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졸업

잡기 2012. 11. 30. 17:39

둘째의 졸업


2002년 3월, 유학길을 떠나는 둘째에게, 미국생활의 지침이 될 수 있는 몇 마디 당부를 주어 보낸 지 어언 4년, 재현이가 5월 13일 졸업을 한다.


어차피 비싼 항공료를 부담해야 하는 판이라, 동생네 부부와 우리부부 4명은 패키지 관광단에 끼어, 미 서부와 동부 관광을 마치고 뉴욕에서 관광단과 헤어진 후, 맨해튼에서 차를 렌트해 타고, 5월 11일 오후 보스턴에 도착한다. 피츠버그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첫째, 재욱이가 날아오고, 버클리에서 함께 공부하는 4촌 여동생까지 합류하니, 축하객 규모가 그럴듯하다.

Prudential Center Skywalk에서 4년 만에 함께 자리를 한 형제. 맨 앞이 둘째고, 맨 뒤가 첫째다. 가운데 아가씨는 저 보다 큰 콘트라베스를 하는 사촌이다. 역시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다.


보스턴의 날씨는 잔뜩 흐리고, 춥다. 대서양과 찰스강의 영향으로 습도가 높아, 마치 런던의 날씨처럼 음산하고,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보스턴 일대에 내일부터 내주까지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다. 미국의 일기예보는 정확하다. 비가 온다면 틀림없이 온다고 한다. 졸업식 행사는 실내에서 하기 때문에 비가 오더라도 별 지장이야 없겠지만, 비가 온다는 소리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재현이는 Berklee에서 Music Production and Engineering과 Music Synthesis 두 분야를 전공했다. 국내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것을 합치면 대학만 3번 다닌 셈이다. 제 형과는 달리, 예민하고, 감각적인 아이라, 외국에서의 힘든 공부를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고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처럼 거뜬히 해낸 게 무척이나 대견하다.

버클리 음대 앞의 세 식구


졸업식 전 날인 12일 저녁에는 졸업콘서트를 구경한다. 졸업콘서트인데도 Northeastern University의 실내 아이스하키장인, 너른 Matthews Arena가 꽉 들어찰 정도로 관객이 모여든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콘서트를 보고 있자니, 그 이유를 알겠다. 미국인들만큼 연출에 능한 사람들도 없다. 테너 색소폰의 귀재라는 Andy McGhee, 그래미상을 두 번씩이나 수상한 Melissa Etheridge, 그리고 흑인 가수의 여왕으로 불리 우는 Aretha Fraklin 등이 졸업생들을 동원하여, 연출하는 무대는 그야 말로 압권이다. 뉴욕의 쥴리어드가 고전음악을 하는 학생들의 산실이고, 보스턴의 버클리는 실용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요람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5월 13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10시에 시작한 졸업식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질서 있게 진행된다. 40여 개국에서 참여한 졸업생 수가 807명이나 된다. 참으로 탐나는 비즈니스다.

교수진

졸업생

학부모들

졸업장을 받는 둘째


재욱이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12시가 조금 넘어 먼저 비행장으로 향하고, 12시 30분 경 졸업식을 마친 우리 일행은 점심을 끝낸 후, 내일 아침 출발하는 귀국 비행기를 타러, 2시 30분 경, 빗속을 뚫고 뉴욕을 향해 달린다. 빠듯한 일정에 비까지 내려, 1983년 AMP 과정을 하느라, 3개월 여 머물었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도 둘러보지도 못하고 출발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제 재현이는 1년 정도 인턴 생활을 하며 학교에서 익힌 이론을 현장에서 실습을 한 후 귀국을 하게 되고, 박사 과정 3년차에 접어든 재욱이는 2년 후에나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한순간에 망하려면 주식투자를 하고, 서서히 망하려면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내라." 라는 말이 있다. 서서히 망해가는 두 늙은이가 짱아를 벗 삼으며 지내야하는 생활이 당분간은 더 계속되어야하겠지만, 아이들을 넓은 세상으로 내 보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18일간 강아지 호텔에 머물었던 "짱아"를 데려온다. 스트레스를 받아 설사를 했다더니, 다소 말라보이고, 반갑다고 눈물에 콧물에 얼굴이 말이 아니지만, 많이 삐졌는지, 왠지 분위기가 서먹하다. 거실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불러도 잘 오지를 않고, 밥 때만 되면 밥 먹자고 떼를 쓰던 버릇도 없어졌는가하면, 새롭게 눈치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 빨리 "짱아"가 다시 발랄한 제 모습을 찾도록 신경을 써주어야겠다.


(2006. 5. 23.)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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