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兄!

잡기 2012. 11. 30. 05:33

李 兄 !


리조트는 이번 폭우에 별 피해 없었겠죠? 워낙 야무지게 관리하시니 끄떡없으리라 믿소.

너무 환대를 받았소. 리조트 入口에서부터 社長이 직접 迎接을 하질 않나, 가장 최근에 지었다는 빌라 동에 물 청소까지 시켜 놓고 待機하질 않나, 여자 한방, 남자 한방, 큰 방 두 개면 족하다고 귀뜸을 했었건만 우리가 무슨 청춘 남녀라고, 그래서 하루라도 거르면 큰일이라도 날까봐, 쌍쌍이 각 방을 주질 않나....
이렇게 마누라들 氣를 돋아 놨으니, 앞일이 걱정이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리조트에서 지냈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오. 2003년 8월 21일 아침 6시 40분. ES 리조트 빌라 동 864호 베란다에 섰을 때, 그때 맡았던 축축한 공기 냄새, 그리고 안개를 차일 같이 이고 있는 충주호, 그 뒤 안개 사이사이로 우쭐우쭐 솟은 산 봉오리들. 목청껏 울어대던 닭 울음소리. 어느 하나 쉽사리 떨쳐지질 않소.

淨芳寺 가는 길을 박정렴 여사가 직접 가이드 하셨으니, 이것도 또한 과분한 일이요. 李 兄이 없었으니 좀 장황하더라도 보고를 하리다.

淨芳寺는 구름다리를 지나 능선 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진돗개들이 묶여 있는 곳에서 오른 쪽 골짜기 쪽으로 난 길을 택합디다. 돌들이 울퉁불퉁 솟아 있고, 물이 흘러 미끄러운데, 곳곳에 경사진 곳이 많아, 등산화도 신지 않은 婦人들이 落傷이라도 할까봐 꽤나 걱정을 했지만 역시 福順伊들이라 전원 무사히 淨芳寺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섰소.

山寺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호젓해, 절을 찾는 사람들 외에는 인적이 드물 터인데도, 제천시가 시멘트로 포장을 했다고 부인께서 설명해 주십디다. 이 좋은 곳을 시멘트로 덮어 망쳐 놓다니...李 社長이 제천 市長에게 당장 뜯어내라고 호통을 좀 치소. 이따금씩 지나치는 차들이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데 절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차량 외에는 모든 차량의 출입도 금지시키라고 하고.

습기로 눅눅한 산길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한 시간 여를 오르는데도, 李 社長이 없으니 조용하기만 합디다. 어젯밤 폭우로 군데군데 물로 끊긴 도로를 징검다리 건너듯 서로 의지하며 건너는 재미로 가끔 웃음꽃이 피기는 하지만 산사로 가는 길은 고즈넉하기만 하오.

의상대사의 石杖이 날아서 알려 줬다는 절터는 깎아지른 石壁인데, 그곳에 마치 제비집을 틀 듯, 암자 몇 채가 매달려 있더군. 그러니 감히 大雄殿이란 팻말도 붙이지 못한 방에 부처님이 앉아 청풍호를 굽어보시는데, 그 표정이, 석굴암 터 부럽지 않다는 듯 느긋하시기만 하더군. 김 선인 여사가 이런 절경을 보고 어찌 한 말씀 없으리, " 짤츠캄머굿 저리 가라."

淨芳寺 石間水가 逸品입디다. 암벽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돌 함에 흘러 넘치게 해 놓아, 마치 한 그릇 井華水처럼 정갈해 보이는데, 의외로 물은 차지를 않고, 물맛이 무척 부드럽더군. 부인께서 무슨 광물질이 함유돼, 몸에도 좋다하시던데,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소.
李 社長이 일 주에 3번 정도 이 절을 오르내리면서 冥想도 하고, 사업 구상도 하면, 당뇨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도 없어 보이던데, 어떻소, 빙신들 조언도 좀 들으시구려.

淨芳寺 길은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재미가 있었소. 한 시간 이상을 자연 속에 묻히니, 그 사이 同化가 된 모양인지, 내려올 때는 모든 여성 동지들이 서슴지 않고 맨발이 되어 물로 끊긴 길을 점벙점벙 건너고, 길 옆 개울가에 정강이까지 담그고 시원해 합디다. 李 兄도 그 광경을 보아야 하는 건데... 다행히 증명 사진 몇 컷을 찍어 두었으니 나중에 감상하시도록.

내친 김에 이 사장 어부인께서는 우리들에게 얼음 골도 보여 주고 싶으셨던지 능강 계곡까지 내려가서, 제일 먼저 신발을 벗어 물가에 놓고, 冷氣가 감도는 계곡으로 첨벙 들어가십디다. 다른 여성동지들도 질세라 신발을 벗어 놓고, 그 뒤를 따르지만, 물이 차고, 물살이 빨라 얼마 견디지 못 하고 되나오더군. 평소에는 그런 대로 窈窕淑女 티를 내던 婦人들이 李 社長의 自由奔放함이 전염이 됐는지 거칠 것이 없다는 듯 즐거워하데.

民泊한다는 팻말을 본 것은 이 부근일세. 다시 오고는 싶은데, 이 사장이 뭔가에 삐져 방 안 빌려줘도 민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微笑가 떠오르고 즐겁지 뭔가.

"삐져보라지! 누가 겁내나?"

하지만 리조트 정문을 지나, 까페와 로맨틱 가든 옆을 지나자니 다시 맥이 빠집디다.
맛있는 저녁식사 후의 포만감 속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가끔씩 흘러간 名畵의 場面, 場面을 보면서 저 만치 어두움 속에 멍하니 홀로 앉아, 어둠의 일부가 되는 나를 생각하니 또 화가 납디다.

파란 잔디와 붉은 색 체크무늬의 테이블 보, 긴 식탁에 점점이 놓인 호롱불, 맛있는 음식, 부드럽지만 제법 度數가 있는 레드 와인, 고기 굽는 냄새, 즐거운 表情, 表情들, 그리고 정다운 談笑.

아침식사는 또 어땠나? 일류 호텔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두툼하고, 부드러운 하얀 토스트, 운치 있는 슈거와 밀크 포트, 종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제 그릇에 담아 서비스하던 꿀과 버터, 짜지 않게 조리된 베이컨, 부드러운 소시지에 커피 맛이 기가 막히지 않았나? 이 집의 스테이크를 맛보고 싶어지더군.

얄미울 정도로 신경을 써 놓은 李 社長 솜씨에, 고약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회원권을 사는 도리밖에는 없겠고, 회원권 살 때 심사나 잘 해 달라고 부탁하려니 괜히 심사가 틀리네.

長醉 大醉라고 했나? 담배끊어 컨디션 좋다고 술 많이 한다더군. 大醉하는 것, 남자다워, 보기는 좋겠지만, 이제 우리 나이쯤이면, 愛酒 하는 방법을 배우시게나. 빙신들 사고 방식이긴 하지만 愛酒도 멋이 아니겠나?

自然 속에서, 사람들 틈에서, 살고 싶다는 꿈. 三十餘年 앞을 내다보는 叡智, 꿈을 방해하는 者들에 대한 거센 抵抗,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多情多感. 李 兄은 진정 自然人일세.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부디 健康에 신경 쓰시기를.

어찌됐건, 답답할 때, 또는 사람이 그리울 때면 연락을 하리다 그 때 다시 만납시다. 하지만 大醉는 사양하오.

어부인께 안부 전해 주시오.


2003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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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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