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은 전북 임실군과 순창군 경계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다. 주봉인 회문봉(837m)을 위시하여, 남쪽의 들곳봉, 서쪽의 장군봉, 동쪽의 깃대봉 등 수 많은 연봉과 골짜기들이 첩첩으로 둘러 쌓여있고,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화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고 있어, 지형적으로 방어하기에 천혜의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러한 지형적인 요건으로 한말의 일제침략에 항거하던 최익현, 임병찬, 양춘영 의병대장들의 활동무대가 되었고. 해방이후에는 여수 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기도 한 곳인가 하면, 6.25때는 빨치산들의 활동 근거지로 북한의 남부군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빨치산훈련장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고, 빨치산의 은신처와 밥 짓던 터는 통나무집과 물놀이 터로 변한 자연휴양림으로 탈바꿈하여, 지금의 회문산은 얼룩진 과거사를 묻어둔 채 가족단위 자연공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이상 관련자료 발췌)
2016년 12월 31일(토)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병신년 마지막 날, 온라인산악회를 따라 회문산을 간다. 젊었을 때 이태(李泰)의 남부군을 본 적이 있어서, 언제든 회문산을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온라인산악회에서 회문산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게 되어 무척 반갑다.
7시 15분 경, 양재 서초구청 건너편, 수협 앞에서 산악회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죽전, 신갈 경유지를 차례로 거친 후, 고속도로를 달린다. 잔뜩 흐린 날씨에, 최순실 건으로 어수선해진 시국 탓인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변의 풍광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8시 35분 경, 버스는 여산휴게소에 도착하여 대원들 아침식사를 하라고 25분 동안 정차한다. 9시 버스가 다시 출발을 하자, 케빈대장이 오늘 산행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한다. 우선 회문산 전체에 대한 개요를 설명한 후, 오늘 산행코스를 5~6개 소 구간으로 나누고, 구간별 거리와 소요시간, 그리고 소 구간별 볼거리 등을 줄줄이 외어 설명한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이어 산에는 눈이 쌓인 곳도 있고, 발밑이 보이지 않는 무성한 산죽 밭을 통과해야 하니 안전산행에 특히 유의하라며, 알바하기 쉬운 곳에는 선두가 산악회 종이표지판을 깔아 놓겠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도상거리로 약 10Km에,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이라며, 하산시간은 버스가 들머리에 도착하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버스가 들머리에 접근 하자. 케빈대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버스에서 내려 산행 전에 잠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것이 좋은데, 하차하면 모두 다 산행준비에 바빠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차안에서라도 잠시 몸을 풀자며, 팔, 목 허리운동을 하게한다. 버스가 10시 27분, 산행들머리에 도착하자. 케빈 대장은 하산지점인 회문산 자연휴양림 매표소 앞 주차장으로 4시 15분까지 하산하라고 당부하면서, 버스는 4시 20분에 서울로 출발하겠다고 공지를 한다. 온라인산악회는 오늘 처음 참여해보지만, 왠지 느낌이 좋다.
버스에서 내려, 들머리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고, 산행준비를 한 후, 잠시 덕치치안센터를 둘러본다. 여기에서도 소금장수가 그림을 방해한다. 자신도 덕치치안센터를 찍더니. 자리를 비켜주기는커녕, 문 앞을 막아서고 있지 않은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요원한 이야기이다. 자리를 비켜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될 터인데, 소금장수 탓만 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산행들머리 이정표
전북임실경찰서 덕치치안센터
10시 30분, 시멘트도로를 따라 걸으며 마을을 통과한다. 영모재(永慕齋)라는 현판이 걸린 오래된 낡은 사당을 지난다. 안내판 하나 없고,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가 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10시 36분, 회문산 등산로 2 이정표를 만나고, 이어 27번 도로 아래를 통과하자, 바로 3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가야할 오르막 시멘트도로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있다.
