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두리 마을 쪽에서 본 삼태산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총 272km에 이르는 구간을 박성태 씨는 지난 2002년 4월부터 8월까지 4달간에 걸쳐 종주하고 이를 '영춘지맥'이라 명명한다.

송암산악회에서 처음으로 이 영춘지맥을 23구간으로 나누어 당일코스로 가이드 한다는 안내를 보고, 관심은 있으나, 과연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어 망설이는데, 송 선배님이 의욕을 보이시고, 심산 대원도 함께 해 보자는 권유가 있어, 따라 나서보기로 뜻을 굳힌다.


하지만 첫 산행일인 2006년 2월 14일(화)에는 전국적으로, 때 아닌 겨울비가 내리는 바람에 세 사람이 모두 산행을 포기한다. 눈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험한 산길을 7시간 정도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산행일은 2월 28일(화)이다. 이 날도 역시 날씨가 흐려, 오후 늦게 눈이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기온이 낮은 편이라 비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에 산행에 참여한다. 오늘 산행코스는『조전리고개-해고개-삼태산-누에머리봉-무두리고개-어상천고개-참나무쟁이고개』로 도상거리가 약 15.5Km, 등로가 불분명한 곳이 많아, 선답자들이 애를 먹었다는 어려운 구간이다. 산악회에서 예상하는 산행시간은 6시간이다.


6시 50분 경, 선능역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니, 다른 때와는 달리,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고, 선객도 몇 분이 안 된다. 앞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뒷자리를 둘러 봐도 송 선배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지나 심산대원이 버스에 올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버스가 경유지를 모두 지나,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도, 오늘 참여자는 모두 17명에 불과하다. 날씨도 좋지 않고, 특히 월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참여한 분들의 면면은 모두 하나같이 쟁쟁한 산꾼들 모습이라, 산행 전부터 크게 위축이 되는 느낌이다.


7시 16분 경, 버스는 치악 휴게소에 도착하여, 대원들 아침 식사를 위해 20분간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리다 보니 송 선배님이 뒤에서 모습을 보이신다. 그러면 그렇지, 오신다고 하신 분이 않나올 리가 없지,,,무척이나 반갑다. 버스에서 내리니 벌써 눈발이 가늘게 날린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버스는 제천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시원하게 뚫린 38번 국도를 달려, 연당에서 상촌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내려서더니, 조전리고개(고도 약 350m)를 넘어, 9시 42분, 낡은 봉불사 안내판이 서있는 길가에 정차하여 대원들 내려놓는다.

조전리고개

봉불사 안내판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42) 들머리 도착-(9:43) 산행 시작-(9:55) 왼쪽 내리막길-(10:02) 임도-(10:05) 왼쪽 능선-(10:21) 485m봉-(10;40) 무덤 1기-(10:47) 전망 좋은 공지-(11:19) 해고개-(11:25) 이동 통신탑-(11:27) 밭둑길-(11:44) 온양 온씨묘-(12:41) 822m봉-(12;51) 안부-(13:23) 삼태산 정상-(13:39~14:00) 누에머리봉, 중식-(14:08) 855m봉 하산-(14:55) 임도-(15:07) 시멘트길 삼거리-(15:18) 무두리고개-(15:31) 무두리마을 입구-(15:38) 산불 감시초소-(16:26) 어상천 고갯길-(17:19) 469.5m봉-(17:31) 480m봉-(17:33) 창녕 조씨 묘-(17:56) 475m봉-(18:06) 참나무쟁이고개』마루금 8시간 3분, 중식 21분, 총 8시간 24분이 소요된 힘든 산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지만, 눈은 내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준비운동도 생략한 채, 서둘러 봉불사 입구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오른 쪽으로, 무덤이 있는 둔덕으로 이어진 너른 흙길을 따라 오른다. 무덤은 봉분을 보수하는 중인지 비닐로 덮여있다.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져,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들어선다.

오른쪽 둔덕을 걷는 대원들


완만하게 오름세로 이어지는 능선길 왼쪽으로 산행리본이 보이고, 대원들이 비탈진 사면을 따라 줄줄이 왼쪽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낙엽이 깔린 앙상한 참나무 숲으로 떨어지더니, 밭을 가로질러 건너편 눈 덮인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오른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안개 속에 희미하게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삼태산인가? 뒤 따르는 김 회장에게 물으니, 삼태산은 그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밭을 건너 임도로


눈 쌓인 임도를 3분여 따라 오르자, 다시 산행리본이 우리들을 왼쪽 숲길로 인도한다. 길은 점차 가팔라지며 드믄 드믄 바위들이 나타난다. 10시 16분 산행리본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서니, 오른쪽으로 465m봉이 우뚝 솟아있다. 재킷을 벗어 배낭에 챙기고, 물을 마신 후, 안부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옅은 안개 속에 사이곡리가 보인다.

