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산행을 마치고, “부처님의 법(法)이 머물고(住) 있는 절” 법주사를 둘러본다. 사진을 설명한 글들은 안내문과 법주사 홈 페이지에 실린 내용을 옮긴 것이고, 법당 안의 사진은 선답자들의 것을 퍼 온 것임을 부기(附記)한다.
1시 48분, 천왕봉에서 하산을 시작하여 상고암, 비로산장, 세심정 휴게소를 거쳐 3시 56분,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서, 템플스테이 수련장을 지난다. 새 건물이다. 한눈에 보아도 새로 마련된 수련장임을 알 수 있겠다.
식수원 저수지, 법주사가 가깝다.
템플스테이 수련장
조금 더 내려서서, 이정표, 법주사 일원안내와 속리산 법주사 안내도가 있는 입구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찰로 그 규모가 방대한 법주사에는 수많은 전각, 불상 등이 있고, 그중에는 국보,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 된 것들이 허다하다.
입구의 이정표와 안내도 등
속리산 법주사 안내도(사진 크릭하면 커짐)
속리산 법주사일원은 속리산의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 18,590,000m² (5,623,475평)을 말한다. 속리산의 대표사찰인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년) 의신(義信)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산세 험준한 속리산을 보고 이곳에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776년 진표(眞表) 및 영심(永深)스님이 대규모로 중창하고, 고려시대를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됐던 것을, 조선 인조 2년((1624년) 사명대사,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의 규모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내 유일의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 15호), 대웅보전(보물 제 915호) 등 국보 3점, 보물 12점, 천연기념물 1점, 도 지정문화재 25점이 소장되어 있다. 속라산 법주사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 4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속리산은 명승으로, 법주사 주변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산중에는 복천암, 탈골암 등 11개소의 전통사찰이 산재하고 있다.(이상 속리산 법주사일원 안내문에서 발췌)
속리산 법주사일원 종합안내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충정북도 유형문화재 제 167호인 속리산 사실기비(事實記碑)는 1666년(현종7년)에 세운 것으로 비석의 규모는 높이 163cm, 너비 65cm이며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의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속리산이 명산임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특히 수정봉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이 적혀 있는데 내용은 당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다.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동국(한국) 명산에 큰 거북이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재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니 거북 모습의 물형을 없애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에 태종은 사람들을 파견하여 곳곳을 찾다가 속리산 수정봉에 있는 돌 거북을 발견하고 그 목을 자르고 돌 거북 등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는 이야기이다.
법주사 벽암대사 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인 이 비석은 법주사를 크게 중창한 조선 중기의 고승인 벽암대사(1575~1660)의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현종 5년(1664)에 세웠다. 비문은 정두경이 지었고, 글씨는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썼다. 커다란 암반 위에 홈을 파서 세웠으며 규모는 높이 213cm, 폭 110cm, 두께 35cm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선승이며 승병장인 벽암대사는 임진왜란 때 해전에 참여하였으며, 인조 2년(1624)에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쌓을 때 8도도총섭에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시켰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승군 3,000명을 모은 후 항마군이라 이름 짓고 남한산성으로 향했으나 도중에 전쟁이 끝나 항마군을 해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금강문
호법신장
문수보살
보현보살
법주사로 들어오는 둘째 관문인 금강문에는 호법신장과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상이 안치되어있다.
사천왕문
사천왕상 좌상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46호인 사천왕문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창건되어 혜공왕(惠恭王) 12년(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고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백암선사(碧岩禪師)가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천왕문 안에는 손에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용과 여의보주를 들고 있는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칼을 잡고 있으는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의 사천왕아 절을 수호하고 있다. 법주사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천왕상으로 평가된다.
석연지 1
석연지 2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연지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서, 8각의 지대석 위에 3단의 괴임을 만들고 다시 복련을 두른 굄돌을 올렸으며,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연지를 받치고 있어, 거대한 석연지가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모양처럼 표현한 걸작이다. 높이 1.95m에, 둘레 6.65m에 이른다.
철확 1
철확 2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거대한 쇠솥은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로, 쌀 40가마를 담을 수 있는 크기라 한다. 법주사에 전해오는 말로는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여 승도들이 운집하였을 때, 신도들이 먹을 장국을 끓였고,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이 솥을 이용하여 배식했다고 한다. 보물 제1413호.
감로천
철확 옆에 감로천이 있다. 법주사를 찾은 많은 분들에게 '철확'의 공양 몫 대신, 목을 축여 갈증을 달랠 수 있는 물이라도 듬뿍 마실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팔상전
팔상도 일부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捌相殿-국보 제55호)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공사 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心柱)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팔상전 건립 경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전각 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선답자들의 사진 을 퍼다 옮긴다.
