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04년) 3월 27일 대덕산 산행으로 시작한 3차대 토요당일 백두대간 종주가 이제 내달이면 그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제 남은 구간은 5구간뿐이다. 설악권 3구간, 태백권 2구간이 남았다. 문제는 설악권 2구간의 무박 산행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을 이 구간을 당초계획대로 무박으로 감행하기가 쉽지 않겠다.
어느 대원이 대간 산행이 끝난 후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정맥을 해 볼 생각이라고 했더니 대간을 다시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권한다. 대간 종주를 2회 이상 한 분들도 많다. 남에서 북으로 걸었으면, 다음에는 북에서 남으로 걷는 식이다.
또 어느 대원은 산에서 야영이나 비박을 하면서 종주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해질 녘의 고요함, 한 밤중 산의 소리, 새벽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해보고 싶지만, 내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젊다면, 마음 맞는 친구 2-3명과 함께, 한번 해볼 만 하겠다.
먼저 대원이 대학 다니는 아들과 함께 종주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아들이 어렸을 때, 함께 목욕탕에 갔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아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금년 여름에는 지리산 종주부터 시작하면서 아들의 반응을 보겠다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의 가장 큰 의미는 내 나라 내 땅을 내 발로 걸어 종주를 한다는데 있다고 하겠다.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그리고 드디어 죽음을 맞을 땅 ! 나의 조국 ! 이 곳을 걸어서 종주해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다.
미국이나, 러시아 또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나라에서 걸어서 제 나라 국토를 종단하거나 횡단해 보겠다는, 꿈이라도 꾸어 볼 수 있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우리 산하를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표현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름다운 우리 산하(山河) ! 그들은 하나의 마루금이 우리 국토를 관통한다고 믿었다. 백두대간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허리가 잘려, 아래 쪽 절반만을 걷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은 설렌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대간 길을 걷고 싶다. 집사람은 체력이 달려, 산악회를 따라 산행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나름대로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한다. 서울에서 청계산이나, 북한산, 또는 도봉산을 찾듯, 대야산 구간을 걷고, 황장산을 오르는 방법이 없을까? 문경의 적당한 민박집을 골라 한 일주일 정도 숙박하며, 그 곳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집사람과 함께 대야산 구간을 걷고, 또 하늘재에 올라보면 어떨까?
백두대간을 보호하여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마루금은 트레킹 코스로 정비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패턴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즐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38번 국도에서 본 매봉산>
<임도에서 본 매봉산>
2005년 2월 26일(토).
토요 당일 백두대간 종주 50회 차 산행은 지난 주 눈 때문에 다 마치지 못한 매봉산 구간의 나머지 코스를 간다. 즉 『싸리재(1,268)-금대봉(1,418.1)-쑤이밭령(1,100)-비단령(1,279)-고랭지채소밭-매봉산(1,303.1)-피재(920)』까지의 마루금이 대상이다. 도상거리 약 9Km, 산악회에서는 눈 때문에 산행시간을 정하기 어려우나 5시까지는 하산하자고 한다.
<오늘 산행 구간-싸리재에서 피재까지>
이제 해뜨는 시간이 많이 빨라졌다. 양재역 지하철역을 벗어나니, 날씨는 제법 쌀쌀하지만, 주위는 많이 밝아졌다. 6시 40분쯤 만나는 장소에 이르니, 신 회장님이 혼자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참여하는 대원들이 많지 않을 모양이다. 마지막 경유지 복정역에서 대원들이 버스에 오른다. 오늘 참여 인원은 3차 대원 17명, 일반회원 7명, 모두 24명뿐이다. 버스 안이 썰렁하다.
버스는 똑 같은 코스를 3번째 달린다. 치악 휴게소에서 20분 간 정차한 후 다시 출발한다. 산악회 인솔자는 설피가 준비돼 있으니, 오늘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설피를 신으라고 권한다. 버스는 사북, 고한을 지나 싸리재로 접근을 시도한다. 처음 싸리재로 통하는 오른쪽 도로는 초입부터 눈이 대단하다. 할 수 없이 버스는 계속 달려, 터널을 지나, 10시 30분 경 반대편 진입로에 정차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버스 진입이 어려워, 모두들 하차하여, 도로를 따라 싸리재까지 걸어서 오른다.
