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사라오름
얼어붙은 사라오름 전망대 대피소
한라산은 언제 올라도 좋지만 한겨울 맑은 날에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르면서 보는 설경은 그 어느 산의 설경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오랜만에 이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즐겨볼 생각으로 『성판악-백록담-관음사』 코스의 한라산 등반계획을 검토한다.
한라산 설경
한라산 정상 등산안내
한라산 설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날씨다. 기상청의 중기(10일)예보를 참조한다. 1월 8일 제주도에 눈이 내리고, 1월 9일은 날씨는 맑겠으나 한라산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 것이라는 예보가 다소 걸리기는 하지만, 눈 온 다음날의 한라산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1월 9일을 산행일로 잡는다.
설화
설경
제주도에는 1년이면 6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인천에서 매일 출항하는 배편이 있고, 제주도를 오가는 항공편이 하루 80여 편이 넘다보니, 이용객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크고, 여행사나 산악회가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사나 산악회의 출발에는 최소 인원 규정이 있어, 원하는 때의 출발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한라산 등반이 목적임으로 당일로 한라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웹투어(www.web tour.com)에 들어가서 아래와 같이 왕복 항공편을 예약한다.
- 김포-제주 : 제주항공(7C103) 1월 9일, 06:55 출발 08:00 도착, 요금 57,100원(37.5% 할인가)
- 제주-김포 : 제주항공(7C130) 1월 9일 , 21;15 출발 22;20 도착, 요금 65,100원(19.2% 할인가)
비행기 출발이 6시 55분이니, 늦어도 6시 35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논현동 집에서 김포공항까지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에는 6시45분경에나 도착할 것 같아,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5시 30분에 출발하는 김포공항 행 첫차를 이용하기로 한다.
출발일자가 다가오고, 매일매일 제주도의 일기예보를 점검한다. 떠나기 전날 의 일기예보는 1월 9일, 한라산에 눈이 내리고, 오후에는 강풍을 동반한 40Cm 이상의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다. 걱정이 되어 한라산 국립공원 홈 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해 보니, 다행히 ‘등반가능’ 이라고 한다.
2014년 1월 9일(목)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택시로 공항터미널로 향하고, 15분 후,공항터미널에 도착하여(요금 3,500원), 발권기에서 카드로 표를 산다(7,000원). 5시 30분, 터미널을 출발한 리무진버스는 텅 빈 도로를 달려, 6시 10분경에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앞에 내려준다.
여러 항공사들의 체크인 카운터가 몰려 있는 2층은, 이른 아침인데도 제주도로 가는 승객들로 붐빈다. 내 짐은 달랑 배낭 하나지만, 등산용 스틱은 기내 반입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정상주겸 어한주(禦寒酒)로 “코스모포리탄 주”(백세주와 보드카의 2:1 혼합주) 600cc를 200cc 플라스틱 소주병 3개에 나누어 배낭에 넣은 터라, 체크 인 할 때 배낭을 짐으로 부친다.
하지만 체크인을 한 후에 보니, 많은 사람들이 스틱이 꽂힌 배낭을 지고 들어온다. 규정이 바뀌어 기내에 등산용 스틱 반입이 허용된 것을 몰랐던 것이다. 비행기 도착 후, 찾을 짐이 있느냐의 여부는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판악으로 가는 버스의 출발시간을 고려할 때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성판악 가는 버스는 8시 14분, 8시 26분, 8시 38분, 그리고 8시 50분 등 12분 간격으로 배차가 잦은 편이다. 비행기가 8시에 공항에 도착하고, 짐이 없어, 바로 공항청사를 나와 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8시 26분 발 버스를 탈 수가 있고, 9시경이면 성판악에 도착한다.
