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급히 깨운다.
"어머! 어쩌나 ? 벌써 6시네..."
퉁기듯 벌떡 일어난다. 집사람은 5시에 알람시계를 맞춰놨는데 울리지 않았다고 어쩔 줄 몰라한다. 예전 같았으면 벌컥 화부터 냈겠지만, 이제는 그게 안 된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집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집사람은 닭띠, 올해 환갑이다
나는 "올빼미형"이다. "아침형"은 못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누군가가 깨워줘야 한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깨워주셨고, 결혼 후에는 30년이 넘게 집사람이 이 일을 해온다. 그렇게 깨워 줬으면서도 어쩌다 늦게 깨우면 저렇게 미안해한다.
도시락만 챙겨 달라고 부탁하고, 서둘러 옷차림을 갖춘다. 6시 15분 경 집을 나서 택시를 타고, 6시 40분 경에 양재 사거리를 건넌다. 아직 10분이 남았다. 차를 세우고 제과점에 들러 만약을 위해 빵 몇 조각을 산다. 서초 구민회관 앞에는 정다운 얼굴들이 모여있다. 아침을 걸러서인지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산악회 전세버스에 오른다. 좌석이 반 넘어 비어있다. 마지막 경유지 복정역에서도 대원 3사람만이 달랑 차에 오른다. 오늘은 산악회 인솔자를 포함, 모두 23명뿐이다. 소백산 동북쪽 끝자락 고치령에서 상월봉에 오르는 오늘 코스는 일반 산꾼들에게는 인기가 없나보다. 전부가 우리대원들이고, 대간 종주를 땜빵하기 위해 참석한 젊은 여자 산꾼이 한 명 가담했을 뿐이다.
2005년 1월 22일(토)
43회차 토요 당일 백두대간 종주는 대간 제34소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고치령(760)-1,032봉-마당치(900)-1,060.6봉-1,272봉-상월봉(1,395)-국망봉 안부(1,400)』까지 마루금을 타고, 지난번과 같이 어의곡리로 하산한다. 도상거리, 마루금 11Km, 날머리6Km에, 산악회의 산행 기준시간은 7시간이다.
<국망봉 쪽에서본 상월봉(1,395m) - 멀리 태백연봉이 보인다>
나는 마루금 5시간, 점심 30분, 하산 2시간, 총 7시간 30분으로 목표를 정한다. 하지만 산행 종료 후 시간을 정리해 보니, 마루금 약 4시간 20분, 점심 25분에 하산 약 2시간 15분이 소요돼, 오늘의 실제 산행시간은 총 7시간이다.
대한이 지나 날씨가 많이 누그러졌는데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에는 성에가 낀다. 달리는 차가 받는 바람 탓인 모양이다. 7시 50분이 지나니, 고속도로에 해가 뜬다. 어디서 보나, 일출은 장엄하고 힘차다.
<고속도로의 일출>
9시 못 미쳐, 버스는 단양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다. 우동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다. 버스는 풍기를 거쳐, 931번 지방도로를 타고 순흥면으로 향한다. 소백산 남쪽, 웅장한 산이 북쪽을 막아섰기 때문인지, 차창으로 보이는 산야는 눈의 흔적도 없고, 아늑하다. 벌써 봄기운이 감도는 느낌마저 든다.
옥대를 지나 버스는 지방도로를 버리고, 북쪽으로 좌석리를 향한다. 커다란 옥대 저수지가 꽁꽁 얼어붙었다. 10시 12분 경 버스는 좌석리에 도착한다. 좌석리에는 고치령까지 타고 갈 타이탄 트럭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후미그룹 14명이 트럭 짐칸에 빼곡이 들어앉는다. 쪼그리고 앉았다가 오금이 저려 그냥 바닥에 주저앉는다. 엉덩이가 차갑다. 시멘트 길에서 트럭이 덜컹댈 때마다 엉덩이가 아프다.
<타이탄 트럭을 타고 - 대원 사진>
서로서로 처량한 몰골을 보면서도 대간병 환자들은 마냥 즐겁다. 경사가 급해지며 트럭의 엔진 소리가 거칠어진다. 마주 보이는 산봉우리가 점차 낮아지면서 10시 30분 경, 트럭은 우리들을 고치령에 내려 주고, 다시 뒤에 남은 사람들을 태우러, 온 길을 되돌아간다.
고치령에는 오른 쪽으로 이정표가 서 있다. <국망봉 11K, 비로봉 14.1K, 마구령 8K> 그 옆에 태백천장(太白天將) 장승이 서 있고, 산신각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절개지 옆에 소백지장(小白地將)이 서 있다. 우리는 소백지장 앞을 지나 가파른 절개지를 오르며 오늘의 산행을 시작한다.
