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장에서 본 북악산(좌)과 인왕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서울의 조산(祖山)은 북한산이고, 주산(主山)은 북악산이며, 좌청룡은 낙산(駱山, 125m), 우백호가 인왕산이라고 한다. 내가 낳고, 자란 우리나라 땅을 내발로 걸어 보자고 남으로는 땅끝, 북으로는 향로봉까지 다녀왔으면서도 서울의 울타리가 되는 주요 산들 찾아보지 못해 이들에게 미안하다.
수선전도
물론 가까운 곳에 있어 언제고 찾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미룬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도 해보지만, 미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꽃 피는 호시절인 5월의 평일을 택해, 우선 서울성곽을 따라 인왕산과 북악산을 둘러보기로 한다.
2010년 5월 12일(수)
지하철의 출근인파가 빠지기를 기다려 9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선다. 9시 40분,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를 나와, 7분 후, 사직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보물 제177호인 사직단은 1395년(태조 4년)에 처음 지어지고, 18세기말에 중건한 건물로,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한다. 사직단 정문을 들어서서 공원을 둘러보고, 신사임당 동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직단 정문
사직단 안내문
신사임당 동상
이어 ‘단군로’ 돌표지가 보이는 왼쪽 계단을 올라, 단군성전을 둘러보고, 인왕산 길을 왼쪽으로 따라 오른다. 종로구 문화체육센터 건물을 지나고, 10시 4분, 안내판이 있는 인왕산 입구로 들어서서, 잘 정비된 성벽 길을 걷는다. 그늘도 없는 성벽 길에 5월의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내리지만, 알맞게 불어주는 바람 덕에 아직은 더운 줄 모르겠다. 10시 10분, 오른쪽에 보이는 전망대에서 남산타워, 북악산, 그리고 청와대를 바라본다.
단군성전
인왕산 입구
안내도
성벽 길
성벽 길이 왼쪽으로 굽어지며, 정면으로 북한산과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진행히니, 인왕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10시 18분, 도로로 내려선다. 왼쪽에 서울성곽 안내판이 보이고, 도로 건너 성벽 길은 성벽보수공사로 범 바위 주변 등산로의 출입을 통제하니, 인왕천 약수터 방향의 주 등산로를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공사기간은 금년 말까지다.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북한산과 북악산
전모를 보이는 인왕산
성벽 길 출입통제
인왕산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황금빛 호랑이 상이 서 있다. 화강암 바위산인 인왕산에는 옛 부터 호랑이가 많이 살아, 한 때는 경복궁 내전까지 호랑이가 들어 온 일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는 인왕산의 상징이다. 10시 26분, 왼쪽 철문이 열린 골짜기로 들어선다. 안내도의 4번 코스다. 그러다 보니 오늘 산행은 1번 코스에서 시작하여, 2번 코스로 들어섰다, 4번 코스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인왕산 호랑이
왼쪽에 보이는 철문이 우회로 입구다.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눈에 뜨인다. 어쩌면 출입이 금지된 범 바위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오른다. 하지만 등산로는 능선사면을 타고, 결국은 계곡 상단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렇다고 헛수고를 한 것만은 아니다. 사면 길에서 인왕산의 가까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왕산 정상과 치마바위
계곡이 끝나고 암릉 길이 이어진다. 10시 40분, 커다란 바위 아래, 이름 모를 샘에서 물을 받고 있던 아저씨한 분이 사과를 건네주며 암릉 길이 험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늙은이가 혼자서 암릉을 오르는 것이 불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10시 44분, 인왕천 약수터를 지나고, 철 난간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가파른 암릉을 오른다. 시야가 트이며 왼쪽으로 우회한 범 바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거대한 슬랩이 펼쳐진다. 아마도 코끼리 바위가 아닌지 모르겠다.
사과를 건네준 아저씨를 만난 샘터
인왕천 약수
오른쪽에 보이는 거대한 슬랩
가파른 암릉은 돌을 쪼개 계단을 만들고 흰 페인트를 칠해 방향을 알리는 외에 미끄럼주의 판까지 세워져 있어 아저씨가 걱정한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다. 10시 54분, 이정표가 있는 주능선에 오른다. 인부들이 성벽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이제 인왕산 정상이 지척이다. 우회한 범 바위가 보이고, 서쪽으로 안산이 가깝다.
