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8일(토).
오늘은 대간 제45소구간을 산행한다. 코스는 『닭목재(680)-맹덕목장-왕산1쉼터(855)-왕산2쉼터(952)-고루포기산(1,238.3)-대관령전망대-횡계현-돌탑-능경봉(1,123.2)-대관령(840)』의 마루금이다. 도상거리 약 12Km, 산악회가 제시한 소요시간은 5시간 30분이다.
능경봉 정상의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 자료를 종합하면 총 거리는 약 13.8 Km, 그리고 주요 구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닭목재(2.1K)-목장(0.5K)-제1쉼터(2.0K)-제2쉼터(2.0K)-고루포기(1.06K)-전망대(1,58K)-쉼터(2.46K)-돌탑(0.3K)-능경봉(1,8K)-대관령』
<능경봉 정상의 등산 안내도>
비교적 코스가 짧고, 고루포기산과 능경봉을 넘는 단순한 코스라. 산악회가 제시한 시간을 목표로 하여 산행계획을 세운다.
눈이 오면 좋으련만 눈 소식은 없고 주말에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예보다. 연말 연시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간한 대원들이 많더니,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참여인원이 많아, 좌석이 모자란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자, 밖은 무척 추운 모양이다. 버스 창에는 두터운 성에가 끼여 차창 밖으로 흐르는 겨울의 고속도로 주위를 볼 수가 없다. 무료하게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어 버린다. 9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소사 휴게소에서 정차한다. 밖은 생각보다 춥지는 않고, 바람도 잠잠하다.
지난 1월 1일, 태백산 산행 시, 장갑을 끼고도 동상에 걸렸던 신 회장님의 엄지손가락을 보고는, 동상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다. 엄지손가락 윗부분의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붉게 속살이 들어 났는데, 속살까지도 동상을 입은 것 같다고 한다. 이를 보고는 추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대원들이 서둘러 장갑을 구입한다.
소사 휴게소에서 30분간 정차한 버스는 대관령을 지나, 이윽고 고속도로를 버리고 35번 국도로 들어선다. 해가 높이 솟자, 차창의 성에도 녹아 내리고, 물방울만 맺혀있다. 물기를 닦고, 밖을 내다본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골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낮 익은 오봉 저수지를 지나고, 버스는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왕산천을 끼고 이어지는 137번 지방도로를 따라 닭목재로 향한다. 왕산천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방도로는 구불구불 가파르게 산 사면을 타고 오른다.
버스는 10시 20분 경 닭목재에 도착한다. 지난번 화란봉 산행 시 하산 지점이었던 닭목재라 낮이 익어 반갑다. 모두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는다. 나는 뒤로 쳐져 신령각, 안내판 등을 카메라에 담고, 10시 25경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닭목재>
<신령각>
등산로는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든다. 오른쪽으로 목장을 끼고, 떡갈나무 숲과 경계를 이루며 이어지는 등산로는 경사가 가파르다. 사면에는 언제 내린 눈인지 잔설이 깔려 있다. 눈과 바람으로 유명한 이 지역을 먼지가 풀풀 나는 임도를 걸으며 실망하던 중이라, 잔설이라도 눈을 보니 반갑다.
<목장과 숲 사이로 난 등산로>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길이 굽으면서 나무가 없이 왼쪽이 휑 뚫린 곳을 지날 때는 몸이 휘청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차가운 바람이다. 바람 하나는 제대로 불어주는 셈이다. 이런 바람마저 없었으면 섭섭할 뻔 헸다. 이곳까지 모자도 쓰지 않고 버티어 오던 오솔길 님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던지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발라크라바를 꺼내 착용한다.
11시 30분 경, 표고 855m 에 마련한 왕산 1쉼터에 도착하여, 대원들과 사진을 찍는다. 이어서 드니로 님이 오솔길 님을 앞세우고 합류한다. 오늘은 드니로 님이 오솔길 님을 에스코트하기로 한 모양이다. 좋은 일이다. 일행은 더운 음료수를 나누어 마시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아마도 955.6m 봉인 모양이다. 오른 쪽으로 대관령 넓은 목장지가 멀리 보인다.
길은 방화로로 이어진다. 눈이 오지 않아 방화로는 바람에 불려온 낙엽이 가득 싸여, 정강이 높이까지 발이 묻힌다. 등산로는 왕산2 쉼터를 지나 급경사 길을 오른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고, 오른 쪽으로 절벽을 면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비죽 비죽 솟은 잔돌과 나무 뿌리들로 거칠다. 12시경 첫 번째 철탑을 지나고, 12시 25분 경에 두 번째 철탑을 지나, 등산로 왼쪽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 고루포기산(1238.3m) 정상에 선다. 이 때가 12시 30분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잔설이 남아 있다. 동북쪽으로 능경봉이 커다랗게 다가서고, 그 뒤로 동해바다가 펼쳐 있다.
