. 일행 중 세 사람이 속력을 내어 앞서 나가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여자대원을 선두로 일렬 종대로 진행한다. 누구도 추월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중평리에 도착할 때까지 약 3시간 동안 이 아름다운 대오가 그대로 유지된다. 일본 산악회와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름다운 기러기 편대 1>

 

<아름다운 기러기 편대 2>

 

중평리에 도착한 시간이 4시28분, 오전 10시 조금 못 미쳐 하늘재를 출발했으니, 약 6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 산행으로, 비록 기준 시간을 약 30분 초과했지만 그 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얻은 산행이었다. 중평리에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5시 1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서울에는 8시가 못되어 도착하고, 대원들 대부분이 즐거웠던 산행 뒤풀이를 위하여 수산시장으로 몰려간다.

 

"서울에서 세시간 여 차를 타고 내려오더니, 그 사람들이 어느 산 아래에서 우르르 내려, 갑자기 미친 듯이 헉헉대며 다투어 다섯 시간여 산을 오르고 내리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세시간여를 달려가서는, 떠나 온 그 장소에서 제 각기 흩어지는 인간들의 모습."

 

한 여자 대원이 게시판에서 우리들의 산행모습을 묘사한 글이다. 하지만 오늘의 산행모습은 이 묘사와는 한참 다르다. 우리도 후미의 다소 걸음이 느린 사람을 따라, 질서 정연한 산행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다. 등산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우리의 산행문화도 달라질 때가 됐나보다.

 

2004년 11월 13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28소구간을 산행한다. 『하늘재(520)-포암산(964)-마치골삼거리(923)-938.봉-897봉-꼭두바위(838)-1032봉-너덜지대(1.030) -부리기재(870)-중평리』 도상거리 약 14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6시간이다.

 

주중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진다. 바람도 있어, 오늘 아침 중부 산간지역의 체감 온도는 영하 5-6도 정도까지 내려간다는 예보다. 겨울 겉옷까지 꺼내 챙겨 입고, 이른 새벽 집을 나선다. 쌀쌀하다.

 

서초 구민회관 앞은 버스를 기다리는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 다. 오늘 아침은 쌀쌀한 날씨인데도 유난히 복잡하다. 5일 근무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20여분 늦게 도착한다. 산악회 인솔자가 신입회원들과 연락이 충분치 못해 늦었다고 양해를 구한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린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하얗게 서리가 내린 농가의 지붕,논밭들이 스쳐 지나간다. 스산한 늦가을 풍경이다.

<차창 밖 풍경 - 서리내린 도로변 농가>

<차창 밖 풍경 - 만추의 농촌>

 

충주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 후, 버스는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지나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10시 경 오른 쪽으로 난 등산로를 오른다. 조금 오르니 등산로는 옛 산성 위 너덜 길로 이어지고, 다시 왼쪽으로 굽어 지더니, 산성 길을 버리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간간이 암릉이 이어진다.

 

10시 20분 전망바위에 선다. 남쪽으로 주흘산이 멀리보이고, 우뚝 솟은 바위 뒤로 보이는, 가까운 산의 단풍은 이미 윤기를 잃었다. 가파른 언덕길이 계속 된다. 지난 주, 두타, 청옥을 무박으로 산행 한 후라 그런지 기분이 무척 느긋하다. 최후미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오른다. 포암산 주능선에 올라, 10시 32분 미륵리 갈림길을 지난다.

<전망바위에서 본 주흘산>

<전망바위에서 본 기암과 가까운 골짜기의 단풍>

 

<전망대에서 본 남서 방향 조망>

 

정상이 가까워지나 보다, 슬랩 구간이 펼쳐지고, 자일이 늘어져있다. 정상으로 오르면서 북으로 월악산을, 남서 방향으로 조령산 줄기의 부봉을 찾아본다. 10시 54분 포암산 정상에 오른다. 산악회 기준 시간보다 진행이 약 6분 정도 빠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이 서있다. 이미 대원들은 다 거쳐가고, 정상은 텅 비어있다.

<포암산 정상석>

 

<포암산 정상에서 본 월악산>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어 앞선 대원들을 쫓는다. 내리막길이 북쪽 사면이라 그런지, 검은 부엽토의 등산로 위로 하얀 서리가 뒤엉켜 비쭉 삐쭉 솟아있다. 산 속은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억수리 갈림길 전에 후미 팀을 따라잡고, 11시 19분 억수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부엽토 위로 솟은 서릿발>

 

참나무에도 종류가 많다고 한다.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에는 줄기에 흰 반점이 있어, 쉽게 구분하지만, 나머지는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구분이 어렵다. 온 산이 이런 참나무 군으로 덮여 있는데, 이 참나무들이 이미 나뭇잎들을 다 털어 버리고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도열해 있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다. 산 사면을 따라 앙상한 나무사이를 오르는 대원의 뒷모습이 외롭게 느껴진다.

<낙엽 속을 걷는 대간꾼 - 뒷모습이 외롭다>

 

11시 40분 지리산/백두산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고, 11시 52분 만수봉 갈림길에 선다. 기념사진을 한 컷 찍고, 오른 쪽 급사면을 오른다. 여전히 최후미로 걷지만, 여기까지의 기준시간 2시간보다는 그래도 약 8분 정도 진행이 빠르다.

<만수봉 갈림길 이정표>

 

12시 7분, 884봉 전망대에 이른다. 대원들이 모여 확 트인 조망을 즐기고 있다. 저 멀리 북서쪽으로 신선봉의 삼각형이 선명하고, 남서쪽으로는 조흘산의 웅장한 산세가 흐른다. 가까이 서쪽으로, 오늘 넘어 온 포암산과 지나온 능선 길이 뚜렷하고. 그 아래로 관음리가 아득하다. 포암산 오른쪽으로 만수봉도 보인다. 동쪽으로는 다음 주 우리가 오를 대미산이 조용히 누워있다. 하지만 이 좋은 전망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것은 모두 발 빠른 남자대원들 뿐이다. 아마도 갈 길을 걱정한 여자대원들은 서둘러 길을 떠난 모양이다. 이 전망대에서 10여분 가까이 조망을 즐긴다.

<포암산과 걸어온 능선>

 

<전망대에서 본 만수봉>

<멀리 본 대미산>

 

897봉을 지나 내리막길을 달려 내린다. 12시 36분 경 809봉을 넘어서니, 회장님을 포함한 한 무리의 대원들이 점심 채비를 하고 있다. 이 곳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곧 같이 걸었던 산악회 후미대장은 앞서 치고 나가고, 나는 이들 후미구룹에 합류,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모두 15명이 벌이는 큰 점심 파티다. 여자대원이 7명, 남자대원이 8명이다. 나를 제외한 남자대원들은 모두 쟁쟁한 준족들이다. 30여분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즐긴다.

 

1시 15분 경, 일행은 점심을 마치고 출발한다. 남자대원 둘, 여자대원 한 분이 앞서 나간다. 나머지 일행은 여자대원을 선두로 일렬종대의 행렬을 이루고 나아간다. 안부를 지나 앙상한 참나무 숲길을 따라 844봉을 향한다. 황량한 숲을 배경으로 컬러풀한 등산복 편대가 질서 정연하게 흐르는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

 

1시28분 전망대에 선다. 함께 모여 조망을 즐긴다. 저 아래 문경읍이 손에 잡힐 듯 누워있다. 사진을 찍는다. 모두들 즐겁고, 느긋한 표정들이다. 이윽고 일행은 다시 편대를 형성, 844봉을 오른다.

<꼭두바위봉에서 본 문경읍>

 


<문수봉, 용암봉, 미륵리>

 

2시 26분, 1.032봉에 선다, 조망이 좋다. 무엇보다도 포암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진 능선길이 발아래 펼쳐져 있어, 먼 길을 걸어 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모두들 흐뭇해한다. 너덜바위 위에 모여 사진을 찍으며 쉰다. 이 좋은 조망을 두고 어찌 한잔 술이 없을 까 보냐? 남자들은 소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과일을 즐긴다. 모두들 일어나기가 싫은 눈치다. 남자대원 한 사람이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1시간 45분에서 2시간 정도는 더 가야한다. 일행은 서둘러 출발한다.

<1,032봉 너덜지대를 오르는 대원들>

 

3시 4분, 1,034봉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3시27분 부리기재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여자 대원들은 이미 중평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참나무들이 온통 산을 뒤덮고있다. 나뭇잎은 다 떨어져 낙엽이 발등을 덮는다. 급경사 사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등산로는 지그재그, 그야말로 구절양장이다. 이 사면을 예의 기러기 편대가 질서정연하게 내려간다. 보기가 좋다.

<부리기재 이정표>

 

길이 평탄해 지면서 손질이 잘 된 무덤 몇 기가 낙엽을 덮고 있다. 이제 다 내려 왔나보다. 하지만 웬걸, 길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통하는 들머리를 깔보지 말란 듯, 한 구비 휘어지더니 다시 급사면이 계속된다. 지난번의 신선봉 너덜길이 지옥길이라면, 이 낙엽 길은 황홀한 천당길이다.

<낙엽에 덮인 무덤>

 

이윽고 냇물이 보인다. 여자들은 간단히 손만 닦고 내려간다. 남자들 몇몇이 상의를 벗고 땀을 닦아낸다.

 

중평리는 두메 산골이다. 하지만 산자락에 도열해, 노란 잎으로 치장하고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무척 아름다운 평화로운 산골이다. 저 너머 버스가 서있고, 논에서는 화톳불이 붉게 타오른다.


<아름다운 중평리>

 

화톳불 가에서 선두대원 한 분이 줄지어 내려오는 우리 후미 일행을 박수로 맞이한다. 화톳불 가에는 선두로 내려온 대원들이 벌써 저녁을 마치고 불장난을 하고 있다.

<동심 - 불장난>

 

간이 식당 평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중위구룹 멥버들의 저녁식사가 한창이다. 이제는 꿀릴게 없는 후미구룹이, 그 세를 과시하며 당당하게 안방으로 진입한다. 오늘 아침에 빗었다는 생두부에 양념장, 두부찌개가 맛이 담백하고, 간장에만 담근 듯한 깻잎의 맛이 일품이다. 깡통에 담긴 깻잎과는 질이 다르다.

 

맥주에 소주에 후미팀, 남녀가 한데 어울려 왁자지껄 건배를 한다. 모두 즐거운 표정들이다. 5시에 출발 예정인 버스를, 부탁하여 10분간 지연시킨다. 버스는 5시 10분 서울로 향한다.

 

8시가 못 된 시각. 버스는 복정역에 정차하고, 대부분의 대원들이 수산시장에서의 뒤풀이를 위해 하차한다. 버스 안이 썰렁하다. 일이 있는 몇 분 대원과, 눈치껏 자리를 사양한 늙은이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버스는 복정역을 출발한다.

 

 

(2004. 11. 14.)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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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길, 산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듯 사납게 불어대는 바람, 그리고 포효하는 바람소리... 도상거리 약 26Km, 따라서 실제 거리는 30Km를 훨씬 넘는 거리, 이 거리를 약 13시간 동안에 달린 산행이다. 모두들 힘들어했지만 한편으로는 보람을 느낀 산행이었다.

 

2004년 11월 5일(금)
오늘은 백두대간 제 42구간을 무박으로 산행한다. 『댓재(810)-목동령(980)-두타산(1,32.7)-박달령(1,100)-청옥산(1,403.7)-고적봉(1,353.9)-갈미봉(1,260)-이기령(800)-상월산(960)-원방재(730)-백봉령(810)』. 도상거리 약 26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13시간이다.

 

장거리 무박여행이 부담이 되는데, 거기다 오후 늦게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 잠도 안자고 걷는 30Km 이상의 산길인데, 비라도 내리면 완주가 걱정이 된다. 서둘러 일기 예보를 본다. 영동 지방 산간지역은 금요일 오후에는 눈이 예보되고, 토요일 오전에도 비가 온다고 한다. 집사람이 걱정을 한다. 내가 밤눈이 어둡다는 것을 잘 알아, 더욱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이런 날씨인데도 한 밤중에 나서겠냐고 묻는다. 가지 말라는 소리다.

저녁을 먹고, 8시경부터 배낭을 챙긴다. 여벌옷을 충분히 준비하고, 눈길에 대비하여 아이젠을 찾아 배낭 밑바닥에 넣는다. 헤드랜턴도 점검, 이상 없음을 확인한다. 체념한 듯, 집사람은 TV를 보면서 주먹밥을 마련한다. 도시락 준비를 마친 집사람이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더니, " 여전히 비가 오네," 라고 혼잣소리를 한다. 날더러 들으란 소리다. 배낭을 대강 꾸려 놓고, 산행계획 메모를 보며, 다시 산행할 구간의 특징, 소요시간 등을 기억한다. 10시 30분 경, 출정하는 병사처럼 비장한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다행히 비는 멎었다.

 

서초 구민회관 앞. 오늘따라 대원들이 늦는다. 두 사람이 보일 뿐이다. 여자 대원 한 분이 모습을 나타낸다. 몇 사람되지 않는 대원들을 보더니 여자 대원이 걱정이다. "여자는 나 혼자만 가는 건 아니겠지?" 이런 여자 대원 앞에 다른 여자 대원이 나타나자 서로 반갑다고 얼싸 안는다. 이윽고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온다. 과연 모두가 대간병 환자들이다. 복정역에서 몇몇 환자들을 더 태우고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린다.

 

산악회에서 나온 인솔자는 오늘은 힘든 산행이 될 터이니, 버스에서라도 잠을 좀 자 두라고 간단히 인사를 한다, 버스가 어느 도로를 어떻게 달리는 지도 모르는 채, 가물가물 잠 속으로 빠져든다.

