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에, 때 이른 태풍까지 겹쳐, 남쪽 지방에 비 피해가 크다는 보도가 시간별로 전해온다. 다행히 태풍은 내륙으로 진입하면서, 세력이 약화되어 소멸되었지만, 이럴 때 한가하게 산에나 다닌다는 것이 영 미안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전 구간의 산행 일정이 확정되고, 일기변화와는 무관하게 일정대로 산행이 진행되다 보니, 우중 산행차비를 단단히 하고 새벽에 집을 나선다.


2006년 7월 11일(화).

『화요 脈』의 가이드로 영춘지맥 산줄기를 타는 날이다. 오늘코스는 구목령에서 시작, 장곡현을 지나고, 청량봉을 넘어, 하뱃재에서 마감한다. 마루금 도상거리는 약 13.5Km이지만, 오지 중의 오지인 구목령에의 접근이 쉽지 않다. 마루금은 홍천군과 평창군의 도계를 따라 이어지다가, 청량봉에서 한강기맥은 계속 도계를 따라 불발현으로 내려서지만, 영춘지맥은 도계를 버리고 북진하여 하뱃재로 향한다.


비는 오지 않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안개가 짙어, 시계(視界)가 불량하다. 하지만 900m대에서, 1,100m대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뚜렷하고, 비교적 평탄한 편이라, 체력 소모가 적어,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긴다. 다만 안부의 울창한 잡목지대를 지날 때는 보이지 않는 관목의 줄기가 다리에 휘감기고, 나뭇잎들이 얼굴을 후려쳐, 진행 속도를 더디게 한다. 하뱃재로 하산할 때는 갈림길이 많아 길 찾기가 쉽지 않고, 다시 무성한 잡목지대를 통과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1:12) 구목령 도착, 산행시작-(11:27) 1,060m봉 헬기장-(11;32) 능선분기, 오른쪽-(12:07) 암릉 통과-(12:21~12:36) 1,190봉 중식-(12:54) 암릉 우회-(13:08) 1,037m봉-(14:20) 장곡현-(15:06) 청량봉-(15:58) 920.6m봉-(16:55) 910m봉-(17:37) 하뱃재』중식시간 약 15분 포함, 6시간 25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버스가 경유지를 모두 경유, 팔당 대교를 건너지만, 고정 멤버 10여명만을 태운 버스 안은 썰렁하다. 날씨도 그렇고, 코스도 오지라, 일반 대원들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하겠다. 버스는 44번 국도를 달려, 서석면을 통과하더니, 10시 2분 경, 파리골길로 이어지는 지도상의 408번 지방도로 앞에 정차한다.

생곡리 마을 입구 도착


이곳에서부터 구목령 까지는 약 12Km로, 생곡리 마을을 거쳐, 임도를 따라 구목령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접근로가 길다보니, 한강기맥이나, 영춘지맥 을 할 때에는, 구목령에서 구간을 끊어, 하산하지 못하고 이를 통과하여 계속 진행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산행구간이 길어져, 흔히 마(魔)의 코스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失)이 있으면, 득(得)도 있는 법. 구목령으로 걸어 오르며 보는 임도 주변의 풍광은 기가 막힌다.


화요 맥의 김 대장은 이곳에 트럭을 대기시켜 놓았다. 10시 3분 경, 대원들을 태운 트럭은 구목령으로 향한다. 나와 함께 조수석을 차지한 송 선배님이 나이 든 기사 양반에게 인사를 한다.


"비 피해로 난리들인데, 우리는 이렇게 산에만 다니니,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젊었을 때 일 많이 하시고, 이제 이처럼 산엘 다니시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건강들 하시죠?" 순박해 보이는, 홍천에 산다는 영감님의 반응이다.

트럭 탑재 - 붉은 재킷을 입은 영감님이 기사양반이다.


이곳에는 비는 많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생곡 저수지의 물빛이 여전히 맑고, 스쳐가는 마을들이 평화롭다. 마을을 지나, 트럭은 본격적으로 산속 임도를 따라 힘들게 오른다. 집에서 사용하는 트럭을 직접 몰고 나온 듯싶은 영감님은 차가 오래돼 힘이 없다며 걱정을 한다. 홍천에 산다지만, 구목령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눈치다.

생곡저수지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외길인 임도 맞은쪽에서 붉은 색 버스가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중형 버스라 차체는 길지 않지만, 차폭은 트럭보다 넓어 보인다. 일행이 모두 트럭에서 내려, 두 차가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다행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능한 공간을 찾아, 트럭이 후진을 하여 비켜서고, 버스가 겨우 통과한다.

