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엽산에서 구절산으로 흐르는 능선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가 개이자 모처럼 드높은 가을하늘이 모습을 보인다. 공기 중의 먼지 등 부유물질들도 말끔히 씻겨내려, 가시거리가 20Km를 넘고, 날씨도 제법 선들선들하여 산행에는 최적의 날씨다.


2006년 10월 24일(토).

"화요맥"의 안내로 영춘지맥 산행을 하는 날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북방1리(2.1K)-박달재고개(0,8K)-응봉 갈림봉(1.5K)-연엽산(3K)-540m봉(4.9K)-모래재』로 도상거리는 약 12.3Km로 비교적 짧은 거리다.


연엽산 암봉을 오르는 구간을 제외하면, 엎 다운도 그리 심하지 않고, 비교적 순탄한 마루금이 이어지기 때문에 김 대장은 당초 두무골 까지의 산행을 계획했으나, 일몰 시간을 감안하여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모래재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홍천군을 지나 춘천시로 진입하는 오늘 구간에서 모처럼 탁 트인 조망과 먼 시계로, 자주 한눈을 파느라, 발걸음이 더욱 느려진 내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결정이다.


가리산에서 대룡산, 연엽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의 마루금이 거대한 ㄷ자를 그리며 흐르고, 모처럼 시계가 맑아, 이 흐름이 선명하게 들어나니 자꾸 발걸음이 더뎌진다. 아울러 군부대가 있어 우회했던 녹두봉,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응봉, 구절산 등에 시선을 빼앗긴다. 춘천지역으로 들어서면, 금병산, 삼악산, 등선봉, 명지산, 화악산 등 숨은 그림을 찾느라고 시간을 낭비한다.


버스는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를 달린다. 호수처럼 넓은 남한강 물이 햇빛에 반짝이고, 왼쪽으로 따라오는 산줄기가 선명한데,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우뚝 솟은 백운봉이 그림 같다.


대각선 쪽 앞자리에서, 정 선배가 보고 있는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아 강원도" 오랜 가뭄 끝에 모처럼 내린 비가 강원도에는 300미리나 한꺼번에 쏟아져, 지난여름에 이어, 또 다시 심한 수해를 입었다는 보도다. 창밖의 풍광에 취했던 기분이 무거워진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하여, 저녁 뉴스를 본다. 돌풍과 해일로 어선을 잃은 늙은 어부의 눈물짓는 얼굴이 화면에 가득하고, 늑장 예보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고 정부를 원망하는 수협 책임자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있다. 낮술에 취했는지, 북한 여자 도우미와 춤을 추고 있는 우리 정치인의 사진이, 이 장면과 오버 랩 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안타깝다.


다대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버스는 다시 국도를 달리고, 지방도로로 들어서더니, 9시 48분 경, 지난 번 하산했던 북방 1리, 시멘트 다리 앞에 정차한다. 차에서 내리니, 대기가 썰렁하다. 김 대장과 선두 그룹은 차안에서 산행준비를 다 마쳤는지, 어느새 다리를 건너고 있다.


오늘의 산행기록은 아래와 같다.

『(9:48) 들머리 도착-(9:50) 산행 시작-(10:18) 골짜기 벗어나 능선으로-(10:35) 박달재 고개-(10;57)-응봉 갈림봉-(11:09) 연엽골 갈림길-(11:34) 연엽산 암봉 아래-(11:47) 암봉-(12:00~12:05) 연엽산 정상-(12:15~12:35) 중식-(12:57) 584m봉-(13:04) 김해 김공 묘-(13:09) 임도-(13:26) 607m봉-(13:43) 540m봉-(14:29) 406m봉-(14:50) 426m봉-(15:26) 마지막 무명봉-(15:28) 병원 산책로-(15:42) 모래재』들머리 45분, 중식 20분, 마루금 4시간 47분, 총 5시간 52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 * * * *


버스에서 내려서니 날씨가 썰렁하다. 정면으로 대룡산이 보이고, 주위의 풍광이 낮 설지가 않다. 김 대장은 벌써 시멘트 다리를 건너 골짜기로 향하고, 산행준비를 마친 대원들이 재빨리 뒤를 따른다. 주변의 사진을 찍고, 산행준비를 마친 후, 9시 50분 경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 유난히 맑아 보인다.

버스가 도착하자 바로 다리를 건너는 선두


계곡을 따라 오른다. 지난번 화사하게 피었던 야생화들은 이미 시들고, 골짜기 논들의 벼도 말끔히 추수를 마쳤다. 인가를 지나는데도 인기척은 고사하고, 어리친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짖어대는 일도 없이 사방이 고요하다. 억새만이 아침 햇살을 받고 반짝인다.


