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랄리구라스

 

2012년 4월 13일(금)
새벽 5시 반 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눈이 소복이 내렸다. 밤중에 눈이 내리고, 다행히 지금은 상쾌하게 맑은 날씨다. 오늘은 곱테(Ghopte, 3430m)를 출발하여 타데파티 패스(Thadepati Pass, 3690m), 망겐고트(Mangengoth, 3420m)를 거쳐 쿠툼상(Kutumsang, 2410m)까지 도상거리 약 14.5Km를 이동한다.

밤중에 내린 눈이 소복하고, 지금은 맑은 날씨다.


 

지도

 

7시 45분, 롯지를 출발한다. 숲으로 들어서자, 빨간 랄리구라스에 하얀 눈이 내려 앉아 있다. 이제 햇살이 퍼지면 순식간에 꽃 위에 내린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연출되는 이런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울창한 숲 사이로 돌을 깔아 놓은 길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눈 덮인 고목 뒤로 멀리 만년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상큼한 아침이다.

랄리구라스 위에 내린 눈

 

 

완만하게 이어지는 돌길


 

고목에 내린 눈과 멀리 보이는 만년설

 

8시 25분 경, 호텔 나투랄(Hotel Natural)을 지난다. 이어 낙엽과 꽃잎이 떨어져 흩어지고, 히말라얀 그래스(Himalayan Grass)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끼 낀 돌길을 유장하게 걸어, 다시 랄리구라스 숲을 통과한다. 꽃 위의 눈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돌길


 

랄리구라스 숲

 

길이 골짜기로 내려선다. 응달진 곳에는 어제 밤 내린 눈이 그대로이고,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의 준봉들이 아름답다. 이어 누렇게 시든 잡목이 무성한 너덜지대를 지나. 사면 길로 올라서니, 저 앞에 타레파티의 롯지가 보인다. 길은 잠시 너른 광장을 지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오르내리는 트레커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프랑스 사람들, 영국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왼쪽으로 보이는 솔리 단다(Soli Danda)가 어제 내린 눈으로, 마치 만년설을 이고 있는 것처럼 장엄하다.

히말라야 준봉들


 

너덜길


 

타레파티의 롯지가 보인다.


 

오르고 내리며 만나는 트레커들


 

눈 덮인 솔리 단다

 

10시가 조금 넘어 이정표가 있는 타데파티 패스로 접근한다. 왼쪽은 솔리 단다를 지나 헬람부(Helamnu)마을로 이어지는 길이고, 직진하면 능선을 따라 내려서다, 랑탕국립공원을 벗어나, 헬람부로 들어서게 된다. 직진하여 롯지에 이르러, 차를 주문해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앞에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올라간다.

이정표가 있는 타데파티 패스


 

타데파티 롯지

 

커다란 초르텐이 있는 나지막한 둔덕이지만 사방이 트여 조망이 좋다. 헬람부로 넘어가는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뒤 북동쪽으로 돌제 히말(Dorje Himal) 방향의 만년설봉이 뚜렷하다. 이곳 타데파티에서 부터 할렘부 트레일 능선이 시작된다. 동쪽 건너편에 할렘부마을이 펼쳐져 있다.

초르텐이 있는 낮은 둔덕


 

동쪽 조망


 

헬람부마을


 

북동쪽 돌제 히말 방향의 조망


 

당겨 찍은 돌제 락파(Dorje Lakpa, 6973m)


 

타데파티 패스

 

타데파티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과 조망을 즐긴 후 능선길을 따라 가볍게 걷는다. 고도가 낮아지며 어느 사이에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늙은 랄리구라tm 숲을 통과한다. 마치 반 고호의 그림에나 나올 듯싶은 모양의 나무들이다. 이어 커다란 초르텐이 있는 공터와 아름다운 숲을 지나, 12시 30분 경, 해발고도 3,285m의 마겐고트(Magengoth), 라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여 점심을 주문한다. 라디오에서 무언가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파상은 오늘이 네팔의 무슨 기념일이라고 귀띔을 해준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니, 4. 11 총선거의 결과가 무척 궁금해진다.

늙은 랄리구리스 숲


 

아름다운 숲


 

라마 게스트하우스

 

롯지 앞마당 식탁에서 히말라야의 밝은 햇빛을 담뿍 받으며 행복한 점심식사를 즐긴다. 우리 일행 외에 중년 나이의 영국 여자 트레커 한 사람이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이번 트레킹 중에서 만난 트레커들 중에서 가이드만 데리고 다니는 가장 특이한 사람이다. 가이드만 있으니 물론 짐은 자신이 지고, 나이든 가이드는 빈 몸으로 앞장서서 걷는다. 궁금해서 이유를 묻고는 싶지만 선뜻 묻지를 못하고 헤어진다.

나이든 가이드가 앞장서고 커다란 배낭을 멘 여인이 뒤를 따른다.

 

망겐코트를 출발하여 30분 쯤 내려서서 롯지가 있는 큐오라 반장(Kyuola Bhanjyang, 3285)을 통과한다. 롯지 앞에 뷰 포인트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날씨가 좋아, 이런 뷰 포인트에 올라 주위 조망을 즐기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고도가 낮아지며 사람들 왕래가 많은지, 길이 넓어지고, 여기저기에 공터가 보인다.

로지 뒤 뷰 포인트

넓은 길, 저 앞에 쿠툼상 마을이 보인다.

 

3시, 고도 2,975m의 에버그린 뷰 호텔을 지나고, 이어 울창한 숲으로 들어선다. 숲을 벗어나자 신작로처럼 길이 넓어지고, 저 앞에 쿠툼상마을이 보인다. 마을이 가까워지며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넓은 공터를 지난다. 오른쪽으로 넓은 목장이 펼쳐진다. 이어 쿠툼상 마을로 들어서서, 마을 초입에 높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는 롯지로 들어선다.

울창한 숲을 지나고

공터

목장

뒤돌아 본 목장과 지나온 길

쿰부상 마을

 

이곳 롯지도 한산하다. 투숙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샤워를 하고 롯지에 걸린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입술이 부르트고, 얼굴이 새까만 낮선 네팔 인이 거울 속에 들어 있지 않은가? 체르고 리에 오를 때 눈에 반사된 햇빛에 덴 입술이 그 동안 많이 나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르튼 모양이고, 검게 변한 얼굴 여기저기에 저승 점 같은 반점들이 눈에 뜨인다.

 롯지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놀란다.

귀국하는 날, 카트만두 호텔에서 찍은 손이다. (얼굴은 차마 못 올리겠어, 손으로 대신한다.)

 

며칠 후면 귀국을 해야 하는데 이런 얼굴로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집사람이 이런 얼굴을 보면, 앞으로 해외 트레킹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할 것이 분명하겠다. 가이드 파상과 상의를 하여, 비방을 얻는다. 뜨거운 물에 소금을 넣고, 그 물에 수건을 빨아, 얼굴을 덮는다. 수건이 차가워지면, 다시 뜨거운 물에 넣었다, 다시 얼굴 덮기를 반복한다.

 

 

(2012. 6. 24.)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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