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
깔딱고개 위에서 본 서쪽 조망
2010년 9월 23일(목)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바람은 소슬하고, 밝은 햇살이 서럽도록 투명하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이틀 전인 21일 오후,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4시간이 넘도록 쏟아져 내려, 서울의 강수량이 293mm를 기록하고, 심장부인 광화문 네거리가 물바다가 돼 버린 것을 비롯하여, 수도권일대 저지대의 수많은 가옥들이 물에 잠긴, 공전의 물난리가 언제 있었냐는 듯싶게 딴판으로 변한 날씨다.
이런 날씨에 집안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기는 너무 억울하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둘러메고 오랜만에 가까운 수락산으로 향한다.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수락산역에서 내리면, 수락골이 가까우니, 집에서 수락산 가는 교통은 더 없이 편리하다. 9시 44분, 수락산역 1번 출구로 나온다.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들이 일행을 기다리느라 도로변에서 서성이는가 하면, 인도를 가득 메운 등산객들이 수락골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도로변에 즐비한 등산 장비점들이 연휴기간인데도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유명 브랜드가 아닌 제품들이라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배낭과 등산화들을 유심히 둘러보며, 뒷주머니의 지갑을 만져보니, 주머니가 텅 비었다. 아뿔싸! 지갑을 어디다 빠뜨린 모양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등산바지로 바꿔 입으면서, 집에서 입던 바지주머니의 지갑을 옮기지 않은 것에 생각이 미친다. 아침에 갑자기 산행을 결정하고, 서둘다가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나마 지하철카드는 챙겨 다행이다.
수락산역 1번 출구
의정부 쪽으로 약 5분 쯤 걸으면, 시립수락양로원/염불사 입구에 이른다. 전신주 꼭대기에 높다랗게 걸린 교통 표지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도로변에 김밥집, 족발집, 떡집 등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 거리를 등산객들이 길이 미어지게 오르고 있고, 그 중에는 가벼운 차림을 한 외국인들도 보인다. 풍수지리가 풍미하던 이조 초기, 한양을 등지고 앉았다 해서, ‘반역의 산’으로 불렸고, 그 이후에는 건너편의 도봉산, 북한산에 눌려,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수락산이 의정부시와 노원구에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차면서, 이제는 면목을 일신한 느낌이다.
염불사 입구 표지판
외국인들도 보이고,
9시 53분, 수락산입구를 알리는 커다란 돌 표지를 지나, 1분 후, 수락산/불암산 등산 안내도 앞에 선다. 수락산의 8개 등산로, 불암산의 7개 등산로가 그려져 있고, 각 코스의 거리가 표기되어있는 상세한 안내도다. 노원구에서 등산로 정비에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다. 등산안내도를 보며 산행코스를 정한다. 제3코스를 따라 수락계곡을 거쳐 깔닥고개에 오르고 정상에 이른 후, 주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서다, 도솔봉(538m)을 거쳐, 용굴암, 학림사를 구경한 다음, 당고개로 내려서기로 한다. 도상거리로 10Km도 안 되는 코스이니, 산책하듯 유장하게 걸어도' 산행시간은 5시간이면 충분하겠다.
수락산입구의 돌 표지
수락산 등산로 및 산행코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 백운동천 약수터를 만난다. 이쯤에서 길가에 마련된 통나무의자에 앉아, 등산화 끈을 제대로 매고, 스틱을 펴는 등 잠시 산행준비를 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10시 4분, 철문이 굳게 닫힌 덕성여대 생활관에 이른다. 왼쪽에 우우당(友于堂) 안내판이 보인다. 우우당은 영조 때 영의정을 두 번씩이나 지낸 영흥부원군 홍봉한의 벽운동 별장 안채의 일부라고 한다. 지금은 덕성여대 생활관 안에 있어 안내문만 잠시 훑어보고 지난다.
백운동천 약수터
우우당 안내판
10시 11분, 화장실을 지난다. 화장실 벽에 걸맞지 않게 김시습의 ‘水落殘照’라는 한시가 걸려있다. 세조가 어린 단종을 폐위 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김시습은 하던 공부를 폐하고, 책을 불사른 후, 수락산 석림계곡으로 숨어들었던 인연이 있어, 이곳에 그의 한시를 걸어 놓은 모양이다. 어찌됐건 모처럼 격조 높은 선비의 시를 접하니 무척 반갑다.