골짜기를 버리고, 산 사면으로 오르는 지점에 낮 익은 산악회 리본과 죽천 대원의 리본이 보인다. 몸이 더워지고 땀이 솟는다. 조끼를 벗어 배낭에 챙기고 물을 마신 후, 제일 뒤에서 서둘러 앞선 대원들을 쫒는다. 10시 35분 박달재고개에 도착한다. 지난번 하산할 때는 46분이 걸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오름길에서는 45분이 걸렸다. 지쳤을 때와 체력이 있을 때와의 차이인 모양이다.

박달재 고개


청명한 가을 아침햇살을 받으며,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오지의 능선길을 기분 좋게 걷는다. 뒤를 돌아보니, 나뭇가지사이로 대룡산을 지나 우회했던 군부대 주변의 암벽이 험하게 솟아있다. 10시 42분, 참호에 낙엽이 가득한 작은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지나온 지맥 능선이 뚜렷이 보인다.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단풍이 고운 능선을 타고 올라, 10시 57분, 750m 정도의 봉우리에 오른다. 능선 분기봉이다. 오른쪽으로 응봉 갈림 능선이 흐르고 마루금은 직진이다. 좁은 봉우리에 나무들이 빽빽하여, 응봉도 연엽산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고, 안부를 지나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능선이 좁아지며 양쪽 사면의 경사가 급해진다. 11시9분, 오른쪽 연엽골로 이어지는 가파른 갈림길을 지나, 1분 후, 770m쯤 되는 봉우리에 오른다. 정면 나뭇가지 사이로 연엽산이 가깝다.

단풍길을 올라 능선 분기봉으로 향하는 대원

연엽골 갈림길


11시 34분, 연엽산 암봉 아래에 도착한다. 직벽에 가까운 암봉에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나있다. 경사는 급해도 발 놓을 곳, 손잡을 곳이 있어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낙엽이 쌓여 있고, 어제 내린 비로 낙엽 아래 흙이 젖어 미끄럽다. 자칫 미끄러져 실족이라도 하는 날에는, 잇달아 오르는 대원들과 부딪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대형사고로 번질 위험이 크다.

연엽산 암벽


이런 급사면을 13분 동안이나 조심조심 올라, 11시 47분, 암봉 위에 선다. 동쪽방향이 막힘없이 트여, ㄷ자형의 지맥 흐름에서, 가리산 등 윗변 흐름은 선명하지만, 북쪽의 대룡산 방향의 조망은 나뭇가지들이 시야를 방해한다. 연엽산 정상은 다시 왼쪽으로 우회하여 작은 암봉을 올라야 한다.

암봉에서 망연히 동쪽 방향을 바라보는 죽천대원

선명하게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

당겨 찍은 가리산

굽어 본 연엽골

암봉에서 올려다 본 정상


11시 50분, 엽연산 정상의 바위 위에 선다. 이번에는 북쪽 방향에 막힘이 없다. 대룡산 주변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실로 장관이다. 서북방향 으로 시선을 돌리면, 병풍처럼 둘러선 암벽 뒤로 춘천 시가지가 보인다.

대룡산과 주변 봉우리 - 가운데 대룡산, 우측, 783암봉, 좌측 853봉 군부대

당겨찍은 군부대와 녹두봉


암봉에서 내려서서, 구조물을 지나, 연엽산 정상(850.1m)의 삼각점 앞에 선다. 이번에는 남쪽 방향의 조망이 압권이다. 연엽산에서 분기하여 구절산(750.2m)으로 이지는 능선의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잘 생긴 구절산 너머로 멀리 한강기맥의 마루금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상의 시설물

삼각점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한강기맥 줄기

당겨 찍은 구절산


주위의 조망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다른 대원들은 모두 하산하고, 정상에는 류 회장, 죽천대원만 남아 있다. 이후 셋은 최후미 그룹을 이루며, 모래재 하산 때까지 함께 움직인다. 연엽산은 홍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다. 배낭에서 무릎 보호대를 꺼내 착용하고, 등산화 끈을 고쳐 맨 후, 홍천군과 아쉬운 작별을 한다.

춘천 시가지


낙엽이 쌓인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12시 11분, 능선 분기점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조금 달리다, 12시 15분 경, 낙엽 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죽천대원이 내놓은 포도로 디저트까지 끝내니, 20분이 후딱 지나간다.