영모재
이정표
27번 도로 아래
하얀 눈이 깔린 시멘트도로를 걷는 대원들
11시 4분, 시멘트도로가 임도로 바뀌고, 4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들머리에서 1.5Km 떨어진 지점이다. 잔설이 깔린 임도가 가파르게 이어지고, 산죽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을 힘겹게 올라 11시 14분, 5번째 이정표가 있는 벌목지대에 이른다. 정면으로 깃대봉이 가깝고,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 오른다. 돌 많은 거칠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정표
산죽이 모습을 보이고
가파른 통나무 계단 길
이정표
벌목지대와 깃대봉
잔돌이 많은 거친 등산로
가파른 돌길을 꾸벅꾸벅 오르다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 덕천면과 섬진강, 27번 도로, 그리고 지나온 길을 카메라에 담는다. 11시 23분, 갈림길에 이르자. 땅바닥에 돌로 눌러 놓은 산악회 종이표지판이 보인다. 왼쪽 길로 들어서서, 산죽 길을 유장하게 걷는다.
뒤돌아 본 동쪽방향 조망
산악회 종이표지판
산죽 길
11시 48분, 첫 번째 전망바위를 지나고, 11시 55분, 이정표가 있는 일중마을 갈림길을 거쳐, 빨치산 교통호를 구경하고, 두 번째 전망바위에 올라, 고속도로처럼 곧게 뻗은 27번 도로와 일중리, 그리고 멀리 남덕유산이 보이는 남쪽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다.
일중리 갈림길 이정표-이제 깃대봉까지 남은거리는 480m
빨치산 교통호
남쪽 조망
지척인 깃대봉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날씨가 더욱 더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린다. 이제 회문산의 명물인 조망을 즐기기는 어렵게 된 것 같다. 그럴 바에야 눈이라도 펑펑 내려 설산산행을 즐기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가는 눈발만 흩날릴 뿐이다, 12시 7분, 정상석 등이 있는, 조망이 일품이라는 깃대봉 정상에 올라, 주위 풍광을 둘러보지만, 운무에 가려 원경을 즐길 수 없어 유감이다.
정상석
운학조평 설보비
헬기장
도상거리 약 3.1Km, 고도차이 약 650m(800m/145m) 의 첫 구간을 오르는데 1시간 38분이 걸렸다. 시간 당 약 2Km를 걸었으니, 만만한 구간은 아니다. 12시 8분, 깃대봉을 내려서서, 가슴높이의 산죽 밭으로 들어선다. 길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조심 헤쳐 내리다, 발이 미끄러지며, 한차례 엉덩방아를 찧는다. 12시 19분, 묘가 있는 안부로 나와 한숨 돌린 후, 가까이 보이는 천마봉을 향해 다시 산죽 밭을 헤집고 오른다.
가슴 높이의 산죽 밭을 헤쳐 나가고
묘가 있는 안부로 나와 한숨 돌리고
가까이 보이는 천마봉
천마봉으로 오르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뒤돌아 지나온 깃대봉을 카메라에 담고, 12시 26분, 천마봉에 이른다. 나뭇가지에 <천마봉/해발 715m>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인다. 정상에서 동네 분 같아 보이는 젊은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쪽으로 보이는 회문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천마봉을 내려서서 산죽 밭으로 들어선다.
뒤돌아본 깃대봉
천마봉 정상의 억새와 젊은이
천마봉에서 본 회문산 정상
이번 산죽은 어깨 높이까지 이르고, 내리막은 더욱 가파르다. 빽빽이 밀집한 산죽을 헤집고 내려서려니, 스틱 웍(Stick Work)도 불가능 하다. 또 한 차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뒤 따라 오던 케빈대장이 괜찮으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역시 묘가 있는 안부를 지나, 12시 55분, 이정표가 있는 삼연봉에 오른다. 이정표는 회문산까지 남은 거리가 2,2Km라고 알려준다. 케빈대장 일행은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고, 10시경, 버스 안에서 샐러드 빵으로 브런치(Brunch)를 한 나는 앞서서 혼자 삼연봉을 내려선다.
