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덮인 운장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목요일부터 뿌리더니, 금요일에는 전국적으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늦더위를 쓸어간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것이 엊그제인데, 금요일 새벽에는 선선한 기운에 잠이 깨어, 창문을 닿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2005년 8월 20일(토).
금남정맥 산행을 하는 날이다.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되고, 오늘의 행선지 호남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새벽에 눈을 뜨니, 서울에는 비가 그쳤다. 비구름이 예상보다 빨리 지나간 모양이다.

 

대간꾼들은 폭우만 아니라면, 무더위보다 비 오는 것을 더 좋아한고 한다.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젖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비에 젖으면 시원하기 때문이란다. 낮은 비구름으로 조망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피부에 닿는 비의 촉감, 물기 머금은 등산로, 차분히 가라앉은 산의 분위기 등이 대간꾼 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란다.

 

7시 10분 경 서초 구민회관 앞에 도착한다. 부지런한 우정 대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목련 대원, 화봉 대원이 도착하고, 다이야 대원은 친구와 함께 등장한다. 조총 부부가 함께 나왔지만, 정총 대원은 회사 일 때문에 산행에는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군을 전송하고, 대원들도 만날 겸, 이른 아침에 함께 나온 것이다.

 

2주만에 만나는 대원들이 반갑게 이야기하며,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돼지 5형제들은 어찌된 일인가? 관영 대원, 드니로 대원, 잭 울프 대원 등은 벌써 한 달이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소간방에도 얼씬 않는다. 베이비 부머들, 고민거리가 많은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하고, 심산(深山) 대원이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다. 반갑다. 늘 모습을 보이던 심천 대원이 보이질 않는다. 대간 땜방산행이라도 간 것인지. 궁금하다. 비가 온다는 예보로 차안에는 빈자리가 더 많이 눈에 뜨인다.

 

비로 더위가 가시자, 에어컨도 켜지 않은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 왕복 8차선 도로가 시원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 통행이 빈번하다. 고속도로 위, 하늘에는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흰 구름과 검은 구름이 뒤 섞여 교차한다. 비가 개는 하늘의 모양새다. 이양숙 회장이 죽전에서 승차한다.

<차창 너머 고속도로>


 

8시 35분 정안휴게소에 도착해서 30분간 정차한 버스는 9시 37분, 남논산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지난번과 동일한 코스를 달린다. 김영두 대장이 산행자료를 배포하고, 인사를 하며, 새로 온 후미대장을 소개한다. 앞으로 정맥산행 시, 계속 후미를 챙길 분이라고 한다. 이제 정맥 팀도 점차 체제가 갖추어지는 모양이다. 가을이 되면서, 참여 대원수가 늘어나, 완벽한 정맥 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지난번 피서 차량과 인파로 붐비던 개울가를 지난다. 비로 물이 많이 불은 개울가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차량 소통이 원활하다. 고속도로를 남하할 때, 간간이 뿌리던 비도 이 지점에서는 완전히 그쳐, 흰 구름이 빠르게 산록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이양숙 회장이 "배낭 커버, 씌울 필요 없겠어요. 내 보장하리다."라고 장담을 한다. 날씨가 개이니, 마음도 흥겨워 지는 모양이다.

<비 개는 하늘>


 

26번 도로를 북상하던 버스는 모래재를 향해,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힘들게 산길을 오른다. 조약봉에서 보룡고개 구간을 땜방하려는 대원 2사람을 모래재에 내려주기 위해서이다. 고도가 높아 질 수록 비 온 뒤의 차창 밖 풍광이 아름답다. 이윽고 모래재에 대원 2사람과 후미대장을 떨구고, 버스는 다시 26본 국도로 진입, 보룡고개로 향한다. 10시 40분 경, 주유소와 휴게소 건너편에서 조금 남쪽으로 쳐져 있는 시멘트 도로에 버스가 정차한다. 비는 완전히 멎었다.

 

오늘의 산행코스는『보룡고개(2.5K)-황조치(2.2K)-664봉(2.5K)-연석산(0.5K)-늦은목(1.7K)-운장산 서봉(2K)-피암재』로 도상거리, 약 11.4Km, 산악회 기준 산행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다.

