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목장에서 본 단아한 모습의 현달산


1945년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는 동안, 우리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살아왔다.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이정도의 기간에 이처럼 많은 변화를 경험한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세상이 이처럼 급변하는데, 청산(靑山)이라고 의구(依舊)할 수가 있겠는가? 질펀한 논과 밭이 고속도로로 변하고, 산허리는 동강나 도로가 관통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정든 마을은, 땜이 만들어지면서, 하루아침에 물속에 잠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백두대간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다. 시멘트를 만들어 수출을 하겠다고 아름다운 보랏빛 석산을 반 동강으로 만들고, 오랜 옛날부터 명산으로 추앙되어, 선조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유서 깊은 산이, 채석장으로 변해, 허옇게 내장을 들어내놓고 있다.


세상이 변화하니, 강산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경제개발이나, 국토개발을 위해 불가피하게 대간이나 정맥의 마루금을 훼손하더라도, 그 범위를 최소화하고, 그 흔적을 유지하고 맥을 이어, 우리조상의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지혜가 후손들에게 계승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제 우리도 그 정도의 여유는 있지 않은가?


산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한북정맥처럼 딱한 곳도 없어 보인다. 북한에 있는 추가령, 백암산은 물론이고, 비록 우리 땅이기는 하지만 적근산, 대성산은 출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마루금의 많은 부분이 수도권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군부대들이 주둔하고, 우리들은 이들을 우회해야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도권에 가까워, 일찍부터 골프장으로 침식당하더니, 일산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한북정맥의 종착점 부근은 더욱 더 훼손이 심하다. 마루금을 걷는 구간보다 우회하는 구간이 더 길고, 무참하게 훼손된 마루금을 보지 않으려고,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많은 산꾼들이,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의 숫돌고개에서 종주를 마치던가, 숫돌고개에서부터 종주를 시작한다. 이처럼 한북정맥은 머리가 잘리더니, 꼬리마저 끊어지게 된 셈이다.


잭 대장의 안내로, 2006년 2월, 숫돌고개에서 시작한 한북정맥 종주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금년 12월이면 수피령에 도착할 예정이다. 고민이 생긴다. 숫돌고개에서 장명산까지의 꼬리를 남들처럼 잘라버려도 될까? 그렇게 하려니, 한북정맥이 너무도 딱하다. 어쩔 수 없이 머리는 잘렸어도, 꼬리부분마저 잘라버린다면, 과연 이 종주의 의미는 무엇인가?


2006년 10월 28일(토)

오늘은 한강기맥 산행을 하는 날이다. 하지만 S 산악회에서 가이드 하는 한강기맥 종주가, 몇 구간 안 남기고, 성원 부족으로 또 펑크가 난다. 그래서 산행이 없는 이날, 한북정맥의 꼬리부분을걷기로 한다.

 

숫돌고개에서 장명산까지는 하루 걸음으로는 다소 먼 거리다. 게다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만 의존하여, 혼자서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고, 두 구간으로 나누어 산행하기로 한다. 오늘 코스는『숫돌고개-농협대-39번국도-현달산-성동재』로 잡는다.


마루금의 대부분을 군부대가 점유하고 있고, 또 일부는 골프장에 편입되어, 오늘 구간은 주로 우회로를 걷는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고, 도로와 철로를 건너서, 군부대의 삼엄한 철책길을 따른다. 하지만 이곳 철책길은 한강기맥의 용문산이나, 오음산 등의 악명 높은 군부대 철책길과 비교하면 가히 양반이라 하겠다.