<도깨비 도로 앞 - 도로위의 눈 발자국>
도로 초입에는 간간이 도로 면이 보일 정도로 눈이 녹았지만, 고도가 높아 질 수록 도로는 온통 눈 천지라 발이 푹푹 빠지고, 힘이 많이 든다. 목에 걸었던 설피를 풀어, 발에 신는 대원들이 늘어난다. 나도 길가로 벗어나 설피를 착용한다. 하지만 항상 이런 일에 서투른 내 모양이 어설펐던지, 우정 님이 다가와 설피 신는 걸 도와준다. 고맙다.
<설피 착용 - 신회장 사진>
설피를 신으니 눈에 빠지는 정도가 많이 줄어든다. 왼쪽으로 크게 휘어진 도로에 올라, 뒤를 돌아본다. 도로를 따라 오르는 대원들이 저 아래, 까맣게 보이고, 맞은 편으로는 풍력 발전용 휀(Fan)과 눈 덮인 매봉산이 가까이 보인다. 아름답다.
<싸리재에 오르면서 본 풍광, 파란하늘, 매봉산으로 뻗은 능선.그리고 점.점, 점>
날씨는 다소 쌀쌀하지만 겨울로는 드물게 하늘이 파랗다. 가스도 끼지 않아 시야가 확 트였다. 바람도 거의 없다. 주위 풍광을 즐기며, 비탈진 도로를 힘들게 오른다. 11시 36분, 해발 1,236m인 싸리재에 오른다.
<싸리재 도착 - 시리도록 파란 하늘>
싸리재에서 차단기를 우회하여 오른쪽 사면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걷는다. 남쪽으로 면한 사면이지만 눈이 제법 쌓였다. 눈이 깊어지니, 설피를 신었어도,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경사면을 오르다 뒤를 돌아본다. 지난 번 올랐던 은대봉과 그 뒤 능선이 하얀 눈을 이고 눈앞에 누워있다.
12시 16분 금대봉(1,418m)에 오른다. 바람이 차다. 싸리재에서 약 40분 정도 걸렸다. 눈길에 빠지면서 거의 2배 가까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 그리고 한강과 낙동강의 분기점을 알리는 "양강 발원목"이라는 표지목이 서있다.
<금대봉 정상- 돌탑과 양강 발원 표지목>
<정상석>
눈 쌓인 내리막길을 걷는다. 설피 사용요령이 점차 터득된다.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발 뒷금치로 걷는 요령으로 설피 뒤끝으로 눈을 디디니, 눈에 빠지지도 않고, 미끄럽지도 않다. 경사가 심한 곳은 주저앉아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린다. 12시 34분 용연동굴 사무실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가 서 있다. 싸래재에서 1.8Km 진행한 곳이다.
<용연동굴 갈림길 이정표>
1시 35분 경 쑤아밭령(1,100m)에 도착한다. 앞 팀이 점심을 마치고 일어서는 참이다. 이들이 먼저 출발하고, 같이 걷던 대원들과 함께 우리도, 다져 놓은 눈 위에서 점심을 한다. 날씨가 찬 편이라 별로 땀이 나지 않았는데도 앉아서 점심을 먹으려니 춥다. 여벌 재킷을 꺼내 걸치고, 서둘러 식사를 마친다. 1시 55분 경 천천히 비단 봉을 향해 오른다.
잡목 사이로 보이는 비단봉(1,279m)이 올돌하다, 경사가 급해진다. 2시 32분 경, 눈 덮인 암봉에 오른다. 비단봉 정상이다. 왼쪽은 아슬아슬한 절벽이다. 쑤아밭령에서 약 37분 정도 걸렸다. 이제 설피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비단봉 정상에서의 전망이 일품이다. 눈 덮인 산들이 굽어보인다. 남쪽으로 함백산, 중함백산, 그리고 은대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서쪽으로 싸리재와 38번 국도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피재로 연결된 35번 국도가 아련하다.
<비단봉>
<은대봉과 그 능선>
<중함백과 함백산>
<비단봉에서 본 북쪽 조망>
<비단봉에서 본 서북 방향의 조망>
비탈길을 내려선다. 이따금 씩 북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온다. 오른쪽으로 고랭지 채소밭과 매봉산이 보인다. 잡목 숲을 벗어나니 눈앞에 넓은 설원(雪原)이 펼쳐진다. 고랭지 채소밭이 기어오른 남동쪽 사면 안부까지 펼쳐진 넓은 설원이 장관이다. 지난주에는 현란한 눈꽃을 즐기고 오늘은 이처럼 광활한 설원에 선다. 눈 쌓인 사면을 천천히 내려온다. 남쪽과 북쪽으로 빼 꼼이 보이는 함백산 능선과 청옥, 두타의 흐름이 웅장하다. 설원 곳곳에는 앞 팀이 지나면서 어린애들처럼 장난친 흔적이 선명하다.