 

새벽 1시경 버스는 소사 휴게소에 정차한다. 30분간 정차할 터이니 아침 식사를 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마련하란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오지 않으나 안개가 자욱하다. 불빛 속에서 사람들이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이 보인다. 한밤중이라 식사할 생각이 없어 커피를 마시면서 안개를 바라본다.

 

버스에 오르자 산악대장이 오늘의 산행자료를 배포하며, 아직도 2시간 정도는 더 가야하니 더 자라고, 체력 비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료 설명은 댓재 도착 직전에 하겠단다. 다시 소등하고 버스는 달린다. 댓재에 가까웠나 보다. 버스 안에 불이 켜지고, 산악대장이 산행자료를 설명한다. 차창 밖에는 바람이 거센지 도로 위로 나뭇잎들이 어지럽게 휘날린다.

 

3시 40분 경 버스는 댓재에 도착한다. 비는 멎었지만 바람이 거세다.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려 어둠 속에서 못다 한 산행준비를 한다. 차안에서 준비를 마친 부지런한 대원들은 벌써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재빠르게 오른다. 아마도 선두 경쟁을 하는 분들인가 보다. 3시 45분 경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랜턴 불빛만 번득인다.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왼쪽으로 산신각이 보인다. 다른 때 같으면 사진을 찍어 두었겠지만, 오늘은 먼 길이다. 사진 찍기도 생략한 채 길을 따라 오른다. 토사 붕괴를 막으려고, 땅에 깔아 놓은 철망이 미끄럽다. 고도가 높아지며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 진다. 바람소리가 비명소리처럼 귀에 거슬린다. 윈드 재킷을 걸쳐 춥지는 않지만 오름길인데도 땀은 나지 않는다. 먼 길의 체력 안배를 위해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걸음이 빨라진다.

 

이윽고 길 오른쪽으로 햇댓등 임을 알리는 돌 표지가 서있다. 『댓재 30분. 두타산 3시간』 시간을 아끼느라 사진 찍기를 또 생략하고 시계를 본다. 4시 정각이다. 15분만에 올라 온 거다. 바람에 불려 왔나보다.

 

한차례 급경사 내리막을 지나 등산로는 934m봉 오름길을 오른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걸음의 속도를 죽인다. 앞사람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다행이 내 뒤로는 올해 환갑인 대원과 그분 친구 분이 따라와. 천천히 걸어도 길을 양보하란 독촉이 없다. 앞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지만, 길을 양보했다가 어둠 속에서 뒤쳐지면, 밤눈 어두운 내가 혼자서 길 찾느라 고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시침 뚝 따고 모른 체 길을 걷는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근래에 이런 바람을 경험하기가 처음이다.

 

934봉에서는 동해도 보인다지만 어둠 속에서 언제 지난지도 모르고 지나고, 1,031봉 오르는 긴 오름길에서 이제껏 참고 뒤따라오던 대원이 갑갑했던지 앞으로 제치고 나간다. 다행히 친구분은 여전히 뒤따르며 뒤를 막아준다.

 

5시 31분 통골재 이정표를 지난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는다. 길 뚫린 게 다행이란 듯, 따라오던 대원들이 앞서 나간다. 두타산 2.2Km, 벌써 어둠 속에서 매서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땅만 보고4.2Km를 온 셈이다.


<통골재 이정표>

 

다시 어둠 속을 걷는다. 뒤따르는 대원의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별이 총총하구나..." 땅만 보며 바람에 쫓기듯 걷다가 이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별들이 영롱하고. 귀퉁이에 하현달이 외롭게 걸려있다. 아름답다.

한 밤중에 커다란 무덤 옆을 지난다. 산꼭대기의 무덤치고는 관리가 잘 돼있다. 조금 더 오르니 바로 두타산이다. 6시 10분 경이다. 산악회가 후미기준으로 제시한 2시간 30분보다 약 5분 빠르게 도착했다. 정상에는 먼저 오른 대원들로 가득하다.

 

두타산 정상은 너른 공지다. 안내판, 이정표, 정상석들이 골고루 정비돼 있다. 여명 속에서 사방이 조금씩 희미하게 보이고, 다소 누그러졌지만 바람은 여전하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다보니 손이 시리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정상에서 3-4분간을 머물고, 서둘러 박달령으로 향한다.


<두타산 정상석>

 

 

<두타산 정상의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

 

6시 30분 경, 여명 속에서 뒤돌아 나뭇가지 사이로 두타산을 찍는다. "사진이 나오려나?" 6시 50분 경, 이상하게도 반대쪽의 청옥산, 고적대 위 하늘이 먼저 붉게 물든다. 7시경 박달령에 내려선다. 이정표가 서 있다. 『청옥산 3Km, 50분, 두타산 1.5Km, 1시간 10분』 사진을 몇 장 찍고, 서둘러 청옥산으로 향한다. 7시 5분 경, 뒤를 돌아보니 두타산 정상능선이 불타고 있다. 앉아서 일출을 지켜야 하는 건데, 그 놈의 목적산행이 뭔지 허우적대며 오르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해는 벌써 두타산 위로 반 넘어 올라와 있다. 앉아 기다리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여명 속의 청옥산, 고적대>

 

 

<박달령 정상>

 

<불타는 두타산 능선>

 

 

 

<두타산 일출>

 

7시 52분 경 청옥산 못 미쳐, 샘이 있는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 도착한다. 물은 충분하지만, 샘도 구경하고, 물맛도 보려고, 배낭을 내려놓은 후, 샘으로 내려간다. 대원 한 사람이 혼자서 물을 받고 있다. 물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고여있는 물도 흙탕이라 마실 수 있는지 모르겠단다. 물맛보기를 단념하고 다시 이정표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다.

 

8시경 청옥산에 오른다. 정상은 너른 헬리포트다. 웬일인지 한글로 표기된 정상석이 넘어져 땅에 누워있다. 샘으로 내려간 사이에 후미 팀이 도착한 모양이다. 모여 앉아 간식을 들고 있다. 대원 한 분이 빵을 한 개 내준다. 시장하던 판이라 그 맛이 꿀맛이다. 귀한 커피까지 얻어 마신다. 청옥산은 정상 주위가 나무들로 둘러 싸여 전망은 별로다.

 

땅 위에 넘어져 있는 한글 정상석 조금 뒤쪽에 또 하나, 한자로 표기된 정상석이 의연히 서있다. 그 앞에 젊으니 둘이 라면을 끊여, 아침식사를 한다. 정상석을 기념으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방해가 되는 위치다. 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택한 건지, 아니면 무신경인지 알 수가 없다.


<청옥산 정상>

 

청옥산 정상에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고적대를 향한다. 내리막 길 등산로는 비교적 잘 정비가 돼있다. 정면으로 고적대(高積臺)의 삼각 봉이 나뭇가지사이로 날카롭고, 오른쪽으로 고적봉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주능선과 무릉계곡 쪽으로 달리는 가지능선이 웅장하다. 가히 명산에 들어선 느낌이 완연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본 고적대>

 


<무릉계곡으로 흐르는 장엄한 산줄기>

 

8시 35분 경 연칠성령에 이른다. 너른 공지에 이정표,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 그리고 작은 돌탑이 한 개 서 있다. 연칠성령(連七星嶺) -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산림청 연칠성령 안내판을 옮긴다.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難出嶺)으로 불렸다.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望京臺)하고 하는데 인조 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澤堂 李植)이 정봉산 단교암에 은퇴하였을 때 이 곳에 올라 서울을 사모하여 망경한 곳이라 전해진다.』, 난출령에 대한 설명은 하고 있지만, 난출령이 왜 연칠성령으로 불리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연칠성령의 이정표 - 방향 팔이 모두 회손됐다.>

 

고적대 암릉을 오른다. 경사가 있는 암릉길이지만 발 놓을 자리가 확실하고, 완만한 슬랩구간에도 자일이 걸려 있어 어렵지는 않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일품이다. 9시 20분 경 고적대 정상, 바로 아래, 좁은 전망대에 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이른다. 마치 절벽 사면에 둥지를 튼 독수리 집같이 묘하게 생긴 자리다. 주의해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가 쉬운 곳이다.


<고적대 오르다 본 암봉>

 

벌써 술들이 거나한 모양이다. 더덕 주는 바닥이 났고, 새로 공급된 위스키와 오십세 주도 금방 바닥을 들어낸다. 눈앞에 청옥산과 그 뒤로 두타산이 역광 속에 나란히 누워있다. 아래로는 무릉계곡으로 흐르는 산줄기들이 웅장하다. 북서쪽으로 이름 모르는 산줄기들이 아득하게 펼쳐있다. 웅장한 산세의 기를 받아서인지, 대원들 모두가 당당하고 명랑하다. 10여분 가까이 지체하다 9시 32분 경 고적봉 정상에 선다.


<고적대 오르다 본, 두타와 청옥>

 

 

<북동 방향의 조망>

 

고적대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지난번 마폐봉 산행시 신선봉에서 본 조망도 일품 이였었지만, 그때의 조망은 원경(遠景)이 중심이 됐던 것에 비해, 고적봉 위에서 보는 조망은 원경과 근경(近景)이 조화를 이루어 그 아름답기가 신선봉 조망을 능가한다. 아름다운 조망에 끌려 다시 10여분간을 정상에 머문다.

 

<고적대 정상석>

 


<북서 방향 조망>

 

 

<고적대 정상에서 본 산, 산, 산,,,>

 


<고적대에서 본 무릉계곡>

 

<고적대 맞은편 사면의 암벽 - 대간 길은 그 사면을 왼쪽으로 오른다.>

 

고적봉에서의 하산길은 급경사길이다. 하지만 하산하면서 굽어보는 전망이 또한 일품이다. 저 아래 안부를 지나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길까지가 넓은 분지처럼 광활하다. 이 부근이 철쭉 군락지인 모양이다. 듬성듬성 푸른 소나무들이 솟아 있지만, 안부에 이르는 사면이 온통 키 작은 철쭉으로 뒤 덮여 있다. 제철에 철쭉이 만개하면 가히 장관을 이루겠다.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이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대원 한 분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며 비탈길을 내려온다. 비탈길에 스틱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발전하여 올바른 스틱 사용법을 서로 이야기한다. 거의 안부에 다다를 무렵, 낙엽에 덮인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개구락지 꼴이 된다. 지그재그로 내딛어 경사를 죽여주던 스틱 두개가 모두 허공에 있을 때 나무뿌리에 걸린 모양이다. 얼굴이 가볍게 땅에 부딪칠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개구락지가 된 것이다.

 

툭툭 털고 일어나니, 뒤따르던 대원이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조금만 더 세게 얼굴을 땅에 박았다면, 안경도 박살이 났을 거고, 그러면 눈도 안전치 못했을 것이 뻔하다. 그뿐인가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을 것이고, 여기서 여러 사람들에게 폐 끼칠 일을 낼 뻔했다. 내 얼굴이 어떠냐고 거꾸로 그 대원에게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산에서 위험은 큰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곳에도 항상 있다. 정신이 번쩍 난다.


<철쭉 군락 사이로 보이는 대간길>

 

갈미봉 오름길에 새로 온 대원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다. 웬일이냐 고 물으니 좀 쉬겠단다. 무심코 지나친다. 한참을 걸어도 뒤따르는 기색이 없다. 오름길에는 나보다 월등히 빠르게 걷던 분이라 따라올 시간이 됐는데도 소식이 없다. 청옥산을 지나면서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하더니, 다리에 이상이 있는 건가? 마침 후미대장이 쉬고 있다. 신입 대원 이야기를 해주고, 필요하면 쓰라고 멘소레담을 배낭에서 꺼내, 건네준 후 혼자 갈미봉으로 오른다.

10시 44분 갈미봉에 도착한다. 고적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음에도 쉬지 않고 걸어서일까. 산악회에서 제시한 7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시간 안에 도착하니, 기분이 괜찮다. 갈미봉 정상에서 대원 두 사람이 기다리다, 점심을 먹자고 한다.


<갈미봉 정상 표지>

 

세 사람이 준비한 도시락을 푼다. 두 분은 똑같은 보온 도시락에 밥을 담고, 김치, 멸치조림, 오징어 젓갈, 게다가 전 부침까지 반찬들이 화려하다. 내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주먹밥에, 미소 시로, 오늘은 마침 깍두기가 잘 익었다고 집사람이 병에 조금 담아 준 것이 있어, 그나마 체면이 선다. 소주 한잔을 오드볼 식으로 마신 후 점심을 즐긴다.

 

점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후미대장이 신입회원과 함께 합류한다. 멘소레담을 바르고 맛사지를 해, 뭉친 근육을 풀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둘러 식사를 한다. 천천히 식사를 하라면서 모두 두 사람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쉰다.

두 사람 식사가 끝나고, 나는 이기령으로의 내림길을 내 달린다. 달리면서 남은 구간과 소요시간을 계산해 본다. 늦어도 5시까지는 백봉령에 도착할 수 있겠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이 걷다보면 나라고 다리에 쥐가 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무리하지 않고 걸으며 5시전에 백봉령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은 이기령까지 한 시간 정도에 내려가야 한다.

 

뒤에서 대원 두 사람이 따라 온다. 다리에 쥐가 났던 신입회원은 이기령에서 탈출하기로 했단다. 두 분이 앞지른다. 서둘러 뒤를 따른다. 12시 28분 이기령에 도착한다.

 

<이기령 이정표>

 

쉴 틈도 없이 970.3봉 비탈길을 오른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아름드리 커다란 소나무, 아직은 어린 소나무, 모두 미끈하게 잘도 생겼다. 남원 지역의 고남산. 백운산 일대의 송림 숲 이후, 오랜만에 소나무 사이를 걷는다. 시간대도 산림욕하기 딱 좋은 때다. 피치스톤이 가장 왕성하게 뿜어 나올 시간이다. 하지만 마음은 한가롭지 못하다. 5시전에 백봉령에 도착해야 한다. 12시 58분 헬기장인 970.3봉에 도착한다. 목표로 했던 30분은 넘지 않았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산행리본만 나뭇가지에 무수히 걸려있다.