능선 분기점에서 독도를 하고 메모를 하는 두 고수(高手)들


점심을 마치고 하산을 계속한다. 점심을 먹은 후라 위(胃)로 공급되는 혈액의 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30분 정도는 천천히 걷는다. 한 번 혼이 나고 나서 체득한 지혜다. 두 고수가 모를 리가 없다. 두 양반의 걸음걸이도 무척 여유가 있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시야가 트여, 뒤돌아 본 연엽산이 이쪽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다.

뒤돌아 본 연엽산


인적이 드믄 곳이라, 낙엽이 쌓인 등산로가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낙엽송 조림지를 지나고, 12시 57분, 584m봉에 오른다. 나뭇가지에 산행리본이 걸려 있다. 지루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1시 4분, 김해 김공 묘를 지나고, 1시 9분 임도에 내려선다. 왼쪽, 임도 끝으로 구절산이 뾰족하고, 남쪽으로 봉명리가 내려다보인다.

임도와 구절산

임도에서 본 봉명리 방향


임도 삼거리에 산악회의 플라스틱 방향판이 서쪽 시멘트 길을 가리킨다. 시멘트 길이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이후 모래재 까지 독도에 큰 어려움은 없다. 방향이 여러 차례 바뀌지만, 요소요소에서 산행리본들이 제 구실을 한다. 다시 조림지대를 지나, 1시 26분, 607m봉에 오른다. 역시 노련한 죽천 대원이 삼각점을 찾아낸다. <내평 451, 2005 복구>

607m봉


1시 31분, 숲속의 묘 1기를 지나고, 능선 분기봉을 넘어, 1시 43분 540m봉에 오른다. 2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시야가 트이며, 얌전하게 생긴 산이 모습을 보인다. 류 회장이 금병산이라고 알려준다. 조금 더 나아간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춘천 쪽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가 보인다.

금병산

중앙고속도로


1시 56분, 옛 고갯길을 건너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 왼쪽으로 줄곧 구절산이 따라온다. 2시 8분,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다시 옛 고갯길이 나타나고, 이를 건너, 작은 봉우리를 넘고, 무덤을 지나 시야가 탁 트인 벌목 지대로 나선다. 동북 방향으로 연엽산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남쪽으로는 저 아래로 중앙고속도로가 뚜렷이 내려다보인다.

연엽산-왼쪽 중앙능선이 우리가 내려온 곳, 오른쪽 능선은 구절산으로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능마디

벌목지대에서 내려다 본 중앙고속도로


벌목지대를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무덤 4기가 나란히 누어있는 곳을 지나고, 2시 22분 임도를 건너, 맞은 편 숲으로 들어서서, 2시 29분, 406.7m에 오른다. 오른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수용골이 가까운 모양이다.

벌목지대를 내려서고,

임도를 건너

406.7m봉에 오른다.


2시 50분, 426m봉에 올라, 물을 마시며 잠시 쉰 후, 남쪽 비탈길을 내려선다.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원무 1 터널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다. 등산로에 나뭇가지가 자연스런 아치(Arch)를 만들어 놓았다. 아치 밑을 지나며, 골인 지점이 멀리 않은 것을 암시하는 아치라고 좋게 생각한다.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역을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426m봉

원무 1 터널

등산로의 아치(Arch) - 골인 지점이 가깝다는 이야기인가?


3시 28분, 봉우리를 넘어서서, 임도로 내려선다. 국립춘천병원 산책로 표지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병원 뒤로, 등선봉, 삼악산이 뚜렷하고, 그 오른쪽 멀리 화악산이 희미하다. 3시 33분, 산책로를 버리고 왼쪽 숲으로 들어선 후, 임도로 내려선다. 왼쪽에서 차 소리가 요란하다.

병원 산책로

국립춘천병원과 그 뒤로 등선봉, 삼악산, 그리고 오른쪽 멀리 화악산


3시 40분, 임도를 버리고, 산악회 산행리본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통신탑이 보이는, 왼쪽 등산로로 내려서서, 3시 42분, 5번 국도가 통과하는 모래재에 도착한다. 오른쪽 도로변 공지에 산악회 버스가 보이고, 먼저 하산한 대원들이 하산주를 즐기고있다.

왼쪽 등산로로 안내하는 산악회 산행리본

통신탑

모래재

모래재 표지석


버스에 배낭을 내려놓고, 이미 파장이 된 하산주 파티에 끼어들어 막걸리로 갈증을 달랜다. 이윽고 강부장의 미역국 수제비가 다 익었다. 썰렁한 도로변에서, 서서 먹는 뜨거운 수제비국이 제격이다. 4시 45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수제비 파티

귀로


(2006.10.2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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