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싶더니, 어느덧 1월이 후딱 지나고, 벌써 2월이다. 세월의 흐름은 나이에 비례해서, 60대에서는 세월이 시속 60Km 속도로, 70대는 70Km 속도로 흐른다고 하더니, 정녕 맞는 말인가 보다.

 

2005년 2월 5일(토). 백두대간 산행를 하는 날이다. 6시 40분 경 지하철 양재역을 벗어나, 서초 구민회관으로 향한다. 자동차와 노점상들의 불빛이 어둠을 밝힌다. 하늘에는 손톱 모양의 예쁜 그믐달이 곱게 떠 있다.

 

"땅 치면, 쨍그렁 소리가 날 것 같다."

 

어느 여류 수필가가 이런 새벽달을 묘사한 멋진 표현이 문득 생각난다. "올뻬미 형"이 이런 새벽달을 다 구경하다니... 대간 산행을 하면서 얻는 부수입인 셈이다.

 

토요 당일 백두대간 종주 45회차는 대간 제36소구간을 역으로 산행한다. 『도래기재(780)-옥돌봉(1.241.2)-987봉-1,015봉-박달령(1,009)-1,150봉-1,180봉-1,220봉-선달산(1,236)-늦은목이(720)』까지 마루금을 타고, 지난번과 같이 오전리로 하산한다. 마루금 도상거리 12.5Km, 날머리 약 3Km이다.

이 지역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와, 강월도 영월군 하동면 내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백산 구간이 끝나고 태백산 권으로 접어드는 구간이다. 주산은 선달산이다.


<박달령의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 - 제36 소구간>

 

선달산(1,236m)은 한자로 仙達山(신선이 놀던 곳)이라고도 하고, 先達山(먼저 올라야 한다는 뜻)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선달산 북쪽에 용아골, 칠룡골이 있는데 용아골은 선달산 내맥을 이어왔다는 뜻이며, 칠룡골은 일곱 능선이 함께 선달산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남으로 봉황산, 서로 회암산 형제봉과 소백산, 동쪽에 옥석산, 동남쪽에 문수산 예배봉으로 만산이 에워싸고 있어 오르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향유의 기쁨을 안겨주는 명산이다. (이상 봉화 홈페이지에서)

 

오늘 산행에서는 선두 팀의 알바로, 선달산에 제 1 착으로 오른 사람은 오(吳) 사장이다. 따라서 오 사장에게는 이산은 당연히 先達山이다. 박달령 산신각에서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린 함 선생은 산행 후 논현 비어 할레에서 특유의 한자 풀이로 주의를 끈다.

 

"사람이 산에 오르면, 신선이요(仙), 골짜기에 들어서면 속인이다(俗)." 골짜기가 아닌 마루금을 타는 대간꾼들을 위한 덕담이라 하겠다. 함 선생은 이 산을 仙達山으로 호칭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산악회는 오늘의 산행 기준시간을 6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마루금 5시간 15분, 점심 30분, 날머리 45분, 전체 소요시간을 6시간 30분으로 잡는다. 하지만 귀경 시 오전약수를 들러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가능하면 하산시간을 당기기로 하여, 다소 무리를 해서 속도를 낸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마루금 4시간 30분, 점심 30분, 날머리 55분, 총 5시간 55분만에 산행을 마친다.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도 없다. 기온은 배낭 옆, 망사 주머니에 넣은 물통에, 살얼음이 얼 정도라. 걸으니 땀이 난다. 하지만 북쪽 사면 길에는 눈이 깊게 싸여, 평소보다는 체력의 소모가 훨씬 많다. 이런 산행에서는 속도보다 체력의 안배가 훨씬 중요하다.

 

일행 32명을 태운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로 진입, 치악 휴게소에서 약 30분간 정차한 후 도래기재로 향한다. 제천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버스는 영월 외각도로를 거쳐, 88번 국도로 접어든다. 오른 쪽으로 남한강을 끼고 달리는 88번 국도 변의 겨울 풍광이 아름답다.