외길 임도에서 마주친 차량


트럭은 다시 임도를 따라 오른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임도를 걷는 모습이 보인다. 여자들도 있다. 한 두 사람이면, 태워주겠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안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산엘 왔으면 걸어야지, 차 타고가면 됩니까?"


뒤에서 볼 멘 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강기맥을 하는 산악회에서 대원들을 태우고, 버스로 구목령으로 오르다가, 겁이 난 기사양반이, 더 오르기를 거부하여, 버스는 되돌아 나오고, 할 수없이 대원들은 걸어서 오르다가, 트럭을 탄 우리들을 보니, 속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이 점점 험해지고, 가팔라진다. 태풍의 영향인지, 쓰러진 나무가 임도를 가로 막고 있다. 김 대장이 뛰어내려, 쓰러진 나무를 길가로 치우고, 트럭은 다시 힘들여 산을 오른다. 우리 기사 영감님도 겁이 나는 모양이다. 차를 돌릴만한 데 가 없느냐고 자꾸 묻는다. 폭우와 태풍으로 혹시 산사태라도 나서 임도가 유실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은 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천천히 주위 풍광을 즐기며 올라, 구목령에서 차를 돌리면 된다고 대꾸하자, 영감님은 주위풍광은 고사하고, 겁이 나서, 혼자 내려갈 일이 걱정이라며 웃는다. 11시 11분 트럭은 구목령에 도착한다.


11시 12분, 국유림 임도 차단막을 오른쪽으로 끼고, 산행리본이 걸린 숲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풀 섶에 맺힌 빗방울로 신발과 바지 아랫도리가 금방 젖어 버린다. 가파른 숲길이 한 밤중처럼 캄캄하다. 2~3미터 앞서 걷는 대원의 뒤 꼭지만 보고 허위허위 오른다. 이윽고 주위가 밝아지며, 헬기장이 있는 1,030m봉에 이른다.

산행시작

컴컴한 숲길


헬기장을 내려서고, 약 5분 후, 산행리본이 걸려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등산로는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굽어 내리고, 이 후 몇 차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안개 속을 걷는 대원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12시 7분 암릉지대를 통과하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어, 산죽 밭을 지난다.

헬기장 - 송 선배님, 류 회장이 보인다.

안개 속을 산책하는 대원


12시 21분, 안개가 자욱하게 낀 1,190m봉에 이른다. 좁은 공터에 삼각점이 박혀 있으나, 글씨의 마모가 심해 내용을 읽을 수가 없다. 이곳이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후미대원들이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하얀 꽃이 한 무더기 소담하게 피어 있으나, 바닥이 젖어, 깔판이 있는 사람들은 앉아서 식사를 하지만, 준비를 못한 사람들은 선 채로 식사를 한다.

정상의 류 회장

이름 모르는 들꽃

식사 후 독도를 하는 대원


약 15분 동안에 서둘러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산죽 길은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다. 앞서 걷던 송 선배님이 뜬금없이 "안 대감 ! 우리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야." 라고 한다. 더 부연하지 않아도 말씀하는 의미가 전해온다. '지금 집에 있다면, 얼마나 무덥고, 답답하고, 찝찝할 건가? 그런데 우리는이 나이에,선경(仙境)을 헤매고 있지 않는가?'

아름다운 산죽길


앞에 암릉지대가 나타나고, 우회로가 오른쪽으로 떨어진다. 우회로를 10분 정도 걸으니, 암름을 넘어오는 능선길과 만나게 된다. 날씨만 좋다면, 구지 우회로를 택할 정도로 암릉이 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1,000m 전후의 고산 마루금 풍경이 이어진다. 멧돼지들이 거칠게 파헤쳐 놓은 구덩이들, 이름 모를 들꽃들, 고목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들, 누렇게 죽어가는 산죽 밭, 고사리같이 생긴, 커다한 잎사귀의 양치류 식물들, 붉은 꽃을 매단 싸리나무들...참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산 속이다. 왼쪽으로 임도가 보이더니, 2시 20분 경, 장곡현 갈림길에 내려선다.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

무리 져 핀 들꽃

싸리꽃

장곡현 갈림길의 국유임도 안내.


