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목령 임도에서 본 영춘지맥
2006년 독일 월드 컵 8강이 가려졌다.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와 같은 G조에서 1위와 2위로 16강에 오른 스위스, 프랑스의 경기 결과다. 우크라이나와 격돌을 벌인 스위스는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정하지 못하고, 승부차기로 들어간다. 결과는 0:3패, 그래서 월드 컵 사상 길이 남을 진기록이 양산된다. 1) 승부차기 무득점 2) 승부차기 최대 점수 차 패배 3) 조별리그 1위의 16강 탈락. 신문에서도 "손 쓰는 스위스가 거미손에 당했다"고 비아냥거리고, 집사람도 "쌤통"이라는 반응이다. 억지로는 안 되는 모양이다.
조별리그 경기에서 "늙은 수탉"이라는 별명을 얻은 프랑스는 무서운 상승세의 무적함대 스페인을 맞아, "임자 만났다." 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3:1로 승리하고 8강에 오른다. "축구공이 둥글어 경기는 해 봐야 안다." 라고는 하지만, 축구 역시 전통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2006년 6월 27일(화).
"화요 脈"이 가이드 하는 영춘지맥 산행일이다. 스위스와 우크라이나의 승부차기, 우크라이나 첫 킥커의 골을 스위스 골키퍼가 잡아내는 것을 보고는, 승부는 끝났다고 여기고, 배낭을 메고 대문을 나선다.
오늘 산행코스는 『양구두미재-군사도로-태기산-삼계봉-구목령』까지 마루금을 타고, 구목령에서는 트럭으로 임도를 내온다. 예상 산행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다. 산악회에서는 여름의 무더위를 감안하여, 코스를 짧게 끊고, 임도로의 하산에도 트럭을 배치한다.
류 회장의 1/50,000 지형도
비는 오지 않지만, 잔뜩 흐린 날씨다. 경유지를 모두 경유했는데도 버스 안은 썰렁하다. 지난번에는 대원들이 늘어나는 듯싶더니, 날씨 탓인지, 다시 고정 멤버들만이 눈에 뜨인다. 화요 맥은, 지금하고 있는 영춘지맥 외에, 7월부터는 매월 첫째, 셋째 화요일에 계방지맥을 타고, 계방지맥을 끝낸 후, 11월부터는 진양기맥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동고속도로 문막 휴게소에서 약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둔내 IC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6번 국도에 올라 양구두미재로 향한다.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인 양구두미재는 고도가 높아, 안개가 자욱하다. 버스는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로 진입을 시도해보지만, 시멘트 도로를 벗어나자, 길이 미끄러워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대원들을 내려놓는다.
10여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 태기산 군 철조망 주변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라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뿐이다. 어제 내린 비로, 젖은 철조망 길이 미끄럽다. 무성한 잡초로, 돌들이 비쭉비쭉 솟은 길바닥은 보이지도 않는데, 안경에 서린 습기로 시야마저 뿌여니, 전진하기가 죽을 맛이다. 기듯이 진행한다. 고약한 길이다.
태기산에서 내려서서, 군계를 버리고 왼쪽 내리막 능선을 찾아야하는 곳에서도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동안 헤맨다. 하지만 1,000미터를 넘는 호젓한 고산지대의 안개 속을 누비며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하다.
삼계령을 지난 한강기맥 구간은 몇 일전에 걸었던 길이라 더욱 반갑다. 안개가 걷히며, 가끔씩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 구목령에 도착하여, 천천히 임도를 따라 내려오며 보는 조망, 길가에서 따 먹은 오디열매, 여유를 갖고 즐긴 길섶의 야생화들은 오지산행에서 얻은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하겠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54) 양고두미재 도착-(10:12) 지맥 마루금 군사도로에 내려서는 곳-(10;20) 고개마루 군 경고판-(10:23) 계단-(10:35) 군 철조망-(10:43) 철조망 동쪽 끝-(10:53) 철조망 서쪽 끝-(10:55) 태기산 통신소 정문-(11:07) 군사도로 버리고, 오른쪽 숲으로-(11:17) 갈림길에서 오른쪽-(11;27) 후퇴-(11:42) 서쪽 희미한 길-(12;20) 정병훈/하문자 부부 리본-(12:45~13:00) 중식-(13:18) 삼계봉-(13:39) 1,075m봉-(14:18) 1,100m봉-(14:40) 1,031m봉 갈림길-(15:04) 구목령』, 들머리 약 8분, 중식시간 약 15분 포함, 5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된 산행이다. 구목령에서는 약 25분 동안,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이후 트럭에 올라 운두령 휴게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향한다.
◆ ◆ ◆ ◆ ◆
10시 54분 버스에서 내리자, 비는 오지 않으나, 짙은 안개로 10여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비가 내려 축축이 젖은 군사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10시 12분, 지난번 방가곡 고개에서 영춘지맥 마루금을 타고 올라와, 이곳 군사도로 내려선 지점을 통과한다. 지금부터는 우리들이 걸어 오르고 있는 이 군사도로가 바로 마루금이다.
