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리 임도에서 본 설악산 - 주걱봉, 가리봉, 귀때기청봉, 중청, 대청이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산악회에서 가이드 하는 정맥이나 기맥 종주산행에 따라 나서 보지만, 여름철 비수기에 들어서거나, 힘든 구간의 산행이 끝나고 나면, 참여 대원수가 대폭 줄어, 종주산행이 도중에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산악회의 가이드도 사업이니, 적자를 보면서 운영을 할 수는 없겠다고, 이해는 하지만 중도하차 하는 기분은 씁쓰름하다.
박성태 씨는 산경표를 두 발로 읽고, 신산경표를 저술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런 박성태 씨가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총 272km에 달하는 산줄기를 2002년 4월부터 8월까지 4달간에 걸쳐 답사를 하고, "영춘지맥"이라는 종주기를 남긴 바 있다.
그 후 많은 등산 애호가들이 단독 혹은 동호인들과 함께, 영춘지맥을 종주하고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과문한 탓인지, 산악회가 가이드 하여 영춘지맥을 종주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를 못했다.
"나 홀로" 종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산행경험이 많지도 않고, 또 그처럼 용감하지도 못한 나는, 그렇다고 동호인들을 모을 주변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내가, "화요 脈"이 가이드 하는 영춘지맥 종주에 따라나서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화요 脈"은 화요일에만 산행을 한다. 1, 3주 홀수 화요일에는 계방지맥을, 2, 4주 짝수 화요일에는 영춘지맥을 가이드 한다. 40인승 대형 관광버스를 운행하지만, 참가자가 5명일 때도 포기 않고, 고집스럽게 가이드를 하는 산악회다. 11월 14일부터 진양기맥 종주를 시작할 계획이라, 아마도 그 때까지 고정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 포석을 하는 모양이다. 여하튼 참여 인원에 관계없이 계획대로 가이드를 해주는 것은 더 할 수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사람이 적으면, 왠지 불안해진다.
2006년 8월 8일(화).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된다, 하지만 오늘이 입추(立秋)다. 절기로는 벌서 가을로 접어드니,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도 이제 일주일 정도가 고작이겠다. 오늘은 두 번째 화요일, "화요 脈"의 가이드로 영춘지맥 산줄기를 걷는다. 오늘의 산행코스는『물넘이-행치령-451번지방도로-백암산-가마봉-김부리간 도로』로 마루금 도상 거리 약 12.8Km, 날머리 약 2Km, 계 14.8Km에, 산악회가 예정하는 산행시간은 7시간 30분이다.
현재 영춘지맥 종주에 참여하는 고정회원은 10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무더운 휴가철에, 힘든 코스의 산행이다 보니. 고정회원이라고 모두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첫 경유지인 선능역에서 벌써 고정회원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잠실역도 그냥 지나친다. "이러다가는 10명도 안되겠네...." 강 부장님의 실망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하지만 길동역에서 대원들이 한꺼번에 승차하여. 오늘의 산행인원은 15명이 된다. 삼복더위의 오지산행 인원으로는 적은 편은 아니다. 아마도 "화요 脈"이 오지산행을 선호하는 산꾼들에게 점차 알려지는 모양이다.
버스가 팔당 대교를 지난다. 팔당 댐은 안개에 파 묻혀 보이지 않고, 산허리에 구름을 두르고 있는 검단산이 우뚝하다. 버스가 6번국도로 접어들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남한강의 풍광이 그림 같다. 산행도 좋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를 바라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큰 즐거움이다.
차창으로 바라본 남한강
다대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56번 국도를 타고, 서석면을 지난다. 수해의 뒤처리는 이미 말끔하게 끝낸 모습이다. 444번 지방도로로 갈아탄 버스는 험준한 행치령를 구불구불 오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위 산세와 골짜기가 가히 절경이다. 이윽고 버스는 시멘트 도로로 들어서더니, 10시 13분, 물넘이 고개에 정차하고, 대원들은 뜨거운 땡볕 속으로 내려선다.
오늘의 산행 기록은 아래와 같다.
『(10:15) 산행시작-(10:20) 폐가 지나 숲으로-(10 ;24) 능선에 올라, 왼쪽(10;29) 570m봉, 마루금-(10:40~10:42) 행치령-(11:14) 451번 지방도로-(11:38) 760m봉-(12:19~12:35) 931.4m봉에서 중식-(12:53) 920m봉-(14:00) 백암산 갈림길-(14:06~08) 백암산 정상-(14:14) 갈림길 회귀-(14:47) 문대치-(15:17) 1098m봉-(15;32) 싸리골재-(15:42) 1,071.6m봉-(16:31) 가마봉 갈림길-(16:49~16:52) 가마봉-(17:05) 갈림길 회귀-(17;27)1,112m봉 우회-(17:45) 임도-(18:20) 버스』들머리 약 14분, 중식 약 16분, 마루금 약 7시간, 날머리 약 35분, 총 8시간 5분이 걸린 산행이다.
