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울과 겨울의 공존 -신로봉 능선의 단풍, 눈 덮인 정맥 마루금
올 가을은 유난히 짧은 느낌이다. 가뭄이 계속되고, 여름 같은 가을이 지속되면서. 단풍도 꺼칠하게 윤기가 없더니, 한 두 차례 비가 왔나 싶었는데,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은 아직 퇴각도 하지 못했는데, 겨울이 진주해 온 것이다.
2006년 11월 18일(토).
잭 대장이 안내하는 한북정맥 12번째 산행일이다. 김장철이라 회원들이 많이 바쁜 모양이다. 오늘 참여인원은 모두 10명. 15인승 봉고인데도 자리가 널널하다. 병아리처럼 작고, 귀여운, 노란색 봉고가 이른 아침 찬 공기를 뚫고, 북진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설쳐댄 후라, 따듯한 차안에 들어서자, 얼마 되지 않아 모두들 곯아떨어진다.
내촌을 지나면서, 한 두 사람씩 깨어나더니, 차인이 소란해지기 시작한다. 여성대원들을 배려한 잭 대장이 운악산 휴게소에서 잠시 차를 멈추게 한다. 차 밖으로 나서니, 생각보다 썰렁하다. 어제가 수능 시험일, 수은주가 급강하 하더니, 오늘도 그 여파가 지속되는 모양이다.
일동을 지난다. 추수가 끝나 텅 빈 논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완연한 초겨울 풍광이다. 9시 5분, 봉고차는 불땅계곡 표지석 앞에 정차한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산행준비를 마치고, 단체기념사진을 찍은 후, 9시 10분 경,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 - 잭 대장 사진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09: 05) 불땅계곡 입구-(09:10) 산행 시작-(10:03) 도성고개-(10:21) 위험표지판-(10:25)헬기장-(10:56)이정표<도성고개1.8K,민둥산 0.75K>-(11:17~11:24) 민둥산 정상-(11:32) 이정표<민둥산 0.30K, 국망봉 2.70K>-(12:17~13:30) 견치봉 정상, 중식-(13:41) 이동면 갈림길-(14:02) 1,150m봉 갈림길-(14:15~14;20) 국망봉-(14:37) 헬리포트 1-(15:00) 헬리포트 2-(15:21) 헬리포트 3-(15:28) 삼각봉-(15:31) 신로령-(15:36) 신로봉 -(15:45) 다시 신로령-(16:42) 휴양림 갈림길 공터-(17:07) 국망봉 휴양림 매표소』중식시간 73분 포함, 총 7시간 57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임도는 얼어서 딱딱하고, 텃밭에 조금 남아 있는 푸른 배춧잎에 서리가 하얗게 엉켜있다. 서리가 깔린 낙옆을 밟으며, 임도를 따라 숲으로 들어선다. 나뭇가지에 서리꽃이 하얗고, 언제 내린 눈인지, 앞산이 희끗 희끗하다. 산속은 이미 한겨울이다.
서리꽃
눈 덮인 가파른 사면을 줄지어 오르는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니, 문득 영화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정부군에 쫓겨, 눈 쌓인 산으로 쫒긴 반란군에, 철교 폭파 임무를 띠고 잠입한 게리 쿠퍼, 그리고 잉그릿드 버그만과의 만남과 사랑, 그 영화의 명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명멸한다.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영화를, 심산 대원과 함께 반추하며 걷는 산길은 또 다른 재미다.
영화 장면을 연상시켜준 눈길
10시 3분, 도성고개에 도착한다. 지난번 하산 할 때는, 1시간 5분이 걸렸었는데, 오늘은 오르막인데도 53분이 소요됐다.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도성고개에는 트럭이 한 대 올라와 있고, 부인네들 대여섯 명이 방화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남쪽 방화로
방화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오른쪽으로 위험 표지판이 보이고, 경사가 급해지더니, 10시 25분,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있고 <도성고개 0.7K, 민둥산 1.8K>, 조망이 훌륭하다.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서쪽 조망
가야할 민둥산과 개이빨산
헬기장에서 북쪽 사면으로 내려선다. 눈 덮인 방화로에는 발자국이 없다. 한동안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눈이 이렇게 쌓였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패츠 준비도 없고, 겨울 등산화도 신지를 않아, 발이 젖을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눈길에 최초로 발자국을 남기는 기분은 싫지가 않다.
헬기장 북쪽 내리막길
10시 54분,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서, 뒤돌아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멀리 운악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청계산에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련하다. 10시 56분, 무명봉에 오른다. 이정표가 서 있다. <도성고개 1.8K, 민둥산 0,75K> 민둥산과 개이빨산이 가깝다.
지나온 길
민둥산
개이빨산
진달래 군락지를 통과하고, 이정표 <민둥산 0.30K>를 지나, 11시 17분, 민둥산 정상에 오른다. 눈 덮인 너른 헬기장이다. 이정표<도성고개 2.55K, 국망봉 3.00K>, 정상석(1008.5m)과 119 비상연락처 팻말이 있고. 동쪽으로 용수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견치봉이 가깝고, 동쪽으로 멀리 화악산이 보인다.
민둥산에서 본 견치봉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선다. 눈길이 미끄럽다.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11시 48분, 작은 봉에 오르니, 견치봉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지나고, 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12시 17분, 견치봉 정상에 선다. 눈 덮인 정상에는 이정표 <민둥산 1.70K, 국망봉 1.30K>와 정상석<1102m)이 있다,
무명봉에서 본 견치봉
견치봉 정상
이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눈 위에 자리를 잡는다. 바람 한 점 없어, 눈 위이지만, 춥지가 않다. 잭 대장이 찌개거리를 준비해 왔다. 버너 두 개가 피워지고, 찌개를 끓이는 동안, 정상주가 한 순배씩 돌고, 식사를 시작한다. 식사를 모두 마쳤는데도 돼지고기 찌개는 아직 이다.
