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산 정상의 소나무와 통나무 의자
2010년 9월 29일(수)
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하게 되면, 시간에 쫓기는 불편함은 있지만, 여러모로 편하기는 한데, 많은 산악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유명한 산들을 주로 안내하기 때문에 따라 나설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모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을 안내한다는 소리를 듣고 산행신청을 하면, 산행 전날 오후쯤, 신청자들이 20명도 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계획을 취소한다는 연락이 온다.
28일(화)에 가기로 한 경북 문경의 도장산 산행도 성원 미달로 취소가 돼 버린다, 할 수 없이 손쉽게 혼자갈 수 있는 산을 찾아본다. 이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우선대상이다. 경기도에 있는 산 중에서 교통편이 좋은 곳을 찾아본다. 가보지 못한 산 중에서 왕방산, 지장산, 종자산 등이 스크린 된다.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왕방산을 가보기로 하고 자료를 정리한다.
포천시 바로 뒤에 우뚝 솟은 왕방산(737.2m)은 덩치가 크고 품이 넉넉해, 인자한 시골 아낙네 같아 보이는 산이다. 포천시의 진산으로 남북으로 길게 누운, 바위가 그리 많지 않은 육산이다. 신라 말(872년) 헌강왕이 지금의 보덕사를 친히 방문했다 하여 산 이름을 왕방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왕방사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포천군읍지와 견성지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 산에서 무예를 익히고 사냥을 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와 추석에 강무(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 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고, 이성계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살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 산을 찾았다는 유래도 전해진다.
왕방산은 큰 덩치만큼 골이 깊고 능선이 길어서 북쪽의 무럭고개에서 남쪽의 해룡산(660m)을 거쳐 오지재고개까지 이어지는 8km 구간의 능선을 종주하는 데는 4~5시간이 걸리고, 오지재고개에 이르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하루 두 번 버스가 다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하게 왕방산에 오르려면 포천시내에서 2km 떨어진 무럭고개나 호병골 보덕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상 관련자료 발췌)
이처럼 왕방산의 산행기점은 포천이고, 서울에서 포천으로 가는 교통편은 다양하다, 동서울이나 상봉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지하철로 의정부까지 가고, 의정부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포천 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8시 30분 경 집을 나와 7호선으로 도봉산역에 이르고, 그곳에서 약 20분 동안을 기다려 소요산행 1호선을 탄 후, 9시 40분 경 의정부역에 도착한다.
구름이 많이 낀 쌀쌀한 날씨다. 9시 50분, 마상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태조 이성계의 역동적인 조각상을 카메라에 담고, 포천 행 버스를 타러, 길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138번과 138-1번 좌석버스, 그리고 38번 일반버스가 포천을 지난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138-1번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 올라, 기사양반에게 무럭고개로 가려는데, 어디서 버스를 갈아타면 되느냐고 물으니, 신북읍사무소 앞에서 갈아타라는 대답이다.
태조 이성계 기마상
버스 노선도를 보면, 신북면사무소는 종점인 경복대학까지 다 간 곳에 있다. 지도를 꺼내본다. 무럭고개는 포천시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87번 국도상의 고개로, 포천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사북면까지 갔다 버스를 갈아타게 되면, 무척 많이 돌게 되는 셈이다.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뒤에 앉은 아주머니가 자기는 오매골로 가는데, 무럭고개를 지냐야하니, 자기가 내릴 때 함께 내리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가면 약 5분 정도 차이로, 10시 50분 버스를 놓치게 될 것 같다며, 그 버스를 놓치면, 11시 50분까지 기다려야한다고 걱정을 한다.
택시로 가면, 무럭고개까지 요금이 얼마쯤 나올 것 같으냐고 물으니, 5,000원 정도면 충분 할 것이라는 대답이다. 그럼 10시 50분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겠다니까, 자기도 함께 택시로 가겠다고 한다. 시청역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87번 국도변의 56번 버스가 출발하는 버스정류장으로 가 본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10시 56분이고, 버스는 이미 출발한 후다.