때맞추어 안개가 조금 벗어지더니, 오른쪽으로 흥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구름을 이고 있는 흥정산(1,276.5m)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5분 쯤 오르니, 국유임도 종점 표시의 돌 표지가 박힌 너른 공지에 이르러, 등산로는 왼쪽 숲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장곡현 임도, 불발령 가는 길

구름에 가린 흥정산

장곡현 임도

국유임도 종점


안부를 지나 다시 두어 개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는다. 송 선배님의 친구 분인 정 선배님이 연장도 없이 맨손으로 캔 커다란 더덕을 목에 두르고 소년처럼 환하게 웃고 서 있다. 등산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나뭇가지사이로 안개에 가린 청량봉이 보인다. 안부에 이르자,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고목들이 늘어 선 숲이 마치 정글처럼 깊어 보인다.

맨 손으로 캔 더덕을 목에 감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정 선배님

구름에 가린 청량봉

정글 같은 안부


산죽이 무성한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지나, 3시 5분 삼각점이 있는 청량봉(1,052m)에 오른다. <봉평 302, 1995. 재설> 오른쪽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곳에 산행리본들이 어지럽게 걸려있고, 영춘지맥 길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직진방향이다.

청량봉 삼각점

청랼봉에서 보이는 산불감시초소

한강기맥 가는 길의 산행표지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영춘지맥 산꾼들의 산행리본이 걸린 작은 봉우리에 오르고, 3시 31분, 960m봉이라고 짐작되는 봉우리에 올라, 다시 정글 같은 안부를 지난 후, 고개 하나를 넘어서니, 오른쪽으로 멀리 자운리로 뻗은 임도가 내려다보인다. 벌목한 산비탈을 따라 조림한 나무들이 아름답게 골짜기로 이어진다.

정글 같은 안부의 넝쿨길

골짜기의 임도

비탈에 선 나무들


3시 58분 삼각점이 있는 920.6m봉에 이른다.<봉평 405, 2005 재설> 주위에는 벌목 후 내버려진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봉우리를 내려선다. 거대한 고사목이 처연하고, 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어두운 산죽 밭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청량봉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이 아련하다.

920.6m봉의 삼각점

고사목

어두운 참나무 숲 산죽길

청량봉과 왼쪽으로 이어진 한강기맥


이제 둥산로는 하뱃재(645m)로 내려선다. 중간에 갈림길들이 나타나지만, 산행리본을 따라, 잡목길을 어렵게 내려선다. 4시 55분, 910m봉에서 영춘지맥 선답자들의 산행리본들이 매달린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니, 앞서 달리던 대원 세 사람이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다. 아마도 길을 찾느라 헤맨 모양이다. 이제부터 길 찾기가 시작된다. 류 회장의 독도로 능선을 그르칠 리야 없겠지만, 능선에서 갈라지는 여러 갈래 길에서의 선택이 어렵다. 이때는 송 선배님의 오랜 경험에 의한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게 되고, 그래도 감 잡기가 어려우면, 좌우로 선발대를 파견하여 갈 길을 확인한다.

선답자들의 산행리본


5시 26분, 드디어 오른쪽으로 율전리가 내려다보인다. 5시 33분, 잡목길을 힘들여 뚫고 나오니, 구불구불 이어진 하뱃재 고갯길이 발아래 펼쳐지고, 다음 구간의 산들이 구름에 쌓여 있다. 5시 37분, 율전 삼거리에 내려서고, 5시 40분 경, 율전초등학교 앞에 정차해 있는 버스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귀경하는 차속에서 보는 황혼 속의 홍천강이 아름답다.

하뱃재

구름에 쌓인 다음 산행구간

율전 삼거리

166 황혼 속의 홍천장


(2006. 7. 13.)


뒤풀이

율전초등학교 수돗가에서 땀을 닦은 대원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서석면으로 나와, 초원기사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안주로 막걸리와 소주로 피로를 푼다. 식사를 마치자, 송 선배님이 계산서를 가져 오라더니, 본인이 계산을 하겠다고 나선다. 다른 대원들은 그럴 것 없이 모두가 같이 분담하자고 하지만 이 양반, 완강하게 고집을 부린다.

초원기사 식당


송 선배님은 트럭 대절료와 식대를 합쳐서, 2만원씩을 갹출하자는 젊은 총무의 제안에 무리가 있다고 본 모양이다. 혹시 2만원씩 갹출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대원이 있어서, 앞으로 안 나오게라도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적은 인원인데, 더 곤란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식대는 송 선배님이 부담하고, 대원들로 부터는 만원씩만을 걷어, 트럭 대절료를 주고, 나머지는 기름 값에 보태기로 한다.


송 선배님에게서는 묵은 장맛 같은 것이 느껴진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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