찌개가 끓기 시작할 무렵, 이영하 대장이 모습을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영하 대장이다. 무척 반갑다. 산정산악회 한북정맥종주 팀을 이끌고 도마치 고개에서 출발하여, 870m봉을 앞장서서 오른 후, 신로봉, 국망봉을 거쳐 제일 먼저 견치봉에 이른 것이다. 변함없는 준족이다.
마침 끓기 시작한 찌개를 안주로, 술잔이 오가고, 이영하 대장도 식사를 마친다. 이윽고 산정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요원으로, 이번 한북정맥 종주에 참여한 장 선배가 견치봉에 도착한다. 지헌 부부와 각별한 사이인 장 선배를 모두들 반긴다. 또 술잔이 돈다.
옛 동료들의 만남
1시 30분 경, 이영하 대장 일행이 민둥산으로 향한다. 식사 후의 뒷정리는 젊은 대원들에게 맡기고, 심산 대원, 이사장 등 시니어들은 먼저 국망봉으로 출발한다. 1시 41분, 국망봉까지 800m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동면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니, 암봉이 나타나고, 이를 왼쪽으로 우회한다. 도중에 마주 오는 산정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경담 대원은 산정 6차대와 함께 자주 산행을 했기 때문에, 더욱 더 반가운 모양이다. 자루목이 갈림길, 적목리 갈림길을 차례로 지난 후, 2시 2분, 1150m봉 갈림길에 오른다. 정면에 국망봉이 가깝고, 동쪽으로 화악산이 뚜렷하다.
적목리 갈림길
1150m봉
눈앞의 국망봉
2시 10분 국망봉에 오른다. 이정표<개이빨산 1.30K, 도마치봉 7.76K>, 119 팻말, 삼각점<갈말 26, 1983 재설>, 그리고 정상석<1,158.1m>이 고루 갖춰 있는 너른 헬기장이다. 사방이 트였다. 경기도의 명산들을 한꺼번에 둘러본다. 북으로 백운산, 광덕산, 상해봉, 복주산 등이, 동으로 화악산, 남으로 지나온 견치봉, 귀목봉, 청계산까지 아득하고, 서쪽으로 관음산, 북서 방향에 명성산 등이 보인다.
국망봉 정상
1150봉과 멀리 명지산
견치봉
1102m봉, 실로봉, 멀리 백운산, 광덕산, 상해봉 복주산
가리산
2시 20분 경, 하산을 시작한다. 가파른 북쪽 사면에 눈이 쌓여 무척 미끄럽다, 아이젠도 준비를 하지 못해, 엉금엉금 기듯 5분 쯤 내려서서, 장암저수지 갈림길을 지나고, 2시 37분, 제 1 헬기장에 이른다. 안부에서 내려서서 왼쪽 암벽 사이로 험상궂은 가리산을 보고, 2시 48분, 이정표<국망봉 1.02K, 도마치 6.74k>를 지나, 3시 헬리포트 2에 오른다. 신로봉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암릉과 그 뒤의 가리산이 장관이다.
안부로 내려서는 대원들, 신로봉 암릉과 가리산
신로봉 서쪽 암릉
다시 안부를 지나, 3시 21분, 세 번째 헬기장에 오른다, 되돌아 지나온 길이 장관이고, 전면으로 신로령으로 내려서는 대원들이 보인다. 3시 28분 삼각봉에 올라, 실로봉을 바라본 후, 3시 31분 신로령에 내려선다. 이곳이 오늘 마루금 산행의 종점이다. 이곳에서 왼쪽 휴양림으로 하산한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 중 일부는 쉬고 있고, 일부 대원들은 신선봉을 오르고 있다.
신로령으로 향하는 대원들
신로봉
길가에 배낭을 벗어 놓고 실로봉으로 향한다. 3시 36분, 실로봉 정상에 올라, 지나온 길과 가야할 능선을 새롭게 카메라에 담고, 3시 45분, 다시 신로령으로 되돌아온다. 휴양림까지의 이정표 거리는 2.5Km이다.
실로봉에서 본 지나온길
가야할 길 - 백운산, 광덕산, 상해봉, 귀주산
4시 11분, 이정표를 지난다.<휴양림 1.4K, 신로령 1,3K> 어찌된 일인지, 슬그머니, 거리가 200m 늘었다. 하지만 대강 절반 쯤 내려선 셈이다. 잔돌이 많아 신경이 쓰이는 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두어 차례 건너고, 넓은 암반에 모두 모여, 배낭을 벗어 놓고, 세수를 한다. 알탕은 추워서 엄두도 못 낸다.
4시 42분,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넓은 공지에 이르지만, 휴양림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임도를 따라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정리 운동을 하듯, 넓은 임도를 따라 천천히 하산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뒤를 돌아보면, 지는 해를 받아, 실로봉에서 흘러내리는 능선의 단풍은 아직도 고운데, 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능선에는 눈이 쌓여있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묘한 시기다.
쾌적한 하산 길
5시 7분,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는 국망봉 휴양림 매표소에 이르러,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마루금 약 8Km, 들머리, 날머리 합쳐, 약 6Km, 따라서 도상거리 합계 약 14Km를 걷고도, 대원들은 크게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이상 식사를 즐기며, 시간 당 약 2Km의 속도로 여유를 갖고, 유유히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6.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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