범종각
범종
팔상각 동쪽에 범종각이 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梵鐘), 문판(門板), 법고(法鼓), 목어(木魚) 등이 있는데,. 이 네 가지 법구가 불당 앞에 있기 때문에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고도 한다.
법주사 범종은 가경(嘉慶) 9년인 1804년(순조 4) 7월에 4천근의 동을 사용하여 만든 종이다. 이 청동 종은 대시주자 1명과 일반 시주자 15명에게 시주를 받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2004년 7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약사전과 요사채
약사전 내부
약사전은 중생을 병고에서 구제하시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약사여래의 이름을 외우고 가호(加護)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약사신앙은 우리나라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신앙이 되어 대부분의 사찰에 약사전이 건립되었다.
쌍사자석등 1
쌍사자석등 2
신라시대 석조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을 추정된다고 한다. 높이 3.3m, 널찍한 8각의 바닥 돌 위에 사자조각이 올려져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사천왕석등 1
사천왕석등 2
보물 제15호 사천왕석등은 우리나라 석등의 정형인 8각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높이 3.9m의 이 석등은 지대석, 하대, 중대, 상 받침대, 상대, 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상대 각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석등으로 불린다.
대웅보전
대웅보전 현판
삼신불
보물 제915호 법주사 대웅보전은 총 120칸, 건평 12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큰 건물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각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달하는 국내 소조불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삼신불(三身佛) 이 안치 되어 있다.
명부전과 삼성각
선희궁원당
대웅보전 부근에 있는 명부전과 삼성각 그리고 선희궁원당(宣喜宮願堂)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중 선희궁원당은 조선 21대 왕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곳으로, 176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1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로 지정됐다.
원통보전
목조관으보살 좌상
보물 제916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통보전은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義信組師)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떼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다시금 복원하였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상호로 봉안되어 있다.
원통보전은 정방형(正方形)의 특이한 건축양식으로서 조선 중기의 미묘하고도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고, 주심포계(柱心包系)의 단층 건물로 사모지붕에 절병통으로 조성된 특유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금동미륵대불
천불상
용화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금동미륵대불은 미륵보살님을 의미한다. 약 8m 높이의 화강석 기단 위에 25m 높이로 우뚝 솟은 이 거대한 청동불상 제조에 소요된 청동은 약 160톤에 이른다고 한다.
신라혜공왕 12년(776년)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하지만 조선조 고종 9년(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자금을 조달키 위한 당백전 주조를 구실로 불상을 몰수해 간다. 1964년 시멘트미륵부처님이 완성되고, 1986년 류월탄 지주스님이 붕괴직전의 시멘트불상을 해체하고 4년간의 작업 끝에 시멘트동상을 그대로 복제하여 청동불로 바꿨고, 2000년, 석지명 지주스님이 검푸른 청녹색을 벗겨내고 개금공사를 시작, 2년 후인 2002년에 본래의 금동미륵 부처님을 복원한 것이다.
금당미륵대불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龍華殿)이 있다.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한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선답자들의 사진을 퍼다 옮긴다.
적멸보궁
석가세존 사리탑
법주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다. 옛 능인전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재건 한 것 같다.
적멸보궁 뒤에 높이 3.5m.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인 석가세존사리탑이 있다. 1362년 공민왕이 홍건적을 격파하고 법주사에 행차하여 통도사에 봉안되어 있던 석가모니의 사리 한 개를 이곳에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석조(石槽)
720년(성덕왕 19년)에 조성되어 법주사가 번창하여 3천여 명의 승려들이 모여 살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30㎝, 길이 446㎝, 너비 240㎝, 두께 21㎝의 대형 화강암 석조로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바닥에서 맨 위에 이르기까지 4벽이 수직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어 단조로운 모습이나 윗면의 가장자리를 경사지게 깎아내어 모각이 없게 하였다.
벽체의 두께도 다르게 하여 긴 쪽은 23㎝, 짧은 쪽은 34㎝로 하여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남쪽 벽바닥에는 지름 11㎝의 구멍이 있어서 실제 용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서리 일부에 약간의 파손을 제외하고는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1980년 11월 13일 충북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마애여래의좌상
안내문(사진 크릭하면 커짐)
이후 부도전,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로 나온다.
333 법주사 부도전
일주문
매표소
명산을 걷고, 명찰을 둘러본 뜻 깊은 하루다.
(2016.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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