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영산기맥 산행기, Tag: 스포츠,여가생활
03/29/2011 06:39 pm


상해 임시정부 회의실

영산기맥종주가 어렵다. 2010년 5월 30일 송암 산악회를 따라 시작한 영산기맥종주가 1년이 다 되가는데도 아직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 처음 당일산행으로 영산기맥을 안내하던 송암 산악회는 상무대 골프장이 있는 사동고개까지는 당일로 진행을 하고, 이어 사동고개에서 지경재까지를 무박으로 안내를 하고는 끝이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송암을 따라 암치재까지 이르지만, 만년 후미의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후, 지난겨울 심산대장과 둘이서 눈밭을 헤매며 악전고투한 끝에 지경재까지 도달한다. 이제까지 진행한 거리는 약 72Km, 아직 절반도 못 왔다. 지난번 감악지맥을 마무리하면서, 심산대장과 4월 말까지는 남은 84Km를 모두 마치기로 하고 26일, 27일, 양일간 함께 산행을 하기로 약속한다.

2011년 3월 25일(금)
23일 수요일, 심산대장이 전화를 하더니, 느닷없이 영산기맥의 남은 구간 산행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까닭을 말하지도 않는다. 순간 서운한 마음에 이유도 묻지 않고 통화를 끝낸다. 섭섭하고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FONT-SIZE:12pt;FONT-FAMILY:굴림;">센트럴에서 저녁 7시 20분발 영광 행 버스를 탄다. (16,800원)마침 국가대표 팀의 축구 경기가 있어, 그 중계방송을 보느라고 장시간 버스타기가 지루한 줄도 모른다. 경기결과도 4:0 승리. 11시가 거의 다 되어 버스는 영광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태정호텔에 24간 운영하는 사우나가 있다. 택시를 탈만한 거리도 못되어, 길을 물으며, 걸어서 찾아간다.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는 아가씨가 호텔 앞까지 동행을 해주어 고맙다.

일박한 태정호텔 사우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자는 수면실에서는 깊은 잠들기가 어렵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향하다,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에 서 순두부 백반으로 요기를 한다.(5,000원) 역시 호남지역이라 꼬막까지 나온 밑반찬이 그럴듯하다. 8시 20분 발 신광 행 군내버스를 타고, 20분 후, 지경재에 도착한다. (차비 2,100원)

산행 들머리는 지경재 버스정류장에서 영광 쪽으로 100여 미터 후퇴한, 신경주유소 옆, 일광 김철선생 숭모비 뒤쪽이지만, 마루금대로 진행하면 남의 밭을 통과해야 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야하는 부담에, 조망도 없는 금산으로 오르기까지의 잡목넝쿨이 끔찍하다는 선답자들의 기록이다 보니, 아침부터 잡목넝쿨과 실랑이를 벌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신경주유소

그보다 보여리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로 들어서서, 가까운 김철선생 기념관과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 본 후, 유유히 도로를 따라 걷다, 마루금이 가까운 장전마을에서 마루금으로 진입하는 것이 잡목넝쿨도 피하고 국토순례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8시 42분, 상해임시정부 청사 안내판이 있는 보여리 쪽으로 들어선다.

일광 김철선생 기념관 안내판

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2차선 포장도로다. 맑은 날씨에 공기가 투명하다. 약간 쌀쌀한 날씨라 아랫도리가 써늘한 것이 더욱 쾌적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상쾌한 기분으로 터덜터덜 걷는다. 아름다운 우리 땅! 국토순례를 하는 기분이다. 오른쪽으로 하얀 건초다발이 눈길을 끄는 마루금 능선이 보이고, 높은 녹색 울타리로 경계를 두른 너른 밭은 이미 곱게 밭갈이가 끝난 상태다. 마루금 능선을 자르고 남북으로 뻗은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씽씽 달린다.

도로를 따라 걸으며 바라본 오른쪽 마루금 능선

8시 51분, 돌 표지석이 반기는 구봉마을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 이른다. 안으로 들어서자, 일강 김철선생 동상과 상해 임시정부 청사가 보인다. 김철 선생은 백범 김구선생과 함께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주도하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 재무상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다.