<차창으로 본 88번 국도와 남한강>

 

 

<88번 국도변의 겨울 풍경>

10시 30분 경 도래기재에 도착한다. 동쪽으로는 구룡산을 거쳐 태백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지난번 태백산 무박 산행 시 깜깜한 밤에 거쳤던 길이라, 새롭게 안내판 등을 카메라에 담고 후미 그룹에 끼어 반대편 계단을 오르며 산행를 시작한다. 계단 입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옥돌봉 2.68Km, 구룡산 5.4Km>


<도래기재 이정표>

 

남서쪽으로 뻗은 오르막길 등산로에는 간간이 눈이 보인다. 산림청에서 붙여놓은 팻말이 진달래 군락지 임을 알려준다. 곳곳의 나무에 친절하게 이름패를 걸어놨다. 대간 길이 아니라면 나무 이름들을 눈여겨보며 공부도 할 수 있으련만, 갈 길이 바쁜 대간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11시 4분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이정표를 지난다. < 옥돌봉 1.3Km, 도래기재 1,4Km> 당초는 이 곳까지 45분이 소요되리라 보았으니 약 10분 정도 진행이 빠르다. 길섶으로 벗어나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고, 후미로 쳐져 서둘러 대원들을 따라간다,


<옥돌봉 1.3Km를 알려주는 이정표>

500년 묵은 철쭉나무가 있다고 대원들이 이를 찾아 등산로를 오른쪽으로 10여 미터 벗어난다. 커다란 철쭉나무가 산 사면에 우뚝 서 있고, 그 옆에는 영주 국유림 안내소에서 세워 놓은 철쭉 숲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곳에 뿌리 부근 둘레 약 1m, 수령 약 500년의 철쭉나무가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예다. 오랜 세월 산불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철쭉이 불에 강하고, 이곳이 철쭉의 생육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수령 500년의 철쭉>


<철쭉 숲 안내판>

카메라가 밧데리를 바꾸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밧데리를 바꾸고, 다시 최후미로 쳐져 대원들을 쫓아간다. 11시 39분 옥돌봉에 오른다. 산악회 기준보다는 9분, 내 목표보다는 약 6분 정도 빠른 진행이다. 비교적 넓은 공지에 정상석, 이정표, 그리고 산림청에서 세운 전망 안내판이 서있다. 이에 의하면 15Km 이내에 봉화 청옥산, 각화산, 문수산, 선달산 이있고, 소백산이 27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나, 나무에 가리고, 개스에 흐려, 전망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박달령으로 향한다.


<옥돌봉 정상석>


<옥돌봉의 전망 안내도>


<옥돌봉 이정표>

 

옥돌봉을 내려서서 비탈길을 달린다. 등산로에는 제법 눈이 많이 쌓여있다. 내리막이 끝나고 길이 평탄해진다. 등산로는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실어 나른 눈이 꽤 깊이 쌓여 있다. 11시 47분 주실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서 있다. <옥돌봉 0.28Km, 박달령 2.8Km, 주실령 2.3Km> 직진하면 주실령이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박달령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선두는 이런 길에서 곧잘 알바를 한다. 지난해에도 2차대 선두가 이곳에서 알바를 했다고 하더니 우리 팀의 선두도 직진하면서 주실령으로 빠져 버린다.


<주실령 삼거리 이정표>


<박달령 가는 길>

 

하산 후 논현동 비어 할레에서의 증언들을 종합하면, 주실령으로 내려선 선두 팀은 915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그 시점에서는 틀림없이 알바한 사실을 확인했을 터인데도, 무슨 의도인지 되돌아 주실령 삼거리로 돌아올 생각을 버리고, 이들은 루비콘 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도로를 건너 문수산으로 향하면서, 새로운 백두대간 마루금을 개척한다.

 

문수산 정상에서는 저 아래로 저수지가 보이고, 북서쪽으로 가까이 선달산이 보였을 것이다. 짐작컨데 방향을 잡은 선두 팀은 할 수 없이 백 코스를 하여 다시 도로로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오전약수에 이른다. 여기서 운이 좋아서 현장 답사를 하고 있는 박종수 부장을 만나 합류했거나, 그런 운이 없었다면 현장답사를 마치고 도로를 타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와서 1시 30분 경 버스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하여, 시침 뚝 따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박달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다.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산정 산악회 리본을 찾지 못한 여자대원 한 분은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겨우 다른 대간 팀들의 리본에 의지, 무지 신경을 쓰면서, 험한 비탈길을 달려, 박달령에 이르렀다고 한다.

 

12시 32분 박달령에 도착한다. 내 목표시간 보다 30분이 빠른 진행이다. 박달령에는 산신각이 있고, 쉼터, 그리고 넓은 헬리곱터 장이 있다. 이정표는 선달산까지 4.8Km라고 알려준다. 간이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헬기장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주위의 사진들을 찍고, 12시 35분 경 쉼터에서 도시락을 푼다. 영환 님이 막걸리와 맥주로 칵테일을 만들고, 東城 님은 등산화를 벗고, 마루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12시 50분 경 점심을 마친 앞 팀 대원들이 한 둘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박달령 산신각>


<박달령 이정표>


<박달령에서 본 문수산 방향의 조망>

 

1시 5분 식사를 마친 우리도 헬기장을 가로 질러, 산행을 재개한다. 다 떠난 줄 알았는데 헬기장 한 귀퉁이에서, 심천 님, 명환 님, 그리고 잭 울프 님이 라면을 끊이면서 먹고 가란다. 막걸리 칵테일 남은 것을 이들에게 건네 주고, 우리들은 산 사면을 오르기 시작한다.