김시습의 水落殘照
그제 내린 폭우로 수락계곡의 물이 불어,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잘 다듬어진 돌길을 아무생각 없이 유장하게 걷는다. 10시 13분, 이정표가 있는 능선 길 갈림에서 직진하여 계곡을 따라 오른다. 이정표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3.4Km라고 알려준다. 10시 16분, 수락교를 건너고, 1분 후에는 장락교를 지나, 수락산 도시공원 안내판을 만난다. 155ha의 면적에, 지압시설, 명상의 숲, 진달래동산, 원두막, 귀틀집, 숲 해설로, 야생화단지 등의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한 공원이라고 한다.
잘 다듬어진 돌길
첫 번째 만난 다리, 수락교
수락산 도시산림공원 안내판
10시 24분, 백운교를 건너고, 이어 배드민턴장 등 운동시설들이 갖추어진 백운산악회의 체력단련장을 지난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다. 10시 27분, 마지막 매점을 지나고, 이어 마지막 다리인 신선교를 건넌다. 이후 계곡은 징검다리를 통해 건너게 된다. 10시 31분, 깔닥고개 0.8Km, 물개바위 0.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며 오른쪽에 보이는 물개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마지막 매점
이정표
물개바위
10시 44분,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새 광장을 지나고, 완만한 돌길을 올라, 11시 4분, 큰 바위샘에 이르자, 본격적인 깔딱고개 오르막이 시작된다. 뒤 따라 오던 젊은 외국인이 깔딱고개 오르막을 보더니, “오 마이 갓!” 이라고 외마디소리를 지른다. 11시 11분, 깔딱고개에 오른다. 아이스케이크 장사가 힘들게 고개를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아이스케이크를 팔고 있다. 하지만 지갑을 빼 놓고 온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깔딱고개에 세워진 이정표는 정상까지 0.9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새 광장 이정표
깔딱고개 오르막
119 표지판
깔딱고개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오른다. 안전시설이 돼 있는 가파른 암릉길은 오르내리는 인파로 초장부터 정체가 심하다. 11시 17분, 작은 암봉에 올라, 서쪽의 465m봉과 그 좌우로 모습을 보이는 도봉산과 북한산, 그리고 북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의정부시의 아파트 군을 카메라에 담는다.
암릉 오름길,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로 초장부터 정체다.
465m봉과 그 어깨너머의 인수봉(좌)과 도봉산 3봉(우)
의정부시와 멀리 불곡산
암릉길의 안전시설이 상행, 하행 양 방향으로 돼 있는 구간을 지나며, 정체가 풀리고, 소통이 원활해진다. 이곳에서도 우측통행의 원칙이 적용된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며 서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일자로 하늘금을 긋고, 가야할 방향으로는 배낭바위가 모습을 보인다.
양 방향 통로
일자로 하늘 금을 긋고 있는 북한산, 도봉산 능선
배낭바위
11시 28분, 119 표지판이 있는 깔딱고개 위, 너른 암반에 오른다. 배낭바위가 눈앞에 더욱 가깝고, 남쪽으로 흐르는 수락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조망을 즐긴 후 산행을 속개한다. 등산로가 두 갈래로 이어진다. 하나는 안전시설이 돼있는 종래의 암릉길, 다른 하나는 새로 신설한 편안한 나무계단길이 그것이다. 계단길을 따라 독수리 바위 앞에 있는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에 선다. 수락산 정상이 지척이고, 북으로 도정봉, 남으로 불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119 표지판, 깔딱고개 위
수락산 주능선
두 갈랫길
수락산 정상
도정봉
불암산
11시 46분, 독수리바위에 올라, 하강바위와 치마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배낭바위로 향한다. 배낭바위에 접근한다. 배낭바위로 오르는 길도 종래의 암릉길과 신설된 계단길, 두 길이다, 네모난 커다란 바위가 작은 돌쩌귀 위에 위태롭게 얹혀있다. 자연의 신비가 느껴진다. 배낭바위 위에서 보는 조망이 또한 일품이다.
독수리바위에서 본 하강바위와 치마바위
배낭바위 가는 길
배낭바위 앞
암릉길
계단길
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 돌쩌귀
남쪽조망
북쪽조망
배낭바위 위에선 등산객
철모바위
11시 59분, 간이매점이 있는 수락산 주능선으로 들어선다. 정상은 이제 300m거리다. 컵라면, 막걸리, 소주 등을 차려 놓은 간이매점이 성업 중이다. 추석연휴라 혹시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고, 컵라면과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준비해 와서 다행이다. 만약 이곳에서 사겠다고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지갑을 빼 놓고 왔으니, 점심을 굶은 뻔했다.