무럭고개를 지나는 56번 버스의 출발 시간표
네거리로 되돌아와 길게 늘어선 택시 승차장에서 택시를 타고, 11시 5분, 무럭고개에 도착한다. 미터기에 나타난 요금은 3,600원, 택시기사에게 10,000원짜리를 주고 5,000원만 거슬러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펄펄 뒤며, 3,000원만 내고 내리라고 한다. 한동안 서로 승강이를 하는 것을 보던 기사양반이, 그럼 중간인 4,000원을 받겠다며 6,000원을 거슬러준다. 고마운 아주머니다.
무럭고개
산행코스
길 건너 절개지로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에 이정표가 보인다. 등산로로 들어선다. 등산안내도와 119표지판이 반긴다. 119 표지판의 현 위치는 “물어고개”로 돼 있다. 등산안내도 하단에 4개의 등산코스를 소개해 놓았다. 11시 11분, 절개지 위에 올라, 산행준비를 한 후, 11시 18분, 통나무 긴 의자가 설치된 완만한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로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무럭고개의 고도가 약 220m 정도이고, 왕방산 정상이 737m이니, 500m 이상의 고도차가 나는데도 정상부근에 있는 헬기장에 오를 때의 가파른 곳을 제외하면, 넓은 등산로가 부드럽게 오르내리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
등산로 입구
왕방산 등산코스
통나무 긴 의자가 보이는 등산로
11시 23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15m 능선분기봉에 올라, 왼쪽 비탈길로 내려서고, 2분 후, 이정표가 있는 능선안부를 지난다. 이정표는 무럭고개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4.8Km라고 알려준다. 11시 31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참나무 사이로 인적이 없는 황량한 등산로가 단조롭게 이어진다. 아직 단풍이 들지는 않았지만, 썰렁한 참나무 숲에서는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315m 능선분기봉
이정표
쌀쌀한 날씨지만 몸이 더워지자, 윈드 재킷을 벗어 배낭에 챙기고, 산행을 속개한다. 11시 54분, 이정표와 쉼터가 있는 한국아파트 갈림길에 이른다. 인근 주민인 듯싶은 아주머니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포천에서 왕방산으로 오르는 가장 수월한 방법은 시청 앞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서쪽의 호병동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보덕사를 지나고 주능선으로 진입하는 것이겠지만, 2Km가 넘는 포장도로를 지루하게 걸어야하는 부담이 있어, 산꾼들은 교통은 불편하지만 무럭고개를 왕방산 산행의 들머리로 선호다. 하지만 지금 만난 한국아파트 갈림길은 호병동 들머리와 무럭고개 들머리의 절충 코스라 할 수 있겠다. 일단은 호병동 들머리를 따라 한동안 포장도로를 걷지만, 호병 노인정 앞에서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면 이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아파트 갈림길 이정표
갈림길 쉼터
12시 1분,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이정표가 있는 528m 능선분기봉에 오른다. 오른쪽은 깊이울로 내려가는 길이고, 정상은 왼쪽이다. 무럭고개에서 1.9Km 떨어진 지점이다. 능선의 풍광이 변한다. 황량한 참나무 숲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송림길이 이어진다. 12시 8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정상 2.1Km, 정상 1.6Km를 알리는 이정표들을 차례로 지난다.
528m 능선분기봉의 이정표
아름다운 송림길
갈림길, 우
12시 25분, 520m 능선분기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하고, 가는 로프가 걸린, 등산로의 훼손이 심한, 짧은 오르막을 오른다. 이어 정상 0.9Km, 정상 0.6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12시 47분, 이정표와 119 표지판이 있는 왕산사(보덕사) 갈림길에 이른다. 바로 호병동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제 정상이 지척이다.
가는 로프가 걸린 짧은 오름
왕산사 갈림길 이정표
12시 52분, 헬기장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하얀 억새가 하늘거리고 정상에 등산객들이 모여 있는지, 모처럼 왁자지껄 사람소리가 요란하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포천시가 내려다보인다. 12시 55분 정상에 오른다. 멋진 소나무 아래에 통나무 의자가 보이고, 119표지판, 정상석, 삼각점<포천 23/1982 재설> 등을 고루 갖춘 정상이다. 특이한 것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왕방산에서 북한의 주요지점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안내판이다.
