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하며 뒤돌아 본 응봉산 줄기(맨 뒤)

전국적으로 많은 폭우피해를 몰고 왔던 장마전선이 남북을 오르내리며 좀처럼 물러갈 생각을 않는다. 피해가 가장 심했던 인제, 평창 등 강원도 지역으로의 산행은 지난 보름동안 거의 올 스톱상태다. 그리하여 서울 근교의 산들을 찾아보지만, 무덥고 끈적거리는 기분을 털어버리기에는 역시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2006년 7월 25일(화).

도로가 다시 정비되고, 피해가 얼추 복구되자, 강원도 지역의 산행이 재개되고, "화요 脈"이 가이드 하는 영춘지맥의 산행도 가능해진다. 오늘 코스는 『하뱃재-매봉산(1,074.2m)-각근치-응봉산 안부-응봉산(1,096.5m)-물넘이 』로, 홍천군 서석면과 내면의 면 경계를 따라 강원도의 오지중의 오지를 걷는다. 도상거리 약 16Km에 산악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시간은 7시간 30분이다. 시간 당 약 2Km 정도를 걸으라는 이야기이니, 코스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을 할 수 있겠다.

류 회장의 채색한 산행코스

오늘의 산행코스를 정하기까지, 산악회가 다소 고민을 한 듯싶다. 일반적으로는 물넘이에서 약 20분 더 진행한 행치까지를 구간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 여름 삼복더위에 힘이 많이 드는 것을 감안하여, 중간에서 코스를 자르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다. 각근치(刻近峙)에서 산행을 마치고, 내사동 계곡으로 하산을 하면, 산행시간도 약 1시간 정도 단축되고, 아름다운 내사동 계곡을 즐길 수도 있겠으나, 다음 산행 때에는 들머리에서 2시간 정도를 소비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자른 곳이 20분 정도를 단축시킨 물넘이 마을로의 하산이다. 그만큼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다.


버스가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를 달린다. 두물머리 부근의 강변 풍광이 짙은 안개에 가려 더욱 더 신비롭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날씨는 장마 속의 모처럼 개인 날로, 해가 오르면, 안개도 벗어지고, 좋은 날씨가 될 것 같다.


다대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홍천을 지나, 56번 국도로 접어들어, 서석으로 향한다. 오른쪽으로 홍천강이 보인다. 수량(水量)이 특별히 많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도로도 말짱하고 수해를 입은 흔적도 눈에 뜨이지 않지만, 가끔씩 붉은 작업복을 입은 군인들을 태운, 트럭들이 지나친다. 아마도 부근의 수해복구 작업에 투입되는 병력들인 것 같다.


버스가 솔치 터널에 접근하여 정차한다. 터널내부 보수를 하느라, 차선 하나만을 열어 놓고, 작업 관리자가 양쪽의 차량들을 교대로 통과시키고 있다. 아마도 터널내부의 누수가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터널을 통과하고, 도로가 고도를 높임에 따라 여기 저기 산사태가 났던 흔적들이 눈에 뜨인다, 버스는 이런 상흔들을 뒤로하고 10시 16분 경, 율전초등학교가 보이는 율전 삼거리 앞에 정차하여, 우리들을 내려놓는다.


오늘의 시간기록은 아래와 같다.

『(10:18) 산행시작-(10:59) 너덜지대-(11:06) 능선분기-(11:21) 1,080m 봉-(11:20)- 매봉산-(12:10~12:25) 중식-(14:02) 시멘트 말뚝봉-(14:51) 998m봉-(15:50) 각인치-(16:30)- 응봉산 안부-(17:00~17:04) 응봉산 정상-(17:22) 두 번째 공지-(17:50) 880m봉-(18:36) 607.1m봉-(18:55) 물넘이』중식시간 15분을 포함하여, 총 8시간 37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버스애서 내린 대원들은 길을 건너서, 10시 18분,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걸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정면으로 가야할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약 5분간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걸은 후, 왼쪽 밭으로 들어서서, 묘석(墓石)이 새것으로 보이는 무덤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산행 시작 - 정면의 능선이 가야할 곳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왼쪽 밭으로.

묘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등산로가 점차 가팔라지며, 작은 언덕에 오른다. 정면으로 올라야할 봉우리가 펼쳐진다. 벌목을 했던 곳인지, 무성한 잡목 숲을 헤집고 힘들게 산 사면을 오르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뒤돌아 율전리를 굽어보고, 남쪽으로 첩첩히 쌓인 산들을 조망한다. 방향으로 보아 맨 뒤의 능선이 한강기맥 줄기라고 짐작한다.

