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 정상의 비목
2013년 12월 22일(일)
‘좋은 사람들 산악회’를 따라 비무장지대에 있는 백암산(백암산, 1,175m)을 간다. 화천군 산악회에서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 산행이 가능해져서, 서울의 2개 산악회와 대전과 광주에 있는 산악회가 참여하여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기 어려운 백암산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백암산은 한북정맥에 속하는 산이다. 현재 산행이 가능한 한북정맥의 최북단은 수피령이지만, 지난달의 대성산 산행, 그리고 이번에 백암산을 다녀오게 되어, 한북정맥의 북단한계를 보다 더 연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백암산은 우리가곡 “비목”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 때문에 이 산을 오르는 데에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한북정맥과 백암산, 대성산의 위치
백암산 코스(펌)
1964년 한명희(韓明熙) 소위(26)는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중,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이끼가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발견한다.
6.25 때 숨진 어느 무명용사의 무덤... 옆에는 녹슨 철모가 뒹굴고 있고, 무덤 머리에 있는 십자가 비목(碑木)은 썩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데, 하얀 목련 한 그루가 황혼 속의 이 애잔한 돌무덤을 지키고 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이의 이름 없는 무덤... 한 소위는 깊은 애상에 잠긴다.
4년 후, 동양방송(TBC)에서 일하던 한명희 PD에게 작곡가 장일남(張一男) 교수가 우리 가곡에 쓸 노랫말 하나를 지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 부탁을 받는 순간, 한 PD의 뇌리 속에는, 4년 전에 보았던 무명용사의 돌무덤과 비목이 떠올라,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을 작사하게 된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樵童)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함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9시경, 화천군청 너른 마당에 산악회버스 4대가 집결하고, 화천군청 산악회 멤버들이 차에 오르자. 일행은 군부대를 향해 출발한다. 이어 부대가 가까워지자, 군 찦차 한 대가 앞장을 서서 길을 인도하여, 10시경, 57631부대 앞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산행준비를 하며 군부대 담당자로부터 산행 시 지켜야 할 주의말씀을 듣고 단체기념사진을 찍는다.
단체기념사진
오늘 산행은 『부대 앞-OP 막사 앞-백암산 정상-부대 앞』의 회귀코스로 거리는 약 12.1Km이고. 이곳의 고도가 632m, 백암산 정상이 1,172m이니, 500m이상의 고도차를 극복하는 산행이라고 한다. 화천군청 산악회 인솔자는 하산 후 칠성산 전망대를 탐방할 계획이니, 3시 30분까지 모두 하산하여, 이곳에 다시 모이라고 당부한다.
10시 10분 경, 안내하는 사병의 뒤를 따라 눈 덮인 군사도로를 걸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들이 걸은 수 있는 곳은 군사도로와 제한된 등산로뿐이다. 정해진 루트 이외는 지뢰의 위험이 있다고 엄격하게 통제한다.
긴 행렬 1
긴 행렬 2
맑은 날씨에 바람도 없어 생각보다 춥지는 않다. 얼마 진행하지 않아 두터운 재킷을 벗으려고, 대열에서 벗어나는 대원들이 늘어난다. 눈 덮인 군사도로, 아마도 군 차량들은, 제설을 하지 않은,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설경이 아름답다.
눈꽃
군사도로 주변 설경
눈 덮인 군사도로를 따라 아무생각 없이 뚜벅뚜벅 걷는다. 이미 한 시간이 넘게 걸었는데도 주위의 설경을 즐기며 걷다보니 지루한 줄 모르겠다. 그동안에 고도가 꽤 높아진 모양이다. 백암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보인다. 양지바른 곳의 나무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고, 주능선에도 잔설정도가 남아 있는 모습이 여전히 눈길인 군사도로와 대조를 이룬다.