 

상월산을 향한다. 목표시간은 25분. 내리막을 지나더니 등산로가 가팔라진다.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오른다. 1시20분 경 커다란 고사목에 상월산 나무표지가 걸려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역시 시간 내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작은 또 한 그루의 고사목과 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카메라에 담고 원방재를 향해 달린다.


<상월산 표지목이 고사목에 걸렸다.>

 

 

<상월산에서 본 앞으로 걸어야할 능선>

 

 

 

<상월산의 또 다른 고사목>

 

원방재로의 내림 길은 경사가 급하고 잡목이 무성하다.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멀리 무릉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원방재에는 40분 이내에 도착해야 한다. 1시 49분 원방재에 도착한다. 30분이 채 못 걸렸다. 내리막이라 진행이 빠르다. 댓재를 출발한 후 점심시간 약 45분간을 포함, 약 10시간을 걸은 셈이다. 원방재에는 산림청에서 새로 세운 듯, 멋진 안내판이 서 있다.

 

원방재에서 대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이기령에서 탈출한 신입회원이 임도를 따라 걷는 모습이 보인다. 산악회 인솔자가 1,022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가르치며 빨리 출발하라고 독촉한다. 5시까지는 백봉령에 도착하겠다고, 인솔자를 먼저 보내고, 원방재 벤치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미숫가루 물을 마시며 쉰다. 1시 55분 경 서둘러 1,022봉으로 향한다.


<원방재 안내판>

 

1,022 봉까지는 2Km가 조금 넘는 거리지만 지난해 이 구간을 무박으로 산행했던 사람은 산행기에서 1,022봉을 오르면서 초죽음이 되었다고 한다. 완만한 오름길이 지루하게 계속된다. 경사가 급한 곳은 등산로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한없이 구불거리며 경사를 완화시킨다. 우회가 어려운 경사길에는 새롭게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계단을 오르면서 등뒤의 배낭이 처음으로 무겁게 느껴진다. 지치는 모양이다. 3시경 1,022봉 너른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정표는 아직도 백봉령까지 5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1,022봉 정상>

 

1,022봉에는 한 무리의 대원들이 쉬고 있다. 소주를 한 잔 얻어 마시고, 한참을 쉰 후 모두 함께 마지막 고지 987.2 봉을 향한다. 3시 40분 경 987.2봉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두리번거리며 삼각점을 찾으니, 산악회 인솔자가 삼각점을 누군가가 뽑아버렸다고 알려준다. 할 수 없이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들을 카메라에 담아 시간 기록을 대신한다. 인솔자는 이제 한 시간이면 백봉령에 도착할 수 있다고 기운을 돋우어 준다.

 

누가 뒤로 바짝 붙어 따라오면 부담을 갖게된다. 그게 싫다, 그래서 다시 맨 뒤로 쳐져 마지막 피치를 낸다. 백봉령이 1,3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가벼운 업 다운이 계속되며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저 아래로 42번 국도가 내려다보이고, 차량들이 왕래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백봉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석병산으로 다시 오르는 길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윽고 너른 전망대에 도착한다. 자병산의 훼손된 모습이 눈앞에 있다. 안내판이 망상 해수욕장 방향과 옥계 방향을 알려준다. 이제 다 온 것이다. 비탈길을 달려, 국도에 내려선다. 오른쪽에 버스가 보인다. 버스를 향해 뛴다. 4시 50경 버스에 오른다. 

<백봉령 전망대에서 본 석양 속의 동해>

 

버스에 오르니 인솔자가 반긴다. 5시까지 오겠다더니, 5시가 못되어 내려왔다고 추켜 준다. 버스가 5시 20분 출발 예정이니, 뒤쪽의 간이 식당에 가서 라면으로라도 요기를 하라고 권한다. 맥주도 파느냐고 물으나, 있다고 한다. 급히 간이 식당으로 향한다.

 

간이 식당에 있던 대원들이 예상보다 빨리 내려왔다고 반긴다. 맥주를 청해 마신다. 시원한 것이 살 것 같다. 대원 한 사람이 삶은 계란을 주고, 또 다른 대원은 육포를 건네 주면서 힘들었던 산행을 위로한다. 이런 맛에 힘든 산행을 하나보다. 따듯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다.

 

5시 20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이기령에서 탈출했던 3사람은 도중에서 픽업한다. 소사 휴게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하라고 버스가 20분간 정차한다. 서둘러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차에 오른다. 버스가 서울로 향하는 동안 내처 잠 속에 빠진다. 9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서울에 도착한다.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뒤풀이를 하겠다는 소리가 없다. 힘들기는 모두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긴 하루였다.

 

 

(2004.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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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0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44 소구간을 산행한다. 『삽당령(680)-862봉-들미재삼거리(910)-978.8봉-석두봉(982)- 989.7봉-1006봉-화란봉(1,069)-닭목재(680)』. 도상거리 약 13.2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5시간 40분이다.

 

산악회 인솔자가 오늘 산행코스를 상세히 설명한다. 비교적 수월한 산행이 될 것이라고 한다. 큰 특징이 있는 산은 아닌 듯 싶다. 닭목령에는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하산 후 용평에 가서 오징어 불고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35번 국도를 통해 삽당령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왼쪽으로 오봉호가 아침 햇살을 받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누워있고. 오른쪽으로는 아직도 골짜기마다 단풍이 절정의 모습들을 뽐내고 있다.


<35번 국도변 풍광>

 

10시 35분 경, 버스는 삽당령에 도착한다. 단체 사진을 찍고, 10시 40분 경, 산행을 시작한다. 삽당령(揷唐嶺), 쉽지 않은 이름이다. 그 이름의 유래를 찾아본다.

 

"삽당령은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해발 721m의 큰 고개다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하여 '꽂을 삽(揷)'자를 썼다는 지명 유래와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삽당령 도로개설과 사라진 지명 "가리손" 작성일: 2001/03/30 수정일: 2001/04/02, 작성자: 홍순석〉 에서 발췌.


<삽당령 돌표지>

 

삽당령의 사진을 찍느라 맨 후미로 쳐져 천천히 등산로로 진입한다. 등산로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맑은 날씨에 햇볕이 따갑지만 스쳐 가는 바람결이 차갑게 느껴진다.


<임도를 따라 골짜기로 이어진 단풍길이 아름답다.>

 

25분쯤 지나자 등산로는 임도로 내려서더니 다시 완만한 숲길로 이어진다. 골짜기로 뻗은 임도 주변에 노랗게 물든 잎으로 치장한 숲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완만한 경사를 지나자 길가에 강릉시에서 세운 이정표가 서있다. 862봉인 모양이다. 지명과 거리 표시가 없이, 방향만 알리는 심플한 이정표다.


<862봉의 이정표 - 모양은 좋은데, 지명과 거리가 있으면 금상첨화>

 

산죽밭 길을 따라 비교적 빠르게 걷는다. 등산로는 나지막한 언덕에 이르고, 잎 떨어진 참나무가지 들이 앙상하다. 삽당령을 출발하여 한 시간쯤 걸어 들마재를 지난다. 왼쪽으로 대용수동 쪽 임도가 보이고, 부드러운 산세가 임도 쪽으로 내려서는 모양이 보기 좋다.


<부드러운 산세가 마을로 흐르고 마을은 단풍이 한창이다>

 

등산로는 억새 밭 사이로 이어진다. 듬성듬성 서 있는 푸른 소나무 아래로 하얀 꽃을 단 억새들이 경사면을 따라 지천으로 널려있다. 등산로는 그 사이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 끌려 사진을 찍느라 더욱 더 뒤로 쳐진다.


<소나무와 억새의 조화 - 아름답다.>

 


<조릿대 길>

 

12시 35분 경. 석두봉에 도착한다. 산행 시작 후 약 2시간 정도 지난 시간이다. 조선일보 백두대간종주의 2시간과는 일치하지만, 산악회가 본 소요시간 3시간보다는 한 시간이나 빨리 온 셈이다. 다른 선답자들도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두봉은 작은 암봉으로,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해 묵은 침엽수가 한 그루 서 있고, 나무 가지에 산행 리본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을 뿐이다. 북쪽, 서쪽, 그리고 동쪽 방향의 시계가 터져 있다. 서쪽과 북쪽 방향의 경관이 뛰어나다.


<석두봉 정상 - 아무 표시도 없다.>

 


<석두봉에서 본 조망 - 부드럽다.>

 

석두봉에 잠시 머문 후, 비탈길을 내려온다. 한참 내려서니 앞섰던 대원들이 점심식사 차비를 하고 있다. 합류하여 도시락을 푼다. 예상보다 빨리 석두봉에 도착하고, 이제 갈 길도 2시간 조금 더 남았을 뿐이니 서두를 것 없다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 커피와 과일까지 챙겨 먹고, 화란봉으로 향한다.

 

어찌된 건지 석두봉을 다 내려 선 안부에 석두봉 정상 팻말이 서 있다. 산악회 인솔자 설명으로는 석두봉 갈림길을 잘못 표기한 것 같다고 한다. 강릉시에서 세운 이 부근의 이정표들에는 산행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의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철가방 공무원들이, 시키니까 한다는 식의 안이함이 역력하게 보이는 것 같다.


<안부에 세워진 석두봉 이정표>

 

울창한 산죽 밭을 헤집고, 975봉에 오른다. 이제 점심을 먹은 지도 꽤 지난 터라 앞 선 사람들을 쫓아 속도를 낸다. 989.7봉에서 등산로는 급격히 서쪽으로 꺾여 해를 마주한다. 3시 경 화란봉(花蘭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산악회에서 나온 리더가 기다리고 있다.


<989.7봉>

 


<화란봉 정상 이정표>

 

쉬면서 후미 일행을 기다린다. 정상의 넓지 않은 공간에는 정상 표지목이 서 있고, 비닐로 된 간이 이정표가 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정상을 내려서자 바위 지대에 노송(老松) 몇 그루가 보기 좋게 서있다. 이 지역에서 서쪽으로 닭목령을 지나는 도로가 멀리 보인다.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산악회 인솔자가 선두와 무전기로 교신을 한다. 선두 팀이 닭목령 못 미친 능선 길에서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노송>

 


<뒤돌아본 화란봉>


 

<하산하면서 본 닭목령 방향>

 

해를 안고 내려오는 하산 길 경치가 그만이다. 등산로 주변은 산죽이 무성하고, 사이사이로 키 작은 활엽수들은 단풍이 고와. 머리 위 칩엽수들의 푸르름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모든 광경이 지는 해를 받고 반짝인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윽고 선두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이른다.


<해를 안고 내려오는 하산길 - 눈부시다.>

 

선두와 후미가 서로 어울려 닭목령을 향해 내려선다.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말들은 않지만 모두들 흐믓한 기분인 모양이다. 3시 50분 경 닭목령에 도착한다. 후미 기준으로 5시간 10분 정도 걸린 산행이다. 수돗가에서 간단히 세수를 마친 일행들이 버스에 올라용평 오징어 불고기 집으로 향한다.


<닭목령>

 


<용평 오징어 불고기집>

 

5시경용평 납작식당에 도착한다. 모두 함께 하산하면서 얻어진 일체감이 식당으로 이어져 ,식당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그 여파는 귀경 버스까지 연장된다. 문막 휴게소를 지나 버스의 주행 속도가 떨어지자 뒷자리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더니, 합창으로 이어진다. 수면을 취하려는 분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질색을 하는 반응도 있지만,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젊은이들의 흥겨움이니 내 내버려둬도 상관없다는 반응도 있다. 여주를 지나면서 다시 버스에 속력이 붙자. 뒷자리의 노래 소리도 언제 멈췄는지 모르게 멈춘다. 9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서울에 도착한다.

 

 

(200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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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박목월의 시 산도화(山桃花) 다.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시인은 보랏빛 석산을 이상향의 무대로 삼고 있다. 물론 구강산이라는 산은 실제로 존재하는 산은 아니다.

 

자병산(紫屛山) - 산봉우리 하나가 뭉텅 잘려나가 지금은 그 모양을 알 수 없지만 산 이름대로라면 아마도 보랏빛 병풍을 두른 것 같은 산이 이었던 모양이다. 박목월 시인이 머리 속에서 그린 구강산 못지 않게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900.2봉 오르다 본 머리 잘린 자병산- 남은 능선이 보랏빛을 띤 것도 같다>

 

 

<생계령 부근에서 본 훼손된 자병산 - 철탑 부근이 추가 허가지역 ?>

 

이 아름다운 산이 지금은 없다. 개발허가를 내준 행정관서나 돈벌이에만 급급한 한 기업에게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다. 대대손손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공사 현장 - 생태계 복원 노력을 한다지만, 이런 모습에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버스가 임계를 지나 백봉령으로 향하는 곳곳에 백두대간 보호법 시행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눈에 뜨인다. 백두대간을 보호하자는 것에 반대하기보다는 개인 재산권의 보호와 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인 듯 싶다.

 

<산림청을 야유하는 현수막>

 

모든 걸 법으로만 해결하려든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개인의 재산권, 지역의 발전이 충분히 고려된 융통성 있는 법 운용이 바람직하다.

 

2004년 10월 16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43 소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백봉령(710)-42번 철탑-자병산 삼거리796봉-생계령(640)-922봉-고병이재-석봉산(1,055.3)-두리봉(1,033)- 삽당령(680)』, 도상거리는 약 16.5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6시간 30분이다.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시간에 쫓겨 마치 산악 훈련하듯 내 달리느라 정신이 없는 대간 산행과는 달리, 높직한 고속버스에 앉아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을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긴다.