울창한 잡목숲을 헤치고 산 사면을 오르는 대원들

굽어본 율전리

산 첩첩인 남쪽 조망


키를 넘는 잡목 숲을 헤집고 가파른 산 사면을 오르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선두가 지나면서 밟아 놓은 발자국 흔적을 따라, 등산로가 아닌 잡목 숲을 헤집고 오르려니, 발밑은 미끄럽지, 더워서 걷어 부친 양팔은 가시나무 줄기에 할퀴어져, 금방 상처투성이가 된다. 견디다 못하고, 덥지만, 다시 소매를 풀어 내린다. 작은 규모의 너덜 지대가 잠시 이어진다. 돌 위에 이끼가 새파랗다. 너덜지대가 끝나고 가파른 칼날능선이 이어더니, 11시 6분, 작은 바위덩어리가 버티고 있는 능선 분기지점에 올라,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너덜지대

능선 분기봉


키 작은 산죽이 곱게 깔린 참나무 숲이 펼쳐지고, 산죽 사이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산로가 뚜렷하다. 이윽고 등산로가 가팔라지더니, 11시 21분, 산행리본이 걸려있는 1,080m봉에 오르고, 등산로는 왼쪽으로 굽어진다. 산행 전에 김 대장이 오늘은 봉우리 수를 세지 말라고 충고를 한 바가 있다. 수많은 봉우리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수를 세다가는 금방 잊어버릴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과연 방금 오른 봉우리가 3번째인지, 4번째인지 벌써 헷갈린다.

참나무 숲의 산죽길 - 등산로도 뚜렷하다.

1,080m봉이라고 짐작되는 봉우리


내리막을 지나 안부를 거쳐 다시 칼날능선 오르막이 이어진다. 뻣뻣한 진달래 가지가 얼굴을 후려치고, 배낭을 잡아당긴다. 왼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칼날능선을 지나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능선위에서 산악회 표지판은 오른쪽을 가르치고 있는데, 류 회장은 왼쪽에서 부르고 있다. 11시 30분, 매봉산 정상(1,075.2m)에 오른다. 정상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나무들을 잘라 공간을 만들어 놓았지만, 무성한 숲에 가려 조망은 제로다. 기념사진을 찍고 류 회장과 함께 온 길을 되돌아 나와, 산악회 표지판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파른 사면을 내려선다.

매봉산 정상(1,075.2m)

매봉산의 산악회 표지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1,000미터 대 고산에서의 업 다운이 시작되는 셈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모두 합치면 오늘 넘은 봉우리 수가 30여개가 넘는 듯싶은데, 도상거리가 약 16Km 정도이니, 거의 500미터 간격을 두고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셈이다. 다음에 다시 걸어 볼 기회가 생기면, 그 때에는 봉우리 수를 정확히 세어놔야겠다. 앞으로 혹 관심이 있는 분이 있으면 일차 시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다.


오르막 내리막길은 칼날능선이 대부분이고, 안부는 잡목이 우거진 원시림이다. 때때로 등산로가 희미해지는 곳이 있지만, 방향은 응봉산까지 꾸준히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능선이 분기되는 곳에서는 대부분이 왼쪽능선을 택하게 된다. 인적이 드믄 오지라, 갈래 길 흔적이 없고, 요소요소에 산행리본이 걸려 있어, 오히려 알바를 할 염려는 크지 않다. 사방이 궤궤하다. 가끔씩 이는 바람소리 뿐, 더워서 그런지 새소리도 없다. 이따금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이런 정적을 무참하게 흔들어 깨버린다.

매봉산을 내려오면서 본 고목

안부의 고사목을 덮은 이끼

뒤돌아 본 매봉산

칼날능선을 걸으며 왼쪽으로 본 아미산 방향

원시림

12시 10분, 960m봉이라고 짐작되는 봉우리의 길가에서 송 선배님, 류 회장등 후미일행이 점심을 들고 있다. 합류하여 함께 점심을 먹는다. 15분 동안에 후다닥 점심을 마친 일행들은 갈 길이 멀다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하산하면 산악회에서 식사를 준비해 주니, 점심은 간식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수 없이 넘는다. 주황색 아름다운 꽃이 저 만치 혼자서 피어있다. 동행하던 이 사장에게 꽃 이름을 물으니, 동자 꽃이라고 알려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송곳처럼 뾰족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봉우리를 허위허위 넘어서자, 다시 비슷한 봉우리가 또 앞을 막는다. 아마도 류 회장의 채색 지형도에 표기된 2개의 1,080m봉인 모양이다. 두 번째 봉우리를 넘어서서, 다시 칼날능선을 넘고, 잡목이 울창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에서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두 봉우리가 마치 쌍봉처럼 서 있다. 길가에 보이는 혹부리 나무가 이채롭다.

