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코리아] 조선 최후의 신도시, 최첨단 전투요새, 수원화성
서장대에서 내려서서 서포루(西砲樓)에 이른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서장대에서 내려다 본 행궁
서포루-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설치한 포루다
밖에서 본 서포루
성벽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지형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성을 공격하는 적진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성곽을 구불구불 설계했기 때문이다. 서일치(西一雉)를 지나 서북각루(西北角樓)에 이른다. 서북각루는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높은 곳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한 곳이다. 1층에는 온돌을 설치, 숙직하는 군사들을 배려했다고 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서일치(西一雉)를 지나 오른쪽으로 굽어지고
서북각루 - 굴뚝이 보인다
서북각루에서 본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북쪽조망
화서문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는다. 오른쪽 공터에 성벽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작업하는 모습의 조형물을 전시해 놓았다. 화서문에 들어선다. 화서문은 화성 4대문 중의 하나인 서문이다. 정문인 팔달문이나 북문인 장안문보다 성문의 크기는 작으나, 성문 바깥쪽에 옹성을 쌓았는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편액은 초대 화성 유수이자 정조대왕의 최측근인 채제공(蔡濟恭)이 썼다고 한다. 화서문은 축성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보물 제404호로 지정되었다.
서장대에서 화서문으로 내려서는 길
성 축조 공사장 모형
화서문
공사실명제
화서문 현판
이어 보물 제 1710호인 서북공신돈(西北空心墩)을 가까이 본 후, 지금의 경계초소격인 북포루, 그리고 화포공격이 가능한 북서포루와 북서적대를 차례로 지나,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에 이른다.
공심돈(空心墩)은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적을 공격할 수도 있은 시설이다. 수원화성에만 있다. 서북공신돈은 3층 건물인데, 아래쪽 치성부분은 석재로, 그 위쪽부분의 벽체는 벽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1797년(정조 21년) 서북공신돈을 방문 한 정조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신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710호로 지정되었다.
서북공신돈 1
서북공신돈 2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5년(정조 19) 2월 20일 완공되었다. 장안문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의 북서포루(北西砲樓)와 함께 성벽에 다가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북포루
성 밖에서 본 북포루
성안에서 본 북서포루
성 밖쪽의 북서포루
적대(敵臺)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에 설치한 치성 위에 만든 포대다. 4대분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있다. 장안문 서쪽에 위치한 서북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아, 치성 밖 아래쪽에서 다가오는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3개의 현안(위아래로 길게 낸 구멍)을 만들고, 담장마다 총안을 내었다.
서북적대 1
서북적대 2
서북적대 3
용이포
안내동판
장안문(長安門) 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장안문
서북적대에서 본 장안문
장안문 현판
장안문을 둘러보고 동북적대 위에서 가야할 북동포루, 방화수류정 등을 바라본다. 이어 북동치, 동북포루, 화홍문를 지나 방화수류정에 도착하여. 한동안 주변을 둘러본 후, 북암문, 동암문, 동북포루를 거쳐 동장대에 이른다.
동북적대에서 바라본 동쪽조망
멀리서 본 동포루 -, 장안문과 홍화문 사이의 포루
밖에서 본 북동포루
화홍문은 수원화성의 북쪽 수문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수원천을 관리하여 범람을 막아주는 역할과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화성을 이중으로 지키는 방어문의 역할을 한다. 화홍문은 화강암으로 쌓은 다리 위에 지어진 문으로, 7개의 홍예문 위에 누각을 세웠다. 화홍문의 7개 수문을 통해 수원천의 맑은 물이 흐르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이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화홍문을 감싸듯 퍼지는 광경을 ‘화홍관창’이라 부르며 수원8경 중 하나로 꼽았다. 화홍문 옆에는 조선 정자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두 아름다운 건축물과 수원천의 물줄기가 어우러져 수원성곽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화홍문
방화수류정
현판
용연과 방화수류정
북암문-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다
북암문 2
동암문 -동북포루와 동장대 사이에 있는 암문
동암문 2
동북포루(東北舖樓), 동암문과 북암문 사이에 있는 초소.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감시한다.
장대(將臺)란 성곽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고 있던 정조의 친위대,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에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 있어 연무대(鍊武臺)라고도 한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능선이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성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동장대
동장대를 뒤로하고 주변 조망을 즐기며 동북공심대, 동북노대를 거쳐 창룡문에 이른다.
멀리 본 동북공심대
하늘에 뜬 기구
성벽에서 내려다 본 동공원 방향 조망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이 있다. 동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다. 형태는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 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서북공심돈 1
서북공심돈 2
노대(弩臺)는 성 가운데에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것으로서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반달 모양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다.
안에서 본 동북노대
밖에서 본 동북노대
동북노대 - 계단 올라 안에서 찍은 사진
창룡문(蒼龍門)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다. 현판은 판부사 유언호(兪彦鎬)의 글씨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창룡문
창룡문 현판
공사실명제
창룡문을 둘러보고, 동일포루, 동일치, 동포루, 동이치를 지나, 봉돈에 이른다. 10시 경부터 시작한 화성탐방이, 어느덧 4시가 넘었다. 6시간이 넘게 화성을 둘러보고 있지만,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합리적, 실용적인 설계와 새로운 공법에 의해 태어난 아름다운 신도시에 흠뻑 매료됐기 때문이다.
동일포루(東一舖樓) 평탄한 곳에 설치하여 서쪽 고지대의 포루에 비해 성벽에서 더 많이 돌출되었다.
동일치(東一雉)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다.
동포루(東砲樓)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7월 16일 완공.
동이치(東二雉)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있다.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적인 시설이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낸다. 다른 4개의 횃불구멍은 긴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않았다.
봉돈
봉화신호체계
봉돈을 둘러보고 성벽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선다. 왼쪽 성벽 너머로 수원 시가지가 가깝게 내려다보이는데 그중에서 아름다운 수원제일교회가 눈길을 끈다. 이윽고 동이포루에 이르러 잠시 포루에 올라 주위를 둘러본 후, 동삼치, 동남각루을 지나 남수문에 이른다.
눈길을 끄는 수원제일교회
동이포루(東二舖樓), 동쪽 감시초소, 봉돈을 방어하기 위해 1796년 7월에 완공했다
동이포루 단청
동삼치(東三雉)-동이포루와 동남각루의 중간지점에 있다.
뒤돌아본 동2포루와 기구
동남각루(東南角樓)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이다.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남각루
동남각루 2
남수문(南水門)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이다. 수원천 하류 수량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 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시작되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남수문
마지막으로 남수문을 둘러 본 후, 인파가 운집해 있는 영동시장을 지나 팔달문에 이르러 장장 7시간 가까이 걸린 수원 화성 탐방을 마친다.
영동시장
팔달문 정류소에서 버스로 수원역으로 이동하고, 수원역에서 분당선 전철에 올라, 자리를 잡고 나니, 비로소 피로감이 느껴진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루한 전철 속에서 오늘 둘러본 화성을 반추한다.
이처럼 멋진 신도시를 만든 우리 조상들이 무척 자랑스럽다. 일제 때 의도적으로 훼손되고, 6.25사변 때 무참히 파손된 화성을 이처럼 훌륭하게 복원하면서 겪었을 수원시의 어려움이 내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수원화성 복원의 일등공신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화성성역의궤”라 하겠다.
* 수원화성 시설물 소개는 주로 수원문화재단의 것을 옮긴 것이다.
(2016.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