<잡목길>
<설원 1>
<설원 2 - 유수모 사진>
<설원 3 - 유수모 사진>
<걸어온 길>
<오른쪽 멀리 청옥, 두타, 고적대가 보인다.>
가파른 고랭지 채소밭을 오른다. 군데군데 눈이 보일 뿐, 건너편 사면과는 딴판으로 눈이 녹았다. 햇빛이 잘 드는 모양이다. 밭에는 배추 겉대들이 누렇게 색이 변한 채 남아 있다. 채소밭에 늙은 고목 한 그루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채소밭을 지키는 신령수로 남겨둔 모양이다.
<고랭지 채소밭>
<채소밭의 신령수>
<채소밭을 간다.>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곳에 임도가 이어지고, 바로 눈앞에 풍력 발전용 휀이 양팔을 윙윙 돌리며 괴물처럼 우뚝 서 있다. 자세히 보니 바람을 따라 휀이 방향을 바꾼다. 등산로는 임도를 벗어나 잡목 숲으로 이어진다. 오르막으로 계속되던 등산로가 왼쪽으로 뚝 떨어지고, 발자국들이 어지럽다. 하지만 오른쪽 송전탑이 서 있는 매봉산 정상 쪽으로는 한 가닥 외로운 발자국이 눈 속에 깊게 나 있을 뿐이다.
매봉산 정상으로 향한다. 3시 55분, 매봉산 정상(1,303m)에 선다. 역시 조망이 끝내 준다.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고, 저 아래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정암 터널의 입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윽고 산악회 김진희 대장이 올라온다. 김 대장은 뒤로 쳐진 일반 대원 3사람이 늦는다고 안타까워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5시전에 버스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하산한다.
<정상석 - 뒤로 함백산>
<정상에서 본 발전용 휀>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다시 설원이 이어지고 설원 끝에는 눈 덮인 먼 산을 배경으로 침엽수들이 우뚝 솟아 있다. 꽤나 이국적인 풍경이다. 김진희 대장은 뒤에 쳐진 젊은이 3사람을 기다리고, 은영 당수와 나는 천천히 설원을 가로지른다. 등산로는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이국적인 풍경>
길가에 채소밭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 인 듯 싶은 막사가 한 채 서 있다. 뒤쪽에는 트럭도 한대 정차해 있으나 막사에는 인적이 없다. 북쪽으로 바람을 막는 휘장이 쳐 있고, 그 아래 의자도 몇 개 놓여있다. 쉬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은영 당수와 의자에 앉아 미리 하산주를 나누어 마시며 김 대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하산주를 마시고, 설피를 고쳐 신어도, 김 대장은 감감 무소식이다.
하릴없이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오른쪽 내리막으로, 발자국을 따라 내려선다. 댓 발자국 옮기다 보니, 발자국이 끊긴다. 다시 막사 쪽으로 올라와 왼쪽으로 나간다. 발자국이 임도로 연결된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산악회 표지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꺼내본다. 지도에는 대간 길과 임도가 나란히 달린다. 아마도 선두가 눈 쌓인 대간 길을 피해, 임도로 하산한 모양이다.
임도를 따라 내려, 4시 50분 경 피재(920m)에 도착한다. 선두 그룹은 4시 15분 경에 하산했다고 한다. 눈 쌓인 길에서는 선두와 후미 차가 크지 않나 보다. 눈 속에서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다보니 허벅지에 쥐가 날 것 같아 겁이 났다는 대원들이 많다. 허리가 아프다는 대원도 있다. 모두들 눈길에서 힘이 들었다고 한다.
<피재>
오늘 산행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우정 님이 내는 막걸리 파티 장에 들러, 오뎅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시장기가 돌 시간이 돼서 그런지, 무척 맛이 좋다. 5시 5분 경, 마지막까지 후미를 챙긴 김진희 대장이 도착한다.
버스는 5시 2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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