안개 속 산행 시작
방가곡 고개에서 올라와, 군사도로로 내려섰던 지점
마루금인 군사도로, 차량 타이어 자국, 물웅덩이가 보인다.
10시 20분 고개마루 너른 공지에 이른다. 길가에 경고판과 병력 하차지점 표지판이 보이고, 안개 속에 도로차단기가 높게 들려있다. 차단기를 지나, 안개 속 내리막길을 걷는 대원들의 모습이 흡사 행군하는 병사들처럼 보인다.
경고판과 하차지점 표지판
군사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돌아내리는 곳에서 오른 쪽으로 다시 경고판이 보이고, 그 옆에 하얀 로프가 걸린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을 10여분 넘게 오른다. 몸에 땀이 나고, 안경알에 수증기가 어려 시야를 방해한다. 이윽고 봉우리 정상이 가까워지자, 산 사면에 뾰족뾰족한 나무말뚝 차단물이 설치돼 있고 그 주위에 철조망이 쳐져 있어, 경비가 자못 삼엄하다.
계단길
차폐시설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서니, 군부대 철책이 앞을 막는다. 등산로는 철책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곧이어 철책문과 초소로 보이는 건물을 지나고, 등산로는 잡초가 무성한 미끄러운 길을 오르내린다. 비에 젖은 돌들이 미끄러운데 잡초에 가려 바닥이 보이질 않는데다, 시야마저 흐려, 스틱으로 장님 막대기 두들기듯 조심조심 앞으로 헤쳐 나간다. 철조망이 왼쪽으로 굽어지고, 등산로도 왼쪽으로 굽어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안개 속, 바위 위에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 있다. 아마도 훌륭한 전망대이겠지만 지금은 사방이 온통 짙은 안개뿐이다. 유감이다.
군부대 철책문과 초소
전망바위와 소나무
다시 철책이 왼쪽으로 굽어지고, 철책 아래로 야생화 단지가 펼쳐진다. 조금 더 걸으니, 왼쪽에 철책문이, 오른쪽으로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쪽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보인다. 무심코 오른 쪽 계단으로 내려선다. 뒤 따르던 대원이 잘 못된 길이라고 소리치며, 철책문을 지나 계속 철책을 따라 걷는다.
철책 아래 야생화
철책문과 계단
다시 철책문 쪽으로 올라, 철책을 따라 진행한다. 군부대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사납게 들린다. 철책이 다시 왼쪽으로 90도 각도로 꺾이고, 철책을 따라 걷는 대원들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뿌옇게 보인다. 보이지는 않지만, 개 짖는 소리는 더욱 더 가까이 요란하게 들리고, 10시 55분, "국군 통신지휘사령부, 태기산 통신소" 팻말이 세워져 있는 부대 정문, 군사도로로 내려선다. 반대편 계단을 오른 후, 군부대 철책을 끼고, 약 30분 동안 왼쪽으로 돌고, 돌아, 군부대를 반 바퀴 돌은 셈이다.
서쪽 끝 철책
군부대 정문
군사도로를 따라 달린다. 앞에 류 회장이 안개 속에서 열심히 지도를 보면서 걷고 있다. 11시 8분, 대원들이 오른쪽 공터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무성한 잡목 숲이 키를 넘는다. 물방울이 맺힌 잡초를 헤집고 진행하려니, 얇은 여름옷이 금방 젖어온다. 등산로는 서서히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안개 속에서 대원들이 잡초 위를 둥둥 떠가는 듯 보인다.
군사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숲으로 들어서는 대원들
잡초를 헤치며 진행하는 대원들
등산로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지도상의 1,135m봉을 내려서는 모양이다. 울창한 잡목 터널이 이어진다. 길이 뚜렷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곳이다. 안부 갈림길 앞에 대원들이 모여 있다. 양쪽 길이 모두 뚜렷하다. 왼쪽 길에서 김 대장이 올라오며, 왼쪽은 아닌 것 같으니, 오른쪽으로 진행하자고 앞장을 선다.
숲 터널
갈림길에서의 독도
뚜렷한 등산로가 안개 낀 아름다운 숲으로 이어진다. 약 20여 분간, 작은 언덕도 넘어서며, 북쪽 방향으로 걷는다. 류 회장이 걸음을 멈춘다. 아무래도 서쪽 안부 쪽으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쳐서, 도계를 따라 걷는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안개만 없다면, 진행방행의 1056m봉을 보고 방향을 잡을 수도 있겠는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찾는 류 회장
앞서 달려갔던 김 대장이 되돌아온다. 역시 서쪽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친 것 같다는 이야기다. 김 대장은 방향만 보고, 서쪽 숲으로 들어서고, 일행들은 온 길을 되 집어 걸으며, 서쪽으로 난 길을 찾는다. 약 6~7분 쯤 되돌아 온 지점에서, 앞선 대원들이 서쪽으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길을 발견한다. 일행이 다시 모여 숙의를 한다. 확실한 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방향이 맞으니, 이 길을 택하기로 하고, 11시 49분 서쪽 숲길로 들어선다.
