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을 이고 있다고 해서 소백산(小白山)이다 비로봉에 서 있는 정상석 이면에는 서거정의 시 "소백산"이 음각돼 있다.

 

소백산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이조 초기의 큰선비, 서거정, 역시 간결하게 소백산의 특징을 잡아낸다.

 

 <비로봉 정상석 이면의 서거정의 시>

 

 2005년 1월 15일(토).
오늘,토요 당일 백두대간 산행은, 제33소구간을 간다. 코스는『죽령(696)-제2 연화봉(1,357.3)-천체관측소-연화봉(1,383)-연화1봉(1,394.3)-비로봉(1439.5)-어의곡삼거리-국망봉(1,420.8)-안부(1400)』까지 마루금을 걷고, 왼쪽으로 어의계곡을 타고 내려 어의곡리로 하산한다.
마루금 거리 약12.3Km, 날 머리 약 6Km 이다. 산악회에서 제시한 기준시간은 7시간이다.

 <소백산 등산로 - 죽령매표소에서 천문대까지는 대간꾼들만 보인다.>


 백두대간은 지리산권, 덕유산권, 속리산권, 소백산권, 태백산권, 오대산권 그리고 설악산권의 7개 권으로 나뉘고, 다시 각 산권의 구간을 세분하는 형식으로 체계화한다. 소백산권은 7개의 소구간으로 나뉜다. 이 7개의 소구간 중 우리는 이미, 마패봉, 대미산, 황장산, 도솔봉의 4구간을 지나고 오늘은 다섯 번째로 소백산권에서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오른다.

 

 

35명의 산꾼들을 태운 버스는 8시 45분, 단양 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하라고 30분간 정차한다. 단양 휴게소에 하차한 대원들은 무척 실망한다. 소백산에는 눈이 온다는 예보에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지금 단양의 날씨를 보면 눈을 기대하기 어렵겠다. 쾌청한 날씨에 바람도 없고, 추위도 심하지 않다.


 

버스는 9시 44분 경 죽령에 도착한다. 장호원에서 제천까지 38번 고속화 도로가 개통된 후 서울에서 죽령까지의 소요시간이 30분 이상 단축된다. 9시 47분 죽령 이정표<천문대 6.8Km, 비로봉 11.5Km, 국망봉 14.6Km>를 지나 천문대로 향하는 시멘트 길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충청도 쪽의 죽령 표지석 - 아담하면서도 힘차다>

 

<죽령 이정표>

 

완만한 시멘트 길을 트레킹 하듯 가벼운 기분으로 오른다. 길가에는 잔설이 남아 있다. 국립공원답게 중간, 중간 쉼터와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대간 종주가 아니라면 마냥 쉬면서 즐기며 갈 수가 있겠다. 고도가 높아지며 뒤를 돌아다보니, 죽령 건너편으로 지난 번 산행을 한 삼형제봉, 도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10시 13분 첫 번째 이정표를 지난다. 전면에 중계탑이 멀리 보인다. 10시 56분 중계탑 입구의 이정표에 이른다. <중계소 0.2Km, 죽령 4.3Km, 천문대 2.7Km> 후미 그룹이 모여서 기념 사진을 찍고, 뒤돌아 도솔봉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다.

 <중계탑 쪽으로 접근하는 대원들>

 

<도솔봉과 삼형제봉>

 

 도로는 중계탑을 끼고, 크게 오른 쪽으로 굽어진다. 경사가 급해지며 왼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정 북쪽으로 먼 산 뒤에 마치 수평선처럼 하늘을 가르는 시커먼 띠가 드리워져있다. 스모그 현상인가? 단양읍 방향인데, 예사롭지가 않다.

 <단양읍 방향의 검은 지평 - 스모그 현상인가?>

 

 11시 6분 중계탑 옆에 마련된 전망대에 선다. 북동쪽으로 천체관측소, 제1연화봉, 비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으로는 복원 중인 1,201.3봉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5번 국도로 떨어지는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이 좋다.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 보니 대원들은 모두 앞서 나가고 최후미에 혼자 남았다.

 <전망대에서본, 천문대, 연화봉, 제1 연화봉, 그리고 비로봉>

 

<천문대 가는길>

 

도로는 북동쪽으로 굽어지며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으로 면한 도로변에는 눈이 제법 쌓여있고, 나무들도 하얗게 눈을 이고 있다. 도로변의 설경을 카메라에 담고, 가까이 보이는 천문대를 찍으면서 부리나케 앞선 대원들을 쫓는다. 저 앞으로 천문대를 지나는 대원들이 보인다.