버스노선
동절기에 성판악을 출발하여 백록담에 오르려면 12시 이전에 진달래 밭 대피소를 통과하여야 한다. 성판악에서 진달래 밭 대피소까지는 7.2Km에, 통상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성판악에서의 출발시간이 9시를 넘기게 되면 초장부터 서둘러야하기 때문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공항에서 성판악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시간적인 여유는 있겠으나, 30,000~50,000원 정도라고 하는 택시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시간이 8시 5분경이다. 이어 버스로 옮겨 타, 공항청사로 이동하고, 짐을 찾아, 택시 타는 곳에 도착한 시각이 8시 20분경이다. 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기사 양반은 어제는 비가 왔었는데 오늘은 눈이 내리니, 등산하기는 좋겠다고 덕담을 한다. 8시 30분 경, 터미널에 도착하여(요금 4,300원), 매표소에서 8시 38분 발 버스표를 끊는다.(요금 1,500원)
버스는 정확히 8시 38분에 출발을 한다. 이 버스는 제주를 출발하여, 5.16도로를 타고 서귀포에 도착하고, 서귀포에서 중문고속화 노선을 거쳐 제주로 돌아온다. 터미널을 출발하여 한동안 제주 시내를 통과하다 보니 경유하는 정류장이 많은 편이라 제주에서 성판악까지의 소요시간은 35분이라고 한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정류장을 경유할 때 마다 승객들이 버스에 오른다. 배낭을 멘 승객들이 점차 늘어나고,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라산 국립공원에서는, 폭설로 오늘 아침 7시에, 백록담 등산로를 폐쇄하고, 성판악에서 진달래 밭까지만 등반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버스는 눈이 쌓인 5.16도로를 서행하여, 9시 20분 경 성판악에 도착한다. 예정시간보다 약 7분 쯤 늦게 도착했지만, 백록담 등반이 금지된 상황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거세고 날씨가 추워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성판악 넓은 주차장에는 대형관광버스와 승용차, 그리고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성판악 1
성판악 2
눈보라 속을 달려 탐방안내소로 뛰어 들어, 잠시 숨을 돌린 후, 산행준비를 하고, 9시 30분,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운무가 자욱한 숲길,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 주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바람에 흩날린 눈가루가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려, 길 없는 설원을 걷는 느낌이다. 다행이 나뭇가지에 높게 걸린 붉은 표지리본과 등산로 좌우에 쳐 놓은 로프 가드레일, 그리고 줄곧 따라 오는 모노레일 선로가 길을 안내한다.
성판악 탐방안내소
산행시작
붉은 표지리본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로프 가드레일
모노레일
평탄한 길을 천천히 걷는다. 나뭇가지 위로 거센 바람이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지르고, 눈가루가 흩날린다. 아무 생각 없이 눈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몸을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춥지가 않아 다행이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젊은이들이 바짝 따라 붙는다. 반갑게 길을 비켜주고, 앞질러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반갑게 만난 등산객들
울창한 전나무 숲을 지나다 마주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나처럼 혼자서 걷는 양반이다.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하여 진달래 밭 까지 올랐다 하산을 하는 모양이다. 운무 속의 희미한 실루엣이 무척 외롭다. 10시 48분, 속밭 대피소를 지난다. 성판악에서 4.1Km 떨어진 지점이다. 눈을 맞으며 미끄러운 길을 걸었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지 않다.
울창한 전나무 숲길을 걷고
속밭 대피소
한라산 탐방로 안내
속밭 대피소를 지나자 등산로는 오르막으로 변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팔라지며 눈길이 미끄럽다.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하여, 무릎에 주는 부담을 피하려고,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채 오르막길을 오른다. 11시 20분, 자연이 만든 멋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난다, 눈을 피해, 그 나무 밑에 모여 앉아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르막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모노레일
자연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눈을 피해 나무 아래 모여 앉은 등산객들
함박눈은 계속 내리고, 마주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점차 늘어난다. 11시 26분, 사라 오름 전망대 갈림길에 이른다. 왕복 40여분이 걸린다는 사라 오름은 하산할 때 들르기로 하고 직진하여 진달래 밭 대피소를 향해 가파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마주 내려오는 등산객들
사라오름 전망대 갈림길
가팔라지는 눈밭
12시 5분 경 진달래 밭 대피소에 이른다. 강한 바람을 타고 눈발이 어지럽게 휘날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서둘러 대피소 안으로 들어선다. 더운 기운이 몰려들어 앞이 보이질 않는다. 안경을 벗고 보니, 대피소 안은 등산객들로 가득 차, 발 딛을 틈도 없고, 시끄럽기가 짝이 없다.
