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사리탑에서 본 용아장성>

개천절 연휴에 무박으로 용아장성을 간다는 산악회가 있다. 봉정암에서 시작하여, 개구멍 바위까지 진행하고, 시간관계로 중간에서 수렴동으로 빠지는 편법 산행이다. 하지만 용아장릉의 묘미를 만끽하는 데에는 손색이 없겠다. 용아장성은 위험한 곳이 많아, 입산이 금지 된 곳이다. 그래서 더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도 생각을 해야지. 내 나이에 감당할 수가 있을까? 산악회에 전화를 해서 안전관계를 확인해 본다. 전문 가이드를 배치하고, 슬링과 자일을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할 터이니, 안심하란다. 가본 경험이 있는 深山 대원에게도 자문을 구한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전문 가이드가 따른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대답이다.


10월 2일(일).

밤 10시 30분, 잔뜩 부푼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마지막 경유지를 지나지만, 의외로 참여 인원이 많지가 않다. 주말에 연이어 비가 내려, 날씨 걱정을 해서인가? 10월 3일에도 영동지방에는 약간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는 하다. 모두 26명. 대부분이 검게 탄 얼굴의 장년들로, 한눈에 봐도 대단한 산꾼들 같아 보인다. 여자 대원도 몇 명 눈에 뜨인다.


클린턴 휴게소에서 잠시 멈춘 버스는 남설악 휴게소에 도착하여, 부근 길가에 정차하고, 시간을 보낸다. 이윽고 2시가 조금 넘자 버스는 오색으로 출발, 2시 30분 경 오색에 도착한다. 남설악 매표소 앞에는 이 시각에도 택시들이 여러 대 정차하고 있다. 새벽에 하산하는 사람들이 주손님 인 모양이다.


오늘의 산행코스와 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설악 매표소(1.3K)-제1 쉼터(1.2K)-설악폭포(1.2K)-제2 쉼터(1.3K)-대청봉(0.6K)-끝청 갈림길(0.6K)-소청갈림길(0.4K)-소청대피소(0.7K)-봉정암(5.9K)-수렴동대피소(4.7K)-백담사』, 백담사까지가 약 18Km이고, 백담사에서 용대리, 백담사 매표소까지의 약 7Km는 버스를 이용한다.


산행 시간기록은 아래와 같다.

『10월 3일, (2:30) 남설악 매표소-(2:34) 산행시작-(3:20) 제1 쉼터<820m>-(4:12) 설악폭포<950m>-(5:02)제2쉼터<1,300m>-(6:02)대청봉 정상<1,708m>-(6;23)끝청갈림길<1,600m>-(6:38) 소청 갈림길-(6:49~7:10) 소청대피소, 아침식사-(7:38) 봉정암<1,244m)-(7:53) 사리탑-(7:57) 백담사, 오세암 갈림길-(8:05~8:11) 사자바위<1,160m>-(8:26) 봉정골 입구<1.050m>-(9:44)백운동-(10:02) 만수담-(10:31) 수렴동 대피소-(11:01) 영시암-(11:10~11:32) 세수하고 발 씻고, 휴식-(12:20) 백담사』총 9시간 46분이 소요된 산행이다.


남설악 매표소를 지나, 마의 계단길이 시작되면서 선두 그룹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지루하고 힘든 길, 서둘지 않고, 쉬지 않고 걷는다. 제1 쉼터를 지나니, 오른쪽으로 오색의 불빛이 보인다. 하늘에는 별빛도 없다. 고요한 산 속에서 물소리만 요란하다. 설악폭포를 지나 계속 지루한 길을 오른다.

