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m봉에서 본 오음산
"블로켄" 현상을 본 것이 행운은 행운인 모양이다. 오늘 여러 사람들에게서 "블로켄" 현상을 찍은 사진을 잘 보았다는 인사를 받는다. 한편으로는 쑥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산행을 한 후, 그 기록을 정리한 산행후기처럼 재미없는 글도 없다. 이처럼 재미가 없는 글이기 때문에, 고작 같이 산행을 한 분들이나, 앞으로 그 산을 가고자하는 분들 중의 극소수만이 관심을 가진다. 그러면, 이처럼 재미없는 후기를 왜 쓰는 걸까? 빠뜨리지 않고 산행후기를 정리하는 분들 중에는 산행후기를 써야하는 부담 때문에 산에 가기가 싫어진다고 고백하는 분들도 있다.
교과서에서는 산행을 하려면, 우선 산행계획을 세우라고 한다. 가이드 하는 산악회가 있는데, 특별히 산행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무조건 따라만 하는 산행보다는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하는 산행이 보다 더 즐겁고 보람이 있다. 교과서는 또 산행을 하고 나서는 산행과정을 돌이켜보고, 다음 산행을 위해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권한다.
산행하는 많은 분들은 산행 후에 산행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자기기록으로 보관할 뿐, 외부에 알리기를 꺼린다. 아마도 이것이 옳은 방법이겠다. 그렇다면 발표되는 수많은 산행후기는 무어란 말인가? 자기 과시욕인가 ? 그런 면도 있겠다. 산행정보를 공유하자는 의도인가? 그렇다. 산행후기가 공개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산행정보의 공유라 하겠다.
칸트의 정해진 시간의 정확한 산책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는 예로 자주 거론된 이야기이지만, 고등학교 쯤 되면 칸트의 산책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자기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칸트쯤 되는 사람도 하루의 일과표 속에 자기를 가두어 두어야 했나? 라고 자기관리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예로 삼게 된다.
산행후기를 발표하는 것도 "산행후기를 써야하는 부담 때문에 산에 가기가 싫어진다." 라고 할 정도로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산행기록이 남겨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과시인지? 정보 공유인지? 혹은 자기관리의 수단인지? 확실한 이유도 모르는 채, 할 일없는 늙은이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또 기록을 남긴다. 각설하고, 산행후기를 쓰는 일이, 앞으로 내게도 올지 모르는 치매를 예방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2006년 2월 25일(토).
오늘은 7번째로 한강기맥을 타는 날이다. 오늘 코스는 『삼마치-660m봉-오음산(930m)-헬기장-네거리 안부-군 철조망-군사도로-소삼마치』까지 마루금을 타고 어둔리로 하산한다. 총거리 약 8.3Km로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산악회에서는 5시간에서 5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버스가 경유지를 모두 거치자, 빈 좌석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7순이 가까운 송 선배님도 여전하시고, 김영길 대원도 결간하는 일이 없이 부지런하다. 오늘은 모처럼 대학동기이고, 진짜로 산을 좋아하는 심산(深山)대원이 후배와 함께 참여한다. 가까운 사람들 수가 점점 늘어나고, 꾸준히 참여하는 송암 산악회 산꾼들과도 낯이 많이 익어, 이제는 가볍게 인사를 하며 지나치게 되니, 산행이 더욱 즐거워지는 느낌이다.