 

벼를 베어낸 텅 빈 논들이 한가롭다, 단풍은 이미 마을 뒷산까지 내려와 곱게 물들고, 그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그림 같다. 2차선 길이지만 어느 구간은 갑자기 4차선으로 넓어지면서 버스 앞창을 통해 보이는 도로는 마치 미국의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시원하다.

 

강릉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버스는 35번 국도로 바꿔 타고 정선군으로 진입한다. 국도 변의 정다운 농촌 풍경, 도로를 따라 흐르는 맑은 개울, 산과 골짜기에 절정을 이룬 단풍 -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즐긴다.

 

임계에 도착한 버스는 42번 국도로 들어서더니, 11시 15분 경 백목령 정상에 도착한다. 등산로 입구에 예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두대간 운운치 말고, 풀 한 포기 보호하라." 자병산의 참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임계면 향우회의 산림청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백복령 정상>

 

단체사진을 찍고, 11시 20분 경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는 북북서 방향으로 서서히 오른다. 10여분쯤 지나, 42번 철탑을 통과여, 자병산 공사현장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진행하자, 오른 쪽 숲에 걸린 리본들이 우리들을 숲길로 유도한다. 하지만 등산로는 숲길을 채 10m도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그리고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대간 길 마루금을 밟아 보겠다는 대간꾼들의 의욕이 눈물겹다.

 

오름 길이 끝나자, 대간 길은 급경사 사면을 내려선 후, 참나무 숲을 지나,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796봉을 지나고, 12시 43분 경 생계령에 도착한다. 산악회가 제시한 2시간 보다 30분 이상 빠른 진행이다. 생계령은 붉게 물든 키 작은 활엽수들과 하얀 억새가 둘러쳐진 조그만 공터다. 무참하게 잘려나간 자병산이 건너 보이는 이곳에 산림을 훼손하면 처벌하겠다는 산림청의 경고 판이 세워져 있다.

 

<생계령>

 

 

<생계령의 산림청 경고문>

 

1시 14분 경 노송지대에 도착한다. 보기 좋은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노송지대가 끝나는 곳에 조그마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가야할 능선 길이 한 눈에 보인다. 전망은 좋지만 장소가 비좁아 온 길을 되돌아, 보기 좋은 노송 아래서 점심 도시락을 푼다.

 

<역광으로 잡은 노송>

 

 

<전망대에서 본 가야할 능선길>

 

 

<석병산 가는 길>

 

업 다운이 별로 심하지는 않다지만, 약 17km의 거리를 6시간 30분 동안에 주파하려면 갈 길이 멀다. 20여분만에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한다. 922봉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다. 이윽고 922봉에 오르고, 등산로는 북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멀리 동해가 보인다.

 

등산로 오른 쪽은 깊은 낭떠러지가 계속되면서 능선 길이 좁아진다. 주위는 온통 키 작은 잡목들이 무성하여 배낭을 당긴다. 하지만 좌우로 굽어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동해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단풍이 고운 능선과 골짜기 너머로 35번 국도가 아련하다. 2시 43분 삼각점이 있는 900.2봉을 통과하여 산죽밭 길을 걷는다.

 

<능선 길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동해>

 

2시 59분 고병이재에 이른다. 고병이재에서 멀리 북동쪽으로 보이는 산세가 아름답다. 이 곳에는 백두대간과 석병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석병산(石屛 :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하나의 산줄기로 웅장함과 화려함이 겸비된 산이다." 라고 설명한다. 자병산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궁금하다.

 

<고병이재 이정표>

 

3시 12분 경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에 이른다. 이정표는 일월봉(석병산)까지 1시간 15분이 소요된다고 알려준다. 정면으로 석병산이 보인다. 등산로는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 산죽이 무성한 오름세로 이어진다. 뒤돌아 922봉, 900.2봉을 카메라에 담고, 오른쪽으로 상황지미로 보이는 마을을 굽어본다.


<헬기장에서 본 석병산>

 


<뒤 돌아본 900.2봉과 922봉>


3시 58분 상황지미 갈림길에 선다. 석병산에 접근하자 다시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는 석병산을 가려면, 오른쪽으로 5분을 더 가라고 일러준다. 왼쪽은 두리봉 가는 길이다.

 

<일월봉(석병산) 5분을 알리는 이정표>

 

3시 59분 석병산 앞에 솟은 암봉을 카메라에 담고, 4시 경 석병산 정상에 오른다. 육산에 올돌하게 이 곳에만 웅장한 석벽이 솟아 있는 게 신기하다.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계곡이 까마득하여 어지럽다.

 

 

<석병산 정상 앞의 석봉>

 

 

<석병산 정상석>

 

석병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훌륭하다. 남쪽으로는 오늘 걸어 온 봉우리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고, 사방으로 산줄기들이 우쭐우쭐 흐른다. 남서쪽 가까운 능선에는 단풍이 곱다. 아름다운 전망에 취해 20여분 가까이 머물다, 해 떨어지기 전에 삽당령에 도착하기 위해 아쉽지만 정상을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한다.

<석병산 정상에서 본 걸어온 능선>

 

 

<석병산 정상에서 본 가야할 능선>

 

 

<석병산 정상에서 본 남서방향의 단풍과 능선>

 

4시 58분 두리봉을 지난다. 이제부터는 평지 길이다. 기우는 해를 향해 숲길을 혼자 달린다. 하늘에는 반달보다 조금 커진 달이 떠있다. 마음은 급해도 어둑어둑해지는 한적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사방이 컴컴할 때 버스에 도착한다. 6시 3분 경이다.

 

<두리봉 정상>

 

<해는 서산에 지고..>

 

후미 일행이 6시 30분 경 도착하고, 버스는 바로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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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이 많이 깊어졌다. 버스는 남한강에 연한 6번 국도를 달린다. 차장 밖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공기가 차가워져서 생기는 안개, 만추(晩秋)를 알리는 전령이다. 갈전곡봉을 주봉으로 하는 이번 백두대간의 마루금 능선은 이미 초겨울이다. 거센 바람으로 능선길에 도열한 상수리나무들의 잎은 거의 다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고, 등산로를 덮은 낙엽은 그 고왔던 빛을 잃었다.

 

<능선길의 상수리 나무는 벌써 가지만 앙상하다.>

 

 

<떨어진 잎들은 변색이 시작되고..>

 

2004년 10월 16일(토).
오늘은 백두대간 제 48, 49 두 소구간을 한꺼번에 뛴다. 『구룡령(1,013)-치밭골령-갈전곡봉(1,204)-왕승골(800)-968.1봉-1,020봉-956봉-연내골갈림길-1,061봉-황이리갈림길-쇠나드리-조침령-진동리』 귀에 익은 지명은 한 곳도 없다. 모두 생소한 곳이다. 마루금 약 20 Km, 날머리 약 1 Km, 총 2l Km에,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7시간이다.

 

대원들을 기다리느라 출발이 다소 늦어진 산악회 버스는 아침 식사를 위해 크린턴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다. 휴게소 앞마당은 설악산 단풍을 찾는 승객들을 태운 관광버스로 만원이다. 식사 후 다시 44번 국도에 오른 버스의 속도가 떨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설악으로 몰리면 설악도 꽤나 몸살을 앓겠다.

 

버스는 44번 국도를 버리고, 56번 국도로 진입한다. 2차선 도로지만 차량통행이 드물어 한적한 길을 버스는 제 속도를 내어 달린다. 해가 오르면서 안개가 걷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촌 풍광이 아름답다. 56번 도로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산 위로 오른다. 왼쪽으로는 삼봉자연 휴양림, 오른쪽으로는 구룡약수 지역을 지나면서 눈 아래 펼쳐지는 약수산, 응복산, 만월봉으로 이어지는 산세에 절정을 이룬 단풍이 숨막히게 아름답다. 승용차들이 도로변에 정차해 있고, 여행자들이 차에서 내려, 눈 아래 절경을 즐기고 있다.

 

버스기사 양반은 이 좋은 경치를 놔두고, 무엇 하러 고생하며 대간 길을 걷느냐고 묻는다. 대간 병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사양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기사 양반은 마천계곡을 포함해 이 일대의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답다고 소개한다. 설악 단풍 길에 나섰다가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단풍을 구경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 곳으로 손님들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10시 40분 경, 버스는 갈전곡봉과 약수산 사이의 고갯길, 구룡령 휴게소에 도착하고, 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이 시작되자 걱정이 앞선다. 산악회에서는 산행시간을 7시간으로 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구간은 8시간 30분에서 9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10시 40분 경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이 시간대로라면 1시간 정도는 해가 진 후에 걸어야 한다. 당일 산행이라고 가볍고 보고 랜턴을 챙기지 못한 것이 무척 걱정이 된다.

 

<구룡령 휴게소>

 

휴게소 일대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다. 등산로는 휴게소 건너 편, 동물 이동터널을 지나, 바로 왼쪽 사면으로 나 있다. 10여분간 가파른 숲길을 지나 마루금에 오른다. 마루금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다. 11시에 1,100. 3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북부지방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생태복원 조림" 안내판이 서있다. 훼손된 백두대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갈전곡봉에 주목, 전나무, 갈비나무 등 희귀나무 600그루를 심는다는 내용이다. 이 코스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로, 원시림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멧돼지들이 서식하는, 아직은 그다지 사람 때가 많이 묻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안개 속의구룡령>

 

 

<산림청 조림 안내>

 

바람이 거센 능선길에 서 있는 상수리나무들은 벌써 잎들을 거의 다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다. 11시47분 치밭골령을 통과한다. 시멘트로 만든 작은 표지가 서 있다. 안개는 여전하고 하늘은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싶다. 비가 내리면 오늘 같은 장거리 코스에서는 하산시간을 예측하기가 더 더욱 어렵겠다. 랜턴 준비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12시 경 갈전곡봉에 이른다. 비교적 빠른 진행이다. 산악회 기준시간 1시간 30분보다 10분정도 빠르게 올랐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있다. "쇠나드리 12.7Km, 6시간 30분, 구룡령 3.4Km, 2시간". 정상에 섰지만 안개와 주위의 무성한 나무들로 시계는 막혀있다.

 

<갈전곡봉 정상>

 

정상에서 등산로는 우측으로 내려선다. 이곳부터 왕승골 삼거리까지는 울창한 숲길이다. 만년 후미인 나지만 해 떨어지는 시간이 걱정이 되어 비탈길을 속도를 내어 걷는다. 12시 50분 경 1,080봉을 지난다. 연이어 6, 7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높은 봉우리들은 아니지만 연달아 계속되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안개가 슬어지고, 구름이 걷히며 북서쪽으로 먼 산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굽이굽이 흐른다. 1시 25분 경, 왕승골 삼거리에 이른다. 갈전곡봉에서 3.2Km 떨어진 지점이다.

 

<아름다운 등산로>

 

 

<왕승골 삼거리 안내도>

 

주위 단풍이 아름다운 너른 공터에 대원 두 사람이 점심을 하고 있다, 중위 팀은 더 나가서 점심을 하려나 보다.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일행을 기다린다. 이윽고 일행이 도착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2시 경 다시 출발한다.

 

점심식사 후라 오르막길을 천천히 걷는다. 산죽길이 이어진다. 대원 한 사람이 길가에 빨간 야생화를 보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이다. 열매인지, 꽃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 대원은 청남성 이라고 이름을 알려준다. 야생화에 관해 대단히 조예가 깊은 분이다.이곳의 단풍들은 절정기를 지나 벌써 빛이 탁하다. 2시 55분 경 1,020봉에 오른다,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시 혼자 속력을 내 걷는다. 3시 10분 경 연가리골 샘터에 이른다.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은 조침령까지는 아직도 8.2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청남성 열매>

 

956봉을 지나면서 여기 저기 멧돼지들이 파헤친 구덩이를 지난다. 혼자 가다 멧돼지 떼와 조우하게되면 큰 낭패겠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거나 호각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겠다. 4시 15분, 점봉산과 설악산 대청봉 등이 보인다는 1,061봉에 오르지만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고, 나무에 가려 전망도 별로다. 4시 33분, 955봉에 오른다. 정상에는 비닐로 만든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1,061봉 25분, 쇠나드리 2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해지기 전 조침령 도착이 어렵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진다.

 

<아무 표지도 없는 1,061봉>

 

 

<955봉의 비닐 표지>

 

황이리 갈림길까지 약 2 Km의 숲길은 환상적이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빽빽하고, 수종도 다양한 듯 싶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단풍군락지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알겠다. 육산에 이 정도로 울창한 숲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제 각기 자기 빛깔을 뽐내고 있으니 가히 장관이라 하겠다. 갈 길은 바빠도 이 아름다운 숲 속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발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시간이 충분치 못한 것이 유감이다.

<군락지 단풍 1>

 

 

<군락지 단풍 2>

 

 

<군락지 단풍 3>

 

 

<군락지 단풍 4>

 

5시 5분 경, 황이리 갈림길에 도착하니, 산악회 인솔자가 아름다운 숲을 망연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인솔자는 뒤에 처진 대원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미숫가루 탄 물을 나누어 마시고, 일행을 기다리는 인솔자를 남긴 채, 혼자 서둘러 쇠나드리로 향해 달린다. 5시 30분이 지난다. 저 앞 숲길에 대원 한 사람이 앉아서 쉬고 있다. 랜턴이 없다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해 질 때가 되니, 뒤에 오는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하지만 미안해 할까봐 "오늘 코스가 대관령 길보다 힘들어 몸이 무겁다"고 능청을 부린다.

 

소도 바람에 날린다는,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쇠나드리는 어떻게 지나는 지도 모르고 지나친다.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6시가 가까워지자 서쪽 하늘에 노을이 물들고, 그 아래로 산줄기가 선명하다. 6시 15분 경 동행한 대원이 헤드 랜턴을 켠다. 길은 다시 오름세로 이어지고, 최근에 설치한 로프가 오름세를 따라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 있다.