정상 가는 길
포천 시가지 조망
정상
정상석 측면
정상에서 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남서쪽으로 해룡산, 북서쪽으로 국사봉(754m)이 가깝게 건너다보이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멀리 소요산, 감악산, 그리고 서쪽으로 가까운 동두천시는 희미한데. 동쪽으로는 한북정맥 마루금이 역시 희미하게 하늘금을 긋고 있다. 맑은 날씨라면 보다 멋진 모습을 볼 터인데 유감이다.
해룡산
국사봉
희미하게 보이는 소요산(좌)
한북정맥 마루금
한동안 소란하던 단체 등산객들도 모두 하산하고, 이제 정상에는 나 혼자뿐이다. 멋진 소나무 아래, 통나무의자에 앉아 정상주를 마시고, 컵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바쁠 것이 없는 걸음이다. 커피까지 마시고, 1시 40분 경 하산을 시작한다. 국사봉 쪽으로 내려서자, 동두천시에서 세운 왕방산 안내판과 이정표가 보인다. 3.4Km 떨어진 오지재고개로 향하면 왕방산 능선을 종주하게 되지만, 오지재고개에서의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국사봉 쪽으로 향한다.
왕방산 안내판
이정표
내리막길이 무척 가팔라, 가는 로프를 매어 놓았다. 1시 54분, 이정표 등이 있는 사거리 안부로 내려선다. 직진하면 국사봉, 오른쪽은 깊이올 저수지, 왼쪽은 임도다. 잠시 망설이다, 깊이올 계곡을 구경하러,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선다. 왕방산과 국사봉 사이의 3Km에 달하는 깊이올 계곡은 심산유곡으로 폭우 때에는 간간이 조난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로프가 걸린 가파른 내리막
안부 사거리의 이정표와 119 표지판
깊이올 갈림길 안내도
다시 가파르고 거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로프가 걸려있다. 말 그대로 유곡(幽谷)이다. 흐린 날씨라 골짜기가 더욱 어둑하고 음기가 감도는 느낌이다. 인적마저 없어 으스스하다. 2시 5분, 깊이올 저수지 2.5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자,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로프가 걸린 비탈길을 내려서고
거친 계곡길 1
거친 계곡길 2
이정표
거친 계곡에 야생화가 아름답다. 점차 수량이 많아지며, 등산로는 계곡을 건넌다. 2시 35분, 119표지판이 있는 5부 능선길을 지나고, 한동안 부드러운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이어지더니 다시 계곡으로 내려선다. 고도가 낮아지며 좌우 양쪽에서 지계곡들이 합류하여, 계곡이 첨차 넓어지며 음습한 기운은 가시고, 곳곳에 경기 소방에서 세워놓은 붉은 위험 표지판이 보인다.
거친 계곡의 야생화 1
거친 계곡의 야생화 2
위험 표지판
3시 9분, 깊이울 1.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고, 5분 후, 깊이울 만남교를 지나, 유원지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이어 다시 다리 하나를 건너고 팬션과 식당들 사이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낚시터 저수지를 지난다. 길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국화꽃이 아름답다. 저 아래 87번 국도변의 교통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뒤돌아 국사봉을 카메라에 담고, 4시경, 심곡 2리 버스정류장 도착하여 버스를 기다린다.
깊이울 만남교
만남교에서 내려다 본 계곡
저수지
길가에서 만난 국화꽃
뒤돌아 본 국사봉
언제 올이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용기를 내어 히치하이크를 시도해본다. 그럴듯해 보이는 차가 나타나면 손을 들어 보지만, 반응을 보이는 차가 없다. 10여 차례 시도를 해 본 후, 포기를 하고, 콜택시를 부르려는 데, 작은 승용차 한 대가 모습을 보이고, 손을 들자, 멈춘다. 지열 난방공사를 하는 30대 후반의 젊은이이다. 공사장에 들렀다 의정부의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라고 한다. 고마운 젊은이의 덕에 편하게 의정부역에서 내린다. 갈 때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올 때는 젊은이의 신세를 진날이다. 서민들의 따뜻한 정이 고맙게 느껴진다.
(2010. 10. 01.)
'기타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자산(種子山, 643m) (0) | 2012.12.17 |
---|---|
지장산(地藏山, 877m) (0) | 2012.12.17 |
수락산 (水落山, 638m) (0) | 2012.12.17 |
관악산 - 사당능선 (0) | 2012.12.17 |
별난 산악회 (0) | 2012.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