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현에서의 단체사진- 경담 사진


2006년 12월 9일(토).

오늘은 잭 대장이 안내하는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을 산행한다. 금년 2월에 숫돌고개에서 시작, 북으로 행로를 잡아, 14구간을 산행한 끝에 오늘 수피령에 도착하여 종주를 마감하는 뜻 깊은 날이다.


연말이 되다보니, 산행계획이 한꺼번에 몰린다. 참여자들이 적어, 한 동안 중단했던, S산악회의 구목령에서 불발현까지의 한강기맥 산행일정이 내일로 잡혀있고, 월요일 하루 쉬고, 모래 화요일은 진양기맥을 종주하는 날이다. 연달아 이어지는 산행 중, 어느 한 곳 정도는 포기하는 것이 좋겠는데, 포기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다.


종주를 마감하는 날이라, 오늘 산행에는 산이사회 회원 16명이 참여한다. 평소보다 다소 많은 인원이라, 25인승 밴을 동원하니, 좌석이 널널하다. 예정보다 15분 정도 늦은, 7시 45분경에 상봉역을 출발한 밴은 47번 국도를 북상한다. 어제 밤에 내리던 비는 그치고, 날씨는 잔뜩 흐려있다. 서울 경기 지방은 오후부터 갠다는 예보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후, 밴은 이동을 지나, 광덕고개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야가 하얗다. 이곳은 어젯밤에 눈이 내린 모양이다. 밴이 다시 광덕고개에서 잠시 머문다. 차에서 내려서니. 광덕고개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알리는 반달곰이 하얗게 눈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광덕고개


밴이 강원도로 들어선다. 도로변에 펼쳐지는 설경에 버스 안이 어수선해 진다. 대원들은 마지막 구간에 설중산행을 즐길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많이 설레는 모양이다. 10시 5분 경, 눈 쌓인 하오현에 도착한다. 산행 들머리에는 산행을 시작하는 다른 종주 팀이 보인다.

 

들머리도착- 다른 산행 팀이 산행을 시작한다.


밴에서 내린 대원들은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설중산행 준비를 마치고, 藝苑대원이 준비해 온 "한북정맥 완주"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한다. 완주도 하기 전에 완주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산(山)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알아차린 대원은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없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10:05) 들머리 도착-(10:12) 산행시작-(10:38) 하오현-(11:17) 헬기장-(11;32) 암릉지대-(11:55) 1150봉/정상석-(12:18~12:45) 1152봉/삼각점, 중식-(13:00) 헬기장-(13;52) 1차 알바 후 삼거리 회귀-(14;33~14:35) 950m봉/헬기장/알바, 탈출-(15;51) 잠곡리 방향 계곡-(15:56) 임도-(16:02)-하산 결정-(17:04) 잠곡리 샛말 외각 임도-(17:30) 56번국도』


약 7시간 18분을 산행한 셈인데, 그 내용은 들머리 26분, 1차 알바 약20분, 중식 약 30분, 마루금 약 3시간 30분, 2차 알바 및 탈출 2시간 32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자료를 보면, 하늘이 도와서 알바를 하게 되고, 그래서 해 떨어지기 전 하산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하오현에서 950m봉 헬기장 까지, 순수하게 마루금을 걸은 시간은 약3시간 30분이다. 하오현에서 수피령까지의 도상거리가 약 12Km이고, 950m봉 헬기장까지는 약 5.5Km, 따라서 헬기장에서 수피령까지는 약 6.5Km가 남는다. 탈출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수피령까지 갔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눈 때문에 약 5.5Km의 거리를 3시간 30분에 걸은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해 떨어지기 전의 하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 * * *


10시 12분 경, 도로를 건너 들머리 임도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눈 쌓인 임도를 줄지어 걸어 오르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다. 일행은 10시 38분 경, 하오현에 도착한다. 지난번 하산할 때는 17분이 걸리던 곳이 오늘은 26분이나 걸린다. 그만큼 눈길이 시간을 지체시킨다는 이야기이다.

임도를 걷는 대원들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타이어 계단길을 오르기 전에, 아직 아이젠을 하지 않은 대원들이 아이젠을 착용한다. 모처럼 착용하는 아이젠이라 시간이 걸린다. 한쪽에서는 현수막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자고 독촉이다. 이윽고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일행은 줄지어 타이어 계단을 오른다.

 

타이어 계단을 올라 마루금


눈 덮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사방이 어두워진다. 11시 17분, 헬기장인 1030m봉을 지나고, 바위지대에서 암봉을 우회한다. 11시 44분, 로프가 매어져 있는 바위길을 지나, 11시 55분, 정상석이 있는 1150m봉에 오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시계를 가린다.

로프를 잡고 암릉을 우회한다.

복주산 정상석


복주산에는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1150m봉)와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1152m봉)가 다르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는 헬기장으로,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 보다, 약 2m 정도가 더 높지만, 군 시설 이용에 방해가 되어, 그곳에 있던, 정상석을 1150m봉으로 옮겨 놓았다는 설이 있다.


눈 쌓인 가파른 바윗길을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아 미끄러지며 안부로 내려서고, 암봉을 우회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12시 18분, 삼각점이 있는 너른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는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점심채비를 하고 있다. 시계(視界)는 2~3미터 정도가 고작이다.