암릉을 깎아 만든 돌계단과 미끄럼 주의
이정표가 있는 성벽 길
안산
가까이 보이는 인왕산 정상
가파른 암릉을 깎아 계단을 만들고, 쇠파이프에 로프를 연결해 놓았다. 돌계단을 오르며 뒤돌아 우회한 성벽과 범 바위를 바라본다. 왼쪽으로 오랜 풍상에 시달려 허물어진 성벽이 보인다. 보수 대상이다. 11시 7분, 헬기장을 지나며, 여의도 쪽을 바라본다. 가스에 가려 63빌딩과 한강다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11시 10분, 정상에서 50m 떨어진 갈림길에 이른다. 나지막하게 옆으로 퍼진 멋진 소나무와 이정표가 서 있다. 직진하면 정상이고, 오른쪽은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길이다.
인왕산 정상 오르는 길
우회한 성벽 길과 범 바위
무너진 옛 성벽
헬기장
여의도 방향의 조망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11시 11분, 지적 기준점이 있는 너른 암반에 오른다. 정상이다. 정상에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한 바위 덩어리 하나가 버티고 있고, 그 위에 삼각점이 놓여있다. 시야가 탁 트여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가스로 먼 거리의 시계는 흐릿하다. 정상 한 모퉁이에 초소가 보이고 민간복장을 한 경비원들이 주위를 경비하고 있다. 갈림길로 되돌아와 창의문으로 향한다.
인왕산 정상, 이 바위 위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
암반 위의 기준점
정상에서 본 기차바위와 북한산
가야할 성벽 길과 북악산
11시 25분, 이정표가 있는 기차바위 갈림길에 이른다. 가까운 거리라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11시 29분, 기차바위 정상에서 인왕산과 안산을 한 눈에 바라보고,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긴 성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홍제동쪽으로 이어지는 기차바위를 잠시 대려서서, 암릉 끝에서 뒤돌아 본 후, 11시 37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되돌아와 창의문으로 향한다.
기차바위 갈림길 이정표
인왕산과 안산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긴 성벽
올려다 본 기차바위
기차바위와 인왕산 정상
성벽 밖의 길은 안쪽 성벽 길과 달리 가파르고 거칠다. 성벽을 바라보면 옛 성터와 그 위에 새롭게 보수한 성벽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뚜렷이 구별된다. 서로 다른 시간들이 같은 성벽에서 만나 지난 세월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11시 49분, 등산로는 다시 성벽 길로 이어지고, 5분 후, 등산로는 성벽 길을 버리고 다시 인왕산 길로 내려선다.
밖에서 본 성벽
다시 성벽 길 진입
성벽 길 끝
인왕산 길을 왼쪽으로 따라 내린다. 저 아래 예쁘게 꾸민 작은 공원에 이정표와 정자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현판을 보니 서시정(序詩亭)이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 정자에 올라, 아름다운 꽃밭을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한다. 아이스 박스에 담아온 시원한 막걸리와 떡으로 간단한 점심을 끝내고 청운공원을 둘러본다.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라는 작품과 성선옥의 호랑이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서시정
서시정 현판
인왕산에서 굴러온 돌
안내문
성선옥의 호랑이 조각상
공원을 둘러보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발길을 돌린다. 윤동주 시인이 연세전문학교 재학시절,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면서, ‘서시’, ‘별을 헤는 밤’ 등 대표작을 썼던 것을 기려, 종로구는 2009년 7월 11일, 인왕산 자락인 이곳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시비를 세웠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서시
12시 29분, 자하문 길로 내려서서, 고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의 추모비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민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기습하려고 침투한 김신조 등 31명의 북한무장공비들을, 당시 종로경찰서장이었던, 최규식 경무관이 부하들과 함께 청와대 옆에서 이들을 검문하다 총격전이 벌어져, 정종수 경사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고, 이들을 저지한다. 이후 38년 동안, 북악산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개방이 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찾아보게 된 것이다.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정종수 경사 순직비
12시 34분, 창의문을 둘러보고, 창의문 쉼터에서 신분증을 제시한 후, 방문 표를 교부 받아 목에 걸고, 정비된 성벽 길을 오른다. 12시 25분, ‘자북정도(紫北正道)’ 돌 표지가 있는 나무계단 길을 오른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건너편의 인왕산 정상, 치마바위, 기차바위가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 북한산 능선이 길게 펼쳐진다. 성벽 길 중간 중간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고, 곳곳에 사복을 입은 경비병들이 눈에 Em인다.