<제 1쉼터 등산 안내도>


이따금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낙엽이 흩날린다. 땀에 젖은 몸이 오싹 한기를 느낀다. 한밤의 설악은 이미 초겨울 날씨다. 버스 안에서 산악회장이 대청봉의 기온이 3도 정도까지 내려가니, 하산 시 보온에 유의하라던 말에 신경이 쓰인다. 별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지만, 오색의 불빛이 보이고, 바람이 이는 것을 보면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제2 쉼터가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급변하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안개가 짙어진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배낭 커버를 씌운다. 남방과 그 아래 받쳐 입은 집티는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아직은 빗발이 바지를 적실 정도로 거세지는 않아,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꾸벅 꾸벅 걷는다.


5시 2분, 제2 쉼터를 지난다. 빗방울은 여전하고, 안개는 더욱 심해진다. 안경에 물기가 어려 시야가 뿌옇다. 비에 젖은 돌이 미끄럽다. 조심조심 걷는다. 앞에 랜턴 불빛이 교차하며,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돌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팔목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압박 붕대를 가진 사람이 붕대를 팔목에 감아, 응급처리를 해 준다. 다른 산악회 대원이라 그 후의 상황은 모르겠으나, 산행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도가 높아지며, 바람이 거세고, 추워진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자, 배낭에서 방수 재킷을 꺼내 입는다. 포근하다. 먼동이 트는지 사방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6시 2분 경, 대청봉에 이른다. 안개가 자욱하여, 가시거리가 2m도 채 안 되는 듯싶다. 주변이 훤해진, 정상석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길가로 비켜서서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 끈을 고쳐 맨 후.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중청으로 향한다.

<대청봉 이정표>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도 여전하지만, 날이 훤히 밝아 온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지각색의 비닐 우비가 바람에 펄럭인다. 중청 대피소는 시장 바닥처럼 붐빈다. 뜨거운 커피 한잔 마시겠다는 생각을 접고, 그냥 지나친다. 소청 갈림길로 이어지는 비탈진 너덜 길이 비에 젖어 미끄럽다. 반 장갑을 낀 손가락이 시리다.


소청 갈림길에서, 뿌연 안개를 뚫고, 소청 대피소로 내려선다. 안개 속의 소청 대피소도 역시 시장바닥이다. 매점에서 햇반과 라면을 사들고, 등산화가 어지럽게 널려진 방문 앞에 서서, 방문을 연다. 그리 넓지도 않은 방안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방바닥에 라면과 햇반을 펼쳐 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대청봉 정상에서 고쳐 맨, 신발 끈을 풀기도 귀찮고, 땀 냄새, 발 냄새 속에서 음식을 먹을 자신도 없어, 방문을 다시 닫고, 마당으로 나와, 비에 젖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한다. 산악회 회장이 후미 팀과 함께 도착한다.

<소청 대피소>

<소청 대피소의 등산 안내도>

가는 비가 내리는 속에서 마시는 따끈한 라면 국물이 좋다. 라면에 밥을 말아 서둘러 식사를 한다. 반찬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라면이 불어서인지 먹어도, 먹어도 량이 줄지 않는 느낌이다. 얼추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주위를 살펴본다. 대부분이 중년을 넘은 여자 분들이다. 할머니들도 있고, 가끔 아이들도 눈에 뜨인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봉정암에서 자고,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인 모양이다. 등산객들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등산객들이 식사하던 방문을 열어본다. 텅 비었다.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 사내가 방을 치우고 있다. “여기서 식사하던 등산객들은 어디로 갔나요?” 라고 물으니, “조금 전에 봉정암으로 다 내려갔는데요.”라는 대답이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안개도 많이 걷혔지만, 한 두 사람이 아닌, 단체가, 젖은 바위를 타고, 용아장릉을 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급히 일행을 뒤쫓는다.


봉정암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림 막이다. 올라오는 아줌마 부대가 끊임이 없다. 등산할 때도 좌측통행에, 올라오는 사람에게 통행 우선권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옆으로 비켜서서 기다리다가는 한이 없겠다. 미안하지만 스틱을 휘두르며, 사납게 내달린다.