* * * * *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마치고, 지난 번 알탕을 했던, 낮 익은 마을의 개울 쪽을 잠시 둘러보고, 최후미로 쳐져서, 앞선 일행을 뒤쫓아, 시멘트 길을 따라 걷는다. 산 아래에 폐가가 보이고, 대원들은 임도를 따라 줄을 이어 폐가로 접근하고 있다. 폐가 뒤 절개지에 올라, 지나온 길을 카메라에 담고, 숲 속으로 들어선다.
폐가를 지나, 절개지로 접근하는 선두
뒤돌아 본 길-가운데 시멘트 길을 걸어 내려와, 왼쪽 임도로 들어선다.
급한 사면을 약 4분 쯤 올라, 능선에 도착하고, 왼쪽으로 굽어진 등산로를 따라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10시 30분 경, 왼쪽에서 차 소리가 들리는 570m봉에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비로소 마루금을 걷게 되는 셈이다.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구불구불 행치령으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570m봉으로 오르는 대원들
내려다 본 행치령 도로
안부를 지나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어, 10시 41분, 행치령(行治嶺)에 도착한다. 행치령은 홍천의 서석면과 내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로, 고도는 약 600미터 정도다. 언덕에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고, 고갯마루에는 마의태자 노래비가 누워있다. 행치령에 서서 북서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지맥 마루금을 카메라에 담고, 발길을 돌려, 남면 쪽으로 내려서다가, 왼쪽 가드레일이 끊긴 곳에서, 산행리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선다.
행치령 표지석
마의태자 노래비
행치령에서 본 북서방향 조망
행치령 넘어 남면으로 이어진 도로- 왼쪽 가드레일 끊긴 곳에서 숲으로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자 칼날능선이 이어진다. 두 번째 안부에서 된 비알을 타고 허위허위 올라, 11시 3분, 능선이 분기되는 660m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등산로는 평탄한 참나무 숲을 통과하여, 11시 14분, 451번 지방도로 이어진다. 홍천군 내촌면 표지판과 볼록거울이 길가에 설치돼 있다. 대원들이 길을 건너 절개지를 타고 오른다.
660m봉
451번 도로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오르고
능선에 오르니, 등산로는 오래된 교통호를 따라, 왼쪽 참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760m봉에서 길은 왼쪽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다. 11시 47분, 132번 철탑을 지나고, 아름다운 참나무 숲과 산죽 밭을 거쳐, 12시 19분, 931.4m봉에 오른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씨다. 날씨는 맑지만, 주위가 온통 나무에 가려, 전망도 별로다. 하지만 이곳에서, 뒤따라 온 젊은 대원 두 사람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오래된 참호와 교통호
760m봉
젊은이들이지만, 등산 경험이 많은 모양이다. 한 사람은 1/50,000 지형도, 다른 한 사람은 1/25,000 지도를 가지고, 주요 위치를 확인하며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산행을 한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선두질을 하는 타입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약 15분 동안에 점심을 마친 일행은 다시 길을 서두른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가득봉(可得峰,1,059.7m)이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본 가득봉
고만고만한 봉우리 두 개를 지난다. 정면으로 시야가 조금 트이며, 멀리 큰 봉우리가 보인다. 카메라로 당겨 찍어 보니, 가마봉(可馬峰)이 틀림없다. 1시 23분 경 싸리꽃이 아름다운 안부에 내려선다.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안부가 길게 이어진다. 안부 너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나온 봉우리가 부드럽게 펼쳐있다.
멀리 본 가마봉
안부 1
안부 2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숲길을 걷는다. 바람 한 점이 없는 숲 속에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더위를 먹을까 겁이나, 연신 물을 마시고, 식염(食鹽) 타블렛을 복용한다. 작은 업 다운이 반복되는 등산로는 동자 꽃이 무리지어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을 지나고, 해 묵은 고목을 거쳐, 키 작은 산죽 밭을 헤집으며 꾸준히 오름세로 이어진다. 2시에 백암산 갈림길에 이른다. 류 회장이 쉬고 있다. 벌써 백암산을 다녀와서 쉬고 있다고 한다.
길가의 동자꽃
아름다운 산죽길
길가의 고목나무
배낭을 길가에 벗어 놓고, 백암산(白岩山)으로 향한다. 백암산은 마루금에서 서쪽으로 약 300미터 떨어져 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눈앞에 백암산 정상의 공터가 다가오고, 그 위로 한 덩이 뭉게구름이 한가롭게 걸려있다. 백암산으로 오르는 사면은 온통 야생화 천지다. 별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2시 6분 정상에 오른다. 너른 공터에는 홍천군에서 세운 정상석(1,099.1m)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지만, 주위의 나무들에 가려 전망은 별로다.