 

<서쪽 하늘에 노을은 지는데 아직 갈길은 멀다.>

 

산길은 금방 어두워진다. 이미 사방이 캄캄하다. 앞선 대원의 랜턴 불빛이 겨우 앞길을 열어준다. 앞서 가던 대원이 나무 뿌리에 걸려, 휘청, 몸의 균형을 잃는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는다. 조심해야겠다. 조침령이 멀지 않을 터이니 천천히 걷기로 한다. 조침령 정상에 정상석이 있다고 하니, 그 곳까지 가서, 정상주나 마시며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마지막 언덕길을 천천히 오른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멈춰 서서 기다린다. 산악회 인솔자가 불도 없이 앞장서고, 그 뒤로 다른 대원 한 사람이 불을 비추며 따라온다. 인솔자의 랜턴은 밧데리가 다 했다고 한다. 함께 모여서 뒤에 쳐진 3사람을 걱정한다. 뒤에 남은 세 사람이 모두 랜턴을 가지고 있고, 침착한 후미 담당이 함께 있으니 별 일이야 있겠냐고 애써 걱정을 털어 낸다. 우선 임도 까지 나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다시 출발한다.

 

6시 45분 경 임도로 내려선다. 대원 한 사람이 후미와 전화를 해 보지만 불통이다. 산악회 인솔자는 모두 함께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자신이 혼자 남아서 기다리겠다며, 세 사람은 먼저 내려가라고 한다. 회원들 전화 번호와 랜턴 하나를 인솔자에게 넘기고, 세 사람이 먼저 임도를 따라 하산하여, 7시 10분 경 버스에 도착한다.

<임도에 내려서 본 이정표>

 

몸이 가벼운 대원 한 사람이 후미 일행을 지원하기 위해 임도로 향한다. 7시 30분 경 후미 일행이 버스에 오르고, 차안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부러 기다렸다 길을 밝혀 주는 대원. 묵묵히 후미를 지키는 후미담당, 혼자 기다리겠다고 세 사람을 내려보낸 후, 일행을 맞으러, 온 길을 되 달려 간 산악회 인솔자, 배낭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지원 차 나서는 또 다른 대원,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후미 일행. 이래서 나는 후미가 좋다. 앞으로도 만년 후미를 스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선두 팀의 걸린 시간이 대강 7시간이라고 한다. 후미 팀은 약 8시간 50분을 소요했다. 조선일보사에서 간행 한 백두대간 종주산행에서는 이 코스의 마루금 산행 소요시간을 8시간 45분으로 보고 있음으로, 점심시간, 그리고 임도를 걸은 시간을 감안하면, 후미 팀도 최선을 다한 훌륭한 산행이었다고 생각한다.

 

 

(200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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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박산행이다. 산행코스는 미시령에서 황철봉을 넘어 마등령까지 마루금을 걷고, 백담사 쪽으로 하산한다. 이 코스는 황철봉 부근의 악명 높은 너덜지대와 이따금씩 너덜바위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본다고 해서 더욱 흥미를 끄는 코스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어 미끄러운 너덜 길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북주릉이라고도 불리는 이 코스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지금은 황철봉 주위에 분포돼 있는 눈잦나무, 측백나무 등의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어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산행이 불가능하다.

 

2004년 10월 8일(금).
자정이 가까운 11시 50분. 버스를 기다리는 대원들 수가 많지 않다. 매주 보던 얼굴들 중에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악명 높은 너덜지대에 비까지 예보되어 결간하는 모양이다. 12시가 다 되어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오르니, 의외로 버스는 만원이다. 자연휴식년제 구간을 산행한다는 산악회의 홍보로 10여명이 넘는 일반 회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새벽 2시 45분 남설악광장 휴게소에 도착한다. 걱정하던 비는 내리지 않는다. 계속 예보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밤중인데도 광장에는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산악회 인솔자는 이곳에서 식사를 한 후, 대기했다가 관리소 감시가 소홀한 5시경에 미시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휴게소 식당은 한밤중인데도 식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버스로 돌아와 소등한 버스 속에서 잠을 청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설악 광장 휴게소>

 

4시 30분 경 버스는 미시령으로 출발하고, 차안은 산행 준비를 하는 대원들로 부산하다. 미시령 정상이 가까워지자 버스는 실내등을 끄고 주차장으로 접근한다. 창 너머로 관리소 쪽을 응시하던 산악회 인솔자가 실망스런 소식을 전한다. 관리소 사무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는 주차장에 정차하고, 인솔자가 관리소 사무실을 찾아 가 보지만 신통한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관리 사무소가 대간산행을 하는 산악회 일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허가를 받지 않고, 잔재주를 부려 잠행하기가 쉽지 않겠다.

 

잠행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하여 산악회가 준비한 대안에 따라 노인봉(1,328)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하고 버스는 대관령으로 향한다. 노인봉은 백두대간 제 46 소구간에 속한다. 구체 산행코스는『대관령(840)-새봉(1.071)-선자령(1,157)-곤신봉(1,127)-동해전망대(1,165)-매봉(1,173.4)-소황병산(1,328)-노인봉(1,328)-진고개(970)』. 도상거리 약 22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7시간 30분이다.

 

버스는 7시 5분 경 텅 빈 대관령 주차장에 정차한다. 검은 구름이 하늘 가득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도 없다. 단체사진을 찍고, 7시 10분 경, 거대하게 솟아 있는 풍력발전용 홴(Fan)을 뒤로하고 산행이 시작된다. 시멘트 길이 왼쪽으로 굽어지는 초입에 큰돌이 한 개 우뚝 서 있다. 대관령국사선황당(大關嶺國師城隍堂) 입구를 알리는 돌비석이다. 대간 길은 왼쪽 대관령 기상대 쪽으로 이어진다.


<대관령 국사 선황당 안내석>

 

완만한 오름 길을 따라 점차 고도가 높아진다. 20여분을 오르니 풍력발전용 홴이 저 아래 자그마하게 보이고, 건너편 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바로 눈앞에 단풍으로 채색된 능선이 새벽 안개비에 젖어 무겁게 누워 있다.

 

시멘트 길을 벗어나 왼쪽 산길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새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목장의 신작로와 숲길을 번 갈라 드나들며 이어진다. 아마도 목장의 신작로가 대간 마루금을 지나는 모양이다. 내년부터 백두대간 보호법이 발효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강원도 지역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벌써부터 개발과 보호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개발을 하더라도 최소한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보존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왼쪽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 광활한 목초지가 안개 속에 펼쳐진다. 날씨 때문일까? 소들은 보이지 않는다. 8시 20분 경 선자령 정상의 이정표를 지난다. 군데군데 목초지에 남겨진 나무들은 단풍이 한창이다. 누렇게 변한 구릉진 목초지 너머, 먼 산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안개가 베일처럼 흩날린다. 마치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목장 풍경 1 >

 


<목장 풍경 2 >

 

선자령 나즈목 까지 내림 길을 달리던 등산로는 다시 평탄해 진다. 곤신봉은 모르고 지나친다. 9시 10분 경 등산로 가까운 돌 위에서 중위 팀이 둘러앉아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합류하여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서둘러 길을 떠난다. 등산화 끈을 고쳐 매느라 지체한 나는 다시 맨 뒤 후미로 쳐져 천천히 일행을 뒤따른다.

 

9시 45분 경, 목초지를 배경으로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표지목이 서 있는 곳을 무심코 지나치다가, 그림이 될 듯 싶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와 표지 목과 목초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9시 52분 동해 전망대에 이른다. 대원들은 이미 거쳐가고, 일반 회원으로 참여한 젊은이 한 사람이 남아서 사진을 찍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누렇게 변해가는 초지>

 

동해 전망대에는 2004년 4월에 세운 커다란 돌비석이 서있다. 돌비석에는 "망망대해 동해일출, 희망의 전망대" 라는 글씨가 음각돼 있다. 그 옆에는 사위(四位)의 방향을 표시한 펀펀한 바위가 놓여있다. 대청봉, 주문진, 경포대, 발왕산, 그리고 황병산 등의 방향을 가르친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뿐이다. 아쉬운 마음을 "비가 안 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라고 스스로 달래며 전망대를 뒤로한다.


<동해 전망대의 자연백경>

 


<돌 위에 새긴 방향 표지>

 


<동해 전망대>

 

다시 신작로와 숲길이 번 갈라 교체된다. 신작로에서 숲길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주의를 하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가 쉽겠다. 매봉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앞에 거대한 통신 탑이 우뚝 솟아 있다. 하늘은 다시 시커멓게 변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하늘과 맞닿은 목초지의 구릉을 따라 흰 구름이 띠처럼 걸려있어, 그 빛 아래로 펼쳐진 목장의 풍광이 신비롭다.


<목장 풍경 3 >

 


<목장 풍경 4 >

 

묘봉을 지나서 등산로는 신작로를 버리고 산 속으로 이어진다. 산 속의 단풍이 아름답다. 등산로 주변에는 키 작은 싸리나무들이 채색을 뽐내고, 머리 위 키 큰 나무들도 단풍이 곱다. 산이 점점 깊어지면서 등산로는 온통 안개비에 젖은 낙엽으로 뒤 덮여,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기가 힘들다. 이따금씩 보이는 대간 표지 리본이 없다면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가능성이 크다.


<대관령 단풍>

 


<단풍 길>

 

길이 가팔라지면서, 미끄러운 암릉과 흙길이 나타난다. 조심조심 오르니 눈앞에 안개에 덮인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소황병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다. 이 곳까지 이어진 신작로를 따라 올라 온 트럭 두 대가 안개 속에 버려져 있다.

 

내리막길을 내 닫는다. 앞에 여자 대원 두 사람이 보인다. "이 길이 맞나요? 계속 내리막이고, 물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라고 여자 대원 한 사람이 묻는다. 지도를 꺼내본다. 지도상에도 내리막이 한참 계속되고, 갈림길 표시는 없다. "맞아요. 외길이로군요."라고 대답한다. 여자 대원은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산 속을 여자 대원 두 사람만 걷게 하다니... 아마도 우리 대간 팀의 기사도가 잠깐 어디 나들이라도 간 모양이다. 이 여자 대원은 새벽에 남설악 광장에서 식사를 한 후 버스에 시달리다 차멀미를 했다 한다. 차멀미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잘 알겠기만, 진땀만 나고, 전신에 맥이 풀려, 앉아 있기도 힘들다. 눕고만 싶어진다. 중위 팀에서 쳐진 이 대원이 후미의 다른 여자 분을 만나 함께 걷고 있는 중이란다.

 

단체산행에서 중위 팀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선두 경쟁을 벌이는 선두 팀은 내버려둬도 별 상관이 없지만 전체의 산행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은 중위 팀의 역할이다. 바람직한 단체산행을 위해서는 중위 팀이 후미 팀과 30분 이상 시간 차가 나지 않도록 산행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전망대나 쉴만한 산봉우리에 이르면, 중위 팀은 후미 팀과 교신하여, 후미 팀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30분 이상 시간차가 날 경우에는, 쉬면서 후미 팀을 기다려, 초과 예상 시간을 흡수해 줘야 한다.

 

중위 팀이 함께 걷던 자기 대원이 뒤로 쳐져도 아랑곳없이 앞으로만 내 닫는다면, 이 팀이 후미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산행 속도를 조절할 리가 없다. 앞으로 다가오는 동절기의 안전 산행을 위해서는 사명감을 갖고 전체 산행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중위 팀을 편성할 필요가 있겠다.

 

소황병산을 내려서 노인봉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길이다. 12시 50분 경 노인봉이 눈앞에 보이는 전망대 바위에 올라선다. 노인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멀리 보인다. 전망대 옆에 우뚝 솟은 바위에는 산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을 추모하는 동판이 박혀 있다. '41년 생으로 '92년 원숙한 나이에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산에 다니는 우리들에게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멀리서 본 노인봉>

 

노인봉으로 향한다. 안개가 걷히며 햇빛이 비친다. 1시 경 노인봉 대피소에 이른다. 대피소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마도 진고개나 청학동 무릉계곡 쪽에서 오른 등산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노인봉 정상도 만원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서의 시야는 유감스럽게도 앞산으로 제한되고 무릉계곡 쪽으로는 구름이 가득하다. 후미팀이 모여, 정상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1시 15분 진고개로 향한다.


<노인봉 정상에서 본 산세>

 

노인봉의 암봉을 내려서니, 앞서 지나쳤던 중위 팀이 진고개로 향하는 길을 찾아 되돌아 올라오고 있다. 정면의 오르막으로 이어진 길을 찾아 중위 팀과 후미가 어우러져 함께 걷는다. 진고개로 향하는 길도 산책로다. 단풍이 아름답다.

 

나무 가지 사이로 저 아래 마을이 보인다.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이제 서두를 것이 없다. 길가 나무 그루터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미숫가루 탄 물을 마시며 쉰 후, 후미로 쳐져, 앞선 일행을 뒤쫓아 길을 서둔다. 급한 내리막이 시작된다. 한동안의 내리막을 지나 안부에 이른다. 앞선 대원들이 안부를 지나 산굽이를 감돌아 진고개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진고개 못 미친 안부의 이정표>

 

안부에서 보는 풍광이 아름답다. 뒤로는 방금 하산한 노인봉이 단풍 속에 우뚝 솟아 있다. 왼쪽으로는 동대산의 장엄한 산세가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6번 국도가 저 아래로 보인다.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에 둘러 싸여 진고개로 향하는 산굽이를 천천히 따라 오른다.


<왼쪽은 동대산 흐름, 저 아래 6번 국도>

 

2시 30분 경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한다.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갈아입을 옷을 들고 휴게소 화장실로 간다. 옷 갈아입을 곳이 마땅치 않다. 세수를 하고 겨우 한 귀퉁이에서 땀에 젖은 상의만 갈아입은 후, 식당으로 향한다.