돌 표지석


김철선생 동상과 그 뒤로 상해 임시정부청사


동상 기단의 안내문

김철(金澈, 1886.10.15-1934. 6. 29)선생은 함평출신으로 신광면 함평리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신한국당을 조직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3"600" alt="" hspace="5" src="../images/mIFjoWbjdVdvXmkuEqX_cA.jpg" width="800" vspace="5" border="0">
구봉사 사당에 모셔진 선생의 초상


김철 기념관


김철선생의 신년사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이봉창의사

김철 기념관을 둘러보고 상해 임시정부 청사로 향한다. 중국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임시정부가 13년 동안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992년 새롭게 단장되고, 현재는 상해시에서 유적지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김철선생 기념관 안에 이런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입구에 안중근 장군의 동상이 우뚝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김구선생의 흉상이 반긴다. 정부청사 뒤쪽에 ‘단심송’이라는 자태 고운 소나무와 안내판이 보인다. 당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의 처절했던 삶의 편린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숙연해진다.


김구선생 흉상


단심송


안내문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기념관을 약 30분 동안 혼자서 둘러 본 후, 도로로 나와 장전마을로 향한다. 9시 35분, 고개 마루턱에서 금산을 바라보고, 이어 송림마을 갈림길을 지난다. 왼쪽으로 아름다운 동정제가 보인다. 9시 55분, 교통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의 장전마을로 들어선다. 하지만 마을이 다 끝나가도록 칡재로 이어지는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고개 마루턱에서 본 금산


동정제



교통표지판

마을 끝,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젊은이에게 지도를 보이며, 칡재로 가는 길을 묻는다. 한동안 지도를 들여다보던 젊은이는 후방 약 50여 미터 떨어진 대나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곳에 오른쪽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는데, 아마도 그 길이 칡재로 이어지는 길 같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리니 과연 뚜렷한 길이 보인다. 도로에서 비스듬히 난 길이라 올라 올 때는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갈림길

갈림길로 들어선다. 고개로 이어지는 길치고는 지나치게 훌륭하게 손질이 돼 있다. 조금 더 진행하자 그 까닭을 알겠다. 정면에 커가란 봉분의 무덤 서너기가 보인다. 뜻밖에도 잘 손질된 길은 묘로 이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뚜렷한 길은 묘 오른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잠시 길을 따라 오르자 역시 묘가 앞을 막아서고 길이 끊긴다. 할 수 없이 처음 묘역으로 되돌아와 주위 지형을 살핀다. 묘역 뒤로 능선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있을 것 같은데, 잡목넝쿨이 빽빽하여, 도저히 돌파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잘 손질된 묘길

하지만 능선이 가깝지 않은가"600" alt="" hspace="5" src="../images/xfoTMeRD7qU2h0douPl.Ug.jpg" width="800" vspace="5" border="0">
드디어 마루금으로 들어서고

잡목 숲길이지만 뚜렷한 등산로가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져 진행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가벼워진 기분으로 조금 더 진행하자, 남해에 사시는 정병호 하문자 부부의 표지기를 오랜만에 만나고, 이어 봉우리마다에 걸린 표지기들이 마루금이 틀림없다고 확인을 해준다. 10시 41분, 김해김공 합장묘역에서 왼쪽으로 잠시 보여리 마을을 굽어보고, 10시 44분, 임도로 내려선다. 지도상의 사간고개다. 임도 왼쪽에 표지기가 보인다.

두 번째 봉우리에서 만난 표지기


김해 김공묘역에서 본 보여리 마을


사간고개

무심코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걷다보니 방향이 이상하다. 지도를 꺼내본다. 지도의 마루금은 임도를 건넌다. 고래대장의 산행기록을 확인한다. 고래대장은 사간고개에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대여섯 발자국 걷다보면, 갈림길을 만나고, 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라고 적고 있다. 사간고개로 내려섰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오른쪽으로 조금 진행하니 과연 갈림길이 보인다. 그렇다면 임도 쪽에 걸린 표지기는 직진하여 절개지를 오르라는 소리인 모양이다.

사간고개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진행하여 만난 갈림길

왼쪽으로 들어서서 임도를 따라 걷는다. 이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 무덤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누군가가 대나무로 막아 놓았다. 직진하여 대나무 숲을 뚫고 묘역에 이른다. 가야할 봉우리는 왼쪽에 보이는데 그쪽으로는 잡목넝쿨이 빽빽하고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없다. 할 수 없이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고래대장의 산행기록을 꺼내보니, 갈림길에 대한 언급은 없고, 빽빽한 대나무 숲을 돌파했다는 기록뿐이다.

왼쪽의 묘길


직진 대나무 숲길


대나무 숲을 돌파하고 만난 묘

왼쪽 길로 들어서서 묘를 지나자, 오른쪽 대나무 숲 쪽에 표지기들이 보인다. 빽빽한 대나무 숲을 헤집고 진행한다. 대나무 숲을 벗어나자 무성한 잡목넝쿨이 앞을 막고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잡목넝쿨이 덜 심한 왼쪽 사면을 비집고 올라 겨우 능선에 이르니,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잡목을 헤치며 가파르고 긴 능선을 한동안 오른다.

