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레비나 패스를 넘어 만나는 광대한 너덜, 한 시간 이상 걸려 통과한다

 

2012년 4월 12일(목)
어젯밤에는 화장실 때문에 곤란했던 것 외에는 고도가 높아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편안한 밤을 지냈다. 화장실이 침실이 있는 본채에서 떨어져, 서쪽에 따로 있어서, 한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여니 눈보라가 집안으로 휘몰아쳐 들어와 기겁을 하고 문을 닫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문을 열어보지만, 눈보라를 헤치고 화장실로 갈 용기가 없어, 다시 문을 닫고, 반대편의 동쪽 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실례를 한다.

숙박했던 호텔 나마스떼, 열려있는 문이 동쪽 문이다.

 

오늘은 고사인쿤드(Gosinkund, 4,380m)를 출발하여, 라우레비나 패스(Laulibina Pass, 4,610m), 패디(Phe야 3,730m)를 거쳐, 곱테(Gopte, 3,430m)까지 약 13.5Km를 이동한다. 어제는 눈 때문에 라우레비나에서 다울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술루, 가네쉬히말로 이어지는 장대한 히말라야의 풍광을 보지 못했지만, 눈 덮인 절벽 길을 걸으며 설경을 즐기고,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라우레비나 패스로 오르며 어제 보지 못했던 히말라야의 장대한 풍광을 멀리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지도

 

8시경 호텔 나마스떼를 출발하여, 10여분 후, 이정표가 있는 문 닫힌 찻집을 지난다. 이정표는 술야쿤다(Suryakunda)까지 한 시간쯤 걸린다고 알려준다. 호숫가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눈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롯지들이 그림 같고, 그 뒤로 보이는 풍광이 마치 제주도 앞바다와 같은 옥빛이고, 그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진 모습이다.

이정표

히말라야에 웬 바다?

 

호수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을 올라 롱다와 다르쵸로 어지럽게 장식을 해 놓은 샘터에 이른다. 가이드 파상이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받아 마신다. 우리도 파상의 뒤를 따라, 4,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지의 샘물을 마신다. 신의 영역에 가까운 고지다. 라우레비나 패스로 오르는 길은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입구라 할 수 있겠다.

신성한 샘터

라우레비나 패스로 가는 길 1

 라우레비나 패스로 가는 길 2

 

 

 라우레비나 패스로 가는 길 3

 

고도가 점차 높아지며 어제 보지 못해 아쉬웠던 장대한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구름의 방해로 이들 고봉을 한 그림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9시 12분, 이정표가 있는 술야쿤다를 지난다. 이정표는 페디(Phedi)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준다.

다우라기리, 안나푸르나, 마나스루, 가네쉬히말로 이어지는 고봉들

가네쉬히말

가네쉬히말과 랑탕

이정표

술야쿤다

 

라우레비나 패스로 접근한다. 반대편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아름답고, 뒤를 돌아보면 랑탕리룽이 구름을 이고 있다. 10시경, 라우레비나 패스를 통과하며, 타르쵸가 펄럭이는 오른쪽 둔덕에 올라,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가까이 보이는 라우레비나 패스

뒤 돌아 랑탕리룽을 보고

라우레비나 패스에서 쉬고 있는 트레커들

둔덕 위에서 본 협곡

 

패스를 통과고, 페디를 향해 구름이 몰려오는 협곡으로 내려선다. 순식간에 구름은 산 사면을 타고 올라, 바위둔덕을 가리고, 우리들은 구름 속을 걷는다. 불모의 땅, 앞서 걷는 트레커들의 모습이 구도자들을 닮았다. 11시 7분 페디(3,780)에 도착하여 차를 마시며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라우레비나 패스를 통과하고

구름이 몰려오는 협곡

 순식간에 바위둔덕을 휩싸고

구도자의 모습을 닮은 트레커 편대 

 

 

 페디에서의 휴식

 

 

너덜지대를 지난다. 거대한 너덜이다. 흡사 신의 영역과 세속을 가르는 완충지역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간이 더 걸려서 비로소 너덜지대를 벗어나니, 저 아래, 운무 속에 롯지가 보인다. 12시 30분경 다와바비 레드폰다 롯지(Dawababy Red Panda Lodge)에 도착하여 점심을 주문하고, 롯지 마당의 식탁에 앉아 락시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트레커들은 모두 서양사람들 뿐이다. 우리들 외에는 동양인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너덜지대를 간다

레드 판다 롯지 마당

롯지 마당에서 본 왼쪽 절벽

 

한 시간이 넘는 점심시간을 즐기고 롯지를 출발하여 완만하게 이어지는 사면 길을 따라 하산을 계속한다. 눈사태지역을 지나고, 물 맑은 작은 도랑을 건넌다. 고도가 점차 낮아지며 푸른 나무들이 모습을 보인다. 산허리를 한 구비 돌고, 내리막을 거쳐, 눈 쌓인 오르막을 오른다. 정연하게 편대를 이루며 진행하는 영국인 트레커 팀을 카메라에 담는다.

눈사태지역을 건너고

영국인 트레커 편대 - 세번째가 린다 할머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영국 팀을 기다린다. 초년, 중년, 노년들로 이루어진 혼성팀이다. 인사를 하고, 편대이동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을 찍었는데, 메일주소를 알려주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뜻밖의 제안이었던지, 자기들끼리 잠시 시선을 교환하더니, 할머니 한분이 볼펜을 꺼내들고, 적을 곳을 달라고 한다. 메모지를 내주자, 메일 주소를 건네주며, 나이가 몇이냐고 묻는다. 71라고 대답을 하고, “당신은?" 하고 묻지만 대답이 없다. 메일주소로 미루어 볼 때 할머니 이름이 린다(Linda)인 것 같다.

산허리길

 

영국 팀 가이드에게 물어, 린다 할머니의 나이를 알아보라고, 가이드 파상에게 임무를 준다. 다음날 할머니 나이가 62세라고 알려온다. 귀국 후 편대사진과 그 외의 사진 5매를 첨부하여 메일을 보내고, 린다 할머니가 메일을 보았다는 메시지도 받았지만, 영국할머니로 부터는 아직까지 아무런 답신도 받지를 못한다.

히말라얀 그래스(Himalayan Grass)

 

4시 30분경, 곱테 멘도(Mendo)롯지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다. 우리가 투숙한 롯지에는 투숙객이 많지 않아, 전원이 난롯가에 둘러앉을 수 있고, 조용해서 좋다. 영국 팀은 아래 로지에 투숙한 모양이다. 이곳에도 샤워장은 없고 화장실은 역시 멀리 떨어져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앞뜰로 나와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황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멘도 롯지

히말라야의 황혼,

 

이제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해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아쉬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2012. 6. 20.)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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