<오늘의 산행코스>

실제 산행시간은 아래와 같다.
『(10;40) 보룡고개 도착-(10:43) 산행시작-(11;04) 능선 길에 오름-(11:28) 627.4봉-(11:58) 황조치-(12:16) 667봉-(12:29) 상궁항 삼거리-(13:01) 시평리 삼거리-(13:50~ 14:15) 암봉에서 중식-(14:25) 너른 전망바위-(14:57) 이정표-(15:00~15:10) 연석산 정상-(15:23) 만항치-(16:39~17;00) 서봉-(17:28) 전망대-(17:50) 사거리 직진, 알바 시작-(19:05) 상검태)』,총 산행시간 8시간 22분, 마루금 산행 약 7시간, 중식 25분, 알바 약 1시간, 하산 직전 어처구니없는 알바로 약 1시간 이상을 헤맨 산행이다.

 

10시 42분 선두 팀이 시멘트 도로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 기념사진을 찍고, 천천히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른다. 얼마 오르니 않아, 왼쪽 숲에 산행리본들이 보인다. 수로를 건너,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솔 향기가 상큼하다. 가파른 산 사면을 21분 올라, 능선길에 이른다.

<선두출발, 산행시작>


 

전형적인 대간 능선길은, 11시 17분 경,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곧이어 산죽 지대가 나타난다. 키를 넘는 산죽을 헤치고, 10분 가량 진행하여, 산죽지대를 벗어나니, 옷이 흠뻑 젖는다. 빗방울이 가득 매달린 이런 산죽밭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간간이 이어진다. 능선에서 서쪽, 동쪽으로, 멀리 구름이 걷히는 마을들이 보인다. 평평한 능선길을 달려 675.4m봉에 이른다. 삼각점이 박혀있다.<진안 488, 1984 재설>

<산죽밭>

<675.4m봉 삼각점>


 

앞서 달리던, 3차 대원들이 바위가 있는 650봉에서 쉬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출발한다. 황조치로 내려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마을들이 그림 같다. 이윽고 11시 54분, 잡초가 무성한 황조치를 지나. 급경사 오름 길을 오른다. 12시 16분, 달랑 리본만 달려 있는 공터, 677봉에 이른다. 등산로는 젖은 낙엽이 쌓여 있는 방화로로 이어진다.

<뒤돌아 본 궁항리>

상궁항 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에 정면에 연석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윗부분은 짙은 구름에 가렸다. 12시 29분 상궁항 삼거리에 이른다. 너른 공터다. 정면으로 연석산이 모습을 보이고, 오른 쪽의 운장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대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12시 55분, 665m봉을 오르고, 1시경 시평리 삼거리를 지난다.

<상궁항 삼거리로 내려오면서 본 연석산>

<왼쪽 연석산, 오른쪽 구름에 가린 운장산>

시평리 삼거리에서 약 300m 이상 고도 차이가 있는 연석산으로 향한다. 등산로 주변에서 앞섰던 3차 대원들이 점심을 들고 있다. 식사 후 오름 길이 부담이 되는 나는 좀 더 진행한 후 식사를 하기로 하고, 앞서 나간다. 암릉길이 나타난다. 넓적한 바위에 서서, 주위를 조망한다. 저 아래에 푸른 저수지가 아름답다. 궁항 저수지다. 정면으로, 지나온 능선들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른다. 커다란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우회로도 보이지만, 바로 암릉을 타고 오른다, 발 디딤이 좋아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다. 중간에 산행리본도 걸려있다 1시 50분 암릉 꼭대기에 올라, 배낭을 벗어 놓고, 도시락을 꺼내, 눈 아래 조망을 즐기며, 점심식사를 한다.

<암릉에서 본 걸어온 능선>

 

<암릉오르다 본 남쪽조망>

점심을 마칠 무렵, 다이야 대원을 선두로, 3차 대원들이 지나친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 땀이 식어서인지, 스쳐 가는 바람결에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서둘러 스패츠를 벗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후, 배낭을 메고 3차 대원들의 뒤를 따른다. 약 2분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며 조망이 좋다. 아름다운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그마한 직벽이 앞을 막는다. 가는 줄이 걸려 있고, 바위틈으로 물이 줄줄 흐른다. 줄을 잡고 고 직벽을 올라, 너른 전망바위 위에 선다. 지나온 능선이 발아래 펼쳐져 있고. 그 능선 위로 구름이 빠르게 흐른다. 동쪽으로는 운장산에서 흘러내린 능선과 운석산 능선 사이에 길게 누운 궁항리가 아름답다. 운장산 산정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조망에 끌려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가까이 본 연석산>

<구름이 덮인 운장산>


 