버스는 6번 국도를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남한강, 그리고 안개 속에서 붉은 빛을 뿌리며, 허공에 걸려 있는 태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버스는 6번 국도를 버리고 44번 국도로 접어들어, 다대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후, 464번 지방도로를 거쳐, 8번 국도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윽고 삼마치(三馬峙)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의 남한강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10) 삼마치 도착, 준비운동-(9:15) 산행시작-(9:20) 능선-(9;25) 첫 능선 분기점-(9;38) 570m봉-(9:44) 이정표-(9:50) 660m봉-(10:05) 오음산 직전 안부-(10:09) 첫 로프지점-(10:16) 이정표-(10:20) 주능선 분기, 이정표-(10:29) 고목 전망대-(10:46~10:54) 오음산 정상-(11:00) 배넘이재-(11:05) 헬기장-(11;07) 군부대 철책-(11:21) 철책 남측-(11:32) 군사도로-(11:55~12:20) 도로변 중식-(12:23) 왼쪽 산으로 진입-(12:32) 672m봉-(13:30) 소삼마치-(13:49) 시멘트 길-(14:00) 버스』, 마루금 3시간 50분, 중식 25분, 날머리 30분, 총 4시간 45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9시 10분 버스는 옛 병마 주둔지였다는 삼마치 고개에 도착한다. 이제는 차량통행이 끊긴 삼마치 고개, 남쪽으로 멀리 눈 덮인 웅장한 산세가 우리들을 반긴다.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선두대장을 따라 약 5분간 준비 운동을 한 후, 산행리본이 걸려 있는 동쪽 급경사 절개지를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폐가가 된 옛 휴게소에서 남쪽으로 조금 쳐진 지점이다.
차량통행이 그친 삼마치 고개에서의 남쪽 조망
왼쪽 절개지를 오르는 대원들
몸이 풀리기 전에 급사면 절개지를 오르기는 누구나 힘이 드는 모양이다. 대원들이 1열 종대를 이루고, 천천히 절개지를 올라, 약 5분후 교통호가 이어지는 능선에 오른다. 등산로는 억새가 우거진 아름다운 송림으로 이어지더니, 이윽고 첫 번째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으로 굽어진다.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9시 38분, 570m봉에 오른다.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어지럽고, 오른쪽 헬기장에서 대원들이 재킷을 벗어 배낭에 챙기고 있다.
억새와 송림이 아름다운 능선길
570m봉 헬기장에서 동쪽으로 오음산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다. 가운데 통신 탑이 보이는 곳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육군 통신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이다. 오음산(五音山)- 장수 다섯 명이 나면 재앙이 온다는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산등에 구리를 녹여 붓고, 쇠창을 꽂는다. 그러자 쇠창을 꽂은 자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아오르고, 다섯 가지 울음소리가 사흘 밤낮을 이어지더니, 홀연히 백마 세 마리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오음산이고, 삼마치라는 전설이 있는 곳. 지금은 소리를 잡고, 소리를 보내는 통신부대가 정상을 점하고 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신기한 우연이다. (퍼온 글)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서 완만한 오름길을 오른다. 커다란 나무 등걸에 이정표가 박혀 있다 .단순히 "등산로"라는 표기만 되어 있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심플한 이정표의 손가락 방향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9시 50분 660m봉에 오른다. 왼쪽으로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돌들이 드믄드믄 박힌 오르막 암릉길로 변하더니, 다시 능선 분기봉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오음산이 가깝게 보인다.
하늘을 가리키는 이정표
가까이 보이는 오음산
등산로는 왼쪽으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북쪽으로 골짜기 너머 이름 모를 산이 아름답게 우뚝 솟아 있다. 10시 5분 오음산으로 오르는 능선 안부에 이른다. 길은 점차 가팔라지며, 경사면에 로프가 걸려 있고, 힘들게 오르는 대원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등산로는 이정표 앞에서 경사가 급한 오른쪽 사면으로 굽어진다. 눈과 얼음이 얼어붙은 급사면 길이 무척 미끄럽다. 네발로 엉기면서 조심조심 통과하여 능선 분기봉에 오른다. 이곳에서도 이정표의 손가락은 왼쪽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능선길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이름 모르는 산
눈과 얼음으로 위험한 사면길
왼쪽으로 오르막 암릉을 올라, 커다란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 너른 전망대 위에 선다. 절벽 쪽으로 푸른 소나무들이 청청하고, 그 곁에 비쭉 솟은 고사목이 더욱 앙상하다. 고사목 아래로 우리가 지나온 눈 덮인 능선이 누워 있고, 멀리 한강기맥 줄기가 웅장하다.