 <북서 사면 도로의 설경>

11시 33분 천문대를 지나. 서둘러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 오른쪽으로 계단이 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앞선 대원들을 따라 잡기 위해, 부지런히 도로를 따라 걷는다. 오른 쪽으로 다시 전망대 쪽에서 내려오는 계단이 도로로 이어지고,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반대 방향으로 계단을 타고 오른다. 우리 대원들이 스쳐내려 오면서 빨리 올라 가 보란다. 계단을 다 오르니 넓은 공지에 바람이 거센 연화봉(1,383m)이다. 이 때가 11시 40분 경이다. 연화봉을 모르고 지나치다 다시 오른 것이다. 이정표가 서 있다. <비로봉 4.3Km, 희방사 2.4Km, 죽령 7Km>

 <연화봉 정상석>

 

 <천문대 이정표>

 

누군가 젊은 대원 한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따라 온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발라크라바를 착용해 누군지 모르겠다. 사양해도 막무가내다. 카메라를 넘겨주고, 정상석 쪽으로 다가서지만,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린다. 이윽고 사진을 찍은 후 고맙다고 다가서니, 방향을 바꾸어, 중계탑과 천문대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더 찍자고 한다. 이미 사진에 담을 구도까지 생각했던 모양이다.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이건 보통 성의가 아니다.


 나는 안경을 써서 발라크라바를 착용하지 못한다. 안경에 김이 서리기 때문이다. 하도 바람이 거세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빨리 주위의 풍광을 카메라에 닮고 싶은 마음 뿐이라 젊은 대원 의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이야기도 못하고 그 대원과 헤어진다.


 바람은 거세지만 주위 조망이 하도 좋아 이내 떠나지를 못한다. 서남쪽으로 천체 관측소와 멀리 중계탑, 그리고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인다. 남쪽으로 도솔봉이 계속 따라 붙고, 동쪽으로 비로사 계곡과 금계호가 아득히 보인다. 북쪽으로 제1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의 능선이 길게 펼쳐있다.

<연화봉에서 본 가야할 길 - 제1연화봉, 그리고 비로봉>

 

 <멀리 보이는 비로사 계곡과 금계호>

 

 

서둘러 대원들을 따라간다. 길은 내리막으로 떨어지며 눈이 쌓인 곳이 많아진다. 안부를 지나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에 대원 두 사람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12시 6분 무명봉에 오른다. 정면 헬리포트 너머로 제1 연화봉으로 오르는 계단 길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비로봉으로 뻗은 능선이 가까이 다가온다.

 

<지나온 무명봉>

 

 <제1 연화봉 계단길>

 

눈이 쌓인 무명봉을 지나 제1 연화봉으로 오른다. 왼쪽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귀막이 모자에 방풍 재킷 모자를 눌러썼는데도 드러난 왼쪽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계단을 오르느라 한 발을 들면, 바람에 몸이 밀려 균형을 잃는다. 스틱을 짚어 겨우 균형을 취한다. 이 곳 저곳 사진을 찍느라 다시 맨 뒤로 쳐진다.

 

제1 연화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마주 오는 등산객들이 점점 많아진다. 바람이 거세니 목을 잔뜩 움츠리고 땅만 보고 왼쪽으로 걷는다. 안부를 지나 등산로는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마주 오는 사람들과 자주 몸이 부딪히고. 떼를 지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 좌측 통행에, 올라오는 사람에게 통행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아는 등산객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건가, 헷갈린다.


 

언덕을 오르니, 오른 쪽 길가에서 대원 두 사람이 점심을 먹고 가자고 부른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다. 제1 연화봉을 비껴보고, 비로사 계곡을 굽어보는 양지 바른 명당자리다. 길가에 솟은 바위가 바람을 막아준다. 최후미 세 사람이 점심을 즐긴다. 후미이기는 하지만 예정시간 보다는 빠른 진행이라 거리낄게 없다.

 <뒤돌아본 걸어온 길 - 중계탑, 천문대가 보인다>

 

점심을 마치고 1시 10분 경 비로봉으로 향한다. 안부까지 내리막길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습기가 하나도 없는 눈을 밟으며 천천히 진행한다. 이정표를 지난다.<비로봉 1.0Km, 국망봉 4.1Km, 죽령 10.5Km>. 왼쪽으로 붉은 지붕의 통나무 집, 주목 관리사무소가 잔설 위에 서 있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계단 길을 올라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정상을 향한다.