동자꽃

길이 보이지 않는 안부

뒤 돌아본 쌍봉

길가의 고목

혹부리 나무


2시 9분 시멘트 말뚝이 박힌 봉우리를 급히 내려서니, 오랜만에 부드러운 안부가 펼쳐지고, 등산로는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또다시 두 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새빨간 작은 열매를 단 한 그루의 나무에 시선이 간다. 2시 51분 삼각점이 박힌 998m봉에 오른다.<현리 450, 2005. 재설>

시멘트 말뚝이 박힌 봉우리를 지나는 이사장

원시림 속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 길

붉은 열매나무

998m봉에서 지도를 확인하는 이 사장.


이 사장은 종주를 포기하고, 대신 각인치에서 계곡으로 빠져, 내사동 골짜기를 구경하겠다고 한다. 인천에서 온 여자대원이 오늘은 다리가 불편하여, 동행해서 탈출하겠다고 나선다. 각인치로 향한다. 울창한 원시림이 이어진다. 4개의 봉우리를 넘어서자, 왼쪽으로 희미한 등산로가 보이는 각인치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이제까지 동행하던, 두 사람을 뒤에 남기고, 혼자서 정면의 오르막길을 오른다. 허전한 느낌이다.

원시림 - 등산로가 어디멘가?

998m봉에서 부터 네 번째로 넘는봉우리


각인치를 지나, 첫 번째 봉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서는데, 이 사장이 여자대원과 함께 뒤를 따라온다. 각인치에서 내사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불분명하여, 운봉산 안부에서 왼쪽으로 하산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다시 동행이 생기니 반갑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니, 정면으로 응봉산의 웅장한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4시 30분 경, 안부에 도착하여, 이 사장과 다시 작별을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응봉산

응봉산 안부도착


가파른 오르막을 허위허위 오른다. 정상 가까이에서 기암을 지나고, 5시 경, 공터를 지나, 응봉상 정상(1,096.5m)에 오른다. 정상에서 류 회장이 기다리고 있다. 거칠게 벌목을 한 정상에 삼각점이 박혀있으나, 삼각점 위의 글씨는 판독이 어렵다. 정상이지만 조망은 별로다. 기념사진을 찍고 일행과 함께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부근의 기암

응봉산 정상


하산하는 길은 이제까지 와의 길과는 딴판으로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다운 산세가 빼꼼이 들여다보인다. 연이어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 5시 32분 두 번째 공터를 지나자, 등산로는 완연한 산책길로 변한다. 아름다운 산책길을 걸으며, 뒤돌아 응봉산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외사동쪽 골짜기를 굽어본다.

하산하며 본 왼쪽 조망

아름다운 산책길

뒤돌아 본 응봉산


5시 50분, 삼각점이 있는 880m봉에 도착하자, 남서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웅장한 산세가 허공에 희미하게 떠있다. 6시 36분 삼각점이 있는 667.1m봉을 지나고, 6시 55분 경,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물넘이에 도착한다.

880m봉에서 본 서남쪽 조망

하산하며 오른쪽으로 본 응봉산 방향

667.1m봉의 삼각점

하산

버스에 도착하여,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마을 앞 너른 개울에서 알탕을 한다. 개울물이 뼈가 시리도록 차갑다. 개운해진 몸으로 버스로 돌아와, 강 부장님이 마련한 미역죽으로 식사를 한다. 막걸리를 반주로 먹는 강 부장님의 미역죽은 언제 먹어도 별미다. 버스는 8시가 다 되어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귀경 버스 속에서 정 선배님이 불만을 털어 놓는다. 거친 잡목 숲을 헤치고 진행하다보니, 비싼 안경을 어디다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도 속이 쓰린데, 9시간 가까이 험한 길을 죽어라하고 달린 후, 돌아가는 길에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어디를 다녀왔는지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산들은 많이 다녔지만, 대간이나 정맥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선배님이 능히 느낄 수 있는 불만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불만은 이제부터 산행 전에 지도를 보며, 산행코스를 미리 익히고, 선답자들의 후기도 읽어보는 등 산행준비를 할 필요성을 비로소 실감했다는 이야기라고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정 선배님도 틀림없이 이런 점을 인식하고 하신 불만일것이다.

 


(2006. 7. 28.)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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