고사목 전망대에서 본 조망-왼쪽 걸어온 길, 오른쪽 기맥의 웅장한 능선
마지막 급경사 암릉길을 오른다. 10시 46분 커다란 바위에 흰 페인트로 오음산이라고 쓴 천연 정상석을 지나. 정상표지<정상 930m>, 삼각점<홍천22>과 안내판이 서 있는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김 회장님과 대원들이 조망을 즐기며 쉬고 있다.
오음산 천연 정상석
정상 표지목
김 회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주위를 조망한다. 정면으로 통신탑이 서 있는 군부대가 봉우리를 점하고 있고, 가파른 산 사면에 철책이 빙 둘러 둘러쳐져 있는 것이 경계가 삼엄해 보인다. 동북 방향으로 멀리 공작산(887.4m)과 너른 홍천 벌, 북쪽으로 고깔봉, 동쪽으로 만대산(634.1m)을 굽어본다.
군부대
공작산
홍천 방면
만대산
김 회장님이 대원들과 먼저 하산을 시작하고, 나는 최후미로 남아 주위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멀리 군부대 쪽으로 철책을 지나는 대원들이 보인다. 이윽고 신발 끈을 고쳐 맨 후, 급경사 비탈길을 달려, 11시에 배넘이재로 내려선다. 왼쪽에 홍천, 동면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안부를 지나, 민간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서 있는 군부대 쪽으로 접근하여 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에서 지나온 능선과 오음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부대 안에서 사병 한 명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배넘이재 이정표
오음산과 헬기장
지나온 능선과 한강기맥
철조망을 넘어 철책으로 접근한다. 철책을 따라 좁은 길이 이어진다. 11시 7분, 절책을 잡고, 미끄러운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오른쪽은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는 깎아지른 사면이다. 철책을 따라 좁은 길이 오르내린다. 갑자기 길이 끊기고, 길이 끊긴 곳에 가는 쇠파이프가 걸쳐져 있다. 양손으로 철책을 잡고 쇠파이프를 디디며 옆으로 이동한다. 발아래는 천야만야한 나락이다. 쇠파이프를 건너자 철책 옆길이 조금 넓어진다. 크레이머 지뢰, 조명지뢰 매설지라고 쓰인 붉고, 노란 삼각 팻말이 눈에 뜨인다.
철책 길
지뢰 표지
11시 21분, 철책 남단에 이른다. 정면에 목조 참호 너머로 눈 덮인 봉우리가 다가온다. 감투봉(638.6m)이라고 짐작한다. 이곳에서 철책은 왼쪽으로 굽어져 부대 정문 쪽으로 이어진다. 철책 길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철책 아래는 눈이 덮여 있거나 질척거리는 흙탕길이라 발 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양팔로 철책을 잡고, 매달린 자세로 옆으로 내려선다. 용문산 군부대 철책 길도 고약했지만, 이곳에 비하면 그곳은 양반에 속한다.
철책 남단에서 본 감투봉
부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철책 길
저 아래에서 김 회장님이 혼자 남아, 최후미로 철책을 통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다. 하지만 서둘 길이 아니다.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선다. 11시 32분 김 회장님이 기다리고 있는 도로로 내려선다. 무려 25분간을 철책 길에서 악전고투를 한 셈이다.
김 회장님과 함께 빠른 속도로 군사도로를 달린다. 왼쪽으로 나지막한 능선이 도로를 따라내려 온다, 중간 중간 도로로 떨어지는 곳도 있다. 한강기맥을 하는 산꾼들도 요즈음은 굳이 저 능선을 타지 않고, 대부분이 군사도로를 이용한다고 김 회장님이 귀띔을 해준다. 11시 55분 도로변 낙엽 위에서 대원 네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다. 김 회장님과 나도 이들과 합류하여 함께 도시락을 푼다. 날씨가 따듯하고, 바람도 없어, 굳이 재킷을 꺼내 입지 않는다.