성업 중인 간이매점
12시 2분, 옛 이정표가 있는 청학리 갈림길을 지나고, 신설된 계단을 올라, 12시 6분, 등산객들로 붐비는 수락산 주봉(637m)에 오른다. 잠시 주봉 주위를 둘러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며, 점심식사를 할 적당한 자리를 찾는다. 마땅한 자리는 이미 선객들이 차지하고 있어, 12시 20분 경, 철모바위까지 내려와서야 겨우 자리를 잡는다.
정상석
국기 게양대
철모바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정상
인수봉과 의상능선을 마주보며, 정상주를 마시고, 추석송편과 컵라면으로 식사를 한다. 바쁠 것도 없는 산행이다. 약 40분 동안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1시경, 남쪽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11시 7분, 등산로를 벗어난 무명봉에 잠시 올라, 가야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등산로에서 벗어난 무명봉
가야할 능선과 불암산
지나온 배낭바위(좌), 철모바위(가운데), 정상(우)
이어 하강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하강바위에서 자일을 타는 등산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1시 22분, 코끼리바위를 지나, 1시 32분, 치마바위를 내려서는데, 헬기 한 대가 굉음을 내고 접근한다. 아마도 하강바위 부근에서 조난자가 생긴 모양이다.
하강바위 1
하강바위 2
119 표지판, 코끼리바위
치마바위
구조헬기
1시 41분, 이정표가 있는 수락골 갈림길을 지나고, 직진하여 도솔봉으로 향한다. 등산로는 커다란 암봉을 오른쪽으로 크게 우회한 후, 본 능선으로 진입하고, 2시 3분, ‘119 표지판/탱크바위 부근’을 지나, 남서쪽을 이어진다. 이상하다, 도솔봉은 남쪽인데, 모르는 사이에 지났단 말인가? 앞에 걷는 나이 지긋한 등산객을 따라 잡고, 도솔봉이 어디냐고 묻는다. 도솔봉은 한참 전에 지났다는 대답이다. 그러면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지냐고 재차 묻자, 당고개로 내려선다고 한다.
이정표
119표지판/탱크바위 부근
지도를 꺼내 현 위치를 알아본다. 지도상의 도솔봉은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음으로, 아마도 아까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지난 모양이니, 현 위치는 도솔봉과 용굴암 갈림길 중간쯤이라고 짐작을 하고, 그 양반에게 용굴암 가는 길을 물으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노인을 따라, 부드러운 능선 길을 가볍게 오르내리고, 노인이 알려주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탱크바위와 도솔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도솔봉(좌)와 탱크바위
2시15분, 119 표지판/장군약수터 철탑을 지나, 갈림길에 이르자, 노인이 왼쪽 길로 들어서면, 용굴암이라고 알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노인과 작별을 한다. 2시 21분, 용굴암 표지석과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고, 장군약수에 들러 목을 축인 후, 3시 32분, 용굴암에 들러, 주위를 둘러본다. 용굴암은 고종 때 창건하고, 대원군의 섭정에 밀려난 민비가 이곳에 피신하여 7일 기도를 드린 후, 다시 정권을 잡았다고 알려진 암자다.
용굴암 표지석과 안내판
용굴암
범종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재미가 없다. 용굴암에서 왼쪽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린다.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굽어져 능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돌이 많은 험한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한 없이 이어진다. 지도에 보면 학림사는 능선을 등지고 있어, 아마도 이 계곡 오른쪽 능선 어딘가에 있겠다. 학림사는 포기하고,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계속 계곡을 따라 내린다.
잘 정비된 등산로와 쓰러진 길을 막는 나무
3시 10분, 석천약수터를 지나 계곡을 건너고, 이어 표지석이 있는 석천공원 입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서, 당고개역 가는 길을 묻는다. 3시 28분, 당고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솔봉과 탱크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석천약수
계곡을 건너고
석천공원 입구
당고개역 창문 밖으로 본 도솔봉과 탱크바위
수락산의 등산로가 이처럼 다양한 줄 처음 알았다. 다음에는 당고개에서 7코스를 택해, 학림사, 도솔봉을 찾아보고, 천상병 산길이 있다는 4코스로 하산 길을 잡아봐야겠다.
(201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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