<고치령의 이정표와 태백천장 장승>
<소백지장 장승 앞을 지나 절개지를 오르는 대원들>
등산로에는 누런 흙이 드러나 먼지가 풀풀 인다. 지도에는 863봉에 전망대 표시가 있지만, 863봉은 조그만 헬리포드로 나무가 가려 전망은 별로다. 이 봉우리를 지나 10시 47분,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고치령 0.8K, 형제봉 3.8K, 국망봉 10.2K>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를 타고 오른다. 뒤차를 타고 온 선두그룹의 대원이 벌써 뒤따라온다. 고령치를 출발한 지 40여분이 지난 시각이다. 과연 빠르기는 빠르다. 11시 12분 해발 1,032m, 형제봉 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가 서있다. <국망봉 9.2K, 형제봉 2.8K, 고치령 1.9K> 예정보다 약 20분 가까이 빠른 진행이다. 주위 경관도 특별히 볼 것도 없어 부지런히 걸었기 때문이다.
<형제봉 갈림길 이정표>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11시 26분 마당치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서 있다. <형제봉 3.5K, 국망봉 8..5K, 새목 7.5K> 간간이 잔설만 보일 뿐 주위가 황량하다. 오늘 구간에는 친절하게도 자주 이정표가 보인다. 바람도 없고 날씨도 따듯하다. 겉옷을 벗는 대원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또 이정표를 지난다. 11시 49분 산행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1,031.6봉을 지난다. 조금 지나니 해발 1,031m 고도에 이정표가 서있다. <상월봉 6.7K> 언덕을 올라 12시 25분, 비교적 널찍한 헬리포트에 이른다. 이 곳에서 5분간 휴식을 취하기로하고, 음료와 과일을 먹고 쉰다. 이윽고 후미그룹이 도착,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12시 33분, 연화동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상월봉 4.3K> 바람이 인다. 하지만 북서풍은 아니다. 대원 한 사람이 남동풍이라고 귀띔해 준다. 계절풍이 지나가는 곳에 자리 잡아, 바람으로 유명한 소백산. 겨울에는 북서풍이 매섭고, 여름에는 남동풍이 강하게 분다. 벌써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나? 겨울이 지났다는 말인가? 대원들이 하나 둘 다시 재킷을 꺼내 입는다. 12시 51분 너른 헬리포트를 지나고 1,060.6봉을 넘는다.
<연화동 갈림길 이정표>
또 다시 헬리포트를 지난다. 이어서 1,152봉을 넘고, 1시 15분 경, 일행이 안부에 모여 점심을 먹는다. 선두 그룹을 제외한 전 대원들이 모였다. 1시 40분 경 점심을 마친 일행은 늦은맥이 고개를 향해 언덕을 오른다.
점심을 먹은 후라 최후미로 쳐져 천천히 오름 길을 걷는다. 1시48분 신선봉 갈림길(!,260m)에 선다. 이정표가 서있다. <국망봉 2.6K, 신선봉 1.7K, 형제봉 9.5K> 조금 더 오르니 전망이 확 트인다. 오른쪽으로 신선봉이 햇빛을 받고 누워 있고, 정면으로 상월봉이 해를 등지고 솟아있다. 서남쪽으로는 어의곡리가 보인다. 동북쪽으로는 우리가 올라 온 능선 끝에 좌석리 마을이 누워있고 , 그 너머로 멀리 흰 눈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은 방향으로 보아 태백산 인 듯 싶다. 지루한 길을 오르다 이제야 멋진 조망을 보고는 모두들 서둘러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신선봉 갈림길에서본 좌섯리 마을과 걸어온 길>
<역광 속의 상월봉>
<어의곡리와 연봉들>
2시2분 늦은맥이재로 내려선다. 상월봉으로 오르는 길은 깊은 눈길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눈을 실어다 산 사면에 쌓아 놓았다. 깊게 패인 발자죽을 따라 걸어 오른다. 스틱으로 찍어보니, 1m 20cm 정도 깊이로 눈이 쌓였다. 오랜만에 심설을 밟으며 상월봉을 향한다.
<상월봉 오른는 길의 심설>
2시 24분 이정표를 지난다. <상월봉 0.6K> 상월봉을 우회하는 길가에서 대원들이 아이젠을 신고, 스패츠를 착용한다.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스패츠를 착용한 후 아이젠을 신는다. 상월봉으로 직접 오르는 바위 길은 눈이 덮여 정체가 생기는 모양이다. 나는 우회하여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안부에 배낭을 내려놓고, 역으로 상월봉을 오른다. 상월봉으로 직등했던 대원들이 내려오면서 스쳐 지나간다.