 

식사는 보통 너른 안부에서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식사가 끝난 후의 산행은 통상 오르막으로 시작한다. 식사 후라 두 양반을 앞으로 보내고, 나는 천천히 언덕길을 오른다. 선달산 까지는 봉우리를 4개나 넘어야하는 먼 길이다. 2시간이 목표임으로 30여분은 천천히 걸어도, 이 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식후에 급히 걷다 혼이 난 백운산 산행 후에는, 식후 오름 길에서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오름 길이 이어지면서, 능선길에는 눈이 제법 쌓였다. 눈길은 힘이 든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규칙적으로 밟고 진행해야지, 다른 곳을 밟아 미끄러지거나, 발이 깊은 눈에 빠지면 리듬을 잃게되고, 맥이 빠진다. 지루한 길이 계속된다. 가끔 이정표가 보이지만 거리가 시간으로 표기되고, 그 시간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누군가가 훼손해 놓아, 전혀 도움이 못 된다. 이정표 하나를 만들더라도 심리학을 원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주는 듯 싶다.

 

산행 리본이 많이 달린 봉우리를 지날 때마다 시간을 체크해 본다. 1시35분 1,150봉에 오른다. 2시에 1,180봉을 지나니, 동성 님과 영환 님이 시야에 들어오고, 2시 45분 1,246 봉을 지나서 안부를 거쳐 오르막길을 오른다. 심천 님과 잭 울프 님이 뒤에 따라 붙는다. 이들은 박달령에서 1시 20분 출발했다고 한다.

 

2시 57분 선달산 정상에 선다. 힘께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조망을 살펴본다. 나무에 가려 조망이 시원찮다. 동북쪽으로 태백 연봉들이 보일 뿐, 잔뜩 기대했던 죽령에서 옥돌봉까지 이어지는 대간길 능선은 보이지가 않는다. 정상초를 한대 얻어 피운다. 이제부터는 줄곧 내리막이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물을 마신다. 물통의 물이 살짝 얼어 있다.


<선달산 정상목>


<산달산 정상의 산행리본>

박달령에서 약 15분 정도 먼저 출발한 중위 팀을 따라 잡으려고, 늦은목이로 향하는 비탈길을 내 닫는다. 오래된 참나무, 낙엽송들이 아름답다. 심천 님과 잭 울프 님이 추월해 스쳐간다. 역시 빠르다. 중위 팀을 늦은목이 정도에서 따라 잡으리라고 예상했으나, 3시 30분 경 늦은목이에 도착해 보니,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중위 팀은 식사 후, 눈길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은 모양이다.

 

임도로 이어지는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 대원들은 만난다. 함 선생이 컵을 내 주며, 물을 마시라고 권한다. 어름 밑을 흐르는 개울물은 차고 시원하다. 물을 마시고 다시 앞선 대원들을 쫓는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본다. 뒤로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오늘 걸어 온 능선이, 지는 해를 받으며, 평화롭게 누워있다. 선달산도 보이고, 옥돌봉도 보인다. 아름답다.


<하산길에 본 큰터골>


<하산길에 뒤 돌아본 선달산>


<하산길에 뒤 돌아 본 1,220m봉>

 

4시 24분 경 버스에 도착한다. 막걸리 한 잔을 받아먹고, 버스에 올라, 땀에 젖은 상의를 바꿔 입는다. 버스는 4시 40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박달재에서 30분간 정차하여 저녁 식사를 한 후, 7시 50분 경 버스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감기로 2주간 결간하고 오늘 산행에 나선 和峰 님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산행한 대원들의 거의 절반이 논현동 비어 할레에 다시 모인다.

 

연장 마루금 산행은 언제고 즐겁다. 여기서는 선두도 후미도 없다. 모두가 느긋한 기분으로 오늘 산행을 반추하며 즐긴다. 오늘 단독 선두를 한 오 사장이 두 번째 선두 차지를 자축하려는지 서둘러 계산대로 나가 계산을 한다.

 

(2005. 2. 6.)

 

추기 : 선두 팀 알바와 관련, 소설을 썼습니다. 혹시 실례된 점이 있더라도, 웃자고 한 일이니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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