비록 마루금을밟지 못하고, 우회로를 걷지만, 내 국토, 내 조국을 사랑하는 산꾼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이제 이 구간의 우회로는 거의 틀이 잡혀가는 느낌이다. 마루금도 내 국토고, 우회로도 우리 땅이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58) 산행시작-(10:06) 고양중학 운동장-(10:23) 87m봉-(10:29) 13번 송전탑-(10:30~10:35) 천일약수터 왕복-(10:47) 등산로 차단 지점-(10:54)천일농원 가든-(10;57) 천일농원 정문-(11:01) 농협대 정문-(11;08) 서삼능 갈림길-(11:33) 홍토포크-(11:39) 순환도로 굴다리-(11:50) 69번 지방도로-(11:53) 탄약중대 군사작전도로 입구-(12:08~12:33) 중식-(12:55) 군부대 정문-(13;00~13:15) 길 찾기, 탄약고 보임-(13:45) 후문-(13:49) 2차선 지방도로-(13:58) 광목장-(14:06) 강능 김씨 망향제단-(14:17~14:30) 현달산-(14:37) 문봉동재 삼거리-(15:04) 예빛교회-(15:13) 군 철책 보이는 임도 삼거리-(15:20)-두메산골-(15:23) 군부대 철책-(15:33) 오른쪽 숲으로-(15:38) 성동고개』중식 25분 포함, 총 5시간 40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구파발 전철역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도착하는 버스마다, 숫돌고개로 가느냐고 묻는다. 기사양반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가로 젓거나, 숫돌고개가 어디냐고 되묻는다. 통과하는 버스를 보니. 종류도 다양하다. 시내버스, 시외버스. 좌석버스. 일반버스. 간선버스. 지선버스.... 가만히 보니, 구파발에서 모든 버스는 세 갈래로 흩어지는 모양이다. 북한산, 의정부방향, 문산, 벽제방향, 그리고 일산, 교하방향이다. 그렇다면 감이 잡힌다.


문산, 벽제방향의 버스면 되겠다 싶어, 문산가는 버스가 도착하자, 무조건 올라타고, 숫돌고개로 가느냐고 물으니, 반응이 없다. 군부대가 있는 고개 마루턱에서 내리고 싶으니, 가까운 정류장을 알려달라니까, 그제야 반응이 온다. 삼송동이나, 오금동에서 내리라며, 어서 카드를 찍으라고 한다. 800원이 찍힌다.


네댓 정류장을 지난다. 기사양반이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알려준다. 버스에서 내리니 '삼송동 주택 앞' 정류장이다. 작은 공지에 조각물도 있고, 벤치도 놓여있다. 벤치에서 앉아, 재킷을 벗고, 조끼를 걸친다. 신발 끈을 단단히 맨 후, 물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 마루턱으로 향한다.


지난 2월, 한북정맥 종주를 시작한 낮 익은 고개 마루턱이다. 길을 건너 부대 앞에서, 9시 58분 산행을 시작한다. 부대 정문 왼쪽담장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다닥다닥 걸려있다. 다른 부대에서처럼 이곳도 철책을 따르라는 지시라고 해석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그게 아니다. 왼쪽 아스팔트 좁은 길을 따라 내려서라고 최근의 산행기들은 권하고 있다.

부대정문 왼쪽의 산행리본 - 우회로는 사진 속의 도로를 따른다


골목길로 두서너 발자국 내려서니, 군부대 철책 옆에 부대장이 게시한 우회로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부대 정문에 '항재전장(恒在戰場)'이라는 슬로건이 보이더니, 부대장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양반인 모양이다. 마루금을 타고 앉아 미안하지만, 어차피 우회하는 , 조금 더 우회하여,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달라는 소리다.

부대장 우회로 알림판


어쩌면 이런 종류의 알림판은 덕양구청에서 신경을 쓰고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은 한북정맥 종주를 위하여 전국의 산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드는 곳이다. 마루금 통과가 안 되어 어차피 우회를 해야 할 상황이니, 요소요소에 친절하게 우회로를 안내해 주면, 이곳을 찾는 산꾼들에게 '일을 할 줄 아는 덕양구' 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지않겠는가?