<진고개 휴게소>

 

식당에는 벌써 하산주로 거나한 대원들이 반겨 맞아 준다. 맥주로 갈증을 풀고, 육개장으로 점심을 마친 후, 진고개 주위를 구경한다. 버스는 3시 40분 경 서울로 향한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본 풍경>

 

횡계를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아름답다. 저 아래 논들이 황금색으로 펼쳐져 있고, 가을 채소로 밭들은 푸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예쁜 집들이 그림 같다. 문막을 지나면서 충주에서 올라오는 차량들이 겹쳐, 정제가 생긴다. 가며 쉬며 버스는 여주로 향한다. 버스 앞 창을 통해 고속도로 너머 저 멀리 산 위에 커다란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며 걸려 있다. 태양은 점점 낮아지고, 차안에는 붉은 빛이 감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다. 세월이 갈수록 이런 느낌이 더욱 더 강해진다.

 

여주를 지나면서 정체도 풀리고, 중부고속도로로 갈아 탄 버스는 8시가 조금 지나 양재역에 도착한다.

 

 

(2004. 10. 10.)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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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박으로 백두대간 제51소구간을 산행한다. 산행코스는 『한계령(1004)-서북주 능선-대청봉(1708)-죽음의 능선-희운각-무너미재(1030)-공룡능선-마등령(1326』을 거쳐 비선대로 하산, 설악동까지 이동한다. 도상거리 약 14Km+약 8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약 12시간이다.

 

2004년 10월 1일(금).
어제 가을비가 뿌리고 난 후 오늘밤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고 바람이 심할 것이라는 예보에 겨울 용 내복도 준비하고 방풍용 자켓도 마련하여 첫추위에 대비한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서초구민회관 앞에는 대원들이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단풍철의 설악산 등반이 많은 산악인들을 부르는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승차한다.

 

산악회 인솔자가 오늘의 구성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마등령을 지나 미시령까지 주파할 주력이 좋은 승객이 한 분, 희운각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팀 7명, 오색에서 천왕봉으로 오를 분들 그리고 대간 팀, 모두 47명이 승차했다고 한다. 설악을 찾는 혼성부대가 편성된 것이다. 버스에는 앉을 자리가 부족하다.

 

버스는 팔당대교를 건너 시원하게 뚫린 6번 국도를 달린다. 12시 15분 경 홍천에 도착, 크린턴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라고 30분간 정차한다. 자정이 넘은 휴게소는 을씨년스럽다. 한참 잘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도 무엇해, 쌍화차 한잔을 시켜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50년도 후반에도 설악산을 갈 때면 이 길을 거쳤다. 동대문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면, 점심때쯤 홍천에 도착한다. 당시 홍천에는 닭곰탕이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변하기도 많이 변했다. 반나절 넘게 달려야 올 수 있던 곳이 지금은 한 시간도 못 돼 도착한다. 이제 60이 훌쩍 넘은 늙은이가 기지촌에나 어울릴 이름의 스산한 휴게소에서 자정이 지난 시간에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를 회상하며 쌍화차를 마신다.

 

다시 버스가 출발하고 산악회 인솔자는 등반관련 자료를 배포하며, 오늘 산행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 야간산행 구간에 바윗길이 많아, 이슬이나, 서리가 내렸을 경우 바위가 미끄러우니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설악동에는 4시까지 하산해야, 서울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서울에 언제 도착할 지 가름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버스는 2시 25분 한계령에 도착한다. 대원들이 서둘러 흩어진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스틱을 조절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불이 밝게 켜진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데 산악회 인솔자가 빨리 출발하라고 서두른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벌써 출발했다고 한다. 인솔자를 따라 화장실 옆의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2시 30분 경이다.

 

무박 산행은 두 번째다. 첫번은 1무, 1박, 3일 간의 일정으로, 지리산을 종주 할 때 경험했으나, 이 때의 일박 장소가 벽소령 대피소라, 버스는 새벽 4시경, 성삼재에 도착하고도, 주위가 훤해질 때를 기다려 5시경에 산행을 시작했었으니 깜깜한 밤에 산행은 처음인 셈이다.

 

전망이 좋다는 한계령의 정자도 지나는 줄 모르고 지나친다. 1307봉까지 1Km의 급경사 암릉길이 시작된다. 뒤로 쳐졌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은 긴 여정, 힘을 아껴야 한다. 처음 사용하는 헤드랜턴이 자꾸 흘러내려 내린다. 앞서 출발한 대원 몇 사람과 합류하여 함께 걷는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랜턴이 비춰주는 땅만 보고 걷는다. 무슨 재미로 무박산행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뒤따르던 후미대장은 자기들은 무박산행을 밥 먹 듯하고, 조용해서 좋다고 한다.

 

1307봉인 모양이다. 허리에 찬 시계를 볼 여유도 없다. 젊은이들 한 떼가 길을 막고 왁자지껄 떠를며, 쉬고있다. 가파른 내림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길이 평탄해 진다. 첨벙, 어제 비로 생긴 물웅덩이에 발이 빠진다. "안경을 쓰셨군요. 안경알에 습기가 서려 잘 안 보일 터인데, 조심 하십시요." 뒤따르던 후미 대장이 위로한다.

 

두어 번 오르막을 거쳐 갈림길에 이른다. 4시 56분. 출발해서 1시간 26분이 경과했다.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일행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서북주능선을 오른다. 남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능선으로 양쪽의 전망이 일품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사방이 온통 어둠뿐이다. 나무 가지 사이로 추석이 얼마 지나지 않은 달이 허공에 걸려 희미한 빛을 비춘다. 다행히 바람은 잠잠하다.앞서 달려나가고 싶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몰라 자신이 없다.

 

어둠 속에서 첫번째 이정표를 사진에 담는다. 한계령 4.1Km, 중청대피소 3.6Km, 이때 시간이 5시 26분이다. 두번째 이정표를 6시에 통과한다. 한계령 5.1Km, 중청대피소 2.6Km. 어둠 속에서1Km를 진행하는데 1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6시가 넘으니 주위가 훤해진다. 길은 외길, 혼자 앞으로 달려나간다.

 

6시 30분 경 끝청에 도착한다. 사위가 밝아지고, 설악이 아침을 맞는다. 끝청에서 젊은 대원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끝청에서 보는 아침 풍광이 아름답다. 서쪽으로 귀때기 청봉이 운해 속에서 햇빛을 받고 서 있고. 북쪽으로 외설악의 웅자가 운무 속에 잠겨있다. 남쪽으로 오색이 굽어보인다. 전문 사진가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삼발이를 설치해놓고 아침을 맞는 설악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사진을 찍으며 10여분 간 머문다.

 

중청 대피소로 진행하는 길에, 해는 좀 더 오르고,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암봉들이 구름 속에 떠있는 황홀한 광경에 취한다. 7시 13분 중청대피소에 도착한다. 중청대피소는 만원이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식사하는 사람, 소청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마치 장터 같다. 젊은 대원과 함께 미숫가루를 마시고 잠시 쉰 후 7시 25분 경 대청으로 향한다.


<중청오르다 본 귀떼기 청봉>

 


<중청 오르다 본 외설악>

 


<오색과 점봉산 방향>

 


<설악 단풍과 운해>

 

7시 40분 경 대청에 도착한다. 대청도 만원이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주위 사진을 찍고, 정상주를 한 모금씩 마신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7시 50분 경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대청에서 본 화채봉 능선>

 

죽음의 능선 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주위 풍광은 더 없이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계속 화채능선이 흐르고, 정면으로 천불동 계곡,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중청과 대청의 깍아지른 사면이 보인다. 9시20분 경 희운각 대피소에 이른다. 중위 팀이 아침을 마치고 공룡으로 향한다.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팀은 식사 후 햇빛을 쪼이며 느긋하게 쉬고 있다.


<위에서 내려 본 천불동 - 멀리 울산암>

 


<멀리 본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의 암봉들>

 


<약재로 쓰인다는 열매 -마가목>

 

아침식사를 마치고, 물을 보충한 후 출발하려니 후미대장이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는다. 공룡능선으로 갈 것이라고 했더니 무리일 듯 싶으니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한다. 여러 산악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공룡능선에 정체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심한 경우는 9시간이상 걸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은 본인이 하란다.

 

지금 시간이 9시 50분 경, 산악회에서 본 무너미 고개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설악동에 도착하는 시간을 약 7시간 30분으로 보고 있음으로, 제 시간에 도착한다해도 4시가 넘는다. 더욱이 내 주력을 감안하면 7시간 30분 안에 설악동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후미대장의 권유를 따르는 게 올바른 선택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공룡능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작년 10월말 친구와 둘이 오색에서 출발, 해질 무렵의 대청을 보고, 중청 대피소에서 일박 후, 다음 날 대청을 들러 공룡능선으로 향하다 친구의 등산화에 이상이 생겨 신선봉 못 미쳐에서 후퇴,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했던 아쉬운 경험이 있다. 이 때 이용했던 고속버스 편이 편리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어 포기하려니 미련이 남는다. 아무리 늦게 걸어도 10시경에 출발하면 해지기 전에 비선대 까지 내려올 수는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대기하는 산악회 버스다. 마등령에서는 휴대폰이 가능하다고 하니, 마등령에 이르러 상황을 보아 버스로 전화를 하기로 하고, 공룡능선을 택한다. 젊은 대원이 동반하겠다고 한다. 9시 55분 둘이 공룡능선으로 향한다. 평지라 서둘러 걸으니 식사 후 바로 빨리 걸으면 체한다고 젊은 대원이 말린다.

 

10시 38분 신선봉 이정표 앞에 선다. 여기까지 동행하면서 나를 지켜보던 젊은 대원이 혼자 보내도 별 위험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주력이 좋은 젊은 대원은 애초부터 고속버스를 탈 생각이 없었던 듯 싶다. 젊은 대원은 속력을 내어 내 닫고, 나는 뒤로 쳐져 느긋하게 공룡능선을 걷는다.


<신선봉에서 본 공룡능선 1 >

 


<신선봉에서 본 공룡능선 2 >

 

 

<1275봉>

 

11시 53분 샘터 이정표에 이른다. 희연각 2.8Km, 마등령 2.3Km, 앞으로 보이는 1275봉 등,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단풍 속에, 눈앞에 펼쳐지는 공룡능선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내 발길을 더욱 더 더디게 한다. 사진 찍는 횟수도 많아진다. 12시 30분 1275봉 아래 이정표 앞에 선다. 희연각 3Km, 마등령 2.1Km, 200m를 전진하는데 30분 이상이 걸린다. 이 부근에서 차를 판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려했던 정체현상도 없다.


<이하 : 공룡능선의 기암들>




 

 

 

 


1시 26분, 마등령까지 1.4km가 남았다고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나한봉을 향한다. 2시가 조금 지나 전망대에 선다. 지나온 공룡능선이 장쾌하고, 그 뒤로 대청, 소청이 웅장하다. 천불동 계곡을 감싸고 있는 암봉들이 깍아지른 절벽이다. 소청쪽에서 흘러내리는 용아장성이 발아래 있다. 고속버스로 귀가할 터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더 느긋해 진다. 젊은 대원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의 주력이라면 비선대 도착 전에 앞서 간 팀을 따라 잡을 수 있겠다고 걱정을 털어 낸다..


<나한봉>

 


<공룡에서 본 대청>

 


<공룡에서 본 용아장성>

 


<이정표>

 

나한봉을 뒤로하고 마등령과 마주선다. 마등령 오른쪽으로 날카로운 암봉 들이 흐르다 올돌한 봉우리 하나를 만들고, 그 오른 쪽 너머로 속초시와 동해를 펼쳐 놓아, 작지만 그 용립한 모양이 강하게 눈을 끈다. 세존봉이다.


<마등령>

 


<이하 : 공룡능선의 단풍과 기암>

 

 

 


3시 5분, 마등령 독수리를 카메라에 담는다. 마등령으로 오르다 양지 바른 단풍나무 아래에 앉아 아름다운 주위 풍광을 즐기며 느긋하게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3시 30분 경 마등령 정상에 선다. 이제는 서둘러 하산하는 길만 남았다, 하산 길은 길고 지루하다, 하지만 하산길 2-3군데 전망대에서 보는 오른쪽 암봉들이 장관이다. 공룡능선의 봉우리 봉우리들이 직벽으로 떨어져 내리고, 천불동 계곡의 암봉들이 용립해 있어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마등령 독수리>

 

6시 30분. 해 떨어지기 전에 비선대에 도착, 맥주로 갈증을 풀고 쉰다. 7시경 어둠 속을 랜턴 불빛을 앞세우고 호젓한 길을 혼자 걸어 설악동으로 향한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속초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한다.

 

8시 30분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오르니 무박산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11시 45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내처 잠 속에 빠진다. 집에 도착하니 12시 2분전이다.

 

 

(2004. 10. 2.)





Posted by Urimahn
,

2004년 9월 25일(토).

쾌청한 가을 날씨다. 사흘 후면 추석이다. 하지만 대간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대간 병에 걸렸더라도 고향을 찾아야 할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결간 할 수밖에 없겠다. 추석이 어떤 명절인가? 산이 좋아 토요일이면 산을 찾는 산꾼 들도, 오늘은 "고향 앞으로!" 일 것이다.  산악회에서는 토요당일 산행지를 주흘산으로 정하고, 주흘산 산행하실 분들을, 대간 팀과 합방시킨다. 그래서 버스는 만원이고, 대간 팀 젊은 요원 몇몇은 통로에 앉아 간다. 산악회 대장님이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넉넉한 마음들이다.