앙상한 나뭇가지 뒤로 보이는 주능선
당겨 찍은 주능선
군사도로
11시 56분, OP막사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흰바우길 안내판, 백암OP 1.55Km를 알리는 이정표 등을 카메라에 담고, 백암산 전투 안내판을 잠시 들여다 본 후, 정상으로 향한다. 한동안 오르자 눈 쌓인 거친 계곡길이 끝나고, 등산로는 가파른 사면을 지그재그로 힘겹게 따라 오른다.
흰바우길
이정표
백암산 전투 안내판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곡길
12시 53분, 백암OP 0.6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주능선에 오른다. 900m를 오르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험한 곳이다. 정면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북녘 땅을 한동안 망연히 바라 본 후, 왼쪽 백암산 정상으로 향한다.
주능선의 이정표
북녘 땅
작은 둔덕을 넘는다. 정면에 저 아래 OP막사가 있는 곳에서 물자를 실어 올리는 도루래 시설이 보인다. 지금은 이용을 하고 있지 않은 지, 방치된 상태로, 백암산을 찾는 탐방객들이 인증사진을 찍는 포토 존 노릇을 하고 있다. 사병들이 험한 길로 물자를 져 나를 리가 없을 터이니, 아마도 지금은 헬기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도르래 시설
도르래 시설을 지나 오른쪽으로 굽어 도니, 정면에 백암산 정상이 모습을 보인다. 1시 7분, 정상에 이르러, 정상석, 비목 등을 카메라에 담고, 조금 위에 있는 헬기장으로 오른다. 사방이 탁 트인 너른 헬기장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안내하는 사병이, 운무에 가려 보이는지는 않지만, 군사분계선 넘어 북쪽의 집단농장이 있는 곳, 동쪽으로 임남 땜과 평화의 땜이 있는 곳을 알려 준다.
백암산 정상 .
정상석
헬기장
적근산 방향
서북쪽 조망
정상석 뒷면에 새겨진 비목의 노랫말을 바라보니 애절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젊음을 바쳐 사수한 조국, “몰아치는 삭풍에 백설로 위장하고, 살을 에는 한파도 모르는 채” 최전방 관측초소를 지키는 장병들 덕에, 단군 이래, 최고로 부강한 나라가 된 조국....
비목
하지만 애국가를 부정하고, 태극기를 외면하면서, 6.25 남침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 그리고 이들에게 거액의 정당보조금을 지불해오는 작금의 정부, 그런가 하면 “천안암 폭침”을 “천안함 침몰”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대통령후보를 내 세운 것도 모자라, 선거결과에 승복치 않고, 사회혼란을 조장하는가 하면, 국가 전복을 획책하는 친북 좌파 국회의원들이 큰소리를 치는 세상....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됐나? 산화한 수많은 젊은 넑들, 그리고 한파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눈앞의 젊은 장병들...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이다. 1시 22분, 착잡한 심정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하면서 본 저 아래 OP 막사가 있는 곳
눈 덮인 가파른 내리막을 구르듯 달려 내린다. 하산을 대비하여 아이젠을 착용했으나, 눈이 깊은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소용이 없다. 두 어 차례 엉덩방아를 찧고, 2시 2분, OP 막사가 있는 곳을 지나, 군사도로로 진입한다. 군사도로를 따라 내리며, 어한 주를 홀짝 거리고, 행동 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하산 길에 본 백암산 주능선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겨울나무들
3시 15분,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이윽고 모든 대원들이 하산하자, 버스는 칠성전망대로 이동하여, 전망대를 견학하고, 15분 정도 브리핑을 받은 후, 전시장과 매점을 둘러본다. 매점의 물건 값이 많이 싸다. 현금은 받지 않고, 신용카드로 구매가 가능하다.
칠성전망대로 오르다 본 백암산
칠성전망대 돌 표지
425고지 전적비
425고지 전투 현황도
전망대
브리핑
칠성전망대 위치
연혁
아군 259GP, 금성천, 그리고 능동, 죽동 집단농장
황혼
칠성전망대 참관 후, 화천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귀경한다. 백암산에 케이블카 설치공사가 곧 착공될 것이라고 한다. 백암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비목의 노랫말을 되새기고, 칠성 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굽어보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201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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