군사도로 변에서의 식사
12시 20분 점심을 마치고, 일행은 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반대편에서 오음산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시도하지만, 나무들이 방해를 한다. 도로가 왼쪽으로 크게 굽어지는 곳에서 뒤로 시야가 트여, 겨우 오음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12시 23분 일행은 1-44번 쌍 전봇대가 서 있는 지점에 이른다. 왼쪽 산사면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보인다. 건너편 길가에서 한 무리의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반대쪽에서 본 오음산
군사도로를 버리고 다시 능선으로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 사면이 제법 가파르다. 점심을 먹을 후라 천천히 쉬엄쉬엄 오른다. 약 10분 후, 왼쪽으로 중앙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672m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도 한 무리의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중이다. 왼쪽 가파른 비탈길로 내려선다. 무척 미끄럽다. 낙엽 아래 얼음이 깔려 있어 맥 놓고 지나가다 미끄러지면 크게 다친다. 낮에는 영상 기온이라 녹고,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하는 요즈음 같은 봄철이 산행하기에는 가장 위험한 시기라 할 수 있겠다.
672m봉 마루턱
미끄러운 급경사 사면을 내려서자, 등산로는 다시 순해진다. 오른쪽으로 만대산(694.1m)이 아름답고, 뒤로는 지나온 672m봉이 날카롭다. 북쪽으로 시원하게 뚫린 중앙고속도로가 달린다. 등산로는 삼각점이 있다는 556m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오르내리더니, 이윽고 급경사 비탈길로 떨어져, 1시 30분 경, 소삼마치에 이른다.
능선길에서 본 중앙고속도로와 멀리 만대산
뒤돌아본 672m봉
소삼마치
소삼마치에는 제 1107 야전 공병단이 1974년 11월에 개통시켰다는 준공석이 세워져 있지만, 지금은 황폐한 폐도로 억새만 무성하다. 억새밭에서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한가하게 쉬고 있다. 이들을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어둔리로 향한다. 눈앞에 넓은 중앙고속도로가 하얗게 누워있다. 이 소삼마치길은 작년 7월말, 야생 복분자를 채취하러 다녀간 적이 있어 낮 설지가 않다. 한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가득 덮여 있던 이 길이 이제는 낙엽이 두텁게 깔리고, 딸기나무 넝쿨과 갈대만이 무성하다.
소삼마치 개통 기념석
억새 밭에서 휴식하는 대원들
소삼마치에서 본 중앙고속도로
복분자를 따던 소삼마치길
도로 오른쪽으로 산악회 산행리본이 보인다. 리본의 지시에 따라, 직진하면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두텁게 낙엽이 쌓인 급경사 산 사면을 타고 내린다. 낙엽 아래, 부드러운 흙이 발에 와 닿는 느낌이 이제까지와 많이 다르다. 빈 별장 마당을 가로 질러, 1시 49분경 철문 밖 시멘트 길로 내려선다. 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질주 하는 고속도로변에서 소잠마치 터널을 카메라에 담고, 고속도로 아래, 토끼굴을 지나, 2시경 어둔리 쪽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도착한다.
소삼마치 터널
송 선배님과 심산 대원 등은 일찌감치 하산하여, 이미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다. 배낭을 버스에 내려놓고, 얼큰하게 끓인 돼지고기 찌개에 밥을 말아, 소주를 반주로 새참을 먹는다. 땀을 흘리고 먹는 음식 맛은 언제고 맛이 있다. 커피까지 마시고 버스로 돌아온다. 2시 30분이 조금 넘어, 마지막 후미 팀이 도착하여, 식사를 마치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시 55분이다.
(2006.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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