 

오늘 대간 코스는 대간 제27소구간이다. 주산은 마폐봉(927m)이고, 조령3관문에서 하늘째까지의 마루금이 대간 길이다. 하지만 대간 종주를 위한 총 54구간 중 절반을 소화하는 오늘, 산행 후 고사리 마을에서 자축 파티를 계획한 대간산행 팀과 주흘산 산행코스를 감안하여, 하늘재를 들머리로 하는 역코스를 취한다.

 

하늘재(520)-월항삼봉(856)-평천재(760)-959봉-동암문(740)-북암문(751)-마폐봉(927)-조령 제3관문(820)-고사리』, 총 거리 약 12Km, 소요시간은 약 5시간 30분이다. 산악회 대장님은 4시경까지는 고사리 마을로 하산해 달라고 당부한다.

 

어제 저녁부터 귀성이 시작됐다는 보도를 듣고, 귀성객으로 혼잡한 고속도로를 걱정했으나, 의외로 고속도로 통행차량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8시 15분 충주 휴게소에 도착, 30분간 아침식사를 위해 정차한다. 5시경에 아침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으니 배가 고팠던 지난 번 산행의 경험을 감안해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버스는 괴산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3번 국도로 갈아 탄 후 문경읍으로 향한다. 주흘산 들머리는 관음리에서 시작하는 모양이다. 버스가 관음리로 들어서자 차장 밖으로 보이는 시골 풍경이 아름답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과수원에는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좁은 시멘트 길을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아주 맑아 보인다. 몇 백년은 족히 됐을 듯 싶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버스가 정차하고, 주흘산을 오르는 분들이 줄지어 하차한다. 거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좁은 길에서 버스가 회전을 하느라 애를 먹는다. 자칫 하면 오른쪽 개울로 빠질까 겁이 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젊은 대원들이 내려서 차의 후미와 개울 쪽을 봐 준다.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회전하고, 차안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비로소 마음을 놓고 등산객들이 향하고 있는 주흘산을 본다. 암봉들이 줄기줄기 이어진 거친 산이다. 이런 산을 뒷산으로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산의 기상을 닮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오랜 세월 이런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조금씩 DNA가 영향을 받으며 후손들에게 전해졌음이 틀림없겠다. 산을 분수계로 이해하고,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형의 영향을 고려하여,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이 땅의 산을 체계화한 선조 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한다.


<관음리 마을에서 본 주흘산>

 

 

 

버스는 마을을 되돌아 나와 하늘재로 향한다. 하늘재에 가까워지자 오른 쪽으로 웅장한 포암산이 보인다. 10시 5분 경 버스는 하늘재에 도착한다. "하늘재"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하늘재에는 2001년 1월 문경시장 이름으로 하늘재의 유래를 알리는 계립령유허비(鷄立嶺遺墟碑)가 서 있다. 내용은 계립령은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로,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년) 죽령과 조령사이에서 가장 낮은 곳에 만든 이 고갯길의 지리적 의미. 역사적 사실들이 적혀있다. 가능하면 앞으로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경상도 관음리에서 충청도 미륵리 까지 걸어서 넘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계립령 유허비>

 

 

 

하늘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대원들이 남쪽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선다. 지도로 보면 월항삼봉까지는 계속 오름 길이니, 중간에 길을 비켜야하는 수고도 덜 겸 10시 10분 경 제일 후미로 쳐져 울창한 전나무 숲으로 향한다. 쾌청한 가을 날씨, 숲 속에 들어서니 전나무 잎 사이로 햇빛이 부셔져 내리고, 코끝의 공기가 싱그럽다. 하지만 이 좋은 숲길은 잠깐, 등산로는 철조망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마사토가 깊게 패어진 곳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이 완만한 경사 길을 발걸음에 호흡도 맞춰 보고, 오름 길에서 2개의 스틱 사용법도 익히면서 유유히 오른다.

 

고사리에 도착하라는 4시까지면 약 6시간의 시간이 있다. 게다가 하늘재까지 버스로 왔으니 들머리 2Km도 벌었겠다, 오늘은 널널한 산행이 가능하다. 10분쯤 오르니 대간 주능선에 이르고 북동쪽 나무사이로 허연 암벽이 베(布))를 널어놓은 듯한 포암산이 눈앞에 웅장하다. 조금 더 오르자 대원 한 사람이 전화를 받느라 길옆으로 비켜선다. 10시 32분 내무부에서 세운 삼각점을 지난다. 아무 표시도 없지만 아마도 766m봉인 듯 싶다. 이어서 10시 45분 경 선바위에 이른다. 선바위 앞에서 대원 한 분이 배낭도 벗어 놓은 채,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포암산>

 

 

 


<선바위>

 

 

 

선바위 전체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거리가 없다. 이리 지리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나 헛일이다. 단념하고 물을 마시며, 후미를 기다린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대간 길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조망이 좋다는 중봉을 오르고 싶어 나는 서둘러 먼저 출발한다.


<전망대에서 당겨 본 주흘산>

 

 

 


<전망대에서 본 평천리>

 

 

 

선바위를 지나 등산로는 내리막을 거쳐 오름세로 이어지고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니 비로소 선바위 전체가 카메라에 담긴다. 멀리 평천리 마을이 보이고, 남쪽으로 주흘산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11시 4분 월항삼봉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백두대간 탄항산(炭項山)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다. 탄항산을 지나 평천재로 이어진 길은 기분 좋은 산책로다.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상수리나무 잎이 떨어져 낙엽으로 딩굴고, 내가 밟는 낙엽 소리가 산 속의 고요함을 깬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스쳐간다. 하지만 땀에 젖은 몸에 닿는 바람은 시원함과 차가움이 함께 느껴진다. 국군의 날 행사 연습인가? 이따금 제트기의 굉음이 산의 정적을 뒤흔든다. 10시 24분 평천재에 도착한다.


<탄항산 정상석>

평천재에서 959봉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름세다. 꾸벅꾸벅 호흡에 맞춰 걸어 오른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오름세는 더욱 급해지고 로프가 길게 늘어져 있다. 아마 동절기 안전산행을 위해 설치한 듯 싶다. 11시 49분, 959봉 갈림길에 이른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부봉, 1.3Km, 40분, 제3관문 4.7Km, 3시간, 주흘산2.6Km, 1시간 30분.


<주흘산 갈림길 이정표>

 

 

 

부봉, 제3관문 방향으로 걷는다. 뚜렷한 등산로가 가벼운 오르내림을 반복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꾸준히 내려가는 느낌이다. 10여분을 걸어도 선두가 달아놓은 산악회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빛 바랜 대간 리본이 눈에 뜨이나 여러 사람들이 지나긴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길을 잘 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정표를 보면 분명 외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의심암귀(疑心暗鬼), 마음이 불안해 진다. 모르고 동화원이나 아니면 미륵리로 빠지는 샛길로 들어선 건 아닌가? 위험할 꺼야 없겠지만 알바를 하고 헤매다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끔찍하다.

 

온 길을 되돌아 달린다. 옳은 길이면, 후미 팀과 만날 것이고, 길을 잘못 들었으면, 제 길 찾아 쫓아가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참을 걸으니 후미 팀이 보인다. 안심이 된다. 옳은 길이냐고 물으니 후미대장이 지도를 본다. 맞는 길이라고 한다. 되돌아 앞으로 나간다. 아직도 부봉을 다녀 올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거다.


<부봉>

 

 

 

부봉 쪽으로의 내림 길은 좌우로 풍광이 아름답다. 나무에 가려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으로는 주흘산의 흐름이 시야에 남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이름 모르는 산들이 아득하다. 바로 눈앞에 부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12시 28분, 부봉 갈림길에 선다. 이상하다. 선두 팀들이 부봉을 오른 흔적이 없다. 부봉에 갔으면 배낭을 두고 갔을 터인데 갈림길에는 배낭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다녀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부봉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다. 부봉을 눈  앞에 두고, 맥이 빠져 동암문 쪽으로 터덜터덜 내려온다. 저 아래 동암문에 앞선 대원들이 모여있다. 12시 39분 동암문에 도착한다.


<동암문 이정표>


중위 팀이 막 점심을 마치는 참이다. 부봉에는 다녀오지 않았단다. 대간 팀의 회장과 젊은 대원 몇 분이 남고 나머지 분들은 먼저 출발한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점심상이 차려진다. 대원 한 분이 어름 팩에 냉장한 날치 알을 꺼내 샐러드 위에 뿌린다. 이어서 굽지 않은 마른 김, 콩 버터, 그리고 겨자를 탄 물을 차례로 꺼낸다. 여기에 더덕주가 한 병. 또 한 분은 동태 식혜라는 별식을 내 놓는다. 내 점심은 짠 무지와 익힌 명란젓을 버무린 밥을 메추리알 크기로 김에 싸 만든 주먹밥과 보온 통의 미소 시로가 전부인데, 백두대간 덕에 생전 처음 보는 별식을 즐긴다.

 

더덕 주를 마시고 날치 알 안주를 먹는다. 먼저 김에 콩 버터를 바른다. 그 위에 날치 알 샐러드를 듬뿍 놓고, 김을 말아, 겨자 물에 찍어 먹는다. 맛이 일품이다. 동태 식혜 또한 별미다. 점심을 마쳤다고 하지만 잔류한 중위 팀이 이런 성찬을 마다하겠나? 마침 환경보전 실태를 조사한다는 젊은이들이 큼직한 카메라에, 어린애 머리통 만한 마이크를 메고 미륵리 쪽에서 올라온다. 대원 한 사람이 술 한잔하고 가라고 권한다. 그 중 숫기 좋은 젊은이 하나가 자기가 대표로 한 잔만 받겠다고 나선다. 젊은이가 술을 마시자, 술을 권한 대원이 날치 알 안주를 입에 넣어준다. 맛있다고 치하하는 젊은이의 말이 지나가는 인사말이 아니란 것은 그의 표정으로 보아 알 수 있겠다.

 

1시 5분 점심을 마치고, 나는 대원 두 사람과 함께 먼저 출발하고. 발이 빠른 나머지 분들이 뒤처리를 하기로 한다. 북암분으로 향하는 길도 산책길이다. 곧바로 회장님을 비롯한 잔류 대원들이 쫓아온다. 대원 한 사람이 앞서 치고 나간다. 763봉 오름 길에서 회장님은 힘들어 하는 대원의 손을 잡고 "아자 ! 아자 !" 기운을 돋으며 함께 오른다. 일행을 뒤로 남기고 나도 앞선 대원을 따라 속도를 낸다. 756m봉 오름 길이 다소 가파르다. 2시경 북문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서 있다. 북문을 지나 30여분쯤 오르막을 오르니 다시 이정표가 보인다. 마패봉 0.1Km, 조령삼관문 1.1Km, 부봉 4Km, 조금 더 오르니 오른쪽으로 조그만 돌탑이 서있는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서니 동북쪽 방향으로 월악산이 가깝다. 전망대에서 몇 걸음 더 오르면 바로 마페봉 정상이다. 2시 35분이다. 정상에서 앞서 떠난 대원이 쉬고 있다.


<마폐봉 정상석>

 

 

 


<마폐봉에서 본 신선봉>

 

 

 

마폐봉 정상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북쪽으로 신선봉의 예쁜 모습이 눈앞에 다가 오고, 남동쪽으로는 부봉과 주흘산이 가까이 보인다. 남으로는 저 멀리 지난 번 우중에 올랐던 신선암이 뚜렷하고 그 뒤로 조령산, 멀리 속리산 연봉이 아득하다. 서쪽으로 이름 모를 산들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발 아래는 수옥정과 한삼지기, 그리고 3번 국도가 그림 같이 펼쳐 있다. 저수지 물이 햇빛을 반사하여 반짝인다. 다만 동쪽과 북쪽은 나무가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아쉽다. 아름다운 풍광에 넋이 나가는 느낌이다. 사진도 찍고, 간식을 먹으며 쉰다.


<마폐봉에서 본 조령산 흐름>

 

 

 

후미가 아래 전망대에 도착했나 보다. 시끌버끌 요란하다. 아마도 동쪽의 전망을 즐기는 모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올라오려는 기색이 없다.

 

"올라들 오세요. 여기 조망이 죽여주네요." 라고 알려준다.

 

마폐봉에 오른 후미 일행도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모두들 감탄한다. 과일과 음료수로 간식을 취한다. 바로 앞 신선봉 위에 중위 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제3관문으로 바로 내려갈지, 대간 길은 벗어나지만 조망이 좋다는 신선봉을 들를지,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신선봉 위에선 중위 팀을 보고는, 신선봉으로 향하기로 한다. 지도를 보면 고사리 마을에 도착하는 길은 어느 길을 택해도 직사각형의 두 변을 거쳐야 한다. 지금 시각이 2시 55분, 제3관문을 통해, 고사리 마을로 향한다면 4시경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다. 다른 두 변인 신선봉을 거쳐, 휴양림으로 하산한다해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된다.


<신선봉 오르다 본 부봉과 주흘산>

 

 

 


<신선봉 오르다 본 북쪽 조망 - 월악산 흐름이 보인다.>

 

 

 

3시에 일행은 서둘러 신선봉으로 향한다. 젊은 대원 한 사람이 고사리에 이미 토착해 있을 선두 팀에  연락을 하러 속도를 내어 씽 하니 앞서 나간다. 마폐봉에서 신선봉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1.3Km, 40분 정도면 충분히 오르리라고 보았던 신선봉까지의 시간이 꽤 걸린다. 로프에 매 달려 올라가야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줄을 잡고 내려 가야하는 곳도 있고, 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아야 하는 곳도 있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걸린다. 회장님이 후미대장과 함께 철저하게 후미를 본다. 밀어주기도 하고 끌어 주기도 한다. 그림이 좋은 장면에서는 사진도 찍어준다. 3시 53분 신선봉 정상에 도착한다.