 

아스팔트 포장이 된 좁은 골목길을 내려선다. 삼송 3동 골목길이다. 약 200미터 쯤 내려서니, "고양중학교길" 안내판이 전봇대에 높직이 걸려있다. 안내대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바로 중학교 정문이고, 쪽문이 열려 있다.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는지 학교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학교 뒷산으로 오른다.

고양 중학교 운동장


학교 뒷산에서 왼쪽에 무덤을 끼고, 오른쪽 능선으로 오른다. 제법 너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오른쪽은 군부대 철책이고, 왼쪽은 숲이다. 길가에 산책로 표시가 보이고, 나뭇가지에 산행리본들이 나풀댄다. 아마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로 개방한 모양이다. 덕양구청에서는 이쯤에 백두대간 해설판과 이곳이 한북정맥의 우회로라는 알림판 정도를 세워주면 금상첨화겠다.

산책로 팻말, 백두대간 해설판을 세울 공간이 충분하다.


산책을 나온듯한 노부부가 마주 걸어온다. 모처럼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 "안녕하세요." 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10시 23분, 87m봉의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오솔길을 따라 내린다. 얼굴을 검게 위장을 하고, 완전무장한 병사 둘이 잠복근무를 하는지, 철책 밖 주변을 서성인다. 순간 긴장하여,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고 황급히 지나친다.


아름다운 산책길이 이어진다. '한북정맥 외로운 종주' 라는 태백시 김 범태 씨의 산행리본이 눈에 뜨인다. 그러고 보니,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꾼들은 모두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13번 송전탑을 지나자,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뉴 코리아 골프장 철조망이 따라온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페어웨이가 오랜 가뭄으로 거칠어 보인다.

아름다운 산책길, 오른쪽은 뉴 코리아 골프장이다.


산책길이 왼쪽으로 굽어져 내리는데 무심코, 따라 내려서니, 눈앞에 넓은 공지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약수터가 보인다. 아뿔싸, 마루금은 약수터로 내려오기 전,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했는데, 알바로구나. 하지만 이왕 내려선 곳, 약수터로 다가가 물을 받고 있는 두 아주머니에게 농협대 가는 길을 확인하고,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신 후, 온 길을 되돌아서 오른쪽 능선으로 오른다.

천일 약수터

천일약수터 내려가는 왼쪽길

솔잎이 노랗게 깔린 소나무 숲으로 완만하게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다람쥐 한 마리가 등산로에 나와 말끔히 쳐다본다. 귀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셔터를 누르니, 놀랐는지 후다닥 숲속으로 사라진다. 오른쪽으로 인기척이 들리고, 그린에 모인 골퍼와 캐디들이 보인다.

산책로 위의 다람쥐


10시 47분, 철조망 문이 완강하게 오솔길을 차단하고 있다. 철조망 너머로 등산로는 계속 이어지지만, 선답자들이 산행기에서 지적한 '뚫린 개구멍'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농협대를 통과하는 산꾼들이 귀찮아 단단히 막아 놓은 모양이다.

철조망으로 차단된 오솔길


할 수없이 왼쪽으로 난 뚜렷한 등산로를 5분 쯤 따라 내려, 천일농원가든 뒤쪽 공사장에 이른다.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농협대 가는 길을 묻는다. 천일농원가든 앞으로 나가, 길을 따라 걸으면, 동서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이르고, 그 포장도로에서 서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농협대 정문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천일농원가든


2차 포장도로로 나와 서쪽으로 걷는다. 인도가 따로 있는 도로는 아니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않은 쾌적한 도로다. 11시 1분 농협대 정문에 이른다. 대략 철조망이 오솔길을 차단하던 그 지점에서부터 마루금은 북서쪽으로 달려 골프장으로 편입되어 버렸으니, 농협대 운동장을 지나 정문에서 우회로로 나오나, 천일농원가든을 거쳐, 우회로로 나오나, 별 차이가 없겠다.