다시 산죽 밭
삼연봉 이정표
점심 채비를 하는 케빈대장 일행
1시 6분, 이정표가 있는 사방땜 갈림길 안부에 내려선다. 산악회에서 깔아 놓은 종이표지판이 직진의 회문산 방향과 왼쪽의 회문산역사관 하산길 양쪽으로 놓여있다. 어느새 점심식사를 마치고 내려온 케빈대장이 뒤에 쳐진 후미대원들을 걱정하면서, 회문산으로 가는 직진방향의 표지판을 치우고, 왼쪽표지판만 남겨두어, 힘들어 하는 후미대원들을 이곳에서 하산하도록 유도한다.
사방땜 갈림길 이정표와 켈빈대장
회문산을 향해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른다. 흩날리던 눈은 멎었지만 여전히 운무가 짙어 조망은 제로다. 낙엽이 깔린 황량한 능선을 꾸벅꾸벅 오른다. 1시 22분, T자 능선에 올라, 산악회가 깔아 놓은 표지판 방향(왼쪽)의 눈 덮인 능선 길로 진행한다.
낙엽 쌓인 황량한 능선 길
T자 능선에 놓인 산악회 표지판
눈 덮인 능선 길
1시 36분, 이정표가 있는 시어나무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는 회문산까지 남은 거리가 700m라고 알려준다. 1시 48분, 장군봉 갈림길에 이른다. 직진하면 장군봉(투구봉-771m) 가는 길이고, 회문산은 왼쪽이다. 왼쪽으로 들어서서, 이제 400m남은 정상을 향해, 하얗게 눈이 덮인 산길을 걷는다. 북쪽사면이라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어나무 갈림길 이정표
장군봉 갈림길 이정표
회문산 오르는 길, 북쪽 사면이라 눈이 제법 남아 있다
2시 정각, 이정표, 정상석 등이 있는 회문산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조망이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운무에 가려 가까운 능선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정상석
큰 지붕
이정표
깃대봉 능선과 휴양림계곡
작은 지붕, 시루봉, 돌곳봉으로 이어지는 남쪽방향의 조망
정상을 내려서서 무덤을 지나고, 2시 8분, 천근월굴(天根月窟)에 이른다. 암벽에 멋지게 음각한 서체가 아름답다. 1900년 대 초반 명필 김석곤의 글씨라고 한다. ‘천근’은 양(陽), ‘월굴’은 음(陰)으로, 음양의 변화와 조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천근월궁 안내판
바위에 음각된 天根月窟
천근월궁을 지나, 2시 14분, 작은 지붕 이정표가 있는 헬기장에 내려서서, 뒤돌아, 회문산을 우러르고, 서쪽의 장군봉을 바라본다. 이어 헬기장 아래, 두 그루의 소나무가 우뚝 서있는 곳으로 내려서서, 여근목(女根木)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는다. 두 소나무 중 그 밑동이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것같이 생긴 것을 여근목이라고 하는데, 모악산을 어머니 산, 회문산을 아버지 산으로 모시는 증산교에서는 천근월궁과 더불어 여근목을 회문산에 음기를 더해주는 영험한 나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6·25 때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 소탕을 위해 국군이 퍼부은 맹렬한 폭격과 방화전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있다고 한다.
헬기장
작은 지붕 이정표
헬기장에서 뒤돌아본 회문산
장군봉 방향의 조망
여근목 안내판
여근목
빨치산 소탕전 황염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나무
이어 여러 기의 묘들을 지난다. 회문산은 우리나라 5대 명당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회문산에는 묘들이 많다. 하산길이 남향이라 얼었던 등산로가 녹아 진탕길이 되어버려, 자칫 미끄러져 엉덩방아라도 찧게 되면 큰일이겠다 싶어 조심조심 내려선다.