임도에서 숲으로

485m봉

사이곡리


10시 21분, 465m 능선 분기봉에서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이 그치고 길이 평탄해 지면서,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처음으로 삼태산이 그 밋밋한 모습을 보인다. 평탄한 등산로가 이어지고, 왼쪽으로 임도가 따라온다. 잘 손질된 무덤을 지나, 전망이 좋은 공지에서 다시 삼태산을 조망한다.

모습을 보이는 삼태산


등산로는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봉우리를 넘어서자, 왼쪽으로 해고개가 보인다. 11시 19분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산행을 시작해서 1시간 36분 만에 해고개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늦은 진행은 아니다. 해고개 도로를 카메라에 담고,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오른다.

굽어본 해고개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오른다.


11시 25분, 이동 통신탑을 지나고, 숲을 벗어난다. 눈앞에 너른 밭이 펼쳐지고, 그 뒤로 거대한 왕릉같은 부드러운 산이 둥글게 웅크리고 있다. 줄을 지어 밭둑길을 걷는 대원들이 작게 보인다. 밭둑길을 따라 걸으며 왼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고개를 내려다본다. 밭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들어선다.

너른 밭을 걷는 대원들, 뒤로 보이는 산이 부드럽다.

뒤돌아 본 해고개


11시44분 온양 방씨묘를 지난 이후, 눈 덮인 가파른 등산로가 무척 미끄럽다.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는 대원들이 늘어간다. 등산로는 다소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급경사로 이어진다. 미끄러운 길을 힘들게 천천히 올라, 12시 41분, 822m봉을 지나고, 오른쪽 급경사 내리막을 달려 내려, 10여분 후 억새가 무성한 안부에 도착한다. 정면으로 옅은 안개 속에 삼태산이 우뚝하다.

온양 방씨묘

822m봉

안부의 억새와 삼태산


가파른 능선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언제부터인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눈으로 급경사 등산로는 완전히 빙판길이다.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기어오르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배낭을 벗어, 아이젠을 꺼내 착용한 후 여전히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허위허위 오른다. 1시 23분 삼태산 정상에 선다.


정상에는 삼각점 <영월 24, 1995 제설>이 박혀 있고, 대구의 "산이 좋아 모임"에서 고사목 등걸에 매어놓은 "삼태산 876m"라는 비닐표지가 눈에 뜨인다. 건너편에 서 있는 이정표는 누에 머리봉까지의 거리가 300m라고 알려준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점차 심해지는 눈발을 헤치며, 누에 머리봉으로 향한다.

삼태산 정상표지

삼태산 정상의 이정표


돌들이 삐죽삐죽 솟은 칼날 능선길이 이어진다. 1시28분 하얀 로프가 둘러 쳐진 수직굴을 지나고, 작은 오르내림을 거쳐, 누에 머리봉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을 걷는다. 오른쪽으로 누런 낙엽이 쌓인 사면에 키 작은 침엽수들이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그림 같다.

눈을 이고 있는 꼬마 침엽수들


1시 39분 누에 머리봉에 이른다. 누에 머리봉에는 검은 오석으로 만든 큼직한 삼태삼 정상석 <해발 876M>이 서 있고, 그 옆에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누에 머리봉 정상석 <해발 864.2M>이 나란히 놓여있다.

누에 머리봉의 이정표

누에 머리봉의 정상석들


원형 탁자에 빙 둘러 의자가 붙은 아담한 목조 구조물에 눈이 내려 녹아, 갈색나무가 젖어 번들거린다. 탁자 주위에서 심산대원이 오늘 산행에 유일하게 참여한 여자대원과 함께 쉬고 있다. 아직 점심식사를 하지 않은 나는 이곳에서 도시락을 풀고, 삼태산 아래 억새밭에서 식사를 했다는 이들은 하산을 시작한다.