창의문
창의문 쉼터
자북정도
건너편으로 보이는 인왕산
당당한 북한산 줄기
정상이 가까워지며 계단길이 점점 가팔라진다. 평일인데도 방문 표를 목에 건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젊은 사람들도 많지만 연로한 노인들도 꽤 눈에 뜨인다. 머리가 하얗게 센 곱게 늙은 할머니 한분이 가파른 계단 길을 난간을 붙잡고 한발 한발 힘들게 내려서신다. 할머니는 이렇게 힘든 곳을 왜 오셨을까? 아마도 종로구 출신의 할머니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사시지만, 어렸을 때 자주 찾았던 자문 밖의 맑은 계곡과 능금밭, 자두밭들을 생각하고, 그때 올랐던 북악산이 새삼 그리워 큰맘 먹고 찾아 오셨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이 가까워지며 더욱 가팔라지는 성벽 길
1시 18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이른다. 직진하여 내려서면 숙정문이고, 오른쪽은 북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루길이다.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정상석과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을 알리는 돌비석이 있는 너른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 남산과 서울의 시가지를 가깝게 보고,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올라 인왕산과 북한산을 둘러본다.
정상 갈림길
정상석
북악산 옛 모습으로 복원
가깝게 보이는 남산과 시가지
정상 위 바위에 선 등산객
1시 23분, 갈림길로 되돌아와 성벽 길을 따라 숙정문으로 향한다. 1시 27분, 청운대에 올라, 북악산을 되돌아보고, 10분 후, 곡장 갈림길에 이르러, 왼쪽 곡장으로 향한다, 북악산과 내려온 성벽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1시 40분, 곡장에 올라, 북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고, 총구를 통해 북한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곡장에 있는 여장(女墻)과 치(雉)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청운대
곡장 갈림길
북악산과 성벽길
총구로 내다본 북한산
여장과 치
곡장에서 갈림길로 되돌아 나오는 길가에 황매화와 철쭉이 탐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도 경비병들이 틈을 내어 가꾼 솜씨가 아닌지 모르겠다. 병사와 꽃...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고향집을 그리워하고, 외로움을 달래는 병사에게 꽃은 바로 고향이겠다. 1시 59분, 숙정문에 이른다. 한자를 풀이하면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서울성곽의 북 대문으로 음기(淫氣)가 강해, 평소에 이문을 열어두면 도성 안의 아낙들이 바람이 난다하여 굳게 닫아두고, 가뭄이 심할 때에만 열었다는 속설이 있는 문이다. 문루에 올라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을 바라본다.
황매화
철쭉
숙정문
숙정문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숙정문을 나와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면 훈련사에 이르게 되고, 숙정문을 나서지 않고 직진하면 말 바위 안내소를 지나 삼청공원으로 내려서게 된다. 직진하여 말 바위 안내소에서 방문 표를 반납하고 남산타워와 서울도심을 굽어보며 오늘의 성벽순례를 마감한다.
남산타워와 서울 도심
하산 길로 들어선다. 2시 16분, 와룡공원 갈림길 전망대에서 남동쪽 서울시가지를 굽어보고, 2시 19분, 말 바위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주위의 조망을 즐긴다.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멀리 안산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은 삼청공원을 거쳐 경복궁 옆으로 내려서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와룡공원 갈림길
말 바위에서 본, 북악산, 인왕산, 안산
말 바위
말 바위의 유래
하지만 모처럼 나온 길에 북촌의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창경궁 길을 따라 내려, 오랜만에 돈화문도 구경한 후,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타기로 한다.
북촌의 한옥 1
북촌의 한옥 2
창경궁 길
돈화문
오랜만에 걸어보는 돈화문에서 종로 3가까지의 길이 무척 좁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생맥주집에라도 들러,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사워 후 느긋한 기분으로 마시는 맥주 맛을 떠 올리며, 유혹을 뿌리치고 귀가를 서둔다.
(2010.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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