진달래 밭 대피소
겨우 비집고 들어서서, 컵 라면을 사들고(1,500원) 벽에 기대 선 채, 안경을 벗어 들고, 우선 어한주 두어 모금을 들이 킨 후,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신다. 대피소 안의 분위기는 개떡이지만, 눈보라와 강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먹는 라면의 맛이 가히 별미다. 가져온 떡과 컵라면으로 식사 후에도 어한주를 홀짝거리며, 한동안 대피소 안에 머문 다음, 아이젠을 착용하고,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본다. 해발 1,500m인 이곳에 쌓인 눈이 엄청난 것을 보고, 백록담 등정 길을 막아 놓은 조치에 공감을 한다.
진달래 밭 대피소의 차단막과 통행금지 안내판
눈 속에 묻힌 안내판
설경 1
설경 2
설경 3
12시 40분경, 눈보라를 헤치며 하산을 한다. 숲으로 들어서자, 바람을 막아 주어, 다시 아늑한 느낌을 되찾고, 주위 설경을 즐기며 눈밭을 걸어 내린다. 1시 12분, 사라오름 입구에 도착하여, 오른쪽의 긴 나무 계단 길을 오르며 사라오름으로 향한다. 다시 고도가 높아지며 바람이 거세진다
하산 길
사라오름 오르는 길
1시 20분, 사라 오름에 도착한다. 넓은 호수는 얼어붙어, 그 위로 눈이 쌓여, 설원으로 변해 있고, 안내판이 반 쯤 눈 속에 묻혀 있다. 호반으로 이어지는 데크 길을 따라 건너편 둔덕에 있는 전망대로 향한다.
사라오름
눈 속에 반쯤 묻힌 안내판
호수 건너 편 설경
호수 얼음을 두드려 보는 등산객
1시 30분, 바람이 거센 전망대에 오르지만, 운무 속에 보이는 것은 회색 공간과 흰 눈 뿐이다. 눈에 덮인 안내판의 눈을 쓸어내리니, 이곳에서 백록담 정상이 보인다는 안내문이 나타난다. 전망대 옆에 있는 대피소는 눈과 바람에 얼어붙은 모양인데, 이런 속에서도 전망대 위에서 인증 샷을 찍는 등산객들이 눈길을 끈다.
전망대 안내판
전망대 위의 인증 샷
바람에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전망대를 내려선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북서풍이 무섭다. 안경을 썼는데도 눈을 뜨기가 어렵고, 양 볼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따갑다. 서둘러 호반으로 내려서서, 겨우 안정을 찾는다. 무서운 바람이다.
이윽고 사라오름 입구에 이르고, 눈 쌓인 등산로를 따라 하산을 계속하여, 2시경에 속밭 대피소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타셔 마시며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3시 30분 경, 성판악 등산로 입구에 내려서자, 이곳에도 기상악화로 등산을 할 수 없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눈은 언제 그쳤는지 모르는 사이에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하다.
눈과 나무 1
눈과 나무 2
하산 완료
도로로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10여분 쯤 지나 버스가 도착하고, 서울에서 사용하던 교통카드를 찍고, 승차한다. 이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인근 식당의 따듯한 불 옆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 후, 시내버스로 공항에 도착, 일찌감치 체크인을 한 후, 9시 경 비행기에 오른다.
5.16도로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내가 처음 한라산 오른 것은 1958년 여름방학 때이니 어언 55년 전의 일이다. 중문에서 500장군을 지나, 백록담에 오른 후, 서귀포로 하산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 때는 한라산 등반만을 하는데도 1주일이 소요됐었는데, 지금은 서울에서 당일치기 등반이 가능해졌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하지만 산업화 이후 지나친 민주화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것이 큰 문제다. 하루 빨리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한다.
(201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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