<가까이 본 신선봉>

 

 

 

오 ! 하느님, 오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지난 두 주는 연속해서 비가 내린 모양이다. 사방이 막힌 곳이 없다. 남쪽과 서쪽은 이미 마패봉에서 본 조망이지만, 여기서는 북쪽과 동쪽도 확 트여, 북쪽으로 월악산 줄기가, 멀리 동북쪽으로는 소백산맥 줄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가까이는 오늘 우리가 걸어온 산 능선이 발아래 울긋불긋 채색된 모습으로 누워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모두들 할말을 잃는다.


<신선봉에서 본 걸어온 길 - 위에서 보니 벌써 단풍이..>

 

 

 


<신선봉에서 굽어 본 한섬지기, 3번국도>

 

 

 

4시경 아쉽지만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느라 조금 지체하고, 바른 길을 찾아 곧 휴양림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휴양림 40분. 긴 너덜지대를 조심조심 내려온다. 2/3쯤 내려선 지점에서 회장님이 후미를 기다리자고 한다. 냇가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세수를 하며 쉰다. 이윽고 후미가 도착하고, 다시 너덜 길을 내려선다. 앞에서 사람소리가 나더니 산악회 대장님 모습이 보인다. 기다리다 마중 나오는 길이라 한다. 일행과 함께 내려가는 산악회 대장님의 말씀이 들린다.

 

"백두대간은 팀웍이 하는 겁니다." 아마도 우리 회장님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씀인 듯 싶다.


<하산 길에 뒤돌아 본 신선봉>

 

 

 

5시경 휴양림 매표소에 이른다. 꼬박 40여분이 걸린 기나긴 너덜 길이다. 회장님과 계곡에서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식당에  도착하여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추기고 식사를 한다. 주흘산 산행에 동참했던 전번 대간 팀의 회장이란 분이 우리 회장 옆에 앉더니, 야단 야단이다. 회장이 꼴찌를 하다니 무슨 꼴이냐? 회장 기다리느라고 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도 못하고 얼마를 기다렸는지 아느냐?

 

하지만 우리 회장은 아무 대꾸도 없이 상대방에게 소주잔을 권한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들이고 빙글거리며 묵묵히 식사를 한다. 나이 드신 고문 한 분이 싫은 소리를 한 마디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회장은 끄떡도 않는다. 분위기가 이러니 식사는 하는 등 마는 등 서둘러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6시경 서울로 출발한다.

 

시간 계산과 판단 착오로 많은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부끄럽고, 특히 무박 산행을 떠나야하는 산악회 대장님의 귀중한 시간을 축내어 면목이 없지만, 후미를 보느라 애쓰고, 늦은 하산에 대한 모든 비난을 묵묵히 혼자서 감수하는 회장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해프닝이다.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뻥 뚫린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려, 여주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한 버스는 8시가 채 못되어 서울에 도착한다.

 

 

(2004. 9. 2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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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8일(토)
오늘 토요당일 백두대간 산행지는 제26소구간이다. 이화령(548)을 들머리로 조령산(1026)에 오르고 신선암(937), 923봉을 거쳐 조령 제3관문까지 마루금을 탄 후, 조령 휴양림을 거쳐 고사리 마을로 하산한다. 도상거리 마루금 약 8Km, 날머리 약 3Km, 총 약 11km다. 산악회의 산행 기준시간은 5시간 30분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 그리고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여 점심시간 30분, 땀 씻고 옷 갈아입는 시간 15분을 가산하여 내 목표 시간은 6시간 30분으로 설정해 본다.

 

넓은 의미의 조령산은 일반적으로 이화령에서 조령 제3관문까지의 구간을 말한다고 한다. 조령산까지는 육산이나, 조령산을 지나 신선봉, 923봉을 거쳐 757봉에 오르는 안부까지는 기암 준봉과 칼날 능선길이 이어져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유될 정도로 변화가 많다고 한다. 757봉부터는 다시 부드러운 육산이 이어진다. 많은 등산객들이 조령산을 찾는 것은 이러한 아기자기한 암릉과 암릉 곳곳에서 굽어보는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번 백화산도 우중 산행으로 그 좋다는 전망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남은 터라 주초부터 주말 날씨에 신경이 쓰인다. 예보에 의하면 이번 토요일도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산행 전날인 금요일의 예보로는 토요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지만, 중부 지방부터 서서히 개이기 시작하여 오후에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한다.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양재동 구민회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는 하늘은 잔뜩 흐려있지만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멎었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 대원들이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조령산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지난주보다는 많은 대원들이 참여한다. 여자대원들도 여러 명 보인다.

 

버스는 충주 휴계소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30분간 정차한다. 너른 주차장이 절반 넘어 텅 비어 있다. 비는 오지 않으나 남쪽 먼 산들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다. 아침을 집에서 간단히 먹고 나와, 커피를 마시며 대원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비가 예보된 토요일 -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 한적하다>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으로 빗물이 부딪혀 흘러내린다. 또 우중 산행을 해야 하나보다. 9시 35분 경 이화령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심한 비는 아니지만 그대로 맞으며 산행하기는 무리일 듯 싶어, 배낭에서 판쵸를 꺼내 입는다.

 

경상북도를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과 등산 안내도를 보며 9시 40분경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오른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등산로는 마루금을 버리고 7-8부 능선쯤에서 산허리를 감돌아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이어진다. 몇 차례 너덜지대를 지난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지만 판쵸를 뒤집어 쓴 몸에서는 땀이 배기 시작한다. 몸이 더워지니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서 대원들이 멈춰 서서 비옷을 벗는다.

 

<산행 시작>

 

10시 8분 경 첫 번째 헬기 장에 이른다. 목표했던 소요시간 30분보다는 조금 빠른 진행이다. 뒤로 보이는 759봉이 구름 속에 희미하다. 비도 차츰 멎는 기미라 판쵸를 벗어 배낭에 묶고 마루 금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1Km 정도 이어지는 이 마루금 등산로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구름에 가려 가시거리는 제로다.

 

등산로는 다시 마루금을 버리고 사면 허리길로 이어져 이정표가 새워진 곳에 이른다. 이정표는 제1관문의 하산 길 방향과 조령산 방향를 가르킨다. 가까이에 조령샘이 있다. 조령샘 주변은 비교적 깨끗이 정비돼 있고 배수관을 통해 흘러나오는 샘물은 시원하고 물맛이 좋다.


<조령샘 앞 이정표>

 


<조령샘>


조령샘을 뒤로하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한 가파른 사면을 올라, 10시 45분 경 헬기 장에 이른다. 조령 남봉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남쪽으로 속리산 연봉, 희양산, 백화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주흘산 등이 보여 조령산 정상에서보다도 전망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지금은 구름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조령산으로 향한다. 10시 55분 경 조령산 정상(1.026m)에 오른다. 역시 예정보다 조금 빠른 진행이다. 정상에는 앞서 오른 대원들이 정상주를 개봉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하고 온 여자대원이 대원들을 위해 사온 죽엽청주다. 달콤하고 독한 죽엽청주를 한잔씩 나눠 마신다. 섬세한 여자대원은 안주로 데친 낙지와 초고추장까지 준비해 왔다.

 

조령산 정상에는 정상석과 지현옥 씨를 추모하는 하얀 이정표가 서 있다. 지현옥 씨는 에베레스트산에 오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등반가다. 1999년 4월 안나프르나봉에 오른 후, 하산 시 추락, 사망했다고 한다. 서원대학교 산악반 후배들이 세운 하얀 추모 이정표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 진다.


<조령산 정상석>



<추모 이정표>

 

정상에서 약 10여분을 지체하고 대원들은 왼쪽 경사로로 내려선다. 급경사 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조심조심 급경사 길을 내려서다 전면을 보니 신선암이 구름 속에 가려 신비롭게 떠있다. 맑는 날에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다. 급경사 길을 내려 안부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서 있다. 등산로는 잠시 947봉을 오르고, 다시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어 안전 산행을 돕는다. 947봉을 내려오면서 정면으로 구름 사이로 잠깐 얼굴을 비치는 889봉을 본다. 아름답다.


<구름이 엷게 드리운 신선암>

 


<889봉>

 

11시 42분 경 안부에 이른다. 조심해서 걸어서일까? 조령산에서부터 약 40분이 경과했다. 안부에는 신풍 2.9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889봉을 우회한 후, 본격적으로 신선봉으로 오르는 암벽과 마주한다. 긴 슬랩 구간에는 로프가 걸려있다. 여기서 잠시 정체한다.


<신풍 2.9Km를 알리는 이정표>

 

마침 구름이 잠시 벗어지며 왼쪽으로 절골이 그림처럼 누워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굽어본다. 암벽을 지나면 암릉이 계속되고 다시 암벽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신선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위 앞에 이른다. 가슴 높이 정도에 왼쪽 바위가 경사를 이루고 삐죽 나와 있다. 이 바위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른쪽 암벽을 딛으며 몸을 솟구쳐 왼쪽 바위사면으로 붙어야 하나 비에 젖어 오른쪽 바위가 몹시 미끄럽다.


<구름사이로 보이는 절골 방향>

 


<신선봉 오르는 길>

 

다행이 대원 한 사람이 왼쪽 바위 위에서 줄을 내려준다. 이 줄을 잡고, 오른쪽 암벽을 박차며 왼쪽 바위 위로 오른다. 신선암으로 오르는 길이 암벽과 암릉의 연속이나 위험한 곳에는 로프가 매어 있어 조심하면 크게 어렵지 않으나, 이 곳은 서로 도와 안전하게 올라야 할 곳이다.

 

너른 바위를 지나 12시 16분 경 신선암 정상에 도착한다. 내 목표시간 보다는 약 10분 정도 빠른 진행이다. 정상에 모여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 구름바다뿐이다.

 

신선암을 내려선다. 급경사 길이다. 직벽을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고, 로프를 잡고 암벽을 트레버스하여 횡단하기도 한다. 하강 길에 다시 비가 내린다, 거추장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판쵸를 입는다. 조심조심 내려서 안부에 도착한다. 비가 굵어지고 마음이 급해 이정표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서둘러 932봉으로 오른다. 다시 암봉길이 이어지고, 빗속에서 923봉은 모르고 지나친다. 1시가 넘으니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고 느끼니 걷는 게 더 힘들어 진다. 배낭을 내려 미숫가루 탄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너른 전망바위도 그대로 지나친다.

 

빗발이 조금 가늘어진다. 바로 앞 암릉길 위에서 앞팀이 도시락을 풀고 있다. 합류하여 함께 점심을 한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진다. 피할 나무 그늘도 마땅치 않아 비를 맞으며 점심을 먹는다. 바람이 없어 지난 주 점심때처럼 춥지는 않다. 대원들은 빗물에 물 말아먹는다고 농담을 하며 빗속에서도 즐겁게 점심을 든다.

 

식사 후 왼쪽으로 내려서다 오른 쪽으로 휘어져 다시 암릉 위로 이어지는 대간 길을 빠르게 진행한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양쪽이 절벽인 암릉 길이 이어진다. 날씨가 좋다면 양쪽으로 굽어보는 전망이 기가 막힐 듯 싶다. 이윽고 암릉 길이 끝나고, 길은 비로 미끄러운 언덕길로 이어진다. 757봉을 지나자 능선 길에는 그 동안 내린 비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이미 젖은 발, 개의치 않고 첨벙 첨벙 물웅덩이를 건넌다. 비는 많이 가늘어졌다.

 

821.5봉 못 미쳐 전망대에 선다. 동쪽 구름사이로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위치로 보아 부봉과 그에 잇따른 봉우리들인 듯 싶다. 대간 산행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주위에 보이는 산들을 정확히 식별하지 못하는 점이다. 독도법을 제대로 익히면 나침반을 이용, 관심 있는 산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부봉과 2, 3, 4 ...봉>

 

독도법에 관한 책을 찾으러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도서도 검색해보고, 교보문고, 영풍문고의 홈페이지도 뒤져봤으나 독도법만을 전문으로 다룬 책은 찾지를 못 한다. 교보문고를 가보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 일부러 찾아 가 보았지만 원하는 책은 찾지를 못하고 엉뚱한 책들 만 한 보따리 사 들고 온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바닥에 삼각점이 박혀 있다. 821.5봉이다. 이제 비는 완전히 멎었다. 조령 제3관문 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난다. 내리막길을 달려 약 20분 후인 3시14분 조령 제3관문에 도착한다. 조령약수 터에서 유서 깊은 약수를 마시며 쉰다.


<조령약수>

 


<조령 약수 해설>

 

여자들은 많이 참았던지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 나선다. 조령 제3관문은 관리가 잘 되어 보기가 좋다. 성문 앞쪽으로는 좌우로 너른 잔디밭이 푸르고, 해 묵은 나무들이 아름답게 서있다. 커다란 러시아개가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배회한다. 10여 분간 사진을 찍으며 쉰 후 3시 24분 고사리 마을로 향한다.

 

고사리 마을로 향하는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비는 완전히 멎고 이제는 햇님이 얼굴을 보여준다. 비 온 후 주위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날카로운 암봉들이 도로를 따라 달린다. 왼쪽으로는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들녘을 넘어 저 멀리 웅장한 산세가 구불구불 햇빛을 받고 누워 있다. 길 가 오른 쪽으로 조령을 넘었던 과거 객 선비들을 상징하는 조그만 선비 상이 서있고, 군데군데 맑은 계곡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선비상>

버스가 정차하고 있는 주차장에는 3시 50분경 도착한다. 산악회 기준 시간보다는 40분 늦게, 내목표 시간에 비슷하게 산행을 마친 셈이다. 주차장 건너편 건물 화장실에서 땀을 닦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식당에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을 먹고 주위를 둘러 본다. 고사리 마을이 아름답다.

 

5시 경 버스는 서울로 향한다.

 

 

(2004. 9. 19.)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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