<길게펼쳐진 궁항리>

<구름에 가린 운장산 오름 능선>

완만한 능선길을 오른다. 2시 57분, 이정표를 지난다. <해발 860m, 정상 0.2K, 연동마을 2.3K> 오른 쪽으로 정상을 향한다. 3시에 연석산 정상(917m)에 선다. 비교적 너른 공지다. 스텐으로 만든 정상 표지물이 세워져 있다. <운장산 2.5K, 보룡고개 6.5K, 연동 2.5K> 바람이 거세고, 빗줄기가 흩날린다. 북쪽으로 전망바위가 보여, 그 바위에 올라서 보지만,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다. 다시 공터로 나온다.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은 구름에 묻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이정표>

<연석산 정상>

가파른 암릉 내리막길이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내려선다. 군데군데 전망 바위들이 솟아있어, 날씨가 좋으면, 이런 전망바위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겠다. 못내 아쉽다. 안부에 이른다. 만항치다. 만항치와 서봉(1,122m)의 고도 차는 약 350m다. 두 곳의 도상거리는 고작 1.5Km, 따라서 그 경사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전망바위>

<운장산 오르다본 오른쪽 조망>

급경사 길을 천천히 오른다. 굵어진 빗줄기가 오락가락 한다. 3차 대원들은 훨씬 앞서 나갔겠지만 서둘지 않는다. 자기 체력의 70%-80% 정도를 사용하여 등산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체력을 아끼며, 급경사를 천천히 오른다. 줄을 잡고 올라야하는 암릉도 두어 군데가 있는 험한 길이 이어진다. 조약봉-보령고개 구간을 땜방하는 후미 팀도 있으니 더 더욱 서둘 필요가 없겠다. .

 

만항치를 떠나 거의 한 시간이 지난 시점에야 비로소. 서봉으로 이어지는 넓은 너덜 지대에 이른다. 가까운 곳에서 두러두런 사람 소리가 들린다. 소리쳐 부르니, 우정 대원이 대답한다. 운장산 정상(1,126m)은 들르지 않고 바로 하산한다고 한다. 그러니 서봉에만 들렀다가 하산하라고 한다.

 

서봉을 향해 너덜 길을 오른다. 서봉에 오르는 길이 허공에 뻥 뚫려, 마치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보인다. 이 허공 길을 지나  4시 39분 이정표 앞에 선다. <피암목재 2.5K, 운장산 0.5K....> 운장산 방향으로 걸어가 본다. 구름만 가득하다. 운장산은 정맥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한번 가 볼만한 명산이다. 불과 0.5Km의 거리, 30분이면 왕복이 가능하여, 날씨만 좋다면 욕심을 부리겠지만, 비도 오고, 시계가 제로인 지금은 무리할 필요가 없겠다.

<서봉으로 오르는 길>

<서봉 앞 이정표>

<구름에 싸인 서봉 앞 기암>

방향을 돌려, 서봉 정상을 향한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정상석이 세워진 암봉으로 향하는 길에 벤치 2개가 한가롭게 비를 맞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고, 벤치로 내려와 배낭을 벗는다. 다시 스패츠를 꺼내, 무릎 보호대 위에 착용한다. 이제 1시간 정도면 피암목재에 도착할 수 있다. 3차 대원들에게 30분 정도 뒤졌겠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적이 없는 정상에서, 비를 맞으며 벤치에 앉아 백세주를 정상 주로 마시며,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을 본다. 5시 하산을 시작한다.

<서봉 정상석>

<빗속의 정상 벤치>

비로 번들거리는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너덜길이 끝나고 급경사 진흙길이 이어진다. 무척 미끄럽다. 20여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안부에 이른다, 이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과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갈린다. 양쪽 모두에, 산행리본이 가득 걸려있다. 오른 쪽 길은 동자동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왼쪽 능선을 타고 속도를 내어 걷는다. 5시 28분, 전망바위를 지나고, 5시 37분 커다란 암릉을 내려선다.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걸려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리본이 오늘 산행 중에 마지막으로 본 리본이다.

<하산길 전망바위>

<하산길 마지막 암릉 - 리본이 보인다>

암릉길을 지나 네거리 공터에 이른다. 어느 방향에도 산행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 쪽 길을 택해 잡초 사이로 들어선다. 사람이 지난 흔적이 없어, 다시 공터로 되돌아온다. 왼쪽 길은 분명히 아닐 터이니 관심이 없고, 정면으로 직진하는 방향을 주의 깊게 살핀다. 허연 마사토 위로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언덕을 올라서니 오솔길이 뚜렷하다.