누에 머리봉의 원형탁자

 

눈을 맞으며 서둘러 식사를 한다. 김 회장이 대원 한 사람과 함께 모습을 보인다. 김 회장도 아래에서 이미 식사를 했다며, 주위를 둘러 본 후, 함께 온 대원과 하산을 시작한다. 최후미로 혼자 산 정상에 남은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챙긴 후, 온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칼날 능선을 따라 삼태산 쪽으로 서둘러 걷는다. 왼쪽 아래에서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산 지점을 지나쳤으니 되돌아오라는 김 회장의 목소리이다. 누에 머리봉에서 김 회장으로부터, 하산 지점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들었지만, 왼쪽으로 이어지는 사면이 워낙 급경사라, 길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지나친 것이다.


되돌아 오른쪽 사면을 주의 깊게 살피며 걷는다. 오른쪽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보이고, 낙엽 쌓인 급사면에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눈에 뜨인다. 누에 머리봉에서 100m도 안 되는 지점이다. 세상에, 이런 곳에 길이 있다니? 낙엽이 깊게 쌓인 급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저 아래에서 김 회장이 조심해 내려오라고 이르더니, 휘적휘적 앞서 나간다.

미끄러지며 내려온 855m봉 급경사 하산길


네 차례나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찌며, 급경사를 내려서서, 완만하게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급히 달려, 앞선 일행을 쫓는다. 안개가 자욱한 울창한낙엽송 숲이 아름답다. 2시 55분 눈 덮인 임도로 내려서자, 김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덩쿨길을 벗어나니, 눈앞에 너른 밭이 펼쳐지고, 시멘트 길이 이어진다.

안개 자욱한낙엽송 숲

임도로 내려서는 계단

너른 밭 - 밭둑길을 걸어 시멘트 도로에 이른다.


3시 7분 시멘트 길 삼거리에 이른다. 대원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 대원은 이곳에서 참나무쟁이 고개로 탈출하겠다고 한다. 김 회장이 탈출로를 자세히 일러준 후, 우리는 대원과 헤어져, 정면의 나지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계속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는 언덕을 넘어, 내리막으로 향한다. 건너편에 초록색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서니, 무두리 마을이 눈 아래 펼쳐진다.

시멘트 도로 갈림길

다시 능선으로

멀리 보이는 산불감시초소

무두리 마을


3시 31분,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걸어 내리다,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굽어, 산불 감시초소로 향한다. 마루금은 산불 감시초소에서 왼쪽으로 굽어져, 잘 손질된 묘지를 지나,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곳곳에 영춘지맥을 알리는 산행리본이 걸려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등산로가 남쪽으로 진행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4시 26분 깨끗한 포장도로가 통과하는 어상천고개에 이른다.

무두리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

영춘지맥 표지리본

어상천고개


김 회장이 산행을 계속하겠냐고 묻는다. 이미 예정된 산행시간 6시간을 30분 가량 초과했지만, 앞으로 한 시간 정도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산행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그래서 고생길이 시작된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탈출을 했어야 했다.


도로를 건너 이동 통신탑을 지나, 산행을 계속한다. 김 회장이 앞서고, 그 뒤를 열심히 따른다. 눈 쌓인 가파른 길이 어어 지자, 벗어 놓았던 아이젠을 다시 신는다. 5시 19분 469.5m봉이라고 짐작되는 봉우리에 서지만, 삼각점도 확인 못하고 급히 김 회장을 뒤따른다. 다시 급경사 사면을 미끄러지며 힘겹게 올라, 5시 31분 경 480m봉을 지나고, 안부를 거쳐, 5시 33분 창녕 조씨 묘를 지나 마지막 봉우리로 향한다.

469.5m봉

창녕 조씨묘


급경사 오름길을 천천히 오른다. 이제는 몸이 많이 지쳤나보다.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김 회장은 훨씬 앞서서 보이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벗어 놓고, 약 5분 간 휴식을 취하면서 다리 근육을 풀어준다. 다시 배낭을 지고, 산행을 계속한다. 기다리다가 걱정이 되어 되돌아오는 김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미안하다. 5시 56분 경, 힘들게 475m봉을 넘어, 6시 6분 버스가 대가하고 있는 참나무쟁이 고개(고도 342m)에 도착한다.

참나무쟁이 고개


오늘 산행은 내게는 힘겨운 산행이었다. 후미를 본 김 회장님께 너무나 많은 폐를 끼쳤다.


(2006. 3. 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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