 <비로봉 가는 길>

 

 <가까이 본 비로봉>

 

<멀리 본 어의곡리, 국망봉 삼거리>

 

 

 <주목 관리소>

 1시 45분 경 비로봉 정상에 도착한다. 죽령을 출발해서 약 4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으로 보낸 30분 정도, 진행이 빠른 셈이다. 정상이라 바람이 더욱 거세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에 밀려 정상석도 제대로 잡기가 어렵다. 걸어 내려온 길, 국망봉으로 이어진 능선 등을 카메라에 담고 1시 52분 경 서둘러 국망봉을 향해 출발한다. 칼바람이 왼쪽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왼 손을 들어 뺨을 감싸고 구르듯 계단 길을 달린다.

 <비로봉 돌탑과 정상석>

 

 

<비로봉에서 본 걸어온 길>

 

어의곡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어의곡리 4.7Km, 비로봉 0.4Km, 국망봉 2.7Km> 등산로는 북동쪽으로 휘어진다. 비탈길을 내려서니 눈밭길이 계속된다. 북쪽 사면이라 눈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모처럼 설산 산행을 즐긴다. 3시경 국망봉에 도착한다. 주위의 사진을 찍고, 계곡으로 하산할 준비를 한다. 아이젠을 신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다. 3시10분 경, 상월봉 쪽을 향해 출발한다. 역시 최후미다.

 <국망봉 정상석 - 대원 사진>

 

 

 

<국망봉에서 본 걸어온 길 - 대원 사진>

 

한 5분쯤 걸었을까? 이정표 앞에 후미 담당 2인 방이 기다리고 있다. 왼쪽으로 난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길은 자칫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그럴 위험에 대비하여 후미 2인 방이 거센 바람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아마도 최후미를 위해 적어도 20분-30분은 기다렸음에 틀림이 없다. 언제 보아도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고맙고 미안하다.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가파른 사면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삼선골, 벌바위 등 멋진 이름이 붙어 있는 눈 덮인 아름다운 길을 신나게 달려 내린다. 계곡에 이르러 꽁꽁 얼어붙은 냇물을 몇 차례 건넌다. 푸르게 보이는 얼음 위를 조심조심 건넨다. 군데군데 얼음이 엷은 곳도 있어 신경이 쓰인다. 혼자서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한적한 계곡을 달려 내려오니 마음은 먼 옛날의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윽고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아름다운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어둑어둑한 숲속, 노랗게 깔린 숲길이 아름답다. 등산로는 마지막으로 개울을 건너더니 4시 50분 경 어의곡리로 이어진 도로로 올라선다.


 

마을로 통하는 도로에 산악회 안내리본이 걸렸으리라고 예상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눈에 뜨이는 것이 없다. 도로를 따라 터덜터덜 걷는다. 교회가 보이고 마을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드문 드문 보이는 음식점들은 시즌이 아니라 모두 문이 굳게 닫혀있다. 버스도 보이지 않고, 산행리본도 없다. 잘못 내려온 게 아닌가 해서 뒤를 돌아본다. 뒤로는 지는 해를 받아 머리부분만 밝게 빛나는 산봉우리가 높직이 솟아 있다.

 

한참을 더 내려오니 길이 오른 쪽으로 휘면서, 왼쪽에 식당이 보인다. 마당에 승용차들이 서 있는 걸 보니 영업을 하는 것 같다. 혹시나 하고 안을 들여다본다. 대원들이 보인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다. 대원들이 박수로 환영하며 반긴다. 5시 5분 경이다. 오늘은 약 7시간 20분 가량 산행을 한 셈이다.

 

자리를 잡아주는 대원, 스틱을 받아 주는 대원, 막걸리를 따라 주는 대원, 안주를 집어 주는 대원, 모두들 반갑게 환영한다. 가던 길을 되돌아 와 거센 바람 속에서 사진을 찍어주던 대원, 바람 부는 어의곡리 갈림길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던 후미 2인 방. - 아 ! 실로 山情은 無限하다.

 

이윽고 후미 2인 방이 잔류 대원들과 함께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선다. 술과 안주, 그리고 식사가 추가로 주문된다. 버스는 5시 45분 경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2005. 1. 16.)

Posted by Urim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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