 

가파른 바윗길을 엉덩이로 미끄러지며 내리고,

1152m봉의 삼각점

점심채비를 하는 대원들


갈 길이 바쁘다. 서둘러 점심을 마친 대원들은 12시 45분 경, 헬기장을 내려선다. 눈은 여전히 내리지만, 바람이 없고, 춥지가 않아 다행이다. 1시에 다시 너른 헬기장을 지난다. 눈을 치우기 위한, 빗자루와 가래가 비치돼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빗자루와 가래가 비치된 헬기장


임도를 따라 걷는다. 자욱한 눈길을 걷는 대원들은 잔뜩 움츠린 모습이고, 하얀 나뭇가지에 걸린 산정산악회의 노란 표지기가 반갑다. 1시 28분, 작은 헬기장을 지나고, 2~3분 후, 왼쪽으로 표지기들이 요란하게 매달린 곳을 지나, 임도는 오른쪽으로 굽어진다. 무심코 한동안 따라 내려가다 보니, 방향이 이상하다. 알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임도길에서 알바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深山대원과 함께 임도를 내려선다. 저 아래 대원들이 진행을 멈추고, 모여 있다.

 

임도를 걷는 대원들

1차 알바 직전, 작은 헬기장 통과


걸음을 멈추고, 개념도와 나침반을 보니, 우리들은 지금 엉뚱하게 동쪽으로 내려서고 있지 않은가? 그대로 계속 진행하면, 실내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대원들 중 누군가가 선두 잭 대장에게 전화를 하고, 일행은 임도를 되올라가, 1시 52분, 표지기들이 요란하게 달린 곳에서 오른쪽으로 타이어 계단을 내려선다. 선두에 섰던, 잭 대장은 뒤따라 왔지만, 그 앞을 달리던 오 사장은 결국 혼자 실내고개로 내려서서 산행을 마감하게 된다.

 

삼거리 회귀


2시 17분경, 892m봉을 지나고 안부를 거쳐, 급경사 오르막을 오른다. 눈 속에서 아이젠 한 짝을 잃어버려, 급경사를 오르는데 자꾸 미끄러진다. 3시 33분, 헬기장인 950m봉에 올라, 잠시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고, 약 5분 후 선두를 따라 무심코 직진하여 헬기장을 내려선다. 두 번째 알바, 그리고 결국 탈출이 시작된다.

 

950m 헬기장에서 직진, 2차 알바 시작


10여분 쯤 진행하자, 일행들이 모여서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의견들이 분분하다. 다시 개념도를 꺼내고, 나침반을 본다.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방향은 북서방향인데, 가야할 방향은 동북방향이다. 알바가 틀림없다. 알바를 인식했으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헬기장인 950m봉으로 되돌아서는 것이 정도(正道)인데, 여기서도 또 무조건 동북쪽 능선을 타고 내리는 선두를 뒤 따른 것이 잘못이다.


잠시 후, 철조망으로 능선을 막아 놓은 곳에 이른다. 심천 대장과 나는 오른쪽 송림으로 내려서며, 길을 찾고, 잭 대장은 철조망을 우회하여, 능선길에서 일행을 부른다. 능선을 내려서서, 너른 안부에 이르고, 일행은 오른쪽 골짜기를 따라 내려선다. 골짜기가 북서방향으로 이어진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잠곡리로의 탈출은 가능할 것 같다.


다행히 눈은 멎고, 주변이 밝아진다. 머루나무 덩굴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아름답다. 3시 56분,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를 따라 동쪽으로 오르니, 촛대봉이 우뚝한, 눈 덮인 한북정맥의 우람한 마루금이 눈앞에 펼쳐진다. 시야가 트이고, 이제 갈 길이 확실해진 셈이다. 임도를 계속 따라 오르면, 어딘가에서 마루금으로 이어지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다. 벌써 4시 2분, 산행을 계속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아름다운 머루덩굴 길

임도

임도에서 본 정맥 마루금


하산하기로 결정을 하고, 임도를 따라 내린다. 뒤돌아보니 알바를 해서 올랐던, 945m봉이 우뚝하고, 골짜기로 내려섰음직한 능선이 보이는 것 같다. 계속 임도를 따라 내리며, 뒤 돌아, 힘차게 흐르는 정맥능선을 보고 또 본다. 오른쪽 저 아래로 마을과 밭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어딘가에서 56번 국도로 내려서겠지만, 정확한 지형도를 갖고 있지 않으니, 얼마를 우회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알바를 해서 지난 945m과 골짜기로 떨어지는 사면


5시가 가까워진다. 사방이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일행은 마을 쪽으로 떨어지는 만만해 보이는 능선을 택해,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숲으로 들어선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고, 밭을 지나. 5시 4분,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선다. 정면으로 정맥의 마루금이라고 짐작되는 능선이 어둠 속에 뚜렷하다.

 

어두워진 임도에 내려서서 본 능선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들어서자, 동내 개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며 요란하게 환영을 한다. 길가의 민가에서 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아주머니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곡리, 샛말'이라고 알려준다. 5시 30분 경, 잠곡 초교 부근, 56번국도 변에서 산행을 마감하고, 밴을 기다린다.


오늘의 실패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할까?

 


(2006. 12. 17.)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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