왼쪽 묘 뒤 대나무 숲에 걸린 표지기들


가파르고 길게 이어지는 능선

11시 24분, 고도 약 300m 정도의 봉우리에 오른다. 뒤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금산과 지나온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어 안부에 내려섰다, 성가신 간벌지대의 오르막을 오르며,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감투봉(322.0m)을 바라본다. 이어 작은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 무성한 산죽 밭을 통과한 후, 조진대씨와 최문찬씨의 표지가가 나란히 걸린 봉우리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군유산을 가까이 본다.

무명봉에서 뒤돌아 본 기맥능선


간벌지대


군유산 앞 봉우리에 걸린 이정표

11시 46분, 헬기장을 통과하고, 잠시 잡목넝쿨이 무성한 안부를 지난 후, 신작로처럼 잘 정비된 능선을 올라, 11시 55분, 정자, 정상석, 그리고 삼각점이 있는 군유산(405m)에 오른다. 정상주변의 나무들도 모두 제거하여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그럴듯하다.

정자


정상석


군유산에서 본 서해바다


함양만


불갑산 방향의 조망

정자에서 시원한 조망을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잡고 앉지만, 의외로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싸늘하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정상을 내려서서, 벤치가 놓인 능선을 지나고, 이어 바람을 막아주는 내리막 암릉길에 걸터앉아, 아침에 영광에서 산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라면이 되는 동안 느긋하게 정상주를 즐기고, 이어 라면과 집에서 가져온 떡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바람을 막아준 내리막 암릉길

식사 후 커피까지 타 마시고, 12시 37분, 산행을 속개하여, 3분 후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어 무인산불감시탑을 지나 가파르게 떨어지는 등산로를 천천히 내려서다, 회색빛 숲속에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을 본다. 올봄 산에서 처음 만난 꽃이다.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고, 능선이 부드러워 지기 시작하는 곳에 ‘용굴’ 안내 팻말이 보인다. 어떤 굴인가"600" alt="" hspace="5" src="../images/96JXzH_r4nJ1xMV7UGLsqQ.jpg" width="800" vspace="5" border="0">
이정표


생강나무 꽃

12시 51분, 갈림길에서 표지기를 따라, 오른쪽 희미한 사면 길로 들어섰다, 다시 능선으로 진입한다. 12시 58분, 감무공파 가족묘에 이르고 이어 묘길을 따라 진행하여, 1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건너, 시멘트 옹벽 뒤, 절개지로 오른 발자취가 뚜렷하고, 능선 위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팔랑인다. 카메라가 밧데리가 다됐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핑계 김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가족묘


도로 건너 절개지 오른 발자취

절개지를 올라 능선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잡목 숲 사이로 제법 잘 정비된 등산로가 이어진다. 1시 17분, 고도 약 210m 정도의 봉우리를 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희미한 길을 따라 걷는다. 1시 29분, 무명봉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손불과 함평만이 내려다보인다.

210m봉


손불과 함평만

한적한 잔솔나무 숲을 산책하듯 걷는다. 이윽고 숲을 벗어나 넓은 파밭을 지나고, 나주임씨지천(羅州林氏之阡) 석비를 통과하여 고개 마루턱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이어 도로를 건너 시멘트도로로 들어선다. 저 안쪽 개집에 묶어 놓은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고, 개소리에, 왼쪽 비닐하우스 문이 열리더니 중년 사나이가 나타나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주임씨지천 석비


도로

영산기맥을 하는 중이고, 길을 찾는다고 하자, 아저씨는 가끔 등산객들이 이곳이 가는고개인 줄 잘못알고 이 주위에서 얼쩡대는데, 가는고개는 이곳이 아니고,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삼거리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밭 가장자리 나뭇가지에 표지기들이 보이는 것은 또 무엇인가"FONT-SIZE:12pt;FONT-FAMILY:굴림;">주위를 살펴본다. 나무로 차단해 놓은 곳 뒤로, 무덤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인다. 다시 도로로 되돌아와 2~3m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묘길로 들어서고, 이어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갈림길에 선다. 왼쪽은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고, 직진 길은 잡목넝쿨 속으로 이어진다. 직진하여 잡목넝쿨을 헤집고 나오니 2치선 포장도로다.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하니, 아저씨가 말하던 삼거리, 가는고개다. 저 앞에 고래대장의 산행기록에 나오는 파란 화장실이 보인다.