묘들을 지나고
뒤돌아 본 진탕길
2시 28분, 이정표가 있는 시멘트도로로 내려선다. 시루봉은 오른쪽에 보이는 헬기장을 지나 눈 덮인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나는 빨치산사령부 터와 빨치산들이 웅거했던 계곡 쪽을 둘러보고 싶어, 혼자서 계속 시멘트도로를 따라 내린다. 2시 31분, 도로 변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고, 야영장 가는 숲길로 들어선다. 숲길은 계곡으로 부드럽게 내려서고, 나뭇가지 곳곳에 걸린 붉은 표지기가 길을 안내 한다.
시멘트도로 옆 이정표
시멘트도로 우측의 헬기장과 시루봉 가는 길
야영장 갈림길 이정표
야영장 가는 길
산악회 코스와 내가 걸은 코스-붉은 선이 산악회 코스, 푸른 선이 내가 걸은 코스다, 출렁다리에서 산악회코스로 합류하여 주차장에 이른다.
계곡을 따라 야영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좌우 양쪽으로 넒은 산 사면이 부채꼴 형상을 하고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야영장이 가까워지자,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이런 정도라면 수 백 명이 숨어 지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시 47분, 야영장으로 내려와 잠시 주위를 둘러 본 후, 옛 빨치산사령부를 향해 넓은 도로를 따라 오른다. 오른쪽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산림문화체험관, 족구장 등을 지나, 3시 정각, 지금은 회문산 역사관으로 변한 옛 빨치산사령부에 도착한다.
야영장 1
야영장 2
야영장 3
야영장 4
옛 빨치산 사령부로 가는 길
옛 빨치산사령부 터에 지금은 회문산 역사관 건물이 들어서고, 그 안에 회문산과 관련된 사진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아주 소박한 역사관이다.
회문산 역사관 입구
회문산 역사관
호남의 명산 , 회문산
동학농민혁명과 회문산권
의병활동이란
역사관을 잠시 둘러보고 휴양림매표소로 내려서다, 6.25 양민희생자 위령탑에 이르러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기록에 의하면 회문산에 웅거했던 빨치산 수는 7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북한으로부터 보급이 끊긴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근 주민들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약탈하는 이른바 보급투쟁 밖에 없었으니, 빨치산 700여명을 먹여 살려야 했던 인근 양민들의 고초가 어떠했던지는 쉽게 짐작할 수가 있겠다.
6.25 양민 희생자위령탑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 1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 2
양민 희생자 위령탑을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북괴의 남침에 의한 6.25사변이 발발한지도 이미 반세기가 훨씬 지났다. 3대 세습정권을 이어오는 북괴의 일관되고 집요한 정책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다.
오랜 세월동안 간첩을 남파하고, 고시촌에 김일성 장학금을 뿌리는가 하면, 입법, 사법, 행정 3부는 물론, 교육, 언론, 종교 등 대한민국 요소요소에 그들의 세력을 침투시켜 암약하게 하여, 이제 그 세력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커져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촛불시위와 태극기시위가 열리고 있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진 양상이다. 해방직후의 혼란기와 흡사하다.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되면, 대한민국에 제2의 빨치산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수도 있다.
숲 체험교실, 숲속 도서관, 숲속의 집 입구를 지나, 3시 20분, 노령문(蘆嶺門)에 이른다. 노령문은 휴양림 개설 당시 본래 회문산 입구인 큰 문턱바위와 휴양림 도로 사이에 출렁다리를 놓고, 그 입구에 출입문을 축조한 후, 회문산이 노령산맥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노령문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 출렁다리를 건너, 이정표가 있는 큰 문턱바위에 이르고, 산악회가 깔아 놓은 종이표지판의 지시방향으로 하산을 계속한다.
숲 체험교실, 숲속 도서관 입구
숲속의 집 A
노령문
출렁다리
출렁다리에서 본 구룡폭포
큰 문턱바위 이정표
산악회 종이표지판
3시 29분, 도로로 나와 회문산 자연휴양림 돌 표지, 돌비 이정표, 휴양림 안내판 등을 카메라에 담고, 3시 32분,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돌 표지
돌비 이정표
휴양림 안내판
매표소
하산을 완료하니 얄굿게도 하늘이 파랗다.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자, 3시 50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17.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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