암봉과 단풍에 파묻힌 봉정암이 보인다. 1959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설악산에 올라, 대청봉을 코앞에 둔 채, 능선에서 비박을 하고, 이른 새벽 대청에 올랐다가, 봉정암에서 아침 식사를 지어먹을 때는 빈터만 남았던 곳이 이제는 대 가람이 됐다. 봉정암에도 일행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봉정암>

 

용아장성으로 가는 길목, 사리탑에 오른다. 역시 등산객들은 보이지 않고, 일반 탐방객 두어 사람이 참배를 할 뿐 한적하다. 산악회장에게 전화를 한다. 날씨 때문에 용아장성 등반은 포기하고 모두 백담사로 하산하고 있으니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청 대피소에서 숙박을 하며, 우리 일행을 기다렸던 전문 가이드가, 이런 날씨에 용아장성을 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구곡담 계곡으로 하산토록 권유했다고 한다.

<봉정암 사리탑>

 

<사리탑이 있는 암릉의 바위>

<사리탑에서 본 용아장성>

봉정암에서 백담사까지는 10Km가 넘는 거리이고. 아직 8시도 안된 시각이다. 뒤에 혼자 쳐졌다 하더라도, 서두를 마음이 아니다. 사리탑 뒤 암릉에 올라 주위를 조망한다. 눈앞에 날카로운 용아장성의 암봉들이 줄지어 서 있고, 암봉 사이사이로 단풍이 불타고 있다. 기가 막히는 풍광이다. 그 암릉길을 오르는 등산객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아쉽다,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하늘이 말리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주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일행을 뒤쫓는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봉정암 주변의 단풍이 절정이다. 특히 비를 맞아 습기를 머금은 모습이 더욱 더 아름답다. 8시 5분, 사자바위 이정표(1,180m) 앞에 선다. <봉정암 0.2K, 백담사10.4K> 배낭을 이정표 옆에 벗어 놓고, 사자바위로 오른다.

<119 구조대 팻말, 설악 10-28>

 

<단풍 1>

 

<단풍 2>

<단풍 3>

<단풍 4>

사자바위에서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눈앞에 용아장성의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용립해 있고, 왼쪽으로는 구곡담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유연(幽然)하다. 골짜기 단풍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른 쪽으로 봉정암이 암봉과 단풍 속에 포근하게 묻혀 있다. 서둘러 사자바위를 내려서서 배낭을 다시 메고 일행을 뒤따른다.

<사자바위 이정표>

<사자바위에서 본 용아장성>

<사자바위에서 본 구곡담 계곡>

봉정암에서 봉정골 입구<해발 1,050m, 봉정암 0.5K, 백담사 10.1K>까지의 단풍이 절정이다. 철다리를 지나 계곡을 건너고, 철 계단을 올라 언덕을 넘어서서 쌍폭에 이른다. 맞은편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가히 장관이다. 쌍폭을 지나 계곡을 타고 내려선다. 용아장성을 이루는 오른 쪽 암벽들이 웅장하다. 쌍폭에서 30여 분쯤 내려선 지점에 또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가 S자를 이룬 너른 암반위로 떨어져 내린다. 조금 더 내려서니, 왼쪽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내려, 구곡담 계곡물에 합쳐진다. 골짜기들이 무척 깊고 유연하다. 그 뒤로 아름다운 준봉들이 우뚝 우뚝 솟아 있다.

<바위와 단풍>

<봉정골로 내려오다 본 기암>

<봉정골>

<봉정골 이정표>

<폭포 1>

<폭포 2>

<폭포 3>

<구곡담에서 올려본 용아장성>

<합수계곡 1>

<합수계곡 2>

계곡 아래로 내려설수록 등산로는 아줌마 부대로 정체가 심해진다. 실례를 무릅쓰고 헤집고 지나친다. 9시 44분 백운동을 지나고, 10시 3분 만수담을 거쳐, 10시 31분 수렴동 대피소에 이른다. 봉정암에서 수렴동까지 5.9Km, 이 구간이 구곡담 계곡이다.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내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백운동>