느티나무


임도와 화장실

임도로 들어서고, 밭둑을 따라 화장실 쪽으로 접근하여 표지기들이 요란한 험한 숲속으로 들어선다. 잡목넝쿨 사이로 희미한 발자국이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간간이 보이는 표지기들이 길 안내를 해준다. 다시 발자취가 없어진다. 길 없는 사면을 치고 오른다. 가시넝쿨에 걸려 허벅지에 아프게 가시가 박힌다. 겨우 T자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잡목넝쿨 숲에 걸린 표지기들


뒤 돌아본 가는고개

2시 24분, 벤치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왼쪽으로 내려선다. 조망이 트이며 오른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노승산이 가깝다. 2시 34분, 안부사거리에서 직진하여,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잡목을 헤치며 오르다 보니,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잡목 속을 헤매야 하나"600" alt="" hspace="5" src="../images/vp8969nUkPb3tWcLKXmBdg.jpg" width="800" vspace="5" border="0">
벤치가 있는 봉


가깝게 보이는 노승산


잡목넝쿨을 헤집고

2시 45분, 약 125m 정도의 봉우리에 올라, 오른쪽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는다. 2시 52분, 숲을 벗어나, 너른 밭으로 나오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건김재다. 2시 57분, 도로를 건너 ‘고부이씨세장산’ 석비 옆, 임도를 따라 올라, 고부이씨들 묘를 지나고, 3시 3분, 또 지겨운 잡목 숲으로 들어선다.

건김재


고부이씨세장산 석비


다시 잡목넝쿨 숲으로

3시 14분, 작은 봉우리에 올라 직진하여 내려서니, 길가의 노란 생각나무 꽃이 덤불 속에서 고생한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3시 21분, 고도 120m 정도의 봉우리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서고,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잡목을 헤집고 내려서면, 임도가 지나가는 수철고개다. 고개를 건너, 바다가 보이는 옛 임도를 따라 올라 파란 밭에 이른다.

수철고개


수철고개 지나 임도를 오르다 본 바다.


파란 밭

밭을 가로 지른다. 왼쪽에 축사가 보인다. 3시 41분, 진주정공의 합장묘를 지나고, 묘길을 따르다,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표지기를 따라 왼쪽 숲을 통과하여, 3시 50분,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웃밭골재로 나온다. 건너편 길가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보인다.

왼쪽에 보이는 축사


진주정공 합장묘

도로를 건너 묘역을 지나고, 잡목 숲으로 들어서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표지기가 걸린 봉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가야할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본다. 23번국도 까지는 아직도 6.2Km가 남았고, 고래대장의 이 구간 소요시간은 3시간 51분이다. 지금 시각이 4시이니 8시 가까이 돼야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리다. 발봉산(180.8m)을 넘고 산행을 종료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200m도 못돼는 산을 넘는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FONT-SIZE:12pt;FONT-FAMILY:굴림;">옷밭골재로 되돌아 내려선다.

오늘 산행을 접은 마지막 봉우리

옷밭골재로 내려와 손불택시를 호출한다. 손불에는 숙박시설이 없어, 궁산리의 함평해수찜질방으로 가 보기로 한다. 중년의 택시기사가 궁금한 지, 이것저것 묻더니, 해수찜질방은 숙박비가 5~6만원 한다고 들었는데 가서 확인을 하고, 그렇게 비싸다면 함평에서 투숙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이윽고 해수찜질방에 도착한다. 숙박비를 물으니, 몇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나 혼자라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숙박비가 6만원이라고 한다. 택시로 돌아와 함평으로 향한다. 기사양반 이야기로는 해수를 전기로 끓여 찜질방을 운영하기 때문에 비싸다고 한다. 기사양반이 소개한 함평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식당 앞에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택시비 15,000원) 푸줏간을 겸한 깨끗한 식당이다. 생고기 비빔밥을 잘 한다는데, 생고기에 익숙하지 않은 터라, 곰탕과 맥주를 주문한다.(식대 9,000원)

느긋하게 포식을 하고 건너편 뉴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선다. 하지만 방이 없다고 한다. 내일 함평에서 태권도시합이 있어 빈방이 없다며, 아마도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대답이다. 시외버스정류장으로 나와 택시기사에게 물어본다. 택시기사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보더니 모텔이과 여관이고 빈방이 없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이 고약하게 됐다. 할 수 없이 조금 떨어진 덕산리의 황토찜질방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덕산리로 향한다.(택시비 5,000원)

(2011. 3. 29.)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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