 

주위에 안개가 자욱하여, 방향을 가름할 수 있다는 무인기지국탑도 보인지 않는다. 등산로는 너른 임도로 이어지고 다시 왼쪽 오솔길로 접어든다. 완만한 경사로를 오른다.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내리막으로 이어져야 할 터인데 오르막이다. 주위에 산행리본도 전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알바를 하는 느낌이다. 이윽고 오솔길은 언덕을 지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비는 그쳤지만 숲길은 캄캄하다. 희미하게 이어지던 길이 도중에 없어져 버린다. 비로소 알바가 확실하다고 느낀다. 돌이켜 보면, 이 지점에서 미련 없이 원점회귀를 하여, 옳은 길을 찾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30분 이내에 피암목재에 도착했을 것이다.

 

저 아래 사람소리가 들린다. 비록 알바라 하더라 이 비탈길을 내려서면 도로에 도달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 집어 올라, 길을 찾아 하산을 계속한다. 이러한 과정을 서너 차례 반복한다.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시간은 자꾸 흘러, 6시30분이 지나서야 겨우 계곡에 도달한다. 현재 위치를 가름하기 위해 나침반을 꺼내 본다. 아뿔싸 ! 오른 쪽으로 하산을 해야 하는데, 왼쪽으로 하산해 상검태 쪽으로 내려왔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서둘러 등반대장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계곡이 깊어 통화가 안 된다.

 

계곡 길은 내려가기가 수월하다. 앞에 바위가 하나 솟아있다. 바위에 오르니, 눈 아래 마을이 보이고, 너른 개울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김 대장에게 다시 전화를 한다. 이번에는 전화가 통한다. 알바를 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제 마을도 보이고 길도 뚜렷하니, 위험할 것은 없다. 서울은 내가 알아서 올라 갈 터이니, 대원들이 다 하산했으면 기다리지 말고 서울로 출발하라고 말한다. 김 대장은 그 곳이 상검태 부근이냐고 묻는다. 지도에서 상검태라는 지명을 본 것 같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김 대장은 다른 대원 8명도 알바를 하여, 상검태로 내려와 있다고 한다. 버스가 상검태로 향하고 있으니, 갈빗집 앞으로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이럴 수가 ! 대원 8명이라면 앞서 갔던 3차 대원들 아닌가? 아마도 똑 같은 과정을 거쳐, 그들도 알바를 한 모양이다. 내려오면서 들었던 사람 목소리는 길을 찾는 이들의 소리였던 것이다. 개울가에 내려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비로 물이 불은 개울을 징검다리로 건너 버스에 도착한다. 7시 5분 경이다. 차안에서 서둘러 젖은 옷을 갈아입는다.

 

김 대장이 조약봉에서 출발한 대원들과 통화를 한다. 역시 하산 길에, 길이 헷갈려 길을 묻는 모양이다. 버스는 다시 피암목재로 향하고, 15분 후 피암목재에 도착한다. 밖에는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컨테이너 상점 뒤로 돌아가 흠뻑 젖은 내복까지 갈아입고, 물을 얻어, 세수를 하고 몸의 땀을 씻는다. 시원하고 개운한 것이 날아갈 듯 싶다.

 

7시 46분 경, 대원 2사람과 후미 대장이 도착하고,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들 세 사람들도 갓봉에서 알바를 했다고 한다. 인삼랜드에서 30분간 정차한 버스는 10시 40분 경, 양재역에 도착한다.

 

연석산, 운장산은 모두가 가히 명산이다. 비구름으로 조망을 즐기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어처구니없는 하산 길 알바로 한 시간 여를 헤맨 이번 산행으로 운장산은 잊지 못할 산이 돼 버렸다. 언제 꼭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은 산이다.

 

집에 돌아와 지도를 앞에 놓고, 알바를 했던 코스를 추적해 본다. 공터 4거리에서 직진한 것까지는 옳은 코스다. 등산로가 임도로 이어지는 지점 부근에, 아마도 오른 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선두의 등반대장은 그 곳에 산행리본을 걸어놨다고 하지만 너른 임도로 이어지는 길 몫에서, 리본을 못 보고 지나친 모양이다. 이후 임도를 걷다가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었으니, 상검태로의 하산은 불가피 했던 것이다.

 

오늘은 비를 맞으며 명산을 걷고, 어처구니없는 알바로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서울로 향하는 차 속에서 김 대장은 말한다.

 

"대간길이나 정맥길에서 100m 정도를 걸었는데도, 산행리본이 나타나지 않으면, 일단 알바라고 의심해라. 알바라고 판단되면 원점회귀를 한 후, 바른 길을 찾아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반드시 원대복귀 해야한다."

 

 

(2005. 8.21.)