2시 55분 상월봉 정상에 선다. 사방이 확 트였다. 북동쪽으로 걸어 온 능선과 멀리 태백 연맥이 보인다. 북으로 신선봉, 북서방향으로 어의곡리, 남쪽으로 국망봉이 보인다. 가히 장관이다. 사진을 찍고 서둘러 앞선 대원들을 따른다.
<신선봉과 걸어온 길>
<상월봉 정상에서 본 태백 연봉>
<상월봉에서 본 국망봉 방향>
<상월봉 안부의 설경>
3시 13분 국망봉으로 향하는 안부에 세워진 이정표 앞에 선다. 고치령을 출발한지 5시간 43분이 지난 시각이다. 점심시간 25분을 빼면 마루금을 걸은 시간은 4시간 18분인 셈이다. 3시 15분 어의곡리로 하산을 시작한다.
<상월봉>
<국망봉>
어의곡 계곡으로 이어진 비탈은 눈밭길이다. 16일 내린 눈으로 지난주보다 눈이 더 깊어 보인다. 눈 쌓인 사면을 달리는 것은 엉덩방아를 찧더라도 언제고 즐겁다. 눈 쌓인 사면을 벗어나 계곡에 이른다. 얼어붙은 계곡을 서로 도우며 조심조심 건넌다. 계곡에는 얼음이 녹아,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고, 그곳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돌 돌돌 계곡의 정적을 깬다. 마치 봄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눈 쌓인 어의계곡 >
<어의계곡의 물소리 - 봄의 소리>
위험한 곳은 조심해서 별일이 없었는데, 평탄한 길에서 방심하다 그만 미끄러져 얼음 위에서 크게 엉덩방아를 찧는다. 엉덩이가 깨져나갈 듯 아프다. 하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속도를 줄이고 더욱 조심조심 걷는다. 다시 몇 차례 얼어붙은 계곡을 건넌다, 곳곳에 통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는다. 쓰러진 통나무를 넘거나, 밑으로 기어서 통과한다.
<낙엽송 숲길>
낙엽송 숲을 지나면서 등산로가 평탄해진다. 마지막으로 얼어붙은 개울을 건너, 어의곡리 마을로 이어진 시멘트 길로 올라선다. 5시 30분 대원들이 식사하는 식당에 도착한다. 대원들과 어울려 하산 주를 마시며 식사를 즐긴다.
6시 10분 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1. 23.)
[대빵 / 2005-01-24,11:25:25]
우림선생님
모처럼 심설산행의 묘미를 만끽 하셨네요
겨울산행의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고충을 극복하시고 정말 열심히 산행을 하시고 계신 모습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대간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끝까지 안전산행속에 완주할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산행기 5개가 표출되는 코너에 최근의 산행기가 자동으로 인식되어 나타나야 정상인데 현재 오류로 인하여 특정인(오솔갤)산행기만 표출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써버 다운된 이후에 게속 오류가 되고있습니다.
종전처럼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부탁을 했지만 현재까지 복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원인분석과 써버다운 이후의 바쁜잔무로 인하여 다소 늦어지고 있습니다
빠른시일내에 회복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삭제]
2 [목련 / 2005-01-24,14:03:30]
상월봉을 간신히 올라가 조망을 즐기고 내려와서 보니
우림님이 돌아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지요
누군가 난코스라고 하기에 상월봉 가지 말고
그냥 갈까 하다가 우림님께 왜 안 올라가냐고 야단맞고 갔지요
저는 힘들면 적당이 때우는 것을 잘 하거들랑요
어의곡리 비탈길과 얼음계곡 잘 내려 오셨는지요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무서웠거든요 [삭제]
3 [잭울프 / 2005-01-25,18:52:05]
우림님!
지난산행에 결간하신분이 상당하군요.
저도 후기를 읽는것으로 지난구간을 대신하였습니다.
1미터가 넘는 눈이라니 대단합니다.
어의곡리 얼음장밑의 계곡물 꼭 마셔보고 싶었는데
담번에 여러님들과 함께 가보아야 겠군요.
수고많으셨구요. 일출사진 퍼갑니다. [삭제]
4 [우정 / 2005-01-25,20:02:43]
우림님~
??질, 꾼, 쟁이의 개념을 다시한번 정의해 보셨나요?
목련~
베레모 털모자와 자켓이 잘 어울렸습니다.
얼마나 남지않은 구간 적당이 때우지 마시라요.
잭~
이번에도 영자나무의 요염함?을 경혐하지 못했구려,
땜빵할때 내생각도 아울러 해주슈~~
얼음장밑의 계곡물은 감로수였지요.
여름엔 절대 맛볼수 없다고 하지 아마~~~,
우림님~ 어의곡 물맛 정말 잊을수 없을듯합니다.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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