백암산 정상의 뭉게구름
백암산 오르는 길가의 야생화
백암산 정상석과 삼각점
정상의 작은 나뭇가지에 울긋불긋한 산행리본들이 서낭당의 부적들처럼 매달려 있다. 작열하는 태양, 쏟아지는 햇살,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야생화로 뒤덮인 산록,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더위를 먹는 건가? 머릿속이 텅 비고, 온몸이 한 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환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정상의 산행리본
2시 14분, 다시 백암산 갈림길에 이른다. 이제 오늘 산행의 약 절반 정도를 걸은 셈이다.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영춘지맥의 다른 구간과는 달리, 이 구간의 둥산로는 길이 뚜렷하고, 중간 중간 나뭇등걸에 파란 페인트로 표지를 해 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인근 부대에서 이 구간을 산악 훈련코스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한 등산로
나뭇등걸에의 길표지
2시 47분 경, 문내치(門內峙)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다. 암릉이 나타나면서 등산로는 암릉을 우회한다. 3시 17분 1,098m봉을 지나고, 3시 32분, 싸리골재 안부를 거쳐, 벌목지대를 통과한 후, 3시 42분, 1,071.6m봉을 지난다.
등산로는 암릉을 우회하고,
1,098m봉
1,071.6m봉을 지나며, 뒤돌아 본 백암산
1,063m봉을 넘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을 오면서, 오른쪽으로 가마봉을 본다. 사람의 옆얼굴 같이 생긴 바위 위에 대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4시 31분, 가마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더위에 지친 일부 대원들이 가마봉 오르기를 포기하고 앉아서 쉬고 있다. 가마봉은 마루금을 벗어나 동쪽으로 약 340m 떨어진 곳에 있다. 업 다운이 심하고, 암릉길도 있어, 왕복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마봉으로 향 한다.
멀리서 본 가마봉
4시 39분 전망바위에 선다. 남쪽과 동쪽, 그리고 서쪽방향으로 조망이 확 트였다. 참으로 장관이다. 조금 더 빨리 서둘러 올라와, 류 회장의 설명을 들어야하는 건데, 아쉽다. 류 회장이 이 후기를 보고, 혹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면 좋겠다.
가마봉 전망바위에서 본 지나온 길- 앞 능선이 지나온 길, 뒤의 삼각봉이 가득봉
동쪽 방향의 조망 - 류 회장! 왼쪽 산 이름이 뭔가요?
동북 방향의 조망 - 응봉산 방향
가마봉 정상으로 향한다. 류 회장이 마주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더운 날에, 다시 끌고 올라 갈 수도 없고, 참으로 아쉽다. 4시 46분 경, 가마봉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우선 북동 방향으로 멀리 설악산을 보고, 북서 방향으로 가야할 소뿔산을 본다. 동쪽으로는 수리봉, 그 뒤로 희미하게 방태산도 보이는 것 같다. 남쪽으로는 걸어온 능선이 펼쳐진다. 같이 있던 젊은 대원이 주위 조망에 압도 되어, 가만히 탄식한다. "세상에 이런 날도 있네요."
가마봉 오르는 길
가마봉 정상에서 본동쪽 방향 조망
북서 방향, 가야할 소뿔산
북동 방향, 주걱봉, 가리봉, 귀때기 청봉
남쪽 방향, 걸어온 길이 C자형으로 이어진다. 백암산(좌), 가득봉(우상, 삼각봉)
서둘러 가마봉을 내려선다. 5시 5분, 갈림길에 되돌아오니, 배낭 한 개가 홀로 외롭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최후미로 홀로 쳐졌지만, 길도 뚜렷하겠다, 천천히 걸어도 6시까지는 김부리 임도에 내려설 수 있겠다, 조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5시 27분 1,112m 암봉을 우회하고, 5시 45분 김부리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 오른쪽으로 따라 걷는다. 고개 너머로 보이는 설악의 모양이 압권이다. 앞에 펼쳐진 소뿔산과 뒤돌아서서, 지나온 1,112m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김부리 임도
임도에서 뒤돌아 본 지나온 능선 , 가마봉(좌), 1,112m봉(우)
다음 구간으로 가야할 능선
6시 15분 경, 함별곡에 내려서서, 다리로 접근하자, 다리 아래, 냇가에서 알탕을 하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함께 어울려 땀을 닦아내고, 대기 중인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군사지역 내의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더니, 6시 40분 경, 466번 지방도로가 보이는 곳에 정차하여, 목마른 대원들을 위한, 하산 주 자리를 마련한다.
시원한 막걸리 몇 잔을 받아 마시고, 류 회장 등과 함께, 지도에 표시된, 마의태자 영정을 모신 대왕각을 찾아 나선다. 대왕각은 마의태자의 유적비와 함께 세워져 있지만, 찾는 사람도 없는지, 주위에 잡초만 무성한 초라한 전각이다. 금부교 부근 466번 국도에는, 이 더운 날,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는 군인 차량들이 보인다.
대왕각과 마의태자 유적비
대왕각 현판
446번 지방도로와 금부교.
버스로 돌아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하산주 파티에 다시 끼어든다. 버스는 7시 1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6.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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