<만수담>

<구곡담의 기봉 1>

<구곡담의 기봉 2>

수렴동 대피소도 시장바닥이다. 일행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계속 달린다. 11시경 영시암을 지나서, 백담사에서 약 3Km 떨어진 지점에서, 길을 벗어나 물가로 내려선다. 빗길, 흙탕길을 걸어온 바짓가랑이가 말이 아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 후, 상체의 땀을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는다. 우연히 길 쪽을 바라보니 후미 그룹을 이끌고 하산하던 산악회 회장 내려다보고 있다. 회장은 빨리 주차장으로 오라고 소리치고 앞서 내려간다.

<수렴동 대피소>

 

<수렴동 대피소의 등산 안내도>

 

<영시암>

신발을 벗고, 고생한 두 발을 차가운 물에 담가 피로를 풀어준다. 이윽고 바지도 갈아입은 후 간식을 즐긴다. 조용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꿩 대신 닭으로 내려선 구곡담 계곡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언제 조용할 때 다시 와서, 여유를 갖고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수렴동 계곡>

다시 배낭을 챙기고, 일행을 뒤쫓는다. 12시 20분 경 백담사 버스 정류장에 이른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다. 줄을 따라 내려서는데, 산악회 회장이 팔을 잡아끌더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우리 일행 속으로 밀어 넣는다.


버스가 잇달아 들어온다. 1 시경 버스에 오른다. 백담사에서 백담사 매표소까지는 약 7Km, 우불구불한 시멘트 길을 지친 몸으로 걸으면 약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긴 거리다. 버스는 1시 20분 경, 백담사 매표소 앞에 우리들을 내려준다. 5분 후 식사가 준비된 식당에 도착한다.


식사를 마치고 2시 2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정체를 피해 버스는 44번 국도로 우회하여 시원하게 달린다. 하지만 양평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차량행렬의 끝이 안 보인다. 양평지역을 벗어나는 데만 꼬박 2시간 정도를 소비하고,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버스는 겨우 선능역에 도착한다.

 


(2005. 10. 5.)

[잭울프 / 2005-10-04,23:45:36]

아~ 그렇게 되셨군요!

저도 아직 구곡담코스는 못해봤는데

덕분에 사진으로 나마 잘 다녀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2 [우정 / 2005-10-05,10:01:38]

캬아~ 秘景 입니다.

구도 좋고, 황금비율 완벽하고,,, [삭제]

3 [和峰 / 2005-10-11,11:30:27]

갑자기 구곡담 계곡의 절경인가요? 하늘이 말려서 용아장능선을 포기

했습니까? 가지마랄고 할때는 안가는게 상책이지요.

소청봉 주변의 단풍에 구곡담 절경까지 금년 설악은 이걸로 때웁니다. [삭제]

1 [늘소 / 2005-10-04,18:27:20]

와 설악이다~

아직 단풍이 쬐매 덜익은 거 같아요 [삭제]

2 [잭울프 / 2005-10-04,23:42:57]

아니 우림님 그러시면

그 험한 용아장성을?

지칠줄 모르는 그 열정과 체력에 감탄과 박수를 보냅니다!

단풍구경 잘했습니다.

안산하십시요. [삭제]

3 [목련 / 2005-10-06,10:21:51]

설악의 나무들이 물들면서 가을은 시작되나봐요

푸르고 씩씩하던 것들이 제 색깔을 낼 즈음이면

이제 정들었던 것들과 이별을 생각해야 할 때

슬픔을 간직한 것들은 더욱 아름답지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이쯤이면 제 할 일이 끝났다 싶을 때

푸른 하늘 밑에 딱 한번

저를 위한 생을 살지요

제 가슴을 불 살라버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단 풍

그것들을 보고 우리는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같이 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즈막 모습을 한번쯤 생각하게 되지요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요

우림님 죄송해요

먼젓번 용담을 담아오시고 저를 찾으셧는데

놀러 다니기 바뻐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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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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