<고루포기산 정상 표지목 - 대원 사진>
<고루포기산에서 본 능경봉, 멀리 강릉시와 동해가 보인다.>
<대관령 전망대에서 본 횡계>
고루포기산 - 4자로 된 산 이름이 흔치 않은데다, 그 의미도 감을 잡기가 어렵다. 큰 고개, 높는 고개라는 의미의 방언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이 지역에 고로쇠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정설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곳 고루포기산은 한전의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주변의 숲이 심각한 훼손을 입고 생태계가 파괴된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고루포기산에서 발왕산까지 모두 49개의 송전탑이 있다고 한다. 강릉 수력발전소의 전기를 발왕산에 있는 용평스키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그 중간에 있는 고루포기산에도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산림지역 내에 송전탑 건설을 할 경우는, 필요한 장비와 자재를 헬기로 수송하여 공사를 하지만, 고루포기산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위해, 공사용 도로를 개설하여, 송전탑 부지 주변을 마구 파헤쳐 놓았다고 한다. 산 정상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에 폭 6∼7m 가량의 송전탑 건설용 도로가 지나간다. 송전탑 건설용 도로의 길이는 진입로부터 일곱 군데의 송전탑 부지까지 약 3㎞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도로가 백두대간 마루금을 마구 침범한다.
하지만 이미 훼손된 것을 어찌하랴? 한전과 쌍용, 그리고 강원도가 10년 또는 20년 계획을 세워서라도 훼손시킨 부분을 복원토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겠다.
고루포기산을 내려서서 능경봉으로 향한다. 마주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 12시 55분 경 대관령 전망대에 도착한다. 북으로 대관령 목장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북서쪽으로 횡계가 저 아래 누워있다. 영동고속도로가 넓은 벌을 가로질러 달린다. 눈이 쌓이면 장관이겠다.
<전망대에서 본 대관령>
횡계현으로 이어지는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1시 17분 이정표에 이른다. <고루포기산 1.4K, 응경봉 3.7K> 중위 그룹이 길 가에 모여 앉아 점심을 들고 있다. 후미 그룹도 합류하여 함께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 중위, 후미그룹 구분 없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출발한다. 나는 1시 45분 경 식사를 마치고 드니로 님과 함께 출발한다. 후미 4인 방이 느긋하게 커피까지 즐기면서 뒤로 쳐진다.
점심식사 후지만 앞선 사람들을 따라 서둘러 걷는다. 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 참나무 숲길로 전형적인 대간길 모습이다. 앞에 은영 당수가 걸어간다. 차련 님과 오솔길 님은 앞으로 치고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1시 57분 또 하나의 이정표를 지난다. 능경봉까지 2.8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이제는 서둘러 걷지 않아도 한시간 반이면 하산할 수 있겠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언덕길을 오른다. 뒤로 후미 4인 방이 따라붙는다.
<이정표 - 능경봉 2.8Km>
은영 당수가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고 길가로 비켜선다. 3주간을 결간하고, 오늘 조금 빨리 걸은 것이 무리가 된 모양이다. 후미 4인 방들이 대신 배낭을 받아 메고, 은영 당수의 다리 근육을 풀어 주며 함께 쉰다. 40대의 젊은 사람들 - 속도 경쟁을 하면 선두를 다툴 정도인데도, 교대로 뒤로 쳐져 참을성 있게 후미를 본다. 참으로 멋있는 사나이들이다. 신통한 젊은이들이다.
다리에 쥐가 난 은영 당수
나는 드니로 님과 함께 앞서 나간다. 경사가 점점 급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고루포기산을 돌아보고 카메라에 담는다. 2시 46분 돌탑을 지난다. 급경사 길, 토사 붕괴를 막기 위해 큼직큼직한 자연석을 촘촘히 깔았다. 나무나 돌계단보다 자연스럽고, 보행에도 편하다. 2시 55분 능경봉 정상에 오른다.
<뒤돌아 본 고루포기산>
<돌탑>
능경봉 정상은 너른 헬리포트다.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와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사방이 트였다. 다만 고루포기산 쪽으로는 나뭇가지가 가려 산의 모습을 깨끗이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운 게 아쉽다. 강능시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이고, 바다로 뻗은 공항 활주로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남서쪽으로 용평 리조트와 발왕산이 보인다. 이정표가 대관령까지 1.8Km라고 알려준다.
<능경봉 정상>
<능경봉에서 본 발왕산 방면>
<강릉시와 동해>
완만하고 부드러운 비탈길이 대관령까지 이어진다. 돌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서둘러 내 닫는다. 앞에 대원 둘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3시 16분 제왕산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도착한다.
<제왕산 이정표>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샘터로 내려갔다 되돌아오는 대원과 합류하여 대관령 주차장으로 향한다.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3시 30분 경, 버스에 도착한다. 오늘은 5시간 5분 정도 걸린 산행을 한 것이다. 이윽고 은영 당수가 후미 4인 방과 함께 도착하고, 버스는 오징어 불고기 집을 찾아 횡계로 향한다. 지난번 들렀던 납작식당에서 오징어 불고기를 안주로 한산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버스는 4시 45분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영동고속도로는 문막에서부터 막히고, 눈발이 휘날린다. 버스는 8시 30분 경에야 겨우 서울에 도착한다.
(200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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