서쪽 희미한 길로 들어서는 대원들
12시 7분, 밤도깨비 님의 산행리본이 보이고, 김 대장도 이곳을 지났는지 "화요 맥'의 산행리본도 그 아래 걸려 있다. 12시 20분 정병훈/하문자씨 부부의 붉은 산행리본을 발견한다. 이윽고 안부를 거쳐 뚜렷한 등산로가 서북쪽 오르막 능선을 타고 오른다.
아름다운 강산 리본
산죽과 잡목이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몇 차례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 후, 12시 45분 경, 작은 봉우리 위에 오르니, 김 대장 이하 선두그룹이 점심채비를 하고 있다, 지도상의 1,010m봉이라고 짐작한다. 후미 그룹이 합류하여, 모처럼 전 대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 약 15분 후, 서둘러 점심을 마친 대원들이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북쪽으로 내려선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굽어,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1시 18분 경, 덕고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한강기맥 마루금 위로 올라선다. 지도상의 1,070m봉인 삼계봉이다.
삼계봉 도착
이곳은 횡성군, 평창군, 홍천군 등 3개 군이 만나는 곳이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의 세 강이 갈리는 곳이라는 뜻으로, 영춘지맥을 처음으로 종주한 박성태 님이 삼계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부터 청량봉까지 약 11Km는 영춘지맥과 한강기맥이 함께 이어지는 구간이고, 영춘지맥도 영월구간의 절반이 끝나고, 춘천 구간의 나머지 절반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삼계봉 부터 구목령구간은 지난 토요일 한강기맥을 하면서 걸은 구간이라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이제부터의 길은 둥산로가 뚜렷하여, 한두 군데 샛길만 주의하면 알바를 할 염려가 없다. 후미로 쳐져,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1시 39분, 오른쪽, 왼쪽으로 산행리본들이 어지럽게 걸려 잇는 1,075m봉에 이르러 오른쪽 가파른 내리막으로 달린다. 내리막길은 무성한 산죽 밭이다. 안부에 이를수록 벌목하고 버려둔 나무들이 가득하여, 진행을 방해한다. 안부를 지나 등산로는 다시 산죽이 깔려 있는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오르막으로 오를수록, 산죽의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하게 줄기만 남은 산죽 밭이 이어지더니, 2시 18분 경, 너른1,100m봉을 지나, 등산로는 왼쪽으로 크게 굽어진다.
1,075m봉
벌목지대
잎이 다 떨어진 산죽밭
안개가 걷히고, 이따금 햇빛이 비치니, 고산의 능선길이 더 더욱 아름답다. 키를 넘는 산죽 밭이 이어진다. 바닥이 보이지를 않으니,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끔씩 산죽위로 산행리본들이 방향을 알려준다. 이처럼 무성한 산죽 밭이 10여 분간 계속된다. 가히 고산을 걷는 기분이다. 등산로가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로 높은 산이 보인다. 지도상의 1,176m봉이라고 짐작한다. 지난 주말 한강기맥을 할 때는 개념도만 보고 흥정산(1,275.6m)이라고 착각을 했으나, 1/50,000 지형도를 보니 무명봉인 1,176m봉이 확실하다.
1,176m봉
산죽지대가 끝나고, 잡목지대가 이어진다. 나지막한 봉우리 두 개를 넘은 후, 2시 41분, 1,031m봉에 오른다. 정면의 등산로는 나뭇가지로 차단되고, 왼쪽으로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린다. 건너편에1,176m봉이 가깝고, 왼쪽으로 구목령이 보인다. 안부에 이르러 길이 평탄해지는가 싶더니, 양쪽이 절벽인 암릉길이 이어진다.
1,031m봉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고, 3시 정각 왼쪽으로 네모진 큰 바위를 지난다. 이제는 구목령이 지척이다. 3시 4분, 앞서 도착한 대원들이 쉬고 있는 구목령에 도착한다. 구목령은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와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를 잇는 고도 950m가 넘는 높은 고개이다. 평창군 쪽은 자연휴식년제의 실시로 차단기로 막아 놓았다.
길가의 네모진 바위
구목령에서 쉬고 있는 대원들
더덕을 캐느라 뒤로 쳐졌던 대원들이 도착하고,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구목령 근처를 돌아본다. 교통이 불편한 이 부근은 실로 오지중의 오지라 하겠다. 이곳을 와 본 사람들은 생곡리까지 걸어야 하는 불편함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이곳의 자연미와 조망에 매혹되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목령에서 내려오는 임도 1
구목령에서 내려오는 임도 2
임도에서 올려다 본 지나온 능선
엉겅퀴 꽃
꿀 꽃(?)
이 꽃 이름은?
트럭 도착이 늦어지나 보다,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천천히 내려가다가 트럭을 타자는 김 대장의 제안에 따라, 3시 16분 경,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며, 임도를 따라 내려선다. 날씨는 맑게 개어 조망도 즐길 수 있고, 길가의 야생화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다. 개망초가 흰 꽃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연보라 빛이 은은한 것이 멀리서 볼 때와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디가 까맣게 달린 오디나무 아래에서 대원들이 오디를 따 먹느라 여념이 없다. 3시 40분 경, 일행은 트럭에 올라,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우두령 휴게소로 이동한다.
(200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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