농협대 정문


농협대 정문에서 39번 국도까지 약 40분 동안은 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왼쪽으로 한양 CC가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진다. 추수가 끝난 텅 빈 논 너머로 나지막한 능선이 흐르고, 아마도 마루금은 그 능선 넘어,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풍광, 작은 능선 너머가 마루금 같다.


한적한 포장도로를 걸으며 보는 전원풍경이 아름답다. 너른 치커리 밭, 파밭이 펼쳐지고,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이 눈에 뜨인다. 오른쪽으로 가끔씩 한양골프장의 푸른 페어웨이가 보인다. 마치 국토 대장정을 하는 느낌이다.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대학생들이 여름방학 때 행하는 국토 대장정을 무척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한북정맥 마루금을 이처럼 우회하는 덕에 그 기분을 내 본다.

한적한 포장도로

치커리 밭

파밭


11시25분, 서삼능 보리밥 집 앞을 지난다. 동동주 생각이 간절하지만, 아직 12시도 지나지 않았고, 집사람이 싸준 도시락이 걸려, 꾹 참고 지나친다. 보이스카우트 중앙 연수원을 지나니, 저 앞 오른쪽으로 황토포크 식당이 보이고, 서울외곽 순환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서삼능 보리밥 집

보이스카우트 중앙영수원 입구

 

황토포크

 

11시 39분, 외곽순환도로 굴다리를 지나고, 39번 국도를 건너, 석재공장 옆 시멘트 길로 들어선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험상궂게 생긴 송아지만한 검정개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무섭게 짖어댄다. 매어 있기는 하지만 긴 줄을 끌고, 길을 반 넘어 막고 서서 짖어댄다. 타구봉(打拘棒) 삼아가져 온 스틱 한개가 아직 배낭에 꼽혀있는데, 난처하다. 길 가로 슬금슬금 개 눈치를 보면서 지나간다. 이번에는 길 아래서 누렁이란 놈이 위를 보며 사납게 짖어댄다. 정맥길에서는 개가 무섭다더니, 헛말이 아니다.

39번국도와 석재공장

개가 있는 우회로


교외선 철로를 건너고, 11시 50분, 69번 지방도로에 올라선다. 오른쪽에 현대 주유소가 보인다. 길을 건넌 후,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니, 제512 탄약중대 안내판이 서있다. 오른쪽 시멘트 군사작전도로로 들어선다. 이 도로는 부대 정문으로 이어진다. 길가에 세워진 경고판은 군사작전도로라 일반차량은 이 도로에서 정차할 수 없다고 알려준다. 도로변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사용된다고 한다.

교회선 철로

탄약중대 안내판

군사작전도로


아름다운 시멘트 길을 천천히 걷는다. 위장한 군인들을 태운 트럭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줄지어 이동한다. 그 외는 차량 통행도 거의 없는 텅 빈 도로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도로 변에 공지가 보이고,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이 눈에 뜨인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본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군사 훈련장인 모양이다. 도시락을 펴기에 알맞은 장소다.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에 혼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길 건너 숲 너머로 외곽순환도로가 지나는 모양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소음이 혼자 있다는 의식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 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혼자서 하는 식사는 정말로 맛이 없다.

 

혼자 식사한 곳-앞에 배낭 놓인 자리, 그 앞으로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배낭에 꽂아 두었던, 스틱을 꺼내 들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저 앞에 바리케이드를 지그재그로 설치한 부대 정문이 보인다. 정문에 다가서니, '등산객 출입금지' 팻말이 서 있다. 초병에게 등산로가 어디냐고 물으니, 말없이 오른쪽을 가르친다. 오른 쪽에 작은 공지가 있고, 공지 너머, 숲으로 들어서는 곳에 산행리본들이 걸려있다.

부대 정문 접근


한북정맥(-1) : 숫돌고개-농협대-39번국도-현달산-성동재(B)로 계속됩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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