 

금남정맥(1) : "조약봉- 입봉- 보령고개" 산행기는 금남호남 산행기 마지막 편 금남호남을 마무리하고, 금남정맥을 시작한다. 에서 볼 수 있음



1 [목련 / 2005-08-22,11:31:51]

8월의 산행

촉촉한 날씨가 반은 도와준다고 히히낙낙...

뽀얗게 지나가는 운무속에서 살큼살큼 딛는 발소리

옹가종기 모인 아랫마을 지붕들을 비추는 햇살

키를 훌쩍 넘는 조릿대의 컴컴한 터널속에서

스적스적 스치는 잎사귀에 할킨 쓰라리움,

200대 명산에 든다는 연석산과 운장산의 펼쳐진 능선들 위에

3차대의 끈끈한 정이 묵은지만큼 곰삭아 우러나오는 산행,

축축한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싸리버섯과 참나무버섯을 따며 오랜만에 어린시절 뒷동산에 버섯을 찾으러 헤매던 때를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졌지요

그러나

미끄러지고 삐뜨러지며

우리는 낭떠러지기에 하늘길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래도 즐겁기만 한 3차대 화이팅

우림님만은 소나무숲을 헤치고 잘 가셨으리라 믿었건만

끝내 우리를 쫓아 오실줄이야... 흑흑흑

산행기 읽고 다시 한번 산행했어요

피곤하실텐데 감사합니다 [삭제]

2 [우림 / 2005-08-23,10:28:37]

서울에서 낳고,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고향이 없지요. 시골에서 낳고, 그 곳에서 자란 분들은 혜택을 받은 분들입니다. 어딘지 여유가 있고, 삭막하지가 않지요.


"여기 좋은데, 우리 놀다 가자." 좋은 곳에 이르면, 목련 님이 가끔 조총 대원에게 하는 말입니다. 소변이 마려워도, 소변보는 동안 대원들에게 뒤떨어질까 두려워, 찔뚝거리며, 참고 쫓아가는 모습과는 하늘 땅 만큼 차이가 나지요.


도회지 출신들은 아름다운 들꽃을 봐도, "참, 아름답기도 하다."라는 감흥이 고작입니다. "축축한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버섯을 보아도, 그게 독버섯인지, 식용버섯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니, 별다른 관심이 없네요.


이제 소띠 갑장들도 점차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시간이 길어질 겁니다. 스쳐 지나는 사소한 것들이 자주 옛 추억들을 낚아 올리지요? 목련 님 ! 고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추억들을 후기로 적어, 소간방에 올려주세요.


"밤에는 오빠들을 따라 횃불을 들고 호랑이가 나온다는 계곡에 불을 밝히면, 불빛을 따라 가제가 바위틈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우리는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두 손으로 몸통을 잡는 순간, 손을 꽉 물던 알이 밴 가제... 눈을 들면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나올 것 같은 시커먼 산등성이, 낯익은 산모퉁이를 돌면서 내 어린 시절이 말갛게 떠오른다."


이런 글 많이, 많이 부탁합니다. [삭제]

3 [우정 / 2005-08-23,11:16:18]

알바는 늪의 특성을 빼 닮았다고나 할까요.?

알바 인줄 알면서도, ,계속 빠져들어가기 일쑤니까요


뜸해진 signal,달라진 登路가 확인됬을때.

과감히 원점회귀 해야된다는 원칙은 머리속에만있지,

도무지 지나쳐온길이 아까워, 돌아서질 못하게 되더군요.

이게 바로 下手<심천 version>들의 맹점~


그래도 그날 저만치 빤히 내다 보이는 마을이 있어서

그다지 두렵진않았지요.

단지 뒤따르는 여학생들에게 넘 미안 하더라구요.


아무튼 이날의 해프닝은 알바 라기보다, 의도 하지않은

탈출사건으로, 기억될것입니다.

덕분에 싸리버섯도 따고, 시원한 알탕도하고,

상검태,중검태,하검태 마을 구경도 하고,,,,,,


하지만 산행 예습공부를 철저히 하시는 우림님께서도

똑같은 곳으로 탈출하시게 된것은, 우리같은 하수들에겐

다소 위로?가 되었지요.ㅋㅋ


목련~ 목련이 따준 싸리버섯~ 맛있더라구요.

다음구간에서도 부탁합네다. [삭제]

4 [우림 / 2005-08-25,10:09:53]

그래요. 맞아요.

원점회귀를 하지 않았으니 알바가 아니라 탈출이죠.

탈출도 불가피한 탈출이 아니라,

마루금을 벗어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지나온 길이 아까워. 오기를 부려 강행한 탈출이죠.

치사하기도 하고, 오만(傲慢)하기도 한 탈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맙시다. [삭제]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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